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아내와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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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3,937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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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그리고 남편



이면의 복잡한 상념과는 상관없이 거실에는 싸늘한 침묵만이 존재했다.

결론은..단순하지 않았던가. 복잡한 심사와 거실에 내려앉은 침묵조차 불쾌해질 무렵 나는 말했다.


"답이 없더라...우리..그만하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 같은 내면을 누르고 이성적인 얼굴과 냉철한 음성을 연기하려니 죽을 맛이다.

구태여 이렇게 해야하나 싶지만 분노에 미쳐 날뛰는 자신을 아내에게 보인다는것 자체가 치욕스러워 죽지못해 참을 뿐이다.

아내는 아무런 말없이 멍하니 창밖만을 바라본다. 정말이지...죽여 버리고 싶다.

저 얼굴을 바닥에 내려 찍어서 뭉개고 싶다는 마음이 구체적으로 치솟는 것에 크게 한숨을 내쉼으로 진정을 시켰다.


"서류 준비해..문자 주면 법원 앞으로...갈테니까.."


말을 이어갈수록 진정시켰던 분노가 들끓기 시작하고 말을 잇기 힘들지경이 되자 다시 크게 호흡했다.

어거지로 들끓는 심사를 내려 앉히려니 머리가 어질거릴 지경이다.

왠지 가만히 반응없는 아내가 더욱 얄미워 보였다.

살면서 이토록 잔인한 상상을 눈앞에 대상을 바라보며 하게될 줄은 몰랐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내는 창밖으로 향한 시선조차 바꾸지 않는다.

마치 나혼자 생쑈를 하는것 같아 더더욱 분노가 치밀어 급하게 담배를 한대 꺼내 물었다.


"흐읍~~~후~~~....."


폐속 깊숙히 담배연기를 들여 마시기를 몇차례 미약하지만 시끄럽던 마음이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차분히 정돈될 뿐 그 분노의 절대량은 변함이 없다.

다만 아까처럼 당장 저 모가지를 비틀어 뽑아 버릴까 아니면 부엌칼을 가져다 온몸을 난도질 해버릴까 아니면...

줄줄이 일어나는 다양하고 잔인한 상상을 정말 저질러 버릴까 말까하는 마음속 저울질로 고뇌하지 않을만큼 딱 그 정도일 뿐.


답답한 심사에 급하게 빨아들인 걸까...머릿속이 빙글 거리고 속까지 매스껍다.

아이가 생긴 이후 아내의 등쌀에 못이겨 금연한지 두어 해가 되어간다.

생각해보니 금연을 한것도 아내 때문이고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된것도 아내 때문이다.

아이러니 아닌가. 잠시 딴생각 하는 사이 담뱃재가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다.


순간적으로 그 담뱃재를 치워야 되나 말아야 되나를 생각하는 자신을 깨닫자 어이가 없었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 말이다. 사랑하는 내 가족 내 아내가 머물러야할 소중한 보금자리 라는건 더이상 없다.

단지 추악한 인간들에 의해 음탕하고 추접스런 행위가 저질러 졌던 더럽고 찝찝한 공간만이 그 자리를 대신할뿐..


좁다란 다탁 위에 아무렇게나 담배를 꾹꾹 눌러서 꺼버렸다.

그날 봤던 동영상 속에는 이 다탁 위에서의 추접한 행위도 나온적이 있었다는 깨달음과 함께 다탁위에 뿌려져 있던 정액의 모양이 기억나 버렸다.

그 더러운 정액 위에 담뱃재를 비벼 끄고 있다는 상상을 하자 구토가 올라 올것만 같아 얼른 손을 떼어 버렸다.

미처 꺼트리지 못한 담배불의 잔재에서 한줄기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른다. 그리고 그와 함께 파도처럼 밀려오는 동영상의 기억.



뱀처럼 뒤엉킨 인간들..

처음 본 퇴폐적인 옷차림의 아내..

벌거벗은 남자...또다른 남자..그리고 남자들...

욕정으로 인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들과 음탕하게 어우러지던 알몸의 아내...

아내에게 달린 구멍이란 구멍은 모조리 들쑤셔대던 남자들의 살덩어리 그리고 거친 숨소리..

