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옛 그림 속 어머니와 아이 - 한없는 자애로움와 끝없는 그리움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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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69회 작성일 16-02-0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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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끝없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어머니는 문학과 예술 작품 속에서 언제나 한없는 자애로움과 헌신의 상징으로 그려져왔다. 그중에서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모자상은 고대 이집트 시대 때부터 예술의 중요한 소재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자상 가운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탈리아 성 베드로 성당에 보관되어 있는 이 조각상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피에타〉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대에 들어와 모자상은 조각의 형태로, 때로는 그림 작품 속에서 많이 마주칠 수 있다. 예컨대 고달픈 서민의 삶을 그림으로 그렸던 박수근의 작품에는 어린아이와 함께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이에 비해 옛 그림에서 모자상을 그린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조선시대의 혜원 신윤복(申潤福, 1758~?)과 그의 부친 신한평(申漢枰, 1726~?)이 그린 〈아기 업은 여인〉(그림 1)과 〈자모육아(慈母育兒)〉(그림 3)는 부자간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신윤복의 〈아기 업은 여인〉




신윤복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풍속화가이다. 특히 젊은 남녀의 춘정을 소재로 한 그림들은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신윤복의 그림 중에서 〈아기 업은 여인〉은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이 그림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구입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1910년에 일본인 곤도(近藤佐五郞)로부터 일괄 구입한 화첩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 화첩에는 김두량, 김득신, 김후신, 이인문, 변상벽, 그리고 강세황 등의 화가가 그린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신윤복의 그림으로 알려진 것은 〈두 장닭〉과 〈아기 업은 여인〉이다. 이 두 그림에는 모두 흥미롭게도 ‘기알거사(技嶭居士)’라는 사람이 쓴 글이 있다.

〈아기 업은 여인〉에 붙어 있는 작은 쪽지에는 “혜원신가권자덕여(蕙園申可權字德如)”라고 적혀 있다. 신윤복의 본명이 신가권이며, 자는 ‘덕여’임을 밝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윤복은 필명일 가능성이 높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유명한 〈미인도〉 그림에도 ‘신가권’이라는 인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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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신윤복(申潤福), 〈아기 업은 여인〉
조선후기, 종이에 담채, 23.3×24.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아기를 업은 여인이 화면 왼쪽에 위치하고, 오른쪽에는 그림에 대한 감상을 적은 글이 화폭의 3분의 2나 차지하고 있다. 배경은 생략한 채 여인과 아이의 모습만 그렸다. 젊은 여인은 키가 크고 몸매가 날씬하며, 넓고 풍성한 치마에 머리를 올려 꾸미고 있다. 당시 유행하던 짧고 꼭 끼는 저고리 밑으로는 젖가슴을 노출했다. 신분상으로는 여염집 여인이기보다 기생일 가능성이 크다. 등에 업힌 아이는 천진스러운 표정으로 해맑게 웃고 있다. 그런데 아이의 모습과 대비되어 젊은 여인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기생 자식으로 태어난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일까? 입을 다물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여인의 표정에서 그녀의 속마음이 궁금해진다.

이 그림에서 주목할 점은 그림의 중심이 아이를 업고 있는 여인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다음에 볼 김홍도나 신한평의 그림과 다르다. 김홍도나 신한평의 모자상은 앉아서 어린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생활 속의 한 정경으로 묘사하였다. 이들 그림에서는 일상생활 속의 한 장면으로 어린아이와 어머니가 등장하고 있는 데 비하여, 신윤복의 그림은 여인의 모습 그 자체에 주목하였다.



기알거사가 쓴 감상 글




이 그림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그림 속에 적혀 있는 감상 글이다.

동파옹(東坡翁, 蘇軾)이 당나라 화가 주방(周昉)의 그림 〈얼굴을 돌리고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는 궁녀(背面欠伸內人)〉를 보고 깊이 빠져서는 돌아와 〈속여인행(續麗人行)〉을 지었다. 주방의 그림을 보고 〈속여인행〉을 지은 것처럼 지금 머리 돌린 아리따운 모습을 보고 〈속여인행〉 같은 글을 다시 짓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하물며 등에 업힌 어린아이는 주방의 그림에 없는 것이며, 정취가 그윽하고 은근하며 붓 너머에 신운이 있음에서랴. 주방의 그림을 이 그림과 견주어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겠다. 기알거사가 보다.



