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캠퍼스 애정비사 76-80화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972회 작성일 17-02-12 11:26

본문

<제76화> 쪼그려 앉은 누님의 사타구니

나로서도 전혀 예기치 못한 신체반응이었다. 보영이와의 정사 후... 그
전에 술까지 마신 터라 피곤에 지쳐 낮잠까지 든 것인데, 벌써 이런 완전
한 흥분상태로 다시 돌아가다니.

얼마나 부끄러운 광경이냐. 훤한 대낮에 연상의 여자 앞에서 덜렁거리며
물건을 내놓은 것도 모자라, 그것이 낯뜨거운 애액까지 머금은 광경을 보
이고 말았다 -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에서 나는, 타일벽을 붙들고 후회와 망측함에 몸이
떨리고 있었다. 아아, 저 미세스 최는 나를 얼마나 버릇 없는
녀석으로 생각할까... 마치 내가 욕정도 참지 못하는 금수 같아보였을 것
이다. 생각할수록 치가 떨렸다.

그런데 똑똑, 샤워기 물소리 속으로 작게 화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동생... 문 앞에 타올 가져다 놨어..."

아까만해도 기세등등하게 내 실수를 추궁하던 누님의 목소리가, 이제 당
혹감에 한풀 꺾인 듯 머뭇거리는 투였다.

그녀로서도 얼마나 민망하였을까. 자기 말에 따르면 동생일 뿐이라는 사
내녀석의 그곳이 그런 야릇한 꼴을 드러내다니, 정말 난처했을 것이다.

어휴... 다시 밖으로 나가는 것이 겁났다. 그냥 이쯤에서 최마담이 말없
이 돌아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대충 바깥 동정을
살피니 전혀 그녀가 나갈 것 같지는 않다.

어쩌란 말인가, 그렇다고 마냥 이렇게 화장실 안에 숨어있을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일 - 나는 일단 나머지 옷들을 벗고, 비누칠을 해서 몸뚱아
리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바지야 몰라도 갈아입
은 새팬티 차림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팬티도 없이 또 한
번 알몸을 누님 앞에서 드러낼 뻔한 일이다.

샤워를 끝마치고 물을 잠그고서도, 나는 여전히 방으로 돌아갈 기분이 아
니었다. 창피함에 그녀를 다시보느니 차라리 도망치고 싶을 따름이었다.

똑똑... 다시 한번 두드려지는 문.

"창희... 아직 멀었어...?"
"아, 아니요! 그, 금방 나갈께요...!"

후우 -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빠끔이 문을 열어보았다. 방문은 닫혀
져 있다. 수건... 그것은 곱게 접혀져 화장실문 바로 앞에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재빨리 그것을 집어들고 다시 문을 닫았다.

어쩔 생각일까, 도대체 그녀는. 그녀가 갖다놓은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면
서도, 나는 너무나 당황스러워 얼떨떨할 뿐이다.

제법 미세스 최의 신세한탄까지 들은 사이기는 한데, 그래도 겨우 요 며
칠간의 만남으로 저렇게까지 지나친 행동을 보이는 그녀... 그런 그녀를
쉽사리 이해하기는 힘들다.

갑자기 들이닥쳐 방청소에 빨래까지 해주겠다고 안달하지를 않나, 내가
날라리 기집애랑 외박을 했다고 신경질을 부리지를 않나... 그래도 그건
우리가 의남매 사이라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내가 너댓살난 꼬마동생도
아니고, 그래도 엄연히 스무살이 넘은 다큰 어른인데, 그런 다리털 시커
먼 놈의 적나라한 곳까지 홀딱 벗겨 씻어주다니...

도무지 저 누님의 속셈을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방으로 돌아가야한다. 용기를 내기 위해 쉼호흡을 가다듬으며 나
는 화장실을 나섰다. 뭐 달리 뾰족한 방도도 없지 않느냐, 여긴 내 자취
방이고, 내 집인 것이다. 여기서 내가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는 것이고 -

왠지 도살장에 들어가는 송아지처럼 내키지 않는 나였다. 가만히, 문을
열어본 나는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다시 저으기 놀랄 수밖에 없었
다.

어디서 찾았는지, 내 고물 다리미를 꺼내쥔 미세스 최는, 무릎까지 꿇은
자세로 빨아놓은 내 옷가지들을 다림질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 가운데에
조그만 앉은뱅이 상 위에는 음료수와 김밥이 가지런히 차려져 있는 게 아
닌가.

"으응, 얼른 들어와서 김밥좀 먹어. 아직 점심도 안먹었지?"

얼렐레... 그녀는 다림질을 하며 우두커니 선 나를 향해 멎쩍은 듯 배시
시 웃어보이기까지 하고 있었다.

이, 이게 내 방인가, 그녀 방인가. 멀끔히 청소된 방안, 깔끔하게 정리된
옷걸이며 책상 - 꼭 누님이 내 방에 놀러온 것이 아니라 내가 누님 방에
놀러온 기분이다.

"앉아... 아까 여기 올 때에, 동생이 아무 것도 안먹었을 것 같아 내가
사왔어. 다음엔... 내가 고기라도 사와서 구워줄께"

하이고, 갈수록 황송한 말만 지껄이는 최마담이다. 이젠 음식까지 해주겠
다고?

"그, 그 옷들 안다려도 되는데..."

갈수록 미안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엉거주춤, 방구석에 주저앉으며
헛기침을 해보지만... 그녀는 열심히 옷다리기에 열중하며 웃어 넘기고
있었다.

"어유, 뭘... 지금 보니까 귀찮아서 한번도 다려 입은 적 없는 것 같은
데... 그렇지?"

사실이다. 옷빨기도 귀찮은데 무슨 다리미질씩이나 - 그래서 나는 주말에
집으로 가져가 어머니께 맡기거나 아니면 남방같은 종류도 그냥 툴툴 털
어 입기 일쑤였었다.

"배 안고파? 남자들 혼자 살면 밥 굶기 흔한데... 창희도 그렇지?"

하기야 쪼르륵 소리가 날 정도였다. 어제 저녁부터 술 빼고는 먹은 것도
없으니, 오후가 된 지금에야 거의 뱃가죽이 등뼈에 발라질 지경... 해서
이따가 잠깨고 라면이나 하나 끓이려고 했는데.

"얼른 먹어. 넉넉하게 사왔으니까. 미안해, 누나가 겨우 그런 김밥 나부
랭이나 먹이다니..."

눈물 날 지경이다. 이 누님은 왜 이렇게 내게 잘해주는 것일까. 감격하는
마음에 아까까지의 낯뜨거움은 어느새 잊고 있었다.

"아냐, 잠깐... 먼저 빨래좀 해야겠다...!"

대충 두어벌 옷가지를 다려놓은 그녀는, 곱게 옷걸이에 그것들을 걸고 내
속옷과 양말 등을 들고 일어서고 있었다.

