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한반도 호랑이 지도론 - 한반도 지도의 외곽선 안을 어떤 형상으로 채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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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97회 작성일 16-02-0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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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우리나라의 지도 모양이 토끼 꼴로 생겼다고 배우며 자랐다. 한반도의 윤곽 안에 토끼 모양을 채워 넣던 기억이 난다. 오늘날은 토끼 이야기는 쑥 들어가고 호랑이 모습의 한반도 지도를 그린다. 한반도 지도 형상에 관한 논의는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민족의식과 정체성 문제에 맞물린 일종의 담론을 형성해왔다. 최근까지도 한반도 형상과 관련된 논의와 그림 표현 작업은 지속되고 있다. 이 글에서 한반도 형상과 관련한 담론의 흐름과 경과를 여러 관련 도판과 함께 살펴보겠다.



옛 기록 속의 한반도 형상 논의



한반도의 형상에 관한 논의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기록상 한반도의 형상과 관련된 가장 분명하고 오랜 기술은 과문(寡聞)의 탓이 아니라면, 이중환(李重煥,1690~1756)의 [택리지(擇里誌)] 중 〈산수총론(山水總論)〉에서다.




대저 옛사람은 우리나라는 노인의 형상인데 해좌사향(亥坐巳向)으로 서쪽을 향해 국면이 열려 중국을 향해 읍을 하고 있는 형상이라, 예로부터 중국과 가깝게 지냈다고들 말한다.(大抵古人, 謂我國爲老人形, 而坐亥向巳, 向西開面, 有拱揖中國之狀, 故自昔親昵於中國.)

이 기록에 따르면 한반도의 지형을 중국을 향해 고개 숙여 읍하고 있는 노인의 형상으로 보았다. 어째서 우리나라가 허리 굽힌 노인의 형상으로 보였을까? 실제 우리나라 고지도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 지도인 1402년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를 보면 함경도 지역을 배제한 한반도 모양은 두 손을 앞쪽으로 모으고 중국을 향해 읍을 하고 있는 형상이 완연하다. 조선 초기 당시 함경도 지역이 우리 강역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정을 헤아릴 때, [택리지]의 언급은 설득력이 있다. 중국과 조선이 오랜 세월 가깝게 지내온 것을 한반도의 형상과 관련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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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태종 2)년 제작된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 지도로, 원본은 현재 전하지 않으며 일본에 필사본 2점이 보관되어 있다.



또 한 가지는 도선대사와 관련된 설화에서 나온다. 신라 말 도선(道詵, 827~898)이 우리나라 땅 모양을 살펴보니 마치 대륙에 비스듬히 정박해 있는 배의 형국이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지세가 서쪽은 낮고 동쪽은 태백산맥이 솟아 자칫 일본으로 떠내려갈 판이었다. 깜짝 놀란 도선은 배가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에 천 개의 불탑과 천 개의 석불을 세워 배를 운전한다는 뜻으로 운주사(運舟寺)란 절을 세웠다는 것이다(이형석, 〈반쪽짜리 우리나라 지도〉, [민족지성] 통권 63호, 1991.5, 227면). 화순 운주사(雲住寺)의 천불천탑 창건 설화다. 대개 비보사찰(裨補寺刹: 이름난 산이나 장소에 절을 세워 국운을 돕는다는 불교신앙에 의해 세운 절) 설화의 일종으로, 한반도를 배 모양으로 비정한 것이 흥미롭다.

이 밖에 우리나라 땅 모양을 인체에 비유하는 생각도 있었다. 한강(임진강)을 대수(帶水)라 하여 허리띠로 보고, 태백산맥을 등뼈로 보아 척추(脊椎) 산맥으로 부르는 따위가 그것이다. 또 근세의 신흥종교인 각세도(覺世道)에서는 한반도를 정력이 충만한 남근(男根)으로 보아, 세계를 향해 힘과 기상을 과시할 날이 반드시 온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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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창간호에 실린 토끼 모양의 한반도 지도.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는 한반도의 형상이 토끼 모양이라고 주장했다.



