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세계 최초의 정신병원 - 바보들의 배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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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45회 작성일 16-02-0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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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정신병원은 어디일까? 현대사회가 되면서 스트레스가 만연하고 삶이 복잡해 지는 것에 따라 정신질환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에도 여러모로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정상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중증의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존재했다.

특별한 치료법도 없던 옛날, 어떻게 그들을 대했을지 궁금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을에서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을 동네 공동체에서 거둬 먹이고 간단한 일을 시키는 식으로 보호하는 문화가 있기는 했다. 유럽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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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여러모로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정상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중증의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존재했다. <출처: Wikipedia>



이 궁금증에 대해서 처음 자세한 내막을 밝힌 사람은 철학자 미셀 푸코였다.

1972년 발간한 ‘광기의 역사’라는 책 첫 챕터를 ‘광인들의 배’로 중세에서 근대까지 유럽에서 광기와 이성의 개념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는지를 추적해서 밝혔다.

그러면서 바보들의 배가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그가 처음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1494년 독일의 제바스티안 브란트(1458-1521)가 사회를 풍자하기 위해 쓴 100여편의 시를 모아 펴낸 운문집 제목이 ‘바보배 Das Narrenschiff'였다.

푸코는 이 시기에 사람들이 정상과 비정상을 구별해서 비정상이라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자기들이 사는 곳으로부터 격리하는 방식으로 바보배에 태워 해결했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들이 ‘바보’인가



이들을 독일에서는 바보(Narr, Narrheit)라고 불렀는데, 이때 바보는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광의의 뜻으로 당시에 광인, 지능이 떨어지는 바보, 술주정뱅이나 범죄자들까지 포함하였다.

독일어에서 ‘Narr’는 중세에는 인간의 몽매함, 자연적 결손상태를 의미하다가 점차 비정상적 생활방식이며 미친 상태로 개념이 발전했고, 한 편으로는 현대에는 재담꾼을 뜻하기도 한다.

라틴어에서도 고전에서 어리석음(stultus)은 차츰 ‘광기에 사로잡힘’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어 사용되게 된다.

이런 걸 보면 유럽에서는 중세시대까지 바보는 미쳤다는 의미와 어리석고 바보 같다는 현대적 의미로 ‘지혜’와 ‘지능’의 저하가 모두 합쳐진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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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지도자들은 바보들을 배에 실어 자기들이 사는 곳에서 격리시키기로 결정했다. 배에 태워서 목적지도 없이 정처 없이 떠돌다가 그 안에서 죽게 하였고, 그것이 신의 뜻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죄의식을 줄이려 한 것이다. <출처: Wikipedia>



그렇다면 중세시대에 바보는 정확히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먼저 기독교적 맥락에서 신을 부정하거나 신에 의존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뜻했다.

두 번째는 속세의 바보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지능이 떨어지는 자, 부자들의 광대가 되는 자, 허구적 민중적 형상으로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을 뜻한다.

그런 면에서 중세의 그림에 나오는 바보들은 인간의 기본욕구에 충실한 사람들로 묘사된다.

배고픔, 탐욕, 배뇨에 대한 욕구, 성적 충동, 음주등과 같이 종교적, 윤리적으로 금지하거나 제한되어야 할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자들이다.

신의 벌을 받을 자이나, 그럴만한 가치도 없을 정도로 가치가 없는 자들이거나,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떤 벌을 받게 될지도 판단할 능력이 없는 자들이었다.

이들을 사회에서는 ‘바보’라고 했다. 즉 세 번째 의미는 실제로 정신병리학적으로 ‘정신증(psychosis)'으로 판단할 만한 사람들이다.

정신증의 중요한 정의는 ‘의식이 또렷한 상태에 현실검증력의 결여‘다.

현실검증력이란 상식, 문화, 윤리적 측면에서 올바르고 적절히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의 행동을 예측하기 어렵고, 그의 말이나 행동을 적절히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그가 위험하다고 여기기 쉽고, 그와 함께 지내기가 어렵다고 여기게 된다.

100명중 99명이 선택하는 것이 아닌 1개를 선택하면서 그것을 선택한 이유를 대지 못하거나, 전혀 합리적이거나 적절하지 않다면 우리는 그와 소통을 하고 관계를 맺고,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어려움들을 세세하게 구별하지 않고 중세시대에는 ’바보‘라고 통칭을 했다.

문제는 이 바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였다. 말도 통하지 않고, 판단력도 온전하지 않은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 됐음은 분명하다.

