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정신질환 치료 약물 - 초기의 정신질환 치료 약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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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35회 작성일 16-02-0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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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정신질환 환자에 대해 화형시키거나, 바보배에 태우고 평생 격리시키기도 했다. 1549년 독일의 목판화에 묘사된 ‘바보배’ <출처: Wikipedia>



정신질환이 종교나 윤리적 판단에서 벗어나 의학체계 안에 들어온 이후에 의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치료 방법’이었다. 의학에서 원인에 대해 연구하고 진단하며 검사하는 것도 결국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다. 과거에 사람들은 마귀가 들었으니 주술로 치료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게 안 되면 정신질환자들을 화형시키거나, 바보배1)에 태우고 평생 격리할 뿐이었다.

근대의학의 발달과 함께 진단체계가 자리 잡아 어느 정도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치료에 있어서만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19세기 중반까지 가능한 치료는 수용소에 장기간 격리하거나, 온천욕을 하면서 마냥 휴식을 취하게 하는 정도, 혹은 최면술 치료밖에 없었다. 해부학과 마취 기술이 발달하면서 외과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감염질환에 대해 여러 가지 약들이 개발된 것에 비해 정신질환 치료법의 발전은 미미했다. 무력감을 느낀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어떻게든 정신질환에 잘 듣는 약을 개발하고 싶은 열망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효과적인 약물 개발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



정신질환의 원인론에 대해 분명한 답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경험적 치료에 의존했다. 먼저 대장에 쌓인 독성물질이 뇌에 영향을 미쳐 광기를 불러일으킨다는 이론은 설사를 유발하여 치료할 수 있는 결론으로 이어져서, 19세기 초반에는 목화씨유와 같은 강력한 설사제를 주는 치료가 성행했다. 1921년까지도 영국에서는 정신적 위기를 없애주는 효과가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물론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사용해 온 고전적인 약인 아편류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19세기 초 수용소 기능을 하던 정신병원에서 아편에서 분리한 모르핀 성분을 환자들에게 물에 타서 먹이다가, 19세기 중반부터 주사제로 주기 시작했다. 만성적 불면, 불안, 신체통증을 호소하던 환자들이 극적으로 좋아지는 것이 관찰되어 많이 사용되었지만 아편의 중독성이 알려지면서 사그라졌다. 19세기 후반에 새로 발견된 약물 중 하나인 코카인도 정신질환 치료제의 후보군으로 꼽혔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였다. 그와 동료들은 초기에 코카인을 치료제로 처방하다가 환자를 중독자로 만든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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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투스 폰 리비히(사진)가 발명한 클로럴하이드레이트는 강력한 진정작용으로 인해 수면제로 사용되었다. <출처: NIH>



이때까지의 약은 대부분 생약에서 추출한 성분이었다. 그러던 중 1832년 독일 기센 대학의 화학 교수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Freiherr von Liebig, 1803~1873)가 첫 합성약품으로 클로럴 하이드레이트(chloral hydrate)를 발명했다. 이 약은 강력한 진정작용으로 수면제 기능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 데이트 중에 연인을 잠에 들게 하여 순결을 빼앗는 약, 혹은 범죄에 이용하는 수면제가 소설 속에 많이 등장했는데, 이 약이 바로 클로럴이었다. 1920년대 우울증을 앓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도 친구와의 편지에서 한동안 클로럴을 복용했다고 적었을 정도로 유럽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약들은 일시적인 증상의 완화만 가져오거나 진정 효과가 있을 뿐이었지 오랜 기간 약효가 지속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환자들이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었으며, 정신병원 밖의 환자들은 불면, 불안, 우울증과 같은 신경증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생물학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믿는 일부 개혁적인 정신과 의사들이 수술적 요법, 전기충격 요법, 인슐린 혼수 요법과 같은 공격적 치료를 시행할 뿐이었다. 사용하기 편리하고, 부작용이 적으면서 효과도 뚜렷한 약을 갈구하는 요구가 계속되었다.

