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급경사 슬로프 타기 - 행동하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24회 작성일 16-02-06 14:44

본문















14547374733315.png




14547374742617



상급자 코스의 슬로프는, 밑에서 볼 때와 달리 위에서 내려다 봤을 때 더 아득하게 보인다. <출처: gettyimages>


환경의 속성은 객관적이라고 믿기 쉽지만, 그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에 따라 환경은 다르게 지각될 수 있다. 새로운 환경과 행위에 도전해 봄으로써 환경과 자신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동계 올림픽의 여러 종목 중 스키 활강 경기는 호쾌하면서도 짜릿한 느낌을 준다. 슬로프는 보기에도 가파른데, 선수들은 그 급경사로 인한 속도, 그리고 공기의 저항을 온몸으로 안고 내달려 간다. 스키를 배워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상급자 코스의 슬로프는, 밑에서 볼 때와 달리 위에서 내려다 봤을 때 얼마나 아득하게 보이는지!



슬로프 경사도 판단은 객관적인가



초급자는 용기를 내어 상급자 슬로프가 시작하는 낭떠러지 끝으로 가보려 해도, 아래쪽은 잘 보이지 않는데다가 돌아오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런데 겨우내 (혹은 몇 년에 걸쳐) 스키 실력이 점차 늘면, 아찔해 보이던 상급자 슬로프가 점점 덜 가파르게 보이고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상급자가 되면 슬로프를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예컨대 ‘경사가 좀 있다’는 ‘재미있겠다’는 뜻이 된다. 실력이 늘었으니 좀더 가파른 슬로프를 탈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슬로프 자체가 전보다 완만해 보인다면, 그것은 어떻게 설명될 것인가?

Bhalla와 Proffitt(1999)은 운동선수 집단과 야외활동을 별로 하지 않는 집단에게 가파른 언덕의 경사도를 평가하게 했다. 그랬더니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언덕의 경사가 더 가파른 것으로 판단했다. 다른 실험에서는 가벼운 등짐을 지고 있는 사람보다 무거운 등짐을 지고 있는 사람이 언덕이 더 가파르다고 판단했다. 같은 언덕을 두고 경사도 판단을 달리 하는 데에 자신의 몸과 행동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혹은 사람들은 단지 자신이 예상한 대로, 즉 언덕을 오르는 것이 힘들지 않거나 힘들 것으로 예상되므로, 경사가 급하지 않거나 급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숙련(도)의 영향



이런 차이가 ‘예상’의 차이 탓이 아니라는 것을 다른 실험들이 보여 준다. Witt와 Proffitt(2005)는 게임을 끝낸 소프트볼 선수들에게 여러 개의 동그라미들을 제시하고, 소프트볼의 크기에 가장 잘 맞는 동그라미를 고르라고 했다. 그랬더니 공을 잘 맞힌 선수들이 그렇지 않은 선수들보다 더 큰 동그라미를 고르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명중시킨 양궁 선수가 과녁이 커다랗게 보였다고 말하거나 결승 홈런을 친 타자가 야구공이 배구공처럼 크게 보였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흥미로운 점은 이런 지각의 변화가 여러 번의 경험 후에 생긴다는 것이다. 미식축구에서 골포스트의 간격이 더 커 보이는 것은 10번의 공차기 후에야 일어났다(Witt & Dorsch, 2009). 그러므로 슬로프의 경사도 판단에서 지각의 변화는 단순한 예상의 변화가 아니라, 반복된 경험을 통해 발생하는 행동의 숙련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질적 느낌이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시각벼랑





14547374750362



CN타워 유리 바닥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장면. 위쪽에 기둥처럼 보이는 것이 탑의 몸체이다. <출처: wikipedia>


하늘을 찌르는 초고층 타워(마천루)들 중에서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CN타워의 전망대(342 m)는 특히 유명하다. 바로 바닥의 일부분이 강화 유리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즉 바닥 아래로 땅바닥이 보인다. 이 유리 바닥이 매우 튼튼하고 사고가 날 염려가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아무리 확신해도, 그 위를 조심스레 걷는 사람들을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도, 이 유리 바닥 위에 발을 내딛는 것은 (적어도 처음에는) 여간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지상에 있는 깨알 같은 사람들이나 자동차에 주목을 할라치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솟구치는 공포를 억누르기 힘들다. 이처럼 유리판 때문에 물리적으로는 매우 안전하지만, 높은 곳에 있는 것과 같은 시각 신호들이 주어지는 환경을 ‘시각벼랑’이라고 한다. Gibson과 Walk(1960)는 6 ~ 14 개월의 아기들에게 어른 허리 높이 정도의 시각벼랑을 건너오도록 했다. 바닥에는 강화 유리판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촉감으로는 위험을 전혀 감지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36명의 아기들 중 단 3명만이 시각벼랑을 건넜을 뿐 나머지는 그 반대로 가거나 건너기를 거부하고, 심지어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시각벼랑은 아주 어린 아기들에게도 극도의 위험을 신호해 주는 것 같다.1)



