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신종 질환의 등장과 제약회사 마케팅 - 약을 팔기 전에 병을 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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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06회 작성일 16-02-0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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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gettyimages>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기 어려워요.”

“토론이나 조별 발표를 해야 하는 강의는 수강신청을 할 때 망설여집니다.”

“자신감 있게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어려워요.”

이런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은 정신과적으로 치료를 해야 할 병이 있는 사람으로 진단해야 할까, 아니면 성격적인 특징이라고 여겨야 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의학적 진단이란 몇 가지 원칙하에 진단을 내린다. 첫 번째가 원인으로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간에서 암 조직이 확인되면 간암으로 진단할 수 있다. 결핵은 외부에서 결핵균이란 분명한 원인이 몸 안으로 들어와서 발생한다. 두 번째는 암과 같이 신체의 장기 일부에 병적 변형이 일어났을 때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세 번째 기준은 신체의 변형으로, 뼈가 부러지는 것처럼 신체 일부가 손상되었을 때다. 네 번째는 기능의 이상으로, 혈압이 필요이상으로 높은 상태가 유지되는 고혈압, 콩팥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몸안에 노폐물이 쌓여 문제가 되는 만성신부전과 같이 장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진단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객관적으로 검증이 가능하다는 점은 대동소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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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진단은 여러 방법으로 객관적인 검증이 가능하다. <출처: gettyimages>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의학진단은 발전해왔다. 이에 반해 정신질환은 진단을 하는게 똑 떨어지지 않는다. 나라마다 이상행동으로 여기는 것이 다른 것처럼 사회문화적인 영향도 배제할 수 없고, 연령별로 차이가 날 수 있으며, 시대별로 이상행동을 정의하는 것도 다르다. 더욱이 분명한 객관적 검사법이 별로 없기 때문에 피검사나 엑스레이 사진을 찍는 것같이 확실한 방법이 없다. 그래서 정신과에서는 정신질환을 어떤 방식으로 진단하고 분류하는가,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을 어떤 방식으로 나눌 수 있는가에 대해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왔다. 고전적 중증 정신질환인 조현병, 주요 우울증, 양극성정동장애, 치매, 정신지체와 같은 병은 이견이 적지만, 가벼운 정신질환은 경계를 어떻게 두는지, 무엇을 이상행동으로 판단하는지에 따라 진단을 내릴 수도 있고 정상범위 안에 둘 수도 있다. 이는 마치 ‘낮과 밤의 경계’는 몇 시 부터라고 할 수 있는가의 고민과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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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의학분야와 달리, 정신질환은 진단을 하는게 똑 떨어지지 않는다. 나라,연령,시대별로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현병, 양극성 정동장애같은 전통적 정신질환보다 현대사회에서는 이와 같이 애매한 문제로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그 문제를 병원에서 해결하려는 것이 확연히 늘어나면서 진단과 치료에 대한 논쟁이 불이 붙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위의 사례와 같이 대인관계나 사회적 상황에서 느끼는 긴장감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를 일상적인 불편감이나 성격적인 특성으로 보지 않고 일종의 질환으로 보고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그냥 불편한 것이 아니라 ‘OOO’이란 질환으로 이름을 갖고 적극적인 치료의 대상이 되고, 이런 문제를 가진 사람은 환자가 된다. 대표적인 것이 불안장애 중 하나인 사회공포증(social phobia)과, 거절에 대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회피성 인격장애(avoid personality disorder)다.

80년대 발간된『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3판부터 일반적인 수준보다 조금 심한 정도의 낯가림, 수줍음을 가진 내성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이 치료의 대상으로 진단을 받게 되었다. 이런 진단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하나의 주요한 진단으로 확립되는 데에는 정신과 의사들의 새로운 연구결과나 임상적인 분명한 증거보다는, 일부 전문가의 영역 확장에 대한 욕심, 제약회사의 마케팅, 미디어의 부추김, 현대사회의 사회문화적 압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그런 연유에서 정신과에서 진단이라는 것이 어떤 흐름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사회공포증과 같은 애매할 수 있는 질환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점이다.




