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사이코패스 개념의 발달 - 악의 화신인가, 정신질환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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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54회 작성일 16-02-0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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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8월 16일 솔트레이크 인근에서 순찰하던 경찰이 낯선 비틀 한 대를 발견했다.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번호판을 조회하려고 다가가자 차는 갑자기 속도를 높여 달아났다. 이에 경찰은 차를 추적해서 운전자를 체포하고 차 안을 수색했다. 쇠지레, 스키마스크, 수갑, 철사, 얼음송곳 등 수상한 물건들이 발견되었고, 마침내 여성들을 납치해 성폭행한 후 살해한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Ted Bundy)의 범행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희생자의 몸에서 발견된 잇자국, 납치 살해범을 굴복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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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Ted Bundy). 교묘한 수법으로 수십명의 여성을 납치,살해하여 사형당했다. <출처: wikipedia>



테드 번디는 1946년 11월 24일 미국 버몬트 주의 한 미혼모 시설에서 엘리노어 루이즈 코웰(Eleanor Louise Cowell)의 아들로 태어났다. 필라델피아에서 조부모, 어머니와 함께 살던 테드는 어머니를 따라 터코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가 5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와 결혼한 군병원 요리사 조니 번디(Johnny Bundy)의 성을 따라서 시어도어 번디(Theodore Bundy), 즉 잘 알려진 ‘테드 번디’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내성적인 소년이었던 번디는 고등학교 진학 후 사교적이고 매력적인 십대로 자랐고,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아 퓨젓사운드 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워싱턴 대학으로 옮겨 심리학을 전공했고, 교수들의 총애를 받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한때 워싱턴 주지사 선거운동원을 하며 정치에 관심을 갖기도 했고, 법률공부를 하기도 했다. 이런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번디는 아마도 1973년경부터 젊은 여성만 골라서 납치하고 살인하는 연쇄살인마가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번디를 체포한 후 최근 벌어진 몇 개의 실종사건에 대해 그를 취조했다. 납치되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캐롤 다론치(Carol DaRonch)가 용의자를 지목하는 라인업에서 정확히 테드 번디를 범인으로 가리켰다. 그는 범행일체를 부인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희생자가 실종된 마을에서 신용카드로 연료를 구입한 기록, 팔다리가 부러진 의료기록이 없는데도 번디가 깁스를 하고 다니는 걸 봤다는 친구의 증언은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되었다. 그러나 결정적 증거가 없었기에 검찰은 일단 캐롤 다론치의 납치사건에 대한 범인으로 기소했다. 당일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없었던 번디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수감된 후 그가 받은 심리평가에 따르면 그를 정신분열증, 기분장애, 알코올 중독, 뇌손상, 지능저하, 인격장애 환자로 진단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찰은 폭스바겐 비틀 안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이 희생자 캐린 캠밸(Caryn Cambell)의 것일 가능성이 있고, 차량에서 발견된 쇠지레의 형태와 그녀의 두개골이 함몰된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을 근거로 번디를 살인죄로 기소했다. 수세에 몰린 번디는 변호사를 해고하고, 직접 자신을 변호했다. 변론 준비를 위해 법원 도서관에서 법전을 보며 서류작업을 하겠다고 요청하여 정기적으로 도서관을 방문했는데, 1977년 6월 7일,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탈옥에 성공했다. 일주일의 수색 작업 끝에 다시 체포되었지만 이에 굴복할 테드 번디가 아니었다. 12월 30일 그는 수감 중이던 독방 천장을 뚫고 두 번째 탈옥에 성공하였고, 이번에는 멀리 플로리다로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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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번디가 범죄에 사용한 폭스바겐 비틀. 현재 미국의 국립 범죄&형벌박물관(National Museum of Crime & Punishment)에 전시되어있다. <ⓒ greyloch>





1979년 테드 번디의 재판장면. 희생자의 몸에 남은 잇자국과 그의 치열이 동일하다는 것이 입증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 Mark T. Foley>




이후 조용히 숨어서 살았으면 그는 잡히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의 살인 본능은 플로리다에서 다시 솟아올랐다. 크리스 헤이건(Chris Hagen)이라는 가명으로 숨어지내던 그는 1978년 1월부터 플로리다 대학의 여학생들을 납치해 살인을 저질렀다. 기숙사 방에서 마스크가 발견되었으나 당시에는 컴퓨터나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경찰은 다른 주에서 벌어진 사건과의 연관성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2월 15일 번디의 차량이 훔친 것임을 알아낸 경찰은 그를 검거했고, 결국 그가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는 것이 바로 밝혀졌다.

