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친구와 그림 - 19세기 사대부가 그린 황량한 풍경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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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22회 작성일 16-02-0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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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친구의 금석지교(金石之交)



친구(親舊)는 옛사람의 삶과 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어떤 친구들과 어떻게 어울려 지내는가? 그것은 삶이 지닌 빛깔에다 예술의 개성까지 선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그래서 친구는 두 번째의 나, 제이오(第二吾)다. 옛사람의 우월한 덕목인 우정이 지난날의 예술에 어떤 소재보다 많은 흔적을 남긴 이유다. 그 유난스러운 모델의 하나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와 이재(彛齋) 권돈인(權敦仁, 1783∼1859), 황산(黃山) 김유근(金逌根, 1785∼1840)의 우정과 예술이다.

추사와 이재와 황산, 이 세 친구는 유별난 우정을 나눴다. 나이 차이도 거의 나지 않고 젊은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 죽을 때까지 우정을 변치 않았다. 모두들 정계와 예술계에서 막중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권돈인은 후에 영의정 자리에까지 올랐다. 황산은 세도정치가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의 친아들로서 순조와 헌종 시대 정계의 중심에 있었다.

정치적 이해를 떠나 세 사람은 학문과 예술의 동반자였다. 고금의 역사와 학문을 토론하고, 서화를 품평하는 대화가 만남의 중심을 차지했다. 셋은 시를 잘하고 글씨를 잘 썼으며 그림을 잘 그렸다. 예술적 취향이 농후했고, 수석과 골동 취미를 공유하였다. 그들은 강고한 묵연(墨緣)으로 친분을 이어갔는데, 그 깊고 진한 한묵(翰墨: 문한(文翰)과 필묵(筆墨), 곧 문필(文筆)을 가리킴)의 인연은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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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근, [황산유고(黃山遺稿)](왼쪽)와 〈서화에 붙이다(書畵幀)〉와 〈화수도에 붙이다(題花樹圖)〉의 본문(오른쪽), [황산유고] 권1,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 소장.
즐겨 보는 서화에 절친한 친구 추사와 이재의 성명과 자호를 새긴 도장을 찍어서 친구를 직접 마주 보고 있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고 기록했다.


황산의 문집 [황산유고(黃山遺稿)]와 추사의 문집에는 서로 주고받은 시문이 적지 않다. 거기에는 서로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간혹 보이는데 추사의 다음 시가 그 하나다. 추사가 이재와 작별한 뒤에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길을 바꿔 백련산옥(白蓮山屋)에 가서 머물며 지은 시이다. 백련산옥은 아마도 현재 삼청동 백련봉 아래 국군서울지구병원 자리에 있었던 황산의 집 백련산방(白蓮山房)일 것이다.







손님 보내고 호젓한 데 찾아오니送客尋幽至
오롯이 이별한 마음 달래주누나.聊寬遠別心
주인이 다정스레 나를 대하는主人相款款
좁은 골은 여기가 가장 깊구나.小洞此深深
푸른 산빛 기묘하게 숨겨놓았고巧貯靑山色
붉은 살구 숲을 잘도 배치하였네.安排紫杏林
벽 사이로 비쳐드는 무지개 달빛壁間虹月影
먼지 한 점 파고들지 못하게 막네.不遣一塵侵


깔끔한 소품이다. 먼 길 떠나는 이재를 배웅하고 나서 허전한 마음에 추사는 집으로 가려다 말고 백련산방의 황산을 찾아갔다. 당시 이재는 집이 번동(樊洞)에 있었고, 추사는 세검정 부근 조지서(造紙署) 뒤쪽의 석경루(石瓊樓)에 머물렀다. 서로들 집을 방문하여 지낸 흔적이 자주 보인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벗들이 어울리는 모습을 시가 보여준다. 혼탁한 세상의 공기가 스며들지 않는 청정하고 호젓한 공간에서 한 벗을 보내고 또 한 벗과 허전한 마음을 채운다. 담담하고 쓸쓸하다. 이상하게도 이들의 우정에서는 쓸쓸한 분위기가 진하게 풍겨온다.