사회공포증의 작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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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지네 (Pierre Janet). 사회적 관계에서 부적절한 긴장을 보이는 환자에게 ‘사회공포증’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 Paul François Arnold Cardon>





정신의학자 칼 웨스트팔(Carl Westphal).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불안해지고 긴장되는 증상에 대해 ‘광장공포증(agoraphobia)’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 G. Engelbach>




1872년 칼 웨스트팔(Carl Westphal, 1833~1890년)은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불안해지고 긴장되는 증상에 대해 ‘광장공포증(agoraphobia)’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들었고, 19세기 말 피에르 자네(Pierre Janet, 1859~1947년)가 사회적 관계에서 부적절한 긴장을 보이는 환자에게 ‘사회공포증’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사람들이 수줍어하거나, 사회적인 상황에서 긴장을 다소 많이 하더라도 그것은 일반적으로 누구나 있을 수 있는 문제로 보았지, 사회공포증이란 독립적 질환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또 이후 흔히 사용하게 된 단어인 ‘신경증’의 진단과 치료에는 20세기 초반부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주요한 이념적 틀을 제공했기 때문에 공포증이나 불안증을 개별적으로 진단하지 않고 ‘불안신경증’이라는 넓은 범주 안에서 진단했다. 넓은 범위안에 무의식적 갈등이란 큰 문제가 있고, 자아가 이를 잘 통제하면 증상이 안생기지만 갈등을 잘 다루지 못하고 확 튀어오르거나, 초자아를 중심으로 한 죄의식이 지나치게 통제를 하게 되면 이때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증상이 생겼다고 보았다. 기본적으로 이런 개념에서 증상을 보았기 때문에, 강박증, 사회공포증, 고소공포증, 공황장애와 같이 개별적 불안증상을 따로 독립 질환을 나눠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정신과 의사 중에서는 드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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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신의학자 아이작 막스. “정신분석은 공포증을 세분화하기보다 원인을 중심으로 일원적으로 파악하고 해석하는 것을 선호한다”라고 주장했다.



정신분석이 유럽과 미국의 정신의학계를 주도하던 시기를 이렇게 지나고, 1966년 아이작 막스(Issac Marks, 1935년~)와 마이클 젤더(Michael Gelder)가 영국에서 관찰한 환자들의 다양한 공포증을 리뷰 형식으로 발표했다. 사회적 상황에 참여하라는 요구에 약 25명의 환자가 불안을 나타냈는데, 다른 영역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유독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붉힐지 모른다는 두려움, 파티에 가는 두려움’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이러한 결과에도 그들은 “정신분석은 공포증을 세분화하기보다 원인을 중심으로 일원적으로 파악하고 해석하는 것을 선호한다”라고 결론지었다. 이 발표는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후에도 몇 개의 보고서가 있었으나 사회공포증을 독립적인 질환이라고 밝힌 연구는 거의 없었다. 그 후 십여 년이 지나서 DSM 3판을 준비하는 특별위원회의 로버트 스피처(Robert Spitzer, 1932년~) 박사팀은 불안신경증을 여러 가지 불안장애로 세분화하는 과정에서 묵혀 있던 이들의 리뷰를 가져왔고, 분명한 한계와 빈약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DSM 3판에 이를 포함시켰다. 처음으로 커다란 ‘불안신경증’이란 지붕아래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던 불안증상들이 자기 집을 차려 독립을 하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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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3판. 처음으로 불안신경증을 독립적인 질환으로 포함시켰다.



