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아이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경차의 차체에 중형차 엔진이 탑재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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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25회 작성일 16-02-0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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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평소와 다름 없는 하루였다. 아이는 방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낄낄거리고 있었다. DMB를 보면서 친구들과 실시간 채팅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책상 위에는 가방이 학교에서 돌아온 상태 그대로 놓여있고, 교복도 입고 있는 채였다. 학원에 가려면 빨리 밥을 먹고 나가야 하는데 엄마는 열불이 났다.

“빨리 옷 갈아입고 나와라. 밥먹자”

아이가 “네”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 그냥 눈을 스마트폰에 고정한 채 오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참다 못한 엄마가 방으로 들어가 스마트폰을 확 낚아챘다. 아이가 엄마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지금 뭐하는거야!”

아이가 눈을 부라리면서 소리를 지르는데 엄마는 섬찟했다. 무섭고 오싹했다. 아이는 엄마에게 달려들어 스마트폰을 다시 빼앗아갔다.

“왜 남의 물건을 말도 없이 가져가는 거야. 짜증나게!”

엄마는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말문이 막혔다. 적반하장이란 말이 이럴 때 쓰는 것이구나 싶었다.

“너 도대체 왜 그러는거니?”

엄마의 목소리는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다. 이 떨림이 화가 나서 그걸 견디느라 그러는 건지 무서워서 그러는 것인지, 감정이 치받치는 것은 분명한데 왜 그런 것인지 참 알 수 없었다.

“몰라! 학원 가면 될 거 아니야! 옷 갈아입게 나가!”

아이는 더 크게 소리를 지르고 엄마를 밖으로 내쫓고 쾅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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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착하고 귀엽기만 하던 아이가 확실히 변했다. 목소리의 볼륨이 확 커져서 쩌렁쩌렁하고, 한 번 얼굴을 인상을 쓰면 길거리에서 마주치던 성난 건달의 표정이 떠올라서 겁부터 덜컹 난다. <출처: gettyimages>



얼마 전부터 착하고 귀엽기만 하던 아이가 확실히 변했다. 목소리의 볼륨이 확 커져서 쩌렁쩌렁하고, 한 번 얼굴을 인상을 쓰면 길거리에서 마주치던 성난 건달의 표정이 떠올라서 겁부터 덜컹 난다. 화가 나면 잘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는데 흥분을 하면 참지 못해 방문을 쾅 닫다가 문이 망가질 것 같고, 어떨 때에는 주먹으로 벽을 쳤는지 주먹에 멍이 든 것을 본 적도 있다. 귀엽고 품 안에 폭 안기는 아이였던 얘가 같은 아이인가 싶었다. 더 나아가 무섭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도대체 이 아이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아이는 사실 정말 엄마를 위협하기 위해서 그렇게 소리를 지른 것이 아니다. 그냥 놀랐고 화가 났다. 자신은 평소 하던 대로 소리를 낸 것인데 마치 확성기에 갑자기 앰프가 좋은 것이 달리기라도 한 듯이, 쩌렁쩌렁 울려서 말을 한 본인도 놀라기 일쑤다. 창피하기도 하고 엄마가 또 혼을 낼까봐 무섭기도 해서 문을 닫고 옷을 갈아입으려는 것인데 이상하게도 문이 쾅 하고 세게 닫히면서 소리가 난다. 사실 이런 변화가 아이도 익숙하지는 않은 일이다. 또 어떨 때에는 욱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어떻게 주체를 하기가 어렵고 답답했다. 그저 ‘짜증난다’는 기분만 들뿐이다. 제발 그냥 건드리지 말고 가만히 뒀으면 좋겠다.



사춘기가 범인이다.



10대에 진입하면서 아이는 변화한다. 사춘기가 온다. 사춘기란 2차 성징이 발현하는 것이다. 남성적으로는 생식기에 털이 나고, 변성기가 오고, 수염이 난다. 여성은 초경을 시작하고 가슴이 커진다. 원초적인 동물적 관점에서 보면 성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으로 보면 생명체로서의 존재이유 중 가장 중요한 새끼를 낳는 번식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그런 변화만으로는 너무나 미흡하다. 그래서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또 그 누구도 그들을 어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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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경우 사춘기가 오면서 변성기를 겪게 되고 수염이 나는 2차 성징이 나타난다. <출처: Wikipedia>



