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프랑스 대혁명을 일깨운 커피와 카페 - 커피가 독약이라면, 그것은 천천히 퍼지는 독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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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16회 작성일 16-02-0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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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47415298190.png커피와 카페 커피가 독약이라면, 그것은 천천히 퍼지는 독약이다">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이 외부의 권위가 아니라 스스로의 이성을 통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이성의 힘을 외부에 적용하여 자연과 인간사회의 법칙을 파악하고, 그 법칙을 인간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함으로써 자연을 정복하고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몽주의의 핵심인 이성은 어떻게 벼려지는가? 그것은 바로 ‘생각의 교환’을 통해서이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경제적 메커니즘의 합리성, 즉 유용한 교환을 통해 개인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것은 비단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감성적인 것까지 포함한다.

인간은 서로의 생각을 교환함으로써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고 보편적인 진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또한 인간은 사교를 통해 교류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세련된 감성을 갖출 수 있다. 따라서 정신과 감성의 자유로운 교환은 행복을 위한 수단인 동시에 그 자체로 행복을 뜻했다. 그래서 과거의 철학자들이 고매한 성찰을 위해 고독을 찾았다면,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사회에 유용한 생각을 즐겁게 교환하기 위해 사람들과의 만남을 일과로 삼았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즐겨 찾은 만남의 장소는 바로 카페였다.



‘악마의 음료’에서 ‘자유사상의 촉진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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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위베르(Jean Huber), 〈저녁식사를 하는 철학자들>
1772년 또는 1773년, 동판부식화, 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

이 그림은 상상화로, 손을 들고 있는 사람이 계몽주의의 지도자였던 볼테르이고 이들 주위로 달랑베르, 디드로 등 당대의 철학자들이 모여 있다.


커피가 유럽에 들어온 것은 17세기 초의 일이다. 처음에 커피는 아랍인들이 즐겨 마셨던 음료라는 이유로 ‘악마의 음료’라고 비난받았지만,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커피를 마셔본 후 이런 음료를 마시는 즐거움을 이교도에게만 허용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선언하면서 커피에 세례를 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역사는 교황의 판단이 잘못이었음을 증명한다. 유럽에 확산되기 시작한 커피와 카페는 기독교의 교권에 반대한 계몽주의 운동의 촉매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최초로 계몽주의의 싹이 튼 영국에서는 1650년경부터 커피가 수입되어 소비되기 시작했으며, 옥스퍼드와 런던에서 커피 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커피 하우스에 철학자, 문인, 정치가들이 모여들면서 공화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이 점화되었다. 영국의 대표적인 계몽주의자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 역시 커피 하우스의 단골이었다. 1676년 영국의 검사장은 찰스 2세와 왕국에 대한 불경죄를 구실 삼아 커피 하우스를 폐쇄할 것을 명령했지만, 반발이 너무 거세서 칙령을 철회해야 했다. [마농 레스코]의 작가 아베 프레보가 영국을 방문한 후 “정부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모든 신문을 읽을 수 있는 권리를 갖는 커피 하우스는 영국의 자유를 위한 의자”라고 말했을 정도로 커피 하우스는 영국의 정치 지형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차가 수입되어 커피를 밀어내게 되었고, 이후 영국과 항상 대립하던 프랑스가 명실상부한 카페의 왕국으로 부상하였다.



파리 최초의 카페, 카페 프로코프




파리에서 커피의 소비가 본격화된 것은 1669년 술탄 메흐메드의 대사인 솔리만 아가가 화려하게 파리에 등장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천일야화]를 연상시키는 이국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자신의 아파트에 파리의 명사들을 초대하고 이들에게 터키풍 커피를 대접하여 커피를 유행시켰다. 파리의 거의 모든 귀부인들이 그에게 깊은 호기심을 품게 되었는데, 그 관심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몰리에르가 [평민 귀족]에서 이러한 풍조를 비꼴 정도였다. 마침내 아르메니아인 파스칼이 1672년 파리에서 최초의 카페를 열게 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카페인 ‘카페 프로코프(Café Procope)’는 파스칼 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이탈리아 출신 프로코피오 콜텔리가 1686년 파리에서 개장하였는데, 계몽주의 시대에 볼테르(Voltaire, 1694~1778), 루소(Rousseau, 1712~1778), 디드로(Diderot, 1713~1784) 등 많은 철학자들이 애용하는 카페가 되었다. 특히 볼테르는 하루에 커피를 열두 잔까지 마시는 커피 애호가였다. 이후 대혁명 직전까지 파리에는 약 2,000개 이상의 카페가 들어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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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카페인 파리의 ‘카페 프로코프(Café Procope)’
볼테르, 루소, 디드로 등 많은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자유롭게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모색하였다. <출처: (cc) *Checco* at en Wikipedia.org>


