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너무 높아져버린 평균과 보통의 기준 - 보통이 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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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48회 작성일 16-02-0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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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십대들이 나름 열심히 노력하고 좋은 결과도 곧잘 내지만, 막상 결과물을 줄 세워보면 거기서 만족감이나 뿌듯함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출처: gettyimages>


이번 시험을 정말 잘 보고 싶었던 옥경이. 각오를 단단히 하고 평소보다 훨씬 일찍 공부를 시작했다. 엄마에게 부탁해 주말에는 학원 특강도 들었다. 다른 친구들도 열심히 하는 것 같았지만 이번에는 자신 있었다. 다행히 가채점을 해보니 점수가 꽤 올라가 있었다. 그런데 성적표를 받아보니 평균 점수는 훨씬 올라갔지만 전체 석차는 도리어 떨어진 것이 아닌가! 심지어 85점을 받았는데도 전체 석차가 중간 정도밖에 안 되는 과목도 있었다. 지난번 시험에서 평균 78점을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시험은 90점이 훌쩍 넘었으니 충분히 잘 본 것인데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힘이 쭉 빠지면서 공부는 해서 뭐하나 싶은 실망감만 가득했다.

옥경이의 사례는 요즘 십대들의 삶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십대들이 나름 열심히 노력하고 좋은 결과도 곧잘 내지만, 막상 결과물을 줄 세워보면 거기서 만족감이나 뿌듯함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또 조금만 뒤처져도 영원히 뒤쳐질까봐 겁을 내고, 아무리 아등바등해도 지금 자리를 겨우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보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얼만큼 하면 평균인 것인가




사실 이것은 십대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찾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50년 전에 비하면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해졌지만 삶의 만족도는 높아진 것 같지 않다. ‘보통과 평균의 기준점’이 슬금슬금 올라가다 보니 이제는 웬만큼 해서는 ‘이 정도면 됐다’라고 만족할 만한 수준의 성취를 맛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성적만 해도 그렇다. 2012년 서울시 중학교의 영어 성적 분포를 보자(출처: 교육의 정석1, 유진투자증권). 지역별로 차이 있지만 A등급(90점)을 받은 비율이 대원국제중학교는 무려 87.1%이고, 일반 중학교인 진선여중이 58%, 인창중 54%, 전농중이 53%였다. 즉, 학급 인원의 반 이상이 A등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85점을 받으면 중하위권이 되는 황당한 결과를 얻게 된다. 상식적으로 보면 A등급은 10~20% 정도이고, B나 C등급이 60% 정도를 차지하는 항아리형으로 나타나는 것이 이상적인 성적 분포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위에서 언급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시험에서 최소한 90점은 받아야 ‘휴, 겨우 중간은 했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안심할 수 없다. 80점을 받은 학생 또한 나름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열등감과 좌절감을 느낄 것이고, 공부에 대한 의욕이나 성취감을 갖기가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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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보통과 평균에 대한 기준점’이 슬금슬금 올라가다 보니 이제는 웬만큼 해서는 ‘이 정도면 됐다’라고 만족할 만한 수준의 성취를 맛보기가 어려워졌다. <출처: gettyimages>


이는 어른들의 삶의 수준에 대한 자각에서도 드러난다. 2013년 초에 한국리서치에서 남녀 1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 달 가구 소득이 400만 원 정도인 사람은 자신이 경제적으로 ‘중하층’에 속한다고 대답했다. 자신이 중중층, 즉 딱 중간이라고 답한 사람의 가구 소득은 530만 원 정도였다. 하지만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중하층(하위 20∼40%)의 월평균 가구 소득은 271만 원, 중중층(하위 40∼60%)의 소득은 370만 원이었다. 사실은 중상층이면서도 자신이 ‘중하층’이라 생각하고, 또 ‘이 정도는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는 기준을 높게 잡고 있으니 ‘평균’ 내지는 ‘보통’을 구현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일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에 쉽게 발생한다. 문제는 그 비교가 정확하거나 객관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주변을 비교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내적동기만으로 움직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나와 사정이 비슷한 주변을 둘러보면서 그 안에서 내 위치를 확인하고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기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속도를 더 내려 하고, 내가 앞서가고 있으면 잠시 쉬어가도 될 것 같아 페이스를 늦추고 긴장을 푼다. 그런데 실제로는 긴장을 푸는 경우보다 나보다 앞서 가는 옆 사람을 재빨리 따라 가면서 더 열심히 노력하려 하는 경우가 더 잦고, 한 번 올린 기준점은 쉽사리 내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마음속 ‘보통의 기준’은 어느새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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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헬스클럽 러닝머신 위의 상황과 비슷하다. 야금야금 속도를 올리다가 모두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되어야 ‘겨우 남들 하는 만큼’이라 할 만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출처: corbis>


