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캠퍼스 애정비사 81-8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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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4,155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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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PUS 애정비사 81-90 화 까지
<제81화> 드디어 시작되는 삼각관계

비록 같은 과의 한 학번 위 선배이기는 했지만, 워낙 눈에 잘 띄지 않는
정호형이었기에 그간 나와는 별 교류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
기 남자 대 남자로 할 말이 있다니... 당연히 의아해할 수 밖에.

"술... 한잔 할래?"

아닌 게 아니라, 아까 선영이 누나와 앉아있을 때부터 놓여있던 서너병의
맥주는 이미 비워져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 훤한 대낮에 낮술이라니
- 그러나 그는 내 동의도 구하지 않고 손을 들어 맥주를 몇병 더 주문하
고 있었다.

후우... 맥주가 나오기 전까지 피워 문 담배를 깊게 들이마시는 정호형.

영문을 모르는 나는 그저 떨떠름할 뿐이었다. 날라져온 맥주를 무작정 따
라 내밀므로, 선배가 주는 것이라 일단은 받기는 하는데...

"푸우... 그래, 너 창희... 우리 남자끼리 솔직히 얘기좀 하자"
"예, 그, 그러세요... 무슨 일이신데..."

계속 심란한 담배연기의 그는 문득, 피식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후훗... 좋아, 사내답게 선배인 내가 묻기로 하지... 원래 후배에게 이
런 말을 하는 것도 자존심이 좀 상하기도 하지만..."

자존심?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는 선후배 관계까지 들먹이는 것
인지 - 아연 긴장되는 나였다.

후아, 퍽 어려운 이야기인 듯, 쉼호흡을 가다듬은 정호 선배. 그리고 갑
자기 내 눈을 똑바로 노려보는 그의 입에서 대경실색할 질문이 튀어나오
고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숨기지 말고 대답해"

이어지는 그의 말, 나는 눈이 휘둥그래질 따름이었다.

"너... 박선영이랑 무슨 관계냐?"

박선영! 선영이 누나? 이게 무슨 얘기냐 -

"사나이끼리, 또 형으로서 묻는 거다. 내 동기 선영이랑 어떤 사이야?"

경악스런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이 사람이 그걸 왜 내게 묻는 것인
가...!

그녀와 나, 누나와 내가 무슨 사이라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런 질
문이 어째서 이 정호형에게서 나온단 말이냐.

"말해봐. 걔랑 너하고 사귀니?"

이건 또 왠... 당황한 나는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갑자기 무, 무슨..."
"이유는 알 것 없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 창희 너, 선영이 좋아해? 그냥
좋은 게 아니라, 남자와 여자, 남녀관계로"

그는 목이 타는 듯, 놓여진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모습이었다.

"그래, 요새 보아하니 너랑 그 여자애, 따로 학교 밖에서 만나는 모양이
더군. 다 알고서 묻는 거니까, 거짓말하지 말고..."

내가 누나와 따로 만난다고? 그,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다. 지난 주까지
만 해도 따로이 술 한잔은 물론이요, 같이 외박까지 하면서... 동침한 사
이기는 한데 - 그런 걸 왜 정호 선배가?

"뭐냐? 무슨 사이야, 너희 둘?"

당연히 내가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 했다는 사실은 희창이만이 알고 있다
- 바로 옆 여관방에서 잤으니까 - 그러나 이 질문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
닌 모양이었다.

아하, 나는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었다. 내가 선영이 누나와 가까운 사이
라는 것은 학교 안 누구든 눈치챌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 형은 필시...
무언가 선영이 누나, 그녀 자신과 결부시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
까 혼자 쌀쌀맞게 나가던 누나, 그리고 심각하게 마시는 여기 술까지...
그렇다면, 그렇다면 혹시나...

정호형, 그가 선영이 누나를 좋아한다?

"아, 아무 관계 아니어요... 그, 그냥 누나라 잘해줘서..."

대충, 짐작이 가는 상황이었다. 그럼 조금 전 그들 둘이서 나눈 대화는
필경 서로의 속마음에 대한... 고백 비슷한 것일 터. 그리고 아마도 그
결과는 그리 썩 좋은 편이 아닌 것일 게다. 그래서 지금 그는 내 진상을 파악하고자 속을 떠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란 일단 부정이었다. 실제로 그녀
와 나는 지난 주말 잠자리를 같이 한 이후 한번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마땅히 누나에게 그 이전부터 일종의 호기심 어린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우린 살까지 섞었으니, 응당 더이상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처지였다. 그녀는 그날 아침 여관방에서 내게, 그 원래의 남자친
구인 졸업한 선배도 듣지 못한 자신의 남자관계까지 털어놓아주지 않았
나.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 아직까지 그녀와 내가 진지하게 그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은 없다. 그러니 지금 내가 선영이 누나와 아무 관계가 아
니라고 하여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진데.

"아, 아녀요. 우, 우리는... 그냥 선영 선배랑 우연히... 술 같이 마신
적 밖엔..."

꿀꺽, 목구멍으로 마른 침이 삼켜졌다. 나의 그 대답에 꿈틀, 정호형의
눈썹이 움직였다.

"정말이냐?"
"예, 지, 진짜로요. 그, 그 때도 제가 아니라 그 누나가 사준 거여요...
저랑 사귀다뇨?"
"그래?"

노려보던 눈길을 거두며, 그가 다시 담뱃불을 붙였다.

"그, 근데요 형... 가, 갑자기 왜 제게 그런 말을..."

이번엔 내 차례였다. 궁금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아까 선영이 누나가
나에 대해 뭐라고 얘기했길래 이 선배가 불쑥 이런 질문을 던진단 말이
냐. 거꾸로 이번에는 내가 그의 의중을 떠보려는 의도.

"그건 아까 선영이랑... 아,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물은 거다. 그건 니
가 알 바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단지 그게 궁금해서 이리도 심각하게 불러다놓고 얘기한
단 말인가.

틀림없이 뭔가 있다. 내가 확실히 알지 못하는 그의 속마음과 선영이 누
나에 대한 관계가.

"그건 그렇고... 너 확실한 거지? 정말로 너하고 걔랑 아무 일 없는 거지
?"

그렇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선배가 내게 이런 다짐까지 요구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거, 거짓말 아니라니까요. 그, 그냥 친한 선후배 사이죠, 뭐. 적어도 아
직까지는..."
"적어도 아직까진?"

