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헨리 코튼의 국소 감염 치료법 -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이를 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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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35회 작성일 16-02-0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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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마사 허위츠(Martha Hurwitz)는 1921년 미국으로 이민간 후 동부의 트렌턴 시에 살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알코올 중독에 무책임한 사람이었고, 정부의 생계비 지원도 끊겼다. 겨우 버텨나가던 마사는 정신병 증상을 보였고 공격적인 행동을 하여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없었다. 가족들은 처음 필라델피아의 정신병원에 입원시켰고, 다행히 증상이 호전되어 퇴원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말이 많아지고 부산해졌으며 행동이 많아졌다. 지금으로 치면 양극성정동장애(조울병)의 조증 삽화와 유사한 증상이었다. 1928년 12월 허위츠의 부모는 당시 유명한 주립정신병원이었던 뉴저지 주의 트렌턴 주립병원에 그녀를입원시켰다.

허위츠를 진찰한 의사는 ‘패혈성 정신병, 정신분열병’이라고 진단했다. 그 근거는 9개의 금니를 채워 넣어 치료한 치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정신병 치료를 위해 바로 ‘국소 감염 제거’를 받아야 했다. 그때부터 타이푸스 백신을 세 차례 맞았고, 편도 절제술을 받았으며, 이를 여러 개 뽑았다.

몇 달 후 허위츠는 회복판정을 받고 퇴원했지만 1929년 늦여름 남편과 이혼 협의를 하던 중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은 후 예민하고 신경질적이 되어 트렌턴 병원에 재입원했다. 기이한 정신상태가 계속된다고 판단한 의료진은 그녀의 남은 치아 14개를 모두 뽑았고, 위장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 결장관장을 한 번에 20회 연속으로 시행했고, 자궁경부 응고술과 칼슘 요법 등을 시행했다. 치료가 효과적이었는지 1930년 6월 허위츠는 결국 호전이 되었다는 판정을 받고 퇴원할 수 있었다. 트렌턴 병원의 의료진은 그녀를 ‘국소 감염증으로 중증의 정신질환이 생긴 것을 외과적 시술로 완치시킨 성공적 사례’로 기록했다.

여기까지 읽다 보면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분명히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환자인데 이를 뽑고, 관장을 한다고? 거기다가 ‘패혈성’, ‘국소 감염’이란 단어가 정신과 진단에 포함되어 있다고? 신체 어떤 부위에 생긴 감염이 피를 타고 뇌로 퍼져서 이상행동을 하는 정신 증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며, 이 이론에 따르면 감염 부위를 제거하고, 관장 등을 통해 독소를 제거하는 것이 치료법이라는 논리다. 1920년대 초반부터 십여 년간 미국과 유럽의 일부 정신병원에서 실제로 시행된,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생물학적 치료법이었다. 이런 치료를 확립하고 널리 퍼뜨린 사람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 헨리 코튼(Henry Cotton, 1876~1933년)이다.




정신질환자의 수용소 격리 치료를 극복하고자 한 헨리 코튼과 생물정신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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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스컬의 <현대정신의학 잔혹사> 표지. 정신병 환자 허위츠에게 치아를 뽑고 결장관장, 편도절제술 등의 외과치료를 실시한 사건을 밝혔다.



뚜렷한 치료법이 없던 당시 정신의학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흐름을 갖고 있었는데, 하나는 정신분석을 포함해서 ‘결국 마음의 문제’라는 심인론(心因論)에 기반한 흐름과, ‘정신질환은 생물학적 뿌리를 갖고 있다’라는 전제에서 시작한 흐름이었다. 생물학적 치료에 대한 시도가 지속되는 이유는 의사들이 기본적으로 과학자로 훈련을 받았고, 당시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첨단의학과 생리학 등의 지식을 생명을 구하는 데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컸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수십 년 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었다. 그러던 중 사회학자 앤드류 스컬(Andrew Scull)에 의해 발굴되어 2005년 『현대정신의학 잔혹사(Madhouse: A tragic tale of megalomania and modern medicine)』에서 처음으로 낱낱이 밝혀졌다.

190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 중증 정신질환의 치료는 그저 시설에 수용하는 것이 전부였다. 환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주립병원도 수용 인원의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되어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졌으며 정부 예산도 초과하기 일쑤였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치료를 위해 해줄 것이 없다는 것은 환자뿐 아니라 정신과 의사의 사기를 꺾어놓고 무력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입원이 필요한 수준의 정신질환자는 본질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하고 선천적으로 잘못 태어났기 때문에 그저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정신과 의사의 주요한 역할이라고 믿었던 시기다. 세상은 그들을 ‘수용소 의사’로 불렀고 세부적인 행정업무와 보고서 작성으로 그나마 환자를 돌볼 시간도 없었다. 치료되지 않는 환자는 사회에서 일단 격리시켜 주립병원에 수용했는데, 입원환자가 갈수록 늘어나기만 하여 환자의 환경과 처우는 점점 더 나빠졌다. 의사 1인당 담당해야 할 환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아예 손을 놓아버리는 사람마저 생기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그즈음에 독일에서 정통 정신병리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넘어와 자리를 잡은 정신과 의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크레펠린 등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객관적 평가와 정신병리의 평가, 과학적 방법론으로 정확히 정신질환을 분류하고 진단하면, 적절한 치료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또 그들은 정신질환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당시 방법론이 발달하기 시작한 해부학, 생리학 등을 도입했다. 이들은 특히 전신마취법이 개발되면서 수술 방법이 획기적으로 발달한 외과에 비교하면서 정신질환의 해결도 그에 상응해 발전시킬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의사들 중 한 명이 아돌프 마이어(Adolf Meyer, 1866~1950년)였다.




