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파초의 노래 - 푸른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23회 작성일 16-02-06 15:53

본문















14547416410043.png





외로이 흘러간

한 송이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성긴 빗방울

파촛잎에 후두기는 저녁 어스름

창 열고 푸른 산과

마조 앉아라



들어도 싫지 않은

물소리기에

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아



온 아츰 나의 꿈을

스쳐간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 조지훈, 〈파초우(芭蕉雨)〉

남산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 〈파초우(芭蕉雨)〉를 새긴 조지훈(趙芝薰, 1920~1968) 시비에 발길이 머물게 된다. 어스름 저녁 파초 잎을 두들기는 빗소리를 들으며 푸른 산을 대하고 앉은 시인의 관조와 평정의 순간이 시원스레 다가온다. 이 짧은 몇 줄만으로도 다정한 사연과 달관한 인생의 자세가 전해지는 듯하다.



14547416421247


강세황, 〈벽오청서도(碧梧淸暑圖)〉
1712년, 종이에 수묵담채, 35.8×30cm, 개인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파초(芭蕉)라는 이름은 한 잎이 쭉 펴져 있고, 다른 한 잎도 쭉 펴져 있는 모습에서 왔다고 한다. 우리 선인들이 정원수로 흔히 심어 사랑한 잎 넓은 식물로는 파초와 벽오동이 있으니 그 맑은 그림자만 너울거릴 뿐인데도 한 점 속세의 기운이 없는 점을 사랑하였다. 파초가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주요한 정원 식물이 되었는지는 자세하지 않지만, 지금도 양반가 혹은 절의 뜰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파초는 잎이 아름다워서 예로부터 화조화(花鳥畵)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였다. 강희안(姜希顔)은 그의 저서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화목류를 9품으로 나누어 평하면서 파초를 앙우(仰友)ㆍ초왕(草王)ㆍ녹천암(綠天菴)이라 부르고 부귀한 모습을 취하여 2품에 올렸다. 글씨를 잘 썼던 당나라 스님 회소(懷素)는 자신이 사는 곳에 파초 1만 그루를 심어놓고 ‘녹천암(綠天庵)’이라 불렀다. ‘녹천’은 뜰에 심은 한 포기 파초만으로도 창가에서 보면 하늘처럼 온통 푸르기 때문이다. 이서구(李書九)의 ‘녹천관(綠天館)’이란 호도 파초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왔으리라.

정약용(丁若鏞)은 파초의 꽃을 두고 “우유초는 가을이 되면 씨알을 따고, 봉미초는 바람 품고 흔들대지만, 아침 오자 피어낸 한 송이 꽃은, 추한 모습 볼 수 없는 꼴불견이지(牛乳待秋摘, 鳳尾含風轉, 朝來吐一花, 陋恣不堪見)”라고 읊어 광채 나는 펼친 잎들에 비해 볼품없다고 노래했다. 우유초(牛乳蕉)는 파초의 일종으로 달걀만 한 씨알이 소의 젖 모양으로 생겨 얻어진 이름이며, 봉미초(鳳尾蕉)는 그 잎이 봉황의 꼬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파초는 3년 내지 5년을 자라야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면 다음 해 그 대궁은 말라 죽는다. 이를 1대라고 한다. 본 대 옆에 돋아난 어린 싹이 자라 다시 큰 줄기로 자라면 꽃이 피고 열매가 익은 뒤 시들고 만다. 18대가 되면 파초는 그 생명을 다한다고 한다. 한 대를 평균 4년 정도로 치면 18대는 72년이 되니 사람의 일생과 유사하기에 ‘파초십팔대(芭蕉十八代)’라는 말이 나왔다.



파초의 일생




파초는 식물 중에서 가장 연약하다. 너무 건조하면 마르고 너무 음습하면 썩는다. 키우는 방법을 터득하면 쉽게 번성시킬 수 있고 키우는 방법을 모르면 말려 죽이기 십상이다. 강희맹의 [양초부(養蕉賦)]를 보면 파초를 키우는 방법이 나온다. 언 흙이 완전히 풀리고 밤에 서리가 안 올 때쯤 반음반양인 땅에 커다랗게 구덩이를 판다. 그 속에 뿌리를 편안하게 앉히고 고운 흙으로 뿌리를 감싼 다음 보드라운 거름흙으로 지난해 묻혔던 자리까지만 묻어 주고 잠시도 마르지 않게 물을 준다. 4월이 오고 훈훈한 남풍이 불어오면 묵은 줄기(宿莖)에서 새잎이 나오고 묵은 줄기는 꺼멓게 떠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못 신게 된 짚신을 말 오줌에 담가놓았다가 뿌리 근처의 땅을 깊이 파고 빙 둘러 묻어주면 싹이 윤기를 띠며 빨리 크고 기운차고 왕성해진다. 녹색 전갈 같은 줄기는 촛대처럼 솟아나고 푸른 난새(靑鸞)마냥 잎이 나와 꼬리를 펴니, 부드럽고도 장엄하고 우람한 맵시로 범상한 뭇 화초를 압도한다고 하였다.