이렇게 큰 지붕아래에서 독립을 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었다. 인간의 정신세계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불명확한 회색지대가 꽤 넓을 수 있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병이라고 정확히 진단을 할 수 있을지 모호한 면이 많았다. 그런데 분명함을 원하고 불안에 대한 최소한의 자극 세기가 낮아지는 현대의 세태에 따라 DSM 3판은 불안 증상에 대한 기준을 낮추는 동시에 회색지대를 줄여 확고하고 분명한 진단 기준을 세웠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정상과 비정상이 5:5가 아닌 2:8로 나뉘어 비정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여지가 확연히 많아졌다. 결국 정상적인 수줍음을 사회공포증의 전 단계이자 위험인자로 보는 일까지 발생할 수 있었고, 일시적인 긴장과 떨림 정도인 것도 진단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임상적으로 볼 때 모호하지만 여전히 정상범위 안에 있는 사람의 경우, 잠깐 동안 비적응 양상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에게 질병이 있다고 낙인찍힐 위험이 생겼다. 이 부분에 대해 후일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또한 몇 가지 단순한 증상으로 판단하는 느슨한 진단기준으로 인해 초심 정신과 의사나 정신보건관련자들은 이 기준에만 맞춰 환자를 파악하고 재단하는 일이 발생했다. 진단이 더 중요해지고 사람은 사라진 것이다. 환자가 불안신경증를 일으키는 원인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신역동적 이해, 삶의 긴 흐름, 무의식적 갈등, 정신사회적 스트레스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 부분을 놓치는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진단이 너무 손쉬워지면서 환자가 양산될 위험도 생겼다. 환자가 양산되면 기뻐할 사람은 누구였을까?




정상적 발달과정에서 꼭 겪어야 할 문제를 질병으로 파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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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M4판에서는 사회공포증이 ‘사회불안장애’로 이름을 바꾸었다.



사실 처음 사회공포증 진단명이 발표되었을 때에는 정신과 의사들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DSM 3판에 있는 수백 개의 진단 중 하나였고, 아직은 낯선 진단명이었을 뿐이다. DSM 4판이 나오면서 진단 기준이 완화되었고, 사회공포증은 ‘사회불안장애’로 이름이 바뀐다. 2002년에는 《하버드 정신의학 비평(Harvard Review of Psychiatry)》에서 사회공포증이 주요 우울장애나 알코올의존증에 이어 세 번째 흔한 정신질환으로 꼽히기까지 했다. 5명 중 1명이 사회공포증으로 진단받게 된 것이다.

삼십년 전만 해도 진단명도 존재하지 않던 질환이 어느새 미국에서 세 번째로 많이 발견되고, 환자의 수도 많은 질환이 되어버렸다. 대인공포 바이러스라도 퍼진 것이었을까? 여기에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사회문화적 변화도 한몫 했다. 신자유주의와 자기계발만이 살 길이라고 여기며 더 강한 개인적 능력과 사회적 경쟁력이 요구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저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으로 머무르고 있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프로 운동선수들이 스테로이드와 같은 근육강화제를 사용해 체력을 의도적으로 신장시켰다는 것을 묵인하는 관행이 있었던 때처럼, 성격에 대해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언제나 활기차고 외향적이며 적극적인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가 사회에 범람하면서, 평균 안에 머무르거나 조직이 시키는 일을 완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24시간 주도적으로 일하고 활력을 유지하는 사람이 유능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향적이고 수줍음이 많거나 대인관계에서 소극적인 사람은 무능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평가받게 되었고, 현대사회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약을 복용해서라도 성격을 바꿔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까지 받게 된 것이다.

두 번째로 문명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며 생활이 편리해지는 만큼 불편에 대한 참을성이 줄어드는 시대적 흐름도 이러한 상황에 기여했다.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증상들도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어 ‘병으로 인식하게 되는 문턱’이 낮아진 것이다. 과거에는 객관적으로도 분명하고 뚜렷한 증상이 일정 기간 사라지지 않을 때에만 병원을 찾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일상의 스트레스로 인한 삶의 문제, 증상보다는 라이프스타일의 문제, 삶의 큰 흐름 속에서 불가피하게 맞닥뜨리게 되는 정상적 발달과제로 인한 주관적 불편함을 ‘질환의 범주’로 놓고 의사와 상담하고 해결하려는 경향이 증가했다. 내 몸과 마음이 백 퍼센트 완벽무결한 상황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그만큼 개인의 경쟁력이 중요한 시대이기도 했고, 갈수록 적은 불편도 견디기 싫어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셋째, 대중의 학습도 한몫을 했다. 심리 서적이나 미디어에 의해 대중들이 교육되면서 사실상 불가피하고 맞닥뜨려 넘어야 할 삶의 어려움을 의료화하고 더 나아가 심리화하려는 경향이 확대 재생산 되었다. 자신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여기는 문제점에 ‘병명’을 붙임으로써, 내 인격의 한 부분이 아니라 고칠 수 있는 증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약물치료나 인지치료와 같은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더 높은 능력치를 가진 인간으로 자신을 개조하고 싶다는 욕심, 혹은 절박한 내적 요구가 이를 가속화시켰다.