음란하게 뒤틀리던 아내의 뽀얀 몸뚱아리에 줄기줄기 뿌려지던 구역질나는 정액들..

남자들이 싸지르는 정액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자지러지던 환희에 가득찬 아내의 발정난 짐승 같던 신음소리...

뿌려진 정액들을 마사지 하듯 온몸에 비벼대며 난잡했던 섹스의 여운을 만끽하던 아내의 나른한 그..미소..

만신창이로 곤죽이 되어 허옇게 풀칠된 아내의 치모(恥毛)와 입구를 다물지도 못한 앞뒤 구멍에서 느른하게 흐르던 애액과 뒤섞인 더러운 ..



순식간에 되살아나 스쳐버린 그 기억과 눈앞에 뻔뻔스럽게 고개를 쳐들고 창밖을 응시하는 아내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분노를 들쑤신다.

피가 꺼꾸로 치솟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사실인가보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끓어 올라 머리 뒤쪽으로 솟구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래고래 괴성을 지르며 아내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어 머리털을 뽑고 쌍욕을 하며 그 뻔뻔한 얼굴에 침뱉는 자신을 상상해 본다.

그렇게라도 하면 가슴속에 이 분노를..이 배신감을..이 끝모를 고통을..없애 버릴수 있을까?..


그래봐야 무엇할까..

그 기억은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건데...

허탈해져 버렸다. 마음속에 무언가가 다 빠져나간듯이..



세상이 빙글거리며 돈다는 느낌과 함께 눈 앞이 흐릿하게 보였다.

거실바닥이 벌떡 일어나 눈앞으로 들이닥치는 모습에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쇼파에 앉아있던 아내가 황급히 다가오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자 다 놓아버린듯 생각했던 분노와 배신감이 다시금 머리를 헝클어 버렸다.


...저리가...가까이 오지마...이 개같은 년..더러운 년...나한테..다가 오지마...


바락바락 고함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입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저 온몸에 힘이 없고 내몸이 내몸 같지가 않다는 생각만 들뿐이다.

아내가 나를 흔들며 무어라무어라 소리치는것 같았지만 웅웅거리기만 할뿐 알아 듣지 못했다.

시선에 힘을 주자 어깨어림 옆에서 나를 내려다 보는 아내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리고 다가온 포근한 냄새..

아내의 달짝지근한 체향(體香) 이었다.


순간..그동안 참아왔던 아니 배신감에 애써 무시했던 한 옴큼의 감정이 온 몸을 휘돌아 친다.


그것은..

안타까움..

내게 너무나 소중했던 사랑했던

이제는 사라져 없어진 그 아내에 대한..


그러자 몇날을 꾹꾹 눌러 참아왔던 눈물이 뚝이 터지듯 솟구쳐 희미하던 세상을 더욱 뿌옇게 흐트려 버렸다.

내 눈물을 보았던 것일까? 가슴을 흔들던 아내가 동상처럼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꽉 막힌 가슴을 비집고 쥐어짜듯 올라온 한 호흡의 숨으로 아내에게 물었다.


"왜에?.....으응?...흐흑...자기야..흐어엉...도대체 왜에?.."


감춰왔던 나의 여린면이 칭얼거는듯한 애들 울음으로 튀어 나왔으나 의식치 못했다.

마치 뒷머리를 통해 가시박힌 송곳이 비틀며 찔러드는듯한 극악한 고통이 몰려들어 숨조차 쉴수 없었다.

그리고 세상이 깜깜하게 물들어 간다고 생각할 무렵 아내가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는 것을 들은듯 하다.



....어떻게든 이 고통을 벋어날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럴수만 있다면...

....나의 그 무엇이라도 대가로 바칠수 있을것 같았다.

....그리고 새카만 무언가가 나를 둘러 싸서 어디론가 데려가 버렸다.







처녀시절 매일밤을 이남자 저남자 주저없이 갈아타며 굶주린 탕녀처럼 놀았던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무슨 성처녀처럼 순수함을 고집하며 옷고름을 부여잡고 산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름 진지했던 두어명의 아릿했던 사람..스쳐가는 놀이기구 같았던 몇몇의 남자들...그리고...