친구의 시구를 채우다




각자가 빼어난 예술가였던 세 사람은 서로의 작품에 감상평이나 글씨를 써주었다. 진정성을 지닌 우정의 생생한 모습은 그런 데서 드러나고 그 작품들이 지금도 적지 않게 전해온다. 예컨대, 황산은 [전당시(全唐詩)]에서 서문만을 따로 뽑아 [전당시서(全唐詩序)]란 책을 편찬하고 자서(自序)를 지었다. 그러자 추사가 따로 서문을 써서 그 작업이 지닌 의의를 높이 평가하였다. 또 황산이 1830년 선조인 노가재(老稼齋)의 그림 〈화수도(花水圖)〉에 제사(題辭)를 쓴 다음 추사에게 글씨를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유명한 〈묵소거사자찬(默笑居士自贊)〉 역시 황산이 글을 짓고 추사가 글씨를 썼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황산은 일찍 죽은 친구 담화(澹華) 심자순(沈子純)이 준 벼루에 시와 글씨를 새겼다. 담화는 심의직(沈宜稷, 1774~1807)이란 요절한 문장가이다. 기발하게도 담화가 미완성으로 남긴 시구를 자기가 마저 채워 한 작품으로 완성하였다. 벼루에 새긴 내용 전문은 다음과 같다.







가을이라 절로 탄식하노니秋人發歎息
흰 이슬은 난초 언덕에 내리네.白露生蘭皐
강 위에 달은 예전과 똑같건마는江月宛如昨
그대 그리워 마음 홀로 괴롭네.思君心獨勞




첫 두 구절은 옛 친구 담화 심자순의 시이다. 예전에 어울리던 일을 생각하고 아래 구절을 채워 절구 한 수를 짓고 그가 준 벼루 뒤에 새겨 넣는다. 황산거사(上句則故友澹華沈子純詩也, 感念舊遊, 足成一絶, 銘于所贈硏背. 黃山居士).

작은 벼루에 새긴 사연이 뭉클하다. 그런데 황산은 글을 쓰고 추사에게 맡겨 글씨를 쓰게 했다. 추사가 벼루에 새길 글씨를 여러 서체로 연습한 종이가 지금껏 남아 있다. 아쉽게도 벼루 실물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추사의 연습 글씨에는 쓸쓸하고 애잔한 우정이 잔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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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학예 일치의 경지], 191면, 국립중앙박물관.


이뿐만이 아니다. 이재가 그린 그림에 추사와 황산이 함께 감상평을 쓰기도 했고, 황산이 그린 그림에 추사와 이재가 함께 감상평을 쓰기도 했다. 작품의 진위를 감정할 때도 함께 머리를 맞댔다. 추사는 청나라 화가인 석도(石濤, 1641~1707)의 화첩을 입수하고 흥분했으나 진품인지 아닌지를 바로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러자 황산, 이재와 함께 살피고서 진품임을 확정하고 과정을 화평(畵評)에 간명하게 밝혀놓았다.


나는 이 화권(畵卷)을 골동 가게에서 구하곤 저도 모르는 새 크게 놀랐다. 바로 황산, 이재와 더불어 진위를 함께 살펴 정하고 다시 장황하여 평생 진품 감상거리로 삼았다. 이 화권은 오래도록 황산의 고향서옥(古香書屋)에 머물다가 황산이 세상을 떠난 지금 다시 내 서재로 돌아왔다.


〈석도화첩에 대한 김정희의 제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작품의 진위를 독단으로 하지 않고 황산, 이재와 함께 확정하였다. 더욱이 자기 소유의 이 그림을 바로 가져오지 않고 오랫동안 황산의 서재에 놔둔 다음 사후에 가져왔다. 소유는 하되 자유롭게 서로 돌려보았음을 여기서도 밝혀놓았다. 이 그림은 사후에 가져왔지만, 가져오지 않은 것도 제법 많은 것을 보여주는 증거도 있다.