한반도의 형상과 관련된 논의가 본격화되는 것은 한일강제병합을 전후한 시기이다. 일제는 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해 조선반도에 관한 각종 정보를 수집했다. 이때 일본 동경제국대학의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가 1900년부터 1902년 사이에 14개월간 두 차례에 걸쳐 전국을 답사하며 조선의 지형을 연구하였다. 그 결과 그는 〈조선산악론〉을 비롯한 3편의 논문과 지명사전인 [로마자 색인 조선지명 자휘(字彙)]를 펴냈고, 1903년에는 지도인 〈조선전도(朝鮮全圖)〉를 남겼다. 그간 지리 교과서에 실려 왔던 지형도와 산맥 개념 및 명칭은 실제로 고토 분지로의 이론을 그대로 따랐다. 백두대간의 전통 개념이 일반에게 알려진 것은 20년 안쪽의 일이다.

고토 분지로는 1903년 한반도의 지질 구조도를 발표하면서 한반도의 형상이 토끼 모양이라고 했다. 이후 일제에 의해 한반도가 토끼 모양이라는 주장이 널리 퍼져,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이후 야쓰쇼에이(矢律昌永)가 고토 분지로의 이론에 근거하여 [한국지리]를 펴내고, 이어 1908년의 지리 교과서에는 고토 분지로의 산맥 개념이 전래의 산줄기 인식을 대신하여 채택되기에 이른다.



최남선의 한반도 호랑이 지도



1908년 11월, 육당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18세의 나이로 [소년]지를 창간한다. 그 창간호에 등장하는 삽도(揷圖: 삽화)가 바로 한반도 호랑이 지도다. 창간호의 ‘봉길이 지리 공부(鳳吉伊地理工夫)’란 꼭지 중에 〈대한(大韓)의 외위형체(外圍形體)〉란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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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지 창간호에 등장하는 최남선의 호랑이 지도.






일본지리학가 소등(小藤) 박사는 우리나라를 토끼에 비하여 그렸으니, 그 말에 이르기를 대한반도는 그 형상이 마치 네 발을 모으고 일어서 있는 토끼가 중국 대륙을 향하여 뛰어가려 하는 형상 같다 하였다. 그림을 보면 알려니와 북관(北關)으로 귀를 삼고, 서관(西關)으로 앞발을 삼고, 경기만(京畿灣)의 들어간 부분으로 배를 삼고, 삼남으로 아랫도리를 삼고, 관동으로 등을 삼고, 동대한만(東大韓灣)이 턱 아래가 되고, 서대한만(西大韓灣)이 뒷덜미가 되었으니, 이 또한 방불하다고 아니 못할 것이로되 이보다 낫게 비유한 것을 하나 말하오리다.



이것은 최남선의 안출(按出)인데 우리 대한반도로써 맹호가 발을 들고 허위떡거리면서 동아 대륙을 향하여 나는 듯 뛰는 듯 생기 있게 할퀴며 달려드는 모양을 보였으니, 앞서 소등 박사의 토끼 비유는 바깥 둘레 선을 많이 고쳐 그렸으나, 최 씨는 보통의 지도에 있는 대로 아무쪼록 튀어나온 곳은 튀어나온 대로, 들어간 곳은 들어간 대로 그대로 온전하게 그렸으되 복잡하게 외형을 억지로 만들지도 않고, 그 포유한 의미로 말하더라도 우리 진취적 팽창적 소년 한반도의 무한한 발전과 아울러 생왕(生旺)한 원기의 무량한 것을 남김없이 넣어 그렸으니 또한 우리 같은 소년이 보건대 얼마만큼 마음에 단단한 생각을 둘 만한 지라 가히 쓸 만하다 하겠소.

최남선은 16세 나던 1906년 3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고사부(高師部) 지리역사과에 입학해서 공부한 일이 있어 지리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최남선은 고토 분지로가 주장한 한반도 토끼 형국설에 반발하여 한반도 호랑이 지도를 그렸다. 호랑이 지도가 최남선의 창안으로, “발을 들고 대륙을 향해 할퀴며 달려드는 생기 있는 범의 모양”이 진취적이고 팽창적인 한반도의 무한한 발전과 왕성한 원기를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1910년 4월 [소년] 제4권의 부록으로 실린 〈대한지리총요(大韓地理總要)〉에서 최남선은 한반도의 지세를 다시 이렇게 묘사했다.




