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마음을 그리다 - 마음을 다스리며 자신을 다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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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68회 작성일 16-02-0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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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경전, [심경]




마음을 그릴 수 있을까? 분홍빛 하트나 붉은 심장, 마음을 형상하는 것은 많지만 그 무엇도 마음을 다 표현하지는 못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니 온전히 그릴 수 없는 것이 마땅하다.

‘차가운 이성, 뜨거운 감성’이 적실한 표현이라면 정신은 차가운 머리에, 마음은 뜨거운 가슴에 담겨져 있어야 제격이다. 정신이 이성으로 육체를 다스리려 한다면, 마음은 뜨거운 피로 우리 몸의 주인이 된다. 하지만 이것도 마음은 심장이라는 이미지에 이끌린 선입견이다. 마음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보이지 않는 마음을 그리려는 화가들의 시도는 동서고금에 끊임없이 이어졌다.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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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김홍도,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
1796년, 종이에 담채, 26.7×31.6cm, 호암미술관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

소슬한 수풀에 휘영청 밝은 달을 그린 이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 풍경이 아니라 풍경에 의탁한 화가의 정취, 곧 쓸쓸하면서도 맑은 작가 김홍도의 마음이다.작품 보러가기


꿈꾸는 것, 느끼는 것, 마음이 가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려내고 싶어 한 화가의 열망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나를 이끌어가는 마음의 위엄, 바로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바로 그 마음을 지키려고 고심한 학자가 있다. 송대(宋代) 유학자 진덕수(眞德秀, 1178~1235)다. 그는 유교 경전과 송대 도학자들의 저술에서 마음공부와 관련한 구절을 발췌하여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심경(心經)]이라 이름 붙여진 이 책은 마음의 수양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때로 사람들은 여러 경전에 기록된 정수를 모아 간결한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두곤 한다. 그것을 익혀 제 몸의 귀감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불경에서 정수를 모은 것이 [반야심경(般若心經)]이라면 [심경]은 유교의 경전에서 정수를 모은 것이다. [반야심경]은 ‘공(空)’ 사상에 입각해 ‘지혜의 빛에 의해 열반에 이르는 길’이라는 구도(求道)와 죽음을 말한다. 이에 반해 [심경]은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스스로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심경]에서 말하는 삶의 등불은 ‘경(敬)’이다. 삼가는 마음, 곧 경건함이다. 죽음이 아닌 삶을, 공(空)이 아닌 경(敬)을 말하는 것이 다르지만, 인간의 삶에 있어서 참된 마음을 고민하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길에 대해 성찰했다는 점에서 두 책은 닮아 있다.



그 사람, 진덕수




[심경]을 지은 진덕수는 서산(西山)이라는 호(號)로 더 유명하다. 그는 강직한 인물로 알려졌으며 벼슬은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 그가 조정에 있을 때 올린 수십만 자의 상소문은 모두 당대의 문제에 절실한 것이었다. 특히 유교경전인 [대학]의 뜻을 부연한 [대학연의(大學衍義)]는 제왕학의 교과서로 널리 읽혔다. 조선의 뛰어난 학자 박세채는 숙종에게 진덕수와 [심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개 주자 이후 도학이 크게 밝혀져 학문을 수립한 문인이 적지 않지만, 진덕수 한 사람이 그 문하에 사숙하여 조정에 나아가 벼슬하며 도덕을 겸하여 일시 사문의 종장(宗匠: 경학에 밝고 글을 잘 짓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학연의(大學衍義)]와 [심경] 두 책을 지었으니 [대학연의]는 이종(理宗)에게 올렸고 [심경]은 선비가 강습하는 책으로 삼았습니다.

- 〈연중강계(筵中講啓)〉, [남계집] 권18

진덕수는 신하로서, 학자로서 존중받을 만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실제에서도 진덕수는 평소 상제(上帝)가 옆에 있는 것처럼 행동을 조심했고, 아픈 아이를 돌보듯이 백성을 대했다고 한다. 조정에 있을 때는 간절히 나라를 걱정했고, 군주와 관리들에게도 삼가고 성의를 다했다. 그는 [심경]을 완성하고 나서 스스로 이렇게 찬(贊)을 붙였다.