1933년부터 프랑스의 제약회사 롱플랑은 새로운 항히스타민제를 개발하던 중 1947년 페노티아진(phenothiazine)의 부산물인 프로메타진(promethazine)을 합성했는데 과거의 약보다 진정효과가 매우 강했다. 이를 더욱 발전시켜서 1950년 강력한 중추신경계 안정제로 클로르프로마진(chlorpromazine)이 1951년부터 프랑스내의 의사들에게 배포되어 임상적 효용성을 찾기 위한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외과수술의 마취제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추가로 사용하는 진정제로 사용했었고, 부작용도 적은 편이었다. 이런 효과가 정신과 환자에게도 적용 가능할 것으로 본 초기에 많은 경험을 해본 프랑스의 외과의사 앙리 라보리(Henry Laborit)는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들에게 강력히 추천을 했다.

1952년 1월 24세의 자크라는 조증환자가 이 약을 855mg을 투여받고 3주만에 극적으로 좋아져서 퇴원하는 일이 생겼다. 이 소식을 들은 파리의 생-앤 병원(Hosptial Sainte-Anne)의 피에르 드니커(Pierre Deniker)와 쟝 들레이(Jean Delay)는 1952년 39명의 정신증 환자에게 매일 클로르프로마진을 주사하는 임상시험을 시도했다. 결과는 매우 좋아서 대부분의 환자들의 증상이 좋아졌고 일반적으로 매일 75-100mg정도면 충분하다는 용량기준도 알아냈다. 말이 안 통하고 괴이한 행동을 하던 중증 환자들의 행동이 통제되고, 지리멸렬(incoherence)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던 환자와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그것도 10일 만에 증상이 호전되어, 장기간 입원했던 환자들의 상당수가 한 달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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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르프로마진으로 만든 1960년대 미국의 항정신병 치료제 광고. <출처: Wikipedia>



유럽에서 서서히 이 약의 효능과 효과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1953년 캐나다 몬트리올 버던 병원의 하인츠 레만(Heinz E. Lehmann, 1911~1999년)이 제약회사로부터 약을 공급받아 몇 명의 환자에게 처방하고 극적인 호전양상을 발견하면서 클로르프로마진은 북미에까지 소개되었다. 그는 “10년간 정신병 상태에 있다가 이혼당했던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모든 증상이 갑자기 사라지고 전부인과 다시 결혼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이후 1953년 9월 하버드 의대 맥린 병원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객관적인 임상실험을 통해 검증한 효과를 《뉴잉글랜드 의학잡지(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하면서 공신력을 갖게 되었다. 이 약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장기간 입원해 있던 수많은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죽어야 나갈 수 있다는 정신병원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일종의 기적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 의료역사학자 에드워드 쇼터(Edward Shorter)는 “클로르프로마진의 등장은 마치 의학계에 페니실린이 등장하여 감염병을 정복하게 된 것”에 비교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논평했다. 이 약의 효과로 인해 1955년 미국 전역에 입원해있던 정신과 환자의 수는 55만명을 넘었으나, 1970년에는 33만명으로, 더 나아가 1980년에는 15만명으로 급격히 줄어들 수 있었다.




조증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리튬을 사용하다



클로르프로마진이 효과적인 항정신병약물(anti-psychotic)의 첫 단추를 꿰었다. 그러나 양극성정동장애(조울병)에 이 약을 쓰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조증의 급성기에는 이 약이 상당히 효과가 있지만 진정작용이 강하고,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 입술이나 혀 등에 비자발적인 경련이 일어나는 비가역적인 만발성 운동장애가 발생하는 등 심한 부작용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오스트레일리아의 분두라 정신병원의 정신과 의사 존 케이드(John Frederick Joseph Cade, 1912~1980)가 1949년 당시 통풍치료를 위해 요산을 녹이는 데 사용하던 리튬(lithium)이라는 금속성 물질을 기니피그에 실험적으로 주사했다. 기니피그들이 외부자극에 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발견하고, 조증 환자를 대상으로 리튬을 실험해 보기로 결정했다. 조증 환자 10명, 조현병 환자 6명, 중증 우울증 환자 3명에게 이 약을 주사해 보았는데 조증 환자 10명이 모두 좋아진 것을 발견했다. 과학적 근거에 의해 이러한 결과를 얻었다기보다 단순한 호기심과 과감한 시도로 얻은 일종의 행운이었다. 그러나 이 발견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우연히 실험 내용을 접한 덴마크 아루스 대학의 정신과 의사 모겐스 쇼우(Mogens Schou, 1918~2005년)가 1952년 위약을 대조군으로 하여 리튬의 효능을 비교하는 연구로 그 효과를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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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은 가장 효과적인 급성기, 유지기의 조증 치료제이자 재발방지약의 하나이다.