육체의 눈을 뜨게 만들어주고 짧지 않은 시간 나름 즐거웠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을 공유한 한사람..



나에게 섹스의 즐거움을 가르쳐준 그 사람과의 관계는 믿음을 동반한 이어질수 없는 인연임이 묵약(默約)된 그런 사이였다.

상대에 대한 신뢰와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한시적 인연이라는 이율 배반적인 것의 가벼움과 적극성은 대가로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선물했다.

남들에게 들키기 부끄러운 내면의 음란한 상상들과 그것을 가벼운 마음으로 행위로 옮길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일이었고 즐거웠다 말할수 있었다.

그러나 달콤했던 그 시간들이 내몸 깊숙한 곳에 씨앗을 심어 버릴줄은 생각치 못했다. 어리석게도..

약속 되었던 이유로 인해 그 사람과의 시간도 끝이 나고 그 얼마뒤 남편을 소개받게 되었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스타일의 남편은 나에게 나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남편은 매사에 진중하고 묵직한 무언가가 가슴에 자리한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일년여의 사귀는 시간동안 그 믿음이나 기대를 저버린적이 없었고 항상 나를 존중해 주었다.

섹스의 대상이 아닌 그저 한 사람의 나로써 존중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한 느낌인지 남편을 만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보상심리 비슷한 조금은 보수적이다 싶은 올곧음을 제외하고는 나무랄 곳이 없었다.

그가 프로포즈 했을때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승낙했다 말할수는 없다.


과연 이사람과 평생을 같이 할수 있을까?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 의문의 기저(基底)에 깔린 불안함은 나에게 원인이 있었다.

남편은 믿음직한 사람이었고 올곳은 사람이었으므로 신뢰할수 있었다.

염치없지만 내가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불안했을뿐...

그러나 누구나 결혼 전에는 그런 생각 한번쯤 할수 있고 너는 잘해낼 거라는 친구의 말에 마음을 놓아 버렸다.

할수만 있다면 친구의 생각없는 조언에 홀라당 마음을 놓아버린 그시절 나 자신에게 뺨이라도 한대 올려부치고 싶은 심정이다.


평범하고 순수한 결혼 생활이라는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굴레가 될것임을 어렴풋이 느꼈다면

애인에서 남편으로 바뀌기 이전의 그에게 모든것을 보여주고 이해시켜서 함께 하거나 혹은 헤어지거나 버림 받았어야 했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죄책감에 몸부림 치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나 자신을 저주하는 일 따위는 없었으리라.

친구들의 푸념처럼 슬쩍슬쩍 바람이라도 피우고 어영부영한 사람이었다면 나의 행위가 작게나마 변명의 여지를 가질수 있었을 것이나

어이없게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올곳게 변함이 없는 진실한 사람이고 아내에게 성실한 사람이다.

역설적이고 이기적지만 착하고 좋은 남편이라는 그 사실이 나를 죄책감에 떨게하고 아프게 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외출에서 돌아온 집안은 풍비박산(風飛雹散)이라 불러도 손색 없으리 만치 온통 어질러져 있었다.

당황스럽고 무서워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곧이어 퇴근한 남편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자 두려움이 몰려왔다.

아침에 신고 나갔던 남편의 구두를 확인하자 더더욱 무서운 생각이 한켠으로 똬리를 틀었다.

도둑..강도...살떨리는 단어들 뒤로 남편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 밖으로 나갈수도 없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어질러진 세간살이 사이로 숨소리도 죽여가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집안은 구석구석 제자리에 자리한 것이 하나도 없으리 만치 완벽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무언가 이질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안방을 거쳐 서재에 이르렀을때 바닥으로 온통 어질러진 책더미 사이로 노트북이 빼꼼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혼란 통에도 용케 고장나지 않고 화면에는 무언가의 영상이 띄어져 있었다.

정신없는 와중이라 그것에는 개의치 않고 두리번 거리던 찰라 구석에 무릎을 세우고 머리를 움켜쥔 남편이 보였다.


그토록 찾았던 남편을 보았지만 이유없는 무서운 느낌에 선뜻 다가서기 힘들었다.

