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파초가 있는 풍경 - 옛 문인들의 시와 그림 속에서 만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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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79회 작성일 16-02-0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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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파초는 무어라 해도 고등학교 시절 배운 한 편의 시에 등장하는 파초이다. 지금도 두어 구절 정도는 외울 수 있는 김동명의 <파초>야말로 내가 처음 만난 파초의 풍경이다.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을 향한 불타는 향수

너의 넋은 수녀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그 부드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1930년대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파초에 감정이입 하였다는 교과서적인 해설과 상관없이, 이 시 속의 파초는 어찌나 낭만적이고 이국적인지 내게는 오히려 조국의 상실을 운운하는 것이 어색할 지경이었다. 남국을 향한 불타는 향수, 수녀보다 외로운 넋, 정열의 여인, 부드러운 치맛자락으로 그려진 파초는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낯선 남국의 열대 식물이었다. 그러니 한동안 내게 파초는 상상 속의 뜨거운 풍경일 뿐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파초는 멀리 이국에서 온 낯선 식물이 전혀 아니었다. 중국 원산의 온대성 대형 초본식물인 파초는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에서 일찍부터 재배되었으며, 제주도에서는 자생하였다. 그래서인지 옛 문인들의 시문과 그림 속에서 너무나 흔하게 자주 만날 수 있는 식물이 바로 파초이다.



파초가 바나나와 동종의 식물인지는 더 늦게 알게 되었다. 파초의 전체 모양과 꽃, 열매는 바나나와 무척 닮아서 구별이 잘 안 되지만, 파초는 바나나에 비해 결실성이 아주 떨어지고 열매도 바나나보다 작고 먹을 수도 없다. 중국의 시에 등장하는 누런 파초실(芭蕉實)은 알고 보면 제수로 올린 바나나였으니, 요즘 간혹 제사상에 바나나를 올리는 것의 근거가 되는 셈이다.



파초가 있는 풍경, 겸재 정선의 <척재제시(惕齋題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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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초원시명(蕉園試茗)>
제작연도 미상, 종이에 수묵담채, 28 x 37.8 cm, 간송미술관 소장<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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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봉래선경(蓬萊仙境)>
제작연도 미상, 종이에 수묵담채, 23.2 x 30.3 cm, 간송미술관 소장<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옛 그림 속에 파초가 그려진 예는 너무 많다. 정조의 <파초도>(正祖大王筆芭蕉圖, 보물 제743호)처럼 파초만을 그린 그림도 있지만, 정원에 그려진 파초가 대부분이다. 은자(隱者)의 정원, 도사(道士)의 정원, 문인(文人)의 정원에는 늘 파초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김홍도(金弘道, 1745~?)의 <초원시명(蕉園試茗)>을 보면 시원스럽게 쭉 뻗은 파초 한 그루 아래 질박한 탁자가 놓여 있고, 탁자 위에 책 두 권, 원형 벼루, 몽당 먹, 족자 세 개, 줄 없는 거문고, 투박한 찻잔 세 개가 놓여 있다. 탁자 옆에는 미소를 띤 동자가 질화로에 무쇠 다관을 올려놓고 쪼그리고 앉은 채 부채질을 하고 있다. 은자는 보이지 않는데 탁자 옆에는 사슴 한 마리가 있어 이곳이 심산유곡(深山幽谷)임을 알게 해준다. 김홍도의 <봉래선경(蓬萊仙境)>에도 커다란 태호석 옆에 곧게 뻗은 큰 파초와 그 옆에 붙어서 자라는 아기 파초 한 그루가 보인다. 긴 평상 위에는 두루마리가 꽂힌 고동기(古銅器)와 질화로가 있고, 평상 옆에는 단정학(丹頂鶴) 한 마리가 보인다. 이처럼 은자의 탈속적인 공간이나 선계(仙界)에 잘 어울리는 식물이 파초였다.

