야설 아일랜드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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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하던 시은이와의 하룻밤이지만 전혀 기억에 없어 주변 상황으로 유추해 말을 했던 광수는 순식간에 쪽팔림으로 얼굴이 벌개졌다.
"뭐...뭐? 선배에게 그런 막말을 하다니! 너 제 정신이야?"
아직도 얼떨떨해 있는데 평소에 마음이 있던 후배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으니 화가 났다.
"알게 뭐야?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갔는지, 내가 왜 선배랑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선배가 음흉한 마음을 먹고 여기로 날 납치해 온거 아냐?"
"...... 이봐, 말이 안돼잖아. 그 요트는 니 삼촌꺼에다가 음식을 준비한 것도 너네 고용인이고. 나머지 5명을 다 어떻게 하고 널 여기로 끌고 와. 나도 이상한 자세로 쓰러져 있었다고! 결정적으로 나는 홀딱 벗고 있고 너는 옷 다 입고 있잖아!"
"흥, 그림이 딱 나오네. 선배는 수면제로 정신이 혼미한 나를 겁탈하려고 옷을 벗고 나에게 달려 들다 나의 앞차기에 급소를 맞고 그대로 고꾸라진 거 아니겠어? 나도 곧 기절해서 깨자마자 그 지저분하고 불유쾌한 장면을 볼 수 밖에 없던 거야!"
광수는 뭔가 단단히 미움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바람둥이긴 하지만 여자를 덮치려고 수면제를 사용하는 비겁한 남자가 아닌데. 거기다 상황 유추도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딴 것도 다 말이 안되긴 하지만 일단 제쳐 두고, 니 말대로라면 왜 니가 내 뒷모습을 보고 기절해 있는건데!"
그녀는 잠깐 생각하더니
"시끄러워. 어쨌든, 반경 2미터 안으로는 접근하지 마. 바로 어제와 똑같은 응징을 해 줄테니."
태권도 유단자인 그녀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광수는 움찔거리며 본능적으로 자신의 급소를 손으로 가렸다.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천연의 무인도에 자신과 미녀 후배 둘 뿐. 즐거운 상상이 펼쳐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미녀에게 파렴치한 취급받으며 경멸어린 시선을 받지 않았더라면.
"일어나, 걸어. 동아리원들에게 안내해."
어차피 길은 하나였다. 동아리원들을 찾아야 자신의 누명이 벗겨질 것이기도 하니 일단 길을 나서기로 했다.
"근데, 저기... 그 카디건 좀 벗어 주면 안될까? 이꼴로는..."
리니와 달리 시은은 상의 위에 얇은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싫어, 내 옷에 그 지저분한 걸 문댄다고? 꿈도 꾸지 마!"
아까는 보는 게 불유쾌하다더니. 잘도 눈 한 번 안 피하고 지금까지 남자의 나체와 마주 보고 있었다. 다른 여자애들 같았으면 비명도 지르고 고개를 돌릴 법도 한데.
뭔짓을 할지 모르니 앞서서 걸으라는 말에 광수는 그대로 따랐다. 오해를 풀 때까진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뒤에서 느껴지는 시은의 시선을 느끼며 광수는 걸었다. 벗은 몸을 계속 보이면서 걷고 있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었다. 거기다 그녀가 자신의 몸을 어떤 식으로 보는지 볼 수 없다는게 더 신경쓰였다. 걸음걸이에 따라 불알이 보이거나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걸었다. 오히려 그녀가 남자의 몸을 아무렇지도 않아 하니 좀 무안해지는 것이었다.
얼마쯤 걷자 가시 넝쿨이 길을 막아 서고 있었다. 하지만 넝쿨 아래로 좁은 통로가 있어 그곳을 통해 반대편으로 갈 수 있는지 보기 위해 광수는 엎드려서 살펴 보았다. 통로를 통해 반대편의 광경이 들어 오는게 기어 가면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이 지나가기 딱 적당했다. 광수는 엎드린 상태에서 뒤를 돌아 보며 말했다.
"여기를 통과할 수 있겠는데?"
시은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 보고 있었다. 그녀를 의식하니 지금의 포즈는 상당히 민망한 포즈였다. 머리는 지면에 닿은 채 엉덩이를 위로 쑥 들어 올리고 있었으니. 그런 자신을 시은이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죽어 있던 '그 녀석'이 반응을 하는게 느껴졌다. 그러자마자
"퍽"
"무슨 생각하는 거야!"
매서운 발길질이 다리 가운데를 갈랐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뒹굴거리고 있자니 그녀가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얼굴 이쁜 것만 알았지 이렇게 한 성격하는지는 몰랐는데.
"앞으로 가 봐."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광수는 앞으로 기어 갔다. 얼마 안 있어 그녀가 뒤에서 따라 오는 소리가 들렸다. 꼴이 말이 아니군. 그녀의 시선을 다시 느끼면 다시 거기에 힘이 들어갈 것 같아 빠르게 엉금엉금 기어갔다. 밝은 햇살이 비추는 땅으로 나오면서 허리를 펴려 했을 때였다. 그의 눈 앞에 날카로운 창이 날아와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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