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산만함과 ADHD - 지켜볼 것인가, 치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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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01회 작성일 16-02-0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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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산만하게 느껴진다. ADHD를 의심해봐야 하는 것일까? <출처: corbis>



한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있었다.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계속 돌아다녀서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여자아이에게 여러 번 지적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붙잡고 가르쳐 봐도 집중은 잠깐뿐, 옆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 쉽게 고개를 돌리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여러 번 아이의 어머니를 불러 주의를 주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결국 엄마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상담을 끝낸 의사는 아이에게 다가와 “얘야, 참을성이 참 많구나. 그런데 조금만 더 참을 수 있겠니? 엄마와 잠깐만 얘기하고 올게”라고 하며 라디오를 켜고 상담실을 나갔다.

복도로 나간 의사는 어머니와 함께 창문으로 아이의 행동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아이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이는 병이 있는 게 아닙니다. 춤에 소질이 있으니 무용학교에 보내면 어떨까요?” 의사의 조언에 어머니는 동의했다.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런던의 로열 발레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1926년에 태어나 세계적 무용수이자 안무가가 된 질리언 린(Gillian Lynne)의 실화다.

로열발레컴퍼니의 일원이었고, 은퇴한 후에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캣츠’, ‘오페라의 유령’ 등의 안무가로 활동했다.

만일 질리언 린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로 진단했다면? 1920년대에는 별다른 치료제도 없었기에 아마도 특수학급으로 옮겨지고 학습부진아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치료가 되지 않는다면 아이는 문제아이자 학습부진아이며 학급의 골칫덩어리로 자라나, 자존감이 매우 낮아졌을 것이다.

만일 치료가 되었거나 지금처럼 약을 먹을 수 있었다면 집중력이 향상되어 공부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질리언 린은 평범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고, 우리는 천재적 무용가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의 능력보다 더 빨리 변화는 사회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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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 적응하고 목표를 성취를 하는데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 것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능력이다.
<출처: gettyimages>



정신의학에서 이렇게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문제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들어 ADHD가 늘어나고, 특히 문명이 발달한 국가일수록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사회문화적 요소가 질환을 진단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13년 10월 한 국회의원의 보고에 따르면, 전년도에 ADHD 치료약물 사용량이 중고생 연령대에서 약 22퍼센트 늘었다고 한다.

현대사회에 적응하고 목표를 성취를 하는데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 것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능력이다.

특히 기억과 학습 활동 시 주변의 방해가 있어도 깊고 오래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주변의 다른 자극을 배제하고 원하는 것에만 집중을 유지하는 선택적 주의력과 주의를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해내는 지속적 주의력이 모두 필요하다.

이 집중력은 전두엽을 중심으로 서서히 발달하며, 특히 집중력의 유지는 뇌의 전 영역이 고루 활성화 되어야 한다.

우리 뇌의 20%를 차지하는 전두엽은 특히 발달이 상대적으로 늦은 영역이다. 인간의 뇌는 오랜 기간 서서히 진화해 왔다.

수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유전자는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변이하여 그 시기에 가장 필요한 요인들을 발현했고, 그 능력을 많이 가진 객체가 더 많은 자손을 후대에 남길 수 있도록 발달했다.

그런데 지난 100여 년간의 변화는 이전과 달리 지나치게 빨랐다. 겨우 두세 세대가 지났을 뿐인데, 같은 나이의 인간에게 요구되는 시간당 학습량이 배가 되었고 기억 속도도 빨라졌다.

여기에 평균적 뇌가 적응할 수 없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많은 이들이 ‘환경 적응에 실패한 ADHD’라고 진단을 받고 질환의 범주 안에 놓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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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영어교육, 일류대학에 대한 강박으로 초등학교 때 고등학교 수학문제를 풀게 하는 선행교육 등을 강요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해 문제점이 발생한다. <출처: gettyimages>



물론 지금도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편견과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이 두려워서 치료를 받아야 할 아이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필자가 강조하는 것은 현재 이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브레이크가 망가진 폭주 기관차와 같은 교육현실이다.

한국어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영어교육, 일류대학에 대한 강박으로 초등학교 때 고등학교 수학문제를 풀게 하는 선행교육 등을 강요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해 두 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첫째, 뇌 발달이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의 아이들에게 과잉교육을 쏟아 붓다 보니 평균학업성취요구도가 올라가게 되어, 사실은 그렇게 평가되지 않아도 될 아이들조차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하면서 집중력의 문제로 진단한다.

둘째, 단 하나의 잣대인 ‘학습과 시험’이라는 방식을 통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이 성공의 잣대가 되어버려, 그것 외에는 모두 쓸데없거나 이류로 치부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수준의 능력을 갖지 못할 때 정신의학은 비정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최근 증가하는 ADHD는 아이의 발달정도 보다 지나치게 앞서가는 ‘집중력의 요구도’와 ‘오직 학습으로만 적응을 평가하는 시스템’때문에 적응에 실패한 아이들을 진단하면서 생긴 면이 많다.