조심스레 남편을 불렀으나 남편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괜찮냐는 무슨 일이냐는 물음에 남편은 대답없이 몸을 일으켰다.

마치 영혼없는 시체가 일어서는듯 힘이 없었고 그것은 소름끼치는 낯선 느낌이었다.

남편이 고개를 들자 나는 나도 모르게 주춤 물러서고 말았다.


눈물없는 통곡?..허탈함?..분노?..끝자락을 짐작못할 설명할수없는 그어떤 무엇의 눈빛을 가진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왜 그러냐는 물음조차 목구멍을 넘지 못하고 떨고 있을때 남편이 고개를 돌려 바닥을 멍하니 쳐다본다.

그곳에는 갈기갈기 찢어진 책들이 온통 헝클어져 있었고 부서지지 않은 운좋은 노트북이 거기에 있었다.

남편은 천천히 몸을 구부려 그 노트북을 들고 잠시 서있더니 그것을 내 발치께로 쓰레기 던지듯 툭 하고 던졌다.

마치 팔에 힘이 하나도 없는것처럼 힘없이 던지고 천천히 서재를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에게 아무런 말도 못했고 어디 가냐는 물음도 묻지 못했다.

남편에게서는 아무런 생기가 없었고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것 같은 무심함도 함께했기 때문이다.

현관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나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남편의 분위기에 압도 당했다.

무언가에 떠밀리듯 불안한 마음으로 남편이 나가기 전에 내게 던졌던 노트북을 집어들었다.


그순간..세상이 멈춰 버렸다.


노트북의 화면 속에는 벌거벗은 세 남자의 다리 아래에서 두 남자의 자지를 양손에 쥐고

또 다른 남자의 자지를 맛있다는듯 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정지되어 있었다.


심장이 내려 앉는다고들 한다. 그것은 정말 그런 느낌이었다.

누가 어떻게 왜 촬영 했는지는 생각치도 못했다. 남편에게 이 사실이 들켰다는 것만이 온통 내 정신을 찌르고 있을뿐..

남편의 뒷모습이 기억나자 염치없고 두렵지만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강하지만 여리고 아픔이 많은 사람이다. 무슨짓을 할지 모른다는 상상속에는 차마 떠올리기 끔찍한 것도 존재했다.

전화를 걸었지만 안방에서 벨소리가 들려옴으로 전화기도 들지않고 나갔음을 알았다.

일단 남편을 찾아야 했다. 용서를 구하든 남편의 손에 아니할 말로 맞아서 죽는 일이 생기더라도 일단 찾아야 했다.

정말 미친듯이 남편을 찾아 헤멨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남편을 찾을수 없었다.

몇시간 인지도 모를 시간을 미친년 처럼 남편을 찾아 헤매다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집안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정신이 없어 두고 나갔던 핸드폰을 열었지만 친정에서 온 연락이 전부였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유는 묻지 말고 아이를 며칠만 더 부탁한다고 얘기했다.

꼬치꼬치 캐뭍는 엄마에게 나중에 다 말해 주겠다는 말로 얼버무리자

혹시 사위가 바람이라도 났냐며 바람은 초장에 버르장머리를 뜯어 고쳐야 한다느니 어쩌느니 한다.

전화기를 붙들고 통곡 할뻔 했다. 바람은 자신이 피운거라고..

그래서 남편이 집을 나갔는데 어디갔는지 모르겠다며 남편 좀 찾아 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이 자칫 나쁜맘 먹을까 겁이나서 죽을것 같다고 고래고래 울부짖고 싶었다.

전화기를 끊고 안방 침대에 앉았고 그뒤로 그날의 기억이 없다.



무언가에 놀라듯 일어난 그 뒷날 아침은 단언하건데 일생의 모든 아침 중에 가장 최악이었다.

시계를 보자 아직 날도 밝기 전의 이른 시간이다. 허둥지둥 집안을 둘러 보았으나 남편은 지난밤 돌아오지 않았다.

어질거리는 몸을 끌며 조금씩 집안을 치우기 시작했고 어제 어질러진 집에 들어오며 느꼈던 이질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그이와 나 둘이서 함께했던 그 모든 추억의 소멸이었고 기억의 소거였다.

