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십대와 부모의 시간 개념의 차이 - 몇 년 안 남았어, 금방이야. 정신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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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74회 작성일 16-02-0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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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업을 들을 땐 지겨워 죽겠는데, 게임을 할 땐 터보엔진이라도 단 것같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일까? <출처: gettyimages>


“너,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니? 몇 년 안 남았어. 시간은 후딱 간다. 그때 가서 울며불며 후회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

재용이에게 학원에 가기 전 친구들과 PC방에 들르겠다는 전화를 받은 엄마가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재용이는 ‘또 시작이군’ 하는 마음으로 휴대전화기를 귀에서 살짝 뗀 채 엄마가 하는 말을 듣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제 겨우 중3인데, 4년이나 남아 있는 대입을 왜 벌써부터 언급하느냔 말이다. 태양계 맨 끝의 해왕성, 명왕성보다도 더 멀리 있는 안드로메다급 얘기다.

“알았어. 한 시간만 있다가 바로 갈게”

재용은 친구들과 PC방으로 직행하고, 엄마는 속이 상한다. 중3이나 된 아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서다. 엄마에게 4년은 그야말로 눈 깜박할 짧은 시간이다. 지금부터 엉덩이에 땀띠가 나게 몰아쳐도 될까 말까 한데, 아이는 천하태평이다. 그러니 하기 싫은 잔소리를 하게 된다. 두 시간 후, 학원 수업 시간이 됐는데도 아이가 학원에 도착했다는 문자메시지가 오지 않는다. 엄마는 바로 전화를 한다. 한참이 지나서야 받은 아들은 여전히 PC방에 있는 것 같다. 그제야 시간을 확인한 것이다.

“엄마, 미안.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지 몰랐어. 바로 갈게요.”

재용은 그저 친구들과 게임을 한 판 했을 뿐, 정말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다. 한편으로는 조금 억울한 마음도 든다. 다른 친구들은 아직 남아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자기만 중간에 일어나서 강제로 로그아웃을 해야 하는 것이 아쉽다. 왜 수업을 들을 땐 지겨워 죽겠는데, 게임을 할 땐 터보엔진이라도 단 것같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일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시간 개념의 발달



부모와 십대 사이에는 시간의 인식과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 인해 많은 갈등이 발생한다. 아이는 먼 미래를 얘기하는 부모의 말이 가슴으로 와 닿지 않아 이해하기 힘들고, 부모는 하루하루가 아까운데도 멀뚱멀뚱 먼 산만 바라보는 아이를 보면 속이 탄다.

사실 시간이란 무척 추상적이고 인위적인 개념이다. 인간의 양쪽 눈 사이에는 빛을 느끼고 반응하는 신경절이 있는데, 이곳은 약 24시간 30분 주기로 움직이면서 우리의 생체리듬을 조절한다. 그렇지만 시간을 계산하고, 지금이 몇 시인지 구분하는 것은 인간이 정한 약속일 뿐이다. 자라면서 배우고 익혀 나가는 것이다. 시간 개념의 발달 과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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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영아기에는 시간 감각이 없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태어난 직후에는 매순간이 ‘영원’이다. <출처: gettyimages>