18세기의 위대한 사상가인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55)는 당대의 베스트셀러 소설인 [페르시아인의 편지]에서 페르시아인 위즈베크의 입을 빌려 프랑스에서 성행하던 카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커피는 파리에서 매우 성행하고 있습니다. 커피를 파는 대중적인 가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러한 가게 중 몇몇 곳에서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체스를 둡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지성을 부여하도록 커피를 만드는 상점이 하나 있습니다. 어쨌든 거기서 나오는 사람들 중에서 거기에 들어갔을 때보다 네 배 이상의 지성을 갖게 되었다고 믿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정도입니다.




여기서 이른바 사람들에게 지성을 불어넣는다고 하는 카페는 프로코프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카페에 모여 커피를 마시면서 자유롭게 정부와 교회 등 기존권력을 비판하고 이성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질서를 모색하였다. 카페가 자유사상과 민주주의의 학교 역할을 한 것이다.

1740년대에 들어와 예전에 프로코프에서 만나던 파리의 체스 명인들이 ‘카페 드 라 레장스(Café de la Régence)’에 모여들었는데, 디드로, 루소, 청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1769~1821),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 등이 단골이었다. 그래서 디드로는 그의 걸작 [라모의 조카]에서 철학자와 라모의 조카가 만나는 장소를 카페 드 라 레장스로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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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카페 드 라 레장스(Café de la Régence)를 묘사한 작가 미상의 그림
사람들이 체스를 두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마르크스가 1844년 8월 엥겔스를 만나 처음으로 자신의 역사유물론에 대한 개념을 설명한 곳도 이곳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마신 루소의 커피




계몽주의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계몽주의의 한계를 비판하고 낭만주의적인 정신을 예고한 루소 역시 커피를 좋아하고 체스에 홀딱 빠졌던 적이 있었던 만큼 카페의 단골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루소가 진정한 행복을 느낀 것은 카페에서 철학자들과 ‘사상의 커피’를 마실 때가 아니라 여인들과 함께 ‘감성의 커피’를 나눌 때였다. 젊었을 때 루소는 자신의 후견인이자 연인이었던 바랑 부인과 우유를 탄 커피로 아침식사를 했는데, 그는 “이때가 하루 중 우리가 가장 평온하고 편안하게 잡담을 나누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신선한 아침공기를 마시면서 바쁠 것도 없이 사랑하는 여인의 눈을 마주 보면서 마시는 부드러운 카페오레의 맛은 뜨겁고 격렬한 사랑이 아니라 정겹고 따뜻한 사랑을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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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록]에 실린 모리스 를루아르(Maurice Leloir)의 삽화, 1889
루소는 레샤르메트에서 바랑 부인과 산책을 나가 커피를 끓여 마셨을 때를 자신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고 회상한다.


이후 평생의 반려가 될 테레즈와 마시던 아침 커피 역시 마찬가지다.




해가 뜰 무렵 회랑의 향기 그윽한 공기를 마시려고 매일 아침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녔던가! 그곳에서 나의 테레즈와 둘이 마주 앉아 마시던 카페오레는 얼마나 맛있었던가! 암고양이 한 마리와 수캐 한 마리가 우리들 곁에 있었는데, 이런 수행원들만으로도 나는 한평생 조금도 권태를 느끼지 않고 지내기에 넉넉하였다. 내게는 그곳이 지상낙원이었다. 나는 낙원에서만큼이나 무구하게 살았으며, 낙원에서와 똑같은 행복을 맛보았다.




격렬한 외적 운동이 멈추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면 커피를 매개로 테레즈와 애완동물을 포함한 모든 외부의 자연이 내면으로 흘러들어오면서 감성화된다. 신선한 아침공기를 타고 더욱 고소한 향기를 퍼뜨리는 커피. 아침햇살을 받으며 더욱 투명해지는 애정. 잔잔한 외부의 움직임이 부드러운 감성의 움직임과 일체를 이루면서 세계는 낙원으로 승화된다. 한편 점심 때 바랑 부인과 자연 속에서 마시는 커피는 세속적인 삶의 달콤함을 환기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쯤 날씨가 좋을 때는 집 뒤 나뭇가지가 우거진 시원한 정자로 가서 커피를 마시곤 했다. 이 정자에는 내가 홉 덩굴을 올려두었기에 더울 때는 우리에게 대단한 즐거움을 주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들이 키우는 채소나 꽃을 둘러보거나 우리들의 삶의 방향에 관련된 대화를 나누면서 짧은 시간을 보냈는데, 이러한 대화로 삶의 달콤함을 더욱 잘 맛보게 되었다.