무한한 포부를 가지고 절륜한 용기로써 아시아 대륙으로조차 세계에 웅비하려 하는 맹호라 함은 앞에서 이미 말했거니와, 함경북도는 그 머리와 오른쪽 앞발이요, 함경남도와 평안남북도는 가슴과 왼쪽 앞발이요, 황해도는 허리 부분이요, 강원도는 경상북도와 잇달아 등줄기가 되니, 태백주맥(太白主脈)은 바로 척추요, 충청 전라 등 남도는 배이고, 경상남도는 볼기요, 전라남도는 뒷발이요, 경기도는 전체의 전방을 중국 가까운 곳에 처하여 한성(漢城)이란 폐를 간직하였으니, 강원 함경의 경계선과 경기 황해의 경계선을 분계선으로 하여 그 이남을 남한이라 하고 그 이북을 북한이라 하느니라.

최남선의 한반도 호랑이 지도는 발표 후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 [소년] 2호에는 “앞서 나온 〈대한의 외위형체〉에 관한 논설은 크게 강호의 찬미를 얻어 어떻게 좋은지 모르겠소” 하는 언급이 나오고, 이어 [황성신보]에 수록된 다음과 같은 글을 전재하였다.




20세기 신천지에 우리 대한지도의 전체가 돌연히 새로운 광채를 드러내니, 웅장하도다 동양반도의 대한지도여! 천지간 동물 중에 가장 용감무쌍하고 강맹무적한 범의 형체로다. 대저 세계 각국에 도서서적의 종류가 각각 자기 나라의 역사를 발휘하며 자국의 인물을 찬양하며, 자국의 산천을 우러르며, 자국의 물산을 보중(寶重)하여, 국성(國性)을 배양하고 국수(國粹)를 부식(扶植)한즉, 도서서적의 종류가 국민 교육상에 관계됨이 어찌 얕다 하겠는가. 이런 까닭에 일본인이 자기 나라의 지세를 평하여 비룡상천(飛龍上天)의 형세라 하였으니, 이 한 구절의 말이 족히 국민의 지기(志氣)를 배양하고 국가의 지위를 존중케 하는 재료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남선이 주축이 된 조선광문회에서는 1913년 고토 분지로의 산맥론에 대응하여 [산경표(山經表)]를 펴냈다. 이는 전통적인 백두대간(白頭大幹) 개념에 입각하여 대간(對幹)과 정맥(正脈)으로 산악의 개념을 설명한 책이다.

최남선의 호랑이 지도는 이후 폭넓은 호응을 받아 각종 잡지의 표지에 한반도를 상징하는 호랑이가 속속 등장한다. 1913년 1월 [붉은져고리] 창간호와 같은 해 4월 [신문계(新文界)]창간호 표지, 이어 1914년 10월에 간행된 [청춘(靑春)]지의 창간호 표지가 그렇다. 이 밖에도 1925년 [새벗] 창간호와 1926년 [별건곤(別乾坤)] 창간호 표지화에도 한반도를 상징하는 호랑이가 잇달아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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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붉은저고리] 창간호 표지 (1913.1.1)

2) [신문계] 창간호 표지 (1913.4.5)

3) [청춘] 창간호 표지 (1914.10.1)

4) [새벗] 창간호 표지 (1925.11.1)

5) [별건곤] 창간호 표지 (1926.11.1)



한반도 호랑이 지도는 과연 최남선의 창안인가? 이와 관련해서 살펴볼 것이 포항시 호미곶면 대보리 호미등(虎尾嶝)이란 지명이다. 호미등은 장기곶(長鬐串)이 본래 이름인데, 이곳이 한반도를 호랑이의 형상으로 보았을 때 그 꼬리에 해당한다 하여 호미등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1901년 일본 수산실업전문대학교 실습반 학생 30여 명이 다카오마루(鷹雄丸)를 타고 조선으로 건너왔다. 이들은 동해 연안의 고기 떼와 물 깊이를 조사하다가, 물밑에 숨은 암초에 걸려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전원 몰사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일본 정부는 이 사건이 조선의 해안 시설 미비로 발생한 사고라며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이에 우리 예산으로 일본에게 시설 공사를 맡겨 1903년 12월에 대보리 등대를 완성했다. 이것은 인천 월미도 등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건립된 등대였다. 당시 설계는 프랑스인이 맡았다.