여기에 일부 전문가들이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자 한 욕심도 기여했다. 고뇌, 신중함, 자기내적 영역에 대한 탐구를 질병의 증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특히 사회공포증을 진단하기 위해 설문지에 포함된 질문들은 ‘공중화장실에서 소변보기’ ‘낯선 사람에게 전화하기’, ‘고압적인 영업사원 대응하기’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을 불편하게 느끼지 않을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라는 비판이 나올 만했지만, 연구자의 욕심이 이러한 설문을 가능하게 했다. 연구자들은 자신이 특별히 관심을 갖는 질환에 최대의 유병률을 부여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병을 앓고 있으며 희귀한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야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고, 더 큰 규모의 연구를 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 잡지 《심리학 투데이(Psychology Today)》에서는 1990년대의 장애로 공포증을 지적하며 10년에 3.7퍼센트였던 유병률이 18.7퍼센트로 증가했다고 보고했을 정도로 병을 가진 사람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90년 브라운 대학 정신의학과 교수 피터 크레이머(Peter Kramer, 1948년~)는 ‘미용 정신약물학(cosmetic psychopharmacology)’라는 용어를 만들어내며 프로작과 같은 새로운 항우울제로 ‘안녕한 상태보다 더 좋은(better than well)’, 즉 질병이라고 할 만한 수준의 증상이 없는 정상성의 범주 안에 있음에도 더욱 활력 있는 수준의 건강 상태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았고, 최상의 수준으로 도약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자극했다.




제약회사의 정교한 마케팅 전략으로 확립된 ‘사회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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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크리스토퍼 레인(왼쪽)과 그의 저서 『만들어진 우울증(shyness)』 그는 이 책에서 신종질환과 제약회사 마케팅간의 관계에 대해 폭로했다. <ⓒ Maxwell Hamilton>



환자가 늘어난 것은 의사들만 좋은 것이 아니라, 치료제를 파는 제약회사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질환의 개념을 미디어와 대중에 널리 알리는 데에는 제약회사의 마케팅도 크게 공헌했다. 크리스토퍼 레인(Christopher Lane, 1966년~)은 『만들어진 우울증(shyness)』이란 책에서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고했다. 팍실(paxil: 성분명 paroxetine)이라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개발한 제약회사 스미스클라인비첨 사(현재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사)는 후발 주자로, 프로작(prozac)과 졸로프트(zoloft)라는 약이 이미 우울증 치료제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대형 홍보회사와 계약을 맺어 1999년부터 수천만 달러 규모의 대대적인 캠페인에 들어갔다.

“약을 팔기 전에 질병을 팔라”는 그들의 전략은 큰 성공을 거뒀다. “사람 알레르기가 있나요?”란 슬로건은 마치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듯이 사람에도 알레르기가 있는 예민한 사람이 있다는 프레임을 던져줬다. 알레르기에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해야 하듯이 사람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약을 복용하면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당신의 삶이 기다리고 있어요”, “나야!”, “나는 할 수 있다”, “그들에게 당신이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같은 주도적이고 외향적인 삶을 긍정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언론도 여기에 합세했다. 월스트리저널(Wall Street Journal)》에는 “우울증 약으로 중증 수줍음을 치료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1994년 《뉴스위크(Newsweek)》에서는 “수줍음이 많은가? 건망증이 많은가? 불안한가? 간단한 처방이 있다”라는 제목으로 식당에서 혼자 식사하는 게 힘들고 공중화장실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약을 먹으면 된다는 기사도 있었다. 1999년 3월 팍실은 사회불안장애 치료제로 FDA의 허가를 받았고, 제약회사는 마케팅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2000년대 초에는 처방 건수가 연 2천 5백만 건을 넘으면서 십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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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회사 스미스클라임비첨사 (현재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사). 팍실(Paxil)이라는 신약 홍보를 위해 “약을 팔기 전에 질병을 파는” 마케팅을 전개해서 성공했다.



