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정신질환 진단을 위한 DSM의 개발 - 정신의학의 바이블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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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65회 작성일 16-02-0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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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같은 질환은 CT나 엑스레이로 객관적인 진단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질환에 대한 진단은어떻게 할 것인가. <출처: gettyimages>




폐암이 의심 되는 환자가 있다면, 우선 CT촬영이나 엑스레이로 몸의 어느 부분에 암이 있는지 확인한다. 긴 주삿바늘을 넣거나 기관지내시경으로 조직검사를 해서 암세포 조직이 어떤 형태인지 파악한 다음에 추가 검사를 통해 다른 장기나 림프선으로 전이가 되었는지 확인한다. 이 과정이 끝난 후 TNM 분류(tumor, lymph node, metastasis classification)로 암조직의 심각도(T), 림프선(N)이나 다른 장기(M) 전이 여부를 ‘T3N1M0’과 같이 숫자로 표기한다. 이것만 봐도 수술 여부와 항암 치료 수준을 결정할 수 있다. 이렇게 한 번 확진하고 나면 어떤 의료진이 보더라도 공통의 판단을 할 수 있는 객관적 진단을 바탕으로 가장 최적의 치료법을 찾는다. 이것이 현대 의학이 이루어낸 업적이다.




정신질환 진단에 대한 두 가지 접근, 객관성 vs 전인성



정신의학계도 진단에 객관성을 어떻게 확보할지 고민했다. CT촬영이나 MRI 같은 영상진단도구로 정신분열증을 진단할 수 없고, 조직검사로 우울증을 진단할 수 없다. 여러 생리학적 진단검사를 시도해 봤지만 뚜렷하게 신뢰할 만한 검사는 없었다. 불과 60여 년 전만 해도 정신과 의사가 어디서 수련을 받았는지, 어떤 환자를 주로 진료했는지, 어느 나라 의사인지에 따라 같은 환자에 대한 진단이 판이했다. 서양과 동양의 차이는 차치하고 미국과 영국 의사들끼리도 달랐다. 1940년대 미국과 영국의 의사들에게 한 환자를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고 진단하는 실험을 했다. 알코올 남용의 병력과 함께 급격한 정서 변화를 보이며 한쪽 팔에 마비증상이 있는 젊은 남자 환자였다. 46명의 미국 정신과 의사 중 69퍼센트가 이 환자를 조현병으로 진단한 것에 반해서, 205명의 영국 정신과 의사 중 2퍼센트만 같은 진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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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자 에밀 크레펠린(Emil Kraepelin). 환자의 특정한 행동이나 감정 변화를 정리해 14개로 분류했다. <Public domain>



이러한 혼란을 처음 정리하기 시작한 사람이 에밀 크레펠린(Emil Kraepelin, 1856~1926년)이었다. 그는 환자가 보이는 특정한 행동이나 감정의 변화를 잘 정리해 공통점을 찾아 분류했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정신질환을 크게 14개로 나누었다. 이는 현대 정신질환 분류체계의 큰 틀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을 진단하고 분류하는 데는 정신과 의사 한 명의 숙련도와 경험에만 의지할 수 없고, 최대한 다수의 전문가들이 인정하고 받아들여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특징적 증상들을 모아 일종의 가이드북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0세기 초반 각 나라별로 제각각이던 의학교육과 전문의 수련이 표준화되는 시기와 맞물려서 정신의학에서도 특정한 전문가가 자기식으로 진단하고 자기만의 비방으로 치료하는 것은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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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 객관적 진단보다는 개인의 특성별로 접근해야한다고 주장했다. <Public domain>



여기에 혼란을 가중시킨 사람이 아이러니하게도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였다. 크레펠린이 현상적 증상표현을 면밀히 관찰한 후 객관적 진단을 내리려고 노력하는 정신병리학자였다면,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한 프로이트는 병을 진단할 때도 역시 무의식의 영향으로 그 결과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즉 ‘개인의 유일무이한 특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전인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적 접근은 환자 개개인에게는 적합할지 모르나 현대 의학이 추구하는 객관성, 과학성, 효율성, 더 나아가 공중보건적 측면에서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데에는 기능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한때 정신의학에서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면서 객관적 진단에 대한 요구는 전면에 나오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정신의학계에는 정신과 의사들이 사용할 공통적 진단체계가 요구되었고, 사회 전반적으로도 증상들을 정확히 표현하고 일정한 기간 동안 어느 기준 이상의 증상이 있을 때에 특정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누구나 진단할 수 있는 객관적 매뉴얼을 만들다