또 파초는 곧잘 문인이나 예인(藝人)의 방에서도 보인다. 김홍도의 <월하취생도(月下吹笙圖)>를 보자. 이 그림은 당나라 시인 나업(羅鄴)의 생황시 “월당의 생황소리 용울음보다 처절하네(月堂凄切勝龍吟)”를 화제로 한 그림이다. 방에는 질그릇 술병, 사기 사발, 흰 족자 두 개, 벼루와 먹, 바닥에 나뒹구는 붓 두 자루가 단출하게 그려져 있고, 그 한가운데 준수한 사내가 맨다리로 무릎을 세우고 앉은 채 파초를 깔고 앉아 생황을 불고 있다. 널리 알려진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에도 한 선비가 맨발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당비파를 타고 있는데, 그 옆에 커다란 파초 잎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렇듯이 파초 잎이 방 안에 놓인 이유는 파초 잎에 시를 쓰고 글씨를 쓰는 아취(雅趣:고아한 정취) 때문이다. 어떤 그림에서는 화분에 심어진 파초도 보이고, 또 꽃병에 꽂힌 파초 잎도 보인다. 그림에만 파초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백자 항아리에도 그려져 있고, 창덕궁 후원의 관람정(觀纜亭)에는 현판이 파초 잎 모양을 띠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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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월하취생도(月下吹笙圖)>
제작연도 미상, 종에에 수묵담채, 23.2 x 27.8 cm, 간송미술관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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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
제작연도 미상, 종에에 수묵담채, 27.9 x 37 cm, 개인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많은 파초 그림 중에서 가장 시원스럽게 그려진 예는 아마도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척재제시(惕齋題詩>([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가 아닐까. 겸재는 이 그림을 웅어와 함께 벗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에게 보냈다. 화제(畵題) ‘척재제시’는 척재 김보택(金普澤, 1672~1717)이 웅어
꿰미를 선물 받고 시를 지어 답례한다는 뜻이다. 김보택은 김만기(金萬基)의 손자요, 김진귀(金鎭龜)의 둘째 아들로 김춘택(金春澤)의 동생이었다. 최완수에 따르면, 김보택은 당대 제일의 명문가로 왕실과 가까운 친척이니 계절의 진미 웅어가 진상됨이 당연한 일이고, 아마도 이 일이 널리 알려져 화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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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척재제시(惕齋題詩)>([경교명승첩])
1741년, 비단에 채색, 28.2 x 33.1 cm, 간송미술관 소장



사방이 신록으로 빽빽하게 에워싸인 사랑채 정원이 그림 속 공간이다. 어찌나 푸름이 넘치는지 이 그림처럼 사방에 여백 없이 신록으로 가득 찬 정원을 보지 못했다. 사랑채의 오른편 파초는 또 얼마나 무성하게 잘 자랐는지 지붕까지 치솟았고, 열어젖힌 문의 한쪽을 가릴 정도다. 섬돌 아래에는 젊은 군노(軍奴: 군무를 맡아보던 관아에 속한 사내종)가 웅어 꿰미를 치켜들고 섰는데, 탕건 차림을 한 덥수룩한 흰 수염의 주인은 방문을 열어젖히고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시를 쓰고 있다. 파초의 싱그러움도 보는 눈을 시원스럽게 만들지만, 두 인물의 정다운 배치에 그림을 읽는 맛이 즐겁다.

이 그림을 받은 사천(이병연)은 그림의 뒷면에 다음과 같은 답장을 써서 돌려보냈다.




설화전 여섯 폭을 싸서 종해헌에게 보냅니다. 제가 시를 짓고자 하나 좋은 시가 없어서, 설화전을 펼쳐놓고 짐짓 머뭇거립니다. 차라리 파릉 태수(양천현령, 곧 정선을 이름)에게 권째로 보내니, 강가에서 젖혀진 두건을 쓸 때를 기다림만 같지 못합니다. 신유년(1741) 첫여름에 사천 아우(雪華牋六幅, 裹奉宗海軒, 我欲題詩無好詩, 雪牋披拂故遲遲. 不如卷如巴陵守, 待入江天岸幘時. 辛酉初夏, 槎弟).





버들가지에 꿰어 보낸 것으로 한술 뜰 수 있었습니다. 제 시를 보시고자 한다 하니 제가 보고자 하는 것은 몇 배나 더합니다. 육지가 막아 다치게 될까 봐 하나의 시축 중에 넣어 보내니 따로 육지를 돌려보내실 때 함께 돌려보내주십시오. 속말에 기다리게 하는 것으로 병든 심회를 위로하기가 어렵지 않다 합니다. 18일 새벽에 조아림(貫柳之惠, 令人加匕. 欲見我詩, 我之欲見者, 尤倍倍. 六紙恐碍傷, 入於一詩軸中以去, 還六紙時, 幷還. 俚無難待以慰病懷, 十八早頓).