아차차, 말 실수 -

"하, 하하... 그, 그런 게 아니라... 혀, 형이 너무 진지하게 물으셔서
농담으로... 그래요, 농담, 농담이에요. 정호형...!"

실없이 웃으며 말꼬리를 흐리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괜히 계면쩍
은 표정이었다. 하기야, 자기가 생각해도 꽤 심상치 않았으니까.

"그, 근데 서, 선배님... 수, 수업 없으세요?"

어쨌든 이 어색한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공강시간
이 거의 지나 오후수업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으니까.

"수업...? 아니야. 난 혼자 생각좀 할 게 있다. 바쁘면... 먼저 일어나도
돼"

후유, 다행이다. 그는 내게 오직 선영이 누나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만이
고작인 모양이었다.

"그, 그럼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뵐께요, 형"

나는 또다시 침울한 표정인 그의 앞에서 헛웃음을 지어보이며 몸을 일으
켰다.

"참, 선영이한테는 이 얘기 하지 말아라...!"

예,예 - 굽신거리며 그의 말을 귓가로 흘린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황급
히 학교로 향했다. 수업시간도 가까와졌지만, 그보다는 선영이 누나를 좀
만날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후수업 전까지 선영이 누나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심
지어 학생회실에도... 정호 선배가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대체 방금 전
그 형과 그녀 사이에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 그보다 더
욱 그녀를 보고 싶다는 기분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그녀와 정사를 나눈 아침에, 사람없는 골목길에서 누나가 해
준 입맞춤이 떠올랐다. 대체 누나는 어디 있는 걸까? 나를 피하는 것일까
?

하지만 결국, 도리없이 나는 강의실로 향해야만 했다.

"무슨 얘기했냐? 예지하고 둘이서"

당장 궁금해하는 것은 희창이였다.

"으응, 그냥... 나 아르바이트 소개시켜준대"
"아르바이트?"
"그래, 과외공부... 뭐 입주과외라나? 그래서 남학생이 필요하다고..."

그래? 녀석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것 있으면 나나 시켜주지... 헤헤, 하기야 너같은 모범생이 할 수
밖에 없겠지만. 근데, 뭐? 입주과외? 그럼 그거 하숙생처럼 그 집에 직접
들어가서 사는 것 아냐?"

끄덕끄덕, 대꾸하는 내 턱.

"에이... 그럼 재미없는 걸. 그럼 맘 놓고 이젠 너희 방에서 비비적거릴
수 있는 아지트가 없어지는 것 아냐?"

짜식 - 희창이는 무엇보다 내가 자유롭지 못해진다는 것이 제일 먼저 아
쉬운 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 집에는 내 자취방에서 자고 간다고
외박핑계를 대기 일쑤였던 놈이니까.

"걱정 마. 결정된 건 아냐. 이따 집에 들어가서 그 집에 전화해봐야 돼.
그리고 아직 우리 집에도 이 얘기 꺼내지 않았고"

당연히, 얼싸코니 아버지 어머니는 찬성하실 것이다. 경제적 부담도 줄일
수 있는 데다가, 자기 자식이 과외공부나 가르치면서 착실히 지낸다는 것
에 반대하실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집의 허락은 - 현주 어머니라는 분과 얘기가 끝날 때까지 맡지 않
기로 마음 먹었다.

어쨌든 그렇게 오후수업까지 무사히 끝이 났다. 근신 중이라 일찍 집에
가겠다는 희창이를 먼저 내보내고, 강의실 문밖으로 나가려는데 예지가
배시시 웃고 서있었다.

"오늘 전화해 봐, 창희야. 그리고 약속 잡히면 얘기해 줘. 나도 같이 가
야하니까"
"그래, 알았어. 어쨌든 고마워. 소개시켜줘서..."
"아니야, 고맙기는...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인걸 뭘... 참, 아까 정호
선배가 뭐라든?"

정호형 - 예지의 입장에선 의문스럽겠지만, 그렇다고 그 형이 질문한 그
대로 답해줄 수는 절대로 없는 일이다.

"아, 아무 것도 아녔어. 왜?"
"왜는 뭐가 왜야? 아까 니가 선영 언니한테 굉장히 신경 쓰는 것 같길래
그렇지...!"

그, 그랬나...?

"앗, 시간 늦겠다! 나 오늘 아르바이트 있거든, 그럼 먼저 갈께. 안녕...
!"

콩콩콩, 그녀는 달려나가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안녕, 내일 보자 - 마주 인사를 보내면서도 나는 뭔가 안타까움이 진하게
몰려옴을 느꼈다.

선영이 누나... 그녀와 정호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혹시
그 선배가 누나를 짝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니 왠지 불안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불과 몇시간 후, 그 불안감
이 현실로 나타날 줄은 그 때까지 모르고 있는 나였다.

<제82화> 그러지 말아요, 선영이 누나!

별반 다른 약속도 없고, 그렇다고 특별히 할 일도 없는 나는 터덜터덜 자
취방으로 돌아왔다.

전화 - 현주라는 여자아이의 어머니와 통화를 해야했다. 입주과외라...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겼으니 반가운 일이기는 한데도, 왠지 그 입주과외
라는 것은 부담이 느껴지고 있었다.

하숙집과는 다를 수 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하숙을 한다면 일단 몸이야
자유롭지만, 반면에 입주과외라는 것은 아무리 초등학생이라도 그렇지,
어느 선까지는 과외선생으로 모범을 보여야할 것은 뻔한 일이다. 더군다
나 딸아이와 저희 엄마, 이렇게 여자들 둘만 있는 집이라 했으니...

지난 학교생활처럼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온다거나, 안되면 외박이라도
할 수 있는 경우는 힘들 것이다.

물론 강북 끝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가 꽤 먼 거리기도 하지만, 원래 나는
재수를 시작하라는 아버지와의 마찰 덕에 지금 이곳에 나와서 혼자 살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학교생활이 익숙해진 지금, 나로서는 자취
생이라는 현재의 신분이 꽤 만족스러웠다. 남자가 나이가 차면 독립심도
생기는 데다가, 이렇게 자유로운 분위기가 되고 보니 왠지 부모님의 간섭
따위가 거추장스럽기 때문이다.

될 수 있으면 입주가 아닌 쪽으로 해결을 볼 생각이었다. 대신에, 아르바
이트 하는 만큼 집에서 용돈을 줄여 받는다면 부모님께 어떻든 부담도 덜
어드릴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어쨌든 내심 그런 마음으로 점심 때 예지가 적어준 전화번호를 돌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다. 틀린 번호가 아니라면, 얘가 아까 말을 들은
현주란 꼬마 아가씨인가?