이 과정에 그들은 정교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먼저 의사에게 이런 질환이 치료 가능하고, 진단할 수 있다는 것을 교육시켰다. 동시에 대중들에게 이 질환의 문제를 널리 알렸다. 더욱이 새로운 기삿거리에 목마른 미디어에 잘 포장된 설문지와 통계, 연구결과 등을 제공하면 극적인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졌다. 또한 유명인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가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서 자신이 극심한 수줍음에 시달렸는데, 이제는 자기 병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대중은 사회공포증의 존재를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세 가지 전략으로 처음에는 그 존재도 미미했던 사회공포증이 몇 년 만에 미국에서 가장 흔한 정신질환 중 하나가 되었다.




환자이고 싶은 욕망 vs. 환자이고 싶지 않은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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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정신질환의 개념을 미디어가 먼저 만들어내는 수준이 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번아웃 증후군’이다. <ⓒ Baker131313>





정신과 의사들은 생리전 우울감이나 짜증을 ‘월경전 불쾌장애’(PMDD)로 진단명을 붙여서 널리 알리기도 했다. <출처: gettyimages>




한 번의 성공은 반복을 낳는다. 이후 정신과 의사들은 생리 전의 우울감이나 짜증을 ‘월경전불쾌장애(Premenstrual dysphoric disorder, PMDD)’로, 아이의 산만함과 과잉활동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로 진단명을 잘 포장해 널리 알리면서 치료받을 대상을 넓게 잡는다. 여기에 제약회사의 후원을 받은 전문가의 연구 발표, 미디어의 관심, 제약회사의 공격적 대중 마케팅, 더 나아가 개인의 경쟁력 강화라는 현대사회의 요구까지 합쳐져 하나의 새로운 질환이 자리를 잡게 되는 메커니즘이 확고히 형성되었다.

물론 이 질환을 앓는 환자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진단이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그러나, 대중의 머릿속에 ‘특정한 행동 문제나 심리문제-정신과적 진단-치료의 필요성‘의 연쇄고리를 만드는 데에는 이와 같은 순환 메커니즘이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고, 이에 대한 공도 있지만 과도 뚜렷하다. 특히 최근에는 정신질환의 개념을 미디어가 먼저 만들어내는 수준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결정장애 증후군’이나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 대표적인 예다. 어느 순간부터 정신의학은 특이한 병리나 무의식적 갈등을 오랜 시간을 두고 개인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흐름에서 요구하는 삶의 불편함과 라이프스타일의 문제를 산업적 관점에서 의학적으로 해결해 주는 전달자 같은 역할도 하게 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정신과적 문제를 가진 이들이 약물치료가 필요 없는 수준의 증상에 대해서도 심리학자, 사회사업가, 목회 상담자, 놀이치료사, 예술치료사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상담 및 치료사들의 영역도 넓어졌다. 이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급속도로 정신질환으로 정의되는 개념이 넓어지고 그 경계가 모호해진 덕분이었다.