그림에 어울리는 시를 짓지 못했으니 다른 날 한강가에서 만나 두건이 젖혀질 정도로 호탕하게 시주(詩酒)의 풍류를 함께 나눌 것을 약속하고, 또 보내준 웅어를 맛있게 먹었다고 사례하였다. 그러고 보니 그림 속에 그려진 웅어를 실제로 맛본 이는 척재가 아니라 바로 겸재의 벗 사천인 셈이다. 웅어는 예전 임금님이 드시던 귀한 물고기로 조선 말기에는 행주에 사옹원(司饔院) 소속의 ‘위어소(葦漁所)’를 두어 이것을 잡아 왕가에 진상하던 것이 상례였다. 행호의 고기잡이 배들이 바람을 타고 경쾌하게 늘어선 풍경을 담은 겸재의 <행호관어(杏湖觀漁)> 옆에는 사천이 지은 시가 고운 시전지(詩箋紙: 시나 편지를 쓰는 종이)에 적혀 있다.




늦봄엔 복어국                                  春晩河豚羹

초여름엔 웅어회                               夏初葦魚膾

복사꽃 필 적 물결이 불어                   桃花作漲來

행호 밖으로 그물을 던지네.                網逸杏湖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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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행호관어(杏湖觀漁)>
제작연도 미상, 비단에 채색, 23 x 29.2cm, 간송미술관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척재제시>와 <행호관어>의 두 그림을 나란히 감상하고 있으면, 어느새 겸재와 사천이 웅어회를 안주 삼아 시화를 즐기는 모습이 보일 듯도 하다.

두 그림이 실려 있는 [경교명승첩]은 일명 ‘시화상간첩(詩畵相看帖)’이라고도 불린다. 1740년 70세의 노시인(老詩人) 사천이 양천현령으로 떠나는 65세의 노화가(老畵家) 겸재를 전송하며 ‘시화상간(詩畵相看)’을 약속하였고, 그 약속대로 시화첩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온 별칭이다. 겸재는 이 화첩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겨 ‘천금을 주어도 절대 남에게 전하지 말라(千金勿傳)’는 인장(印章)을 새겨 그림 사이사이에 찍어놓았는데, <척재제시>의 아래 쪽 화제 옆에도 ‘천금물전’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그래서인지 <척재제시>에 보이는 파초의 무성한 기운이 백발 시인이 살포시 띄운 미소와 어울려 늙어도 시들지 않는 두 사람의 우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파초와 웅어, 시와 그림이 빚어낸 우정의 풍경이 바로 <척재제시>라 하겠다.



고즈넉한 산사의 파초



절을 자주 찾는 사람이라면 어느 절에선가 법당 섬돌 아래쯤에서 푸르른 파초를 본 적이 있으리라. 물론 파초인 줄 모르고 스친 이들도 많겠지만. 산사에 파초가 어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좀 무서운 이야기가 전한다.

달마가 북위(北魏)의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 동안 벽을 향해 앉았는데, 혜가(慧可)가 불법을 물으러 와 밤새도록 문 앞에서 눈을 맞고 서서 법을 구하였다. 그러나 달마는 일절 응대를 하지 않았고, 결국 혜가는 아침이 되자 자기 팔을 계도(戒刀)로 끊었다. 혜가의 뿜어 나온 피 속에서 파초가 솟아나고, 그 잎에 글을 써서 달마에게 바쳐 정성을 표했다. 상상만 해도 조금 어질해지는데, 이를 그린 그림을 인터넷 검색으로 보고야 말았다. 천안의 광덕사 법당의 한 벽에 바로 이 장면이 그려져 있다. 혜가가 무릎을 꿇고 커다란 파초 잎에 자신의 잘린 왼팔을 얹어 바치는 장면. 아주 오래 전에 광덕사로 답사를 간 적도 있건만, 도무지 이 벽화를 본 기억이 없고 그 대신 호두나무 얘기를 한참 했던 기억만이 선하다.