이 실험의 결과는 깊이 지각이 선천적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험에 참가한 아기가 환경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있다.
주석 레이어창 닫기


14547374760954



CN타워 유리 바닥에 서 있는 아이들. <출처: CN 타워 홈페이지>


시각벼랑은 높은 곳이 얼마나 강력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도전하고 극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암벽 타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 알렉스 호놀드는 멕시코에 있는 1750 피트(533 m)의 암벽을 맨손으로 올라서 화제가 되었다. 또한 알랭 로베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두바이의 버즈 칼리파(828 m)의 외벽을 타고 정상을 정복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높이가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고층빌딩의 난간이나 암벽의 벼랑 끝에 앉아 있는 사진만 보고서도 어지럼증을 느낀다.

알렉스 호놀드나 알랭 로베르, 혹은 다른 암벽타기 전문가들은 고소공포(증)을 느끼지 않는 것일까? 암벽타기 선수들은 일순간 고소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일 수 있다. 그럴 때 이성적 사고가 마비되고, 시각벼랑 앞의 아기처럼 긴장되어 심장 박동이 증가하고 호흡이 가빠지고 구역질이 나고(신체적 공황 상태), 신체적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지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자신의 장비와 동료에 대한 신뢰를 배움으로써, 목전의 타기(전진)에 더 집중함으로써, 이런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숙련을 통한 변화





14547374769098



시각벼랑 문턱(왼쪽 사진)에서 아기는 엄마가 있는 맞은 편으로 건너가지 못한다. 반대쪽으로(오른쪽 사진) 가는 것은 쉽다. <출처: Gibson & Walk, 1960 ,William Vandivert의 사진>


평범한 아기는 물론, 스키 선수나 암벽타기 선수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급경사 슬로프나 암벽을 어떻게 접근할 것이며, 자신의 감정과 몸을 어떻게 다루고,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를 배워나가는 것 같다. 도전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점차 더 적절하게 행동하게 되면서 자신의 능력과 행위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된다. 이런 변화와 더불어 슬로프나 암벽은 전과 달리 보이고, 주의 작용에도 변화가 생긴다. 즉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 보이기 시작하고, 정신을 흩뜨리는 것 대신에 중요한 측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슬로프의 급경사나 직벽에 주의를 빼앗기는 대신, 당장 움직여야 할 이동에 더 주목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더 유연하고 더 적절하게 행동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변화가 단지 피로나 기분변화에 따른 일시적인 것이라면, 쉬고 나면 슬로프의 지각은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타는 법이 기억나지 않지만 오래 전에 자전거를 타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자전거를 전혀 타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자전거를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전거는 ‘당장 잘 탈 자신은 없을지 몰라도 조금 애쓰면 탈 수 있는 것’인 것이다. 배운 지가 오래 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지각과 행동은 원점으로 리셋 되지 않는다. 말로 분명히 표현하긴 힘들어도 내 몸과 마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환경은 얼마나 객관적인가





14547374778480



사과는 빨간색이지만, 빨강은 사과의 객관적 속성이 아니라, 사과에서 반사되는 빛의 파장이 인간의 눈을 통해 처리(지각)되어 경험되는 색이다. <출처: gettyimages>