현대사회로 진입하며 더욱이 사춘기의 변화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년보다 소녀의 사춘기 시작이 빠르다. 현재 소녀는 평균 10-11세에 초경을 시작하고 소년의 경우 1-2년 늦게 시작해서 남녀 공히 5-6년에 걸쳐 개인차를 두고 2차성징의 변화를 마무리한다. 19세기 초반부터 급격하게 사춘기 시작 연령이 빨라졌다. 서유럽의 통계를 보면 1840년에 노르웨이와 영국에서는 평균적인 사춘기 시작 연력이17세경이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들면서 당겨지기 시작해서 2006년에 덴마크에서는 9세 10개월정도에 2차 성징이 평균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평균 초경연령은 11.98세로 나타났다. 동시에 설문에 응한 어머니의 평균 초경 연령은 14.4세였다. 그만큼 점차적으로2차성징의 발현과 신체적으로 성인으로 진입하는 시기가 지난 200년사이에 약 5년정도 빨라졌다. 이런 변화가 생긴 이유 중에 영양상태가 좋아진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당사자뿐 아니라 유전적으로 다음 대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서서히 빨라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초등학교 4학년수준으로 사춘기의 시작은 빨라지는데 비해 뇌의 발달은 지난 2백년동안 그다지 빨라지지 않았다. 인간의 뇌의 20%를 차지하고 있고,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특성인 판단력, 사고력, 억제력, 상징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뇌의 앞부분인 전두엽이다. 뇌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발달도 더디고 가장 늦게 완성되는 부분이다.

십대초반에 몸 안에서는 남성호르몬이 왕성하게 나와서 불쑥불쑥 근육이 생기고, 충동적이 되며, 여성호르몬이 한 달 단위로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면서 감정도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한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흥분을 잘하고 공격적이고 충동적으로 만든다.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은 감정에 충만하게 하고, 감정조절이 잘 안되어 울컥하는 등 감정의 파도가 커지는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를 제어해줄 CPU와 같은 뇌의 전두엽은 여전히 발달 중이다. 빌딩은 크게 지어놓고 골조도 다 올라갔는데 그 안을 조정할 중앙시스템은 여전히 공사중인 셈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제이 기드 박사는 이 전두엽 피질의 성장이 사춘기 때까지 꾸준히 일어나고 이는 25세까지도 지속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전두엽의 기능에는 충동을 억제하고, 정확한 사실판단을 하고, 집중을 유지하고, 상황이 바뀌면 거기에 맞춰서 생각의 패턴을 바꿀 수 있는 유연성 등이 포함되어있다. 차의 기능으로 보자면 브레이크, 핸들링, 오토매틱 트랜스미션의 유연한 변화,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작동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사춘기의 신체적 변화는 엔진의 출력의 변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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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성징이 발현하는 사춘기의 시작시기는 빨라지는 반면 전두엽이 성숙하는 속도는 그만큼 빨라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현대사회의 십대 초반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자동차로 비유해 볼 때, 차체는 아직 경차 정도의 작은 크기에, 거기에 맞는 브레이크 시스템을 달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 차에 중형차의 큰 엔진이 본넷 안에 콱 하고 박혀버린 것이다. 그래서, 운전자인 십대 아이가 평소와 다름없이 엑셀러레이터를 살짝 밟아서 출발을 하려고 했는데, 차는 갑자기 팡 하고 최고급 스포츠카가 나가듯이 제로백을 6초만에 끊듯이 튀어 나가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싫어!”라고 평소같이 말을 했을 뿐인데 소리를 지른 것으로 들리는 것이 바로 이런 변화의 결과다. 문제는 엔진만 좋은 게 달렸을 뿐, 브레이크나 기타 컨트롤을 위한 시스템은 그 엔진출력을 잡을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튀어나가는 자동차를 제대로 조정하기도 어렵고, 한번 튀어 나가버린 차량을 쉽사리 세울 수도 없다. 급발진과 급제동을 반복하며 덜컹거리기만 하는 일이 반복된다.

그러니 타고 있는 사람도 정신이 없고 혼란스러우며, 밖에서 그 차를 보는 사람도 아슬아슬하고 겁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소개한 사례와 같은 일은 바로 이런 사춘기의 변화가 시차를 두고 일어나는 바람에 생기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엔진장착시기는 점점 빨라지는데, 도리어 도로교통을 위해 배워야 할 것은 점점 많아지고, 브레이크과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제대로 달리는 시기는 늦어진다면, 혼란스러운 시기는 상대적으로 길어지고 문제가 벌어질 위험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아이는 아직 자신의 능력이 어느 수준인지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한다. '내가 얼마나 할 수 있는가'를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메타인지능력이라고 한다. 단어 외우기 기억력 검사를 하기로 하고 성인과 십대에게 몇 개 정도를 정해진 시간 안에 맞출 수 있을지 미리 예측을 하도록 했다. 이때, 성인은 예상개수와 정답개수가 1개차이만 나는 경우가 56%로 반 정도였는데, 10대의 경우 20%에 불과했다. 즉, 청소년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하기 쉬운 시기다. 이 역시 아직 뇌의 발달이 더뎌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의 변화로 인해 일어난 일에 대해 과대평가를 해서 ‘이제 엄마가 내게 겁을 먹는구나. 내가 마음대로 해도 되겠다’라고 착각을 하고 집안의 폭군이 되는 십대로 돌변할 수도 있다. 또한 막무가내로 우기고 자기중심적으로 원하는 것만 얻기 위해 고집을 피우는 일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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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하기 쉬운 시기다. 또한 막무가내로 우기고 자기중심적으로 원하는 것만 얻기 위해 고집을 피우는 일도 벌어진다. <출처: gettyimges>