순임금과 우임금이 16글자를 주고받았다.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隱微)하니 오직 마음을 정밀하고 한결같이 하여 진실로 그 중(中)을 잡아야 한다.” 이 구절은 심학(心學)의 영원한 기반이고 근원이다. 인심이란 무엇인가? 몸에서 생긴 것으로 기호와 욕망, 불만과 분노로 드러난다. 욕심에서 비롯되어 규범을 벗어나므로 위태롭다. 도심이란 무엇인가? 하늘의 뜻과 인간의 본성에 기원을 둔다. 인의(仁義), 중정(中正)이 이것이다. 이 하늘의 뜻인 천리(天理)는 은미해서 불면 날아가 보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정밀하게 살펴 중(中)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 (……)


요컨대 도심은 온갖 선(善)의 근원이고 하늘이 내게 준 큰 것이다. 가슴에 품으면 태극이 된다. 그 쓰임이 무궁하니 보물로 여기고 귀한 벽옥처럼 받들어야 한다. 돌이켜보면 옛 선인들은 경(敬)으로 이것을 전했다. 간결하면서도 널리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내가 이곳의 수령이 되어 사람들의 성품이 꽉 막힌 것을 걱정하여 옛 격언을 모아 폐부(肺腑)를 씻어본다.

진덕수는 자신이 다스리는 고을 사람들의 꽉 막힌 성품을 걱정했다. 그리하여 옛 성현들의 격언을 모아 책을 엮고 그것으로 그들의 마음을 다스리려 했다. 그는 주로 유교 경전인 삼경(三經)과 사서(四書)의 구절을 인용했다. 특히 [맹자]에서는 12대목이나 뽑았다. 또 송나라 도학자들의 글을 덧붙였다. 〈양심설(養心說)〉과 〈성가학장(聖可學章)〉, 〈사잠(四箴)〉, 〈심잠(心箴)〉은 주돈이와 범준, 정이의 글에서 뽑은 것이고, 〈경재잠(敬齋箴)〉, 〈구방심재잠(求放心齋箴)〉, 〈존덕성재잠(尊德性齋箴)〉 등은 모두 주희의 글이다. 마음공부의 명문(名文)들이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가려 뽑은 것이다.

그는 욕심에서 비롯된 인심(人心)의 위태로움은 모든 선의 근원인 도심을 통해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본성은 하늘로부터 온 것이므로 그 근원적 선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욕망을 이기고 본성을 발휘한다면 인간의 도덕성은 회복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제자 안약우(顔若愚)는 이 책을 발간하면서 스승이 이 책을 완성하고서 읽는 모습을 이렇게 추억했다. 때는 주희 사후 30여 년이 지난 1234년이었다.

스승은 새벽에 일어나면 꼭 향을 사르고, 꼿꼿하게 앉아 십수 편을 읊조리셨다. 하루도 공부하지 않은 날이 없고, 한 가지도 공부가 아닌 것이 없었다. 안팎이 서로 상승하여 성숙되도록 한 것이 이와 같으셨다.

[심경]을 완성하고서 그것을 읽으며 자신을 다스리는 진덕수의 모습은 불경을 독송하는 스님, 성경을 묵상하는 수도사와 같은 것이었다. 그는 이미 종교인의 경건함을 지니고 있었다.



[심경]의 발전과 조선에의 전래




송대(宋代)를 지나 원대(元代)로 접어든 지 얼마지 않아 [심경]은 새로운 주목을 받았다. 임은(林隱) 정씨(程氏)로 잘 알려진 은사(隱士), 정복심(程復心, 1279~1368)은 이 [심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설명을 붙였다. 이어서 명대 학자 정민정(程敏政, 1445~1499)은 진덕수의 [심경]에 송대 학자들의 중요한 말들이 빠져 있다고 생각하여 자신이 주를 가려 뽑아 부주(附註)를 달고 〈심경찬(心經贊)〉과 〈심학도〉를 붙여 이를 [심경 부주(心經附註)]라는 이름으로 1492년에 출간했다.