‘가파름’은 환경이나 사물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 속성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가파름’이 대상의 속성이 아니라, 인간이 경험하고 기대한 결과로 대상에게서 느끼는 속성인 것은 아닐까? 예컨대 사과는 빨간색이지만, 빨강은 사과의 객관적 속성이 아니라, 사과에서 반사되는 빛의 파장이 인간의 눈을 통해 처리(지각)되어 경험되는 색이다. 인간과 다른 시각세포를 갖는 동물은 우리와 다르게 사과의 색을 경험한다. 즉 사과의 빨강은 사실상 인간 눈의 특성에 의해 경험되는 것임에도 우리는 빨강을 사과의 속성이라고 여긴다. 이런 전도(뒤집힘)가 ‘가파름’의 판단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즉 급경사는 객관적 속성이 아니라 우리가 슬로프에 부여한 속성이라는 것이다. 어떤 속성을 부여할 것인가는 자신이 슬로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슬로프의 ‘가파름’을 더 이상 객관적인 것처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자연 환경은 객관적이며, 그 속에 있는 인간으로부터 독립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사건이나 사물을 나누고 쪼개어서 하나씩 살펴보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과학적 관점에서 그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환경과 인간은 공간적으로 분리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별개로 취급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우선 인간은 환경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은 전망대에서 내다보듯이 환경을 경험을 하지 않는다. (TV, 모니터, 자동차 등은 현대적인 전망대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환경을 몸으로 경험한다. 그러면서 환경을 보는 눈, 환경에 대한 느낌, 환경 속에서의 행동, 즉 우리 자신이 달라진다. 환경과의 경험은 사람마다 조금씩이나마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사람은 각자 특수(개별화)하게 된다. 사람은 각자 고유한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고유한 척도로 만물을 재는 것이 아닐까? 한 사람의 관점과 척도는 그 사람이 그 동안 세상에서 이루어낸 행동들을 대변해 주는 것이 아닐까?



교류를 통한 변화





14547374790597



스키어(人)는 경사도에 따라 변화하는 가속도에 맞추어 스키판과 자세를 알맞게 조정(컨트롤)하는 것을 배운다. <출처: gettyimages>


환경과의 교류를 통해서 사람이 바뀐다. 특히 환경 속에서 행위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며 조정해 나가는 활동은 매우 중요한 학습 과정이다.2) 스키어(人)는 경사도에 따라 변화하는 가속도에 맞추어 스키판과 자세를 알맞게 조정(컨트롤)하는 것을 배운다. 머리로 생각하던 것이 어느새 몸이 알아서 하는 것이 된다. 슬로프에서 전에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고, 전에는 취할 수 없던 자세와 행동이 나오게 된다. 슬로프와 스키어는 ‘활강’, 혹은 ‘회전’이란 형태로 교류할 수 있게 된다. 슬로프는 더 이상 단순한 경사면 혹은 낭떠러지가 아니라, ‘스키 타기’가 가능한 공간이 되고, 스키어는 ‘스키 타기’라는 행동의 잣대로 슬로프를 탐색한다. 그래서 어떤 슬로프는 흥미롭고 다른 곳은 그렇지 못하다고 느낀다. 경험이 반복되면서 가능한 행동들이 달라지고, 슬로프와 스키어의 관계도 달라진다.



이처럼 환경에서 인간의 지각과 행동에 관심을 가진 연구들을 일컬어 생태학적(ecological) 접근이라고 한다.
주석 레이어창 닫기

집안에 머무는 사람과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 그리고 자동차를 타는 사람과 걷는 사람은, 같은 세상을 가리키면서도 서로 다른 세상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구부러진 길’은 어떤 사람에겐 그냥 하나의 길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짜증나는 길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길이다. 그 길에서 어떤 사람은 속도가 주는 압축된 장면을 볼 것이며, 어떤 사람은 ‘느림’이 주는 세세함을 볼 것이다. 이런 경험의 변화를 통해 세상은 새롭게 경험될 수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슬로프의 급경사에 도전해 보자. 아니면 봄을 기다려, 암벽타기 혹은 새 스포츠 종목에 도전해 보면서, 그런 변화를 경험해 보는 것이 어떤가.

참고문헌

  • Bhalla, M., & Proffitt, D.R. (1999). Visual-motor recalibration in geographical slant perception.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Human Perception and Performance, 25, 1076-1096.
  • Gibson, E. J., & Walk, R. D. (April 1960). The "visual cliff". Scientific American, 202, 67-71.
  • Witt, J. K., & Dorsch, T. E. (2009). Kicking to bigger uprights: Field goal kicking performance influences perceived size. Perception, 38, 1328-1340.
  • Witt, J. K., & Proffitt, D. R. (2005). See the ball, hit the ball: Apparent ball size is correlated with batting average. Psychological Science, 16, 937-938.



박창호 | 전북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전북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있다. 공저로 인지심리학, 인지학습심리학, 인지공학심리학, 실험심리학용어사전 등이 있다.


발행2014.02.24.



주석


1


이 실험의 결과는 깊이 지각이 선천적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험에 참가한 아기가 환경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있다.

2


이처럼 환경에서 인간의 지각과 행동에 관심을 가진 연구들을 일컬어 생태학적(ecological) 접근이라고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