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서툰 손재주 때문에 알게 된 스트레스 개념 -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를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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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97회 작성일 16-02-0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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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gettyimages>



1936년, 이제 막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 대학의 교수가 된 내분비 의사 한스 젤리에(Hans Selye 1907~1982년)는 의욕적으로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고자 했다. 그는 1907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나 1929년 프라하에서 의사가 되었고, 미국으로 건너가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공부했다. 새내기 조교수 젤리에는 대학 내 다른 연구실의 생화학자가 난소 추출물을 분리해 낸 것을 보고 그 물질이 신체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아내는 연구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생화학자에게 부탁해서 난소 추출물을 얻어 쥐에게 주사한 후 쥐의 몸에서 발생하는 혈액, 조직의 변화를 추적‧관찰하는 것을 실험의 목표로 삼았다. 문제는 그가 타고나게 손재주가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먼저 우리 안에 있는 실험용 작은 쥐를 잡아서 난소 추출물 용액을 쥐의 몸에 주사해야 했는데, 발버둥 치는 쥐에 주사를 놓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젤리에는 툭하면 쥐를 놓치고, 버둥거리는 쥐에 주사바늘을 제대로 꽂지 못해서 여러 번 찔러야 했다. 실험대 위의 쥐를 놓치면, “어디 갔어!” 하면서 허둥지둥 도망가는 쥐를 쫓아다니기에 바빴다. 실험대 깊숙한 안쪽에 숨은 쥐를 밖으로 내몰기 위해 기다란 막대 빗자루를 밀어 넣거나 휘두르기도 했다. 이렇게 몇 달 간 힘든 작업을 반복한 후 드디어 실험한 쥐를 해부했다. 예상대로 쥐의 체내에서 상당한 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위에 궤양이 생겼고 부신이 비대해졌으며 면역조직이 위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젤리에는 이것이 난소 추출물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 생각하고, 대조군 실험으로 증명하기로 결심했다.




부담에 대한 신체의 일반적 반응, 스트레스



쥐를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쪽은 난소 추출물을, 다른 한쪽에는 생리식염수를 주사했다. 다시 한 번 지난하고 괴로운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여러 달이 흘렀다. 이제 생리식염수를 주사한 쥐 집단에서 이전과 같은 변화가 없다면 난소 추출물의 작용이 무엇인지 증명할 수 있을 것이었다. 기대에 찬 젤리에는 대조군 쥐의 배를 갈랐다.

그러나 첫 실험과 똑같은 결과에 젤리에는 자기가 쥐를 잘못 꺼내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식염수 집단의 다른 쥐를 꺼내서 해부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난소 추출물을 주사한 집단과 동일하게 위궤양, 부신 비대, 면역조직인 림프샘의 위축이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란 말인가. 젤리에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연구자라면 아마도 몇 달을 헛고생이라고 여기고 실험결과를 덮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젤리에는 대담하게 발상을 전환해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접근했다. 두 집단에서 모두 비슷한 조직 변화를 보였다는 것은 난소 추출물의 작용이 아니라, 젤리에 본인의 저주 받은 손재주가 원인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다. 쥐가 반복해서 주사를 맞고, 연구원의 손을 피해 도망가고, 빗자루에 쫓기는 등 매우 힘든 경험에 대한 일반적 반응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가설을 위해 젤리에는 쥐 몇 마리를 한겨울에 연구소 건물 지붕 위에 올려두기도 하고, 뜨거운 보일러실 근처에 두거나, 강제로 운동을 시키고, 외과적 처치로 배를 가르기도 했다. 그러고 난 다음 쥐를 해부해 보니 이번에는 그의 가설이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궤양과 부신의 비대가 실험에 사용한 모든 쥐들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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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의 개념을 발견한 캐나다의 의학박사 한스 젤리에 <출처: (cc) Szeder László at Wikipedia.org>



이런 관찰결과를 바탕으로 젤리에는 연구를 지속했고, 이러한 현상이 스트레스에 의한 생물체의 일반적 반응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켜 나갔다. 1946년 ‘일반적응증후군(general adaptation syndrome)’이라는, 지금은 아주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스트레스에 대한 개체의 적응과정을 확립했다. 1단계는 처음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개체가 몸 안의 긴장을 높이고 자원을 최대한 동원하는 ‘경보 단계’이고, 2단계가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같은 스트레스라도 이전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 못하는 ‘저항 단계’이며, 마지막 3단계가 심한 피로와 자원의 고갈로 인해 이제는 스트레스가 와도 반응하지 못하는 ‘소진 단계’로 진행한다는 이론이었다. 그는 또한 스트레스란 “부담에 대한 신체의 일반적 반응”이라고 정의하기도 했으며 1974년에는 스트레스가 꼭 나쁜 것만이 아니라 좋은 것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면서 전자를 디스트레스(distress), 후자를 유스트레스(eustress)로 나누는 등 스트레스 일반을 의학적 영역으로 가지고 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다윈, 적자생존의 원인을 스트레스로 분석해 내다



“스트레스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지금 제 증상은 스트레스 때문이에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스트레스는 아마도 가장 자주 사용하는 외래어 중 하나가 아닐까? 수천 년 전 인류는 병의 원인을 신의 벌이나 누군가의 저주에 의한 것이라 여겼지만, 현대인은 스트레스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우리 몸과 마음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젤리에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백 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스트레스란 원래 물리학에서 사용하던 단어로, ‘팽팽하다, 좁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strictus, stringere’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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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strictus의 뜻. ‘1.꽉죄는 2.간결한 3.엄격한’ 등의 뜻을 지니고 있는 ‘스트레스’의 어원이다. <출처: 네이버 라틴어사전>