남편이랑 여행 갔다가 사온 찻잔셋트, 데이트하며 함께 골랐던 아기자기한 소품들...

소소한 일상속에 함께했던 그 모든 추억어린 물건들이 모조리 망가져 있었던 것이다.

어떤 심경으로 남편이 이런 행동을 했을지 생각하자 말할수 없는 비애가 솟구쳐 바닥에 주저앉아 울어 버렸다.

울다 지쳐 까무러 치듯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물건을 치우다..또다시 울고...

남편이 얼마나 이 추억들을 소중하게 여겼는지 기억 하기에 그 울음은 망가뜨린 그 추억에 대한 속죄였고 참회라 할것이다.


남편은 이틀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무사히 돌아와 준것에 감사했고 남편에게 그 어떤 짓을 당하더라도 피말리는 기다림의 시간이 끝났음에 안도했다.

곁눈질로 살펴본 남편의 얼굴은 무척이나 수척해 보였다. 수염도 깍지 않아 더욱 우울해 보여 안쓰러웠다.

제자리를 찾아 정리된 집안을 현관에 서서 잠시 바라보던 남편은 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염치없게도 그것이 다행스럽게 생각 되어짐은 어쩔수 없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안방으로 들어간 남편은 옷장을 열고 캐리어에 옷가지를 쓸어담듯 구겨 넣었다.

이리 될수도 있을것이라 예상은 하였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동동거리는 가슴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남편이 캐리어를 들고 안방문을 나설때 마음과는 상관없이 손이 저절로 그사람의 옷깃을 붙들고 말았다.

그 손을 염치없다 원망했고 그 손의 용기에 감사했다. 그러나 남편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현관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내 손은 힘없이 그 옷깃을 놓쳐 버렸다. 무어라 말할수 없는 그 무언가가 남편과 함께 집안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행성에 맨몸으로 나동그라진 듯한 아득함과 황량함이 집안으로 밀려들었다.


혼란스러운 몇날이 더 흘러 남편이 언제 집으로 갈테니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둘이서 이야기 했으면 하겠다는 문자가 왔다.

그것이 마치 내가 갈테니 혹시라도 더러운 짓거리를 하고 있다면 그 순간만은 피해 달라는 듯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둘이라는 문장 속에 비아냥과 싸늘함이 머물러 있다고 느꼈다면 자격지심 이었을까?

명치 끝을 무언가 뾰족한 것으로 찔러 헤집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합당한 형벌처럼 반박할수는 없었으나 너무나 고통스럽다는것도 사실이었고 염치없게 아프다 말할수 없는 처지가 더욱 비참했다.





남편의 싸늘한 침묵이 고문하듯 온몸을 죄여 든다.

창 쪽으로 돌린 고개를 남편 쪽으로 돌리기가 겁이나 목이 뻣뻣함에도 참고 있다.

커튼에 시선을 고정시켰지만 온통 머릿속은 시선 한켠에 실루엣으로 자리잡은 남편의 형상에만 쏠려있다.

남편은 무슨 말을 나에게 하게 될까?..뻔하지만 상상하기 고통스럽고 미안하고..두렵다.

지금이라도 무릎이라도 꿇고 용서를 빌어볼까? 미친...염치없게 어떻게 그럴수가 있을까..

용서를 빈다는 것도 염치가 남아 있을때나 할수 있는 짓이다.

울음이 날것만 같아서 머리털이 곤두서고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다.

어떻게 울수 있을까...누구 앞에서...그런짓을 저질러 놓고..어떻게 뻔뻔하게..


"답이 없더라...우리..그만하자.."


고저 없는 남편의 말이 들려오자 올것이 왔구나 싶었다.

차라리 욕하고 때리고 내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 주었다면 저 말이 훨씬 듣기 수월했으리라 생각 된다.

화가 나면 더욱 차분해지는 남편이다. 그 차분함으로 분노에 제약을 걸어 망가지지 않는 삶을 살수 있었다 들은적이 있다.

그 말을 내게 해주던 남편은 무척이나 씁쓸한 눈빛으로 잔잔히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털어 놓았었다.