크게 보면 자신을 ‘환자로 여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진 동시에 ‘환자이고 싶지 않은’ 욕망도 가지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으로 충돌 현상이 발생했다. 그래서 환자가 늘어난다고 보고되지만 실제로 병원을 찾는 이들의 수는 같은 속도로 늘어나지 않았고, 유사 정신치료를 찾는 사람들과 세칭 심리상담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대사회의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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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크대학의 앨런 프란시스 교수는, “정신장애 진단이 정확하면 큰 이득을 주지만 부정확하면 큰 해를 끼친다”라고 비판했다. <출처: www.freudiana.com.br>



정신의학의 약물치료 흐름에 맞춰 DSM 4판을 개발한 주역 중 한 명인 듀크 대학교의 앨런 프란시스(Alan Francis) 교수조차도 2013년 개정된 DSM 5판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제약회사들은 정신질환이 보편적이고 쉽게 진단되며, 뇌의 화학적 불균형에 기인하므로 약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잘못된 믿음을 퍼뜨렸다. 치료약은 보다 심각한 정신장애에는 필수적이지만, 인간 조건에서 피할 수 없는 일상적인 문제들에는 결코 필요하지 않는다. 정신장애 진단이 정확하면 큰 이득을 주지만 부정확하면 큰 해를 끼친다. 진단을 제대로 내리기는 무척 어렵고 시간과 전문성을 요하는 일이다. 가벼운 정신적 문제들은 심리치료나 환경 변화, 혹은 시간의 변화에 잘 반응하여 치유된다. 처방약이 필요 없을 정도다.”

이와 같은 현상은 결국 현대사회에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남으려는 현대인의 욕망과 안간힘이 투영된 것이다. 의학적 측면에서 당뇨, 고혈압, 비만, 고지혈증등을 묶어 심혈관계 위험요소로 ‘대사증후군’이라는 명칭을 갖는다. 이는 문명국가의 과잉영양과 운동부족이 큰 원인의 하나다. 일종의 현대사회병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국에서 대장암이 늘어나는 것도 육류 섭취량이 늘어난 것과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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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 들어오면서 제약회사의 시장확대 마케팅으로 인해 성격적 특성이 정신질환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출처: gettyimages>




이와 같이 현대사회의 질병의 증가와 감소는 사회문화적인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병의 진단을 위한 조직의 변성, 원인균의 검출과 같은 방식이 없는 정신질환의 진단명은 지금까지 더욱이 이런 사회문화적 변화에 영향을 받기 쉽고, 시대상을 신속하게 반영하는 경향이 크다. 현대인이 성공하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기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하고, 자기 능력치를 최대치로 유지해야하고, 완벽한 정신과 신체 상태를 지속해야만 한다는 강박적 욕망은 지난 백년 전에는 생활속의 작은 불편이라고 할 만 했던 문제, 성격적인 특성이라고 할 만 했던 기질을 고쳐야할 증상으로 묶어서 하나의 치료할 대상인 정신질환으로 만들어내도록 했다. 여기에는 자신의 영역을 넓히려는 정신과 및 심리관련 전문가의 욕구와 치료제를 팔기 위한 새로운 시장을 만들려는 제약회사의 마케팅이 대중의 욕망이란 불씨에 강한 바람을 넣어준 셈이었다. 그래서 1970년대만해도 진단명도 존재하지 않던 ‘사회공포증’은 1980년대초 진단명으로 생명을 얻고 겨우 20년만에 미국에서 세 번째로 많이 진단되는 정신질환이라는 거인으로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이다.

살면서 어떤 마음의 어려움을 맞닥뜨렸을 때 ‘내가 환자라 병에 걸린 것이라면 약 한 알로 해결이 될텐데’하는 기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정신적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방법을 찾는 것은 그럴수록 신중해야한다. 정신과 의사는 몇 가지 불편하다는 증상만 듣고 뚝딱 진단을 내려서는 안된다. 훨씬 더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가는 사회적 유행에 휩쓸려 누구나 한두개의 정신질환을 갖는 상황이 되어, 비타민이나 영양제를 아침마다 먹듯이 정신과 약물을 복용할 수 도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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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드 이펙트(Side Effects,2013)
    평점

    네티즌

    7.52


    개요



    스릴러

    ,

    범죄

    ,

    드라마

    |


    미국

    |
    2013.07.11. 개봉
    | 106
    |


    청소년 관람불가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출연



    주드 로

    ,

    루니 마라

    ,

    채닝 테이텀

    ,

    캐서린 제타-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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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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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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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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