"아, 아뇨, 그, 그것들은 제가...!"
"괜찮아. 하는 김에 다 해버릴께. 동생은 얼른 그거나 먹어"

얼결에 따라 일어서려는 나를, 그녀는 손짓으로 제지하며 빨랫감을 가지
고 목욕탕으로 들어가버렸다.

허 참, 미치겠네... 기어이 내 팬티까지 빨아주겠다는 미세스 최의 의지
가 관철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이 김밥 하나가 삼켜지는 것은
자꾸 목구멍으로 바위가 삼켜지는 것 같았다.

쏴아아... 물소리가 들려왔다. 기계적으로 김밥을 넘기며, 음료수를 따
목을 축이려는데...

눈에 보이는 광경이 하나 있었다.

원래 내 방과 화장실은 서로 마주보는 위치 - 그런데 그녀는 내 방문을
미처 꽉 닫지 않고 나간 모양이다. 그리고 그 빼끔이 열린 문틈 사이로,
건너편 화장실의 문이 열려져 있었다.

흔히 빨래같은 잡일을 하는 경우에, 여자들은 대부분 목욕탕이나 화장실
의 문을 열어놓는다 - 실제로 우리 어머니도 그러셨는데, 언젠가 그 이유
를 물으니 '물소리 땜에 누가 들어오는 초인종 소리나 전화벨 소리, 혹은
부엌에 끓여놓는 국냄비 소리가 안들리잖니'라고 하셨었다 - 그런데 지금
최마담도 똑같은 패턴울 보이고 있었다.

즉, 미세스 최도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아 우연히 내 방문을 통해 그
안이 들여다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안에서 일을 벌이는 그녀가 있었
다.

그녀가 뭐 용변을 보는 광경을 목격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여자가 빨래하는 모습을 처음볼 리도 없는 것이다. 그냥 누님은 바닥에
놓인 대야에 내 빨래감을 넣고는... 물을 퍼담는데 -

그것이 문제였다. 입고 있는 짧은 치마.

즉 빨래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바닥에 쪼그려앉을 수밖에 없는 그녀, 그런
데 꼭끼는 미니 스커트가 걸렸던 것이다.

그래서 어쨌겠는가, 따지고 보면 뻔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내가 쳐
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자연스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으힉,
그리고 나는 그 광경에 머리가 띵, 울리고 있었다.

내가 치마를 입고 있어도 당연한 일이었을 노릇... 최마담은 스커트를 엉
덩이께까지 끌어올리더니, 그것을 사타구니 사이로 쑤셔넣고는 그대로 -
쪼그려앉고 있었다. 다시 말해 용변보는 그 자세로.

으햐햐, 나는 어렴풋이 건너다 보이는 그 광경에 침을 꿀꺽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짧은 스커트자락을 걷어올리고 무릎을 세운 채 주저앉았으니 - 그것도 내
가 훔쳐보는 정면으로 - 그녀의 허벅지 사이가 남김없이 들여다보이는 게
아닌가!

크흑, 쌍코피가 터질 광경이었다. 정말 적나라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스타킹도 허벅지 중간까지만 오는 밴드형에, 완전히 당겨올려진 치마속..
. 그 터질 듯한 몸매가 엄청나게 야릇한 자세로 드러나 있었다.

정말 그런 광경은 보신 적이 있는 분만 아실 것이다. 게다가 쪼그린 자세
로 인해 도톰하게 부푼 누님의 엉덩이 사이까지 - 그녀의 사타구니는 레
이스가 수놓아진 분홍색 팬티만으로 가리워진 채, 훤히 들여다보이고 있
었다.

한쪽에 대야를 놓고, 하나하나 옷가지를 꺼내어 손빨래를 하느라... 그녀
의 치마속 허벅지 사이는 리드미컬하게 흔들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사진
기가 있다면... 찍어놓고 싶을 정도로 흥분되는 경치였다.

연달아 콩닥이는 가슴, 마른 침만이 꿀꺽이며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멍청
히 들이키는 음료수의 맛도 모를 정도였다.

양말, 다음엔 팬티... 그 때였다. 휴우, 이마에 땀이라도 났는지 손등으
로 얼굴을 훔치는 그녀인데 -

엇, 당혹한 나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 야릇하고도 황홀한 경치
에 넋이 나가있던 나는, 그녀가 물끄러미 내 얼굴을 마주 쳐다보고 있다
는 광경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었다. 엉겁결에 정통으로 마주친 그녀와
나의 시선.

화들짝, 눈을 돌렸다. 문득 귀밑이 달아올랐다.

그녀가 슬그머니 손을 뻗어 화장실 문을 살짝 닫았다.

어, 어쩌지... 내가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이 들킨 것일까? 그냥 빨래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인가, 아니면 자기가 치마 속을 드러내 보였다는 사
실을 알아차린 것인가 -

왠지 또 다시 남모르는 죄를 짓고 만 나였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한바탕 물소리가 한번 더 들려왔다. 그리고... 수건
에 손을 닦으며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한손에 깨끗이 세탁된 내 양
말과 팬티를 들고서.

<제77화> 누님은 나를 성적대상으로

또다시 민망한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김밥만 주억거리고 있었다.

아무 말없이 다림질한 옷들과 빨래한 내 옷들을 널어놓는 그녀... 문득
수그린 내 시야에 다소곳이 모아져 다가와 앉는 그녀의 무릎이 보였다.

"어머, 동생... 왜 그러고 있어? 꼭 죄지은 사람처럼..."

그러나 나는 얼굴이 달아올라 감히 그녀를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까... 그 일 때문에 그래...?"

폭, 내쉬는 그녀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 내가 너무 심했지? 창희도 어른인데... 꼭 애기 다루듯이..."

어휴... 알기는 아시는군요.

"그 때는 솔직히 너무 흥분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하지만, 동생이 나
한테 거짓말한다는 게 너무 화가 나. 지금도..."

할 말 없는 나였다.

"죄, 죄송해요...!"
"사실 그래, 나도 알아. 니가 누구랑 같이 자건, 그게 이 누나가 상관할
일은 아냐. 그건 어찌보면 창희의 자유니까...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
지 않았었어. 창희동생이 그렇게 함부로 이 여자 저 여자와 살을 섞을 사
람이라고는..."

"그래서, 실망감이랄까... 게다가 그 상대가 내가 데리고 있는, 우리 가
게 아이라는 것이 더 싫었어. 동생, 동생은 그러고서 이 누나한테 놀러와
서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했을 거야?"

그녀의 훈계가 이어지고 있었다.

"아까 난 보영이만 있을 줄 알고... 걔네 이모네 소주방에 갔던 거야. 나
도 놀랐었어. 희창이 도련님이 거기 있을 줄은... 난 그냥 보영이 시켜서
동생 전화번호만 알려달랄 생각이었거든..."