헬스클럽에서 트레드밀(러닝머신)을 타는 것을 상상해보자. 처음에는 속도를 5 정도로 맞추고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그런데 옆 사람이 속도를 높이면 나도 같이 속도를 높이고, 그 사람이 뛰기 시작하면 나도 뛰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10~12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옆 사람의 속도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아니, 더 빨리 달려보려다 자신도 모르게 무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을 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그 속도로 달린다면? 더욱이 겉으로는 다들 아무렇지 않게 달리고 있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대체 누가 이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 거야? 창피해서 속도를 못 늦추겠네’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체면 때문에, 혹은 뒤처지기 싫어서 뛰고 있다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헬스클럽 러닝머신 위의 상황과 비슷하다. 야금야금 속도를 올리다가 모두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되어야 ‘겨우 남들 하는 만큼’이라 할 만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 우리 이제 그만 천천히 합시다”라고 누구 하나 용기 있게 말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비극이다.


‘보통 수준’이 보통 아닌 수준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




최근 한 신문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강남과 목동의 영어 학원에 다니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의 영어 단어 숙제를 같은 나이의 영국 학생에게 물어보았다. 그 결과 영어를 모국어로 쓰고, 자기 나이에 비해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는 영국 학생들의 정답률이 생각보다 낮았다. 초등학교 5학년은 40개 중 7개를, 중학교 2학년생은 40개 중 15개를 모른다고 표시한 것이다. 강남의 영어 독서 클럽에서 배우는 단어를 물어보니 이번에는 30개 중 아는 것이 고작 7개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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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 아이들에게도 부담스러운 학습 수준을 ‘기준’으로 세워놓고 ‘나는 보통 이하’라고 여기며 열등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 우리의 비극적인 교육 현실이다. <출처: corbis>


이에 대해 어도선 고려대 영어교육학과 교수는 “보통 영미권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알게 되는 단어의 수는 1만 2천~1만 3천 개 정도”라며 “한국에서 토플을 준비하는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학원에서 배우는 2만 2천 단어는 현지의 고1 수준을 넘어선다”고 지적했다. 위에서 예로 든 중산층의 기준과 마찬가지로, 영미권 아이들에게도 부담스러운 학습 수준을 ‘기준’으로 세워놓고 ‘나는 보통 이하’라고 여기며 열등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 우리의 비극적인 교육 현실이다.

삶의 수준이나 지적 능력, 성취도는 일반적으로 문명의 발달과 함께 상승한다. 지능도 그렇다. 1950년 이후 현재까지 미국 아동의 IQ 지수는 10년에 3점씩 꾸준히 상승해왔는데, 이것을 플린 효과라 한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평균 수준이라 할 수 있는 보통의 기준이 상향평준화되면 우리 모두의 삶이나 만족도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런 문제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최근 몇 년간 많이 팔린 유모차의 평균 가격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처음엔 소수의 사람들만 수입 명품 유모차를 사용하더니, 어느새 시내 곳곳에서 고가의 수입 브랜드 유모차가 작고 아담한 유모차보다 훨씬 많이 보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대도시에서는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값비싼 명품 유모차가 어느새 평균과 보통이 되어버린 것이다.