그 밖에도 이재가 그린 〈세한도(歲寒圖)〉나 이재와 추사가 함께 그린 산수에 추사가 감상평을 쓰기도 했고, 추사가 그린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에 황산이 감상평을 달기도 했다. 황산이 그린 그림에 추사와 이재가 감상평을 남긴 실물도 남아 있다. 이렇게 서로의 작품에 번갈아 평을 남긴 것은 일일이 거론하기 어렵다.



흰 구름과 가을나무, 그 안에서 느껴지는 우정




깊은 우정은 유독 만나고 헤어지는 장면에서 한층 강렬해지고 그 강렬함은 대개 예술 작품으로 재현되었다. 〈영영백운도(英英白雲圖)〉란 아름다운 작품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깊은 의미가 담긴 화제(畵題)가 적혀 있다.







뭉게뭉게 흰 구름이여!英英白雲
가을 나무 에둘렀네.繞彼秋樹
조촐한 집으로 그댈 찾아오니從子衡門
그 누구 때문이던가.伊誰之故
산과 내가 아득히 멀어山川悠邈
옛날에는 날 돌아보지 못했지.昔不我顧
허나 지금 어떠한가今者何如
아침저녁 만나세나.庶幾朝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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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영영백운도(英英白雲圖)〉
1844년, 종이에 수묵, 23.3×146.4cm, 개인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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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추사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이 화제가 [황산유고]에 ‘추수백운도(秋樹白雲圖)에 붙이다’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고 내용이 똑같으므로 황산이 추사의 그림에 썼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 그림을 제주도 유배기에 그렸다고 전하나, 앞의 근거로 서울에서 지낼 때 그린 것이 틀림없다. 한 사람이 그림을 그리면 다른 사람이 화제를 쓰거나 글씨를 썼던 그 시절 분위기로 봐서 추사가 그림을 그리자 황산이 화제를 쓴 것이다.

그림과 화제의 내용을 눈여겨보자. 먼저 첫 번째 구절은 [시경(詩經)] 〈백화(白華)〉에 나오는데, 누군가와 멀리 떨어져 지내는 고독감을 표현한다. 두보가 봄날 이백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에 “위수 북쪽에는 봄 하늘에 나무 서 있고, 장강 동쪽에는 해 질 무렵 구름 떠 있네(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란 구절이 있는데, 두보가 드넓은 하늘 아래 나무처럼 서서 구름처럼 정처 없이 떠도는 이백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이 구절에서 엿보이듯이 나무와 구름은 친구를 그리워하는 상징이다.

주목할 것은 유독 추사와 그의 친구들이 이 소재를 즐겨 시와 그림으로 썼다는 점이다. 그림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숲 아래 덩그마니 조촐한 집만 그려져 있다. 그 집으로 친구가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동안 산천이 가로막혀 자주 만나지 못했으나 이제 조촐한 작은 집으로 돌아왔으니 아침저녁으로 자주 만나자고 말을 건넨다. 그 내용을 추사는 그림으로 그리고, 황산은 시로 썼다. 한동안 떨어져 있었으니 이제부터 자주 오가자는 교감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그림과 화제는 고답적이고 심오한 것도 아니고,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것도 아니다. 만나고 헤어지며,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일상적이고 친근한 사연이다. 그렇게 일상적인 것을 격조 있게 표현했을 뿐이다. 우정이란 이래야 한다, 그러니 변치 말자고 다짐하는 딱딱하고 몰취미한 설명이나 광고가 아니라, 하나의 풍경과 장면을 그려놓고 묘사할 뿐인데, 거기에는 깊은 정과 따뜻한 인간미가 서려 있다. 유별나게 묵연(墨緣)으로 맺어진 황산과 추사, 이재의 사귐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승화되어 표현되었다.