"보영이는 그런 기집애야. 아니 요즘 여자애들, 다 그런 건 눈 깜짝도 안
하지만... 봐, 동생이랑 같이 자놓고도 뻔뻔스럽게, 아침에는 또 다른 남
자랑 히히덕대다니...!"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변명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어쨌든 어젯밤의 일에
나도 절반, 아니 그 이상의 책임은 분명하니까.

"그래서 희창씨한테도 모른 척 해줬던 거야. 척 보니까... 우리 창희랑
그 보영이 년이랑 어제 무슨 짓 했는지는 모를 것 같길래, 일부러 어제
그 기집애 방에서 동생 봤었다는 얘기도 숨기고 말 안하구"

"안그래도 나올 때 보영이가 눈치를 주더라구. 니가 어제 밤 자기 방에
있었던 사실을 내가 멋모르고 말할까봐... 걱정 됐었겠지, 그 기집애야..
."

천만다행이다. 아니, 지금으로서는 이 미세스 최 누님에게 너무나 고마울
뿐이다. 정말 그녀는 사려 깊게 처신해준 것이다.

식은땀이 흐를 일이다. 그 자리에서 그녀가 무심코라도 나를 보영이 방에
서 만났었단 얘기를 해버렸다면 나는 어떤 꼴이 되었겠는가...

"그래서 그 때 짐작했지. 그 기집애가 뭔가 켕길 짓을 했구나... 라고.
솔직히, 속으로 너무 화가 나서 희창이한테 다 말해버릴까 하는 기분도
들었어. 그래도 참았었지... 맨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까지도"

"동생이 아무 일 없었다길래 끝까지 믿으려고도 했었어. 하지만 우리 창
희는 너무 착한 것 같아...! 거짓말한다는 게 당장 눈에 보였으니까. 팬
티 한장 갖고도 쩔쩔 매고..."

정말 죄스러운 기분이다. 그녀의 침착함에 비해 나는 얼마나 철없는 행동
을 했던가.

"하지만... 아까 그렇게까지 난처하게 만든 건 정말 미안해. 난 그냥 닦
아준다는 생각만 하고... 내가 너무 심했지?"

꿀꺽, 맞아 - 그건 조금 도가 지나쳤었다. 이 대목에 이르러서야 조금 고
개를 들 수 있는 나였다.

"아니요, 제, 제가 오히려... 저, 전 참을 수 있었는데... 너무... 누님
이 가까운 곳까지 건드리시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그만 실수를... 그,
그거 보셨어요...?"

제 물건이 발기된 것을... 꿀꺽, 그 말을 더듬는 내 목구멍으로 마른 침
이 삼켜졌다.

잠시... 민감한 화제에 이르자 대답을 망설이는 최마담.

"응... 하지만 괜찮아. 아무리 내가 누나라도... 창희처럼 젊은 나이에는
당연한 일인 것 잘 알아...!"

"좀 전에... 내가 빨래할 때도 동생이 들여다봤다는 것도 알아. 내가 오
늘... 치마가 좀 짧지?"

으아, 그, 그럼 - 내가 자기 허벅지 속을 훔쳐봤다는 것도 눈치챘단 말
아냐, 이 누님은!

아이고, 다시 얼굴이 빨개지는 느낌이었다. 남자로서의 내 본능적 욕구를
들켰다는 것은, 그녀 코 앞에서 그곳을 덜렁였다는 것보다 한층 더 수치
스러운 일이었다.

"죄, 죄송해요...! 이, 일부러 훔쳐보려던 게 아니라..."
"아니야, 아니라니까... 원래 동생 또래는 미니스커트만 봐도 눈 돌아가
는 나이인 걸 뭘...!"

푸훗, 그녀는 작은 미소까지 터뜨려주고 있었다. 내가 너무 민망한 모습
을 보이기에 기분을 풀어주려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대해주는 누
님 덕에 왠지 내 기분이 푸근해지고 있었다.

"그럴 땐 내가 정말 친누나였어도 창희는 그랬을 거야. 후후... 그래도
이 누님은 다행이네? 아직 우리 창희처럼 젊은 남자가 치마 속도 들여다
봐주고...! 내가 아직 처녀티가 나나보지? 호호"

처녀티 - 실제로도 미스라는 그녀지만, 처녀티 정도겠습니까. 아까 씰룩
이는 엉덩이만 보아도 불끈거릴 정도의 몸맨데... 하지만 차마 이런 말까
지 입밖에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30대의 나이라도 탱탱하기 이를 데 없는 몸매의 소유자인 미세스
최이다. 그렇기에 단란주점 마담자리를 당당하게 지키는 것이기는 하겠지
만... 저 색기어린 얼굴만 봐도 침이 꼴깍거릴 소지는 다분했다.

어느새 그녀와 나의 분위기는 약간씩 긴장이 풀리고 있었다.

"하여간... 다시 그 얘기는 꺼내지 않겠어. 동생이 다 알아서 하겠지만..
. 보영이처럼 헤픈 여자애한테는 함부로 넘어가지 마. 가끔 남자손님 따
라 외박 내보내서 알지만, 걔는 은근히 남자 밝히는 애야. 난 우리 창희
가 그런 기집애에게 몸을 주는 걸 참을 수 없어...!"

후유... 그제서야 다소 한 여파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직까
지 풀리지 않는 의아스러움이 있었다.

도대체 이 누님은 왜 내게 이다지도 잘해주는 것일까? 이제 겨우 몇번 남
짓 마주쳤을 뿐인데, 처음 만난 날부터 누나동생 의남매에... 아까는 자
기가 신경쓸 문제가 아니라면서도 왜 보영이랑 자지 말라고 그렇게까지
애원했던 것일까.

혹시... 이건 정말 혹시나이다. 내게 흑심을 품는 것일까? 나를 연하의
남자로서 유혹하려는 것... 그것이 목적 - 그래서 내가 다른 여자랑 자는
것이 마치 바람핀 남편을 적발한 경우처럼 난리를 치룰 문제가 되었나.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의혹이었다. 날 어찌 생각하길래 그녀는 이다지도
급속히 접근하는 것인가 - 짐짓 긴장하며, 나는 용기를 내기로 마음먹었
다.

"저... 누, 누님, 그럼 한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응? 나한테...?"
"예... 누님에게요"

뭘까, 그녀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오해는 마시구요... 이건 제가 궁금해서 그냥..."
"왜 그래? 뭔데 그렇게 뜸을 들이지...? 얘기해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비록 오늘 몸둘 바를 몰랐던 나지만, 짚고 넘어야
할 것은 넘어야한다.

"후훗, 뭘 그렇게 어려워해? 편하게 물어봐. 난 누나잖아. 친누님처럼 그
렇게 대해"

푸아... 친누나? 말도 안돼! 어찌 친누나라면 이런 일을 물어볼 수 있단
말이냐 - 그건 근친상간을 저지르는 건데 -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두눈을
질끈 감고 마음 먹은 질문을 하는 수밖에.

