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소옹과 그의 고사도 - 옛 성현의 삶과 행적이 공존하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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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84회 작성일 16-02-0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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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의 엉뚱한 지식인, 소옹






안락 선생, 성씨를 드러내지 않은 채                                                                       安樂先生 不顯姓氏

30년 간 낙수(落水) 가에 살았다네.                                                                         埀三十年 居洛之涘

바람, 달에 마음을 두고, 강호가 기질에 맞아,                                                           風月情懷 江湖性氣

안색을 살펴 날아오르다가, 빙빙 돌다 내려앉았네.                                                   色斯其舉 翔而後至

천함도 가난함도 없고, 부유함도 귀함도 없고,                                                         無賤無貧 無富無貴

보냄도 맞이함도 없고, 얽매임도 거리낌도 없다네.                                                   無將無迎 無拘無忌

군색했지만 걱정한 적 없고,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으며.                                          窘未嘗憂 飲不至醉

세상의 봄을 거두어, 가슴에 간직했었지.                                                                 收天下春 歸之肝肺

연못을 보며 시상을 떠올리고, 누추한 집이 그의 잠자리였으니.                                 盆池資吟 瓮牖薦睡

작은 수레에 완상하는 마음 담아, 큰 붓으로 마음껏 써내려가네.                                小車賞心 大筆快志

두건을 쓰기도 하고, 반팔 옷을 입기도 하고,                                                            或戴接籬 或著半臂

숲 사이에 앉기도 하고, 물가를 거닐기도 했다네.                                                     或坐林間 或行水際

선한 사람 보기를 좋아하고, 선한 일 듣기를 좋아하고,                                              樂見善人 樂聞善事

선한 말 하기를 좋아하고, 선한 뜻 행하기를 좋아했네.                                              樂道善言 樂行善意
남의 악행을 들으면, 가시를 짊어진 것 같았고,                                                        聞人之惡 若負芒刺

남의 선행을 들으면, 난초가 혜초를 찬 것 같았지.                                                     聞人之善 如佩蘭蕙

선사에게 아첨하지 않으며, 방사에게 아첨하지 않았다네.                                          不佞禪伯 不諛方士

집과 뜰을 나서지 않아도, 하늘과 땅을 바로 볼 수 있으니                                          不出户庭 直際天地

삼군의 위세로도 함부로 못하고, 만종의 봉급으로도 이를 수 없었네.                          三軍莫凌 萬鍾莫致

이렇듯 쾌활한 사람으로 65년을 살아왔네.                                                                為快活人 六十五嵗





- 소옹(邵雍, 1011~1077), <안락음(安樂吟)>

소옹(邵雍, 1011~1077)이 죽기 2년 전 지은 시이다. 자신의 성격과 일생을 담담하게 고백했으니 자서전이나 다름없다. 소옹은 1011년 중국 하북성 범양에서 태어났으며, 시(諡)는 강절(康節), 자는 요부(堯夫), 호는 ‘안락 선생’이다. 증조부가 송 태조 연간에 군관을 지냈지만 집안 대대로 선조들이 벼슬하지 않았고, 아버지인 소고(邵古, 989~1067)도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겪은 궁핍함은 당연했다. 소옹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때 과거시험에 전념했으나 결국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30대 후반 낙양으로 이주하여 강학을 하면서 제자를 키우는 데 몰두했다. 소옹의 철학적 업적과 시인으로서의 탁월한 능력은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와 [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에서 확인된다. 특히 [이천격양집]에는 낙양의 묵객과 나눈 화답시 1천 9백여 수가 실려 있어, 그의 문학적 소양과 폭넓은 인간관계를 알려준다.

동양 철학사에서 소옹은 북송대 선천학(先天學)이라는 새로운 역학의 흐름을 창시한 인물이면서, 남송 주자학 성립에 영향을 미쳤던 신유학의 이론가로 평가받는다. 주자(朱子, 1130~1200)는 주돈이(周敦頤, 1017~1073), 정호(程顥, 1032~1085), 정이(程頤, 1033~1107), 장재(張載, 1020~1077), 사마광(司馬光, 1019~1086)과 함께 소옹을 북송 육현(六賢)이라 명명했고, 그들의 초상화를 감상한 후 <육선생화상찬(六先生畵像贊)>을 지어 스승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이렇듯 후대 학자들은 소옹을 선천학 원리에 기초한 우주관과 자연철학에 독보적 지식을 지녔던 수학자이자 사상가로 기억했다. 또한 앞일을 내다보는 신통력을 지녔으면서 평생 출사하지 않은 채 아름다운 시를 읊조린 진정한 묵객(墨客: 시문과 서화를 일삼는 사람)으로 사랑했다.