복사 오얏 붉고 흰 꽃 벌써 가지 떠나갔고桃紅李白已辭條
눈 돌릴 새 저 봄빛도 차례차례 시들건만轉眼春光次第凋
반갑구나, 서창 처마 밤을 이어 내린 비에好是西簷連夜雨
한 뿌리서 청청하게 불쑥 솟은 저 파초여!靑靑一本出芭蕉

- 황현(黃玹), 〈시골 마을의 저문 봄(村居暮春)〉

찬란한 봄날도 저물어간다. 매화도 피었다 졌고, 붉게 빛나던 복사꽃과 하얗게 눈부시던 오얏꽃도 피어난 차례를 따라 벌써 가지를 떠났다. 봄빛이 모두 다 덧없이 사라져간 휑한 가지 끝이 마음을 아쉽고 헛헛하게 한다.



14547416429332


강세황, 〈파초〉
제작연도 미상, 비단에 수묵담채, 28.5×22.3 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상심한 내 마음을 달래주는 듯 비가 내린다. 서쪽 창가 처마에선 온밤 내내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낙숫물 소리가 하염없이 들린다. 잠이 깬 이른 아침 빗소리도 잦아들고 밝아진 창문을 무심코 열어젖혔다. ‘아!’ 그저 외마디 탄성이 절로 튀어나온다. 밤을 이어 내렸던 비의 내음을 맡고, 저 아득한 지심(地心)에서부터 하늘을 밀어올리고 나타난 싱그러운 파초 대궁이. 쑤욱 솟아나온 뾰족한 새싹 한 자락 끝에 푸른 물방울이 맺혀 있다.

여름을 부채질할 장대한 모습을 전하려는 전령사인 듯, 장차 푸른 깃발을 흔들며 온 천지에 다가올 신록의 여름을 선언하는 기수인 듯이 그렇게 솟아있다. 반갑구나, 파초야! 작은 네 몸에서 애상을 기쁨으로 반전시키는 그 큰 힘이 있다니. 경이로운 새 생명에 대한 찬미이며, 싱그럽게 다가올 새로운 계절에 대한 환희이다.

여름에 뜰에서 자랄 파초를 생각하면 절로 시원해진다. 큰 키와 큰 잎의 이 초록 덩어리 식물은 여름이 주는 싱싱한 느낌을 온몸으로 발산하면서 주변을 초록으로 물들이는 신통력을 부릴 것만 같다. 봄날의 사물들을 그려내고 있지만, 여름날 파초로 인해 누릴 청복(淸福: 맑은 복)을 기대하는 시인의 즐거워하는 마음이 여운으로 남는다.

파초의 분양은 속인에게는 하지 않고 특별히 친한 사이에만 이루어지는 고귀한 예물이다. 서거정은 〈영천이 파초를 보내준 데 대하여 사례하며(謝永川送芭蕉)〉에서 “귀하신 분 정원에서 파초 옮겨주셨으니, 즐거이 창 앞 향해 터를 가려 심어두고, 덮고 찐 날 비바람 친 저녁 곧장 기다려서, 서늘한 밤 맑은 흥을 술잔에다 부치려오(芭蕉移自貴園來, 好向窓前得地栽. 直待炎蒸風雨夕, 晩涼淸興付盤杯)”라고 하였다.