"어... 거기 현주네 집이죠?"
"예, 전데요"

맞는 모양이다.

"응, 그러니... 어머니 계시면 바꿔줄래?"
"엄마요? 잠깐만요"

쪼르르...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엄마, 전화받어, 엄마 바꿔달래 - 하
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그리고 잠시 후, 들려오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

"예, 저, 안녕하세요. 전 김예지 학생의 부탁을 받고..."
"누구요...? 아, 우리 현주 과외선생님...!"

목소리 - 의외로 현주 어머니는 상당히 젊은 목소리였다. 초등학교 3학년
짜리 아이를 뒀다면 적어도 30대 중반일 텐데... 목소리만으로는 20대쯤?


"그러세요, 제가 현주 엄마에요. 어머, 목소리가 꽤 굵으시네요"

그녀도 내 목소리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어디... 얘기는 들으셨죠? 그럼... 혼자 살고 있나요? 말소리를 들으니
지방학생은 아닌 것 같은데..."
"예, 원래 집은 시내 쪽이고요. 멀기도 하고... 여러가지 사정이 있어서
지금은 자취하고 있습니다"
"네에... 호호, 목소리가 참 괜찮으시다, 우리 과외 선생님...!"

이런... 왠지 호들갑 떠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떨떠름한 나.

"지금 어디 사시는 거에요? 어머 참, 이름이 뭐에요?"
"창희... 라고 합니다. 자취방은 후문 쪽이구요"
"그래요, 창희 학생... 우리 집은 정문 앞에 있어요. 좀 먼데..."

알고 보니 현주네 집은 다소 우리 학교에서 떨어진 거리의 새로 생긴 아
파트단지였다. 약간 멀기는 하지만, 학교에서 걸어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
다.

"저희 집 얘기는 들으셨죠? 애 아빠가 외국을 들락거려서, 애가 좀 버릇
이 없어요. 그래서 든든한 남자 선생님이 엄하게 좀 해주셨으면 해요. 그
런데 아는 사람이 있어야죠... 때마침 예지양인가 하는 학생이 공부를 잘
가르치는 걸로 소문이 났더라구요. 그 학생이 가르치는 아이가 우리 현주
같은 반 친구거든요. 그래서 그 학생이 소개시키는 남학생이라면 믿을 만
할 것 같아서..."

젊은 목소리답게, 수다스러운 현주 어머니였다. 나는 그녀의 말을 끊고
아까의 내 의도 - 입주과외를 사양하려는 - 를 끄집어냈다.

"예, 저 근데요, 드릴 말씀이..."
"네, 말씀해 보세요"
"저기... 꼭 입주과외를 원하시나요?"
"왜요? 무슨 사정이 있으신가요?"

글쎄... 뭐라고 얘기한다? 부자유스러워서 안되겠다?

"그게... 따님도 계시고... 현주 아버님도 안계시다는데 제가..."

결국 내가 생각한 변명은 그것이었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비록 나이
어린 여자애와 엄마라고 해도 여자들만 있는 집에 시커먼 사내녀석이 상
주한다는 것이 조금 그렇지 않은가.

"아... 저희 모녀만 여자끼리 있는데 들어오시기가 그렇다는 거군요. 괜
찮아요. 오히려 저희 집엔 너무 오랫동안 남자가 없어놔서, 일부러 누구
하숙생이라도 들일 참이었거든요"

갸우뚱거리는 내 고개였다. 지금 이 아주머니는 그럼 과외선생이 아니라
집안에 들일 남자를 구하는 것인가?

"그, 그래도 제 입장에서는..."
"아유, 걱정 마세요. 정 그러시면 만나서 얘기해요. 가만 있어봐... 이번
주 토요일쯤 시간 되세요?"

얘기는 결국 그렇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 약속시간과 그녀가 불러주는 아
파트 동과 호수를 적고 난 뒤, 나는 내 연락처를 불러 주었다.

"호호... 근데 목소리 들어보니 굉장히 잘 생기셨을 것 같아요. 여자친구
많겠다... 그럼 놓치기 아깝네...?"

전화를 끊기 직전에, 현주 엄마가 내게 건넨 말에 나는 얼떨떨한 기분이
었다.

아이 공부 가르치는 것과 얼굴 생긴 게 무슨 상관이지? 놓치기 싫다 - 그
럼 내 생김새가 마음에 들면 입주과외가 아니라도 좋다는 것일까? 그리고
왠 여자친구... 요새 과외 가르치려면 여자친구 문제도 밝혀야하는 건가.
..?

어쨌든 이번 주말은 이래저래 바쁠 모양이다. 현주네 집에 들려야하는 데
다가... 미세스 최, 그녀가 일요일날 만나자고 하지 않았나.

여자친구, 미세스 최 - 벌렁 드러누워 이런 얘기를 떠올리니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었다.

선영이 누나. 그녀는 지금 어디 있을까? 아직 초저녁인데, 학교 근처에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 전화로 물어 물어 그 누나의 연락처를 알아낼 수도 있을 것이
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소문이 퍼질 수도 있고... 정호형, 그의 귀에 그
말이 들어갈 수도 있다.

정호형, 그와 선영이 누나는 무슨 관계일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까 그
녀는...

그녀가 정호 선배를 홀로 두고 일어설 때, 그 순간 나를 보며 짓던 표정
이 기억났다. 간절했던 그 눈길 - 내가 그 때 그녀와 직접 얘기할 수 있
었다면 물어볼 수 있었을 것을.

안타까움에 갑자기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선영이 누나, 누나는 어디 있
기에 내가 만날 수 없나요.

그 때였다. 삐리릭, 전화기가 울리고 있었다.

"여보세요...?"

시큰둥, 전화기를 드는 나. 집에서 온 건가...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누워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 목소리!

"창희니? 나야... 선영이 누나..."

으아, 선영이 누나 - 이심전심, 아니 텔레파시일까. 이렇게 누나를 그리
워하는 순간에 그녀의 전화가 걸려오다니, 나는 감격하여 놀라움도 잊고
있었다.

"누, 누나! 지, 지금 어디에요?"
"지금...? 왜...?"
"하, 학교 부근이면 제가 나갈께요. 아니, 시내라도 괜찮아요...!"
"아냐... 지금 여기 우리 집이야. 나 집에 들어왔어..."

