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옛 일본 소설 속의 조선 풍속화 - 조선을 조선답게 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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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03회 작성일 16-02-0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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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의 풍속화



[에혼 다이코기(絵本太閤記)]라는 옛 일본의 책이 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의 일생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장편 역사소설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미지를 결정지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히데요시의 일대기니만큼, 그의 일생에서 결말부에 해당하는 임진왜란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1797년에서 1802년까지 6년간에 걸쳐 전 7편 84책이 출간된 [에혼 다이코기]에서 임진왜란은 제6~7편 24책에 걸쳐 그려진다.

제6편 말미인 권12에는 두 장의 그림이 실려 있다(그림 1). 건물 안에는 의자에 앉아 책을 보는 남성과 화려하게 장식된 방에 있는 두 명의 여성이 신윤복 화풍으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 한눈에 조선의 풍속화임을 알 수 있다. [에혼 다이코기]에 실려 있는 다른 삽화들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이질적인 이 두 장의 그림이 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대기에 실려 있는 것일까? 그림의 위와 옆에는 이 책의 삽화를 그린 화가 오카다 교쿠잔(岡田玉山, 1737~1812)의 설명이 실려 있어 힌트가 된다. 이 글에서는 교쿠잔의 설명을 실마리 삼아, 옛 일본 소설 속에 실려 있는 조선 풍속화를 둘러싼 이야기를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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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신윤복 풍의 조선시대 풍속화
[에혼 다이코기] 제6편 권12, 개인 소장



근세 일본의 해외 정보



교쿠잔이 조선 풍속화를 입수한 배후에는 일본의 18세기를 대표하는 백과사전적 지식인 기무라 겐카도(木村蒹葭堂, 1736~1802)를 둘러싼 그룹이 존재한다. 1764년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을 통해 겐카도 그룹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32에 <겸가당(蒹葭堂)>이라는 기사를 실어 겐카도 그룹의 열린 세계관을 칭송하기도 했다. 이처럼 조선의 지식인들에게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겐카도 그룹의 세계관은 서구권을 포함한 전 세계의 지식을 장악하게 해준 그들의 정보망에서 비롯되었다.

겐카도 그룹의 정보력을 상징하는 것이, [에혼 다이코기]의 화가 교쿠잔이 삽화를 그린 중국 지리서 [당토명승도회(唐土名勝圖会)](1806)이다. 18세기 당시 일본과 청국(淸國)은 정식으로 국교를 맺지 않고, 청국 남부의 상인들이 규슈(九州) 서부의 국제 무역항 나가사키(長崎)에서 교역만을 행했다. 일본의 실권을 장악한 도쿠가와 막부(徳川幕府)는 나가사키 부교(奉行)라는 관리를 파견하여 이 지역의 대외 무역을 직접 관장했다. 1790년대에 나가사키 부교로 부임했던 나가카와 다다테루(中川忠英, 1753~1830)는 일본인 중국어 통역관들을 통하여 복건, 절강, 강소 등지에서 온 상인들에게 중국의 정보를 수집하여, 건륭(乾隆) 연간(1736~1795) 청국 남부 지역의 실정을 상세한 삽화와 함께 전하는 [청속기문(清俗紀聞)](1799)이라는 지리지(地理誌)를 출판했다. 이 책은 전근대 일본 최대의 백과사전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図会)](1712)나 저명한 중국 지리지인 [당토훈몽도회(唐土訓蒙圖彙)](1719)와 함께 18세기 일본에서 향유되던 중국 지식의 실태를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권12에서는 중국 삼국시대의 영웅 관우의 신상과 그를 모시는 관제묘(關帝廟)를 묘사하고 있다. 건물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려는 의도가 엿보이지만 아직 평면적인 느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겐카도 그룹은 이 [청속기문]보다 더 치밀하고 스케일이 큰 삽화와 방대한 정보를 수록한 [당토명승도회]라는 문헌을 출판했다. 1802년에 사망한 겐카도의 유지를 받들어 [에혼 다이코기]의 삽화를 그린 교쿠잔이 삽화 제작을 주도한 이 문헌은 겐카도가 소장하던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 [명사(明史)] 등 50여 종의 명ㆍ청대 문헌에 의거하여 제작되었다. 원래는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하여 6편까지 간행될 예정이었던 것 같지만, 실제로 간행된 것은 베이징과 근교(直隷)를 다룬 제1편뿐이었다.