"이, 이상하게 생각지 마시구요. 저, 절대로요..."

입술이 탔다. 그런 나를 의아한 눈초리로 마주보는 그녀인데... 불숙 튀
어나온 내 질문.

"호, 혹시요, 저, 저를 남... 남자로 보시나요?"
"남자?"

예, 그러니까... 저를 그냥 동생으로서가 아니라 - 따지고 보면 그럴 수
도 있잖습니까. 돈 많겠다, 외모 받쳐주겠다, 단 하나 저보다 나이가 연
상이라는 점만 빼면은... 그러니 행여 젊고 튼튼한 사내를 노리갯감으로.
..

그 순간, 그제서야 내가 말한 '남자'의 의미를 알아차린 미세스 최의 눈
썹이 묘하게 꿈틀거렸다.

어색한 정적 - 그녀의 얼굴 표정이 점점 야릇한 조소를 띄워가고 있었다.
어... 내, 내가 혹시 말실수를 한 건가? 만약 그런 의도가 아닌 누님이라
면 굉장히 망측하고도 버릇없는 의미가 되버리는 내 질문인데.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되묻고 있었다.

"그럼 창희, 창희는 어때? 내가 동생 눈에 여자로 보여?"

내, 내가 먼저 물었는데 - 그녀는 눈까지 가늘게 뜨고 차분한 목소리로
내 말을 가로막고 있었다..

"나 지금 창희가 그 말을 왜 묻는지 알아. 그러니 내가 먼저 물을께. 아
까 내 앞에서 바지랑 팬티 다내리고 있었지? 그리고 좀 전에, 내가 화장
실에 있을 때 내 치마 속 흘끔거렸지? 그 때 어땠어? 이 누나가 여자로
보였어?"

으아, 이건 또 무슨 곤란한 물음인가. 아까 엎드려서 엉덩이를 들이밀었
을 때, 내 그곳을 내보였을 때, 그리고 방금 화장실에서 쪼그리고 앉은
그녀의 다리 사이를 목격했을 때... 당연히 내 기둥이 불끈거릴 정도로
발기했었지 않나!

당연히 그런 의미에서는 여자, 그것도 상당히 성적 매력이 철철 넘치는
여자로만 본 나 아닌가 - 아니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아차, 대단한 진퇴양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히 여자 - 성적인 의미
- 로 봤다는 적나라한 증거까지 이 미세스 최의 코 앞에서 드러내 - 벌떡
이며 애액까지 흘리고 - 놓고서, 어떻게 지금 그렇다고 솔직히 시인한다
는 말이냐.

당연히 나로서는 '절대 그런 일 없다'라고 극구 부인해도 모자랄 일인 것
이다.

"왜? 대답하기 곤란해...? 그럼 그렇게 생각하면 돼. 창희, 창희가 생각
하는 그대로, 나도 그래. 동생이 날 여자로 본다면, 나도 똑같이 동생을
남자로 생각하는 거야. 알겠어...?"

으잉, 뭐라고요? 내가 생각하는 만큼...?

다음 순간, 나는 경악하여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겉보기에 분명 최마
담은 긍정도 부정도 않고 있지만 - 이미 그녀를 성적대상으로 생각했다는
사실, 그런 의미에서 여자로 여겼다는 사실은 몽땅 들키지 않았는가!

이럴 수가... 누님의 말은 완벽히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즉 내가
그녀를 여자로 취급한다면, 자기도 그럴 것이란 경고의 의미... 그러나
반대로는 자기가 나, 창희 동생을 남자로 생각한다는 말도 되는 것이다.

"아, 아니 전 누, 누님이 며, 몇번 잘 알지도 못하는데..."

허둥지둥, 눈이 휘둥그래진 나는 말꼬리를 돌리고 있었다. 정말 본전도
못뽑을 질문을 한 판국이 되고 만 것이다.

"제, 제게 너무 과분하게 잘해주시길래... 그, 그래서 호, 혹시나 하고..
.!"

당황하여 말까지 더듬으며 얼버무리려는 나를, 여전히 야릇하게 눈썹을
치켜올린 얼굴로 비웃듯 바라보는 미세스 최.

"그래? 아직 우리가 잘 모르는 사이란 말이지? 흐흥, 그럼 간단하네? 우
리 서로 더 잘 알게 되면 되지 않아?"

어, 얼레 - 무, 무슨 말이지?

"동생 말은 그것 아냐? 내가 너무 갑작스럽게 친한 척 구니까... 내 속셈
이 뭔지 모르겠다는 거지? 그렇지? 그게 궁금하다는 거지...?"

바싹, 혀가 얼어붙은 채 당혹해하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누님은
또 한번 일방적인 통고를 하고 있었다.

"그럼 나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는 말 아냐? 좋아, 요번 일요일 시간 있
지? 아니, 일요일 아니라도 돼. 어쨌든 내가 나중에 전화할 테니까, 우리
밖에서 만나. 여기 말고, 우리 단란주점도 말고, 어디 다른 곳에서...!"

이, 이게 무슨 말이야! 나를 따로 만나겠다고?

"그렇잖아? 서로 같이 있을수록 잘 알 수 있는 거잖아. 그것도 장소 따위
바꿔서 둘만 있는다면 말야"

트, 틀린 말은 아닌데 - 그녀가 핸드백을 챙겨 몸을 일으키면서 마지막
말을 던지고 있었다.

"그럼 그때 알게 되겠지? 내가 동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때 알려준다고? 벌어진 내 입은 다물어질 꿈도 못꾸고 있었다.

<제78화> 누님의 수표, 다시 학교로

멍청히 앉아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미세스 최의 야릇한 웃음은 그치지 않
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채 머리 속의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었
다. 무슨 얘기인가. 분명 이 누님과 접촉할수록 가까워지기야 하겠지만,
난데없이 왜... 밖에서 만나자는 말이냐.

그것도 뭐라고 - 장소 바꿔서 둘만? 아니아니 그보다, 내가 생각하는 그
대로 자기도 생각한다고?

그렇다. 그런 얘기를 옛날에 쫓아다니던 여자들과 나눈 적이 있다. 난 널
여자로 생각해, 난 널 남자로 안봐... 그리고 그 때 그런 말은 서로가 연
인 사이가 되기 위한 절차였었다. 즉, 상대방을 여자, 또는 남자로 본다
는 것은 이성으로서, 성적인 의미로서 상대한다는 이야기였었다.

그럼 도대체 이 누님의 말은 무슨 뜻인가. 나를 설마 이성으로? 아니면
반대로, 니가 이성으로 보면 나도 그럴 수 있다, 그러니 나를 이성으로
보지 말아라 - 이런 의미?

