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수(水) 치료 - 물로 우울증을 치료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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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29회 작성일 16-02-0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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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분이 힘이 드시죠?”

“잠을 잘 수 없고 두통에 시달립니다. 머리가 깨지는 것 같아요.”

“아…… 언제부터 그러신 거죠?”

“6개월도 더 된 거 같아요. 처음에는 며칠 그러다가 말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잠을 못 자다니…….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요? 좋다는 것은 다 먹어봤고, 효과 있다는 치료법도 다 써봤지만 소용없네요. 선생님 저 좀 살려주세요.”

“부인,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정확히 잘 찾아오셨습니다. 오늘부터 우리 비시(Vichy) 온천의 수 치료 패키지로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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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C 당시 유럽에서 성행했던 수 치료를 풍자한 만화
<그림: Jacque, Charles Émile, 1813-1894>



러시아의 한 귀족부인이 파리에서 남쪽으로 약 406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한 비시 온천의 상류층을 위한 수(水) 치료 클리닉을 찾아와 의사에게 자신의 문제를 호소하고 수 치료(hydrotherapy)를 받게 되었다.

영국에서 시작해서 프랑스, 독일로 퍼져나간 수 치료는 19세기 초반 불안증, 불면증, 두통, 예민함과 같은 신경쇠약의 가장 확실한 치료법으로 각광 받았다.

이전까지 정신적인 문제라는 것은 ‘광인’, 즉 중증의 정신증 환자에 국한된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도시생활자의 수가 증가하면서 예민함, 불안함, 불면, 이해하기 힘든 긴장과 두통과 같은 신체증상들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의사들은 정신증과 다른 용어로 ‘신경쇠약’, ‘신경증’이라는 단어를 대중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해부학의 발달로 신경망의 존재와 역할이 밝혀지면서, 신경증의 원인이 중상류층은 과로, 하류층은 체액의 불균형으로 인한 신경망의 이상 때문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독일의 의사 아돌프 알브레히트 엘렌마이어는 ‘광인과 정신박약자를 위한 사립기관’이란 수용 기관의 명칭을 1848년 ‘뇌와 신경질환자를 위한 사립기관(Asyl für Gehirn- und Nervenkranke)’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장기간 입원으로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곳마저도 가벼운 정신질환인 신경증 환자를 진료하는 곳으로 탈바꿈해야 할 정도로 신경쇠약이란 단어는 당시 유럽 대중들이 맞닥뜨린 도시적 삶의 피곤함과 괴로움을 적절히 반영했던 것이다.




도시생활자들과 온천



그렇지만 이를 치료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고, 그러던 중 부상한 것이 ‘수 치료’였다. 사실 수 치료의 역사는 매우 깊다.

로마의 황제들은 대중목욕탕을 건설해 보급했는데, 이는 대중적 인기를 얻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물이 치료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 히포크라테스가 환자에게 목욕을 처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온천욕이나 목욕은 신체질환의 치유, 건강관리를 위한 휴양이 목적이었다. 온천욕으로 근육이 이완되고 장운동이 촉진되면서 근육통이나 변비가 해소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산업혁명 이후 도시의 중류층이 하나의 계급을 형성하면서 그 수가 늘어나자 과거 소수의 귀족들만 이용하던 온천에 갈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생겨났다.

도시의 퍽퍽하고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여행하고 휴식을 취할 만한 시설을 갖춘 곳이 온천 지역이었다.

더욱이 19세기 중반 이후 철로가 유럽 전역에 건설되면서 운송수단이 마차뿐이던 때보다 꽤 먼 거리까지 기차로 여행하기가 어렵지 않게 된 것은, 온천을 찾는 수요가 늘어나고 새로운 방식의 수 치료 클리닉이 번성하는 촉매가 되었다.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수 치료 열풍은 프랑스에서 꽃을 피웠다. 프랑스 남부의 따뜻한 기후와 양질의 무기질 온천 때문이다.

1820년대 3만 명 수준이던 온천 방문자가 1860년대에 20만 명, 19세기 말에는 30~40만 명으로 매년 늘어났다고 하니, 몸과 마음이 쇠약한 유럽 사람들 모두가 이곳을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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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치료 클리닉의 의사들은 수백 가지의 수 치료 처방법을 개발했다. <그림: Cruikshank, George, 1792-1878>



그러다 보니 클리닉 의사들은 수 치료를 점차 정교하게 발전시켜 수백 가지의 수 치료 처방법을 개발했다.

그들은 우울증 환자에게는 루아야, 생-넥테르의 물이 맞고 신경증 환자의 위장통증에는 네리-레-브랭, 바녜르-드-비고르의 물, 히스테리 발작에는 뤼-생-소뵈나 에비앙-레-브랭의 물이 적합하다고 처방했다.

사실상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온천 의사들은 뚜렷한 차이가 있다며, 전문성 있는 의사의 처방대로 잘 맞춰야만 치료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온천으로 가야만 받을 수 있던 수 치료를 일상적으로 받기 원하는 대중의 수요에 맞춰 19세기 중반에는 도시에서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파리에서는 수돗물을 이용한 수 치료 클리닉이 많이 생겼다 (그런 면에서 온천의 특정한 물만 효과가 있다는 온천 의사의 전문 처방은 자기부정이 된 셈이다).

파리의 수 치료사인 알프레드 베니-바르데는 정신수력학(psychohydraulics)이라는 이론까지 만들었다.