18세기에 일본에서 제작한 다른 중국 지리지들과 비교할 때, [당토명승도회]의 가장 큰 특징은 삽화이다. 이는 “근세 판각 세밀화의 개창자이며, 화법과 필력이 고금에 비할 바 없다”는 평가를 받는 교쿠잔과 19세기 들어 그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기 시작한 판각수(판목에 글과 그림을 새기는 직업)들의 실력에 힘입은 바가 컸다. 예를 들어 권1 오문조참지도(午門朝參之圖)에서는 중국 청대의 궁전인 자금성(紫禁城) 오문(午門)에 관리들이 입조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입체적인 건물과 수십 명의 사람, 이국풍의 코끼리에 이르기까지 세밀하면서도 광대하게 조감하고 있다. 명ㆍ청대 중국의 풍속을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한 삽화는 전근대 일본의 다른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에혼 다이코기]에 실린 조선 풍속화와 겐카도 그룹



한편 교쿠잔은 [당토명승도회]가 제작되던 같은 시기에 [에혼 다이코기]의 삽화도 그렸다. 전근대 일본 문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에혼 다이코기]의 성립에는 겐카도 그룹이 축적한 해외 지식과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 적은 편이다.

[에혼 다이코기]의 성립, 그리고 조선 풍속화가 그 안에 실리게 된 배경에 겐카도 그룹의 네트워크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정보가 교쿠잔의 증언 속에서 발견되었다. 1801년에 간행한 제6편 말미에 수록된 발문(跋文)에 따르면, 교쿠잔은 제6편에서 시작되는 임진왜란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조선인과 조선 풍속에 대한 자료를 백방으로 찾았지만, “한학(漢學)하는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중화(中華)에 대한 것은 상세히 알지만, 한국(韓國)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토로한다. 이에 당시의 국제 무역항인 나가사키 출신의 우마타(馬田)라는 사람이 교쿠잔에게 “괴로워하는 것을 동정하여 자기 고향에 연락해 한국인 그림을 열심히 찾았지만, 그 나라(조선)는 일본과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그 법령은 나라의 풍습을 기록한 글과 그림을 국경 밖으로 내보내지 않”기 때문에 자료를 입수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러는 가운데 [에혼 다이코기]의 출판인 측에서 삽화를 달라고 재촉을 했기 때문에, 교쿠잔은 어쩔 수 없이 기존에 하던 대로 중국풍으로 제6편의 삽화를 그려서 판각수에게 넘겼다.

그런데 제6편을 찍을 목판이 완성된 직후에 우마타가 쓰시마(対馬)를 통해 ‘조선화(朝鮮畵)’ 두 장을 구해서 교쿠잔에게 전해주었다. 아마도 부산 왜관에 있던 일본인이 조선인으로부터 입수한 것이리라. 아무튼 이 두 장의 그림을 본 교쿠잔은 그 안에 그려진 “인물, 도구, 궁실, 산수에 이르기까지 한(漢)도 아니고 왜(倭)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자신이 6편의 삽화에 그려 넣은 “한인(韓人)은 한(韓)이 아니라 중화인(中華人)”임을 통탄한다. 그러나 이미 완성된 목판을 이제 와서 죄다 바꾸면 출판인에게 큰 손해를 끼치게 되므로 제6편에는 이를 반영하지 못하지만, 제7편에는 반영을 할 테니 양해 및 기대를 해달라고 독자들에게 부탁하는 말로 발문은 끝난다.

이 발문에 보이는 우마타라는 사람은 겐카도 그룹의 한 명인 우마타 류로(馬田柳浪, ?~1818?)로 생각된다. 우마타 류로는 근세 중국어 소설인 백화소설(白話小說)의 애호가이자 유명한 소설가이다. 샴(지금의 타이)을 점령한 양산박(梁山泊)의 후예들이 고려국과 연합하여 히데요시와 싸운다는 내용의 역사소설 [수호후전(水滸後傳)]을 이른 시기에 소장하고, 이 소설을 대하소설가 교쿠테이 바킨(曲亭馬琴, 1767~1848)에게 보여주어 창작의 영감을 제공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즉, 그에게는 쓰시마와 나가사키라는 근세 일본의 대외 창구를 통해 조선과 청의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튼튼한 네트워크가 있었던 것이며, 그러한 네트워크가 유지된 배후에는 겐카도 그룹의 인맥과 자금력이 존재했을 것이다.

아무튼 교쿠잔은 제6편 발문에서 독자들에게 한 약속을 제7편에서 충실히 지켰다. 그림 2는 일본군이 도착한다는 소식을 들은 신립(申砬, 1546~1592)이 민가에 숨는 장면으로, 제6편 권4에 실려 있다. 그림 3은 이순신을 대신하여 수군의 지휘권을 장악한 원균(元均, 1540~1597)이 술을 마시는 장면으로 제7편 권6에 실려 있다. 이들 삽화를 그림 1에 실린 두 장의 조선 풍속화와 비교해보자. 그림 2에서는 중국풍으로 그려져 있던 조선인 여성의 머리모양과 치마가 그림 3에서는 조선 풍속화에 실려 있는 대로 바뀌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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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일본군이 도착하자 신립이 민간의 여관에 숨다.”
[에혼 다이코기] 6편 권4,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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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조선 수군장수 원균이 운주당(運籌堂)에서 미녀와 연회하다.”
[에혼 다이코기] 7편 권6, 개인 소장