이럴 수가. 순간적으로 낙담하는 내 마음.

"어... 그, 그래요..."

그러나 물러설 내가 아니다.

"저, 선영이 누나, 누나 내일 학교 올 거죠? 그럼 내일 저좀 만나요, 네
?"

잠시... 침묵하는 그녀의 목소리.

"누나한테 할 얘기가 있어요. 꼭요...!"

후 - 전화기 너머서 건너오는 한숨소리.

"모르겠어, 내일은... 그보다도 너 오늘... 아까 정호가 뭐라고 하지 않
았니...?"

응? 정호형? 그 사람과 얘기를 나눈 것은 선영이 누나가 먼저 나가고 난
후의 일인데, 어떻게 내가 그 형과 같이 있는 것을 짐작하는 것이지, 이
누나가?

"그러지 않았어? 정호가 너한테..."
"그, 그걸 누나가 어, 어떻게 알아요...?"

다시 한숨 짓는 그녀의 목소리.

"걔가 너한테... 뭐라든? 내 얘기... 따지지 않았어...?"

얼레, 선영이 누나는 모든 상황을 눈치채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자기와 나눈 이야기를 말하지 말라던 정호형의 다짐은 내게 소용이
없었다.

"그랬지? 정호가 너에게 내 얘기 물어봤지? 그러고 너한테 뭐라고 막 대
하지 않았어...?"
"예... 사, 사실은 그랬어요...!"

별 수 없이 털어놓는 나. 또다시 그녀의 침묵.

"그 형이... 물어봤어요. 자기가 먼저... 누나랑, 선영이 누나랑 내가...
무슨 관계인지 털어놓으라구요. 어떻게 된 거에요? 그 선배가 왜 내게 그
런 걸 묻죠?"

이젠 더 이상 한숨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미안해... 걔가 창희... 너를 의심하는 것 같애..."

의심? 그럼 정말로 내가 그녀와 사귀는 것으로? 그럼 아까 정호형 그 사
람이 - 역시 내 추리가 들어맞는 것 같았다. 그는 나를 연적으로 오해...
아니 그럼 우리가 삼각관계?

"아니야... 그럴 것 같애서, 그래서 전화한 거야. 그리고..."

머뭇거리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

"내일 나 집에 있을 거야. 학교 못갈 것 같애. 나중에... 나중에 보자...
"
"아, 안돼요! 누나, 잠깐만!"

딸칵, 전화가 끊겼다.

안돼 - 끊지 말아요! 그러나 내 귓가에 들려오는 것은 멍청한 뚜, 뚜...
신호음 뿐이었다.

안된다. 이건 말도 안된다. 우째 이런 일이...

<제83화> 선영이 누나를 찾아서

잠이 든 것은 겨우 새벽녘이었다. 어젯밤 선영이 누나와의 통화 이후, 거
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샌 나는 늦으막히 해가 중천에 떠서야 일어날 수 있
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이다. 그녀에게 - 그리고 틀림없이 그것은 정호형과,
그리고 나와 관련이 되어있을 것이다. 불안함과 초조감... 그것이 갓일어
난 오늘, 금요일의 아침까지에도 머리 속 깊숙히 느껴지고 있었다.

잠이 깨자마자, 나는 서둘러 옷을 챙겨입고 학교로 향했다. 선영이 누나,
누나를 찾기 위해.

물론, 학교 안에서는 희창이도 만나고 예지도 볼 테지. 하지만 나는 일부
러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여, 범생이 짱아! 어디 갔었어?"

제일 먼저 들린 학회실, 그 안에서 만난 희창이 녀석 - 그러나 내가 말하
지 않아도 대번에 녀석은 눈치를 채고 있었다.

"얼레, 너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구나...!"

역시... 불알친구가 달리 불알친구겠는가. 학교도 늦게 나오고, 당연히
수업도 빼먹고... 게다가 얼굴은 뻣뻣이 긴장하여 걱정스러운 인상이니 -
그는 대번에 알아차리고 있었다.

"아침에 안보이길래 전화라도 하려던 참인데... 무슨 안좋은 일 있냐?"
"아, 아냐... 아무 것도..."
"아니긴 뭐가 아냐, 짜샤! 우리가 한두 해 아는 사이냐? 척하면 딱인데..
. 왜 그래? 얘기해 봐. 이 형님한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선영이 누나의 일을 물어 볼 수
밖에 없는 일이기는 하다. 오늘 무슨 일이 있기에 그녀가 학교를 나오지
않는 것인지 알 수도 없을 뿐더러... 그녀를 찾으려고 해도 집이나 연락
처도 미처 모르는 나였다.

"심각한 일인 것 같은데... 말해 봐. 내가 아니면 누가 들어 주겠냐?"

할 수 없다. 정호형이나 다른 사람의 귀에 내 의도 - 선영이 누나를 찾는
다는 - 가 들어가지 않도록, 그런대로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물어야하기
는 하는데... 아무래도 이 놈뿐이다.

후우 - 거기에 남들한테는 비밀로 해달라, 이런 다짐을 받을 필요도 없
다. 어차피 누나와 나 사이의 일을 속속들이 아는 유일한 사람이 희창이
니까.

"뭐냐구, 니 얼굴 보니까 장난이 아니구만"
"그, 그게 말이지... 사실은..."

자초지종, 어제 우연히 경양식집에서 그녀를 만났고, 또 그녀가 정호형과
함께 있었으며, 그 다음에는 정호형이 나를 불러 일종의 경고성 발언을
했다는 사실 - 게다가 어제 선영이 누나가 걱정스레 전화를 걸었다가 그
냥 끊었다는 것까지...

그렇게 잠자코 다 듣고 난 희창이.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근데... 짱이 너..."

문득 그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너 말야... 그러다 정말 선영이 누나랑 그렇고 그런 사이 되는 것 아냐
?"

짐짓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는 녀석이었지만, 나는... 그의 말을 무
시한다는 단호한 표정을 돌려 보냈다.

"하기야 뭐...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다마는..."

내 진지한 눈초리에 멎쩍어하는 그.

"그럼... 명희 선배 찾아 봐. 그 누나가 제일 선영이 누나랑 친하니까...
그 누나라면 선영이 누나 얘기를 함부로 소문내지 않을 거야. 너랑 나같
은 사이니까"
"그래...? 그 누나 지금 어디 있을까...?"