현대의학 전문가를 총망라한 종합병원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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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생물학의 제창자인 미국 정신의학자 아돌프 마이어 <출처: wikipedia>



스위스 태생인 마이어는 1892년 미국으로 건너간 정신생물학의 제창자로 존스 홉킨스 병원의 주임교수였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뜬 구름 잡는 허황된 이야기라 평가절하할 정도로 강경한 생물학 기반의 정신과 의사였다. 정신질환은 뇌 질환이라는 빌헬름 그리징거(Wilhelm Griezinger, 1817~1868년)의 이론을 지지한 마이어의 미국인 제자 중 한 명이 헨리 코튼이었다. 야심 많은 코튼은 1906년 정신의학 선진국인 독일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크레펠린, 니슬, 알츠하이머와 같은 정신의학계의 대가들을 사사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런 그를 아돌프 마이어는 적극적으로 후원했고, 덕분에 1906년 트렌턴 주립병원의 원장으로 부임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 파스퇴르의 발견 등을 토대로 의학계에서 세균과 감염의 상관관계가 명확해졌다. 티푸스균, 말라리아의 원인균, 결핵균 등이 확인되면서 감염이 인간 질환의 제일 중요한 원인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런 의학계의 거대한 흐름을 정신의학계도 눈여겨보았다. 정신질환이 뇌를 포함한 신체의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는 생물학적 기원론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감염이란 일종의 복음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과거에 생물학적 원인론은 정신질환의 원인을 태생적인 발달적 이상으로 봤기에 치료할 수 없는 문제였지만, 감염은 같은 생물학적 원인론임에도 원칙적으로 치료가 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치아의 감염이 패혈증으로 진행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사소해 보이는 국소 감염이 전신적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금은 상식 차원의 의학적 발견들이 전문가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그 개념의 적용이 점차 넓어지기 시작했다.

1900년대 초반에는 충치, 장내세균 등의 국소 감염이 정신증상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으로까지 차차 확대되어 이어졌다. 스코틀랜드의 정신과 의사 루이스 브루스(Lewis Bruce)는 1906년 “초기 급성 정신질환에 예외 없이 동반되는 소화관 장애를 치료해야 한다. 충치는 지속적인 독소혈증의 한 원인이므로 빨리 제거해야 한다”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을 코튼은 매우 인상적으로 받아들였고, 트렌턴 주립병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자신의 심증을 확인하기 위한 행동에 돌입했다. 먼저 인력을 충원해서 정신과 병원에 세균학자, 내과의사, 외과의사, 부인과 의사, 치과의사, 병리학자 등을 고문으로 두었고, 당시는 흔치 않던 영상의학과 의사와 구강외과 의사를 직원으로 고용했다. 트렌턴 병원은 현대의학 전문가를 망라한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종합병원이 되었다.




사망환자 23명 vs 회복환자 2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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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코튼은 정신병 치료를 위해 환자의 치아를 뽑았다. 1921년 1년간 총 6,472개의 치아를 뽑았는데 한명당 10개 꼴이었다. <출처: wikipedia>



코튼은 정신분열증, 조울증과 같은 중증 정신증상이 발생하는 초기에 그 원인이라 추정되는 감염병소를 제거하면 병이 진행하는 것을 막고 더 나아가 치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장 먼저 주목한 곳은 치아였고, 차례로 편도선과 장이었다. 치과의사의 검진과 엑스레이 등을 통해 감염이 발견된 환자의 치아를 뽑기 시작했다. 1921년 1년간 트렌턴 주립병원에서는 총 6,472개의 치아를 뽑았는데, 이는 입원환자 1명당 10개에 해당했다. 위장과 대장 등 장내세균에 의한 감염도 중요한 원인으로 보고 회장의 끝 부분, 맹장과 결장의 첫 부분을 절제하는 ‘발생적 결장 재건(developmental colon reconstruction)’이란 수술법을 고안해서 환자들에게 실시하기 시작했다.

