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인간의 기억 - 사진과 다른 인간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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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55회 작성일 16-02-0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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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때면 가끔씩 이런 푸념을 늘어놓는 학생들을 보곤 한다. “내 머리가 컴퓨터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내용이든 머리에 집어넣기만 하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테니”라고 말이다.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인간의 기억이 컴퓨터의 기억과 같다면 우린 정말 이상하게 말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친구들로부터 영영 따돌림을 받을 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살펴보자.



인간과 컴퓨터가 지니는 기억의 다른 목적



여대생인 지영은 학생식당에서 친구인 진희와 자신이 어제 소개팅을 한 남학생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진희가 지영에게 묻는다. “어제 소개팅 한 그 남자 어땠어?” 이 질문에 지영은 이렇게 대답한다. “응, 키는 176cm이고 얼굴에는 작은 점이 3개 정도 있었구, 피부는 약간 검더라. 신발은 검은색 구두를 신었어.” 이에 진희는 “아니, 내 말은 그 남자 어땠냐구?” 이에 지영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아이, 참 내 말 잘 들어봐. 셔츠는 파란색이었구, 얼굴에 8개 정도 여드름이 있더라구, 머리숱이 많았었구....음...그 다음에 또 뭐가 있더라?” 드디어 진희는 화를 내기 시작한다. “너 정말 짜증난다. 그래서 그 사람 어땠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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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무언가를 기억해 낸다는 것은 있었던 무언가가 아닌 있었던 무언가에 대한 ‘나의 이해’를 꺼내는 것이다. <출처 : NGD>



이 대목에서 짜증을 내며 물었던 진희의 질문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사람 어땠니?”라는 물음은 얼핏 들으면 ‘기억’을 물어보는 것 같다. 하지만 실은 지영이 그 남학생에 대해 내린 ‘평가’를 듣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지영이 그 남학생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기억’을 얘기하자 자신의 질문과 다른 대답을 하는 것에 짜증을 낸 것이다. 그렇다. 인간의 기억은 분명 컴퓨터와는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다. 세상과 타인들은 대부분의 경우 나에게 예전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묻는 다기 보다는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컴퓨터에 우리는 무엇을 요구하는가? 전지현이나 현빈 같은 미녀 미남의 사진을 스캔해서 이미지 파일로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뒤 다시 그 파일을 더블클릭 할 때 컴퓨터는 그 이미지 그대로를 출력해 줄 뿐 “주인님, 이 여자분 정말 미인이네요.”라든가 “사용자님, 이 남성 정말 미남인데요?”라는 메시지를 결코 내놓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한 달 전에 가 보았던 맛집, 재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혹은 2002년 월드컵. 이런 것들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일어났던 실제 일들에 대한 세세한 목록들이 도서관의 책들처럼 정리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때 경험했던 느낌과 평가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무언가이다. 그래서 인지 심리학자들은 이런 말을 좋아한다. 컴퓨터에게 부여된 기억의 목적은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저장하고 복원하는 것이지만, 인간에 있어서 사고의 목적은 ‘그 대상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 이해한 바를 담는 것이 바로 기억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이 무언가를 기억해 낸다는 것은 있었던 무언가가 아닌 있었던 무언가에 대한 ‘나의 이해’를 꺼내는 것이다.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인간의 사고체계는 종종 우리의 기억에 편집과 재구성, 그리고 심지어는 왜곡까지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결코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 기억의 목적에 더 부합되는 것이니까. 주위에 친구나 가족이 있다면 아래의 실험을 한 번 해보시라(여러 사람을 동시에 해 보면 더 좋다).

1단계: 다음과 같은 단어들을 하나씩 차례로 보여준다(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들려줘도 괜찮다.) 보여줄 경우에는 각 단어를 2~3초 정도 보여준다. 한 번에 하나씩만 보여줘서 모든 단어를 한꺼번에 보지는 못하게 해야 한다. 사전에 사람들에게는 나중에 어떤 단어를 봤는지 기억검사를 할 것이라고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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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모든 단어들을 다 보여준 직후에는 ‘517에서 13씩 계속 빼기’와 같은 역산과제를 시킨다. 그러면 사람들은 ‘504, 491, 478...’과 같이 계속해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자기가 봤던 단어들을 인위적으로 암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기억에 무엇이 남는가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통상 이런 방해과제를 사용한다.

3단계(기억검사): 사람들에게 자신이 본 단어들을 가능한 많이 써보라고 한다.

