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러시아는 유럽인가 아시아인가 -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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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28회 작성일 16-02-0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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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




"지도에서는 같은 공간도 표현하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려지며, 읽는 사람 역시 자신이 가진 세계관을 통해서 지도의 기호를 해독하게 된다."


- 설혜심, [지도 만드는 사람] 서문 중에서



"아시아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대한 대륙의 한 귀퉁이에 위치하고 있는 유럽의 지형은 지금까지 명확한 물리적 경계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특징적 요소가 되지 못한다."


- 조셉 폰타나, [거울에 비친 유럽]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는 어디인가?




이번 글은 초등학교 수준의 문제로 시작하고자 한다. “세계는 몇 개의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암기 위주 교육의 장점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반사적으로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5대양 6대주!” 그렇다. 모두 알고 있는 대로 5대양은 태평양ㆍ대서양ㆍ인도양ㆍ남극해ㆍ북극해이고, 6대주는 아시아ㆍ아프리카ㆍ유럽ㆍ오세아니아ㆍ북아메리카ㆍ남아메리카를 말한다.

그런데 지도를 잘 살펴보자.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는 어느 지점부터 나뉘는가? 흔히 말하는 중앙아메리카 어디쯤이겠지만 중앙아메리카 어디란 말인가? 대답하기 쉽지 않다. 시선을 아메리카 대륙의 오른쪽으로 옮겨 보자.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가 붙어있는 거대한 땅덩이가 보인다. 그런데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는 대체 어디서 선을 그어야 하는가? 누가 내게 자를 주면서 경계선을 그려보라고 하면 시쳇말로 멘붕이 오지 않겠는가?

일반적으로는 보스포루스 해협(마르마라 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해협으로, 터키의 서쪽에 있다)이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라고 일컬어진다. 즉 그리스와 터키를 가르는 해협에서 선을 그어, 북동쪽으로 뻗어 있는 우랄 산맥(러시아의 북에서 남으로 뻗은 산맥)을 경계로 삼는 것이다. 그렇지만 산맥이 있다고 해서 땅이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이렇게 구분하게 되면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보스포루스 해협 바로 동쪽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유럽연합에 가입하려는 터키와 땅덩이의 대부분이 우랄산맥 동쪽에 속하면서도 동유럽의 맹주로 인정받는 러시아의 존재다.

자, 그럼 여기서 한 가지 더 질문을 던지면서 오늘의 주제로 넘어가 보자. 유럽 동쪽 끝자락에서부터 중국을 지나 저 멀리 우리나라의 북쪽까지, 동서로 7,700㎞에 걸쳐 펼쳐진 러시아는 과연 유럽인가 아시아인가?1)

‘유럽’을 지리적 실체라고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 편리한 방법을 택한다. 그 중 하나가 러시아를 ‘European Russsia’와 ‘Asian Russia’로 간편하게 나누어버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방향에서 물음을 던져보자. 러시아 축구 대표팀은 월드컵에 나가기 위해 어느 지역의 예선을 거치는가? 왜 러시아 축구 명문 FC 제니트 팀은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가 아니라 UEFA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는가? 그러므로 이 문제는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보다 복잡한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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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원래 유럽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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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정교회와 서방 가톨릭은 성당의 생김새도 다르다. 서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당보다 화려한 채색이 가미된 러시아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성당(St. Basil’s Cathedral). <출처: (cc) Alvesgaspar at en.wikipe dia.org>


사실 러시아와 유럽은 기독교 문화권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믿는 신만 같을 뿐, 러시아는 서유럽의 가톨릭(Catholic)과는 판이하게 다른 형태의 기독교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의 기독교는 바로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발전해 슬라브 지역으로 퍼져나간 동방정교회(Orthodox)였다.

두 종파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넘기고, 일단 여기서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종파의 사이가 매우 나빴다는 점이다. 이는 서로의 이름만 봐도 유추해 낼 수 있다. 가톨릭은 ‘보편’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온 말인데, 대략 2세기부터 자신들을 제외한 기독교 분파나 이단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별화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 반면 동방정교를 말하는 오서독스는 ‘정통’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다. 다시 말해 둘은 서로가 기독교의 보편이나 정통, 즉 원조임을 자처한 것이다. 잘 알다시피 ‘원조’끼리 만나면 싸움밖에는 일어날 것이 없다는 것은 역사적 진리, 아니 삶의 진리다.