坡翁見周昉畵背面欠伸內人, 心醉歸來, 賦續麗人行. 恨不今見此回首嫣然之態, 復作麗人行如昉畵也. 況又背上小兒, 昉畵之所無, 而風致幽婉, 有筆外神韻. 未知昉畵較此, 復如何. 技嶭居士觀.


기알거사가 어떤 인물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기록은 없지만, 신윤복의 다른 그림에도 글을 남기고 있어 두 사람의 관계가 흥미를 끈다. 기알거사는 신윤복의 〈아기 업은 여인〉을 당나라 때 궁정화가로 활약했던 주방(周昉, ?~?)의 미인도와 대비시켰다. 감상의 포인트를 주방의 미인도와의 상호 대비에 두었다. 주방은 여인(麗人), 즉 귀족의 부녀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인물화를 잘 그린 화가이다. 특히 그의 화풍은 농염하고 풍만한 여인의 자태를 표현하는 데에 특장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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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주방(周昉), 〈잠화사녀도(簪花仕女圖)〉 부분
당대(唐代), 비단에 채색, 46×180cm, 중국 요령성박물관 소장.



주방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잠화사녀도(簪花仕女圖)〉에 묘사된 여인은 화려한 의상을 입은 귀족 부인이다.(그림 2) 머리 모양, 의상, 꽃무늬 장식, 화장, 동작 등에서 당시 귀족 부인들의 유행 패턴을 엿볼 수 있다. 얇고 투명한 옷 속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여인의 몸매는 관능적이다.

소식(蘇軾)이 지은 〈속여인행(續麗人行)〉은 귀족 부인의 용모와 자태를 잘 그린 주방의 그림들 중에서 〈얼굴을 돌리고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는 궁녀〉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소식은 〈속여인행〉 서문에서 “이중모(李仲謀)의 집에 주방이 얼굴을 돌려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는 궁녀를 그린 그림이 있는데 지극히 정묘하여 장난삼아 이 시를 짓는다”고 하였다. 소식은 양귀비와 귀족 부인들이 곡강(曲江)에서 노니는 광경을 묘사한 두보의 〈여인행〉을 본떴지만, 등을 보이고 서서 하품을 하는 미인을 작품 속 인물로 설정하여 〈속여인행〉을 창작했던 것이다. 두보의 〈여인행〉이 어지럽고 혼란한 시대 현실을 풍자하여 지은 시인 데 비해, 소식의 작품은 막 잠에서 깨어나 흐트러진 매무새로 기지개를 켜는 미인의 모습으로 시상을 전환시켰다.

잠에서 막 깨어난 미인의 자태를 소재로 한 미인도는 많다. 그러한 그림을 보고 감상을 적은 문인들의 제화시(題畵詩) 또한 문집들에 간간이 보인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이규보는 〈서학록이 화답한 시에 다시 차운하여 답하다(徐學錄見和, 復次韻答之)〉에서 “그대 보지 못했는가, 꾀꼬리 울고 제비 춤추는 깊숙한 궁 안에서 / 미인이 기지개 켜며 잠에서 막 깨어난 모습을(君不見鶯啼鷰舞深宮裏, 美人欠伸初睡起)”이라고 하였다. 미인도에 붙인 시들 가운데에서 이처럼 잠에서 깬 아름다운 미인의 모습을 노래한 작품이 여럿 보인다. 19세기 전반의 대표적 문인이자 서화가인 신위(申緯) 또한 미인도에 붙인 시를 많이 남겼다.

그런데 주방의 그림에서는 미인이 등을 돌리고 있다. 기알거사는 비스듬하게 서서 아이를 업고 있는 여인을 주방이 그린 ‘등을 보이고 기지개를 켜는 미인’에 견준 것이다. “고개를 돌린 아리따운 모습”은 소식의 〈속여인행〉에 나오는 구절인데, 이를 활용해서 신윤복 그림에 감상 글로 표현한 것이다.



고개 돌린 미인들 : 배면미인도(背面美人圖)의 행간




미인도 계열의 작품 중에서 등지고 얼굴을 돌린 채 서 있는 여인을 소재로 한 그림은 당나라 때 처음 등장했다. 그 후로 주방의 그림과 소식의 〈속여인행〉의 영향을 받아, 등을 보이고 서 있는 미인을 소재로 한 그림, 이른바 ‘배면미인도(背面美人圖)’에 붙인 제화시가 다수 창작되었다. 고계(高啓)의 〈배면미인도〉, 사진(謝榛)의 〈제배면미인도(題背面美人圖)〉, 청나라 때 시인 조익(趙翼)의 〈제주방배면미인도(題周昉背面美人圖)〉 등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명나라 때 고계가 지은 시를 들면 다음과 같다.