부모님의 불화,어머니의 파렴치한 외도,아버지의 끝없던 폭행,눈칫밥을 먹으며 전전해야했던 친척집 생활, 홧김에 저지른 씻을수 없는 실수..등등..

남편은 숨김없이 자신의 치부와 어두웠던 그 모든 것을 드러내어 내게 이야기했고 나는 그의 모든것을 받아들인다 말해 주었다.


가슴을 쥐어 뜯으며 미친년처럼 널을 뛸 후회되는 한순간이다..그날 그때 나를 낱낱히 까발려 털어 놓았어야 했다.

그날의 분위기라면 남편은 내말을 끝까지 들어 주었을 것이고 동의하진 못하더라도 이해하려 애써 주었을 것이고 어떤식으로든 결론을 내었으리라.

그랬다면...그랬었다면..이처럼 남편에게 상처주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그의 어머니에 뒤이은 최악의 여자로 남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서류 준비해..전화 주면 법원 앞으로...갈테니까.."


머리속에서 재판관이 망치를 땅땅 내리치며 마지막 선고를 내리는 듯한 아득함이 몰려왔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손가락질 하더라도 내편을 들어 주었을 단 하나의 내 사람에게 받는 반박할수 없는 사형 판결이 이런 느낌일까..?

결국...저사람에게 나는 몹쓸말을 하게 만들고 말았다. 어찌할까..불쌍한 저이를..저 속을 누가 어이 달래 줄까..

미쳤구나..미쳤어..최악이다 진짜..지가 물어 뜯어 중독된 짐승이 그 독에 아파하며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동정하는 독사(毒蛇)의 꼴이라니..

아서라 말아라..그냥 조용히 끝까지 최악의 나쁜년으로 보내 주자..그게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이고 최대이리라.

평생을 두고 개같은 년이라 욕하게 말이다..아니다 빨리 잊혀지기를 빌어 주자..그것이 저이를 위해 더 좋을터..

다행이 스스로를 잘 컨트롤 하고 있어 보여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답답한 속을 끊었던 담배로 달래는 것일까..담배를 들이마시는 남편의 숨소리가 깊디 깊다.

이 와중에도 기왕 끊었던 담배 그냥 피지 말았으면 싶은 심정에 스스로가 너무 어이없다.

왜 다시 담배를 피기 시작했을지 뻔히 짐작하면서 어찌..

남편이 다탁에 담배를 비며 끄고 있다. 평소 깔끔한 저이의 성격을 생각했을때 참으로 놀라운 변화라 할만하다.

하지만 지금 저이의 속내를 생각하자면 이해 못할것도 아니다. 이 집안 그 무엇에 정이 남아 있으랴.

담배를 비벼대던 남편이 무언가에 움찔하며 다탁에서 손을 뗀다. 이후 멍하니 다탁을 응시한다.

왜일까..멍한 남편의 시선이 무척이나 신경이 쓰인다. 그순간 떠오르는 동영상 속 난교(亂交)의 기억...


벌거벗은 수컷들의 욕정에 가득찬 시선...

스스로의 퇴폐적인 옷차림에 고무(鼓舞)되어 겉물을 질질 흘려대던 뜨거웠던 자신의 육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핥고 빨아대며 맛을 보던 그들의 혀와 입술의 부드럽고 끈적했던 느낌과 음탕했던 그들의 침냄새..

숫컷들의 자지와 부랄과 항문을 음란하고 부끄럼없이 번갈아 빨아주어 기어코 토해내게 만들었던 쾌감 가득한 그들의 감탄소리..

손과 발, 입술과 겨드랑이 온몸을 가리지 않고 박고 비벼대던 딱딱하고 망측(罔測)했던 자지의 감촉..

보지와 항문을 커다란 자지들로 뻐근하게 채우고 입안으로 우람한 또 하나의 자지를 빨았을 때의 그 충만(充滿)함..

입보지와 아랫보지 뒷보지가 터져 나갈듯이 힘차게 박음질 당하며 느꼈던 지옥(地獄)같은 길고 긴 오르가즘의 시간들..