유명희, 명희 누나 - 희창이의 말대로 그녀는 선영이 누나와 단짝친구이
다. 학구파다운 차갑고, 안경까지 쓴 샐쭉한 인상이지만, 그렇기에 여린
심성의 선영이 누나와 어울려 다니는 선배인 것이다.

그 사람이라... 그렇다면 일단 신뢰할 수 있다. 가장 친한 단짝 친구라니
까, 쉽사리 아무에게나 나와 관련된 일을 끄집어내지는 않을지 모른다.

"아마 오늘 조교보 근무일 걸... 이따 대여섯시쯤 끝날 테니까, 정 그러
면 이따 수업 끝나고 찾아가 봐...!"

다행이다. 말썽장이 희창이였지만 오늘은 제법 도움이 되었다. 고개를 끄
덕이는 나를 보며 희창이는 마지막 당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 그렇다면 내 생각에는 말이다. 뭔가 확실히 해두는 게 좋
을 것 같은데...?"

확실히 해두다? 알듯 말듯한 내 표정을 보며 녀석은 헛웃음을 피식거렸
다.

"무슨 뜻이야?"
"아, 아니다. 창희 니가 알아서 잘 하겠지 뭐... 후훗, 그냥, 정호형 정
도는 신경쓰지 말라는 뜻이야. 내가 보기에는 그 선배, 어제 선영이 누나
에게 좋은 소리 들은 것 같지는 않은데..."

정호형에게 신경쓰지 않도록 해라... 뭔가 가물가물, 선뜻 그의 말을 이
해하기 힘들었다.

"됐다, 됐어.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마지막 수업인데 안들어갈 꺼냐?"

으응, 아니야. 혼자 있고 싶다 - 이런 대답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이 희
창이는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한두 시간만 기다리면 되겠네. 명희 선배... 과 사무실에 있을 거다, 알
지?"

그가 자리를 비켜주었기에, 텅빈 학회실 안.

혼자 남은 내 머리 속에, 선영이 누나... 그녀에 대한 상념이 다시 몰려
오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왜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정호 선배와는 무슨 말을 나누었기에 그가 어제 내게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일까 -

조바심이 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명희 누나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
지. 초조하기만한 나였다.

똑똑, 조교실을 노크한 나는 제일 먼저 다른 사람이 있는지부터 살폈다.

다행이다. 이미 조교형은 퇴근을 했는지 과 사무실 안에는 조교보, 명희
선배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 명희 선배...!"
"응, 창희구나. 왠 일이니?"
"지금... 바쁘세요? 잠깐 드릴 말씀이..."

차가운 인상의 그녀는, 내가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티를 내자 의외라는 듯
안경알을 반짝였다.

"그래? 뭔데...? 어차피 나도 업무 끝났으니까, 여기서 얘기해도 되지?"

아무도 없으니 괜찮기야 하지만... 무표정한 그녀의 표정에 왠지 긴장이
되었다.

"얘기해, 중요한 거니?"
"아, 아뇨. 그, 그게... 선영이 누나 일인데요..."
"응? 선영이?"

명희 누나의 눈썹이 묘하게 치켜지더니, 의자에 등을 기대며 다리를 꼬는
그녀였다. 까닥까닥거리는, 꽉 낀 청바지를 입은 그녀의 신발코가 나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얘기해. 선영이 뭐?"
"저... 그 누나 오늘 왜 학교 안나왔는지 아세요...?"

야릇하게 말려 올라가는, 가뜩이나 샐쭉한 인상의 그녀 입술.

"왜...? 오늘 걔랑 무슨 약속 있었니?"
"아,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냥 궁금해서요...!"

왠지 이 명희 선배에게 속마음을 들키는 것 같아 기분이 켕겼다. 그녀는
무시하는 듯 책상 쪽으로 몸을 돌렸다.

"걔 오늘 아마 공항 나갔을 거야. 부모님이 외국 나가신다고 해서..."

그래서 배웅을 나갔다...? 공항에?

"그, 그럼요...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한데... 혹시... 그럼 선영이 선배
연락처는 아세요, 명희 누나...?"
"알지, 그런 건 주소록에도 나와 있잖아?"

그녀의 고개가 흘끗, 나를 돌아보았다. 젠장, 그거야 저도 알죠. 하지만
제가 필요한 건 -

"그, 그건 아는데요. 혹시... 지, 집이 어딘지 좀..."

그러자 당장 차가워지는 듯한 명희 누나의 시선.

"선영이네 집? 알긴 아는 데..."
"그, 그럼 좀 가르쳐 주세요...!"

흐흥, 콧방귀를 뀌는 그녀.

"글쎄... 그걸 니가 알아서 뭐하려고?"

꿀꺽, 제길... 뭐라고 대답한다?

"저... 아... 그, 그게, 수, 숙제 부탁드린 게 있어서..."
"숙제?"

누가 보아도 내가 누나에게 숙제를 갖다준다는 의도가 아닌 것은 다 짐작
할 것 같은 내 표정이다.

후 - 뭔가 듯 모를 한숨소리를 내더니, 명희 선배는 내게 선영이 누나의
집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상상외로 친절하게 약도까지 그려주면서.

"어떻게 가는지는 알지?"
"예, 고, 고맙습니다. 누나...!"

돌아서서, 도망치듯 조교실을 빠져나가려는 나를 -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불러 세우고 있었다.

"참, 너 창희..."

순간적으로 멎쩍게 명희 누나를 돌아보는 내 시선.

"예...?"
"너 선영이한테... 아, 아냐, 됐어. 나중에... 나중에 얘기하자. 가봐"

그러나 뜻 모를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문득 말을 멈춘 그녀.

무슨 얘긴가를 하려는 것 같은데? 모르겠다. 어쨌든 다시 모른 척 눈길을
피하며 책상 위로 고개를 돌리는 그녀를 놔두고, 나는 사무실 문을 닫았
다. 지금 무슨 얘기를 듣든지,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으므로.

내 머리 속에는 오직 단 하나, 선영이 누나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만이
간절했다. 명희 선배가 가르쳐준 주소를 손에 들고 서둘러 내달리며.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학교 앞을 떠나기 직전, 내가 건 공중전화 너머로 들려온 누나의 목소리
였다. 확인했다. 나는 잠자코 수화기를 가린 채 전화를 끊었다.

선영이 누나의 집은 강남, 한강변의 대형 아파트 촌이었다. 저멀리 강변
으로 노을이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는 시간이니, 아마도 그녀는 계속
집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명희 누나가 가르쳐준 아파트 단지 근처에 내리자마자, 다시 한번
다급히 그녀의 다이얼을 돌리는 나 - 예상은 적중하고 있었다.