고대 그리스 의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몸과 마음이 균형 상태에 있는 것이 가장 최적의 상태라고 여겼다. 히포크라테스는 건강함은 조화이고, 질환은 조화가 깨진 상태라고 하기도 했다. 우리 몸은 기본적으로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외부와 내부의 변화는 조화를 깨트리기 쉽고, 우리 몸은 이에 반응한 후에 다시금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려 한다. 조화로운 상태를 깨려는 모든 시도가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반응이 바로 스트레스 반응이다.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하려는 시스템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호르몬이 분비되어야 하고 이것이 체내에서 돌아다니기 위한 혈액순환과 폐쇄적 순환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호르몬이 피드백을 할 수 있는데, 진화론적으로 파충류와 조류 단계 이상에서부터 이러한 순환 시스템이 나타난다. 스트레스라는 개념과 항상성, 최적의 적응을 위한 시스템의 구축과 발전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진화론의 시조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년)이다. 다윈은 자연환경에 생명체를 위협하고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있고, 진화론적으로 자연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개체만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선택압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스트레스에 대한 개체의 반응은, 생리화 행동이 하나의 단위로 통합된 유기체 전체의 반응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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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자 찰스 다윈. 그는 진화론적으로 자연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개체만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선택압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몸을 외부와 교류하는 살아있는 기계라고 주장한 프랑스의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




한편 인간의 몸을 기계와 같다고 생각한 학자도 있었다. 프랑스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1878년)는 1865년 ‘기계론’을 제기하며 유기체는 항구적으로 외부와 교류하는 살아 있는 기계로, 열이나 습도의 변화와 같은 외부의 영향으로 내부 환경이 방해를 받으면 보호기능이 발동하여 내부 환경을 다시 만들어내지만, 실패하면 병이 들거나 죽는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산업혁명과 증기기관의 발명과 같은 기계의 비약적 발전이 인체나 유기체를 이해하는 방법에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었던 것 같다.




스트레스 반응은 개인의 주관적 평가에 따라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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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stress)’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미국의 생리학자 월터 캐넌



미국의 생리학자 월터 캐넌(Walter Cannon, 1871~1945년)은 1914년 내부 환경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려는 기능을 ‘항상성(homeostasis)’라고 하고, 내부 환경의 안정을 깨려는 외부의 방해요소를 ‘스트레스(stress)’라고 처음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카테콜아민(catecholamine)이라는 내분비 호르몬의 일종이 이 반응에 작동하며 그 중 콩팥 옆에 있는 작은 내분비계 기관인 부신에서 아드레날린(adrenalin)이 분비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1932년에는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은 ‘싸울 것이냐 도망갈 것이냐(fight or flight)’라는 반응태세로써 외부적 위협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생리적 반응을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이라고 했다.

이 여세를 몰아서 젤리에가 스트레스의 실체를 검증했고, 차차 우리 몸에서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존재와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으로 이어지는 축(HPA axis)의 피드백 순환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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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의 개인차에 대해 연구한 심리학자 리처드 래저러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분야는 생리학자나 의학자들의 관심사였는데, 그들도 대부분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타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반응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같은 자극이라도 어떤 사람은 심하게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에 의문을 품은 심리학자들은 이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학자가 리처드 래저러스(Richard Lazarus, 1922~2002년)였다. 1966년 ‘스트레스의 인지적 리허설’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래저러스는 스트레스 반응에 개인차가 있고, 객관적 사실의 크기나 심각성만큼 중요한 것이 주관적 평가이므로 스트레스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식하는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관적 평가의 중요성을 1) 어떤 사건이 개인의 인성에 미치는 영향, 2)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평가, 3) 상황을 새롭게 평가하는 것으로 나누어 이야기했다.

또한 래저러스는 어떤 사건의 해결 범위나 그에 대한 책임감이 한 개인의 적응 능력을 능가할 때 발생하는 불안감이 스트레스라고 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실제로 일어난 사건뿐만 아니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똑같이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고 신체 반응도 유사하며, 의학적 측면에서 스트레스에 대한 개개인의 해석과 반응이 중요하다는 것이 알려졌다.




현대인의 정신 치료에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은 ‘스트레스’



이렇게 스트레스의 개념은 다윈에서부터 시작하여 생리학자 젤리에와 심리학자 래저러스를 거치면서 상당히 정교한 이론으로 다듬어졌다. 이제는 일상생활의 많은 일들을 스트레스로 설명한다. 또 수많은 정신질환뿐 아니라 내과계 질환, 더 나아가 암의 진행이나 회복과 같은 중증 질환에 있어서도 스트레스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주목하고 있다. 또한 스트레스를 잘 조절하는 것이 병의 진행을 멈추거나 회복을 촉진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많은 실증적 연구와 치료적 방법론이 개발되어 있다. 아마도 현재 중증 정신질환을 넘어서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는 라이프스타일이나 인간관계의 갈등과 같은 가벼운 정신과적 문제의 대부분은 이 스트레스의 정도를 평가하고, 주관적 인식과 믿음체계를 인식하며, 부적절한 삶의 패턴을 찾아내어 그것을 교정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의 정신적 문제를 이해하고, 이를 정신의학의 측면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며, 또 치료적 도움을 주는 데에 있어서 스트레스란 개념은 그만큼 중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작은 바로 젤리에의 저주 받은 손재주였던 것이다. 젤리에에게는 자신의 어설픈 손재주와 쥐 실험과정이 무엇보다 엄청난 스트레스 아니었을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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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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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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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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