그는 따뜻한 물로 목욕하기, 찬물과 뜨거운 물을 번갈아 끼얹기, 찬물을 강하게 뿌려 마사지하기, 차가운 수영장에 집어넣기 등을 환자의 체질과 증상에 맞춰서 처방했다.




수 치료의 변질과 휴식 치료의 등장



시간이 지나면서 수 치료는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되었고, 수 치료 클리닉의 수가 늘어나자 치료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나의 이론이 세워진 후 정교하게 발전시키면서, 점차 더 중증의 정신질환 환자들을 치료하려고 시도하게 된 것이다.

물론 수 치료가 유명해지니, 중증의 환자들이 수 치료 클리닉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한 면도 컸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말에는 기존의 정신과 의사들과 영역 다툼도 생겼다. 정신과 의사들은 수 치료 클리닉이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공격을 퍼부었고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시간이 지나 대중들도 이를 인식하면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넘어가는 동안 수 치료 클리닉의 열풍이 서서히 수그러들었다.

휴식과 요양을 원하던 원 수요자인 중류층이 정신과적 치료공간이 되어버린 수 치료 클리닉을 기피하고 다른 곳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수 치료 클리닉을 ‘정신병원’과 유사한 곳으로 인식하면서 자기들이 갈 만한 곳은 아니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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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 있는 오래된 수 치료실 <출처: LPLT at fr.wikipedia.org>





간호사가 수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을 관찰하고 있다. <출처: http://www.ihm.nlm.nih.gov>




이런 혼란은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조지 비어드(George Beard)는 1860년 미국에 처음으로 신경쇠약(neurasthenia)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그는 ‘소화불량, 두통, 마비, 불면, 감각이상, 신경통, 류머티즘, 월경불규칙’ 등의 모든 증상이 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고, 빠른 속도로 도시화가 진행되던 미국에서 이는 사람들의 정서에 부합하여 인기를 끌었다. “난 신경쇠약증에 걸려 있어”라는 말이 흔히 사용되었던 것이다.

유럽에서 수 치료가 온천물을 통한 신경증 치료법으로 인기를 얻은 데 반해, 미국은 지역적으로 훨씬 넓어 도시간 이동이 쉽지 않았고 온천휴양지가 개발되어 있던 나라도 아니어서 치료법은 달라졌다.

사일러스 위어 미첼(Silas Weir Mitchell)이라는 의사는 ‘휴식 치료’를 만들어냈다. 온천물로 목욕하는 것이 수 치료의 기반이 된 것과 달리, ‘온천에 가서’ ‘휴양한다’ 중 다른 반쪽의 개념인 ‘휴식’ 자체를 치료로 발전시킨 것이다.

미첼은 환자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누워 있게 하고, 가족도 만나지 못하게 격리하여, 절대 안정을 취하게 하면서 적당한 양의 음식을 보급하며 마사지 등을 받도록 했다.

이 방법을 통해 환자들이 몇 달 만에 극적으로 회복했기 때문에 점점 더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탈진 상태에 있는 척수 신경절에 다시 혈액순환이 되기 위해서 휴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럽의 수 치료에는 온천물의 성분이나 물의 온도라는 물질적 기반이 존재했지만, 휴식 치료는 ‘환자와 의사 관계에서 환자가 갖는 치유에 대한 믿음’, 즉 라포(rapport)와 순응(compliance)이라는 심리적 요소가 매우 중요한 치료기전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리며 정신의학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었다.

이전까지는 신경 자체에 이상이 있다고 여기던 신경증이 ‘개인의 심리 그 자체의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퍼지면서 암시, 최면, 정신분석과 같은 상담이 하나의 독립적 치료법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었다.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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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물을 이용한 치료는 계속되고 있지만,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출처: gettyimage>



물을 이용한 치료는 지금도 재활의학과 등에서 활발히 사용하고 있으나,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사용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유럽의 온천 도시에는 아직도 소규모의 사설 수 치료 클리닉이 성행하며, 우리나라 등 각국에서도 고급 스파가 휴식과 이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삶과 인간관계가 점점 복잡해지고 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이 속도가 빨라졌다.

그 결과, 오늘날의 개념으로 보면 ‘스트레스’에 의해 발생했다 볼 수 있는 불안, 긴장, 두통, 신체증상, 불면과 같은 가벼운 정신적 문제가 급격히 늘어났고, 어떻게든 이를 해결해야만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이런 모호한 증상들을 통틀어 신경증, 신경쇠약이라 불렀고, 그 치료법으로 유럽에서는 온천에서의 휴양과 수 치료가, 미국에서는 휴식 치료가 보급되었다.

라이프스타일 및 사회적 환경의 변화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는 법이고, 현대사회에 만연한 공공의 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여러 문제들은 19세기 초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핵심은 ‘휴식’이었는데, 마침 온천이 근처에 있었고, 온천욕에 휴식과 이완의 효과가 있었기에 수 치료가 한때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

지금도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기’와 같은 적극적 휴식이 스트레스 관리의 효과적 처방으로 꼽힌다.

더 나아가서 ‘멍 때리기’와 같이 뇌의 이완을 통해 뇌에 휴식을 주는 것도 몸의 이완만큼 꼭 필요한 일이다.

지난 2백 년 동안 세상이 ‘더 빨리, 더 효과적으로, 더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밀어붙이니, 현대인들의 스트레스는 점점 더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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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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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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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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