삐리리... 삐리리리...

영원같은 그 신호음 몇초, 그것이 마치 내게는 수십시간과 같은 길이로
들려왔다.

삐리리... 딸칵 -

"여보세요"

터질 것 같은 내 가슴이었다. 쿵쾅쿵쾅,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는 소리가
전화기로도 들릴 것만 같았다.

"여보세요...?"
"저... 누나...!"

이 말이 왜 이리도 힘이 드는지.

"누나 저에요, 창희..."

창희에요 - 그러나 이 말에 그녀는 잠자코 침묵만을 지키고 있다.

"창희라구요... 선영이 누나"

어색한 침묵을 깨는 내 부름에, 그녀는 간신히 조용한 대답을 들려주고
있었다.

"응... 어디니...? 공중전화인 것 같은데..."
"저 지금... 누나 집 앞에 와있어요..."

다시 이어지는 고요함...

"지금... 좀 나올 수 있어요?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 이 말을 하기가 그 동안 얼마나 힘겨웠는가.

"아... 알았어... 나갈께. 조금만 기다려줘..."

나의 위치를 확인한 그녀는, 조그만 한숨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멍청한 기분이었다. 이야호, 하는 환호성 - 분명 선영이 누나를 만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갖은 고생으로 가슴 뛰는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녀의
힘없는 목소리에 뭔가 침울해지는 나였다.

그렇게 일이십분여 기다렸을까.

어둑어둑한 거리를 밝히는 가로등에 기댄 내 시야로... 걸어오는 그녀가
보였다.

<제84화> 고수부지 으슥한 곳에서

후아, 나는 허공을 쳐다보며 심호흡을 했다. 그렇게 애타게 만나고자 했
던 선영이 누나 - 그러나 막상 그녀가 다가온다는 생각만으로도 내 몸은
떨림 섞인 긴장에 뻣뻣해지고 있었다.

"안녕, 창희야...!"
"누, 누나...!"

애써 씨익, 웃어 보이는 내 시야에 먼저 작게 배시시 웃는 그녀의 얼굴이
들어왔다.

그런데... 뭔가 고단한 기색이 묻어나는 것 같다. 꼭 마음 고생을 한 사
람처럼 -

"왠 일이니, 다 저녁 때에 여기까지..."

무어라, 할 말이 없는 나는 그저 멎쩍게 실없는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곁에 조금 떨어져서 어디론가 그녀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발자욱 뒤처져 걷는 나... 그런데 오늘따라 왜 그리 그녀의 키는 작아
보이기만 하고, 어깨는 왜소해 보이기만 하는지... 그 이유가 무얼까.

"여기서... 조금만 걸으면 강변 고수부지야. 그리로 갈래? 나... 바람좀
쐬고 싶어"

그러세요 -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앞장 선 그녀를, 나는 묵묵히 손을 바
지 주머니에 넣은 채 따라 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뭐 하셨어요? 하루 종일..."
"나...? 으응... 그냥 책 읽고, 음악 듣고..."
"잘 가셨어요...? 누나 부모님..."

여전히 약간 수그린 고개를 들지 않던 선영이 누나는 그제서야 조용히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걸... 어떻게 알아...?"

참, 그래... 부모님이 멀리 외국에 가셔서 외로운 것일까? 이 누나는...

"아까... 학교에서 명희 선배에게 물어 봤었어요. 어제 누나가... 오늘
학교 안온다고 하시길래요"
"그래... 명희가... 명희가 뭐라고 하든...?"
"아뇨, 그냥... 누나 집만 물어 봤어요. 전화번호랑..."

그래? 그녀는 잠자코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참, 한 시간쯤 전에... 받았는데 그냥 끊어진 전화 있었죠? 푸훗, 그거.
.. 제가 건 거에요. 누나 집에 있는지 확인하려고"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피식거리면서 관심을 끌어보려는 나인데, 그래도 누
나는 소리없이 작은 눈웃음을 지을 뿐이다.

둑처럼 생긴 차도 밑을 지나자, 드디어 우리 앞에는 탁 트인 강변이 펼쳐
지고 있었다. 드문드문 선 가로등 불빛에 그녀의 화장기 없는 뽀얀 얼굴
이 드러났다.

"우리... 저기 앉을까...?"

그녀가 가리킨 곳은 강둑 바로 위의 계단처럼 이어진 강변이었다. 이미
어둑어둑해진 강물에는, 건너편 불빛들이 흔들리듯 점점이 반짝이고 있었
다.

아직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군데군데 아베크족처럼 보이는 남녀 쌍쌍이
띄엄띄엄 앉거나 걷는 조용한 장소였다.

그녀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강물에 가까운 자리에 앉고서, 신기한 듯 발끝
아래의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어, 저... 잠깐만요. 마실 것좀 사올께요!"

어색함을 깨기 위해, 나는 그녀와 나란히 앉기 전에 몸을 일으켰다.

뛰어가 가판점에서 내가 마실 캔맥주 두어 개와, 누나의 것인 음료수를
사서 돌아올 때까지도, 그녀는 가만히 강물만을 바라보며 그렇게 앉아 있
었다.

말없이 그녀의 곁에 앉은 나는 그녀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바람이... 많이 부는데 춥지 않아요...?"

간편한 면스커트에, 스타킹도 신지 않은 그녀가 걱정되었다.

"아니... 괜찮아"

잘 되었다. 이럴 때면 멋있게... 소설같은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나는
조용히 티셔츠 위에 걸친 자켓을 벗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 걸쳐 주었다.

내 덩치가 작은 편이 아니라, 그녀는 마치 잠옷을 입은 듯 내 옷 속에 폭
파묻히고 있었다.

"괜찮은데... 너는 춥지 않아...?"

사실 강바람이 쌀쌀한 편이지만, 뭐 어떠랴. 지금 선영이 누나에게 무언
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는데. 마주보는 그녀에게 씩
씩한 미소를 지으며 칙, 캔맥주를 따 목을 축였다.

"어제... 많이 놀랐지? 정호가 그런 말해서..."

누나가 먼저 말을 꺼내고 있었다.

"아뇨... 그보다는 누나가 더 걱정 됐어요. 저 때문에... 괜히 오해 받으
시지 않나 해서..."

그녀는 피식, 작은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발 아래에 둔 시선을 거두지는
않았다.