종잡을 수가 없었다. 대체 그녀의 의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 이제 가야할 것 같아, 어제도 내가 좀 늦게 나왔다고 그런 박사장 일
이 있었으니..."

얼떨하게, 몸을 일으키는 그녀를 따라 일어섰다.

"내일쯤 전화할께. 토요일은 손님이 있지만... 일요일은 월요일보다도 더
한가하니까... 그 때 시간 맞춰, 창희"

어휴, 어쩌지? 그녀의 또 한번의 일방적 약속을 과연 받아들여야하는지,
갈팡질팡할 따름인데... 그렇다고 지금 당장 무슨 거부할 명분도 떠오르
지 않았다.

"나오지 마. 참 그리고..."

갑자기 방문을 나서려던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핸드백을 뒤적였다.

"이것 받아...!"

어, 무얼... 하던 나는 뜨악하며 눈이 휘둥그래지고 있었다. 이, 이게 뭔
가?

"우리끼리 봉투에 넣을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구... 그래서 이렇게 그냥
주니까, 이따가 밥 굶지 말고 저녁 시켜먹어. 알았지?"

돈, 돈이었다. 그것도 언뜻 보니 뒷면이 하얀 - 수표!

"뭐, 뭐 하시는 거에요!"

그녀의 내민 팔목을 엉겁결에 막느라 붙들었다.

"아냐, 누나가 전에 용돈 주겠다고 했잖아. 게다가 어제도 우리 가게 와
서 그런 사고를 당하고..."
"시, 싫어요, 제, 제가 왜 누님에게...!"

하지만 최마담은 거의 강제로 손을 내밀어 내 바지 주머니 속에 쑤셔넣고
있었다.

"이, 이러지 마세요...!"
"누나가 용돈 주는 거야. 그래서 봉투 같은 것도 안챙겼구. 이따가 꼭 저
녁값 해야돼"

세상에, 이, 이 여자가 날 뭘로 보고 -

"그, 그래도 너, 너무 많아요...!"
"에이, 가만 있어. 그래, 약값이라고 생각해둬. 어제 다치긴 다쳤었잖아.
..?"

다쳐요? 그냥 한대 맞은 걸 가지고... 바지 주머니에서 그녀의 손을 빼내
려고 했지만, 어느샌가 꾸겨넣고 빈 손만 빼는 그녀였다. 황당한 내 표정
을 보고 그녀는 찡긋, 눈까지 깜빡이고 있었다.

"보영이나...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마. 참 그리고..."

다시 주머니에서 꺼낸 수표를 쥔 내 손을 토닥이며 그녀는 짐짓 엄한 표
정까지 짓고 있었다.

"창희 너, 괜히 돈 아낀다고... 놔뒀다가 친구들하고 술 마시면 안돼...!
그럴려면 누나 단란주점에 와, 얼마든 누나가 대접해 줄테니. 알았지? 술
값으로 쓰지 않기다. 약속!"

하이고 미치겠다. 도대체 이 누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길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럼 갈께, 동생!"

어울리지 않게, 그녀는 장난끼 섞인 콧소리로 나를 뿌리치고는 콩콩, 계
단을 뛰어 나갔다.

곧이어 들리는 부웅, 자가용 소리. 멍청히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나.

맙소사, 수표라니 - 집에서 용돈 받을 때도 구경한 적 없는... 한동안을
그렇게 멍청하게 나는 방문께에 서있었다. 누님이 쥐어준 돈을 손에 쥐고
서... 어느덧 저녁이 되어 뉘엇뉘엇, 노을이 지는 골목길 지붕들이었다.

그렇게 어둠이 찾아왔고, 나는 미세스 최가 신신당부를 했건만 라면을 끓
이고 있었다. 돈을 아끼려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준 돈을 쓴다는 것이
꺼림칙하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삐리릭, 삐리릭 -

막 젓가락을 드려는데, 삐삐가 울리고 있었다. 옷 주머니를 뒤져 호출번
호를 확인하니, 의외로 희창이의 집 전화번호다. 짜식, 그냥 전화할 것이
지... 왠 일이지?

"여보세요?"
"응, 집에 있었구나"
"그럼 어디 갔겠냐, 내가?"
"아니, 아까 몸이 안좋다길래... 지금은 괜찮냐?"

맞다. 이 녀석은 내가 댄 핑계만 알고 있지.

"으... 응. 근데 무슨 바람이 들어서 그렇게 일찍 집에 들어갔어?"
"아, 오늘...? 야, 말 마라. 근신 중이지, 뭐. 울 엄마가 아주 눈에 불을
켜셨다. 놀러만 다닌다고"

"참, 아까... 미세스 최랑 무슨 얘기한 거야? 꽤 니가 쩔쩔 매는 것 같던
데..."

아까 낮에 보영이와 있을 때 얘기를 하는 모양이다. 보영이...! 설마 그
기집애가 둘이서 밥 먹을 때 말실수한 건 아니겠지?

"아까 보영이가 더 놀라더라. 갑자기 마담언니가 니 얘기를 물으니까..."

어휴, 그럴 만한 일이다. 지금 희창이 녀석은 모르지만, 아마 그녀로서는
어제 가졌던 나와의 격렬한 정사 후였으니... 아까 누님의 말처럼, 자기
방에서 내가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최마담이 말할까봐 조마조마했을 것이
다. 하지만 대충 보아하니 그런 사고는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난 혹시나, 니가 어제 그 박사장이란 놈하고 일이 커지는 줄 알
고... 뭐야, 그 새끼가 진단서 따위 들고서 난리칠 수도 있으니까... 너
도 다치긴 다쳤는데"
"아, 아냐. 그런 건 아니고... 그, 그냥 나 많이 아픈 것 아니냐구... 그
래서 걱정해준 거였어"
"그래...? 근데 짱이 너 정말 괜찮은 거 맞어?"

에구구... 졸지에 녀석은 내가 진짜 박사장과 크게 주먹다짐을 벌인 것으
로 아는 셈이다.

"아니라니까... 그냥 요새 술만 마셨더니 몸이 안좋은 것 뿐이야... 내일
이면 다 낫겠지..."
"좋아... 그럼 다행이구, 아, 까먹을 뻔 했다!"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한 희창이.

"뭘...?"
"크흣, 아까 학교에서, 예지 만났었다...!"

예지? 엉, 혹시 이놈이?

"걱정 마, 예지랑 딴짓 한 거 아니니까. 하기야... 좀 쭈삣대더라. 이젠
나한테 말 거는 게 어색한가봐"

그럴 수 밖에 없는 일... 어제 분식집에서 김치 볶음밥을 사며 - 생각하
니 어제 일이다. 하지만 기분은 꼭 그 직후의 일들로 인해 사흘은 지난
것 같지만 - 그 귀여운 얼굴이 우울하게 말하지 않았던가.

짝사랑했던 여기 이 희창이 - 그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고. 그래서 마음,
아니 몸이 아파 학교에도 며칠 나오지 못했다고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녀석에게 마음이 착잡할 것이다. 나 같아도 그랬을 것이다.

