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잠 잘 시간이 모자란 십대 - 4당 5락? 충분히 자야 공부도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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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66회 작성일 16-02-0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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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의 수면 시간은 세계적으로 비교해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0교시가 일상화되어 있고, 학원은 밤 10시에 끝나지만 숙제를 하다 보면 12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다. <출처: corbis>


“넌 도대체 몇 시까지 자는 거니?”

“엄마, 10분만 더 자고.”

“내일 시험이라고 밤 샌다면서, 빨리 일어나.”

“그냥 내일 새벽에 일어나서 할게요.”

“너 만날 말만 그렇게 해놓고 아침까지 처잔 게 벌써 몇 번이니? 4당 5락 몰라?”

“몰라”

“엄마 때부터, 아니 할아버지 때부터 있었던 말이야. 4시간 자면 대학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린 대체 누가 만든 거야?”

“허벅지를 송곳으로 찌르면서 공부해서 서울대 들어갔다는 말도 못 들어봤어? 그렇게 잘 거 다 자면서 언제 공부해서 대학 갈래?”

영민이네 집에서 매일 벌어지는 풍경이다. 뭐가 되려고 저렇게 잠이 많은지, 잠퉁이 같은 아이 때문에 엄마는 속이 상한다. 아이는 아이대로 억울하다. 야간자율학습까지 하고 들어오니 너무 졸려서 잠깐 눈을 붙이고 시험 공부를 하려던 것뿐인데, 어쩌란 말인가. 찬물로 세수를 해도 그때뿐, 눈꺼풀이 원래 이렇게 무거운 것인지 예전에는 미처 정말 몰랐다. 의지박약이 된 것 같아 화가 나고 짜증만 늘 뿐,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 정말 조금만 자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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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렇게 잠을 줄여서 한 줄을 더 읽고, 한 문제를 더 푼다고 그게 진짜 도움이 될까? <출처: gettyimages>


지금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의 수면 시간은 세계적으로 비교해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0교시가 일상화되어 있고, 학원은 밤 10시에 끝나지만 숙제를 하다 보면 12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중고등학생 75,6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주중 평균 수면 시간이 일반계 고등학생은 5.5시간, 중학생 7.1시간으로 미국 국립수면재단이 권고한 청소년 수면 시간 8.5~9.25시간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평균값이라는 것이다. 주중 수면 시간이 5시간 미만인 일반계 고등학생의 비율은 27.2퍼센트였고, 8시간 이상 충분히 잔다는 학생은 2.3퍼센트에 그쳤다. 이러다 보니 하루에 5시간을 채 못 자는 중학생이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비율은 61.8퍼센트로 8시간 이상 자는 중학생의 32.4퍼센트보다 훨씬 높았다.

단언컨대 4당 5락은 무한 경쟁에 시달리는 십대와 부모에게 잠이라도 줄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만들어낸 괴담에 불과하다. ‘내가 자는 동안 내 경쟁자는 한 줄을 더 읽는다’는 압박감을 심어주는 것. 그런데 정말 이렇게 잠을 줄여서 한 줄을 더 읽고, 한 문제를 더 푼다고 그게 진짜 도움이 될까?


자는 동안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



잠을 푹 자는 것은 정말 인생의 낭비일까? 잠을 자는 동안 에너지가 충전되고, 지친 몸이 회복된다. 잠은 다음 날의 활동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잠의 효용성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수면의 구조에 대해 알아야 한다. 잠은 뇌파의 변화에 따라 1-4단계로, 눈동자가 빨리 움직이는 렘(REM) 수면과 움직임이 없는 비렘(non-REM) 수면으로 나눌 수 있다. 느린 파형이 적게 나오는 1-2단계는 얕은 잠으로, 느린 뇌파가 많이 나오는 3-4단계는 깊은 잠으로 구분하는데, 얕은 잠과 깊은 잠은 두 시간 간격으로 반복되고 중간의 렘 수면 단계에서 꿈을 많이 꾸게 된다. 전체적인 수면 구조를 보면 처음 잠을 자기 시작할 때 비렘 수면인 2단계 수면과 서파 수면이 많고, 후반부가 되면서 렘수면의 비율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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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필요한 적절한 수면 시간에는 개인차가 크다. <출처: gettyimages>


한편 수면 의학자들은 하나같이 수면은 양보다 질이라며, 수면에도 효율이 중요하다고 한다. 수면 효율은 불을 끄고 누운 시간 중 수면 뇌파가 나오는 비율을 의미하는데, 정상인은 90~95퍼센트이지만 불면증 환자는 80퍼센트 이하를 보인다. 즉, 10시간을 잔다면 정상인은 9시간 정도를 푹 잔다고 할 수 있지만 불면증 환자는 푹 자는 시간이 8시간 이하라는 것이다. 나폴레옹은 4시간만 자도 잘 잤다고 했지만, 사람에게 필요한 적절한 수면 시간에는 개인차가 크다. 어떤 사람은 적게 자도 충분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8시간으로도 부족할 수 있다. 결국 적절한 수면 시간이란 자고 일어났을 때 피로가 풀린 것처럼 상쾌하고 평온한 기분이 드는 정도이고, 자는 동안 있었던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수면의 구조를 이해하고, 잠이 피로 회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임을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잠이 공부, 즉 학습과 기억에도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잠을 잘 자야 기억도 잘한다.