이 책은 이후 조선에 유입되었다. 조선에서는 이 [심경부주]를 통해 [심경]을 공부했다. 퇴계 이황이 읽은 [심경] 역시 [심경부주]였다. 그는 20대 초반인 1523년 성균관에 유학하면서 처음으로 [심경부주]를 구해 보았다. 그는 [심경부주]를 읽고 나서 “심학(心學)의 연원(淵源)과 심법(心法)의 정미(精微)함을 알았다”고 높게 평가하고, “초학이 공부하는 바탕으로 이 책보다 절실한 것이 없다”고 하면서 엄한 스승과 유익한 벗으로 여겨 늘 이 책을 곁에 두고 읽었다. 마음을 다스리고 세상을 구제하는 약석(藥石)으로 생각하여 도에 들어가는 문은 이 책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퇴계는 주자학의 근간인 사서(四書)와 [근사록(近思錄)]과 동등한 수준으로 이 책의 가치를 존신(尊信)하여 평생 동안 연구했다. 성호 이익은 조선에서 [심경]이 유행한 이유로 퇴계의 존신을 큰 비중을 두어 설명했다.

퇴계는 예순여덟의 나이에 군왕 선조(宣祖)를 위해 제작한 〈성학십도(聖學十圖)〉 내에 제8도로 〈심학도〉를 채택하여 수록했다. 정복심의 도설(圖說)이 [심경]의 내용과 심학의 요체를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마음공부를 논하다 - [심학도]




일찍이 [심경]의 저자 진덕수는 〈심경찬〉에서 사람의 마음을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으로 나누고, 인심을 제어하고 도심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경(敬)을 제시했다. 정복심은 진덕수의 〈심경찬〉을 바탕으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반영하여 〈심학도〉를 그렸다. 그는 사람의 행동이 발현되는 몸을 다스리는 것은 마음이고, 그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마음의 경건함, 곧 경(敬)이라고 보았다.

대개 사람의 마음은 어린아이의 마음과 어른스러운 마음, 양심과 본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모두 선한 것이다. 사람은 하늘의 품성에 근원을 둔 본성을 지니고 있다. 바로 도심이다. 사람의 마음은 신령스러우면서도 지각이 있고 신명(神明)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이렇듯 선한 본성을 지닌다. 다만 사람은 누구나 신체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신체에서 비롯된 인심이 없을 수 없다.

인심은 육신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육체의 욕망이다. 이를 제어하고 본래의 선함을 실천하려면 욕망을 억제하고 본성을 확충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사도바울이 로마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에게 육신이 있으므로 거기에 천형(天刑)과 같은 죄가 깃든다고 고민했던 것과 유사하다.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나에게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육신 속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고, 또 육신 속에 있는 죄의 법에다 나를 사로잡는 것을 봅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주겠습니까?

- 〈로마서〉, [성서]

사도바울은 육신에 깃든 선하지 않은 것들을 직시한다. 선을 행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건만, 선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건만, 내 육신에는 다른 법이 있다. 그 육신의 죄악에 결국 내 선한 의지마저 사로잡혀간다. 죄의 근원인 육신의 문제를 처리하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그것은 육신을 지닌 모든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다. 바울은 결국 인간들이 지닌 육신의 죄악을 해결할 길은 육신의 죄를 대신 지고 속죄한 예수를 믿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그것만이 육신을 지닌 인간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정복심은 여느 유학자들처럼 하늘에 대한 경외감이 있다. 하지만 그 하늘에 있는 상제(上帝)가 인격적인 신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가 추구할 수 있는 인간 구원의 길은 진덕수가 그러하였듯 외부적인 어떠한 속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한 마음을 함양하고 회복하는 것이다. 곧 인심과 도심의 갈등을 정밀하게 살펴 선을 택하고 그 선을 한결같이 굳게 지키는 것이요,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의지에 의해 자기 선함을 확충하여 불선(不善)의 죄악을 이겨나가는 것이다.