아마도 이러한 갈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1204년에 있었던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이었을 것이다. 무슬림을 믿는 이교도를 처단하라고 공들여 십자군을 보냈더니, 가라는 예루살렘은 가지 않고 동방정교의 본산이었던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다니 말이다. 2)

우리가 4차 십자군이라고 알고 있는 이들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물론 복잡한 정치적 원인과 권력관계, 그리고 경제적 탐욕 등이 뒤얽힌 것이었고, 그 원인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가톨릭과 동방정교는 서로를 이단으로 생각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이나 십자군에 대해서는 토머스 F. 매든의 [십자군]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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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구도이다 보니 동방정교의 문화권에서 오랜 세월 영향을 받아온 차르(Tsar: 슬라브계 국가에서의 군주)를 비롯한 러시아의 통치자들은 당연히 러시아를 유럽과는 별개로 인식하고 있었다. 오히려 오랫동안 러시아의 차르들은 러시아와 판이한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유럽이 자신들보다 미개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3)

사실 지금 러시아라고 부르는 지역의 상당수는 13~15세기 사이에 몽골계인 킵차크 칸국의 오랜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지금의 러시아라고 부를 수 있는 국가의 원형인 모스크바 대공국, 그리고 향후 러시아 제국은 단지 종교뿐만이 아니라 정치ㆍ문화면에서 많은 부분 중앙아시아 혹은 동아시아의 영향을 받았다. 표트르 대제의 개혁 이후의 절대주의가 서유럽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점도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 주제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페리 앤더슨의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에서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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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대제의 근대화 혹은 유럽화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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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개혁군주 표트르 1세. 그는 서유럽의 문물과 제도를 수입해 러시아를 유럽의 강대국으로 만들고자 노력했고, 이때부터 러시아는 스스로 서유럽에 편입되기를 원했다.


유럽보다 우월하다는 러시아인의 믿음과는 달리 러시아는 18세기 초까지도 매우 낙후된 농업국가에 불과했다. 당시에도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니고 있었지만, 부유한 국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러시아의 토지는 대부분 경작물들이 잘 자라지 못할 정도로 척박했고, 농업기술을 발전시키기보다는 농노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구시대적인 농업생산 방식이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러시아 제국의 광활한 영토에서는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그리고 수많은 유목 민족들이 서로 각축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의 황제, 차르는 이들을 억누르며 제국을 유지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은 러시아가 발전하는 데 큰 걸림돌이었다.

이러한 시대에 바람처럼 등장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황제로도 모자라 ‘대제’라는 칭호를 얻은 표트르 대제(Peter I the Great 또는 Pyotr Alexeyevich Romanov, 1672~1725)였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를 유럽의 강국으로 만든 근대화의 영웅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러시아 제국의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나라를 완전히 개조하려고 했다. 앞선 황제들과는 달리 영국이나 네덜란드 같은 서유럽의 강대국들을 여행하면서 이들의 발전상을 눈여겨보았던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가 서유럽 선진국들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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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해 만들어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 궁전.


표트르 대제는 조선 말의 단발령처럼 귀족들의 수염과 복장을 서유럽식으로 바꿀 것을 명했으며, 서유럽의 에티켓을 소개하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게다가 서유럽과의 문물 교류 창구를 만들기 위해 제국의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Sankt Peterburg)로 옮겼다. 발트 해에 면해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한 거대한 ‘여름 궁전’이 세워졌다.

또한 표트르 대제가 서유럽으로부터 배운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상비군 제도의 정비였다. 표트르는 용병제와 귀족들이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군대를 해체하였고,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징병제를 실시하였다. 거대한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징세 규모가 확대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모습들은 서유럽의 다른 군주들이 실시했던 절대왕정 체제와 동일한 형태를 띠는 것이었다.

이어서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 제국의 행정체제를 합리적으로 정비하고, 국가에 항상 맞서왔던 교회를 국가 기관 형태로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개혁들은 러시아를 효율적인 중앙집권적 국가로 탈바꿈시키는 것이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서유럽처럼 급속한 국가발전을 이루기 위한 시도였던 것이다.

이처럼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를 서유럽으로 편입시키고자 노력했던 군주였다. 비록 미개하고 야만적인 형태였던 농노제는 완전히 극복되지 못하였고, 창출된 부는 지주나 소수의 상인 계층에게 편중되었지만, 표트르 대제의 개혁은 이후 세기에 러시아가 유럽의 강대국 중 하나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는 어디인가




이제 독자들은 필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눈치챘을 것이다. 세계지도를 펼치고 5대양 6대주가 어디인지를 물었다가,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물었던 의도를 말이다.4) 사실 러시아가 유럽이냐 아시아냐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으며, 이 글을 통해 굳이 밝혀서 답을 낼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5대양 6대주’에 대해서도 의문부호를 달 수 있다. 바다는 얼마나 커야 대양에 끼는 것이며, 남극대륙이 6대주에 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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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필자가 밝히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구체적인 지리상의 팩트(Fact)라고 받아들이는 유럽과 아시아라는 존재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아시아’, ‘여기부터는 유럽’이라는 식의 지리적 경계는 결코 없을뿐더러, 굳이 경계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들 ‘마음 속’에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마음 속’이라는 표현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란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어디가 유럽이고 어디가 아시아인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믿음은 역사적으로 변해왔던 것이지 고정된 실체는 아니었다. 십자군의 시대 때 지금의 터키에 있는 민족들이 유럽에 속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건 터키 지역에 살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터키는 몇 가지 유보 조건을 제외하고는 유럽연합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나라 중에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오늘의 주제 러시아는 어떤가? 러시아는 현재 당연히 유럽의 강대국 중 하나로 여겨진다. 하지만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러시아는 18세기 말이나 되어서야 스스로 유럽임을 표방하였고, 그제서야 러시아도 유럽이 되었고 서서히 유럽도 러시아를 유럽으로 받아들였다. 5)