파초는 나무처럼 보이지만 나이테가 없고 그 속은 알맹이도 없고 견고함도 없지만, 자르면 그 위에 다시 싹이 올라온다. 이런 파초를 보고 유마힐(維摩詰)은 “이 몸은 파초와 같아 속에 견고함이 있지 않다(是身如芭蕉, 中無有堅)”라 하였다. 왕유(王維)의 <원안와설도(袁安臥雪圖)>에 그려진 눈 속의 파초는 실제의 너머를 지향하는 초일(超逸)한 정신을 환기시킨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파초는 그 어떤 화초보다 절간에 잘 어울린다고 하겠다. 하지만 정작 나와 같은 속인들은 절간 뜰의 푸른 파초에서 이런 연상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파초의 싱그러운 푸름이 절간이라 더욱 푸르고 싱그러워 보일 뿐.

고려의 선사(禪師) 혜문(惠文, 송월화상(松月和尙)이라고도 함)이 보현사(普賢寺)에서 쓴 시를 읽어보자.




향로 연기 자욱한 속에 범패 소리 울리는데                   爐火煙中演梵音

깊숙한 방에 고요히 상서로운 흰 기운 피어오르네.         寂寥生白室沈沈

문밖 뻗은 길엔 남으로 북으로 가는 사람                      路長門外人南北

바윗가 늙은 솔엔 예나 이제나 달빛 비치네.                  松老巖邊月古今

빈 뜰 새벽바람에 풍경소리 울리고                              空院曉風饒釋舌

작은 뜰 가을 이슬에 파초는 시들었네.                        小庭秋露敗蕉心

내가 와서 고승의 자리에 앉으니                                我來寄傲高僧榻

하룻밤 청담은 그 값이 만금일세.                               一夜淸談直萬金






이 시에서 명구(名句)로 꼽히는 구절은 함련(頷聯: 셋째 구와 넷째 구)이지만, 새벽바람에 풍경소리 울리는 고즈넉한 절간의 뜰에 막 가을 이슬 맞아 시들어가는 파초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매화를 보러 선암사에 가거나, 동백을 보러 선운사나 미황사를 가거나, 또 여름날 상사화를 보러 선암사를 찾기도 하였다. 이제는 붉은 파초 꽃이나 푸른 파초 잎을 보러 갈 산사를 한 곳 찾아야겠다. 그러자 어느새 누군가 “화엄사 각황전 섬돌 아래 파초가 볼 만하지요” 한다.



문인의 맑은 벗, 파초



무어라 해도 파초를 가장 즐겨 가꾼 이들은 사대부 문인들이었다. 구례의 운조루를 그린 <오미동가도(五美洞家圖)>를 보면, 사랑채 마당에 파초가 보인다. 담양의 소쇄원을 그린 <소쇄원도>에도 제월당 왼편과 소쇄원 입구에 파초가 한 그루씩 보인다. 김인후가 소쇄원에 부친 시 48수 중 한 수가 바로 <파초 잎에 듣는 빗소리(適雨芭蕉)>였다. 김조순의 집을 그린 <옥호정도(玉壺亭圖)>에도 사랑채 마당 끝자락에 파초가 보인다. 강진의 다산초당을 그린 <다산초당도>에도 초당 뒤편 괴석 옆에 파초가 심겨 있다. 김조순의 옥호정을 제외하면 지금도 남아 있는 정원들이라 언제나 찾을 수 있는 곳들이다. 운조루와 다산초당에는 두 번, 소쇄원은 여러 번 가보았는데, 어째서 파초를 본 기억은 잘 나지 않을까? 파초에 대한 또렷한 이미지를 갖지 못한 채 들렀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찾을 때에는 꼭 파초를 찾아보리라.

문인들이 글로 그려낸 아름다운 정원 풍경에도 파초는 빠지지 않는다. 다산의 서울 명례방 집 정원에도 크기가 방석만 한 파초가 한 그루 있었고, 이이엄(而已广) 장혼(張混)이 인왕산 옥류동에 그린 집 ‘이이엄’의 사랑채 왼편에도 파초 한 그루가 있었다. 이렇듯 문인들의 사랑채에 파초가 제격인 이유는 파초에 담긴 문취(文趣) 때문이었다.