미국에서 전 국가적인 차원의 질병 통계를 내기 시작하자, 정신질환의 경우는 통계 수치를 잡을 수가 없었다. 수용소 위주의 정신병원 입원환자의 진단명 정도만 파악할 수 있었고, 그마저도 병원마다 판이했으며, 광증, 치매와 같은 모호한 진단명이 대부분이었다. 1908년 미국통계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정신과 학회에 질병분류위원회를 조직할 것을 요청했고 1918년에 국가정신건강위원회와 공동으로 첫 번째 정신질환분류인 ‘광인 치료시설에서 사용하기 위한 통계 요람(Statistical manual for the use of institutions for the insane)’을 만들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시작은 중증의 정신질환으로 사회생활이 불가능하여 수용소에 입원한 환자라도 제대로 분류하고 통계를 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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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The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for Mental Disorders; DSM)』 1판. 1952년에 발간되었다. <출처: Unstrange Minds>



한편으로 의학계 전반을 아우르는 질병 분류에 대한 논의도 함께 진행해서 1933년 『질병 표준 분류 명명법(A standard nomenclature of disease)』이 발간되었고, 정신의학회가 주도한 정신질환 분류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 분류체계는 여전히 중증 정신질환만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1940년대 이후 임상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가벼운 우울증, 불안장애, 전쟁 후 병사들이 경험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은 진단을 내릴 근거가 없는 상태였다. 이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8년 미국정신의학회는 경증 정신질환을 포함한 포괄적인 분류법을 개발하기로 결정하고 위원회를 만들었고, 1952년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The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for Mental Disorders; DSM)』을 발간했다. 위원회는 전문가들이 아니더라도 적절한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진단체계를 보고 진단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객관적으로 구성하고 체계성과 정확성을 기했다.

그러나 DSM 1판은 132쪽에 불과했고, 당시 가장 많이 사용하던 질환명을 정리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위원회 28명 중 10명이 정신분석가들로, 프로이트의 신경증을 기반으로 한 ‘정신신경증(psychoneurosis)’, 진단기준에 포함된 “무의식적 방어기제가 동원된다”라는 묘사 등은 이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었다. 또한 ‘반응(reaction)’이란 단어가 들어간 ‘반사회적 반응(antisocial)’과 같은 진단은 아돌프 마이어(Adolf Meyer, 1866~1950년)의 ‘생물―정신―사회적 모델’에 근거한 질병모델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런 추세는 1968년 개정된 DSM 2판에서도 큰 변화가 없었다.
예를 들어 ‘전환반응(conversion reaction)’이나 ‘해리반응(dissociative reaction)’은 ‘히스테리(hysteria)’로 개칭되었는데, 아직도 “무의식의 저변에 깔린 갈등을 상징하며 특정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상황과 연관된 증상”이라 설명했다. 정신분석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사실상 이 질환을 진단할 수 없고, 또한 정신과 의사마다 같은 환자를 전혀 다른 식으로 판단하고 인식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DSM 1판은 모호하고 객관적이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1970년대까지 사용됐다.




객관성을 확보한 DSM 3판, 전 세계로 확산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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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신의학자 멜빈 샙신(Melvin Sabshin), DMS을 데이터에 기반한 체계로 만들고싶다는 견해를 갖고있었다. <출처: The Royal College of Psychiatrists>





미국의 정신의학자 로버트 스피처 (Robert Spitzer). 전통적 의학모델에 기발한 DSM 3판을 발표했다. <출처: Flavin's Corner>




미국정신의학회의 주요한 인물이자 증거기반의학을 중요하게 여기는 멜빈 샙신(Melvin Sabshin, 1925~2011년)은 “DSM을 견해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데이터에 기반한 체계로 만들고 싶다”라는 확고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샙신의 비전에 따라 DSM 3판을 준비할 적임자로 로버트 스피처(Robert Spitzer, 1932년~)가 등장했다. 1932년 뉴욕에서 태어난 스피처는 정신과 전문의이자 정신분석가였다. 그러나 그는 진단분류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뉴욕이자 주립정신병원에서 근무하면서 DSM 2판과는 근본부터 완전히 다른 새로운 체계를 구상했다.