"근데 왜... 걔가 널 찾냐?"

설마 마음 접었다는 이 놈에게 미련이 남아서는 아닐 것이고... 궁금해지
는 내 목소리였다.

"응, 널 찾았어. 창희 너 말야. 내가 아니라..."
"나를...?"

왠 일이지? 걔가 왜 날 찾지?

"그래. 뭔지 몰라도 할 얘기가 있는 모양이던데... 그래서 오늘 너 학교
안왔다구, 자취방에 있을 거라고 했지"

"근데... 오늘 걔 너한테 안갔었냐? 난 너한테 들리려다가, 일부러 안갔
었지... 둘이서 오붓한 시간 보내라고, 킥킥... 누가 아냐, 그러다 내가
또 니 방에 들이닥치면 이번엔 그 기집애 아주 홀딱 벗고 있을지...?"

어쭈, 이 녀석, 저번 주에 그녀가 내 방에서 자고 나간 것을 놀리느라,
키득거리는 중이었다.

"야, 이짱, 너...! 그때 정말 아무 일 없던 거라니까. 얌마, 걔가 좋아했
던 건 내가 아니라 너야, 짜샤!"
"클클클... 알어, 알어. 그냥 농담이야, 어쨌든..."

후유, 하지만 녀석이 안왔던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랬다면... 생각만 해
도 등골이 오싹하다. 만약 그랬으면 이번엔 예지나 다른 여자가 아니라,
내가 홀딱 바지 벗고 물건 덜렁이는 꼴을 봤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인물 - 미세스 최 누님 앞에서.

"내일 너 좀 보자구 전해 달라더라. 너한테 뭐 부탁할 게 있나봐"

부탁? 뭐지?

"자세한 건 모르겠구... 내일 학교 오거든 예지한테 가봐"

그래, 알았어... 잘 자라... 전화를 끊으며 나는 골몰했다.

마치 꽤 오랫동안 학교를 떠난 느낌이었다. 물론 단란주점, 다미... 그리
고 보영이와 최마담 등의 온갖 사건들로 인한 것이겠지만 - 불현듯 떠오
르는 생각이 있었다.

누구였겠는가. 그것이...

어제 예지와 점심 먹으러 갔을 때 본 한 여자, 그리고 내가 예지와 팔짱
을 끼고 있는 장면을 보았기에 멀리서 안타깝게 외면한 그 여자.

선영이 누나, 나는 만 하룻동안 그녀의 이름을 잊고 있었다. 나와 지난
주말을 아침까지 함께 있어준 그 누나. 뽀얗고 깨끗한 속살을 내게 드러
내준 - 너무나 예쁜 누나.

예지의 부탁은 나중 문제였다. 어제 그 때, 왜 예지와 같이 있는 나를 보
고 선영이 누나는 멀리 피했던 것일까. 혹시 오해를? 예지와 나 사이를..
.? 설사 그렇다고 해도 왜 그녀가...

먹던 라면가락도 덮어둔 채, 드러누운 내 머리 속에서 이런 생각들이 꼬
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었다.

내일, 내일은 꼭 그녀, 선영이 누나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곱씹으며 -

<제79화> 선영이 누나와 정호형의 관계

아침 햇살을 배경으로 학교를 향해 걸으면서, 나는 비로소 정상적인 생활
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만큼 지난 주말부터 어제까지의 일이 복잡한 심경으로 내 머리 속에 남
았기 때문이다. 주말... 선영이 누나와의 잠자리 이후, 정말 복잡다단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었던 셈이다.

월요일, 내 우울한 기분을 달래준다는 핑계로 희창이가 마련한 술자리,
그 안에서 엄청난 유방과 무성한 수풀의 다미를 만났고, 다음날 그녀의
기둥서방이라는 박사장과는 주먹다짐까지 벌였었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
로 인해 보영이와는 원치 않던 정사까지 나누었으며... 급기야는 아직도
그 진의를 드러내지 않는 미세스 최에게 그 사실을 들켜버림으로써 - 사
태는 걷잡을 수 없도록 일파만파로 커져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아직도 정리가 안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최마담, 그녀는
이번 일요일날 나와의 밀월 외출까지 계획하고 있으니... 도대체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쨌든 이른 아침이기에 텅 비다시피 한 강의실 책상에 앉아 나는 그런
상념에 빠져 있었다.

"어쭈구리... 어제는 아파서 꼼짝 못한다더니... 일찍 나왔다, 너"

참... 잊고 있었던 사실이 남아 있었다. 내 난처함 중의 하나.

희창이 녀석 - 자기가 찍어놓은 여자가 가장 친한 친구인 나와 같이 잤었
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하는, 그 녀석이 내게 반가운 아침인사를 하고
있었다.

"으, 응... 너도 왠 일이냐, 맨날 지각대장이..."

어제도 내 방으로 찾아왔던 그였지만, 그 때는 워낙 정신이 없었고... 하
지만 지금 보니 뭔지 모르게 찔리는 내 가슴이었다.

"어휴, 말 마라. 우리 모친께서 정말 단단히 금족령을 내리셨다니까. 아
침에도 꼬박꼬박 7시면 깨우셔... 이제는 수업에 지각하는 것도 안된다
나...?"

푸아 - 푸념 섞인 한숨을 내쉬는 희창이. 이 왕날라리 놈에게 그런 자기
어머님의 간섭은 거의 사형선고나 다름없을 테지.

"근데 짱이 너 진짜 다 나은 거냐? 어제 얼굴은 완전히 맛이 가있더니...
"

에구구... 사실 내가 아픈 구석이 어디 있었나. 어제 시커멓게 녹초가 된
그 얼굴은 순전히 - 보영이와 전날 밤 한바탕 몸싸움과 더불어 생난리를
친 엄청났던 정사, 그 격렬한 후유증이었을 뿐.

"어... 괘, 괜찮아"

그러나 그 이유를 모르는 녀석은 짐짓 친구의 건강을 염려해주고 있는 것
이다.

그렇기에, 켕기는 기분으로 나는 오전 수업 내내 침울하게 별말이 없었
다. 뭐랄까, 마음 한구석이 옆에 앉은 희창이 녀석에 대한 죄의식으로 무
거울 따름이었다.

어느덧 공강시간, 잇달은 수업은 대충 끝나고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야, 밥먹으러 가자. 창희야!"

오랜만에 일찍 출석한 수업이 못내 지루했던 듯, 교수님이 강의실 문을
나서기도 전에 책을 덮는 녀석이었다.

"그래... 가자. 내가 살테니..."
"오잉? 니가 사준다고? 햐아... 너 집에서 용돈 받은 게 두둑한가 보다..
.!"