꽃 너머 작은 수레, 아직도 오지 않네



옛 선비들은 중국의 성현을 흠모하여 그들의 행적을 본받아 이를 일상에서 실천하려 노력했다. 이러한 태도는 고사인물화를 꾸준히 제작하게 한 이유가 될 것이다. 소옹의 행적도 그림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소옹은 봄가을에 성안으로 놀러나갈 때 동자가 이끄는 작은 수레를 즐겨 탔다. 동네 사람들은 수레 소리만으로 그가 온 것을 알아챘고, 어린아이와 하인까지도 모두 기뻐 맞이하면서 ‘우리 집에 그분이 오셨다’고 자랑했다. 그의 청빈한 삶과 소박한 성격을 암시하는 수레는 ‘요부의 작은 수레(堯夫小車)’와 ‘꽃 너머 작은 수레(花外小車)’라는 화제(畵題)로 표현되었다.

‘화외소거’는 사마광이 소옹을 기다리면서 지은 시인 〈약소요부부지(約邵堯夫不至)〉의 한 구절이다. 사마광은 소옹이 작은 수레를 타고 곧 올 터인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자 ‘꽃 너머’, 즉 낙양에서 꽃구경하느라 한눈을 팔고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이 상상을 화외소거로 형용한 셈이다. 사마광의 시구처럼 ‘작은 수레’는 소옹의 소박한 낙양생활을 상징하는 도구였다. 이를 알려주듯 그는 <작은 수레로 다니다(小車行)>, <작은 수레를 읊다(小車吟)>에서 봄이나 가을, 작은 수레를 타고 낙양을 돌아다니는 스스로를 노래했다. 문헌과 그림을 종합해볼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제작된 소옹고사는 ‘화외소거’이다. 소옹의 ‘작은 수레’는 사마광의 시구를 풀이한 ‘화외소거’나 소옹의 일화를 도해한 ‘요부소거’로 다르게 표기되었지만, 그림에 있어서 재현의 차이는 거의 없다. 소옹의 유명한 일화가 사마광의 시의도(詩意圖)에 반영되어 두 화제를 구분 없이 사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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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정선,<화외소거(花外小車)>
[겸재화첩] 18세기, 비단에 담채, 30.3×20.3cm, 우학문화재단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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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김홍도,<화외소거(花外小車)>
[중국고사도 8첩 병풍], 18세기, 종이에 담채, 111.9×52.6cm, 간송미술관 소장.<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소옹의 ‘작은 수레’는 정선(鄭敾, 1676~1759)이 다른 성현의 고사도와 함께 꾸민 화첩에도 포함되었다. 바로 우학문화재단에 소장된 [겸재화첩](이하 우학본)이다. 이 화첩에는 북송대 여섯 명의 성리학자를 비롯하여 이동(李侗)과 주자의 이야기까지 수록되어 있다. <화외소거>(그림 1)에서는 수레에 몸을 의지한 채 꽃구경을 다니는 소옹을 만날 수 있다. 동자가 커다란 바퀴 중심에 고정된 밀대를 힘껏 밀면서 소옹의 여흥을 돕고, 울긋불긋한 꽃나무와 싱그러운 버드나무가 유람객을 유혹하며 화사한 봄기운을 자아낸다. 사마광의 예상대로 꽃구경하다 한눈팔 만큼 아름답고 찬연한 풍경이다.

<화외소거>에 담긴 풍류는 김홍도 (金弘道, 1745~?)가 그린 [중국고사도 8첩 병풍](그림 2)에서도 확인된다. 8첩 병풍의 주인공은 주자, 도연명(陶淵明, 365~427), 왕희지(王羲之, 307~365), 엄광(嚴光, BC 37~43), 사안(謝安, 320~385), 임포(林逋, 967~1028), 그리고 소옹이다. 정선의 그림처럼, 수레에 탄 소옹이나 수레 손잡이를 잡은 동자는 김홍도의 <화외소거>에서도 표현되었지만, 정선보다 바위와 나무를 더욱 부각하여 소옹이 지나온 산길을 강조했다. 또한 정선이 화첩을 택했다면, 김홍도는 화첩보다 세로 길이가 긴 병풍의 비례에 어울리도록 산수 비중을 크게 할당했고, 상대적으로 인물상을 점경에 가깝도록 축소했다. 그래서 <화외소거>가 포함된 이 병풍은 각 화폭의 산수가 마치 파노라마처럼 연결되어 광활한 자연경관에 여덟 명의 고사가 함께 어우러지는 감상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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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유숙,<화외소거(花外小車)>
19세기, 종이에 담채, 115×47.1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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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장승업,<화외소거(花外小車)> 부분
19세기, 종이에 채색, 40×211.5cm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19세기 화가인 유숙(劉淑, 1827~1873)도 <화외소거>(그림 3)를 남겼다. 유숙의 작품에서는 가파른 산등성이를 힘겹게 올라가는 수레를 볼 수 있다. 그는 다른 작가에 비해 소옹을 크고 구체적으로 그렸다. 수레에 앉은 소옹은 치포관을 머리에 썼고, 새 깃털로 장식한 부채를 손에 들었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흡사 함박눈이 내린 것 같은 설백색의 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다.