마침 존 파이너가 이끄는 진단분류학자들의 모임인 세인트루이스 그룹에서 1972년 혁신적인 주장을 했다. 의사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해서 전문적인 판단”을 우선해서는 안 되고, 환자의 증상이 일정 기간 지속되는 상태에서 그 시점의 특정한 증상의 개수가 기준점 이상일 때 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그동안 알려진 대부분의 질환에 대한 진단기준을 만들었다. 이들은 크레펠린의 이념을 추종하고 있어서 ‘네오크레펠린 학파’로 분류된다. 스피처는 이를 다듬은 ‘연구진단기준(Research diagnostic criteria, RDC)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고, 객관적 기준을 기대하던 수많은 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문화적 차이나 지역적 차이를 극복한 진단적 타당성을 얻기 위해서 1977년부터 2년간 미국 전역의 정신과 의사 500명에게 DSM 3판의 초안을 가지고 1만 2천 명의 환자들을 진단할 때 적용하게 했다. 그중 300명의 의사들에게는 쌍을 이뤄서 검사하게 하고 두 의사 사이의 진단적 일치도를 통계적으로 측정해서 진단기준의 세세한 내용을 수정했고, 마침내 1980년 공식판을 발표했다.

신중하면서도 객관적·과학적 접근으로 DSM 3판은 DSM 1, 2판과 질적으로 달랐다. 이로써 정신의학의 진단은 전통적 의학 모델에 기반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다시 의학의 주류 진단 체계로 편입될 근거를 갖게 되었다. 경험 있는 의사들 사이에서 진단적 일치도가 상당히 높으며, 객관적인 증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정량적인 증상의 개수로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장점이었다. 누구나 간편하게 펼쳐볼 수 있으면서 공신력을 가진 가이드라인이 제공된 덕분에 이 진단기준은 정신과 병원에서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보건기관, 사회복지기관, 민간보험회사, 법정, 감옥, 연구를 위한 대학 등으로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보험사에서는 환자에게 보험금 지급을 위해 DSM의 적절한 진단명을 요구했고, 변호사는 법정에서 자신의 의뢰인이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을 판사와 배심원에게 호소할 때 DSM의 진단기준을 열거하여 인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DSM 3판은 미국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로 퍼졌고, 한국에서도 이 시기부터 국제질병분류보다 일차적인 진단기준으로 DSM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제정한 국제질병분류(ICD)가 세계 각국의 기본적 진단도구지만, 정신질환만은 DSM이 우선시 되었다. 이제 미국을 넘어서 세계로, 의학계를 넘어 전 사회적으로 DSM이 일종의 기준점이 되고 매 사안마다 인용하는 책이 되다 보니 자연스레 “정신의학계의 바이블”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과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스피처 박사를 중심으로 한 15명의 특별위원회는 6년간 수많은 회의를 했는데, 『만들어진 우울증(Shyness: how normal behavior became a sickness)』의 저자 크리스토퍼 레인(Christopher Lane, 1966년~)이 공개한 회의록과 위원들 사이에 오고간 편지에 따르면, 비록 겉으로는 과학적인 연구를 기반으로 했다고 하지만 결국 스피처 박사와 핵심 그룹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됐고, 정신분석학회 등에서 주장하고 소명한 내용들은 결국 반영되지 못했다. DSM 1판과 2판의 정반대 방향의 진단체계가 정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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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우울증』의 저자 크리스토퍼 레인(Christopher Lane) <출처: www.christopherlane.org>





『만들어진 우울증(Shyness: how normal behavior became a sickness)』 영문판 표지 <출처: amazon>




DSM 1판은 132쪽에 진단수 100개 이내에 불과했지만, DSM 3판은 494쪽에 265개의 질환을 담고 있다. DSM 3R판은 567쪽에 292개, 1994년에 발표한 DSM 4판에는 886쪽에 297개의 정신질환이 소개된다. 정신과 의사가 되려면 300여 개 질환의 진단기준을 외워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겨우 10여 년 사이에 30개의 새로운 질환이 발견되었다는 것인가? 도리어 너무 세밀하게 질환을 분류하는 것이 아닌지, 혹은 라이프스타일의 불편함 정도의 문제를 의학적 질환의 범주로 억지로 집어넣으려 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또한 진단의 기준을 낮춰서 유병률을 지나치게 높게 잡는다는 지적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SM의 등장은 치료방법의 선택, 질환의 양상과 진행을 예측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진단체계를 처음으로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체계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정신의학에 가해지던 주류 의학계의 비판을 극복하고 그 범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 되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DSM으로 객관적 타당도를 가질 수 있게 되면서 안정적으로 진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생물학적 원인을 찾는 연구나 약물치료 연구가 지난 30년간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정신의학의 치료방법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DSM 5판에 대한 갑론을박, 과학의 발전을 반영한 새로운 체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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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발표된 DSM 4판. 886쪽에 걸쳐 297개의 정신질환이 소개된다. <출처: amazon>