기억을 나누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역사나 사회적 사실을 잘 기억하는 서술적 기억과, 자전거를 타거나 길을 찾는 것과 같이 말보다 몸으로 익히는 절차적 기억으로 나눌 수 있다. 이때 절차적 기억이 렘 수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신생아에게서 렘 수면 상태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50퍼센트나 된다는 점을 볼 때, 렘 수면은 특히 두뇌 발달과 관련된다고 추정한다. 왜냐하면 렘 수면 시기에 인체는 모든 근력이 다 약해져 있지만 두뇌만큼은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활달하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즉, 렘 수면 단계에는 신체 기능에 쓰는 에너지를 최소화하면서 뇌가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스미스라는 학자가 1991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험기간 전후에 수면 패턴을 측정하는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시험 기간에는 평소에 비해 렘수면의 비율이 증가했음을 관찰했다. 즉, 렘수면이 늘어난다는 것은 뇌가 배운 것을 학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학자는 쥐에게 낮에 미로 찾기 훈련을 시키면서 뇌파를 찍었는데, 쥐가 자는 동안 미로를 찾을 때처럼 뇌파 패턴이 활성화되는 것을 발견했다. 즉, 쥐는 자면서 학습을 했던 것이다.

데이브와 마골리아시라는 학자는 금화조라는 새가 노래를 배우는 것과 잠의 상관 관계를 연구해 2000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어린 수컷 금화조는 어른 금화조로부터 구애의 노래를 배운다. 그런데 밤에 잠을 잘 때의 뇌파를 관찰해보니 낮에 노래를 따라 부를 때와 똑같은 뇌파가 관찰되었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낮에는 기본 패턴만 배우고, 자면서 몸이 쉬는 동안에는 뇌가 잡다한 곳에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니 낮에 배운 것을 복습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그만큼 렘 수면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잠을 적게 자면 렘 수면의 양이 줄어들게 되고, 전날 배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가 어려워진다. 특히 단순 암기보다 악기 배우기, 체육 활동이나 문제해결과 같은 절차 기억이 중요한 과제에서 렘수면의 부족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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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단순 암기보다 악기 배우기, 체육 활동이나 문제해결과 같은 절차 기억이 중요한 과제에서 렘수면의 부족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출처: corbis>


단순 암기는 깊은 잠이라 할 수 있는 서파 수면이나 2단계 수면의 수면 방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Peigneux 등의 학자는 피실험자들에게 길 찾기 게임을 시킨 다음, 피험자들이 자는 동안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뇌혈류량이 서파 수면 중에 증가하는 것을 관찰했고, 뇌혈류량의 증가가 다음 날 길 찾기 속도가 빨라지는 것과 정비례한다는 사실을 2004년〈뉴런〉에 발표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2단계 수면에서 특징적으로 발견되는 수면 방추의 양과 단순기억이 실험의 점수와 비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학자들은 이런 일련의 연구들을 통해, 잠을 잘 자야 대뇌 피질에서 초기 기억들이 강화되어 자기 것으로 저장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서파 수면과 수면 방추의 활동으로 독립적으로 저장되어 있던 대뇌 피질의 정보들이 서로 인연을 맺으면서 연결되어 강화된다. 그리고 해마에서는 전날 들어온 것들을 잘 정리하고 분류해서 대뇌 피질로 전달하고 난 다음, 해마에 남아있는 것들은 비운다. 그래야 다음 날 새로운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왜 뇌는 우리가 자는 동안 이런 복잡한 일들을 하는 것일까?