글씨를 잘 썼던 회소(懷素, 당 나라의 승려이자 명필)가 집이 가난하여 종이가 없어서 고향 마을에 파초 1만 그루를 심어놓고, 그 잎에다 글씨를 연습했다는 고사는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백거이(白居易)가 “한가할 땐 파초 잎 뜯어다가 시 써서 읊는다(閑拈蕉葉題詩詠)”라 읊었듯이, 파초 잎에 글씨를 쓰고 시를 적는 것이 문인의 아취였다. 유달리 파초를 즐겨 읊은 시인 서거정(徐居正)도 “시 생각이 물처럼 맑은 게 하도 괴이하여, 파초 잎 위에다 또 새로운 시를 적어보네(却怪詩情淸似水, 芭蕉葉上又新題)”라 하였다. 이러한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는 이재관의 <파초제시도(芭蕉題詩圖)>를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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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관, <파초제시도(芭蕉題詩圖)>
제작연도 미상, 종이에 담채, 37 x 59 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파초를 좋아하여 ‘마음의 벗’이라 부른 이로는 연암 박지원(朴趾源)이 있다. 영해에 귀양 중인 이서구(李書九)가 보낸 편지를 받은 연암은 이렇게 말하였다.




옛사람 중에는 파초를 벗한 이가 없는데, 나는 유독 파초를 사랑하지요. 줄기는 비록 백 겹으로 돌돌 말려 있지만 가운데가 본래 텅 비어 한번 잎을 펼치면 아무런 꾸밈이 없으니, 이 때문에 나의 마음을 터놓는 벗이 된 것이라오. 달 밝은 창이나 눈 내리는 창가에서 가슴을 터놓고 마음껏 이야기하니, 중산군(中山君: 중산에서 나는 토끼의 털로 만든 붓)이 민첩하여 말없이 도망치는 것과는 같지 않소이다.


파초는 심지가 없이 속이 텅 비어 있다가 잎을 펼치면 있는 그대로를 다 드러내니, 그래서 마음을 터놓은 벗이 된다 하였다. 감추는 것이 많고 꾸밈이 많은 우리 인간과 참으로 다르다. 또 연암은 김이소(金履素)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파초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였다.




지난가을에 자녀와 남녀 종들을 다 보내고 나니 관아가 온통 비었고, 몸에 딸린 것은 관인(官印)을 맡아 곁을 지키는 동자 하나뿐인데, 밤이면 문득 꿈결에 잠꼬대를 외치므로 한심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어, 늘 그 아이로 하여금 동헌(東軒)을 지키도록 바꾸어주고, 홀로 매화 화분 하나, 파초 화분 하나를 동반하여 삼동을 났습니다. 옛사람 중에 매화를 아내로 삼은 이가 있었습니다만, 눈 내리는 날 푸른 파초는 마음을 터놓는 벗이 될 만하더군요.

한겨울 눈이 내려도 화분에 심긴 파초는 방 안에서 푸른 자태를 뽐내며 연암의 곁을 지켰다. 특별한 공무 없이 관아의 방에서 눈 내리는 날 파초를 곁에 두고 편지를 쓰고 있는 연암의 모습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연암은 경상도 안의에 세운 하풍죽로당(荷風竹露堂)에도 뜰 가운데 열한 뿌리의 파초를 심어 가꾸었다. 연암은 파초를 감상하는 정경을 두고 이렇게 묘사하였다. “가슴이 답답하고 생각이 산란하여 탕건이 절로 숙여지고 눈꺼풀이 무겁다가 파초의 잎을 두들기는 소리를 듣고 정신이 갑자기 개운해지는 것은 시원한 소낙비 내린 낮이오”라고. 연암과 각별한 사이였던 이덕무(李德懋) 또한 참으로 비슷한 정경을 글로 그려놓았다.