4단계(채점): 자, 이제 채점을 해 보자. 채점은 이렇게 하면 쉽다. 아래와 같은 단어들을 하나씩 들려줘 보자(맨 마지막 단어인 ‘창문’ 하나만 빼고는 모두 실제로 1단계에서 사용됐던 단어들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 단어를 정말 기억해 냈는지 각 단어를 불러줄 때마다 대답해 달라고 하면 된다.



* ‘문’: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해 냈다고 얘기한다. 맨 처음 들은 단어이니까.
* ‘유리창’, ‘창틀’, ‘문지방’, ‘욕조’, ‘차고’: 이 단어들에 대해서는 답으로 썼다고 얘기하는 비율이 조금씩 줄어든다.
* 마지막으로 ‘창문!’: 흥미롭게도 이 단어를 기억해 냈다고 말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1단계에서 나온 단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필자가 국내외에서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실험해 본 결과 최소한 50% 많게는 80%의 사람들이 이 단어를 기억해 냈다고 대답한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아주 강한 확신을 가지고 ‘나는 분명히 창문이라는 단어를 봤단 말입니다.’라고 억울해 하기도 한다. 명백한 오답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인간 기억의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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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이라는 것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기억하고 싶은 것이나 기억해야 할 것들이 기억나지 않아서 애를 먹을 때도 있고 기억해 낸 것이 정확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출처 : NGD>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창문’이라는 단어는 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창문’을 구성하는 요소인 ‘유리창’이나 ‘창틀’같은 단어들은 경험했다. 따라서 그 구성요소들을 통합하는 ‘창문’을 자연스럽게 ‘재구성’ 즉,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기억이다. 따라서 우리 기억이라는 것은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처럼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기억하고 싶은 것이나 기억해야 할 것들이 기억나지 않아서 애를 먹을 때도 있고, 위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억해 낸 것이 정확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내 의식을 장악해 괴로울 때도 있다. 도대체 기억이란 무엇일까?

미국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의 신경과학 및 기억 분야 권위자인 대니얼 샥터(Daniel Schacter)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The seven sins of memory)'를 통해 기억의 오류를 7개의 형태로 구분하였으며 이를 통해 인간의 기억이 지니는 특징과 취약성을 설명하였다. 처음 세 개의 죄들은 간과 혹은 누락의 죄(sins of omission)로 볼 수 있으며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기 쉬운 인간 기억의 제한적 측면들이다. 다음 네 가지 죄들은 개입 혹은 간섭의 죄(sins of commission)로 분류가 될 수 있는데 이 죄들에 대해서는 조금 더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하나씩 알아보자.

1. 소멸(Transience)의 죄
이는 가장 흔한 경우로 기억 속의 어떤 항목이나 대상에 대한 접근가능성(accessibility)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적으로 감소함을 의미한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자연스럽게 감소가 진행되기도 하지만 뇌의 해마(hippocampus)나 측두엽(temporal lobe) 등에 손상을 입을 경우 심각한 장애를 경험할 수도 있다. 영화 메멘토(Memento)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2. 정신없음(absent-mindedness)의 죄

무언가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놓치는 경우를 말한다. 유명한 첼리스트인 요요마(Yo-Yo Ma)가 뉴욕에서 택시 트렁크 안에 넣어두었던 250만불 짜리 첼로를 잊고 내려버린 일은 유명하다.

3. 막힘(blocking)의 죄

설단(tip-of-the-tongue)현상이란 것이 있다. 이는 기억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잠시 동안 어려운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은 자기가 그 정보를 기억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입 안에서 맴도는데 말을 할 수가 없다.’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4. 피암시성(suggestibility)의 죄

잘못된 정보가 기존의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가장 흔한 경우는 목격자 증언 시에 질문에 답을 하면서 그 질문 안에 있는 내용이 기억에 침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 목격자에게 경찰관이 “정지(stop) 표지판 앞에서 그 자동차가 얼마나 빠르게 지나갔나요?”라고 묻는다. 그렇다면 이 질문의 핵심은 자동차의 속도이다. 따라서 목격자는 자신의 기억에 있는 그 자동차의 속도에 초점을 맞추어 대답을 한다. 얼마 지난 후 경찰관이 다시 그 목격자에게 묻는다. “그런데 그 자동차 옆에 있던 표지판이 정지였나요? 아니면 양보(yield)였나요?” 이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지 표지판이었다고 대답하곤 한다. 즉 경찰관의 질문에 있던 내용이 기억 속으로 심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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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음악을 들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부분의 소음이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라고 기억하기 십상이다. <출처 : NGD>



5. 편향(bias)의 죄

현재의 지식이나 믿음 혹은 상태가 과거에 대한 회고, 즉 기억에 왜곡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의미한다. 즉, 과거에 일어났던 일 자체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현재 혹은 직전에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과거의 사건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에 있어서 다양한 편향 요인을 연구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최근 인간의 행복에 관한 기억의 영향력에 대해 매우 재미있는 설명을 하고 있다. 다음은 그의 강연에서 자주 사용되는 일상생활의 예이다.