자신의 알몸위로 싸지르던 그들의 뜨끈한 정액줄기, 그것을 온몸에 비벼대며 깨달았던 천박한 짐승으로서의 자각(自覺)이 가져온 이율배반적 카타르시스.

뒤이어 찾아온 섹스의 허망(虛妄)하고 나른한 여운과 힘없이 입구를 다물줄 모르던 구멍들에서 흘러나오던 걸쭉한 정액의 느른한 느낌..


찰나에 솟아 오르고도 동영상으로 재 각인(刻印)된 기억은 그 낱낱함이 올올이 뚜렷하다. 그 마지막에 자신이 누워있던 장소가 저 다탁이였다.

세상에나......남편은 그것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다탁위에서의 난잡하고 음란했던 자신을 말이다.

온 몸으로 덮어서라도 남편의 시선을 다탁에서 가려 버리고 싶다. 차라리 발가벗고 온 동네를 뛰는게 이 보다는 덜 수치스러울듯 싶다.

성경에 바위야 산아 나를 덮어 가려다오 했다더니 지금의 내가 딱 그 심정이다.


남편의 몸짓이 먼가 이상하다 느껴지더니 답답한 신음소리와 함께 모로 쓰러지며 거실바닥에 머리를 찧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다가섰고 남편의 눈이 부릅떠짐에 주춤하고 말았지만

금새 눈동자가 위로 치솟으며 온몸이 늘어지는 남편을 보자 이것저것 가릴수가 없었다.


"자기야..자기야...눈좀 떠봐..왜그래..응? 자기야...눈좀 떠봐.."


가슴을 흔드는 대로 남편의 몸은 힘없이 흔들렸다.

두려움에 온몸으로 솜털이 곤두섰고 그럴수록 나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자기야...정신차려 자기야..눈좀 떠봐..제발..응?..제발....자기야.."


비명처럼 변해버린 내 목소리를 들은 것일까. 남편의 시선이 내게 고정되는 것이 느껴진다.

정신이 돌아온것 같아 작게나마 안도의 한숨이 터졌고 물끄럼한 시선을 유지하던 남편이 가져다준 잠깐의 정적(靜寂)..

이후 무언가 말을 걸려던 순간 보게 된 그렁그렁한 남편의 눈물...

그것은 예고없는 날카로운 비수(匕首)가 되어 가슴팍 한 가운데를 찔러 버렸다.


남편이 운다..

남편이 나를 보고..울고 있다.

저 착한 남편이..나로인해..아파 못이겨..눈물을..흘리고 있다.

그랬구나..나는..나는 이사람을..


귓속으로 날카로운 이명(耳鳴)소리가 들리며 정신이 멍해졌고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 쓴듯 온몸이 움츠러 들며 꼼짝할수 없었다.


"왜에?.....으응?...흐흑...자기야..흐어엉...도대체 왜에?.."


남편에게 들어본적 없는 어린아이 같은 칭얼거림..

도대체 왜냐는 저 물음을 나는 죽는날 까지 잊지 못할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腦裏)를 파고 들었다.

잠시뒤 남편의 몸이 무언가가 다한듯이 스르르 늘어졌다. 순간...세상 모든것이 비틀려 버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막혔던 숨통이 트이고 나의 입에선 찢어지는 다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아악~~자기야 제발~~안돼..으아앙..차라리 나를 죽이고 가..아~~악~~자기야...제발..가지마..으어엉...가지마...가지마~~"


남편의 품에 엎드려 나는 그렇게 머리털을 쥐어 뜯어가며 목놓아 울며 외쳤지만 공허한 거실을 찢어버릴뿐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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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외도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겪고 있는 그 통증의 무게를 잰다면 얼마만큼 일까?

그것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믿고 사랑했으며 일생을 함께하자 맹세한 아내와 남편의 경우라면...


뜻하지 않은 사랑에 빠진것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외도를 즐기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하는말은 비슷비슷하다.


그사람에게 미안하긴 하지만..그냥 단순한 섹스일 뿐이야..그사람 몰래 즐기는 운동 같은 거라구..

그사람과 헤어지고 싶지는 않아...그냥 잠깐잠깐 나를 위로하는 수단이고 여흥일 뿐...들키지 않을거야..그러면 되지 않겠어?..