불러서 돌아보게 하려도 이름을 모르는데欲呼回首不知名
봄바람 등지고 서 있으니 그 정 어느 만큼일까?背立東風幾許情
화공은 앞모습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 마라莫道畵師元不見
미인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그리기 어렵다네.傾城雖見畵難成


시의 제목처럼 얼굴을 돌리고 서 있는 미인을 소재로 하였다. 묘사의 초점은 등을 보이고 고개 돌린 미인의 모습을 통해 감상자에게 보이지 않는 모습을 상상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 미인을 자세히 그리기보다는 오히려 뒤태를 조금 보여줌으로써 그 아름다움을 자유롭게 상상하도록 한 것이다.

다시 신윤복의 그림으로 돌아오면, 기알거사가 쓴 글에서 아기 업은 여인의 모습을 주방의 미인도에 견주었다. 신윤복의 다른 그림에서 보이는 여색의 느낌도 감지되지만, 주방의 미인도와 달리 신윤복은 어린아이를 업고 있는 여인을 묘사했다.

이 그림에는 “정취가 그윽하고 은근하며 붓 너머에 신운이 있”다고 하였는데, 아마도 이 점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어린아이의 해맑은 표정과 대비되어 젊은 여인은 비스듬하게 서서 차분하고 단단하게 응시하고 있다.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보듯 정면을 보고 매혹적인 웃음을 짓고 있는 여인의 농염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아기를 업은 여인’의 자태에도 매혹적인 면이 일부 있으나,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에서 아이와 함께 앞날을 살아가고자 하는 젊은 여성의 굳은 의지를 읽게 된다.



신윤복의 부친 신한평이 그린 〈자모육아(慈母育兒)〉




신윤복의 부친 신한평의 그림 중에 〈자모육아〉 또한 모자상을 담고 있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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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신한평(申漢枰), 〈자모육아(慈母育兒)〉
조선후기, 종이에 담채, 23.5×31cm, 간송미술관 소장.



작은 크기의 이 그림 속에 배경은 그려져 있지 않고, 어린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여성과 두 아이의 모습을 화면 우측 하단에 배치하였다. 그 왼편 위쪽으로 신한평의 호 ‘일재(逸齋)’가 적혀 있다. 화면 속 여성은 두 아들과 딸을 키운 중년의 어머니이다. 어린 아기는 젖을 물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다른 젖을 만지고 있다. 아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여성의 따뜻하고 평화로운 얼굴에서 어머니의 자애로운 사랑이 느껴진다.

어머니 오른쪽에서 울고 서 있는 형은 동생에게 사랑을 빼앗긴 것을 투정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이와 대조적으로 나이가 제일 많은 누나는 이제 다 컸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놀고 있다. 실제로 신한평은 신윤복과 신윤수 두 아들과 외동딸을 두었다. 눈물을 훔치고 서 있는 아이가 신윤복으로 추정된다. 이런 점에서 〈자모육아〉는 가족의 생활상을 스냅 사진으로 찍어놓은 것처럼 읽힌다. 이 그림의 어머니는 신윤복의 그림과 비교해볼 때 나이도 많고 연륜도 있는 중년의 모습이다. 세상 풍파를 이겨내며 어린 자식들을 소중하게 기르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상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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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김홍도(金弘道), 〈점심〉
조선후기, 종이에 담채, 27×22.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신한평의 이 그림은 젖을 먹이는 여인의 모습을 생활 속의 한 단면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김홍도의 풍속화첩에 나오는 〈점심〉과 일맥상통한다.(그림 4)