2013년 발표된 DSM 5판. 강박장애와 트라우마/스트레스연관장애를 새로운 카테고리로 신설했다. <ⓒ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DSM 4판을 발표하고 20년이 지난 201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DSM 5판을 발표했다. 오랜 기간 준비하여 발표한 이 기준은 강박장애와 트라우마/스트레스연관장애를 새로운 카테고리로 신설했다. 전통적인 다축진단체계를 없앴고, 질환의 갯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을 반영해서 자폐증의 아형(subtypes)을 모두 통합해서 자폐스펙트럼장애로, 쓰기/읽기/셈하기 등의 다양한 학습장애를 모두 합쳐서 하나의 학습장애로 진단명을 통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경전불쾌증후군, 경도 신경인지장애 등 몇 개의 새로운 진단명을 포함시켜 전체 진단명 수는 과감하게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DSM 5판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DSM 4판의 태스크포스 팀장을 맡았던 듀크 대학의 앨런 프랜시스(Allen Frances, 1942년~)는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Saving normal)』이란 책에서 DSM의 시스템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DSM 5판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명심해야 할 것은 히포크라테스가 경고한 “해를 끼치지 마라(Do no harm)”라는 말이라면서, 현재의 DSM은 자칫 병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병을 만들어주는 환자제조기의 역할을 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특히 새로운 진단기준에 맞는 새로운 약이 나온다면 제약회사는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것이고 정신과 의사들은 이미 이런 제약산업을 통제할 힘이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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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Saving normal)』 영문판 표지. 이 책에서 저자 앨런 프랜시스는 DSM의시스템에 대해 비판했다. <출처: 네이버책>





미국 국립정신보건원의 토마스 인젤(Thomas Insel). DSM의 진단기준의 객관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출처: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미국 국립정신보건원의 토마스 인젤(Thomas Insel, 1951년~)도 역시 준열하게 비판한다. DSM 진단기준은 임상증상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며 객관적인 실험실 평가(영상의학, 혈액검사, 신경생리검사 등)에 의해서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지금까지 밝혀진 유전, 영상, 인지과학에 기반한 새로운 진단체계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이 21세기 정신의학의 나아갈 바라는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제안을 하고 있다.

DSM이 처음 등장한 후 DSM 3판이 나왔을 때에는 처음으로 신호등이 세워진 셈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수십 년 동안의 과학적 발전을 반영하지 못한 채 혼란만 가중되고 있을 뿐이라고 강하게 비판을 받는다. 그렇다면 앞으로 정신의학의 진단분류체계는 어디로 가야 할까? 그렇다고 지난 200여 년의 전통과 임상의학적 경험을 송두리째 무시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비정상성에 대한 역치가 낮아짐으로써 진단이 세분화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모든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공통적이고 범용의 진단체계가 우선인가, 아니면 각 개인에게 맞춰진 개인화된 진단이 더 중요한 것인가도 중요한 논점이다. 서두에 예로 들었던 암 진단체계는 오랫동안 사용해왔는데, 암 진단과 치료는 도리어 ‘개인의 유전자와 체질에 맞춘 개인화 치료’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도 시사할만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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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의 진단은 공통적인 체계와 개인화된 진단 모두가 중요한 요소이며,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을 지속해야할 것이다.



진단이라는 것은 한 가지 잣대만으로 모든 사람의 각각의 사정을 맞출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 하지만 의학적 소통에서 혼란을 야기하기만 할 진단은 도리어 해가 될 뿐이다. 모두가 만족할 수 는 없겠지만 최선의 진단체계에 대한 고민은 그래서 환자와 의사, 더 나아가 법, 복지체계, 연구등에까지 폭넓은 영향을 미치므로 더 신중하게 지속해야할 일이라 생각한다. 이런 고민이 계속되면 결국은 정상성과 비정상성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조금씩 더 나은 분류체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 길에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히포크라테스가 말했듯이 “환자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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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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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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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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