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알츠하이머 치매 - 내 머릿속에도 지우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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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76회 작성일 16-02-0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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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써보세요.”

51세의 여자가 의사의 지시에 따라 종이 위에 펜으로 자신의 이름을 적고 있었다. 앞머리의 철자를 쓰고는 마무리를 짓지 못한 그녀는 완전한 이름을 쓰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한 후 말했다.

“나는 나를 잃어버렸어요.”

의사는 여자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면 이름을 말해보세요.”

“아우구스테.”

“성은요?”

“아우구스테.”

“남편의 이름은?”

“음…… 아우구스테.”

“몇 살이죠?”

“오십……일.”

“어디 사시죠?”

“오…… 선생님, 우리 집에 와보셨잖아요.”

“지금 여기는 어디죠?”

“여기, 아니 모든 곳이요. 여기 지금…….”

점심식사로 이 여성이 돼지고기와 콜리플라워를 먹은 것을 확인한 의사가 물었다.

“점심에 뭘 먹었죠?”

(고기를 씹고 있으면서) “시금치요.”

“지금 뭘 먹고 있어요?”

“감자를 먹었고, 지금은 고추냉이를 먹어요.”

“5를 써보세요”라고 하자, 그녀는 ‘여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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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알츠하이머 치매환자로 발견된 아우구스테 데터(Auguste Deter)



아우구스테 데터(Auguste Deter, 1850~1906년)는 칼 데터와 결혼해 평범한 삶을 살던 중, 1890년 40세가 되었을 때부터 혼돈상태를 경험하고, 잠을 자지 못하며, 한밤중에 소리를 지르는 증상이 생겼다. 동시에 뿌리 깊은 부정망상(delusion of infidelity)으로 남편을 의심했다. 그녀는 집에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했고 주위에 있는 물건을 집어던졌으며 피살당하지 않으려고 방구석에 숨어 있었다. 남편은 아내를 더 이상 집에서 돌볼 수 없어서 1901년 11월 25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거기서 만난 의사가 알로이스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 1864~1915년)였다. 알츠하이머는 처음에 그녀를 일반적인 조현병 환자로 생각했는데, 그녀와 인터뷰를 할수록 인지 기능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치의를 병원 간호조수로 생각했고, 새로운 환경인 병원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자기 의견을 표명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알츠하이머는 그녀의 병세를 자세히 기록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사람을 알아볼 수도 없고, 시간과 장소를 올바로 인식하는 지남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기억력이 저하되었다. 마침내는 사지를 오그린 채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고 결국 1906년 4월 8일 사망했다.




15년 동안 뇌 조직 슬라이드를 꾸준히 정리한 알츠하이머 박사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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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정신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를 발견했다.



만일 그녀의 담당의사가 평범한 정신과 의사였다면 수많은 중증 환자 중 한 명으로 끝났을 테지만 알츠하이머는 달랐다. 당시 독일정신병리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정신질환의 원인을 뇌의 이상이라고 보았으며, 급속도로 발전하던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식을 의학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특히 독일은 루돌프 피르호(Rudolf Virchow, 1821~1902년) 같은 병리학자, 하인리히 코흐(Heinrich Hermann Robert Koch, 1843~1910년) 같은 세균학자 등의 영향으로 현미경을 이용하는 의학이 발달해 있었고, 알츠하이머도 그 흐름 안에 있었다. 그는 1864년 바바리아 주에서 태어나서 튀빙겐 대학, 베를린 대학 등에서 공부하다가 1886년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의대를 졸업했다. 그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시립 정신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같은 시기에 함께 일한 프란츠 니슬(Franz Nissl, 1860~1919년)은 조직염색법의 일종인 은염색법(silver staining)을 정착시켜, 조직학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알츠하이머는 뇌 매독환자의 두뇌 조직병리를 연구하면서 정신질환의 원인을 조직학적 방법론으로 찾아내고자 했다. 그는 사망한 뇌 매독 환자의 뇌를 해부하여 조직을 얇게 잘라 슬라이드에 놓고 조직 검사를 마친 뒤 슬라이드들을 정리해 두는 무미건조한 일을 15년 동안이나 계속했다. 한편으로 조현병 환자의 두뇌 구조도 연구했으나 뚜렷한 변화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데터의 사망 후 그녀의 조직에서 뚜렷한 병리현상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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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인의 뇌(왼쪽)과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오른쪽) 단면도 비교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왼쪽)과 정상인의 뇌(오른쪽) 크기와 모양 비교 <출처: 네이버 건강백과>