1919년부터 1년간 이 수술을 받은 환자 79명 중 21명이 회복되고, 23명은 수술 후 사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뾰족한 치료법이 없던 정신의학계에서 코튼의 이런 공격적인 치료법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돌파구를 찾던 의사들에게는 사망한 23명보다 회복된 21명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는 여성을 대상으로 난관 절제, 자궁경부 적출을 하기도 했고, 증세가 덜한 환자들에게는 하루에 수십 번 관장을 실시하는 장청소술을 실시했다. 집계에 따르면 그들은 1918년부터 7년간 개복수술을 약 2,186회 실시했다. 코튼은 1919년 자신의 치료 실적을 《뉴욕 의학 저널(New York medical journal)》에 발표했고 대중강연을 하면서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이야기하는 무의식이나 심리적 원인을 주장하는 측과 분명히 선을 그으며 정신장애는 신체적 이상에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위대한 선구자의 업적에 묻힌 불행한 죽음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코튼이 시행하는 수술법의 근거가 미약하고, 무엇보다 이 수술로 인한 사망자나 불구자가 양산되고 있음에도 이 부분이 축소 보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자 마이어에게 조사가 의뢰되었고, 그는 자신의 제자 필리스 그린에이커(Phyllis Greenacre, 1894~1989년)를 병원으로 보내 과거 진료기록을 면밀히 조사하고, 실제 치료를 받은 환자들을 만나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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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어의 제자 필리스 그린에이커. 헨리코튼의 국소감염 수술치료법이 지나치게 사망률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출처: openi>



1년 6개월에 걸친 조사를 통해 그린에이커는 헨리 코튼의 국소 감염에 의한 수술적 치료법이 지나치게 사망률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술 후 6명 중 1명이 사망했고, 40퍼센트는 수술을 받은 후 증상의 개선이 없거나 후유증 때문에 퇴원하지 못했다. 그녀는 “해독치료법의 긍정적 효과를 입증할 증거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만 코튼은 이런 조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생물정신의학을 주창하던 마이어도 이 보고서를 채택해서 공표할 경우 발생할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보고서는 유야무야되었고, 그린에이커도 다른 도시로 취직하면서 이 모든 조사 결과는 묻혀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코튼은 1930년 병원장을 그만둘 때까지 지속적으로 수술요법을 시행할 수 있었다.

그가 퇴임한 다음에도 그의 추종자인 로버트 스톤(Robert Stone)이 원장이 되어서 대세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트렌턴 주립병원에서 수술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문제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뉴저지 주 기관 및 단체국 조사실장인 에밀 프랭클(Emil Frankel)이 1932년 병원 기록을 면밀히 조사하기에 이르렀다. 수술을 받은 수백 명의 환자와 수술을 받지 않은 다른 환자들의 치료 결과를 분석해 본 결과 코튼이 발표한 통계자료에 상당한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결장절제술을 받은 309명의 환자 중 회복 환자는 코튼이 발표한 대로 75명이 아니라 겨우 22명뿐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 수술보다 적은 부위를 절제하는 결장 주변 막절제술을 받은 환자들의 경우도 336명중 148명이 완치되었다는 주장과 달리 42명만 회복되었다. 이는 비수술환자의 회복비율보다 현저히 적은 수치였다. 무엇보다 문제는 수술을 받은 309명 중 138명이 사망했고, 101명이 여전히 입원치료 중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치료가 목적이라 해도 3명 중 1명이 죽는 것은 합리화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보고서도 파장을 의식해 관계자에게만 배포되었고 나중에 알려지게 된다. 코튼은 끝까지 처벌받거나 공격당하지 않은 채 자신의 주장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다가 1933년 5월 사망했다. 아직 이러한 문제가 알려지지 않은 시기였기에 언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의 사망’으로 보도했고,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에서도 그를 위대한 선구자로 칭하며 그의 인도주의자적 영향을 추모한다고 했을 정도다. 이후에도 트렌턴 주립병원에서는 발치와 편도 제거, 발열요법, 관장 등이 1940년대 초반까지 광범위하게 실시되었다.




환자의 인권과 안전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이미 1925년에 주류 정신의학계에서는 코튼의 이런 치료법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음에도 기득권을 보호하는 데 급급했다. 그 결과 한동안 국소패혈증에 의한 감염론이 정신질환의 주요한 원인으로 인지되면서 수술요법이 결정적 치료법으로 실행되었다. 이 때문에 불필요한 수술이 수없이 자행되었고, 사망하거나 평생 수술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어차피 저렇게 살다가 죽을 사람들, 위험한 시술을 받더라도 몇 명이 회복된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당시 코튼의 병원 의사들이나 의료진, 더 나아가 환자의 가족들까지도 갖고 있지 않았을까? 더욱이 성공한다면 명성을 얻을 것이라는 의사로서의 공명심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니 결국 뒷전으로 밀린 것은 환자의 인권과 안전, 그리고 의료윤리였다. 트렌턴 주립병원에서 시행된 국소 감염 치료는 과학의 진보를 맹신하면서 자신의 신념만이 옳다고 여긴 일부 학자이자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비이성적 행동의 역사적 사례로 길이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과학의 진보와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방어막을 만들지만 이것이 인간의 생명존중과 환자의 인권보호라는 더욱 근본적이고 중요한 부분을 뒤로할 때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반복해서 볼 수 있었다. 현대의학에서 미지의 질환, 정복하지 못한 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욕망은 여전하다. 그렇지만 그 모든 욕망도 의료윤리와 생명 존중의 가치 앞에서는 우선순위를 양보해야만 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한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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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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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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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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