파초를 사랑하는 이유, 푸른 잎에서 떨어지는 빗소리






14547416441393



파초는 파초과에 속하는 관엽식물로 중국이 원산지다. 잎이 넓은 파초는 정원수로 애용되었는데, 옛 사람들은 특히 여름날 파초 잎을 두들기는 빗소리를 좋아하였다. <출처: (cc) Materialscientist at en.wikipedia.org>


장조(張潮)는 [유몽영(幽夢影)]에서 정원에 파초를 심는 것은 빗소리를 듣기 위해서이고, 버드나무를 심는 것은 매미 소리를 듣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파초에 마음 끌리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 ‘시원스러운’ 잎 때문일 것이다. 서거정은 〈흥이 이는 대로 읊으며(卽事)〉에서 “대 그림자 솔 그늘이 가볍게 땅을 덮자, 납량(納凉: 여름철 더위를 피하여 서늘한 기운을 느낌)하는 못가 집이 다시 맑고 서늘해져, 저물녘에 한바탕 상쾌하게 내린 비에, 파초 위에 듣는 소리 너무도 사랑옵다(竹影松陰羃地輕, 納涼池館更凄淸. 晩來一快南風雨, 最愛芭蕉葉上聲)”라고 하여 파초우의 즐거움을 노래하였다. 파초를 사항했던 박지원도 가슴이 답답하고 생각이 산란하여 머리가 절로 끄떡여지고 눈꺼풀이 천 근 같다가도 파초의 잎을 두들기는 소리를 들으면 정신이 갑자기 개운해진다고 하였다.

강희맹은 그의 〈양초부〉에서 여름날의 파초를 노래한다. 맺히고 얽힌 정을 둘 곳이 없어 답답하고 외로운 회포가 쓸쓸할 때, 문득 저 파초의 푸른 잎이 너울너울 번뜩이면 바로 앞에서 곱디고운 비단 춤을 추는 듯하다. 이윽고 빈 뜰에 비가 내리고 창밖에 사람은 없고 방 안의 푸른 등은 깜빡깜빡 빛을 잃어 만 가지 느낌이 마음을 어지럽혀 세상을 버리고 훌쩍 날고플 때, 소낙비가 휘몰아쳐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로 시름에 잠긴 혼을 놀라게 한다는 것이다.

지난 경자년(1780) 5월에 나는 죽서(竹西)의 태극실(太極室)에 있었다. 앞쪽 작은 화단에 새로 심어둔 파초 너덧 뿌리가 갑자기 10여 자 정도 자라서 저물녘이면 그늘이 창을 덮었다. 안석과 서가가 이 때문에 맑고 푸르러 기릴 만했다. 이때 날이 매우 무더웠다. 나는 폐병을 앓아 누워 있었는데 땀이 줄줄 흐르고 기운이 빠져 계속 꾸벅꾸벅 졸았다. 갑자기 섬돌 사이에 툭툭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청량한 기운이 얼굴을 스치기에 일어나 보았다. 구름장이 뭉게뭉게 일어 빽빽하게 퍼지더니 빗방울이 떨어져 파초 잎을 두드렸다. 후드득후드득 구슬처럼 흩어져 떨어졌다. 나는 귀를 쫑긋하여 한참을 들었다. 정신이 상쾌해지고 기분이 명랑해져 병이 벌써 나았음을 깨달았다


- 서유구(徐有榘), 〈우초당기(雨蕉堂記)〉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서유구는 파초를 매우 아꼈다. 이 글은 처남 박성용(朴聖用)의 거처 우초당(雨蕉堂)에 대한 기문이다. 방 앞 화단에 심어둔 파초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노라니 절로 정신이 맑아진다. 파초 잎을 타고 후드득 내리는 빗소리가 사랑스럽다.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은 파초가 폭염 아래서도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이 서늘하여 눈을 씻어주고, 비오는 날에는 은은히 빗방울을 퉁기는 소리가 좋아 그 시원함을 즐기려 파초우(芭蕉雨)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이런 맛이 그의 수필 〈파초(芭蕉)〉에 보인다. 여름이면 장대하게 키운 파초가 폭염 속에 드리운다. 그는 싱그러운 그늘에 눈길을 주고, 비 내리는 날 넓은 파초 잎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그것을 청복으로 누린다. 파초 잎을 두들기는 빗소리, 자연의 소리에 젖어 여유와 시원함을 누리는 깨끗한 관조적인 마음, 서정감이 넘친다.



