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로르샤흐 테스트와 심리검사의 개발 - 무의식을 평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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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11회 작성일 16-02-0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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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르샤흐 테스트



“무엇이 보이나요?”

검정 잉크 얼룩의 데칼코마니 그림을 보여주며 검사자가 질문한다.

“음……. 나비가 보여요. 그리고 뭔가 날아가는 것 같네요.”

“더 떠오르는 것은 없나요?”

환자가 없다고 대답하자 검사자는 다음 카드를 들어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10장의 카드에 대한 환자의 반응을 하나하나 평가하고 분석하여 진단적 평가를 한다. 이 검사는 정신과 의사 헤르만 로르샤흐(Herman Rorschach, 1884~1922년)가 1921년 처음 발표한 ‘로르샤흐 테스트(Rorschach test)’로, 환자의 사고 체계와 내용을 평가하는 기능을 한다.




잉크 얼룩으로 들여다본 인간의 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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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로르샤흐(Herman Rorschach) <출처: wikipedia>



폐렴이 걸리면 흉부 엑스레이를 찍어서 폐의 감염을 평가하고, 혈액검사로 염증을 확인한다. 의학은 이처럼 객관적 진단 도구가 발달하면서 함께 발전했지만, 정신의학만은 예외였다. 인간의 정신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도구를 만드는 것은 기계가 발달한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은 심리 평가를 위한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중 한 명이 로르샤흐였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그는 예술 교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등 창조적인 활동을 지원받았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미술을 전공할지 과학을 전공할지 고민했고 결국 취리히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오이겐 블로일러(Eugen Bleuler, 1857~1939년)에게 배워 정신과 의사가 되었는데, 조현병(정신분열병)의 진단과 정신병리학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 한편으로 당시 유행이던 정신분석 수련을 받고 무의식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그는 왜 사람들이 모호한 자극에 대해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 의문을 가졌고, 이러한 현상을 검사 방법의 하나로 이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모호하고 애매한 잉크 얼룩을 이용한 검사는 과거에도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평가하는 데 사용해 왔으나 의학 영역에서 진단 도구로 이용하지는 않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보티첼리도 잉크 얼룩을 이용해서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아이디어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었다. 로르샤흐는 이를 체계적인 진단 도구로 발전시키려고 했고, 1911년 정신과 전공의 수련을 받을 당시부터 잉크 반점 카드로 청소년과 환자들의 반응을 비교해 보기도 했다.

1914년 스위스로 돌아와 정신과 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어릴 때 관심을 가졌던 잉크 얼룩을 이용한 검사 도구를 만들어 환자나 일반인에게 시험해 보기 시작했다. 1917년부터 조현병 환자의 잉크 반점 자극에 대한 반응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해서 1921년 117명의 정상인을 포함한 총 405명의 카드 검사 반응을 분석한 결과를 『정신 진단학(Psychodiagnostik)』으로 발표했고, 조현병 진단에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어떤 종류의 반응은 특정한 심리적·행동적 특징과 관련이 있다는 인상을 받은 로르샤흐는 이 검사가 임상진단뿐 아니라 개인의 성격 습관과 반응 스타일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정신분석가로 수련 받아 스위스 정신분석학회의 부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그만큼 무의식의 존재를 믿고 있었고, 무의식을 평가하기 위한 도구로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당시 이 검사를 예비 결과로 보고 자신의 이름을 따지 않은 채 ‘형태 해석 검사(Form interpretation test)’라고 명명하여 연구를 더 진행하려고 했으나, 1922년 복막염으로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그의 죽음과 함께 로르샤흐 검사는 역사 속으로 묻힐 뻔했으나 1929년 미국의 정신과 의사 사무엘 벡(Samuel J. Beck, 1896~1980년)이 로르샤흐와 함께 일했던 정신분석가 에밀 오버홀저(Emil Oberholzer, 1883~1958)에게 로르샤흐 검사를 배운 데이빗 레비(David Levy)로부터 이 검사를 소개를 받으면서 다시 로르샤흐 검사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는 마거리트 헤르츠(Marguerite Hertz, 1899~1992년)와 함께 로르샤흐가 남긴 채점, 부호화 방식의 기본 틀을 발전시켰다.




