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정서에 대한 과학적 접근, 인지치료 - 우울증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치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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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03회 작성일 16-02-0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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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요. 다음 주에 구조조정이 있는데, 제가 그 대상이 될 게 분명해요. 지난번 직장에서도 일을 잘했는데도 제가 지목됐다고요.”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일을 한 것은 아니지 않아요?”

“그건 저도 알지만, 들어가는 회사마다 일 년이 되지 않아 실적이 나빠져요. 다 제가 쓸모없고 재수 없는 사람이라 그런 것 같아요.”

“직원이 천 명이 넘는 회사로 알고 있는데요. 당신이 그 회사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회사가 어려워졌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아니에요. 저는 옛날부터 그랬다고요. 제가 지은 죗값을 치르고 있는 거예요. 앞으로도 전 어디에 취직해도 잘 지내지 못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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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치료에는 정신분석적 접근방법이 1차적이나, 일반근로자가 매일 병원에 들러 치료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정신과 의사가 우울감과 절망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을 상담했다. 만일 정신분석가였다면 환자의 낮은 자존감, 지나친 죄책감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 정신분석적 접근을 제안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억압되어 있다가 성인기의 이러한 감정과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정신분석적 치료로 도움을 받았지만, 치료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다. 미국에서도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 사는 중상류층 이상의 여유 있는 사람들만 정신분석을 받을 수 있을 뿐 일반 근로자들이 주 4~5회씩 카우치에 누워서 수년간 치료를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정신분석의 단점을 극복한 인지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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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엘리스. 정신분석의 단점을 극복한 인지치료 방법을 도입했다. <출처: http://blog.creaders.net>



이러한 문제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의 경험이나 트라우마가 성인기 정신질환의 원인이라는 이론에 의문을 갖는 학자들이 늘어났다. 그중 한 명이 미국의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 1913~2007)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하고 정신분석가가 된 엘리스는 1940~1950년대에 본격적으로 환자들을 진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거 무의식의 기억을 깨달은 후에도 여전히 증상이 남아 있는 환자들이 있었고, 비용과 시간의 문제가 현실적인 장벽이 되어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던 중 생각의 방식이 문제라는 아이디어를 갖게 되었다. 즉, 현재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엘리스는 우울증과 같은 정서적인 문제가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에서 온 것이라 생각했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그 원인을 찾거나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결론을 미리 내리는 사람의 경우, 반복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어느덧 자동적으로 판단하는 버릇이 생기고 결국 감정까지 우울해진다. 점점 비합리적으로 빠르게 반응하는 자동적 사고가 무용하고 부정적인 방향의 습관적 사고방식을 만들어, 자신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확고하게 하는 것이다.

앞의 예와 같이 어떤 환자가 “앞으로도 나에게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내가 다니는 회사는 모두 망할 것이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비합리적인 신념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검토하면서 논박(disputation)해 본다. 정말 그런 생각이 합리적인지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사실은 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음에도 아예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알아본다. 왜냐하면 “물론 해봤지만 좋은 일은 절대 생길 리 없다”고 혼자 믿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흑백논리를 “회사가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나 하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그 대상이 될지 안 될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만일 해고당한다 해도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회사에 금방 들어왔듯이”처럼 가능한 한 객관적인 생각으로 바꿔주면서 합리적인 신념을 갖게 한다. 엘리스는 이런 식의 치료를 합리적 정서행동치료(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라 불렀다. 그는 수동적으로 환자의 말을 듣기만 하는 정신분석과 달리 환자에게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태도를 취했다. 엘리스의 치료법은 실용적인 면이 많아 1970년대 큰 인기를 끌었고, 정신분석으로만 마음과 정신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던 서구사회에서 새로운 문을 열었다.