김홍도의 이 그림은 일꾼들이 모여 점심 먹는 장면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식사하는 일꾼들의 표정과 동작이 하나하나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점심을 내온 한 아낙네가 어린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장면이다. 점심밥을 담아 이고 온 광주리가 앞에 놓여 있고, 두 아이 중에 하나는 혼자 밥을 먹고 있고, 다른 아이는 젖을 물고 있다. 이 그림과 앞서 본 신한평 그림의 공통점은 앉아서 어린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생활의 한 정경으로 담아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신윤복의 〈아기 업은 여인〉은 생활 풍속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여인의 모습을 전면에 내세웠다. 일종의 미인의 초상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인도〉와 달리 아기를 업고 있으며 비스듬하게 서서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모습을 그린 작품은 현대에 들어와 박수근 (朴壽根, 1914~1965)에 의해 한국적 정서를 담아낸 예술로 재창조된다. 한국의 대표 국민 화가로 불리는 박수근은 서민의 고달픈 삶을 특유의 두껍고 투박한 질감으로 표현하였다. 평생 가난하게 살면서 서민의 일상을 소재로 하여 그린 그의 그림에는 주로 아낙네의 삶, 어린아이, 그 시대의 생활상 등이 많이 다루어졌는데, 특히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고 있는 장면을 담아낸 〈모자(母子)〉라는 작품은 그 같은 박수근의 회화 세계를 대표한다. 박수근은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젖을 물고 있는 아이와 그 아이를 따뜻하게 내려다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진실하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박수근의 〈모자〉는 한국적 미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이다.



젖을 물리는 내 아내의 모습




신한평과 신윤복의 그림에서 어린아이와 여인의 젖가슴은 모성애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여성의 모습에서 강한 모성애를 느낄 수 있다. 문학 작품에 보이는 이와 유사한 장면을 하나 들어본다.


당신이 죽던 날 까칠까칠한 목소리로 울음소리 삼키다가 迨汝死日 舌澁聲嘶
내 손을 당기며 마치 무슨 할 말이 있는 듯猶摻我手 若有所□
말을 할 듯 끝내 아무 말 못 하고 눈을 크게 뜬 채 머뭇머뭇將吐未吐 張目遲遲
슬프게 울지 않은 건 내가 더 슬퍼할까 걱정해서라네.然不敢哭 恐我增悲
고개 돌려 포대기를 보더니 아이를 힘겹게 안고서顧視襁褓 僶勉一提
가슴에 품고 젖을 물렸는데 그 모습 슬프고 참담하였다오.提卽就乳 哀傷慘悽
이렇게 영영 이별하게 될 줄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소?疇謂一訣 竟至於斯
아아! 이 아픔, 어찌 차마 말로 다 하리오?嗚呼 痛可忍言哉
 
(……)
 
저승 세계는 그을음처럼 칠흑일 터이니九原之下 深黑如煤
비춰줄 등불도 없고 같이 있을 사람도 없겠지요.無燈可燭 無人可陪
인연이 끝나지 않았다면 저승에서 다시 만나리라.緣或未盡 再見泉臺
마음만은 끊어지지 않아 꿈에 자주 보인다오.情或未斷 數入夢來
응애응애 갓난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당신의 모습嘵嘵弱嬰 尙汝14547418547780.png
지금 나는 아이를 안고 밥도 먹이며 걸음마도 시키고 있소.我抱而飼 我提而步
묵정밭이 조금 남아 있고, 집과 마당과 채마밭도 있으며亦有薄田 室廬場圃
당신이 입던 옷가지도 남아 있으니亦有遺衣 帔袿襦袴
갓난아이가 크게 자라면 그걸 전해주려고 하오.竢長成日 計數交付


조선후기의 실학파 문인 이학규(李學逵, 1770~1835)는 24년이라는 오랜 동안 경상도 김해 지방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이 기간 중에 부인을 잃은 이학규는 그 후 유배지 이웃 마을의 진양 강씨를 맞아 5년을 함께 살았다. 강씨 부인은 사대부가 여성이 아니라, 혈혈단신 고단하게 살아가던 김해 지방의 하층민이었다. 그녀는 기나긴 유배생활로 암담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학규를 극진한 정성으로 보살폈고, 헌신적으로 가사를 돌보았다. 첫째 부인을 잃고 어머니마저 여읜 후 슬픔과 절망감 속에 살아가는 이학규에게 진양 강씨는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윤이 엄마를 애도하며 지은 이 글(哭允母文)은 자신을 위해 고생한 윤이 엄마, 즉 진양 강씨 아내에 대한 애틋한 정을 숨김없이 말하고 있다. 그녀의 고생스러웠던 삶, 정성 어린 내조, 출산 후 목숨이 다해가는 마지막 모습, 어둠을 무척이나 무서워한 성격 등을 이야기하며 아내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감정을 절절하게 드러냈다. 특히 그녀가 숨을 거두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갓 태어난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 묘사에서는 작자의 슬픔이 극도로 고조된다. “고개 돌려 포대기를 보더니 아이를 힘겹게 안고서 / 가슴에 품고 젖을 물렸는데 그 모습 슬프고 참담하였다오”라고 하여, 갓난아기에게 젖을 물리며 숨을 거둔 진양 강씨의 마지막 순간을 극적으로 포착했다. 강한 모성애의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채용신이 그린 아기 안은 어머니, 〈운낭자상(雲娘子像)〉