정신분석과 정신병리의 발달로 탄생한 로르샤흐 테스트



이 검사는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좌우대칭의 이미지가 있는 10장의 카드로 시행한다. 17cm×24cm 크기로 무채색 카드 5장, 채색 카드 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구체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아서 사람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연상하고 반응한다. 현재까지도 로르샤흐가 처음 제시한 형태 그대로 시행하고 있다. 이 검사는 피험자의 생각 체계가 남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상식적인 반응을 보이는지, 기괴하거나 지리멸렬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에게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반응을 보이는지 평가해서 사고 체계의 정상성을 평가한다. 또 무채색일 때의 반응과 유채색일 때의 반응의 수를 평가하여 감정의 활동성이나 충동성을 평가하는 등 인간 정신의 다양한 면을 평가한다.

이러한 검사의 개발은 정신의학계의 두 가지 흐름 속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는 정신분석이다. 로르샤흐 본인이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았고,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이 인간의 행동과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통해 밝혀지게 되면서 무의식을 투사하는 반응을 통해 전반적인 사고 체계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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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비네(Alfred Binet) <출처: wikipedia>





알렉산더 루리야(Aleksandr Luriya) <출처: UCSD Luria Homepage>





제임스 커텔(James M. Cattel) <ⓒ Bain News Service>




다른 하나는 정신병리의 발달이다. 정신병리의 평가를 객관적으로 하려는 시도가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다양하게 있었다. 알프레드 비네(Alfred Binet, 1857~1911년)가 지능 검사를 만들었고, 알렉산더 루리야(Aleksandr Luriya, 1902~1977년)는 신경 인지 검사 체계를 만들었으며, 성격 검사를 만들기 위해 인간의 성격 요인을 통계적으로 뽑아내려는 노력이 19세기 말 제임스 커텔(James M. Cattel, 1860~1944년) 등에 의해 있었다. 첫 시도는 1920년대 군대와 같은 곳에 적합한 인재를 찾아내기 위해 특정한 집단에게 실시하는 인적성 검사였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정신병리 평가도구인 심리 검사의 밑그림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고, 그중의 하나의 시도가 로르샤흐 검사였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서는 분석심리학을 만든 카를 융(Carl Jung, 1875~1961년)이 단어 연상 검사를 만들었다. 수십 개의 단어를 불러주고 그 단어를 듣고 나면 무엇이 연상되는지 묻는다. 이때 특정한 단어에 대해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혹은 늦게 반응하는지를 측정해서 그 사람의 무의식의 콤플렉스를 측정할 수 있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정신병리를 객관적으로 진단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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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 우울척도(Beck Depression Inventory)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 검사(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 <출처: PsychCentral>




이런 노력들에 의해서 다양한 심리 검사 도구가 도입됐다. 검사는 크게 자가보고 검사와 투사적 검사로 나눈다. 자가보고 검사는 설문지를 만들어서 자신이 현재 느끼는 심리 상태나 상황에 대한 판단을 보고하게 하고, 그것을 분석해서 결과를 내는 것이다. 이 방식은 많은 이에게 한 번에 적용할 수 있고, 객관적인 통계수치로 평균값이나 병적인 수준이라 할 만한 수준의 절단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몇 점 이상이면 이상이 있다고 의심할 수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벡 우울척도(Beck Depression Inventory),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 검사(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 등이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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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통각 검사(Thematic apperception test) <출처: Encyclopedia of Mental Disorders>