평소대로 그녀의 두개골을 열었는데, 육안으로 봐도 나이에 비해 뇌가 눈에 띄게 수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조직 검사를 해보니 신경섬유가 흐트러져 있고, 처음 보는 이상단백질 덩어리인 플라크(plaque)를 발견했다. 그후 데터와 유사하게 인지 기능의 저하가 뚜렷한 환자를 부검해 뇌 조직을 볼 때마다 이와 유사한 소견을 발견할 수 있었다. 1906년 11월 3일 아우구스테 데터는 알츠하이머 치매의 첫 번째 환자로서 <조기 발병하는 치매의 병리조직과 임상증상>에서 처음으로 발표됐다. 1910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이자 유명한 정신병리학자 에밀 크레펠린은 처음 발견한 알츠하이머의 이름을 따서 그의 정신과 교과서 8판에 ‘알츠하이머 치매’라 명명했다.

1915년 알츠하이머 박사가 사망한 후 그가 정말 치매 환자를 진료했는지 후학들이 의심을 갖고 비판했다. 1995년 뮌헨 대학 도서관 지하실에서 알츠하이머 박사가 처음으로 기록한 원본, 부검 소견, 그리고 환자의 슬라이드까지 발견되었다. 데터의 사례는 그 진료기록 내용을 옮긴 것이고, 이 발견으로 인해 그동안의 의심과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




신경영상학이 발달하면서 치매의 진단이 가능해지다



치매(dementia)는 기억력을 비롯해 언어 능력, 시지각 및 시공간 구성 능력, 관리 기능 등의 인지 기능이 연령이나 교육 수준에 비해 유의하게 저하되고, 이로 인해 대인 관계와 직업 기능 및 일상생활 기능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하는 복합적인 임상 증후군을 통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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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섬유매듭의 핵심 구성요인인 타우 단백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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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는 알츠하이머 치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DSM-IV1)는 혈관성 치매, 두뇌손상성 치매, 파킨슨병에 의한 치매, 피크병에 의한 치매 등 11가지 종류로 치매를 소분류하고 있다. 로버트 카츠만(Robert Katzman, 1925~2008년)은 1976년 이 중에서 가장 흔한 치매가 알츠하이머형 치매라고 발표했고 대략 전체 치매 환자 중 50~60퍼센트 정도로 추정한다. 이후 치매라는 것이 공공보건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질환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환자가 사망한 이후 부검해야만 특징적 병리조직으로 확인할 수 있기에 알츠하이머형 치매의 특징적 임상양상을 정확히 평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1984년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을 아밀로이드의 축적으로 보고 핵심적인 조직변형인 노인성 반(senile plaque)의 베타 아밀로이드(beta-amyloid)를 찾아냈다. 1986년에는 두 번째 중요한 병리조직인 신경섬유매듭(neurofibrillary tangles)의 핵심 구성요인인 ‘타우 단백질(tau protein)’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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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컴퓨터단층촬영(CT)나 자기공명영상법(MRI같은 영상의학적 진단법이 개발되면서 치매진단도 발전했다. <출처: gettyimages>



알츠하이머 치매는 신경섬유와 시냅스의 손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컴퓨터단층촬영(computed tomography, CT)이나 자기공명영상법(magnetic resonance imaging, MRI), 단일광자단층촬영(single photon emission computed tomography, SPECT)이나 양전자단층촬영(positron emission tomography, PET)과 같은 영상의학적 진단법이 개발되면서 진단적 방법론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과거에는 치매가 한참 진행된 다음에야 겨우 추정적 진단을 할 수 있었고, 사실상의 확진은 사망 후에 부검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그러나 핵의학적 영상학으로 SPECT에서 혈류의 저하를 측정하거나 세칭 ‘기능적 영상기법’인 FDG-PET을 이용해 치매 초기 특징적 부위의 조직 기능의 저하를 포도당 이용률 저하로 측정하여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치매를 진단할 수 있게 되었다.




