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해리정체장애 - 나도 모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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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68회 작성일 16-02-0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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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M-IV(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정신장애에 대한 진단 및 통계 편람) 케이스북에 실제 소개된 경우이다.1)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메리 켄달(Mary Kendall)이라는 35세 여성은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남을 돕는 데 주로 힘을 쓰면서 지내는 상냥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오른팔에 고질적인 통증이 있어서 최면을 동반한 치료를 받고 있던 중 그녀는 의사에게 매우 이상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분명 어제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채웠거든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기름이 절반 이상 줄어들어 있는 거예요. 더욱 놀라운 것은 주행계도 어젯밤에 비해 100킬로미터가 넘게 차이가 나구요.” 물론 메리는 이런 일이 일어난 밤에 대한 기억은 전혀 지니고 있지 않았다. 항상 이를 불안과 걱정으로 고민하던 메리의 입에서 최면 요법을 통한 치료 과정 중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최면 상태인 메리는 갑자기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살아가면서 한 번도 내지 않았던 말투와 목소리로 자신을 마리안(Marian)이라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흥! 난 메리가 아니라 마리안이란 말이야!”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 마리안은 “나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어.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밤마다 운전을 해야만 해!”라고 쌀쌀맞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더욱 놀라운 점은 심리치료가 병행되면서 메리에게서 마리안 말고도 4개의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데 심지어는 자신을 여섯 살 아동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 간에는 같은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는 분명한 차이점들이 존재했으며 어떤 사람은 자살하겠다는 위협을 (그러면서 자신이 자살을 해 버리면 메리도 같이 죽는 것이라며)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인물은 “의사는 환자의 비밀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지금 나와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 일체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라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여러 명의 인물이 교대로 메리라는 한 사람의 신체를 통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Spitzer, R.L., Gibbon, M., Skodol, A.E., Williams, J.B., & First, M.B. (Eds.). (1994).DSM-IV casebook: a learning companion to the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Washington DC: American Psychiatric Press,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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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성 정체감 장애: 다수의 자아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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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스릴러나 공포물에 해당하는 소설과 영화에서 엽기적인 살인마로 주로 등장하기도 한다. <출처: wikipedia>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일단 위의 경우와 관련된 증상을 나타내는 용어와 정의부터 알아보자. 이러한 장애를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DID)라고 한다.2) 정체감이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누구나 정체감(Identity)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정체감이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나 자신의 대답이다. 나는 남들과 어떻게 다른가? 나는 어디에 속해있는가? 내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무엇을 좋아하고무엇을 싫어하는가? 같은 질문도 역시 이 정체감에 관한 것이다. 즉 다시 말하자면 정체감이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한 사람이 지닌 대답의 결집체인 것이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이 정체감이 한 사람에게 하나이어야 하는데 2개 이상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각기 다른 때와 장소에서 하나의 육체를 각기 다른 정체감이 다스린다. 하나의 육체에 대한 심리적 주인이 여러 명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주성격(위의 예에서는 메리)이 그 사람의 본래의 성격을 주로 나타내고 주성격일 때는 제2 정체성(마리안)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제 2 정체성은 주성격과 다른 정체성의 존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마치 언제나 곁에서 메리를 지켜보고 있는 마리안인 것처럼 행동하고 말한다. 목소리, 자신의 연령에 대한 생각, 윤리적 성향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성별이나 사투리의 종류가 다른 정체성들이 다수 발견되곤 한다. 요약하자면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지닌 사람은 아래와 같은 증상들을 공통적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다중인격장애로 부르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정체성이 통합되지 못했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해리성 정체감 장애로 통일하여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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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이 지닌 정체감 혹은 인격적인 상태가 둘 혹은 그 이상이며 각각의 정체감은 서로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 그러한 다수의 정체감이 주기적 혹은 반복적으로 번갈아가며 한 개인의 행동과 사고를 통제한다.
* 다른 정체감이 한 행동이나 경험들을 조금도 회상해 내지 못한다. 특히 주성격에 해당하는 정체감에서 이러한 현상이 자주 발견된다.



아동기 학대: 해리성 정체감 장애의 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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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최소 90% 이상의 절대 다수가 어린 시절 심각한 학대와 충격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출처: gettyimages>



그 현상이 너무나도 놀랍고 신기해서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스릴러나 공포물에 해당하는 소설과 영화에서 엽기적인 살인마로 주로 등장하곤 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와 같은 고전뿐만 아니라 ‘프라이멀 피어’와 같은 비교적 최근 영화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러나 사고와 인지 능력의 심각한 손상과 왜곡으로 현실 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정신증(psychosis)적 증상보다는 개별 정체성들이 여전히 현실에의 끈을 붙잡고 있는 신경증(neurosis)의 한 종류로 보는 것이 더 일반적인 추세이며 다만 이러한 다수의 정체성들이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괴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전반적인 입장이다. 또한 일반인들의 범죄율이 정신장애인들의 범죄율보다 17배나 더 많고 정신장애인들 중에서도 해리성 정체감 장애에 속한 사람들은 살인 등 강력 범죄의 비율에 있어서도 하위권에 속한다.3)4)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가해자이기 보다는 피해자로서의 성격을 더 강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의 남녀 성비는 1:9로 나타난다. 절대적으로 여성이 많다는 것이다. 고정관념일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점도 강력범죄의 비율이 낮은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조성남. 1992년. 범법 정신장애자의 현황 및 범죄율 분석. 신경정신의학 제31권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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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정신의학. 2005. 대한신경정신의학회편. 중앙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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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점은 아주 심각한 우울장애 환자들조차도 아동기에 심각한 학대를 경험한 비율이 50% 내외인데 반해(물론 이것도 매우 높은 비율이지만)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최소 90% 이상의 절대 다수가 어린 시절 심각한 학대와 충격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끔찍한 학대와 고통에 저항할 수 없는 아동이 그것을 피할 수 없기에 자아를 바꾸는 최후의 방어 수단을 선택하는 것으로 그 원인을 추정해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버릴 수 있는 정신장애의 뒤에는 대부분 아동기에 이런 처참한 경험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진다. 아동에 대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는 어떠한 종류의 범죄에 대해서도 가장 강한 처벌체계를 지녀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이의 방지를 위해 드는 비용과 노력에 대해서는 조금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 간과하면 그 결과는 너무나도 참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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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를 받았으며 미국 University of Texas - Austi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학술논문지에 Preference and the specificity of goals (2007), Self-construal and the processing of covariation information in causalreasoning(2007) 등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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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1.11.14.



주석


1
Spitzer, R.L., Gibbon, M., Skodol, A.E., Williams, J.B., & First, M.B. (Eds.). (1994).DSM-IV casebook: a learning companion to the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Washington DC: American Psychiatric Press, Inc.
2
예전에는 다중인격장애로 부르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정체성이 통합되지 못했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해리성 정체감 장애로 통일하여 부르고 있다.
3
조성남. 1992년. 범법 정신장애자의 현황 및 범죄율 분석. 신경정신의학 제31권 제6호.
4
신경정신의학. 2005. 대한신경정신의학회편. 중앙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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