정복심은 육신의 욕망을 막고, 본래의 선함을 지키고 확충하고자 했다. 〈심학도〉(그림 2, 3)에서 아래 오른쪽에 제시된 것처럼, 혼자 있을 때 삼가 마음의 욕망을 이기며, 마음을 항상 두고 살피며 방심하지 않는 것, 그래서 바른 마음을 가지고 더 이상 마음을 동요하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은 육신의 욕망에서 마음을 지키는 길이다. 또한 아래 왼쪽에 제시된 것처럼 항상 조심하여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마음을 잡아 보존하고, 성찰을 통해 마음을 기르고 마음을 다하는 것, 그리하여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 이것은 마음이 가진 본래의 선함을 발휘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마음의 선함을 견지하는 구도와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한 정복심의 이 그림에 대해 퇴계는 “성현들이 심학(心學)을 논한 것을 끌어모아 분류 배치하여 그린 것으로, 성현의 심법이 다단함을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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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이황, [성학십도(聖學十圖)] 제7도 〈심학도〉
교서관 초간본(1568),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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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이황, [성학십도] 제8도 〈심학도〉
교서관 중간본(1744), 도산서원 광명실 소장.
퇴계 선생이 〈성학십도〉를 그려 선조에게 올린 이후 조선의 학계에서는 율곡 이이를 비롯하여 여러 학자가 의견을 제출했다. 퇴계 역시 그 견해들을 경청하여 도설의 내용과 배치를 수정했다. 제7도였던 〈심학도〉가 제8도로 수정 배치된 배경에는 조선 학자들의 [심경] 해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서려 있다.



그러나 정복심의 이 〈심학도〉에 대해 모든 사람이 동의하고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율곡 이이는 퇴계가 이 그림을 [성학십도] 안에 들여놓자 가장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당시 33세의 패기 발랄한 율곡은 이미 68세의 노성한 퇴계에게 문목(問目)을 올려 자신의 의문을 여쭈었다.

율곡은 정복심의 〈심학도〉가 의심스러운 곳이 매우 많은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에 나타난 다양한 개념의 위치와 배열에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인심(大人心)이라는 것은 성인(聖人)의 마음으로, 부동심(不動心)이나 종심(從心)처럼 공부를 극진히 하여 획득할 수 있는 것인데, 어떻게 어리석은 사람들도 가지고 있는 본심(本心)과 같이 두어 도심(道心)의 앞에 배치할 수 있는가? 심재(心在)와 심사(心思)는 그 위치가 바뀌었다. 또 맹자가 말한 구방심(求放心)은 공부하는 학자들을 위한 일반적인 말이고, 공자가 말한 극기복례(克己復禮)는 수제자 안연에게 맞추어 말한 아주 정밀한 것이다. 그림과 같은 배치는 그 배열의 바른 맥락을 잃은 것이다. 진심(盡心)은 앎의 문제인데 함양의 맥락에, 정심(正心)은 행동의 문제인데 성찰의 맥락에 배치된 것도 부당하다. 율곡은 이 그림이 중언부언하는 군더더기 말로 별다른 의미가 없으니 취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퇴계는 이 그림에 나오는 개념들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배치된 것으로, 반드시 논리적 인과관계를 통해 배치된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배치의 논리성보다는 실천의 과정에서 서로 상승작용을 하는 실효적인 측면이다, 그것이 성학의 공부에 더욱 유익할 것이라고 퇴계는 율곡을 이해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에 율곡은 흔쾌히 동의하지 않았다. 이미 마음공부에 대하여 율곡은 퇴계와 다른 구도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하나, 마음이다 – [인심도심도]




퇴계의 〈심학도〉에 대한 옹호에도 불구하고 율곡이 부정적인 관점을 제시한 것은 사실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 율곡은 〈심학도〉에서 도심을 보존하기 위해 제시된 육신의 욕망을 막고, 하늘이 준 성품의 선함을 보존하는 두 갈래의 공부법이 마음공부에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곧 [심경]의 첫머리에 제시된 인심도심에 대한 이해와도 맞닿아 있다. 마음공부의 첫 시작인 인심과 도심 문제는 [심경] 전체의 이해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를 가져온다. 조금 더 세심하게 율곡의 문제의식을 따라가볼 필요가 있다.