재판이 시작되었지만 피해자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에 그가 범행을 부인하는 한 살인죄를 입증하기 어려웠다. 이때 한 치의학자가 희생자의 몸에서 발견된 잇자국이 번디의 치열과 동일하다는 것을 입증하자, 7월 30일 드디어 배심원들은 그를 유죄로 판결했다. 그러자 1980년 1월부터 번디는 변호사를 고용해서 정신이상으로 인한 무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력한 증거들이 제시되면서 결국 그는 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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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번디의 실화는 이후 범죄영화 및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크리미널 마인드>(왼쪽) 및 <양들의 침묵>(오른쪽) 포스터



번디는 최소한 30명, 많게는 100명의 여성을 납치·살인했던 것으로 추정하는 역사적인 연쇄살인범이었다. 일반적인 범죄자들의 험악한 인상과 달리 훤칠하고 매력적인 외모였으며, 지적이고 상냥한 말투였던 그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 사람들은 그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의심하기보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얼굴과 말투만 봐서는 그가 연쇄살인범에 성범죄자라는 것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살인죄로 사형이 판결이 난 다음에도 전국에서 그를 흠모하고 그의 결백을 믿는 사람들의 편지가 쇄도했다. 그중 한 명인 캐롤 앤 분(Carol Ann Boone)과 옥중에서 결혼하기도 했으며, 그녀는 그가 사망한 후에 그의 딸을 낳았다. 1989년 1월 24일 번디는 전기의자에 앉아 사형당했다.

번디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그에 관한 여러 권의 서적이 출간된 바 있고, 미국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나, 영화 <양들의 침묵> 등에 등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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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유명한 연쇄 살인범 찰스 맨슨(Charles Manson) <ⓒ California Department of Corrections and Rehabilitation>



테드 번디, 또 한 명의 유명한 연쇄살인범 찰스 맨슨(Charles Manson), 우리나라의 강호순이나 유영철처럼 반복적으로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도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 특히 테드 번디나 강호순은 선량해 보이는 겉모습만으로는 도저히 범죄자라고 예측할 수 없다. 우락부락하거나 눈매가 날카롭고 위험해 보이는 유형이라면 본능적으로 경계할 텐데, 이런 호감형의 사람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수십 명의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적 경보시스템이 무용지물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혼란을 가져왔다.

‘사이코패스(Psychopath)는 그저 범죄자일까, 아니면 심한 정신질환자일까? 범죄자라면 감옥에 가야할 것이고, 정신질환자라면 치료의 대상이 될 것이다. 감옥이나 정신병원이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180도 다르다. 테드 번디가 그랬듯이 자신을 정신질환에 의한 행동으로 방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현대 사법체계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다중인격장애를 주장해서 변호사를 속여 살인죄를 모면한 사이코패스가 나오는 <프라이멀 피어>의 주인공 애런 스탬플러(Aaron Stample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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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멀 피어>의 주인공 애런 스탬플러 역시 영리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사이코패스이다. 그는 다중인격장애로 위장하여 변호사를 속인다. <출처: 네이버 영화>






사이코패스의 정의와 개념의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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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필립 피넬.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출처: Bridgeman Art Library>



‘사이코패스’란 단어는 1801년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필립 피넬(Philippe Pinel, 1745~1826년)이 처음 사용했다. 그는 정신이 혼미한 섬망이 아닌 상태에서도 광기를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정신분열증 같은 질환이 없고 이해력도 충분한 상태임에도 사회통념에 벗어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사이코패스라고 지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psycho)에 병(pathology)이 있다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어찌 됐건 사이코패스는 일시적으로 있다가 사라지는 현상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이나 불면증은 평생 지속되기보다 몇 달 혹은 몇 년간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그러나 사이코패스적 성향은 십대 중반부터 명확해져서 성인이 된 다음,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건 일관된 문제를 일으킨다. 더 나아가 우울증이나 불면증 환자는 자신의 문제를 고치려고 노력하는 데 반해, 사이코패스는 자신이 남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인격장애의 특징적인 면이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나 판단, 정서적 반응이 자아동조적(ego-syntonic)이라는 점이다. 괴로워하는 사람은 그의 주변 사람들이거나, 그의 먹잇감이 되는 피해자들이다. 그런 의미로 인격장애 분야의 선구적 연구자 시어도어 밀론(Theodore Millon, 1928~2014년)은 정신과에서 규정한 첫 번째 인격장애로 사이코패스를 지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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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정신병리학자 쿠르트 슈나이더(Kurt Schneider). 그는 사이코패스들이 사람을 조종하는데 능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출처: The Trench Line>