이와 달리 로르샤흐 검사나 1935년 크리스티나 모건(Christiana D. Morgan, 1897~1967년)과 헨리 머레이(Henry A. Murray, 1893~1988년)에 의해 개발되어 구체적인 장면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반응을 보는 주제 통각 검사(Thematic apperception test) 등은 투사적 검사라고 한다. 이는 통계적으로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질적으로 미묘하게 흔들리는 면이나, 특징적인 반응을 수집해서 피검사자의 현재 심리 상태를 평가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검사자가 반응을 유도하여 왜곡할 위험이 있고, 이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도 검사자 개인의 전문적인 숙련도나 경험에 따라 큰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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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모건(Christiana D. Morgan)





헨리 머레이(Henry A. Murray) <출처: Harvard Square Library>




이런 비판에 대응해서 존 엑스너(John E. Exner, 1928~2006년)는 1968년 로르샤흐 연구재단을 발족하면서 검사의 타당도와 실용도를 재검사했고 1974년 포괄적인 채점과 분류방법을 체계화시켜서,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심리 검사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70년대부터는 이런 투사적 검사나 객관적 자가보고 검사 이외에 임상진단용 면담을 구조화해서 객관적인 정신과적 진단을 내리는 구조적 인터뷰 방법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또한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평가를 위해 컴퓨터를 이용한 전산화 심리 검사도 여러 가지가 개발되어 시행 중이다. 멘사에 가입할 때 지능을 평가하기 위해 실시하는 비언어적 사고 능력 검사인 레이븐 매트릭스 검사(Raven's progressive matrices)가 컴퓨터를 이용한 심리 검사 방법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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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 매트릭스 검사 <ⓒ Life of Riley>



2009년 7월 29일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영어판에서 로르샤흐 잉크 반점 검사의 그림과 해석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잠정적 보호를 했으며 판권을 보유한 호그레페 후버 출판사는 위키미디어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심리학자들은 검사 자료 유출로 인해 사람들이 그 그림에 대한 선입견을 가져 실제 검사를 받을 때의 반응이 왜곡될 수 있고, 비전문가에 의해 오용 혹은 남용될 것을 우려했고, 한국에서도 이 검사지가 대중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이와 같이 1920년대는 인간의 심리를 평가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있었고, 그중에서 특히 인간의 무의식을 통해 사고 체계를 평가해서 정신분열병을 진단하려는 대담한 노력으로 로르샤흐의 검사가 자리 잡았던 것이다. 지금도 이 검사는 현장에서 널리 사용하며 임상면담에서는 쉽게 찾아내기 힘든 미묘한 사고 체계의 이상, 현실검증력의 장애를 찾아내고 있다.

현재 심리검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정신질환을 진단하고, 증상의 심각성을 평가하기 위한 검사도구가 개발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정상인의 성격, 기질,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 직업적성등을 파악하기 위한 도구들도 많이 만들어졌다. 일부 심리평가 도구는 특정 기업의 비젼, 원하는 사원의 기질등을 반영해서 그 회사를 위한 업무 적성평가용으로 변환하여 신입사원 채용에 활용하기도 한다. 100여년전 로르샤흐, 루리아, 비네와 같은 학자들이 처음 개발을 한 심리평가도구들은 이제 수 백 가지로 늘어나서 정신질환의 평가 뿐 아니라, 일상적 사회생활에 적합한 사람을 평가하는 데에까지 확대되어있다. 그러나, 이런 검사들은 기본적으로 설문지 조사의 경우 자의적 조작의 가능성(지나치게 좋게 보고하거나, 나쁘게 보고하는 것)을, 대면검사는 검사자의 능숙함이나 전문성, 해석능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몇 개의 심리검사 결과만으로 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심리검사의 발전 덕분에 사람을 파악하는데 주요한 요소가 무엇이고, 어느 부분을 봐야하며, 전체적으로 그 사람이 어느 수준의 문제를 갖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 상당히 유용한 무기를 갖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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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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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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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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