14547416453047


심사정, 〈패초추묘(敗蕉秋猫)〉
제작연도 미상, 비단에 담채, 23×18.5 cm, 간송미술관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최립(崔岦)의 시에 “집안사람 함께 모아 큰 잔치를 여는 사이, 계온 담은 파초 술잔 물러질까 걱정이네(具取家人鼎俎間, 桂醞盞愁蕉葉脆.)”라는 구절이 있다. 옛날에 풍류 삼아 파초 잎으로 술잔을 대신하곤 하였는데, 지금 잔치 자리에 나온 계주(桂酒)처럼 독하고 진한 궁중의 명주는 파초 잎이 연약해서 아무래도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파초 잎사귀로 만든 얕고 얇은 술잔 초엽(蕉葉)은 다루기는 조심스러워도 기막힌 운치가 있다. 꽃잎에 맺힌 이슬방울을 나뭇잎으로 모아 차를 우려내듯 아껴가면서 조금씩 마시기 위해서 반드시 초엽을 썼다.

계곡(谿谷) 장유(張維)는 “새벽 서리 뜰아래 파초에 내려, 찢긴 잎들 짙푸른 빛 바래버렸네(晨霜下庭蕉, 敗葉委繁綠)”라고 하여 영고성쇠(榮枯盛衰)하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늦가을이 되자 찬란한 파초의 영광도 시들어버려 바삐 지나가는 세월을 한탄한다. 이제는 파초를 거둬야 할 때이다.

옛사람들의 파초 보관 방법은 강희맹의 〈양초부〉에 보인다. 된서리가 오고 나뭇잎이 떨어지려 할 때가 되면 힘센 종을 시켜 줄기를 한 자쯤 남겨두고 베어버린 후 뿌리를 캐어 움[土宇] 속에 갈무리하도록 한다. 움 속에 갈무리할 때는 복판으로 몰지 말고 가장자리로 줄지어 심은 다음 등겨[糠]로 덮어준다. 사람의 훈기도 싫어하지 않으며 따뜻하게 해 주는 것이 가장 좋다. 바탕을 살펴 법대로 하면 잘 안 될 걱정이 없으니 엄동이 닥쳐 몹시 춥고 어두울 때에도 한 줄기 미약한 양기를 통하여 따뜻이 보호해 주면 그대로 싹이 나오고 움도 틀 것이라고 하였다.



파초에게 배우는 수양과 지혜




옛 선인들은 자신의 기질과 취향에 따라 꽃과 나무를 아끼고 사랑했다. 옛 선인들은 자연 속의 꽃과 풀, 나무에 대해 많은 시를 읊었고, 글을 남기고 그림을 그려 그것이 지닌 물성을 닮고자 하였다. 강희맹은 그의 〈양초부〉에서 파초의 덕성을 노래하였다. 파초란 연한 바탕이 쉬 부서져 송죽 같은 곧은 자세는 없으나 중심에서 솟아나와 이어지는 모습이 진실로 유위(惟危) 유미(惟微)한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에 절로 맞으니 뜰 앞에 심어서 군자의 맑은 의론에 가까이 함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정원에 고운 봄이 짙어져 가니庭苑媚春蕪
초록 파초 새잎을 펼치려는데綠蕉新葉展
펼쳐내면 빗자룬 양 커질 것이니展來如箒長
탁물이란 대인들이 힘쓴 바였네.托物大人勉


- 정조(正祖), 〈섬돌 앞의 파초(階蕉)〉


14547416460538


정조(正祖), <파초도(芭蕉圖)>
18세기, 종이에 수묵, 84.7×51.5 cm,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정조가 세손으로 있었던 시절에 섬돌 앞의 파초를 두고 쓴 시이다. 여름날 파초가 그 큰 잎을 펼쳐 무성한 녹음을 이뤄 그 그늘의 시원함을 만인에게 베풀듯이 이다음에 군주가 되면 성인의 정치를 펴보겠다는 정조의 포부가 담겨 있다. 정조가 그린 〈파초도〉도 남아 있다. 자신이 꿈꾸는 세상의 꿈을 간직하고 있으며, 자신의 덕성을 수양하고 지혜를 배양하고자 하는 마음의 자화상이다.

세손 시절 정조는 파초 한 그루를 섬돌 곁에 심어두고 보았다. 궁궐의 정원에는 봄이 짙어져 간다. 이럴 때 파초도 땅속에 묻어두었던 뿌리에서 새잎의 대궁을 밀어 올린다. 정조가 파초를 사랑한 것은 사물의 외형을 보고 즐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호학(好學)의 군주답게 파초에 담긴 이치를 음미해야 한다고 여겼다.