"훗, 아니야. 그건 내가 할 소리인걸..."

나도 역시 그녀의 시선을 쫓아 강물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런 말... 제가 물어봐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제 정호형이랑 무
슨 얘기한 거였어요?"

그러자, 후 - 한숨소리와 함께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는 누나.

"어제... 정호랑... 어떤 얘기했을 것 같애?"

되묻는 선영이 누나였다.

"후후... 제 짐작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호형이 고백한 것 아녔
어요? 누나 좋아한다고..."

대답 대신 멍하니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녀... 예상했던 일이지만, 왠지
사실로 드러나자 묘하게 - 질투? - 나빠지는 내 기분이었다.

"니 말이... 맞아. 걔가 그랬어. 사귀고 싶다면서..."

폭, 다시 한번 내쉬는 그녀의 한숨.

"정호가... 먼저 그러더라. 근데 나랑 창희 너 사이가 이상해 보인대...
우리 둘이 사귀는 것 아니냐고"

역시 그랬구나... 그럼 요사이 누나와의 일이 은연 중에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지고 있구나.

"그러면서... 내가 널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자기가 날... 좋아한다
구..."

잠자코, 듣기만 하는 나였지만... 그 얘기를 들으니 당장 궁금해지는 것
이 있었다.

꿀꺽, 실로 절대절명의 중요한 문제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 그래서... 누나는 뭐라고... 뭐라고 대답했어요...?"
"뭘...? 정호랑 사귀는 것에 대해서...?"

그 질문에 돌아보는 그녀였다. 마른 침을 삼키며, 아연 긴장되는 나.

"아니... 정호형 얘기말고... 저..."

계면쩍을 수밖에 없었다. 이 질문을 과연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의아스러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나는 바싹, 입 안의 침이 마를 정도
였다. 어휴, 눈 딱 감고 물는 도리 밖에.

"저... 저 좋아하냐는 그 말... 누나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선영이 누나의 귀여운 작은 눈이 잠깐, 커지는 것 같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 - 누나는 다시 시선을 돌리고 혼잣말처럼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건... 나도 모르겠다고 했어.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 나도
모르겠다고... 아니, 좋아해도 그게 남자로서인지 아닌지도..."

으화, 이게 무슨 얘기인가! 그녀는 긍정도, 부정도 않고 있었다. 이 누
나, 작고 예쁜 눈동자, 한없이 착한 미소의 그녀가 나에 대해 -

그러나 그녀는 일부러 민감한 화제를 피하려는 듯, 다시 말을 잇고 있었
다.

"하지만 어제... 너무나 화가 났었어. 정호가..."

이 대목에서 그녀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그거... 나도 좀 줄래...?"

누나는 내가 마시던 캔맥주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 네 - 서둘러 새 캔을
따려는 나의 팔목을, 그녀가 가만히 붙들었다.

"그냥, 그걸로 줘. 어차피 난 잘 마시지도 못 하잖아..."
"그, 그래도 이, 이건 제가 마시던 건데...!"

그러나 그녀는 상관 없다는 듯 내 손에 쥐고 있던 맥주 캔을, 미처 입술
이 닿았던 부분을 닦지도 않고 기울여 들이키고 있었다.

"시원하다... 푸훗"

차분함을 잃지 않는 미소이기는 하지만 휴우... 그녀의 표정은 다시 어둡
게 돌아서고 있었다.

그 때였다. 가만히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가가 반짝이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선영이 누나...!"

그녀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이럴 수가, 도대체 왜 -

잠자코 내 시선을 피한 그녀의 낮은 목소리.

"미안해... 잠깐..."

고개를 돌린 채 딴 곳을 바라보는 누나.

"걔가, 정호가 그랬어... 자기는 용서할 수 있다고... 다 알고 있다고...
"

용서한다니...? 다 안다니...? 뭘 말에요? 다그치고 싶은 나인데,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순식간에 부르르, 내 몸을 떨게 만들고 있었다.

"내 술버릇... 남자 얘기들... 자기는 이해한다고, 정호, 자기만 받아준
다면 된다며..."

이런, 분노와 흥분에 당장에라도 벌떡 일어날 것만 같은 내 몸뚱아리였
다.

그건 협박이다. 딴에는 이 선영이 누나를 생각해줘서 하는 정호형의 말이
었겠지만, 도저히 내 귀에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새로 따 들은 맥주캔
이 손바닥 안에서 순식간에 으그러졌다.

"그 애가 그렇게 얘기해준 것, 그렇게까지... 어쩌면 고마울지도 몰라...
하지만... 난 그런 얘기를 듣는다는 것이 부끄러웠어. 내 자신이..."

그녀는 조용히 손을 들어 눈가를 닦아내고 있었다.

"미안해, 창희야... 너한테 그런 소리나 듣게 하고... 다 내 잘못이야"

아니에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 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렇게 착
하고 예쁜 누나에게 그런 말을... 그녀가 슬퍼하고 있다. 눈물 짓고 있
다. 이 사실만으로도 곁에 앉은 나는 미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으스러지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내 어깨에 누나의 고개를 파묻었다.

"울지 말아요. 누가 뭐래도... 누난 지금 안그렇잖아요...!"

그 순간, 틀림 없이 그 순간, 그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정호형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진심으로, 그 모든 것을 겪고,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이해하는 사람 - 그건 바로 나였다.

선영이 누나의 얼굴이 내 가슴팍에 밀착되었다. 따뜻했고... 그녀는 거부
하지 않았다.

무엇이 더 필요하랴. 더이상 한 마디의 말도 필요하지 않은 우리, 나와
누나였다.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할지... 날 이해해 준다는 정호의 말, 난 이제
그런 것이 필요할지도 몰라..."

"그래서, 그래서 대답을 못했어...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을 못했어...
"

계속적으로 떨려 나오는 그녀의 말이었다. 막아야 했다. 무조건 그녀의
그런 말을 막아야만 한다.

비참해지는 것 같아 모든 것이 싫었다. 듣기 싫어요, 그런 말 하지 말아
요 -

다음 찰라, 나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로서도, 또 차마 나로서도 상상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그건 그 누가
시킨 것도 아닌 자연스러운 내 대답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녀의 슬픈 목소리를 막은 것은 내 말도, 내 손도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입술이었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턱을 들고, 나는 내
입술을 선영이 누나의 입술 위에 포개고 있었다. 아주, 아주 세게 밀착시
키며.