수레가 등장하는 또 다른 시구는 당대 두목(杜牧, 803~852)이 지은 <산행(山行)>에서 찾을 수 있다. “수레 멎고 앉아서 석양의 단풍 감상하노니, 단풍 든 잎사귀가 2월 꽃보다 더 붉구나(停車坐愛楓林晚 霜葉紅於二月花)”가 그러하다. 이 시를 도해한 ‘풍림정거(楓林停車)’는 가을날 주인공이 수레에서 내려 언덕에 앉아 단풍을 감상한다. 꽃피는 봄날에 수레를 타고 유람하는 <화외소거>와 다른 내용인 셈이다. 즉 주인공이 수레에 탔는지, 아니면 수레에서 내려 언덕에 앉았는지의 여부가 두 화제를 구별하는 핵심 도상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존에<풍림정거>로 알려진 장승업(張承業, 1843~1897)의 작품(그림 4)은 <화외소거>라 해야 옳을 것이다. 그림의 주인공은 동자가 밀고 있는 수레에 탔고, 그가 거니는 숲길은 꽃이 만발하여 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천진교에서 두견새 소리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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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정선,<천진문견(天津聞鵑)>
18세기, 종이에 채색, 31.3×41cm, 개인 소장.


소옹은 틈만 나면 태극을 상징하는 구슬을 가지고 놀면서 점을 쳤다. 하루는 그가 천진교를 거닐다가 두견새 울음소리를 듣고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낙양에 서식하지 않는 두견새가 남쪽에서 거슬러 올라옴은 몇 년 뒤 남쪽 사람이 재상으로 등용하여 천하가 혼란에 빠질 것을 예언하기 때문이다. 땅의 기운이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야 세상이 평온한데 지금은 반대이며, 이 기운을 두견새가 가장 먼저 알아챈 것으로 풀이한 것이다. ‘천진두견(天津杜鵑)’이라고 불리는 이 일화는 소옹의 신통력을 알려주는 이야기로 유명하여,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설화에도 유입되었다.

정선은 ‘화외소거’ 뿐만 아니라 ‘천진두견’도 그렸다. 그의 <천진에서 두견새 소리를 듣다(天津聞鵑)>(그림 5)는 주돈이의 <주렴계, 연꽃을 감상하다(濂溪賞蓮)>, 정호의 <시냇가의 꽃과 버드나무(前川花柳)>, 장재의<장횡거, 파초를 노래하다(橫渠詠蕉)>, 누구의 고사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천원, 투호하다(泉園投壺)> 등 다른 고사인물화와 함께 장첩(粧帖: 글씨나 그림을 잘 보존하기 위해, 두꺼운 종이를 붙여 책처럼 꾸밈)되어 있다. 지팡이를 든 소옹은 다리를 건너려다가 뒤돌아서 달을 바라본다.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과 소옹의 근심어린 표정이 왠지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풍경이다.



어부와 나무꾼의 대화



‘소옹고사’에는 소옹의 독특한 행위나 재미있는 일화뿐만 아니라 그가 지은 책의 구절도 포함되었다. [황극경세서]에 실린 <어초대문(漁樵對問)>, 즉 ‘어부와 나무꾼의 대화’이다.




어부는 이수(伊水) 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나무꾼이 그 옆을 지나다가 짊어진 짐을 벗어 놓고 너럭바위 위에 앉아 쉬면서 어부에게 물었다. (……) 어부와 초부는 이수 가에서 노닐었다(漁者垂釣於伊水之上 樵者過之 弛擔息肩 坐於磐石之上 而問於漁者曰 (……) 漁者與樵者遊于伊水之上).

어부와 나무꾼이 서로 마주보며 대화하는 내용은 소식(蘇軾, 1036~1101)의 [어초한화록(漁樵閑話錄)]에서도 등장한다. 그러나 [어초한화록]을 근거로 한 <어초문답>은 산모퉁이를 배경으로 물고기를 잡아 귀가하는 어부에게 말을 거는 나무꾼의 대화 장면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어초대문>과는 사뭇 다른 구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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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이인상,<어초문답(漁樵問答)>
18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22.9×60.6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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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작자 미상,<어초문답(漁樵問答)>
1715년, 비단에 채색, 58.7×4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이수 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는 어부’와 ‘짊어진 짐을 벗어 놓고 너럭바위 위에 앉은 나무꾼’은 이인상(李麟祥, 1710~1760)(그림 6)과 숙종(肅宗, 1661~1720)의 어제가 있는 작품(그림 7)에서 만날 수 있다. 이인상은 배 위에 앉은 어부와 언덕에 앉은 나무꾼을 부채에 수묵담채로 재현했다. 배 위의 어부는 한쪽 무릎을 세우고 상의를 풀어헤친 채 나무꾼을 바라보는데, 뒷모습의 나무꾼은 어깨에서 나뭇짐을 내려놓고 언덕 위에서 쉬고 있다. 부채 모퉁이에는 “산나물을 캐니 먹을 만하고 물고기 잡으니 먹음직하구나. 어부와 나무꾼의 대화를 장난삼아 그려, 옛사람의 그림에 담긴 뜻을 따른다(採於山 菜加茹 釣於水 鮮可食 戱作魚樵問答 倣古人筆意)”라는 시구가 전서로 적혀 있다. 소박한 어촌 풍경을 그대로 풀어낸 정감어린 문장이다.