탁물(托物)이란 마음이 지향하는 자세를 사물의 속성에 미루는 것이다. 정조는 탁물을 이 파초에 두었고, 자신의 수양과 지혜의 자료로 삼은 것이다. 파초는 잎이 지지 않으며, 먼저 나온 잎이 어느 정도 자라면 곧이어 늘 새로운 잎이 말려 나온다. 파초는 중심을 같이하고 한곳에서 나와 너른 잎이 여러 개씩 붙어 있다. 처음 잎은 말려 올라가다 활짝 펼쳐지고, 다시금 돌돌 말린 새잎이 돋아난다. 줄기에 붙어 자란 잎사귀는 마치 척추에 붙은 갈비뼈들과 같아 그 조리 참으로 치밀하다.

송나라 학자 장재(張載)는 이 파초의 속성에서 덕성을 잘 기르고 새로운 지혜를 배양하는 학문의 요체를 발견하였다. 그는 “파초는 속이 꽉 차면 새 가지를 펼치는데, 새 속이 돌돌 말려 언뜻 벌써 뒤따르니, 새 속 배워 새 덕을 기르기를 바라고, 이내 따른 새잎으로 새 지혜를 펼쳐내리(芭蕉心盡展新枝, 新卷新心暗已隨. 願學新心養新德, 旋隨新葉起新知)”라고 하였다. 웅화(熊禾)는 주(註)에서 “새 속으로 새 덕을 기른다는 것은 덕성을 높이는 공부에 해당하고, 새잎 따라 새 지혜가 펼쳐진다는 것은 학문을 말미암는 공부에 해당한다”라고 하였다. 정조도 또한 이런 의미로 파초를 보았을 것이다.



눈 속에 피어난 파초의 덕




한겨울 눈이 쌓이는 계절에 남방식물인 파초가 자랄 리 없다. 그러나 왕유(王維)는 눈 속에 생생하게 잎을 펼친 파초를 그렸다. 〈원안와설도(袁安臥雪圖)〉라는 그림이다. 원안(袁安)은 한나라 때의 사람이다. 큰 눈이 한 길 넘게 내려 민가(民家)에서는 식량을 구걸하고 있는데, 원안의 문 앞에는 사람 자취가 없었다. 낙양령(洛陽令)이 집으로 들어가 누워 있는 원안에게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원안이 “큰 눈이 내려 사람들이 모두 주리고 있는데 남들에게 먹을 것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하였다. 낙양령이 그 말을 듣고 그의 품덕을 찬양하며 효렴(孝廉)으로 천거했다. 왕유는 이러한 원안의 맑고 고매한 정신세계를 표상해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왕유 이후 중국의 역대 화가들이 원안의 고사를 소재로 하여 그림을 그렸다. 장언원(張彦遠)은 파초 그림이 사실과 어긋난다고 말하였지만, 심괄(沈括)은 [몽계필담(夢溪筆談)]에서 “눈 속에 그려진 파초는 마음에 얻어서 손이 응한 것이요, 뜻이 이르자 바로 완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치를 만든 것이 신비의 경지에 들어가 천연의 아취를 깊이 얻었다. 이 경지는 속인들과 더불어 말하기가 어렵다”라고 한다. 그림은 정신으로 이해해야지 형상의 모습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눈 속 파초는 예술이란 불변의 법칙이 없고 형편에 따라 변화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율곡 이이는 원안의 고사를 자신의 고요한 본성을 지키는(守靜) 즐거움으로 평하였다. 연암 박지원이 안의현감 시절, 빈 관아에서 홀로 삼동을 날 적에 매화 화분 하나, 파초 화분 하나를 동반하였다. 우의정 김이소(金履素)에게 보낸 편지에 “옛사람 중에 매화를 아내로 삼은 이가 있었습니다만, 눈 내리는 날 푸른 파초는 마음을 터놓는 벗이 될 만하더군요”라고 하였다. 이를 보면 연암은 겨울의 파초를 통해 원안(袁安)의 덕을 닮으려 했음을 볼 수 있다.



14547416473449


순천 송광사의 벽화, <단비구도(斷臂求道)>
신광 스님이 달마 대사 앞에서 왼팔을 자르자 눈 속에서 파초 잎이 피어나 끊어진 팔을 받쳤다.


김해 신어산 동림사와 김제 금산사 대웅전, 순천 송광사에는 파초 그림이 있다. 젊은 신광 스님이 동굴에서 좌선하는 달마 대사 앞에서 예리한 칼을 뽑아 왼팔을 잘라버리자 눈 속에서 파초 잎이 솟아나 끊어진 팔을 받쳤다. 이는 〈혜가단비도(慧可斷臂圖〉로 [전등록(傳燈錄)]에 나오는 ‘단비구법(斷臂求法)’, 즉 팔을 잘라 법을 구하는 이야기이다. 파초는 왜 때 아닌 눈 속에서 피어났을까?