더운 여름날에 파초원(芭蕉院)에 앉았노라면 졸음이 구름처럼 몰려온다. 이때 소나기가 좍좍 파초 잎을 치면 물방울 흐름에 따라 잎이 까딱까딱거리고, 세찬 빗발로 이는 안개 같은 물방울 때문에 얼굴이 서늘해져서 졸음을 쫓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파초 잎에 듣는 빗소리를 기다리며



[소창청기(小窓淸記)]에 의하면, 소리(聲)의 운치에 대해서 논하는 자들이 계성(溪聲)ㆍ간성(澗聲)ㆍ죽성(竹聲)ㆍ송성(松聲)ㆍ산새 소리[山禽聲]ㆍ그윽한 골짜기에서 나는 소리(幽壑聲)ㆍ파초에 듣는 빗소리(芭蕉雨聲)ㆍ낙화성(落花聲)ㆍ낙엽성(落葉聲)을 말하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천지(天地)의 맑은 소리로 시인의 가슴을 울리는 것들이라 하였다. 나는 시냇물 소리와 계곡물 소리, 계곡에 불어오는 바람소리를 들어보았다. 담양 시골집에 갈 때마다 대나무에 부는 바람소리를 빗소리로 착각한 적도 많았다. 솔바람 소리도, 산새 소리도 들어보았다. 꽃이 지는 소리와 낙엽이 지는 소리는 눈과 마음으로 들어보았다. 그런데 아직도 내가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있으니, 바로 파초 잎에 듣는 빗소리다. 옛 문인이 그렇게나 좋아한 그 소리를 말이다.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창가에 파초를 심어두고 빗소리를 듣는 아취를 기대할 수는 없다. 물론 옛 문인들이 그랬듯이 화분에 심어두고 본다 해도, 아파트에서는 파초 잎에 듣는 빗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언젠가 새하얗게 눈이 내린 날, 경주 기림사를 찾아가 법당 처마 아래 쪼그리고 앉아 눈이 녹아 똑똑 떨어지는 소리를 한참이나 들은 적이 있듯이, 이제는 산사를 찾는 어느 여름날 우연히 소나기를 만나 파초 잎의 빗소리를 한번 기다려 볼 수밖에. 아니면 제법 멀고 먼 어느 날 내가 오랫동안 그리고 있는 노년의 집이 현실이 되는 날 파초 잎에 듣는 빗소리를 마음껏 들으려니, 그때 혹 다음 시와 같은 풍경도 보지 않을까.




나무마다 부는 더운 바람에 잎잎이 나란한데           樹樹薰風葉欲齊

두어 봉우리 서쪽에는 비 짙어 새까맣네.                正濃黑雨數峯西

쑥빛보다 푸른 청개구리 한 마리                           小蛙一種靑於艾

파초 잎에 뛰어올라 까치 울음 흉내 내네.               跳上蕉梢效鵲啼


이 시는 김정희(金正喜)의 <소나기(驟雨)>로 [완당전집] 제10권에 실려 있지만, 본래 유득공(柳得恭)의 <비가 오려나(將雨)>란 시를 살짝 고친 시이다. 유득공의 시는 “나무마다 부는 더운 바람에 푸른 잎이 나란한데, 두어 봉우리 서쪽에는 구름 기운이 짙어지네. 쑥빛보다 푸른 청개구리 한 마리가 매화가지에 뛰어올라 까치 울음 흉내 내네(樹樹熏風碧葉齊, 正濃雲意數峯西. 小蛙一種靑於艾, 跳上梅梢效鵲啼)”이다.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태학사와 손을 잡고<한국학, 그림을 그리다>를 연재한다. 그림에 숨은 비밀과 사연을 프리즘으로 삼아 한국학의 출렁이는 바다로 여행을 떠나려는 것이다. 문학, 미술, 음악, 철학, 역사, 문화가 망라되는 항해에 깊고 진한 교감이 깃든 풍성한 바다가 펼쳐지길 해신(海神)에게 기도한다. 연재는 매주 1회 돛을 달고 항구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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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도서 출간
네이버캐스트에 연재되었던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시리즈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우리 시대 인문학자 32인이 옛 그림을 호명해 되살려낸 한국학 읽기의 색다른 즐거움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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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선 |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한국한문학 전공. 조선후기 한문 산문의 양상을 조명하는 데 주력해왔으며, 옛 문인들의 뜻과 정이 담긴 글들을 찾아 소개하기를 좋아한다. 저서로 [박지원 산문의 고문 변용 양상], [정조의 시문집 편찬], [나 홀로 즐기는 삶], 역서로 [유배객, 세상을 알다 - 김려 산문선], [조선 선비의 일본견문록, 해유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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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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