등대 건립 계획이 발표되자 인근의 주민들이 크게 동요하였다. 호랑이 꼬리에 불을 붙이면 호랑이가 뜨거워 꼬리를 흔들 터인데, 그렇게 되면 인근이 불바다가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등대는 건립되었다. 그 후 일본인 등대지기가 칼에 찔려 살해되고 등대가 파손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제는 이것이 조선인의 소행이라 여겨 조사하였다. 하지만 사건 조사 결과 일인(日人) 등대지기가 일본에 있을 때 나쁜 짓을 저지르고 조선으로 도망왔는데, 복수하러 온 일인의 손에 죽은 것임이 밝혀졌다.

최남선이 1908년에 한반도 호랑이 지도를 처음 선보였고, 대보리 등대의 일은 그보다 몇 해 전의 일이니 한반도를 호랑이 모양으로 비정하는 인식은 최남선 이전부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등대 건립 당시 호랑이 꼬리에 불을 붙이면 인근이 불바다가 될 것이라 하여 건립을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특히 그렇다. 앞뒤 사실 관계의 면밀한 확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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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근역강산 맹호기상도>,호미곶 등대박물관 소장, (오른쪽) <근역강산 맹호기상도>, 김태희 작, 46x80.3cm,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왼쪽의 그림은 현재 대보리 호미곶 국립등대박물관에 그려진 한반도 호랑이 지도다.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像圖)’란 제목이 붙은 이 그림에서 특이한 점은 최남선의 그림과 달리 꼬리를 감아 올려 꼬리 끝을 등대의 위치에 자리하게 한 점이다. 이는 앞서 불바다 사건과 관련지어 흥미롭다. 또 최남선의 호랑이 지도와는 발의 위치가 조금 다르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김태희 작 〈근역강산맹호기상도〉와 비교해보면 이 그림이 꼬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1913년 하와이에서 발행하던 [신한국보(新韓國報)]가 독립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서 만든 달력의 표지 그림에는 안중근 의사의 사진과 함께 대한전도(大韓全圖)란 이름으로 호랑이 지도가 그려져 있다. 이것은 기존에 알려진 호랑이 지도와는 방향이 반대로 되어 있고, 여수 목포 쪽에 호랑이 머리를 두어 몸을 뒤틀어 막 도약하려는 맹호의 기상을 드러냈다.



동아일보 응모와 남궁억의 한반도 지도



1921년 12월에 동아일보는 “조선지도의 윤곽 안에 세 가지 이내의 물형을 채우라”는 사고(社告)를 내고, 엽서에 한반도 모양을 그려 응모하면 연말에 시상하겠노라 하였다. 이에 전국에서 무려 7천 장의 엽서가 답지(遝至)하였다.

1922년 1월 27일과 28일 자 3면에 당선작이 발표되었다. 1등작은 없이 2등 2인, 3등 2인을 각각 선정 발표하였다. 1월 27일 자에 실린 3등은 이방호(李方鎬)와 오상일(吳尙一)이 수상하였다. 이방호의 그림은 무궁화 한 그루와 팔도에 무궁화꽃이 피어난 형상을 그렸고, 오상일은 당시 국가적으로 장려되던 양잠운동과 관련하여 누에가 갉아먹은 뽕잎으로 한반도의 형상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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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무궁화로 한반도를 형상화한 이방호의 〈근(槿)〉, [오른쪽] 누에와 뽕잎으로 한반도를 그린 오상일의〈잠(蠶)〉, 1922년 1월 27일 [동아일보] 3면 기사 참조.



또 1월 28일 자에 발표된 2등은 김중현(金重鉉)과 지정순(池淨順)이 수상했다. 김중현은 〈평화의 무사(舞士)〉로 허리에 호리병을 차고 너울너울 춤추는 무동(舞童)을 그렸고, 지정순은 〈사자의 한자웅〉으로 머리를 일본 쪽을 향해 사자가 몸을 뒤튼 형상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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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춤추는 무동을 통해 한반도를 형상화한 김중현의 <평화의 무사(舞士)>, [오른쪽] 일본 쪽을 향해 사자가 몸을 뒤튼 형상을 그린 지정순의 <사자의 한자웅>, 1922년 1월 28일 [동아일보] 3면 기사 참조



동아일보사의 이 현상공모가 일으킨 반향 또한 최남선의 호랑이 그림에 못지않았다. 이때는 이미 일제의 식민통치가 본궤도에 오른 때여서 호랑이 지도는 그려질 수가 없었다.