[심경]의 첫 대목은 인심도심과 관련한 다음의 유명한 말로 시작한다.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니 오직 마음을 정밀하고 한결같이 하여 진실로 그 중(中)을 잡아야 한다.

이 말은 전설적인 임금 요(堯)가 순(舜)에게 말했다는 “진실로 그 중을 잡아야 한다”는 것에, 순이 다시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니 오직 마음을 정밀하고 한결같이 하여”라는 세 마디 말을 보태어 우(禹)에게 전한 것이다. 요(堯)ㆍ순(舜)ㆍ우(禹)로 이어지는 심법(心法)이었던 셈이다. 주희는 이 말을 [중용]의 서문에서 인용하여 거듭 천명함으로써 심학의 연원을 밝힌 말로 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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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이이, 〈인심도심도(人心道心圖)〉
21.7×16.3cm, 율곡전서 해주중간본(1814년),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주자학의 후예 진덕수는 [심경]을 편찬하면서 가장 먼저 주희가 [중용] 서문에서 선언한 말을 제시하여 심학의 연원은 정녕 이 말을 표준으로 삼는다는 뜻을 더욱 강조했다. 마음은 본래 텅 비어 신령하면서도 지각이 있다. 다만 그 마음이 육신의 사사로운 욕망에서 비롯될 때가 있고 하늘이 준 선한 본성에서 비롯될 때가 있어, 때로는 인심이 되고 때로는 도심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육신이 있고, 또 하늘이 준 천성이 있다. 인심과 도심은 누구나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마음속에 뒤섞여 있는 것을 잘 살피고 한결같이 유지하여 항상 도심이 인심을 이기게 해야 한다. 선한 본연의 마음으로 불순한 육신의 욕망을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육신 때문에 생겨나는 인심은 과연 모두 부당하고 부도덕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음식남녀(飮食男女)는 신체를 가진 인간이라면 성인이나 악인이나 간에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주희는 분명 인심과 도심이 인간이 처한 다른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선언하면서도 또 다른 곳에서는 ‘인심과 도심은 양물(兩物)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한 사람의 마음이라는 구체적 실현체는 하나여야 하므로 천리(天理)에 맞으면 도심이고, 정욕(情欲)을 따르면 인심이라는 것이다.

율곡이 가졌던 문제의식은 이런 지점에서 발생한 것이다. 단적으로 율곡의 관점에서 보면 마음에 비롯되는 순수한 동기와 그것이 발현되어 나타난 행위를 천리와 인욕으로 명확히 변별해내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애초에 도심과 인심을 나누기보다는 이 둘을 포괄하는 전제로서 마음[心]의 역할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율곡은 마음을 강조하는 의도를 반영하여 다음과 같은 <인심도심도>를 그려내었다. (그림 4)