그늘진 정자 안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밝은 햇살과 싱그러운 녹음을 바라보면서 미래를 설계하는 두 연인이 마시는 커피 향에는 현재의 행복과 미래에 대한 꿈이 짙게 배어 있었을 것이다.



계몽주의에 중독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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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독약이라면, 그것은 천천히 퍼지는 독약이다."라는 볼테르의 말처럼, 프랑스 대혁명 이전에 이미 커피와 카페, 계몽주의는 중독처럼 퍼져나갔다. <출처: gettyimages>


그러나 비록 이성보다는 감정을 우위에 둔 루소였지만, 그가 이후의 낭만주의자들과는 달리 이성을 배제하고 무조건적으로 감정에 몰입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신(新) 엘로이즈]의 남자 주인공 생프뢰는 쥘리가 효율적으로 커피를 즐기기 위해 커피를 절제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 이러한 절제된 쾌락에 의해 그녀가 자신에게 부과하는 금욕은 새로운 쾌락의 수단이 되는 동시에 새로운 절약의 방법이 됩니다. 예를 들면 그녀는 커피를 매우 좋아해서 어머니가 계셨을 때는 매일 커피를 들곤 했습니다. 지금은 커피를 더 맛있게 마시기 위해서 그런 습관을 버렸지요. 그녀는 다른 모든 것들에 이러한 축제 분위기를 곁들이기 위해서 손님이 있을 때만, 그리고 아폴로 살롱에서만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이것은 그녀를 전보다 더 기분 좋게 하면서도 돈은 덜 드는 사소한 쾌락의 추구인데, 이를 통해서 그녀는 자신의 식도락을 돋우는 동시에 통제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커피 중독은 당시에도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였다. 건강상의 이유도 있었지만, 커피로 인한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는 커피를 좋아하는 딸과 그런 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의 갈등을 소재로 삼고 있을 정도다. 커피 애호가인 쥘리는 이성의 절제를 통해 감각적 쾌락을 추구한다는 부르주아의 방식을 선택한다. 쾌락은 금지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절제하게 방임되어서도 안 된다. 무절제한 쾌락의 추구는 쾌락 자체를 습관으로 만들어 쾌락의 강도를 약화시키고, 이른바 ‘자유의 수단’인 돈을 낭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랑의 육체적 쾌락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랑의 육체적 쾌락은 그 강렬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최대한 절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쾌락은 곧 소진되고 사랑의 감정마저 사라져버릴 위험에 처할 것이다.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계몽주의의 신화적 상징으로 제시한 오디세우스처럼, 사이렌의 노랫소리에 홀려 바다에 빠져 익사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이성의 밧줄로 자신을 묶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생프뢰의 말에서, 계몽주의의 이성은 정신적 가치를 위해 감각이나 감정의 쾌락을 금지하는 심판관의 역할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를 통해 오히려 쾌락을 극대화하는 봉사자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볼테르가 냉철하게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면서 계몽주의를 일관된 방향으로 이끌어나갔다면, 루소는 뜨겁게 인간의 내면적 감성을 뒤흔들어 놓으면서 계몽주의를 폭넓게 확산시켰다. 볼테르는 “커피가 독약이라면 그것은 천천히 퍼지는 독약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정치적 혁명이 발발하기 이전에 이미 진보적인 귀족 계층과 부르주아 계급은 계몽주의에 깊이 중독되어 있었던 것이다.

 

'18세기의 맛'은 한국18세기학회의 기획으로서, 문학동네와 함께 합니다. 1454741536246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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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철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 불어불문학과에서 <루소의 글쓰기에 나타나는 상상적 자아>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지금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루소 – 분열된 영혼]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고백록 – 최초 현대인의 초상], [루소 – 인간 불평등의 발견자], [에밀 또는 교육론](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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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8세기의 맛: 취향의 탄생과 혀끝의 인문학 2014.02.28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의 18세기를 다채롭고 참신한 시각으로 연구하는 한국18세기의 학회의 첫 프로젝트 결과물, <18세기의 맛>이 책으로 나왔다. 18세기의 '맛'을 중심으로 세계사의 흥미로운 단면을 맛깔나게 서술했다. 23명 인문학자의 시각으로 18세기의 동서양을 뒤흔든 맛과 그 맛에 얽힌 흥미로운 현상을 살펴보는 일에 동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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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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