별반 돈을 쓰는 일이 적었던 내가 밥을 사준다는 말을 듣자, 녀석은 희희
낙낙이었다. 기실... 나는 주머니에 어제 미세스 최가 쥐어준 수표를 떠
올리고 있었다.

하여간 돌려주기는 물 건너간 셈이고, 어차피 밥값하라고 준 돈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시덥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식당을 향해 강의실을 나
서는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또 하나 있었다.

문밖에 기대어서 머뭇대고 있는 여학생 - 그것은 바로 예지였다. 내 곁에
선 희창이를 보자 잠시 망설이는 표정의 그녀. 맞다. 어제 나를 좀 만나
자고 했었지... 무슨 부탁이 있다던가?

"어... 저, 창희야!"

슬쩍, 예지는 희창이 녀석의 눈치를 보며 말을 걸어온다.

"아, 안녕, 예지...!"

그러자 함께 있던 희창이 놈은 은근히 자리를 비켜준다.

"크흐... 오랜만에 짱이 돈좀 쓰게 하는가 했는데. 야, 나중에 밥사. 알
았지?"
"으응... 미, 미안..."

녀석은 호쾌하게 내 엉덩이를 툭, 치며 다른 동기들과 어울려 사라졌다.

"잘해봐라!"

마지막 그의 인사가 왠지 비꼬는 것 같아 거슬렸지만, 그 놀림이 뭐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니까...

"나... 땜에 방해된 거야?"
"어, 아, 아니야. 어제... 나 찾았다면서...?"
"응..."

무의식적으로 나란히 걸으며, 나는 그녀가 나를 찾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나한테 무슨 부탁 있다며...? 뭐야?"
"응, 그거... 부탁은 아니고..."
"참, 너 밥먹어야지? 가자. 지난 번에 니가 사줬으니까, 오늘은 내가 사
줄께"

밥 굶지 말라던 누님... 하지만 누구란 먹을지는 상관 없겠지. 일단 학교
밖으로 나가, 우리는 학교앞 조그만 경양식집으로 향했다.

"뭐 먹을래? 돈까스?"
"아냐, 난... 그냥 아무 거나 괜찮아"
"그래, 그럼 여기 들어가자...!"

그래서 까페 겸 경양식집 문을 들어서는데...

"어...!"

그 곳에서 나는 예기치 않은 인물을 맞딱드리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놀란 심정으로 인사를 건네는 나 -

"어머, 안녕하세요, 언니..."

그 인물은 - 선영이 누나였다. 안그래도 어제부터 오후쯤엔 그녀를 찾아
보겠다고 궁리하고 있던 차인데... 그녀가 이 경양식집의 구석 창가에 앉
아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그녀 앞에 마주 있었다.

정호 형, 그는 선영이 누나의 동기였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크지 않은
보통체격의 남자 선배. 대부분 군입대를 한 다른 선배들과 달리, 면제판
정을 받았다던가... 하여간 학교 안에서도 몇 없는 남자 선배들 중의 한
사람으로,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아 별로 나와는 잘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어... 아, 안녕 창희야... 예지야"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모두... 선영이 누나, 그리고 나.

"아, 안녕하세요, 정호형..."

얼떨결에 정호 선배에게도 인사를 건네는데, 그의 인상이 예상치 못해 곤
란한 듯 찌푸려지고 있었다.

묘한 만남이었다. 이, 이 선배가 왜 누나랑 같이 있는 거지...? 재빨리
두 사람을 살피는 나인데, 반대로 선영이 누나도 나와 예지를 미심쩍은
눈으로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아차 - 이런... 그러고보니 또 한번, 두번째로 내가 예지와 함께 있는 모
습을 그녀에게 들킨 셈이었다. 그러나 누나는 짐짓 태연한 척 말을 걸었
다.

"왜, 왠 일이야...?"

왠지 멎쩍은 분위기가 되어, 다른 곳으로 갈까하는 마음이 드는데, 그런
낌새를 알 리 없는 예지는 무심결의 대답을 하고 만다.

"예, 창희랑... 같이 조용히 얘기할 것이 있어서요"

어휴, 김예지...! 그런 식으로 대답하면 어쩌니 - 그냥 밥 먹으러 왔다고
해도 어색한 판국에, 둘이서 조용히 얘기를 해?

아니나 다를까, 그 대답을 들은 선영이 누나의 눈썹이 묘하게 찡그러졌
다. 아이고, 혹시 이 누나가 나랑 예지 사이를 오해하면 안되는데... 엊
그제도 우연히 팔짱을 끼고 있던 그녀와 나를 보고, 멀리서 실망스런 표
정으로 피하기까지 하지 않았었나.

"그럼 얘기해라...!"

당장에 곤란한 입장이 된 나... 그러나 의외로, 인사도 듣는 둥 마는 둥
이던 정호형이 쌀쌀맞게 대꾸하고 있었다. 조짐을 보니 아마도 선영이 누
나와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던 모양이라, 우리더러 자리를 비키라는
신호 같았다.

"예...!"

하는 수 없이 꾸벅, 인사를 하고 나는 예지를 따라 반대편 구석자리로 물
러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때마침 예지는 그들에게 등을 돌린 자리에
앉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 너머로, 누나와 정호 선배가 앉은 자리가 보이고 있었다. 그
런데 -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분위기를 살피던 나는 순간 놀라고 있었다.

아니, 대낮부터 왠 술을?

사실이었다. 그들의 자리에는 이미 큼지막한 맥주병이 서너개 놓여있던
것이다.

어, 안되는데 - 신경이 안쓰일 수가 없는 상황이다. 선영이 누나, 그녀가
맥주 몇병으로도 어떻게 되는지 뻔히 아는 나 아닌가. 서, 설마 저 누나
가 또...!

"창희야, 너 뭐 먹을래...?"

그러나 메뉴판에 고개를 처박은 예지는 그런 내 불안감을 알 턱 없이, 내
게 점심메뉴를 주문하고 있었다.

"으, 응... 아, 아무 거나..."
"아무 거나 뭐? 니가 돈까스 먹자며?"
"그, 그랬나? 그럼 그, 그걸로...!"

아니야, 행여 선영이 누나가 술을 마시다니... 그것도 저 잘난 구석 없는
정호형과 - 나는 완전히 콩밭에 마음이 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주문을 받으러 오는 사이에도, 나는 열심히 곁눈질로 그녀의 테
이블만 훔쳐보고 있는데... 그런 내 눈치를 보고는 예지가 핀잔을 주고
있었다.

"창희야, 왜 그래? 갑자기 넋 나간 사람처럼..."
"어, 내, 내가? 아, 아냐...! 아무 것도 아냐"

당혹스러운 기분으로 대답하는데, 예지는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다.

"왜? 선영이 언니가 다른 사람이랑 있는 게 신경 쓰여?"

어유, 모른 척 좀 해주지...

"아, 아냐... 그런 게 아니라..."