이 그림은 1582년(선조 15) 7월에 임금의 교지를 받고 지은 것으로, 인심과 도심의 관계를 그림을 통해 설명한 것이다. 이 그림에서 주의 깊게 볼 것은 성(性)을 동그라미 안에, 기(氣)를 밖에 그리고, 다시 기(氣)와 같은 영역에 심(心)이라는 글자를 크게 표시해놓은 것이다. 마음은 기(氣)로서 드러나는 것이며, ‘성(性)’은 그 안에 내포되어 있다는 뜻이다. 본연의 성품이라 해도 오행(五行)의 기질로 구성된 마음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행동으로 드러날 수 없다. 기의 청탁(淸濁) 정도에 따라 발생하는 도심과 인심, 선과 악이 모두 기의 영역에 속하는 마음을 통과해야만 한다고 보았으니, 결국 그의 견해는 기(氣)를 중시하는 ‘기발일도(氣發一途)’설로 수렴된다고 하겠다. 이는, 인심(人心)은 칠정(七情)처럼 기에서 발생한 것이요[氣發], 도심(道心)은 사단(四端)처럼 이(理)에서 발한 것[理發]이라는 퇴계학파의 주장을 부정한 결과가 된다. 이에 따라 율곡은 경(敬)의 공부를 통해 이(理)를 함양하고자 했던 퇴계와 달리, 잘못된 기질을 바로잡는 실천적인 수양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마음을 그린 뜻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불가(佛家)에서는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한다. 마음의 중요함을 말한 것이다. 문제는 그 마음이 과연 믿을 만하며 항상 선한가라는 것이다. 과거 유가(儒家)의 선현들은 사람의 마음, 본성은 천품(天稟)이므로 선하다는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어리석은 사람에게도 도심은 있다! 물론 육신이 있기 때문에 인심은 없을 수 없지만 그것은 본연의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이겨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덕수의 [심경]은 마음공부를 위해 만든 책이다. 그는 본성을 믿고 확충할 수 있으며 육신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퇴계는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을 아주 지극한 공부라고 생각했다. 그는 마음을 먹을 때 이것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세심하게 살폈다. 그가 학문에 침잠한 만년의 삶은 경건한 구도자의 삶, 그것이었다. 율곡은 마음은 결국 기질에 의해 발휘되는 것이므로 기질을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실적인 수양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했다. 사람마다 기질의 차이는 있지만 악은 본연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잘못은 수양을 통해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현들의 마음공부와 그림을 보면서 재미난 것은 왜 육신과 욕망을 그리 죄악시했을까라는 점이다. 이것은 육체와 욕망을 더할 수 없이 칭송하고, 추구해야 할 가치로 인식하는 요즘의 세태와는 분명 다른 것이다. 새롭다! 물론 유학의 선현들이 중세의 기독교처럼 육신 그 자체를 죄악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다만 육신에서 비롯된 욕망과 마음의 작용, 의지를 문제 삼았다. 욕망이 내재된 육신과 의지의 나태함을 인간의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육신의 욕망을 이기고 본성을 회복하는 것을 늘 삶의 목표로 여겼던 것이다.

육체의 아름다움에 매혹되고 그 실현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마음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자명하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 역시 마음으로 아는 것이다. 육신은 마음을 담는 것이지만 유한하고, 아름다움은 시들고 만다. 마음은 여전히 몸을 움직인다. 때로는 몸의 욕망을 따라 자신을 내려놓기도 하지만 마음은 몸의 지휘관, 의지(意志)가 있다. 중세 수도사들은 마음을 잡아 지킴으로써 몸을 지키려고 했다. 그들은 단순한 생활, 경건한 삶을 통해 자신을 육체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게 함으로 마음을 지켰다. 불교의 수행자들은 육체를 학대하는 고행(苦行)을 통해 그 아래 숨어 있는 형형한 마음의 본모습을 보려 했다.

유한한 몸의 한계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선대의 유학자들은 육신을 조심하면서도 천군(天君), 하늘이 준 나의 마음을 삼가 모시려고 했다. 마음을 다스리면서 자신을 다스렸던 것이다. 그들은 인간 존재의 유한한 현실과 무한한 가능성을 직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태학사와 손을 잡고<한국학, 그림을 그리다>를 연재한다. 그림에 숨은 비밀과 사연을 프리즘으로 삼아 한국학의 출렁이는 바다로 여행을 떠나려는 것이다. 문학, 미술, 음악, 철학, 역사, 문화가 망라되는 항해에 깊고 진한 교감이 깃든 풍성한 바다가 펼쳐지길 해신(海神)에게 기도한다. 연재는 매주 1회 돛을 달고 항구를 떠난다.   14547417616954.jpg  http://www.thaehaksa.com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도서 출간
네이버캐스트에 연재되었던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시리즈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우리 시대 인문학자 32인이 옛 그림을 호명해 되살려낸 한국학 읽기의 색다른 즐거움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함영대 |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성호학파의 [맹자] 해석에 대한 연구로 한국경학 공부에 입문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성호학파의 학문과 일상, 조선 학자들의 [맹자] 해석, 동아시아의 학술 교류, 조선후기 유학자 의식 등을 공부하고 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이해하고, 동학들과 같이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한다. [성호학파의 맹자학]을 비롯하여 〈조선후기 맹자학 연구를 위한 시론〉, 〈조선후기 한일학술교류를 위한 일고〉 등 조선 맹자학과 동아시아 학술 교류를 다룬 저술과 논문이 있다.


발행201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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