물론 유럽이 러시아를 유럽의 일부로 인식하게 된 과정은 별도의 탐구가 필요한 일이다. 필자의 주된 관심 분야가 아니어서 명확히 답을 할 수는 없겠으나, 아마도 1차 세계 대전 시기의 러시아는 유럽의 일원으로서 모자람이 없었겠지만, 냉전 시기의 러시아는 유럽 세계가 부정하고 싶은 세력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 자체가 유럽이라는 것이 명확한 지리적 실체가 아니라, 매우 역사적이고 문화적이며 심리적이기도 한 것이다는 의견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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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때때로 우리가 명확한 지리적 실체라고 생각하는 유럽이나 아시아마저도 의심해 보아야 하는 명제라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가진 믿음, 지식의 전부를 회의해 볼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Richard J. Estes, <Development Challenges of the "New Europe">, [Social Indicators Research], Vol. 69, No. 2 (Nov., 2004), pp. 123-166; Ray Hudson, <One Europe or Many? Reflections on Becoming European>, [Transactions of the Institute of British Geographers], Vol. 25, No. 4 (2000), pp. 409-426; Iver B. Neumann, <“The East” in European Identity Formation>, [Uses of the Other], Series: Borderlines Vol. 9, 1998; E.M. 번즈, R. 러너, S. 미첨, 손세호 역, [서양 문명의 역사], Vol. 3, 소나무, 1987; Anderson, M. S., [Peter the Great], London, 1978; Florinsky, M. T., [Russia: A History and and Interpretation], Vol. 1, 1955; 페리 앤더슨, 김현일 외 역,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 까치,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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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석 | 역사 저술가
글쓴이 김유석은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힌 역사관을 바로 잡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쓰기로 표현하는 것이 목표이다.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1960년대 미국 서남부 치카노 운동의 성격: '친쿠바 혁명주의자'들의 영향을 중심으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빅이슈에 [국기로 보는 세계사]를 연재했으며, 주요 저서로는 [Q&A세계사: 이것만은 알고 죽자](공저, 2010)와 [생각의 탄생: 19세기 자본주의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발행2013.04.12.



주석


1
‘유럽’을 지리적 실체라고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 편리한 방법을 택한다. 그 중 하나가 러시아를 ‘European Russsia’와 ‘Asian Russia’로 간편하게 나누어버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방향에서 물음을 던져보자. 러시아 축구 대표팀은 월드컵에 나가기 위해 어느 지역의 예선을 거치는가? 왜 러시아 축구 명문 FC 제니트 팀은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가 아니라 UEFA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는가? 그러므로 이 문제는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보다 복잡한 것임에 틀림없다.
2
우리가 4차 십자군이라고 알고 있는 이들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물론 복잡한 정치적 원인과 권력관계, 그리고 경제적 탐욕 등이 뒤얽힌 것이었고, 그 원인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가톨릭과 동방정교는 서로를 이단으로 생각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이나 십자군에 대해서는 토머스 F. 매든의 [십자군]을 추천한다.
3
사실 지금 러시아라고 부르는 지역의 상당수는 13~15세기 사이에 몽골계인 킵차크 칸국의 오랜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지금의 러시아라고 부를 수 있는 국가의 원형인 모스크바 대공국, 그리고 향후 러시아 제국은 단지 종교뿐만이 아니라 정치ㆍ문화면에서 많은 부분 중앙아시아 혹은 동아시아의 영향을 받았다. 표트르 대제의 개혁 이후의 절대주의가 서유럽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점도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 주제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페리 앤더슨의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에서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4
‘5대양 6대주’에 대해서도 의문부호를 달 수 있다. 바다는 얼마나 커야 대양에 끼는 것이며, 남극대륙이 6대주에 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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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유럽이 러시아를 유럽의 일부로 인식하게 된 과정은 별도의 탐구가 필요한 일이다. 필자의 주된 관심 분야가 아니어서 명확히 답을 할 수는 없겠으나, 아마도 1차 세계 대전 시기의 러시아는 유럽의 일원으로서 모자람이 없었겠지만, 냉전 시기의 러시아는 유럽 세계가 부정하고 싶은 세력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 자체가 유럽이라는 것이 명확한 지리적 실체가 아니라, 매우 역사적이고 문화적이며 심리적이기도 한 것이다는 의견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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