갓 태어난 영아기에는 시간 감각이 없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태어난 직후에는 매순간이 ‘영원’이다. 아기는 자라면서 아주 서서히 시간의 방향성을 깨닫는다. 1분, 하루, 일주일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그보다 한참이 지나야 가능하다. 시간 감각을 익히고, 시간을 분할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계획하고 기억하는 것은 나중에 배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18개월은 돼야 먼저와 나중과 같은 선후 관계를 이해한다. 아이가 스스로 경험한 사건을 기억할 수 있어야 전후 순서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시간 개념은 만 4세가 되어서야 잡힌다. 이 시기에는 아이에게 그림을 보여주면 침대에서 일어나는 그림, 치아를 닦는 그림, 일하는 그림, 밥을 먹는 그림, 잠자리에 드는 그림을 올바른 순서로 적절하게 배열할 수 있다. 시간 개념은 이렇게 서서히 자란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1분이란 시간이 어느 정도 되는지 어림짐작으로 깨닫는다. 그러니 아이들 입장에서 몇 분 전이나 몇 분 후를 기억하거나 기다리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아이가 줄넘기를 잘하는 것을 보고 언제 배웠냐고 물으면 “원래 잘해요”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어른들은 귀여운 거짓말을 한다고 웃는다. 사실 몇 달 전부터줄넘기 연습을 시작한 것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이에게는 과거를 회상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시간 개념 또한 없기 때문에 아이 입장에서는 그렇게 대답하게 된다. 차를 타고 가면서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냐고 물을 때 “10분 정도 더 가야 해”라고 하면 10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몇 번이나 “다 왔어요? 아직도 더 가야 해?”라고 되물어 부모를 짜증나게 하는 것도 이 시기다. 아이가 참을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10분이란 시간을 셈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대략 열세 살 정도인 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시간에 대해 겨우 파악할 수 있고 능숙하게 말할 수 있다. 또한 십대 정도는 되어야 뇌가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어 인생이라는 긴 시간의 연속선 안에서 자신의 현재 위치를 정할 수 있다. 죽음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도 이즈음부터 실제로 깨닫는다. 그러나 어른의 그것과는 달리 여전히 명확한 것은 아니다. 십대 중반이 된다 해도 여전히 몇 년 후의 미래는 막연하고, 멀고, 뭐가 뭔지 모를 어딘가일 뿐이다.

밀란 쿤데라의 [향수]에 이런 문장이 있다.


죽는 것, 죽기로 결심하는 것, 그것은 어른보다 십대에게 쉬운 일이다. 죽음은 청소년에게서 더 많은 미래를 빼앗는 것인데? 확실히 그렇지만 청소년에게 미래는 그가 진정으로 믿기 어려운,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이고 너무나 먼 것이다.

성인이 되면 시간은 마구 달리기 시작한다



이렇듯이 미래를 바라보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이고, 멀고, 추상적이며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십대들은 현재를 못 견뎌 하고 지루해하고 멍해지는, 시간 감각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자주 한다. 특히 2차 성징이 시작되면서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 뇌의 발달에 영향을 주면서 백질이 성숙할 때 미엘린이 신경다발을 감싸면서 뇌의 신호전달속도가 획기적으로 올라가면 정보가 폭주하고 전두엽이 발달하면서 감정과 연결된 기억이 늘어난다. 그러면서 기억할 일들이 많아지면 시간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흐른다고 여기기 쉽다. 많은 사건들을 처리하고 기억하고 저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성인이 되면 시간은 마구 달리기 시작한다. 금방 한 달이 지나고, 어느새 연말이고, 얼마 전에 만난 것 같은 친구인데 따져보니 3년 만에 만난 것을 확인하고 웃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점점 더 빨라진다고 느끼는 것을 슈테판 클라인은 [시간의 놀라운 발견]에서 기억의 기능과 관련지어 설명한다. 기억할 만한 사건이 적으면 적을수록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앨범을 떠올려보자. 아이가 태어나서 첫 돌까지는 한 권을 다 채울 만큼 사진을 많이 찍지만, 이후 앨범 한 권을 채우는 기간은 점점 길어진다. 새로운 것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서른 살이 넘고 나면 자기 아이와 함께 찍는 사진 말고는 자기만의 앨범을 만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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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부모의 시간 인식 차이


첫 키스, 첫사랑, 첫 시험, 첫 월급으로 산 앨범… 무엇이든 새롭고 오랫동안 기억할 일들이다. 그에 반해, 어른이 되어 겪는 웬만한 일은 다 해본 것, 다 가본 곳, 다 경험해본 일들이니 뇌는 새로 기억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다.인생을 회상할 때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시간을 측정하는 좌표가 된다. 십대까지는 촘촘하던 기억의 좌표들이 어른이 된 다음에는 느슨하게 펼쳐지게 되어 상대적으로 시간이 빨리 간다고 인식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축지법을 쓰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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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 71세인 실험 대상자들이 단서가 되는 단어들을 듣고 생각해낸 기억의 양을 나타낸 히스토그램. 직전의 일들은 잘 기억하지만, 기억해내는 비율이 급격히 줄어든다. 하지만 15세~25세 사이의 경험을 기억하는 양은 늘어나는데, 이를 회상혹이라고 한다. <출처: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259페이지>


<표1>에서 보듯이, 어른이 된 후에는 아주 최근의 일을 제외하고는 기억할 만한 것들이 별로 없다. 그래서 시간이 상대적으로 빨리 흐른다고 여겨진다. 그에 반해, 15세~25세 사이에 경험한 많은 일들은 무려 70세가 되어서도 기억한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니 이 시기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여기기 쉽다. 오랫동안 기억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시기의 뇌는 새로운 사건들을 기억하고 저장하느라 과부하에 걸려 있는 상태다. 그에 반해 미래는 너무나 멀고 불확실해서 어떤 형태인지 와 닿지 않는다.