처음에 내 어깨를 밀어내려던 그녀의 팔 - 그러나 점점, 힘이 빠지고 있
었다.

그리고 어느새, 살짜기... 그녀의 손이 내 뺨에 얹어졌다.

<제85화> 내손은 누나의 치마 속으로

한동안, 아니 그 몇초간이 너무나 긴 여운처럼 느껴졌다.

내 얼굴을 감싸 쥐었던 그녀의 손바닥이 다시 가만히 내 어깨를 밀어냈
다.

"그, 그만, 창희야...!"

엉겁결에 벌어진 일 - 나는 그녀의 안타까운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이야기
를 막으려던 것 뿐이었는데... 얼굴을 떼면서, 후끈, 얼굴이 뜨겁게 달아
올랐다.

구석진 어둠 속이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선영이 누나, 누나의 얼굴도
붉어졌다는 것을.

"미, 미안해요... 누, 누나...!"

상기된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함인지, 얼떨떨한 내 사과에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안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놓지는 않았다.

"여, 여기... 사, 사람들이 보잖아..."

떨리는 누나의 자그마한 항의에, 문득 나는 얼굴을 들어 주변을 돌아보았
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가 고수부지 계단의 맨 아래쪽에 앉아 있으므로, 등
뒤로는 띄엄띄엄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오기는 했다. 그러나... 대부분 우
리 쪽과 비슷한 커플들이 거의 같은 자세로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다. 그
리고 얼핏 보기에도 그들은 아마 우리와 마찬가지의 행동 - 어깨를 맞대
고, 안다시피, 심지어 입맞춤 같은 애무까지 - 을 하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우리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가로등 불빛도 제일 미치지
않는 어두운 그림자 속이었다.

"괘, 괜찮아요... 아, 아무도 안봐요"

그제서야 누나도 몰래 주위를 훔쳐보는 모양이었다. 약간은 안심이 되는
지, 내가 슬그머니 당기자 다시 그녀의 고개가 내 어깨 위로 기대어졌다.

어색한 침묵... 나는 목이 타는 갈증에 벌컥벌컥, 캔맥주를 들이켰다.

"우리...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내 얼굴 바로 아래에 놓인 선영이 누나의 얼굴에서 조그만 목소리가 속삭
이고 있었다.

"이러면... 안 돼..."

뭐라고 대답해야 옳았다. 한참, 대꾸할 말을 찾던 나는 힘겹게 입술을 떼
었다.

"왜, 왜죠...? 저... 전 누나를 좋아해요. 누나나 선배가 아닌... 여자로
서요. 뭣 때문이죠? 정호형... 그 선배 때문인가요? 그건 아니라고 했잖
아요....! 아니면... 누나가 나 이전에 다른 남자와 잤었기 때문에요...
?"

폭, 작게 내쉬는 그녀의 한숨.

"우린... 현실적으로 맞지 않을 수도 있어..."
"왜요, 우리 나이요? 제가 어려서요...? 그건 문제가 안 돼요...! 전 어
제 누나가 전화 했을 때 알았어요, 확신했어요"

조용히, 아랫입술을 깨무는 선영이 누나.

"그것 뿐만이 아냐... 나... 사실은..."

그러나 문득, 말을 멈추는 그녀였다.

"아니, 그럼 됐어요. 저도 알아요, 아직 군대도 가지 않았고... 졸업도
누나가 빨리 한다는 걸요. 그럼 그러면 되잖아요, 그냥 편하게... 누나처
럼, 연인처럼, 그렇게 편하게 바라보면 되잖아요. 우리 서로 준비가 될
때까지...!"

실질적으로, 가장 나은 타협안일지도 몰랐다. 그저 그렇게, 서로를 기다
려 주다가, 만약 헤어지지 않고서 - 우리가 서로에게 머무를 수 있는 그
때가 되면, 그 때 서로에게 다시 한번 진지한 질문을 던지면 될 것 아닌
가.

"그냥 지금은... 제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해주세요"

꿀꺽, 마른 침이 목울대를 타넘었다. 그렇다. 내겐 가장 중요한 질문 -
마지막 관문이자 확인 - 그것만이 남아 있었다.

"누나, 누나도 날... 날 남자로서 좋아하나요...? 꼭 듣고 싶어요. 그것
만 대답해 주세요. 다른 건 상관 없구, 모두 필요 없어요"

영원처럼 긴 시간...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기까지.

그리고... 대답 대신 조그맣게, 아주 조그맣게 끄덕이는 그녀의 고개가
내 어깨에 느껴졌다.

이얏호! 나는 정말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선영이 누나 - 이 순간만큼
은 너무나 그녀가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두 팔을 뻗어 으스러지게 그녀를 껴안았다. 그것이 내가 보일 수 있
는 유일한 기쁨의 표현이었다.

"아...!"

내가 너무 세게 껴안았을까. 그녀의 따스한 숨결이 내 가슴팍에 느껴졌
다.

"미, 미안해요... 다, 답답해요...?"

얼떨결에 그녀의 등을 감싸 쥐던 손에 힘을 뺐는데, 누나의 고개는 의외
로 이번에는 작게 도리질쳤다.

"아냐... 괜찮아..."

다시 한번 그녀를 부둥켜 안는 내 어깨 - 그런데... 그 때까지 못 느꼈던
감촉이 한가지 전해지고 있었다. 얇은 니트만을 받쳐 입은 푹신한 누나의
젖가슴, 그 부근이 무언가 색달랐다.

그런 내 느낌을 알아차렸을까. 부끄러운 듯 속삭이는 선영이 누나의 목소
리.

"저기... 아까... 집에 있느라고... 그것 안 했어..."

안 입고 나왔다? 그럼, 그녀의 상체는 지금 노브라? 서, 설마... 그 때였
다. 누나의 한쪽 손이 그녀의 등 뒤에 돌려진 내 팔을 쥐고는 슬그머니,
내리고 있었다. 어... 너무 갑갑한가...?

그런데, 치우라는 뜻인줄 알았던 그녀의 손은 상상도 못 했던 곳으로 내
팔목을 이끌고 있었다. 여, 여기는!

이, 이런 - 그녀는 내 손을 예기치 못한 장소로 안내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순간적으로 아찔한 기분이었다.

내 손바닥이 도달한 곳, 그곳은 상의, 니트 안이었다. 내 손길에 당장,
매끄럽게 뽀얀 누나의 속살이 닿고 있었다. 그리고 선영이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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