한여름에 그린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영백운도〉는 우정 어린 따뜻한 정감을 담았다고 보기 어렵다.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을 거친 붓질로 표현한 문인화이다. 마치 친구가 사라지고 없을 때의 허전하고 막막한 마음이 풍경에서 묻어난다. 물론 추사의 산수도는 대개 이 그림처럼 황량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주조를 이룬다. 원대(元代)의 저명한 화가 황공망(黃公望)과 예찬(倪瓚)풍이 크게 유행하면서 추사를 비롯한 이 시대 화가들은 저 같은 스산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간략하고 거친 붓질의 그림을 선호하였다. 추사가 조선에서 그 풍조를 선도하였지만, 유독 친구와의 이별 장면을 고독과 쓸쓸함으로 채우고 있다.

그것은 다른 그림을 보면 뚜렷하다. 선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에서도 추사는 이 그림과 비슷한 소재를 그리고 있다. 멀리 떠난 백간(白澗)에게 준 그림은 소림산수(疏林山水)를 그리고 있는데, 황산이 화평을 써서 작품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림은 아니나 다를까 황공망과 예찬 풍의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荒寒景)이다. 추사는 여기에 절구 세 수를 썼다. 다음은 그 첫 번째 시다.







무더위에 그대를 떠나보내니大熱送君行
내 심경 정말 심란하다오.我思政勞乎
황량한 풍경을 그려주노니寫贈荒寒景
〈북풍도(北風圖)〉만은 할까요?何如北風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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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
22.7×60cm. 종이에 수묵, 선문대학교 박물관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
그림에는 김정희인(金正喜印), 장무상망(長毋相忘), 척암(惕菴)이란 도장이 세 개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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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묵(淡墨)의 그림은 강을 사이에 두고 저쪽에는 산이 연달아 있어 강을 건너면 산골짜기 고을이 시작됨을 표현하였다. 이 강을 건너 친구는 멀리 떠난다는 것이 그림의 구도다. 이편 강가에는 잎이 져 가지만 남은 키 큰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먼 길 떠난 친구를 목을 빼고 배웅하고 그리워하는 시인의 상징이다. “다리까지 나가 배웅하지 못하여, 강가의 나무만이 아쉬운 정을 머금고 섰네(河橋不相送, 江樹遠含情)”란 시구처럼 강가에 서 있는 나무는 친구를 떠나보내는 아쉬운 정을 담뿍 담은 사물이다. 나무 우듬지가 모두 저쪽을 향하고 있어 친구를 그리워하는 자태다. 감정이 없는 나무는 화가의 한없는 그리움을 몽땅 이월해 갖고 있다. 한마디로 감정이입된 사물이다.

한여름인데도 그림을 황량하고 스산한 겨울 풍경으로 그린 직접적인 의도는 부채를 부칠 때마다 더위를 식히라는 배려다. 시에 나오는 〈북풍도(北風圖)〉는 고사가 있다. 후한 환제(桓帝) 때의 화가인 유포(劉褒)가 〈북풍도〉를 그렸는데, 그 그림을 본 사람들이 모두 추위를 느꼈다. 그러나 단순히 겨울 풍경을 그리고자 그림이 스산한 풍경인 것은 아니다. 그림의 실제 의도는 친구가 떠나고 없는 남아 있는 사람의 허전하고 막막한 마음의 풍경이다.



세속을 벗어난 그윽한 정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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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세한도(歲寒圖)>
23 x 69.2 cm, 종이에 수묵,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
그림에는 김정희인(金正喜印), 장무상망(長毋相忘), 척암(惕菴)이란 도장이 세 개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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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가 발문에서 직접 말한 것처럼, 친구와 이별하여 울적하고 서운한 마음을 이 같이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으로 그린 것은 사대부 문인의 서권기(書卷氣)와도 잘 어울린다. 이는 그의 명작 〈세한도(歲寒圖)〉가 발산하는 미학과 깊이 연결된다. 〈세한도〉의 창고 같은 집, 앙상한 나무에서는 황량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고고한 예술적 품격과 도도한 정신의 높이는 그렇다고 쳐도 도대체 정취를 느끼기가 어렵다. 산으로 치면 바위만 거칠게 솟은 골산(骨山)이요, 사람으로 치면 뼈만 앙상하게 남은 병자나 노인이다. 김정희의 제자인 우선(蕅船)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의 고고한 인품을 기리고자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늘 푸르다는 세한(歲寒)의 의미를 그림에 덧칠하기는 했으나,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으로 우정을 그리던 추사의 유난한 기호 때문은 아닐까?