잠을 자지 않으면, 자지 않기 위해서 각성 상태를 유지하는 뇌줄기와 시상을 지속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그러니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에는 에너지가 몰리지 않아서 잠을 못 자면 다음 날 단순한 기억 능력도 저하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전날 배운 것들을 하나로 엮어서 진짜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각각 떠다니는 정보와 단편적 지식들이 자는 동안 대뇌 피질의 활성화를 통해 서로 의미 있는 내용들로 정제되고 강화되어,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로 재가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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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려 죽겠는데도 억지로 깨어 있는 것은 실제로 뇌의 입장에서는 깨어 있되 깨어 있는 게 아닌 것이다.<출처: corbis>


이런 중요한 일이 우리가 자는 동안 일어난다. 그런데, 무작정 깨어 있기만 한다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에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바람에 정작 이 시간에 자면서 해야 할 많은 중요한 일들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게 된다. 즉, 졸려 죽겠는데도 억지로 깨어 있는 것은 실제로 뇌의 입장에서는 깨어 있되 깨어 있는 게 아닌 것이다.

뇌는 깨어 있는 동안에는 각성 상태를 유지하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신경 쓰고 반응하고, 판단하고, 몸을 움직이느라 정신이 없어서, 새롭게 주입된 정보를 심화하고, 분류하고, 정리하고, 이전의 기억들과 연결해서 내 것으로 만들 여유가 없다.

우리의 뇌를 헌책방에 비유해보자. 헌책을 사서 잘 분류한 다음 적정한 위치에 꽂아두어야, 책을 사러 온 사람이 빨리, 정확하게 필요한 책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책을 사서 분류하지 않고 계속 쌓아놓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서점은 자기가 어떤 책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냥 사들이기만 하고, 책을 사러 온 사람도 어디서 뭘 찾아야 할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24시간 영업을 하지 않고 밤이 되면 서점 문을 닫은 다음, 전날 사들인 책을 적절히 분류하고 정리해서 보기 좋게 진열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때도 그냥 분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낮 동안에는 기존의 방식이나 고정관념으로만 보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느슨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전날까지만 해도 답이 보이지 않던 문제가, 푹 자고 나서 다음 날 다시 생각해보면 의외로 쉽게 해결되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만큼 잠을 잘 자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고, 학습과 기억의 관점에서 볼 때도 절대 낭비의 시간이 아니다. 자는 시간은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라, 뇌가 열심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시간인 것이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자는 것이 좋을까?



물론 그렇다고 십대들이 매일같이 잠을 푹 잘 수는 없다. 물론 성취감이 높은 사람은 잠이 조금 부족해도 그것을 학습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구라도 절대적인 수면 시간이 부족해지면 고도의 집중력과 그동안 배운 것을 하나로 엮어야 하는 고차원적 학습 능력이 요구되는 시기에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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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힘든 시기라고 해도 최소한 4시간은 연속 수면을 취하는 것이 좋다. <출처: corbis>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잠의 마지노선은 4시간 정도로 알려져 있다. 뇌가 휴식을 하고, 뇌가 담당하는 여러 기능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다. 그리고 1시간씩 끊어서 자기보다 연속해서 자는 것이 좋다. 아무리 힘든 시기라고 해도 최소한 4시간은 연속 수면을 취하는 것이 좋다. 생리적으로는 밤 12시부터 7시 사이가 가장 좋은 수면 시간으로 권장되는데, 일반적으로 인간의 뇌는 깨어난 후 4시간이 지나면 최고의 집중력이 발휘되므로 시험 시간에 맞춘다면 늦어도 두 시간은 확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시험이 9시인데, 새벽 4시까지 공부하고 4시간을 자고 8시에 일어나서 시험을 보러 간다면 아직 머리가 맑지 않아 최고의 실력 발휘가 안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낮에 15분 이내로 짧은 낮잠을 자는 것은 긴장을 풀고 피로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 이래도 4당 5락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잠은 반드시 잘 자야 한다. 잠은 신체 발육뿐 아니라 학습과 기억에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무조건 많이 잔다고 죄책감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 잘 자는 동안 나를 위해 이렇게 중요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아무리 바빠도 최소한의 수면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자리에 누웠다면 열심히 잘 자려고 노력해야 한다. ‘잠이 보약’이라는 옛말이 뇌의 관점에서 보면 허튼 소리가 아님을, 과학이 입증하고 있다. 잘 자야 공부도 잘한다. 절대적으로 수면 시간이 부족한 우리의 십대에게 잠을 잘 권리, 즉 수면권을 보장하는 것은 정신건강뿐 아니라 학습능력 향상에도 중요한 일이다. 이제라도 아이들에게 빼앗긴 잠을 돌려주자!

 


참고문헌

Smith C, Lapp L. Increases in number or REMS and REM density in humans following an intensive learning period. Sleep. 1991; 14: 325-330

Dave AS, Margoliash D. Song replay during sleep and computational rules for vocal learning. Science. 2000; 290: 812-816

Peigneux P, Laureys S, Fuchs S, et al. Are spatial memories strengthened in the human hippocampus during slow wave sleep? Neuron. 2004; 44: 53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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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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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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