그러나 사이코패스가 꼭 범죄자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들이 사회에서 큰 성공을 거두거나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일이 빈번하다. 독일의 정신병리학자 쿠르트 슈나이더(Kurt Schneider, 1887~1967년)는 이를 간파했다. 1923년에 사이코패스를 정의하면서 젊은 시기에는 방탕한 생활을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있는데 비윤리적 행위를 서슴치 않고 사람들을 조종하는 데 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초기의 언급들을 모아서 처음으로 통합적으로 정리한 사람이 허비 클렉클리(Hervey M. Cleckley, 1903~1984년)다. 그는 1941년 『온전함의 가면(Mask of Sanity)』이라는 책에 사이코패스에 대해 가장 통찰력 있고 광범위하게 묘사했다. 사이코패스가 겉으로 볼 때에는 멀쩡해 보이는 이유가 그들이 정신적 문제를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는 이 책에서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16가지로 정리했다.


1) 피상적으로 상당한 매력과 평균 또는 그 이상의 지능

2) 망상 또는 기타 비합리적 사고가 없음

3) 불안이나 다른 ‘신경증’ 증상이 없음. 상당히 침착하고 유창함

4) 신뢰성이 떨어지고, 책임을 등한시함 : 거의 중요하지 않거나 크게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는 책임감이 없음

5) 진실되지 못하고 성실치 못함

6) 자책과 수치심이 없음

7) 적절한 동기가 없고 잘 계획되지 않으며 불가해한 충동에서 일어나는 반사회적 행동

8) 판단력이 빈약하고 경험을 통해 학습하지 못함

9) 병적으로 이기적이고, 완전히 자기중심적임 : 참된 사랑과 애정을 나눌 능력이 없음

10) 일반적으로 깊고 지속적인 감정이 빈곤함

11) 참된 통찰력이 부족하고 제3자의 안목으로 자기 자신을 보는 능력이 없음

12) 특별한 배려, 친절 및 신뢰에 대해 배은망덕함

13) 음주 후나 때때로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조차 괴상하고 불쾌하게 행동함 : 천박하고 무례하며, 기분이 자주 바뀌고 짓궂음

14) 진짜로 자살을 기도한 적이 없음

15) 성생활 개성이 없고, 무의미하며,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함

16)세워놓은 인생의 계획을 제대로 따르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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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비 클렉클리의 저서 『온전함의 가면(Mask of Sanity)』. 최초로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통합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초기에 사이코패스를 진단하는 데 죄의식 없는 범죄행위로 국한했다면 여기에서는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고, 교묘하게 사람들을 조종해서 이득을 취하는 등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도 충분히 사이코패스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연구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 DSM) 1판과 2판에 반영되었다. 이때부터 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후 실증적 연구에서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진단되는 사람들에게서 범죄적 경향이나 공격적 행동들이 뚜렷하게 많이 관찰되었다. 그래서 1980년 DSM 3판부터는 범죄 행동을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진단기준이 좁혀진다. 이후 DSM 4판에는 고전적인 ‘공감과 후회의 결여’가 추가되었지만 전체적인 틀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이 진단 기준은 정신병리의 묘사에만 치중해서 결국 범죄자들만 진단받을 뿐, 정상적인 사람들의 문제를 평가하고 치료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더욱이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인격장애’라는 큰 범주 안에 속하게 되다 보니, 기본적으로 인격이 형성되는 청소년기 후반에서 20대 초반부터 드러나 오랫동안 지속되는 행동 특징이 되었다. 이렇게 되다보니 다른 인격장애를 설명할 때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18세 이전부터 두드러지게 문제행동을 보이는 경우에는 ‘품행장애’라는 다른 독립 질환으로 진단하여 ‘소아청소년 정신질환’의 범주에 소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사실 사이코패스는 성인기뿐 아니라 어린 나이에서부터 상당한 문제를 보이는 것이 특징적인데, DSM의 진단체계는 소아청소년기의 문제행동과 성인기의 인격장애를 큰 범주에서 구분해 버려 불합리한 면이 있었다.




생물학적 연구의 결과 밝혀진 사이코패스적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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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는 어린나이에서부터 문제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공격적인 행동이 부모/교사등에 국한되고 명확한 범법행위를 하지 않고 또래 친구들과 잘 지내면 일반적인 적대적 반항장애로 진단한다.