이와 관련해 한서 남궁억(南宮檍, 1863~1939) 선생의 무궁화 지도와 호랑이 지도가 주목을 끈다. 남궁억은 배화학당의 교사로 있으면서 여학생들에게 한반도 13도를 무궁화꽃으로 자수하여 내실에 장식하게 하였는데, 이는 모든 가정에서 민족혼을 되살리려는 정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무궁화를 예찬하는 전단을 전국적으로 배포하는 한편, 무궁화 묘목을 다량으로 육묘하여 뽕나무 묘목으로 위장하여 전국에 무료 보급하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그는 일제에 끌려가 고문 끝에 1938년 4월 5일 감옥에서 세상을 떴다.

현재 일제 시기 한반도 형상 안에 무궁화를 수놓은 자수가 전해진다. 그 모양을 보면 바로 동아일보사 현상공모에서 3등을 했던 이방호의 〈근(槿)〉과 구도가 꼭 같다. 남궁억이 동아일보 현상공모에 오른 그림을 보고, 민족 얼을 상징하는 무궁화 지도에 감격하여 여학생들에게 이를 수놓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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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놓은 무궁화 삼천리강산 (1914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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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재구성한 남궁억의 호랑이 지도, 최남선의 호랑이 지도와 반대 방향으로, 일본을 향해 포효하는 형상이다.



남궁억은 또 〈조선지리가〉를 작사하여 우리나라 지도를 맹호로 나타내어 노래로 부르게 했다. 1절의 가사는 “북편에 백두산과 두만강으로/남편에 제주도 한라산까지/동편에 강원도 울릉도로/서편에 황해도 장산곶까지/우리 우리 조선에 아름다움을/맹호로 표시하니 십삼 도로다”라고 하였다. 남궁억은 〈조선지리가〉의 내용을 담아 호랑이 지도를 그리게 했다. 그런데 그의 호랑이 지도는 앞서 본 최남선의 호랑이 지도와는 방향이 정반대였다. 1913년 [신한국보]의 호랑이 지도와도 달랐다. 입을 벌린 호랑이 머리가 부산이 되고, 앞발은 여수와 목포였다. 진남포와 백두산이 뒷발이 되어 금방이라도 용을 쓰면서 뒷발에 힘을 주어 달릴 듯이 꼬리를 편 것이 청진과 나진이었다. 그리고 동해안의 함흥과 원산, 강원도가 등골이 되었다. 남궁억은 크리스마스 축하모임에서 〈조선지리가〉를 부르며 강대 뒷벽에 붙여둔 흰 종이에 붓을 들고 차례로 돌아가며 맹호를 그려 일본을 건너다 노려보게 하는 그림 노래를 부르게 했다. 이것이 유행하자 일본의 비위를 거슬러서 마침내 그림도 노래도 금지되고 말았다.

남궁억의 호랑이 지도는 한반도를 넘보는 일본을 향해 당장에라도 물어뜯을 듯 포효하며 으르렁거리는 형상인데, 이를 필자가 재구성해보았다. 대략 다음과 같은 그림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그림 17). 이 그림에서는 최남선의 그림에서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던 부분이 호랑이의 귀가 된다.



최근의 여러 한반도 형상 지도



호랑이 지도는 근래에 와서도 심심찮게 그려지고 있다. 주로 대기업의 이미지 광고나 그 밖의 카툰 등에서 그렸는데, 필자가 그간 갈무리해둔 몇 가지를 소개한다. 아래 그림의 왼쪽은 1994년 삼보컴퓨터에서 기업 이미지 광고로 사용한 호랑이 지도이다. 남궁억의 호랑이 지도처럼 호랑이가 머리를 아래쪽으로 둔 모습이다. 제목을 ‘이 땅이 어디라고…’로 달았다. 세계화의 구호가 한창이던 시절, 우리 기술로 우리 것을 지킨다는 이미지 광고를 호랑이 지도로 재구성한 것이다. 광고 제작자는 아마도 남궁억의 호랑이 지도를 참고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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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컴퓨터 광고에 등장한 호랑이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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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광고에 등장한 호랑이 지도