이렇듯 연령대에 따른 시간 감각의 차이로 인해, 십대 아이와 부모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다. 십대에게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고, 지루하고, 미래 또한 불확실해서 몇 년 후라는 것은 잘 와 닿지 않는다. 그러니 내일이나 한 달 후나 5년 후나 그게 그것으로 보이고 들린다. 그에 반해 부모는 몇 달은 물론이고 몇 년도 후딱 지나가버린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몇 년 뒤를 대비하는 것은 오늘부터 시작해도 이미 늦었다는 불안감이 들기 쉽다. 부모나 아이 모두 시간을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맞지만, 그 잣대를 상대에게 적용하려 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십대 아이들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들쑥날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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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에는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시간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달라진다. <출처: gettyimages>


한편 청소년기에는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시간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달라진다.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몰입할 때의 시간 인식과 독서를 할 때의 시간 인식이 서로 다른데, 게임을 할 때는 자기가 할애한 시간을 실제보다 짧게 인식하는 경향이 관찰된다. 한 시간 동안 게임을 했어도, 실제로는 40분 동안 한 것으로 인식하고, 독서는 30분을 하고도 한 시간은 한 것으로 인식한다. 앞서 재용이가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동안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버린 것처럼 느낀 것도 같은 경우다.

이와 같이 십대 아이들은 시간의 흐름이 들쑥날쑥 할 뿐 아니라, 자신이 신나게 몰입할 수 있는 일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시간이 너무나 지루하고 느리게 흐른다고 인식하면서 살고 있다. 게다가 어른들이 말하는 ‘시간이 없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참고 인내하라’는 말이 제대로 와 닿지 않는다. 겁이 나거나 불안하다고 하는 아이들도 사실은 미래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혼이 날까봐,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 할까봐 두려운 것이 더 크다. 이에 반해 부모는 아이가 쑥쑥 자라는 것이 새삼스럽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장아장 걸어 다니고 우유를 달라고 하던 아이가 어느새 십대가 되어 어른의 세계로 진입할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니 마음이 급하다. 십대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게 되는 큰 이유는 바로 이렇듯 부모와 십대 자녀가 시간을 통해 현재를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고,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뚜렷하게 구분되기 때문이다.

이런 둘 사이의 인식의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아이가 신나게 몰입하는 것을 할 때는 지루해하지 않고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므로 그럴 만한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첫 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부모가 아닌 아이가 되어야 한다.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볼모로 아이를 다그치기보다 훨씬 가까운 미래, 예를 들어 이번 달, 이번 주 정도를 적당한 미래로 삼는다. 그리고 미래보다는 현실에 집중하고 하루하루에서 의미를 찾고 작은 성취들을 해나가도록 돕는 것이 시간을 잘 관리하는 길이다. 이는 십대 아이보다 부모에게 더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말하게 되는 이유는 갈수록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톱니바퀴 같은 생활에 익숙해져서 시간 감각을 죽이기 때문이다.만약 매일매일 의식적으로 깨달음을 얻고 경험을 쌓고자 한다면 시간이 질주한다는 느낌을 조금이라도 약하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부모가 자기 삶에 만족하게 되면,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은 비례해서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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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내 페이스대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다. <출처: gettyimages>


하지만 십대 아이들에게 아직 시간 개념이 명확하지 않고 자기 절제를 못하는 면이 있음은 분명하기에, 문제가 될 소지는 있다. 또한 십대에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등의 변화가 수반되어 아침마다 실랑이를 벌이기 쉽다. 이 경우 부모가 적극적으로 현실적인 시간 관리 방법을 알려주고 실천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십대에는 아직 혼자 뭔가를 계획하고, 조절하고, 실천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시간 관리 계획을 부모와 함께 실천하면서 시간 개념을 보다 정교하게 습득한다면 잘 관리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내 페이스대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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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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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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