치료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벡의 인지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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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 벡. 인지치료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출처: The Beck Institute>



엘리스가 초석을 닦아놓은 인지적 접근은 아론 벡(Aaron Beck, 1921~)에 의해 인지치료로 확립됐다. 그는 1946년 예일대 의대를 졸업한 정신과 의사로 1953년부터 정신분석가로 활동해 오다가 엘리스의 합리적 정서행동치료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인지치료 기법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그는 1960년대에 필라델피아에서 벡인지치료연구소(Beck Institute for Cognitive Therapy and Research)를 설립해서 지금까지 운영 중인데, 현재는 그의 딸인 주디스 벡(Judith Beck, 1954~)이 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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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인지치료연구소 전경. 애론 벡이 설립하고 운영중이며, 그의 딸인 주디스 벡이 2014년 현재 소장으로 있다. <출처: City-Data>



벡 역시 당시 유행하던 정신분석 수련을 받았으나 그 효용성이나 객관성에 의문을 가졌다. 2차대전 이후 활발해진 실험심리 분야에서 객관적 연구로 얻어지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증거들을 보면서 그는 치료 역시 연구와 실험을 통해 객관적으로 그 효용이 입증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당시 정신분석가들은 환자들의 변화나 치료 효과를 연구 자료로 내놓는 것을 정신분석의 특성이라는 이유로 거절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벡과 같은 신진 치료자들은 “정신분석은 신비주의적이다”라고 비판하는 경향이 점차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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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환자들은 인지삼제라는 특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데, 자기자신, 세상,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라는 3가지 인지적오류를 일컫는 말이다.



1960년대 초반에 우울증 환자들을 치료하던 벡은 환자들이 부정적인 생각과 결론을 자동적으로 떠올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자동사고(automatic thought)라고 하면서 우울증 환자들이 갖는 특징적인 사고방식을 인지 삼제(cognitive triad)로 분류했는데, 자기 자신, 세상,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었다. 벡은 이러한 왜곡된 생각의 버릇을 찾아내서 교정하면 정서와 행동 모두 호전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환자의 과거 경험이나 무의식적 욕망을 깊이 파고들지 않고, 현재 환자가 갖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지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는 정신분석적 접근과 완전히 배치되는 방식이었다. 정신분석이 사과나무에 달린 사과가 썩었을 때 보이지 않는 나무뿌리에 이상이 있다고 보는 보톰업(bottom-up)적인 접근인 반면, 인지치료는 사과 자체에 벌레가 생겼거나 충분히 햇볕을 못 받은 줄기의 문제로 보자는 일종의 톱다운(top-down) 식 접근이었다. 벡은 부정적 사고는 일종의 습관이며 삶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 역기능적 신념과 가정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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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 우울척도 검사지. 벡은 이외에도 벡 불안척도, 벡 자살생각척도 등 수많은 자가보고척도를 개발했다.



그는 자신의 치료법에 대해 점차 강한 신념을 갖고 실행에 옮겨나갔다. 치료 성과들을 학문적으로 검증받을 수 있는 학술잡지에 꾸준히 발표하여, 무려 600여 편의 인지치료 관련 논문을 게재했고, 25권의 책을 단독 혹은 공저로 저술했다. 그는 이후 우울증뿐 아니라 불안장애, 강박증 등으로 인지치료의 방법을 넓혀 나가서 특징적인 인지 왜곡과 그 치료법을 만들어냈다. 또 환자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벡우울척도(Beck depression inventory), 벡불안척도(Beck anxiety inventory), 벡무망감척도(Beck hopelessness scale), 벡자살생각척도(Beck scale for suicide ideation) 등 지금도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수많은 자가보고척도를 개발했다.

인지치료는 그 치료 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하여 생물학적 치료를 하는 연구자들이 정신치료에 가하는 비판을 적극적으로 방어해 내면서 생물학적 치료뿐 아니라 심리적 치료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냈다. 현재까지 주요 우울증 치료에서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알려진 것이 항우울제 약물치료와 인지치료 병합요법이라는 점은, 벡이 확립한 인지치료 기법이 비록 그 역사는 짧지만 효과적이고 의학적으로 객관적 검증이 가능하며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적용가능성이 높다는 장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일‘을 학습한 후 전기자극조차 피하지 않는 개



인지치료의 도입은 정신의학계가 우울증과 같은 정서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의학계에서 정신의학이 과학이란 이름으로 불리기에는 미흡하다고 보는 시선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지치료적 모델에 힘을 실어준 것이 우울증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셀리그먼의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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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셀리그먼. '학습된 무력감' 실험으로, 우울증을 객관적으로 입증했다. <출처: Best Counseling Degrees>





스티브 마이어. 마틴셀리그먼과 함께 인지치료적 모델에 힘을 실어주었다. <출처: College of Arts & Sciences>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 1942~)과 그의 동료 스티브 마이어(Steve Maier, 1943~)는 1967년 스키너의 행동주의 개념에 입각해서 다음과 같은 실험을 디자인했다.