또 앞서 본 〈근역강산 맹호기상도〉와 같은 구도의 그림으로 1996년도 삼성물산에서 ‘강한 기업이 강한 국가를 만듭니다’란 제목 아래 그린 호랑이 지도가 하나 더 있다. 안정된 구도나 실감나는 형상면에서 가장 우수하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최남선이 그린 호랑이 지도는 동아시아 대륙을 향해 생기 있게 할퀴며 달려드는 모양이기보다는 오히려 대륙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느낌이 없지 않다. 이에 반해, 남궁억의 호랑이 지도나 삼보컴퓨터 광고 속 호랑이처럼 방향이 반대로 된 호랑이 그림은 막 만주벌을 헤치고 나와 태평양을 향해 도약하려는 맹호출림(猛虎出林)의 호쾌한 기상이 느껴진다. 남궁억의 그림이 우리를 집어삼키려는 일본을 위협하는 의미였다면, 오늘의 그 의미는 태평양 시대에 세계로 도약하는 한국의 이미지로 더 적절하리라는 판단이다.

이상 한반도 지도 형상과 관련된 이런저런 논의와 그림들을 한자리에 모아 살펴보았다. 꽤 여러 개의 도판을 소개하였는데, 자세히 보면 도판들 간에 상호 연관성이 깊다. 최근에는 애초에 우리의 영토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만주벌에까지 뻗어 있었음을 고려한 색다른 호랑이 지도도 등장했다.

최남선의 호랑이 지도는 고토 분지로의 토끼 형상론에 반발하여 나왔다. 이후 동아일보사의 현상공모와 누에가 뽕잎 먹는 그림이 교과서에 오른 일, 또 이를 분개하여 남궁억이 무궁화 지도를 수놓게 하고, 〈조선지리가〉를 지어 일본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 지도를 그리게 한 일로 이어졌다. 이는 모두 일제 강점기에 일인들의 민족 말살 정책과, 이에 맞선 민족의식의 고취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이후로 호랑이 지도의 형상만 해도 다양하게 변화를 거듭해왔다.

지도의 외곽 속은 텅 빈 공간일 뿐이다. 그 속을 어떤 형상으로 채울 것인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 텅 빈 공간 속에 우리는 다시 무엇을 채워 넣을 것인가? 여러 한반도 지도 형상을 앞에 놓고 이 질문 앞에 선다.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태학사와 손을 잡고<한국학, 그림을 그리다>를 연재한다. 그림에 숨은 비밀과 사연을 프리즘으로 삼아 한국학의 출렁이는 바다로 여행을 떠나려는 것이다. 문학, 미술, 음악, 철학, 역사, 문화가 망라되는 항해에 깊고 진한 교감이 깃든 풍성한 바다가 펼쳐지길 해신(海神)에게 기도한다. 연재는 매주 1회 돛을 달고 항구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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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도서 출간
네이버캐스트에 연재되었던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시리즈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우리 시대 인문학자 32인이 옛 그림을 호명해 되살려낸 한국학 읽기의 색다른 즐거움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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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충북 영동 출생. 현재 한양대 국문과 교수다. 무궁무진한 한문학 자료를 탐사하며 살아 있는 유용한 정보를 발굴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꼼꼼히 읽어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을, 다산 정약용이 창출한 새로운 지적 패러다임과 그 삶에 천착하여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다산의 재발견], [삶을 바꾼 만남]을 펴냈다. 더불어 18세기 지식인에 관한 연구로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과 [미쳐야 미친다] 등이 있다. 또 청언소품에 관심을 가져 [마음을 비우는 지혜], [내가 사랑하는 삶],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돌 위에 새긴 생각], [다산어록청상], [성대중 처세어록], [죽비소리] 등을 펴냈다. 이 밖에 옛글 속 선인들의 내면을 그린 [책 읽는 소리], [스승의 옥편] 등의 수필집과 한시 속 신선 세계의 환상을 분석한 [초월의 상상], 문학과 회화 속에 표상된 새의 의미를 찾아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조선 후기 차 문화의 모든 것을 담은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를 썼다. 아울러 한시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한시 미학 산책]과 어린이들을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사계절에 담긴 한시의 시정을 정리한 [꽃들의 웃음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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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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