문제는 추사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그와 교유하던 친구와 제자도 마찬가지다. 이재와 황산에다 소치(小癡) 허련(許鍊, 1808~1893)을 비롯한 제자들도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荒寒景)의 미적 경계를 함께 즐겼다. 친구를 배웅할 때 그들의 마음과 손에는 추사가 즐겨 표현한 풍경이 떠올랐다. 황산이 1833년 함경도 관찰사로 떠난 이재에게 그림과 시를 함께 그려 보내주었다. 그 두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는 밤 문 닫아 걸고秋雨蕭蕭夜掩關
다락 앞에서 촛불 켜고 물과 산을 그린다.樓前秉燭寫溪山
성긴 숲과 얕은 골짜기의 황량하고 쓸쓸한 모습疏林短壑荒寒態
그게 바로 세속을 벗어난 그윽한 정취라네.自是幽情出世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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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근, 〈소림단학도(疏林短壑圖)〉(왼쪽)와 부분도(오른쪽).


황산은 멀리 떠나 있는 친구를 그리며 “황량하고 쓸쓸한 모습(荒寒態)”을 그렸는데 그 풍경은 친구가 떠나 쓸쓸한 자신의 처소다.그는 그런 풍경이어야 “세속을 벗어난 그윽한 정취(幽情出世間)”가 드러난다고 했다. 그림은 미점(米點)으로 산과 나무를 그리고 예찬 풍의 황량함을 표현했다. 이재는 답시에서 황산의 그림이 보인 황량함을 짚어내고 있다. 그림 위에 붙인 자하 신위의 화제시에서도 황산의 오장육부가 고목(枯木)과 죽석(竹石)으로 차 있을 뿐 나무조차 꽃과 잎사귀의 형상이 없다고 했다.

황량하고 쓸쓸함은 회화와 시학(詩學)의 오랜 흐름에서 배태된 미적인 분위기다.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고 단순한 기법과 절제된 소재로, 19세기의 경화세족(京華世族: 대대로 서울에 거주하는 벼슬아치) 사대부는 그들의 내면을 표현하고자 했다. 가장 건조하고 무미하여 감정의 동요를 눈치 채지 못할 풍경이 진정으로 뭉클한 마음을 대신 표현한 것이다. 겉으로는 무디지만 속으로는 민감하다. 친구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서만은 그리 인색하지 않았던 19세기 사대부는 뜻밖에도 황량하고 쓸쓸한 역설적 풍경으로 그 감정을 표현했다는 것을 몇몇 그림들이 드러내고 있다.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태학사와 손을 잡고<한국학, 그림을 그리다>를 연재한다. 그림에 숨은 비밀과 사연을 프리즘으로 삼아 한국학의 출렁이는 바다로 여행을 떠나려는 것이다. 문학, 미술, 음악, 철학, 역사, 문화가 망라되는 항해에 깊고 진한 교감이 깃든 풍성한 바다가 펼쳐지길 해신(海神)에게 기도한다. 연재는 매주 1회 돛을 달고 항구를 떠난다.   14547415621810.jpg  http://www.thaehaksa.com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도서 출간
네이버캐스트에 연재되었던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시리즈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우리 시대 인문학자 32인이 옛 그림을 호명해 되살려낸 한국학 읽기의 색다른 즐거움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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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회 |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조선 후기 한문학의 감성과 사유를 대중적인 필치로 풀어내 역사 속 우리 선조들의 삶과 지향을 우리 시대의 보편적 언어로 바꿔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서로는 [벽광나치오], [선비답게 산다는 것],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 [정조의 비밀편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추재기이], [한서열전], [북학의], [궁핍한 날의 벗]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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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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