먼저 여러 마리의 개들을 세 집단으로 나눠 우리에 집어넣었다. 첫 번째 집단은 한동안 우리에 가뒀다가 풀어주었고, 두 번째 집단에는 전기자극을 주고 버튼을 누르면 자극을 멈출 수 있게 했다. 세 번째 집단에도 전기자극을 줬는데 이때는 버튼을 눌러도 자극을 멈출 수 없게 했다. 세 번째 집단의 개가 느끼기에 전기자극은 끝을 낼 수 없으며, 언제 어떻게 올지 알 수 없는 사건으로 ‘피할 수 없는 일’이 분명했을 것이다. 세 집단 중 앞의 두 집단은 우리에서 풀려나오자 얼마 안 있어 바로 활발히 뛰어놀았지만, 세 번째 집단은 침울하고 먹이도 잘 먹지 않으며 혼자만 있는 행동을 보였다. 마치 우울증에 걸린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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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된 무력감' 실험. 전기자극을 통제할 수 있었던 두 집단의 개는 자극이 오면 손쉽게 반대쪽으로 넘어간다.



셀리그먼은 이어서 두 번째 실험을 시작했다. 우리를 반으로 나누어 전기자극이 오면 반대쪽으로 뛰어넘어 자극을 피할 수 있게 만들었고 앞서 실험했던 세 집단의 개들을 세팅한 우리에 넣었다. 전기자극을 통제할 수 있었던 두 집단의 개는 자극이 오면 손쉽게 반대쪽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전기자극을 받아온 세 번째 집단은 전기자극이 와도 그냥 누운 채 무력하게 있을 뿐이었다. 피하기 위한 시도조차 안 하는 것은 마치 우울증 환자의 증상인 무력감이나 정신신체 운동의 저하와 비슷했다.

셀리그먼은 세 번째 집단의 변화를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으로 설명했다. 이는 마치 사회에서 받은 반복적인 스트레스를 어떤 방법으로도 극복하거나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을 학습한 사람이 결국 무기력해지고 변화를 위한 시도도 하지 않으며 수동적인 상태로 현 상황을 부정적 사고로 합리화하여 우울증에 걸리는 임상 양상과 같았다.

물론 이런 실험모델은 일반화하기 어렵고, 특히 사람의 경우 전기자극과 같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실제 경험하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에 모든 우울증 환자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또한 사람의 성격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인식패턴에 따라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경향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이런 식의 객관적 모델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셀리그먼의 실험은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동물모델들이 만들어지면서 항우울제 개발이나 우울증의 생물학적 기전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현대의학적 방법론의 변화로 우울증 치료의 새방향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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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치료기법이 확립되면서, 우울증치료는 점차로 객관적 평가와 생물학적 변인에 대한 탐구, 정확한 목표증상에 대한 효율적인 치료라는 현대의학적 방법론에 발맞출 수 있게 되었다.



인지치료가 나오기 전까지 우울증이나 불안증은 의지가 약해서 생긴 문제 정도로 생각하거나, 어릴 때 심각한 정서적 트라우마로 인해 발생한 결과이므로 장기간의 정신분석이 필요한 문제로 여겨졌다. 그러나 엘리스와 백의 인지치료기법이 확립되고 우울증의 동물모델 실험으로 메커니즘이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윤곽이 잡히면서, 차차 우울증의 치료는 객관적 평가와 생물학적 변인에 대한 탐구, 정확한 목표증상에 대한 효율적인 치료라는 현대의학적 방법론에 발맞출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인지치료는 다양한 방향으로 확대발전된다. 행동치료적 접근을 강화하여 인지적 개입과 독립적으로 실생활에서 보상적 경험을 증가시킬 수 있도록 우울증 환자의 행동과 활동을 변화시키는 것이 인지치료만큼 효과가 있다는 행동활성화 치료(behavior activation therapy), 자살위험이 상존하는 경계성 인격장애1)환자의 치료를 위해 충동적으로 참을 수 없는 인지와 정서를 조절하는 능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개발된 변증법적 행동 치료(Dialectical Behavioral Therapy), 인지적 유연성을 증가해 행동과 정동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 수용과 마음챙김을 실용적으로 이용하는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commitment therapy)등이 이후 그 효과가 입증된 대표적 치료법들이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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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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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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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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