1920년대의 질리언 린이 21세기 대한민국에 온다면 당연히 ADHD로 치료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

어떤 간 큰 정신과 의사와 부모가 아이를 ‘무용학교에 보냅시다’라고 제언하고 동의할 수 있겠는가. 이상적인 마인드만 가지고 살기에는 녹록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의사나 부모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질리언 린의 사례는 켄 로빈슨(Ken Robinson)의 Ted 콘퍼런스 강연인 ‘학교가 창의력을 죽인다’에서 소개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작은 바람을 일으킨 바 있다.




ADHD 환자에서 세계적인 수영선수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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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영웅 마이클 펠프스 는 어릴 때 심한 주의력 결핍과 산만함으로 9세에 ADHD로 진단 받고 약을 복용했다.
<출처: EmmyMik at en.wikipedia.org>



올림픽에서 금메달만 무려 18개, 총 22개의 메달을 따낸 미국의 수영 영웅 마이클 펠프스는 어릴 때 심한 주의력 결핍과 산만함으로 9세에 ADHD로 진단 받고 약을 복용했다.

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쳐왔던 어머니 데비 펠프스는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산만한 마이클에게 집중할 것을 찾아주기 위해 수영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에너지를 수영에 발산하고 나면 학교에서 나아질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이클이 수영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수영을 즐기고 높은 기록을 성취해 나가면서 일반적인 ADHD 환자라면 따라가기 어려운 수준의 훈련스케줄을 소화해 냈다.

또, 어머니는 가정교사를 고용해서 “초당 3미터를 수영한다면 500미터 가는 데 몇 초 걸릴까?”와 같이 마이클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수학을 가르쳤다.

마이클은 상태가 점차 좋아졌고, 6학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마침내 약물 치료를 중단했다. 몇 년간 수영을 통해 다져진 신체적 집중력과 인내가 충분히 학업에도 적용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후 마이클은 역사에 길이 남는 수영선수가 될 수 있었고, 선수생활을 하면서 미시간 대학에 진학해 스포츠 마케팅을 전공할 정도로 양쪽 모두를 잘해내는 성인으로 성장했다.

ADHD는 분명 존재하는 질환이고, 수많은 소아 청소년, 더 나아가 성인 중에도 치료를 받아야 일상생활에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만 질리언 린이나 마이클 펠프스와 같은 경우를 고려한다면, ADHD의 진단범위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ADHD의 진단범위를 조금 확대해서 관대하게 해석하면, 환자의 문제로만이 아니라 사실은 그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환경의 압박이 너무 강하고, 동시에 집중을 흐트러뜨리는 자극이 지나치게 많아서 상대적으로 집중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ADHD를 ‘집중력 결핍’이라는 개인의 증상과 질환의 문제로만 판단한다면 결국 그 개인의 자질 문제이자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인식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다름’의 가치 존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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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이들이 책상을 어지럽히면 공부할 준비가 안되어있다고 탓을 한다. <출처: gettyimages>



정신의학에서는 기본적으로 행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주관적 괴로움을 인지하고, 그로 인해 일정기간 이상 사회적 기능에 분명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판단할 수 있을 때 정신질환으로 진단한다고 정하고 있다.

조직검사로 암을 진단하거나 혈액검사로 병균을 찾아내 감염을 확진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라 모호하고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앞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정신질환의 진단에 사회문화적 요인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아이들이 책상을 어지럽히면 공부할 준비가 안되어있다고 탓을 한다. 그렇지만 아인슈타인의 책상을 보면 정신없이 복잡하고 정돈은 전혀 되어있지 않다.

그는 그런 산만한 책상 위에서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고 세상에 탄탄한 이론으로 알릴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책상을 보면 마치 그가 ADHD로 불릴 만했다 할만하다.

그의 일대기를 보면 시간약속을 매번 놓치고, 정신이 없이 살고, 자기가 관심있는 영역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두지 않아 가정생활에 어려움이 있었다.

지금의 엄격한 정신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비정상적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아인슈타인이다.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정상’이란 사회적으로 ‘평균값’ 안에 들어가는 것을 일차적인 기준으로 삼다 보면, 그 사람의 창의성이나 다른 재능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은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 쉽다.

더욱이 우리는 우리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다름’이 아니라 ‘비정상’으로 보고 싶어 하는 집단적 편향성을 갖고 있다.

이것이 정신의학의 테두리 안에서 과학과 의학이란 포장지에 가려져 희생자를 만들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일반인뿐만 아니라 전문가라면 더더욱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이 변화하는 것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도 불변의 진리로 고정되지 않고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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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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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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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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