마주 앉은 어부와 나무꾼의 대화 장면은 숙종이 친히 평문을 쓴 <어초문답>에서도 확인된다. 어부는 챙만 남은 갓을 썼고 맨발 차림이며 낚싯대와 망태를 곁에 두었다. 나무꾼은 허리춤에 도끼를 찼고 나막신을 신었으며 장작이 묶인 막대기를 소나무에 걸쳐 놓은 채 강가 소나무 둥치 위에 앉았다. 임금께서 감상하신 그림답게 사물의 윤곽선도 뚜렷하고 청록물감으로 진하게 채색되어 화려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러한 표현법은 화면 왼쪽 귀퉁이에 숙종이 해서로 정성껏 쓴 문장과 무척 잘 어울린다. 사대부가 흥취에 젖어 수묵으로 단숨에 그려낸 <어초문답>과 확연하게 다른, 궁중회화로서의 위엄을 간직한 어람용(御覽用: 임금이 친히 보는 데 쓰임) 회화이다.



옛 성현의 삶과 행적을 감상하는 마음







하늘이 호걸을 냈으니 영특함이 세상에서 뛰어나네.                                                天挺人豪 英邁蓋世

바람을 타고 우레를 채찍질하니, 가없는 세계를 두루 보네.                                       駕風鞭霆 歴覽無際

손으로는 달 속의 굴을 더듬고, 발로는 하늘의 맨 끝을 밟지.                                    手探月窟 足躡天根

한가로이 지금과 과거를 살펴보고, 취한 가운데 건곤을 굽어보네.                             閒中今古 醉裏乾坤







- 주자, <강절선생(康節先生)>, [육선생화상찬]

심오한 학문과 청렴한 생활을 동시에 추구했던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옛 성현의 일화나 책에 담긴 이야기, 그리고 명시를 도해한 고사인물화를 무척 사랑했다. 그들이 원한 그림 속 주인공은 학식과 덕이 높은 성인군자이자, 출사를 거부하고 자연과 벗하며 수양했던 은일처사였다. 현재의 ‘나’를 반추할 수 있는 ‘귀감’을 고사인물화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다. 소옹은 문인들의 기억에 항상 존재한 사상가이자 문학가였다. 또한 기이한 행동을 일삼으며 욕심 없이 한 평생을 즐긴 선비였다. 어쩌면 유학의 참 정신을 계승하면서 재미있는 일화를 남긴 소옹이 후배 문인들의 동경과 흠모를 한 몸에 받은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가장 원했던 일생을 영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스승에 대한 추억과 동경은 다양한 화제의 고사인물화로 연출되었다. 때로는 철학과 문학을 향유한 고사상(高士像)으로, 때로는 청담으로 진리를 전달한 처사상(處士像)으로. 소옹이 세상을 떠난 지 9백여 년이 되었어도 우리는 그의 삶과 행적을 감상하면서 참 선비가 누렸던 심오한 도학과 지극한 안락을 공감할 수 있다. 옛 그림을 감상하면서 만끽할 수 있는 커다란 행운이자 한없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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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태학사와 손을 잡고<한국학, 그림을 그리다>를 연재한다. 그림에 숨은 비밀과 사연을 프리즘으로 삼아 한국학의 출렁이는 바다로 여행을 떠나려는 것이다. 문학, 미술, 음악, 철학, 역사, 문화가 망라되는 항해에 깊고 진한 교감이 깃든 풍성한 바다가 펼쳐지길 해신(海神)에게 기도한다. 연재는 매주 1회 돛을 달고 항구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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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도서 출간
네이버캐스트에 연재되었던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시리즈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우리 시대 인문학자 32인이 옛 그림을 호명해 되살려낸 한국학 읽기의 색다른 즐거움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송희경 | 문학박사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한국미술사를 공부했고, 조선후기 회화사를 전공하여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는 [조선후기 아회도]와 [미술의 이해와 감상]이며,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중이다.


발행201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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