또 대뇌에서 쾌락이나 보상과 관련한 도파민의 수치가 절정에 다다르는 것도 사춘기 시절이다. 그래서 더 짜릿하고 감각적이고 신나는, 어떨 때에는 위험한 행동을 겁 없이 저지르고 그것에 의해 쾌감을 얻는 것에 탐닉하는 일도 이 시기에 벌어진다. 다른 나이 때보다 뇌가 더 많은 보상을 받기 때문에 위험한 행동에 몰입하고, 그걸 즐기고, 위험을 감지하고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



이때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먼저 이런 십대의 변화의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 아이는 폭군이 된 것이 아니다. 지금 자기들도 힘들고 당황해 하고 있다. 엑셀을 밟으면 너무 차가 튀어나가고, 브레이크를 밟아도 제대로 멈추지 않고 좌충우돌 하고 있다.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별 일 아닌 일에 눈물이 왈칵 나오고, 화가 나고 예민해지는데 그 감정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 수도 없고 싫을 뿐이다. 그래서 “도대체 왜 그래?”라는 질문에 “몰라, 짜증나!”라는 애매하고 불확실한 대답을 하게 된다. 그것은 아이가 부모에게 반항을 하려고, 또 숨기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불쾌한 느낌이 차 올라왔지만 아직 이것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또 감정의 수준을 실측할만한 능력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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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어본 베테랑 4번타자다. 투수석에서 어떤 공을 던질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겁먹고 피할 생각부터 하는 것보다 심호흡을 한 번하고 공을 끝까지 보는 것이 중요하다. <출처: gettyimages>



둘째, 아직 아이의 마음의 본질은 ‘아이’다. 부모는 그렇게 인식하고 아이를 무서워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도 사실은 자신이 무섭고, 겁이 나는 상황이다. 이럴 때 부모가 먼저 아이를 무서워하게 되면 아이는 자신의 현재를 과대평가하고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할 위험이 있다. 강속구를 던지지만 컨트롤을 잘 하지 못하는 신인 투수가 있다. 그 선수가 지금 타석에 서있는 베테랑 4번타자를 만났다. 누가 더 떨릴까? 부모는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어본 베테랑 4번타자다. 투수석에서 어떤 공을 던질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겁먹고 피할 생각부터 하는 것보다 ‘저쪽도 겁이 많이 날거야’라는 마음을 갖고 타석에 서야 한다. 심호흡을 한 번하고 공을 끝까지 보는 것이다.

셋째, 아직 십대 아이의 전두엽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한다. 판단력도, 억제력도 미흡하다. 이럴 때 부모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적절한 조언과 강하고 단호한 억제적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하고 이를 지켜나가는 부모로서의 권위를 지켜나가는 것이 십대의 질풍노도 시기에 후회할 만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넷째, 아이는 지금 자기 마음 안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고 좌충우돌하고 있다. 부모는 자칫 아이가 덩치도 커지고, 목소리도 커지면서 눈을 부라리면 대드니까 사회생활하면서 나의 생존을 위해 맞닥뜨려 싸워온 다른 어른과 동일시 할 위험이 있다. 즉, 정색을 하고 함께 같은 링 위에 올라가 어른들끼리 싸우듯 정색을 하기 쉽다. 풀파워를 내서는 안 된다. 아이의 발달과정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바로 부딪히지 말고 한 템포 쉬면서 그의 목소리와 태도의 공격성과 긴장을 한 두 수 이상 낮춰 평가한다. 아이는 곧 가라앉는다. 부모는 서서히 아이의 몸과 마음을 진정시키고, 현실적인 제언을 하며 옆에서 함께 가주면서 더욱 섬세하고 운전을 하도록 가이드를 해주는 것이다. 아이와 맞서 싸우고 이기고는 성취감과 승리의 쾌감을 느끼는 부모가 돼서는 안 된다. 아직 아이는 엄마와 아빠에게 의존하고 싶어하는 아이일 뿐이다. 덩치는 에반게리온과 같은 커다란 로봇이지만 그 안에 싱크가 되어 타고 있는 조종사는 십대의 연약한 소년 신지와 레이다.

이런 십대 사춘기의 변화가 앞당겨지고, 뇌의 발달은 늦어지는 것에 의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상황을 이해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아이의 ‘소리지르기’에 맞짱을 뜨고 눌러버리고 싶어지는 부모의 본능을 잘 다스리면서 아이가 새 엔진이 장착된 터보 스포츠카를 능숙하게 운전하는 드라이버가 되도록 돕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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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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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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