클로르프로마진이 몇 년 만에 주도적인 치료제가 된 것에 비해 리튬은 1970년이 되어서야 미국 식약청의 허가를 얻을 수 있었다. 아마도 금속물질일 뿐 아니라 어떤 작용기전으로 조증증상이 완화되는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 약점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도 리튬의 작용기전은 분명하지 않지만 가장 효과적인 급성기, 유지기의 조증 치료제이자 재발방지약의 하나이다. 이제 정신의학은 두 번째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되었다.

이어서 중증 우울증 치료가 문제가 되었다. 정신분열병이나 조울병에 비해 훨씬 환자가 많았고, 무엇보다 자살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우울증에 대해서는 전기충격치료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심리적 측면에서 장기간 정신분석요법을 시행하는 것 이외에 뚜렷한 방법이 없었다.

1950년 스위스 뮌스터링겐 병원의 롤런드 쿤(Roland Kuhn, 1912~2005)은 항우울제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강력한 항우울제를 발견하여 수십 명의 환자들에게 사용해 본 결과, 경이적인 치료 효과가 있음을 밝혀냈다. 그에게 연구를 의뢰했던 가이기 제약회사는 1958년 이미프라민(imipramine)이라 명명했고, 이것이 첫 번째 삼환계항우울제가 되었다. 이후 삼환계항우울제는 우울증 치료의 기본약품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세 번째 무기가 완성되었다.




약물의 도입으로 발전한 정신의학 진단체계



클로르프로마진, 리튬, 이미프라민은 21세기인 지금도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약이다. 부작용이 많은 편이지만, 효과 면에서는 새로 나온 수많은 약에 견주어 뒤떨어지지 않는다. 심리적 치료나 휴식 이외에는 검증된 치료법이 없었던 정신의학계는 196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항정신병약물, 항조증치료제(기분안정제), 항우울제라는 세 가지 무기를 갖게 되었다.

또한 과거에는 정신질환 증상에 만병통치약처럼 오직 한 가지 약만 시도했지만, 이때부터 특정한 증상이나 진단에 맞는 특정한 약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기 시작했다. 뇌에서 증상을 만들어내는 기전이 다를 수 있고, 이에 따라 뇌의 신경전달물질에 변화를 주는 물질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보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각각의 정신질환이 뇌의 특정한 영역이나 시스템의 결함이나 이상에 의해 생겼다는 것을 최초로 증명한 일이었다. 우리가 살아 있는 사람의 뇌를 열어볼 수는 없지만, 최소한 각기 다른 증상들이 다른 약에 의해 좋아진다는 것은 서로 다른 부분의 이상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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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정신질환 치료 약물은 뇌에서 정신질환 증상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이 다를 수 있고, 이에 따라 뇌의 신경전달물질에 변화를 주는 물질도 달라야 하는 것을 증명했다. <출처: gettyimages>



이후 신경과학자와 정신의학자들이 확신을 가지고 정신질환의 뇌 구조나 기능의 이상을 밝히기 위한 수많은 연구를 하기 시작했고, 지난 수십 년간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오는 시발점이 되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증상을 가진 정신질환의 경우는 생물학적 치료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지며, 정신질환을 의지의 문제거나 정신적 피로의 문제로 보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거나 종교에 의지하면 좋아질 것이라는 광범위한 대중적 오해를 종식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중요한 변곡점이라 하겠다.

이러한 약물의 도입은 진단체계를 발전시켰다. 과거에는 ‘미쳤다’는 하나의 설명뿐이었지만, 여러 가지 약이 등장한 이후에는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 정확한 진단이 중요해졌고, 각 질환을 설명하는 정확한 정신병리와 진단을 위해 꼭 필요한 증상 등을 묘사하고 관찰하는 데 이전보다 훨씬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1970년대 이후에는 정신질환을 생물학적 검사로 진단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도 함께 이어졌고, 정신의학의 발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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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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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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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4.09.1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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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네이버캐스트 ‘세계 최초의 정신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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