너무 튀지도 너무 뒤쳐지지도 않는 딱 중간, 그게 좋아




우리는 왜 이렇게 평균과 보통 수준에 진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일까? 여기에는 동양인의 보편적 심리가 상당한 원인을 제공한다. 서양인과 동양인을 상대로 한 어느 연구에서, 연구진이 실험 참가자들을 임의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쪽 그룹에는 테스트 결과가 평균보다 좋다고 언급했고, 다른 그룹에는 평균보다 낮다고 언급했다. 이때 동양인은 자신이 평균보다 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더 이상 열심히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나서는 안 풀어도 된다고 한 여분의 문제까지 열심히 풀었다. 남들만큼 못했다는 것이 큰 자극을 준 것이다. 그런데 서양인은 반대였다. 잘했다는 칭찬을 들을 때 더 열심히 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이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인은 평균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것이 행동의 주요 동기다. 내가 설정한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 평균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더 강력한 동기가 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어른들이 흔히 하는 조언 중에도 “너무 튀지도, 너무 뒤처지지도 마라. 딱 중간만 해라. 그래야 안전하다”라는 말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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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20년 후를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영어 시험에서 100점을 받는 것이 지금 당장은 좋은 성취일 수 있다. 하지만 20년 후에도 영어 능력이 중요할까? <출처: corbis>


평균을 추구하는 이런 기본적 습성은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전체 집단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 평균을 추구하며 집단 안에 머무르는 것은 당장의 생존가능성도 높여준다. 하지만 미래를 대비할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집단의 구성원이 모두 평균을 추구한다면 균질 집단으로 순도를 높일 수는 있지만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모두가 같은 기능만 갖추고 있다는 것은 반대로 위험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평균을 지향하는 것은 ‘안전하다’는 느낌만 줄 뿐이다. 전체 집단의 관점에서 볼 때 다양한 능력을 가능한 한 많이 갖추는 것은 그냥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집단이 미래에 생존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된다. 높은 수준의 평균을 유지하는 것은 현재를 위해서는 좋을지 모르나,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할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보통 혹은 평균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서 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너무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하고 그로 인해 다양성을 추구할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전면적으로 전략을 수정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더 나은 태도다.

지금 당장 20년 후를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영어 시험에서 100점을 받는 것이 지금 당장은 좋은 성취일 수 있다. 하지만 20년 후에도 영어 능력이 중요할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니 경쟁에서 이기는 것, 중간이라도 유지하면서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이유 없는 불안, 쓸데없는 좌절감과 우울함,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혼자 동떨어진 외톨이가 되어 따돌림의 대상이 되거나, 혹은 낙오자로 인식될 수도 있으니까.


평균이 아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는 삶




지금이라도 비현실적인 평균에 도달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 부으면서 남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사는 길을 지향하기보다, 남들과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가 되어도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나름의 성공을 거두고 자기 삶에 만족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5천만 국민이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국영수에서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뭔가를 성취했다고 인식하고 안심하는 그런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의도적으로라도 그런 식의 삶을 인정하고 우대하고 칭찬하면서 롤모델로 삼았으면 한다. 이것이 ‘보통이 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 사회’가 바뀌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내 기준을 만들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내 기준에 맞게 보통과 평균을 정하고 내 페이스를 유지하는 능력을 갖추려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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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집단에서 벗어난 몇 안 되는 기형적 괴짜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의 방식의 하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출처: gettyimages>


또한, 전혀 새로운 기준점을 가지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등장이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그들을 집단에서 벗어난 몇 안 되는 기형적 괴짜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에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경쟁력 없는 루저가 가는 길이라고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좋아서 선택한 길이라고 응원해줄 수 있는 여유로운 눈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런 식의 경쟁은 승자와 패자 모두 망할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교육 혹은 양육과 관련된 가치들의 평균과 보통의 기준을 올려서 이득을 보는 집단은 사교육 종사자들뿐이다. 누구나 이것이 ‘미친 게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이제 제발 멈춥시다”라고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대학 간판 하나를 위해 이렇게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얼마나 효율이 떨어지는 일인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래도 불안을 이기지 못한다. 이럴 때 “이건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 돌파구는 열린다. 아이들이 낙오자가 될까봐 겁이 나는 것은 부모의 당연한 불안이지만, 반대로 아이들을 그 무리에서 해방시킬 때 아이와 부모의 숨통이 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날수록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지금과 같이 ‘비현실적인 평균을 유지하기 위해 그 누구도 만족하지 못할 무한 노력을 반복하며 다 함께 침몰해가는 시스템’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 위기가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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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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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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