“오디오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하나 듣고 있다. 이 음악에 심취하여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곡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 ‘끼이익’하는 소음이 나오며 곡이 끝나버렸다.”

이 경우 사람들은 어떻게 그 시간을 기억할까? 상대적으로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그 음악을 통해 좋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직전의 그 소음이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라고 기억하기 십상이다. 불쾌한 일로 헤어진 애인에 대한 연애 기간 동안의 기억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그런데 가슴을 저미는 사연으로 인해 헤어진 연인과 관련된 만남의 기억들은 마찬가지로 한편의 영화와 같다. 인간은 지금에 기초해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6. 지속성(persistence)의 죄

또한 어떤 기억은 원하지도 않는데 계속적으로 떠올라 우리 자신을 괴롭힌다. 주로 트라우마(trauma)와 같이 충격적이거나 비극적인 사건들이 주로 여기에 해당한다. 중요한 경기에서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선수가 그 기억으로 인해 재기를 못하고 사라져간다거나,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그 기억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오죽했으면 Schacter는 이를 두고 “기억이라는 감옥에 갇힌 비극적 죄수”라는 표현을 썼을까.

7. 오귀인(misattribution)의 죄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귀인(attribution)이란 용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귀인이란 자신이 경험한 사건이나 현상의 원인을 말하는 행동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습관적으로 이러한 귀인을 하려고 한다. 친구의 멍든 눈을 보면서 우리는 “어제 누구랑 싸웠어?”라고 자연스럽게 묻는다. 이는 친구의 멍든 눈의 원인을 어제 벌어진 싸움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잘못된 귀인은 오귀인이라 부를 수 있다. 기억에 있어서 이러한 오귀인은 피암시성과도 매우 관련이 있는 측면으로서 기억의 출처(source)를 혼동하는 것이다. 출처의 혼동은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억의 내용 자체는 명확하게 보존하려 노력 하더라도 기억의 출처에 관하여는 크게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역사적 사실 자체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처음에 어디에서 배웠는가는 잘 모른다. 책을 통해서 배웠을 수도 있고 선생님께 들었을 수도 있으며 TV에서 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언제 처음 배웠거나 경험했는가 자체가 중요한 사항(예를 들어, 애인을 처음 만난 곳과 때)이 아닐 경우라면 우리는 대부분 그 기억의 출처를 모르고 있다. 따라서 서로 독립적인 두 사건이 하나로 오해되어 혼란을 일으킬 수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끔찍한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얼마 후 테러범이 잡혔는데 그 범인을 TV에서 본 렌터카 업체 직원이 “저 사람이 차를 빌릴 때 다른 사람이 있었다.”라고 증언하였으며 경찰은 공범이 있다고 판단하여 그 다른 한 사람의 몽타주를 통해 공개수배를 벌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그 직원이 다른 날 목격한 어떤 사람에 대한 기억과 그 테러범에 대한 기억을 합쳐서 같은 시점에 본 두 사람이라고 착각하여 벌어진 소동이었다. 1995년 4월 미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오클라호마시티의 연방정부청사 폭탄 테러 사건 때의 일이다.



생생함과 친숙성이 주는 함정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기억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가도 결국에는 틀렸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해 하곤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우리는 우리 기억의 정확성을 가늠해 보는 척도로 기억 자체가 아닌 그 기억에 대한 생생함과 친숙성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어떤 것을 기억해 냈을 때 그 내용이 생생하거나 친숙할수록 그 기억은 정확한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기억의 정확성과 이러한 느낌들은 서로 독립적이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런 주관적 느낌들에 기초해 나 자신의 기억의 정확도를 판단하는 것일까? 바로 이러한 느낌들은 자신감이나 확신감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기억의 정확성을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 인생에 일어난 수많은 일들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가 매번 시험문제를 내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다만 자신감이나 확신감을 경계해 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 다양한 기억의 죄가 바로 이 느낌들을 잘못 사용해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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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를 받았으며 미국 University of Texas - Austi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학술논문지에 Preference and the specificity of goals (2007), Self-construal and the processing of covariation information in causalreasoning(2007) 등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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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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