슬쩍, 야릇하게 눈까지 흘기는 예지를 앞에 두고 나는 말까지 더듬고 있
었다.

"그, 그래, 참, 너... 너 나한테 할 얘기 있다면서? 그, 그 얘기나 해...
!"

간신히 화제를 돌리려는 나... 순간 나는 저으기 안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선영이 누나 - 후유, 천만다행이었다. 그녀는
술이 아닌 음료수를 홀짝이고 있었다. 아마도, 술을 마시는 것은 정호형
혼자인 모양이었다.

<제80화> 유부녀 현주 엄마의 등장

어느새 음식이 나오고, 곤란한 내 상황인데, 다행히 예지는 내가 선영이
누나 테이블에 보내고 있는 눈치를 더이상 책망하지 않아 주었다.

"어, 어제, 희창이에게 나좀 보, 보자고 했다며... 무, 무슨 부탁 있다
고..."

안그래도 그녀에게 누나와의 일을 추궁 당하는 것이 신경쓰이는 판국에,
나는 행여 들킨 듯한 기분에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으응... 부탁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그러나 음식을 주억거리며 예지의 얘기를 듣는 와중에도 내 눈과 귀의 절
반 이상은 저쪽, 정호형과 선영 선배의 자리 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혹시
나 선영이 누나가 술을 마시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굴뚝 같기 때문
이었다.

"그래서... 너한테 빚진 것도 있고 말이야..."
"응? 비, 빚?"

얘가 빚이 있다고 했나, 방금?

"어머, 창희 너 내 얘기 안듣는구나!"

아차차, 실수 -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빚이라고 하니까..."
"그래? 빚... 아냐, 어쨌든 너에게 신세진 것은 사실이잖아"

신세를 져?

"저번 주 말이야... 니 방에서 나 혼자 술 취해서 너 고생시키구... 난
그게 너무 미안했거든..."

아, 그 얘기를 하는 거군... 난 그제야 예지가 말하는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지난 주 목요일이던가, 희창이를 짝사랑한다고 고백한 다음날,
이 여자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가. 우연히 보영이와 차안에서 야릇한 장
면을 연출하는 그 녀석을 보고 절망감에 엄청나게 술을 퍼마셨었다. 그리
고...

마침내는 날 불러냈고, 결국 그녀를 업고 내 자취방으로 돌아와 옷을 벗
겨주기까지 - 이 대목에선 나도 조금 계면쩍은 기분이다. 이 귀여운 여자
아이의 속살을 훔쳐본 것은 물론이고, 슬쩍 몰래 만져보기도 한 데다가..
. 맞아, 그녀가 생리중이었다는 부끄러운 비밀도 발견하지 않았었나. 그
게 신세라...

"아, 아냐. 신세는 뭘...!"
"그렇지 않아... 넌 내가 그렇게 엉망으로 굴었는데도 탓 한번 하지 않구
서... 뒤치닥거리까지 해줬었잖아"

역시... 예지는 얼굴만큼 마음씨도 곱다. 나같으면 그냥 그렇게 넘겼을텐
데.

"그래서, 내가 너한테 부탁겸, 뭔가 도와줄 일을 찾았걸랑..."

나를 도와줘? 니가?

"말이야, 창희야. 너... 혼자 지내는 데 불편하지 않아? 응... 용돈같은
거..."

용돈이라... 늘 궁하기야 궁하지. 근데 왜 예지 이 녀석이 내 돈문제까지
신경을 써주지?

"너, 그러니까... 아르바이트하지 않을래?"
"아르바이트?"
"그래. 다른 게 아니고, 과외공부 가르치는 것 말야"

아하, 그녀의 말인즉슨 이런 것이다. 자기가 나에게 신세진 것을 갚으려
고 보니,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때마침, 자기가
하는 - 찬찬하고 차분한 예지는 그전부터 학교 근처 가정집의 초등학생
아이를 가르치고 있었다 - 과외공부 학생의 어머니에게 의뢰가 들어왔다
는 것이었다. 워낙 귀엽고 싹싹한 여학생이니, 당연히 말썽장이 어린아이
들 공부도 열심히 가르쳤을 터... 그 소문의 덕으로 부탁이 된 모양이었
다.

"그런데... 내가 하기에는 좀 사정이 안되는 일이어서, 좋잖아. 너도 용
돈정도는 생기면서... 수업 후에 남는 시간 관리도 할 수 있고"

하여간 고마울 뿐이다. 자기의 첫경험 고백 - 성폭행의 불행한 과거 - 을
듣고, 하루쯤 다독거려준 요량으로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다니. 잠시 나
는 선영이 누나 쪽을 잊고 있었다.

"근데... 그게 무슨 말이야? 니가 할 수 없는 사정이란 게?"
"응, 그거... 입주과외여서 그래. 난 여자니까, 나와서 살기가 그렇거든"

으잉? 입주과외?

입주과외 - 라 하면, 옛날 2, 30년쯤 전에 고학하는 대학생들에게 꽤 인
기가 있던 일이라고 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다. 쉽게 얘기해 과외공부
가르치기와 하숙생을 혼합한 의미정도...?

다시 말해 숙식을 제공받는 대신 주인집의 아이들 공부를 돌봐주는, 문자
그대로 진짜 가정교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여학생인 예지가 하기에
는 다소 벅찬 일일 터 - 당연히 예지의 집에서 반대할 것이니까 말이다.
근데 왜 하필이면 입주과외? 요즘에도 그런 것을 원하는 가정집이 있다는
말인가?

"으응, 학생은 여자아이야. 초등학교 2학년이라던가... 그런데 아빠가 집
에 안계시데. 돌아가신 건 아니고, 장기 해외출장 중이라, 한 반년에 한
번 우리나라에 들어오신다나...? 한 1, 2년 정도 그래야 한다고 하더라
구"

"그 여자애가 근데, 외동딸이라 엄청 귀여움만 받고 자란 모양이야. 그래
서 남자선생님이면 좀 엄하니까 좋을 거라구... 게다가 집에 걔네 엄마랑
여자 둘만 있으니까, 든든하게 믿을 만한 남학생이 있으면 낫겠다고 해
서..."

딴에는 그렇게 된 얘기였다. 다른 명문대생을 구하려고 해도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가, 방금 이 여자애 얘기처럼 부수적인 조건 - 믿음직한
남자를 집에 들여놓을 필요성 - 을 충족시키려다보니... 어쩔 수 없이 집
근처의 우리 학교 남학생, 그것도 혼자 사는 학생이라면 오케이가 되는,
그런 정황이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엔, 창희 너는 그런대로 공부도 잘하고... 또 학교에서도 비교
적 모범생이잖아. 그래서 널 떠올린 거야"

모범생? 하기야 장학금을 받기도 하니까... 하지만 왠지 예지에게 이 말
을 들으려니 괜히 쑥스러워지는 나였다.

"게다가 넌 내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