여러모로 같이 지내기는 불편하고, 한 사람 몫의 노동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니 거두어 먹이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세 기독교 사상의 측면에서 생명은 신이 내린 것이니 인간이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중에는 신에게 불경을 하는 이들도 섞여있고,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는데 아무리 설명을 하고 벌을 줘도 고쳐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들을 가만히 방치하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줘서 그들도 금지된 행동을 서슴없이 할 위험이 있다고 위정자들이나 지도자들은 걱정을 했다.

또 일각에서는 그들이 마귀에 씐 사람들이라고 위험하다고 여기기도 하고, 어떤 병에 감염되어서 그게 옮을지 모른다고 여겼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만 해도 광인은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긴 했지만 사회적 지평에서 완전히 배제돼 폭력적 감금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14세기 이전까지는 도시의 형성이 더뎌서 농촌에 한 집단에 한 두 명 정도만 발견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은 마을 공동체에서 그 정도는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도시생활자가 늘어나면서 큰 도시 전체로 보면 무시할 수 없는 숫자가 되었고, 이들과 인간적 관계를 맺는 사람이 없는 대형 사회가 된 것도 이들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규정하고 해결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 이유가 되었다.

그렇다고 크게 벌을 지은 것도 아닌 그들을 다 죽여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생명 역시 하느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그들을 배에 실어 자기들이 사는 곳에서 격리시키기로 결정했다.

배에 태워서 목적지도 없이 정처 없이 떠돌다가 그 안에서 죽게 하였고, 그것이 신의 뜻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죄의식을 줄이려 한 것이다. 그게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의 타협이었다.




다르니까 격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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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배(The ship of fools)



이 그림은 15세기경 네덜란드 화가 Hieronymus Bosch가 그린 ‘바보들의 배(The ship of fools)’라는 작품으로 지금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되어있다.

이 작품은 위에 언급한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배’가 유럽 전체의 널리 알려지면서 그 영향을 받아 그린 작품이라 한다.

이 그림을 보면 당시 중세인들이 ‘바보’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알 수 있다. 맨 윗부분 나뭇가지의 해골은 죽음을, 깃대의 분홍깃발은 이교도인 이슬람교를 상징한다.

남자가 칼을 들고 거위고기를 떼는 것은 인간의 식탐과 본능에 충실한 축제를, 왼쪽에 보이는 호리병은 광기의 상징이다.

그리고, 가운데에 광대의상을 걸치고 있는 남자는 어릿광대이며 바보를 의미하고, 광대의 바보얼굴 지팡이는 남성들의 치부를 상징하는 것이다.

중앙의 수녀와 수도사가 입을 대고 먹으려는 것들은 식탐과 성적 욕망을, 술잔과 술병은 폭음을 상징한다.

당시 수녀와 수도사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금지되어있다는 점을 보면 또한 금지된 것을 스스럼없이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여자와 누워있는 남자는 성적인 쾌락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바보배에 타야 할 사람들은 점차 정말 바보거나, 광인과 같이 뚜렷하게 사회에서 격리할 필요가 있는 사람을 넘어서서 점차 종교적으로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 도덕적으로 문란한 사람들이라는 의미까지 확대되었다는 면이 특징적이다.

이렇게 사회적으로는 바보배가 상징적 의미를 갖는 수준이 되었지만, 여전히 실존의 바보배는 광인과 바보들, 역병환자들을 격리하는 수단이었다.

이들을 치료의 대상, 보호의 대상이 아닌, 격리와 분리의 대상으로만 보았고, 이를 위해 가장 쉽고 빠른 길이면서 목숨을 직접 빼앗지는 않는 방법은 영원히 격리시켜 자기들이 사는 곳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배에 태워 목적지 없이 떠돌게 한 것이다. 이들은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만 본 것이다.

17세기에 이르러 대감금의 시대에 감옥, 병원이라는 이름으로 모두를 가두는 방식으로 새로운 격리를 하기 전까지 유럽의 광인, 바보, 역병환자, 범죄자에 대한 처리방식은 이러했던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어딘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은 가까이 하기를 꺼리고 격리하거나 거리를 두기를 원한다. 중세시대 사람들은 바보배라는 것을 만들어 그들을 격리시켜나갔다.

그렇다면 지금은 바보배는 사라진 것 일까. 이제는 복지정책도 있고, 의학도 발달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닐지 모른다. 외국인이나 소수자에 대한 차별, 집단 따돌림과 왕따, 사이버 폭력과 같은 것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것들의 근본은 역시 ‘나와 다른 약한 사람’을 나와 달리 거리를 두고 격리하려는 노력이다. 이런 것들이 21세기의 바보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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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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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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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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