노령 인구의 증가로 발현 가능성이 높아진 치매 유전자



진단만 하는 것은 치매에서 사형선고였을 뿐이다. 노령화가 진행되면서 치매로 진단되는 환자들이 늘어났고 이들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야 할 절박감도 커졌다. 다른 정신질환 치료제와 달리 치매와 같은 인지 기능 개선제는 1980년대 중반인 1986년이 되어서야 아세틸콜린(acetylcholine) 분해 억제제인 타크린(Tacrine)이 임상시험단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과거의 정신질환 치료제들이 우연히 발견된 것들이 많았던 점에 비해, 인지 기능 개선제는 미리 확립된 근거 있는 가설에 입각해서 개발되었다. 기억력과 가장 관련이 많은 뇌 신경전달물질 아세틸콜린과 치매의 연관성이다. 치매로 인한 병변은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줄인다고 생각하였고, 치료는 이 아세틸콜린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검증되어 시판된 약은 대부분 아세틸콜린과 관련한 약으로 주로 몸에서 아세틸콜린 분해 효소가 작용하는 것을 억제하여 시냅스 내에 아세틸콜린이 오래 남도록 하는 것이다.

1993년에는 알츠하이머 치매의 유전적 위험인자인 APOE-e4가 염색체 19번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같은 해에 처음으로 타크린이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다. 이 외에 NMDA 수용체 길항제인 메만틴(memantine)과 같은 약이 있고, 항산화제, 항염증제 등을 사용한다. 최근에는 알츠하이머 치매의 근본 원인으로 보이는 아밀로이드의 축적 자체를 예방해 주는 베타 아밀로이드 길항제가 개발되어 임상시험 중에 있다. 1999년에는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처음으로 알츠하이머 치매를 예방하는 백신실험에 성공했다. 이 주사를 맞으면 베타 아밀로이드를 덜 생성하고, 노인성 반과 같은 치매의 병리적 뇌변성을 막을 수 있었다.

치매가 대중적 관심을 받고, 공공보건의 중요한 요인의 하나가 된 것은 사실상 의학의 발달과 전반적 보건위생의 발전, 문명화로 인한 인류의 평균수명의 비약적 증가와 직접적 연관이 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환갑잔치가 큰 행사였듯이 60세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축복을 받을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급속한 노령화 진행이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평균수명이 높아졌고, 신체적으로 건강한 노인의 수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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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가 주요사망원인으로 약진하면서, 한국에서도 치매예방을 위한 검사, 검진 지원이 늘어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진화론적으로 보면 치매 유전자가 발현하기 전 사고나 감염 등으로 중장년기에 죽는 이들이 많았기에 치매 유전자는 수백만 년 동안 우리 몸 안에 존재해 있었다. 인간의 생존에 부적합한 대부분의 유전자들은 생존경쟁과 진화론적 선택과정에서 도태된 개체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이 치매 유전자는 매우 치명적인 뇌변성을 가져오는 정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발현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조용히 우리 몸 안에 내재해 있었다. 그러다가 20세기 이후 우리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노인 인구의 증가, 즉 고연령 개체의 절대수의 증가는 적은 확률이지만 치매와 관련한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서 노인성 반이나 신경섬유매듭을 만들어 인지 기능만 빠른 퇴화를 가져오는 치매라는 병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평균수명의 증가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실제로 2010년 미국에서는 20세기 초반 주요 사망원인이던 감염질환은 순위권 밖으로 벗어난 데 비해 치매가 6번째 사망원인으로 약진하였다. 우리나라도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연구팀이 진행한 ‘2012년 치매 유병률 조사(보건복지부, 2013)’ 결과, 2012년 기준 치매 유병률이 65세 이상 노인의 9.18퍼센트인 54만 1,000명(남성 15만 6,000명, 여성 38만 5,000명)으로 나타났다. 이 중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71.3퍼센트, 혈관성 치매는 16.9퍼센트, 기타 치매는 11.8퍼센트이다. 현재의 노령화 추세대로 가면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 환자 수가 2030년에는 약 127만 명, 2050년에는 약 271만 명으로 매 20년마다 약 2배씩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알츠하이머가 처음 치매 환자를 찾아내고 진단할 때만 해도 이 병이 주요한 상위권 질환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겨우 백 년 사이에 평균수명이 두 배가 되었고 인구의 10퍼센트 가까이가 60세 이상인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살아가는 동안 치매를 만날 가능성이 확연히 늘어나버린 극적인 환경의 변화가 있으리라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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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치매 유병률 9.18%, 치매환자 수 20년마다 2배씩 증가, (복지로)



DSM-IV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정신장애에 대한 진단 및 통계 편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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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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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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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4.12.08.



주석


1DSM-IV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정신장애에 대한 진단 및 통계 편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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