또한 그림 2에는 조선 집의 실내에 격자무늬의 타일이 깔려 있고 곡선 다리의 의자가 보이는 반면, 그림 3에서는 무늬 없는 바닥과 직선 다리의 의자, 그리고 풍속화에 그려져 있는 그대로의 팔각 창틀 등이 보인다. 어렵게 입수한 조선 풍속화 속에 보이는 요소들을 교쿠잔 제7편에 충실히 반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국제 전쟁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조선ㆍ명ㆍ일본의 풍습을 모두 알고자 진력한 교쿠잔이, 이 두 장의 조선 풍속화를 보고 얼마나 기뻐했을지 상상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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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조선 사민(士民)이 처자를 데리고 산림에 숨다.”
[에혼 다이코기] 7편 권6, 개인 소장


마지막으로 그림 4는 정유재란 당시 조선 인민이 피난하는 장면이다. 남성의 복장을 포함한 전체적인 인물 묘사에는 앞서 본 조선 풍속화의 요소들이 반영되어 있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 그려진 여성이 입은 치마 무늬는 조선 풍속화 속 여성의 치마 무늬를 차용한 것 같다. 반면,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여성이 입은 치마의 기하학적 무늬는 조선 풍속화에 보이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나가사키를 통해 일본에 소개된 서양화에 보이는 여성 의상을 염두에 두고 그린 것 같다. 임진왜란 7년간에 일어난 일을 삽화로 그리면서 조선인과 조선 풍속을 묘사하기에는 간신히 입수한 두 장의 조선 풍속화로는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러나 국가 간의 정보 유통에 제약이 많던 이러한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어 외국의 풍물을 실감나게 그리고자 한 화가 교쿠잔의 갈망으로 인해 두 장의 조선 풍속화가 일본 임진왜란 소설에 실리게 된 사실은 역사 속의 흥미로운 에피소드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나가며



교쿠잔이 [에혼 다이코기]에서 보여준 직업적 양심(?)은 당대나 후대의 화가들에게 공유되지 않았다. [에혼 다이코기] 제6편보다 1년 전인 1800년에 간행된 [에혼 조선군기(絵本朝鮮軍記)]나 1853~1854년에 간행된 [에혼 조선정벌기(絵本朝鮮征伐記)]에서는, 한국ㆍ한국인과 중국ㆍ중국인이 서로 다른 풍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그림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진력한 교쿠잔의 문제의식 같은 것이 발견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림 5에 묘사된 조선인들의 머리모양과 옷은 교쿠잔의 말을 빌리면, “한(韓)이 아니라 중화인(中華人)”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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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고니시가 여러 성을 함락시키자 근방의 인민이 모두 산림에 숨다.”
[에혼 조선군기] 권3,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교쿠잔으로 상징되는 겐카도 그룹은 풍부하고 정확한 해외 지식을 수집·공유·출판하고자 노력했다. 겐카도 그룹의 이러한 성과는 근세 일본이 산출한 가장 보편적인(universal) 문화 형태였다. 이러한 백과사전적인 겐카도 그룹의 소식이 조선에 전해져 평가 받고, 겐카도 그룹의 정보망을 통해 입수된 조선의 풍속화가 옛 일본 소설에 실려 전해진다는 사실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의 동아시아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활발히 교류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열린 마음의 교류가 한중일 삼국에서 널리 공유되거나 후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자국 중심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각국에서 주류를 차지했다는 것은 시대적 한계임과 동시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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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태학사와 손을 잡고<한국학, 그림을 그리다>를 연재한다. 그림에 숨은 비밀과 사연을 프리즘으로 삼아 한국학의 출렁이는 바다로 여행을 떠나려는 것이다. 문학, 미술, 음악, 철학, 역사, 문화가 망라되는 항해에 깊고 진한 교감이 깃든 풍성한 바다가 펼쳐지길 해신(海神)에게 기도한다. 연재는 매주 1회 돛을 달고 항구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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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도서 출간
네이버캐스트에 연재되었던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시리즈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우리 시대 인문학자 32인이 옛 그림을 호명해 되살려낸 한국학 읽기의 색다른 즐거움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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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 서울대학교 연구원
고문헌과 고문서 연구를 통해 전근대 일본의 대외전쟁 담론을 추적하고 있다. 2010년 일본에서 간행한 [이국정벌전기의 세계―한반도ㆍ류큐열도ㆍ에조치](가사마쇼인)로 제4회 일본 고전문학학술상을 외국인 최초로 수상하였다. 2011년에 일본에서 간행한 2인 공저 [히데요시의 대외 전쟁](가사마쇼인)은 제2777회 일본 도서관협회 추천도서로 선정되었다. 단행본 [그들이 본 임진왜란―근세 일본의 베스트셀러와 전쟁의 기억], [한 경계인의 고독과 중얼거림]을 비롯한 10여 종의 단행본, 공저, 번역서와 40여 편의 논문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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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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