그사람이 내게 잘해주고 변함없다는건 알아..하지만...내겐 먼가 부족하단 말이야...

그사람과의 섹스는 식상해져 버린지 오래야..참고 살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지 않아?...

그사람의 배우자로서 내가 해야할 몫은 충분히 했고 하고 있다고 봐..앞으로도 그럴거고..그거면 된거잖아?...


이런것들이 과연 변명이 될수 있을까?

정말 저러한 이유들이 합당한 이유이며 그 자신 내면을 낱낱이 거짓없이 진실하게 말한 것일까?

그냥...인정하기 싫어서는 아닐까?

자신의 마음과 영혼 한쪽에 더럽고 추접스러운 부분이 존재하고 있음을...

그리고 소중한 그 무언가를 지켜내고 키워나갈 의지가 부족할 뿐인 저열한 인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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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괜찮아? 힘들지 않겠어?"

"괜찮아..힘들면 다시 들어오자..답답해서 그래.."


힘이 다소 없는듯 하지만 분명한 남편의 말에 어쩔수 없다는듯 은정은 한숨을 내쉬며 휠체어를 밀었다.

어둡지는 않지만 무언가 답답함으로 가득했던 병원을 나서자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가 환하게 펼쳐져 있다.


"좋은 날이네..거봐. 나오길 잘했잖아..아..좋다..."


재우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병원밖의 공기에 기분이 훨 가벼워짐을 느끼고 환하게 웃음지었다.

남편의 얼굴이 밝게 변함에 은정 역시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춥지않아?..이거라도 걸치자.."


은정은 남편의 대답도 듣지 않고 입고있던 니트 가디건을 펼쳐 남편의 환자복 가슴어림을 덮어준다.


"에이..이게뭐야..창피하잖아..너무 알록달록한걸? 괜찮아 안추워.."

"안돼..자기 감기 든단 말야..자꾸 그럼 다시 들어간다?.."


재우는 아내의 애교섞인 단호함에 빙긋 웃음을 지어준다.


"알았어..말 들을게..고마워.."

"히힝..진작 그럴것이지 말야...헤헤.."


가슴어림을 덮은 가디건을 꼼꼼히 체크하며 애교를 떠는 은정을 바라보는 재우의 눈빛은 따스함이 가득하다.

왠지 신혼시절로 돌아간듯한 아내의 사근사근함이 가슴을 뿌듯하게 함이다.

병원생활로 힘들 자신을 위한 아내의 배려일수도 있으나 그 한결 같음에 고맙고 사랑스러울 따름이다.

따스한 남편의 눈길을 의식한 은정은 배시시 마주보며 웃음을 지어 준다.


"며칠만 더 참자 우리..경과가 좋다니까 금방 퇴원할수 있을거야..응?.."


말갛게 웃음짓던 은정이 남편을 바라보며 다독이듯 얘기한다.

재우는 아내에게 보여지는 자신이 이렇게 보살펴 주어야하는 대상이 되어버린것에 조금 불편한 느낌이다.

그러나 아내의 이런 따스한 눈빛과 포근한 말은 달콤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것도 사실이다.

재우는 아무런 말없이 웃음띈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남편은 몇달간의 기억을 전혀 하지 못했다. 마치 아픈기억을 도려 내기라도 한듯이..

재우에게 내려진 후두부 뇌출혈로 인한 단기 기억 상실증이란 병명은 은정에게 재생(再生)의 기회를 주었다.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기회이기는 하나 그 모든 불안함을 떠 안더라도

남편을 영원히 잃는다는 아픔과는 비교할수 없음을 격어 보았기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마지막 그 순간까지

염치없지만 성실한 아내로서 사랑하는 아내로서 그사람의 곁을 지키고 싶었다.

은정은 매일밤 울며 기도한다. 영원히 남편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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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3 가입 15주년을 자축하며 아주 오래전 시놉으로 끄적였던것을 두드려 보았습니다.

15년이라니...세월이란것이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가 봅니다.

명절들 잘 보내시길 빕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천천히 생각해 보려 합니다.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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