어느 해, 동짓달 초아흐렛날 밤새 큰 눈이 내렸다. 신광은 달마 대사가 면벽하고 있는 굴 밖에 서서 꿈쩍도 않고 밤을 지새웠다. 새벽이 되자 눈이 무릎이 넘도록 쌓였다.

“네가 눈 속에서 그토록 오래 서 있으니, 무엇을 구하고자 함이냐?”

“바라건대 스님께서 감로의 문을 여시어 어리석은 중생을 제도해주소서.”

“부처님의 위없는 도는 오랜 겁 동안을 부지런히 정진하며 행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고 참기 어려운 일을 능히 참아야 얻을 수 있다. 그러하거늘 너는 아주 작은 공덕과 하잘것없는 지혜와 경솔하고 교만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서 참다운 법을 얻고자 하는가? 모두 헛수고일 뿐이니라.”

달마 대사의 이 얘기를 듣던 신광은 홀연히 칼을 뽑아 자신의 왼쪽 팔을 잘랐다. 그러자 때 아닌 파초가 피어나 잘린 팔을 고이 받치는 것이었다. 그의 발심(發心)이 열렬함을 본 달마 대사는 혜가(慧可, 487~593)라는 법명을 주었다.

“그래, 무엇을 알고자 하는가?”

“마음이 심히 편치 않습니다.”

“편치 않다는 그 마음을 어디 가져와보라.”

“찾아보니 없습니다.”

“됐다. 그대 마음은 편안해졌다.”

이 안심(安心) 문답을 계기로 혜가는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혜가는 보리달마를 6년 동안 받들었으며 [능가경(楞伽經)]과 전법의 증표로 스승이 제자에게 전하는 가사인 신의(信衣)를 받았으며 중국 선종의 2대 조사가 되었다.

파초는 대승(大乘)의 십유(十喩: 모든 사물 현상에는 실체가 없으며 모두 허망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열 가지 비유) 중 하나이다. 십유는 취말(聚沫), 포(泡), 염(炎), 파초(芭蕉), 환(幻), 몽(夢), 영(影), 향(響), 부운(浮雲), 전(電)이다. 파초는 양파 껍질처럼 아무리 벗겨도 끝내 아무것도 남지 않아 불완전한 인간에 비유되었다. 파초의 체질이 견실하지 못하고 취약한 것처럼 사람의 몸도 허망하고 무상한 것을 가리킨다. 파초를 갈가리 찢어놓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람 역시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의(意)를 서로 갈라놓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덧없는 존재며 모든 생명체의 삶도 그렇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은 처음부터 주인이 없으며 모든 존재가 각각 주인이다. 식물은 한 뼘의 땅만으로 살아간다. 세상은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공간만이 의미 있으며, 결국 죽어 묻힐 내 키만큼의 땅이 의미 있을 뿐이다. 요즘처럼 화장을 하거나 수목장을 하는 세상은 그 땅마저도 의미가 없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의 소유라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됨을 본다.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태학사와 손을 잡고<한국학, 그림을 그리다>를 연재한다. 그림에 숨은 비밀과 사연을 프리즘으로 삼아 한국학의 출렁이는 바다로 여행을 떠나려는 것이다. 문학, 미술, 음악, 철학, 역사, 문화가 망라되는 항해에 깊고 진한 교감이 깃든 풍성한 바다가 펼쳐지길 해신(海神)에게 기도한다. 연재는 매주 1회 돛을 달고 항구를 떠난다.   14547416474085.jpg  http://www.thaehaksa.com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도서 출간
네이버캐스트에 연재되었던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시리즈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우리 시대 인문학자 32인이 옛 그림을 호명해 되살려낸 한국학 읽기의 색다른 즐거움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김종서 |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강사
때로는 그림으로 때로는 노래로 읽히는 우리 한시, 그 시정 속에 담긴 우리 선인들의 진실하고 소박한 심성을 느끼기 위해 시인의 마음과 솜씨를 살려 이를 현대 언어의 가락으로 살려 읽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저서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서늘하고 매혹적인 명품 한시와 옛 시인 마음 읽기], [영조어제 해제(英祖御製 解題)·5]와 [역사, 길을 품다](공저)가 있으며, 역서로는 [송천필담](공역)이 있다.


발행2013.01.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