그러다 보니 품행장애에 대한 연구는 10대의 문제행동을 평가하고 관찰하여 자라면서 자연경과로 좋아지는 유형과 성인기에 전형적인 사이코패스가 되는 유형을 구별하는 데 소아정신과 의사들의 연구가 집중되었다. 이를 통해 품행장애는 먼저 적대적 반항장애와 분리되었다. 반항적이고 공격적으로 행동한다는 점은 같지만, 그 대상이 부모나 교사와 같이 권위적인 대상에 국한되고, 명확한 범법행위를 하지 않으며, 또래 친구들과는 별 문제 없이 지내는 집단을 적대적 반항장애라고 진단한다. 이들은 사춘기 일탈이나 가정환경의 영향이 주요 원인으로 예후가 양호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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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춘기 전 소아기에 불을 지르거나 동물학대 등의 문제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는 유형은 기질적으로 사이코패스적 경향이 강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품행장애는 이보다 훨씬 뚜렷한 문제행동을 보이는 집단으로 두 가지 아형 분류 방법이 있다. 하나는 DSM 3R판의 ‘홀로 돌아다니는 유형’과 ‘집단을 이루는 유형’으로 나누는 것이다. 십대에 우두머리를 두고 갱처럼 무리를 이루어 몰려다니며 범죄적 행동을 저지르는 타입과 그나마 집단을 이루는 것도 하지 않고 혼자 다니면서 문제행동을 하는 타입으로 나눈 것이다. 후자의 경우를 더 위험한 사이코패스적 기질로 본다. DSM 4판에서는 소아기 발병과 청소년기 발병으로 나눈다. 소아기 발병은 사춘기의 2차 성징이 생기기 전부터 불을 지르거나 동물을 학대하며 돈을 훔치는 등의 문제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는 유형으로 기질적으로 사이코패스적 경향이 훨씬 강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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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부분이 뇌의 측두엽. 사이코패스는 일반인보다 이 측두엽 용량이 적은 특징을 보인다. <ⓒ Database Center for Life Science>



그런 진단적 분류가 가능한 것은 클렉클리 이후 오랜 기간 역학적 추적관찰 연구와 생물학적 요인을 찾기 위한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품행장애+반사회적인격장애)의 생물학적 요인에 대해서는 충동성과 관련한 도파민 베타 히드록실라제(dopamine beta hydroxylase)와 뇌척수액 내의 5-히드록시인돌아세트산(5-hydroxyindoleacetic acid)의 낮은 농도가 충동성 및 공격적 행동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 가족력 중 남성 직계가족에서 발생될 확률이 5배가 더 많다는 것, 신경생리적으로 각성 수준이 비정상적으로 낮다는 것, 기질적으로 충동성과 감각추구성이 두드러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뇌영상학적으로는 측두엽 용량이 적은 것, 공포학습화가 진행될 때 전전두엽-변연계 순환계(prefrontal-limbic circuit)의 활성화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 등이 발견됐다.




공동체의 붕괴와 개인주의의 득세가 가져온 사회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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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는 다른 사람에게 위해와 공격을 가하는데에 아무런 미안함이나 망설임이 없다. <출처: Gettyimages>



이런 연구들은 사이코패스가 타고난 기질적·유전적 측면과 같은 생물학적 요인이 배경이 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한편으로 이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국한된 면이기에 사이코패스 본연의 정의를 너무 좁히고 있다는 제한점이 있다. 오직 범죄자를 골라내는 데에만 유용한 진단기준이라 일반대중에게는 유용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다시 사이코패스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를 되살리려는 논의가 커지고 있다. 클렉클리가 사이코패스를 묘사하는 데 포함되었던 이기적인 면, 반윤리적인 행위를 하는 데 미안함이나 망설임 및 후회가 없는 것, 비판에 대한 강한 공격적 반응, 병적인 거짓말, 공감과 책임의식의 결여와 같은 병적 자기애적 인격에서 볼 수 있는 부분들이 다시금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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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들어 사이코패스 개념이 다시 주목받는 것은, 개인주의가 득세하는 사회에서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냉혈한들만이 성공하고 그로 인해 상처를 입는 피해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진단명이란 것은 시대가 변하면서 사회의 요구에 따라 변할 수 있고, 객관화시키고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진단기준이 매우 좁아지고 분명해질 수 있다. 사이코패스가 품행장애와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쪼개지면서 진단기준이 세분화된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문제적 행동을 하는 일부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사람들을 설명하기 위해 세분화로 잃어버린 통합적 기준이 필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로 회귀한 것이 아니라 고전적 개념의 탁월함이 복귀한 것이다. 약 200년 전에 만들어진 사이코패스의 정의가 21세기 현대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범죄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이타적 상호관계와 공생을 거부하고 오직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냉혈한들이 성공하는 일이 잦아지고, 그로 인해 유무형의 상처를 입지만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는 피해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공동체가 상호감시하고 단죄하던 좁은 세상에 비해 개인주의가 득세하는 거대 도시 사회라는 정글은 포식자와 초식동물 등의 피포식자로 확연히 갈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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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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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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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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