아기를 업고 있는 여인을 소재로 한 또 다른 그림으로 〈운낭자상〉이 있다.(그림 5) 고종 때 어진(御眞) 제작에 참여하는 등, 구한말에 뛰어난 화가로 활동한 채용신(蔡龍臣)의 작품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운낭자는 평안도 가산 관아에 소속된 기생으로, 이름이 최연홍(崔蓮紅)이다. 그녀의 의로운 행적에 대해 박윤묵(朴允黙), 정원용(鄭元容), 이유원(李裕元) 등이 한시를 지어 칭송했으며, 홍석주(洪奭周)와 성해응(成海應) 등의 기록에도 보인다. 유재건(劉在建)이 쓴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의 기사를 옮겨본다.

연홍의 처음 이름은 운낭으로, 평안도 가산 관아에 소속된 기생이다. 가경 신미년(1811, 순조 11) 겨울에 평안북도의 도적 홍경래가 군사를 일으켜 가산을 쳐들어왔다. 군수 정시가 붙잡혔지만 굴복하지 않고 죽임을 당했다. 군수의 아버지와 아우 정신도 같은 때에 해를 입었다. 당시 연홍은 군수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적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관아에 알렸다. 그날 밤 적이 쳐들어와 흉포한 칼날을 휘둘렀다. 연홍은 관아와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다. 밤이 깊어 적이 흩어지자 가서 살펴보니 군수의 아우는 상처를 입었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 집으로 업어다가 보살펴서 목숨을 살렸다. 또한 박생과 함께 자산을 기울여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군졸을 모집하여 군수 부자의 시신을 거두어 염습하고 빈소를 차렸다. (……) 초상화를 그려서 의열사에 배향하게 했다. 의열사는 계월향을 받들어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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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채용신(蔡龍臣), 〈운낭자상〉
1914년, 종이에 담채, 120.5×6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운낭은 기생의 몸으로, 홍경래 난이 일어났을 때에 평안도 가산군 군수로 있던 정시와 그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 지내고 부상당한 군수의 동생을 치료해주었다. 그때 운낭의 나이가 27세였다. 그림 제목이 ‘운낭자 이십칠세상(雲娘子二十七歲像)’인 것은 이 때문이다. 조정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운낭을 기적에서 빼주어 자유의 몸이 되게 하였으며, 그녀가 죽은 뒤에는 초상화를 그려 평양 의열사에 봉안하였다. 운낭자는 임진왜란 때에 의기(義妓) 계월향(桂月香, ?~1592)의 후예인 셈이다. 계월향은 평양성이 왜군에게 함락된 후 적장의 부장에게 몸을 더럽히게 되자, 평안도 병마절도사 김응서로 하여금 그의 머리를 베게 한 뒤 자결한 인물이다. 계월향의 초상화를 그려 의열사에 봉안하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운낭자상〉의 화면 오른쪽에는 ‘雲娘子二十七歲像’이라고 쓰여 있다. 1914년에 제작된 이 그림은 운낭자의 27세 때 모습을 상상하여 그린 초상화이다. 따라서 실물과 닮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연미색 저고리에 옥색 치마를 입고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은 기품 있게 그려져 있다. 옷 주름 묘사에서는 엷은 먹을 반복적으로 칠해 입체감을 나타내려 했는데, 이는 서양화법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리고 기름을 바른 머리칼은 한 올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빗겨져 있다. 아기를 앞으로 안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은 전체적으로 정숙하고 경건하다. 아주 밝은 얼굴에는 그늘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벌거벗고 있는 아이는 통통한 얼굴에 구슬을 쥐고서 환히 웃고 있다. 서양 기독교의 성모자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시신을 수습하고 부상당한 사람을 치료했던 의기의 초상화를,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린 점이 흥미롭다. 채용신의 〈운낭자상〉은 실제 사람에 가깝게 그리려는 전통 초상화와 달리 이상적인 여인상을 투영시킨 모자상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기생인 운낭자를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재창조한 것은 국권을 빼앗긴 시대 상황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어린아이의 양육을 담당한 어머니의 존재가 크게 부각되던 당시의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이다. 이후 1930년대에 들어와 모자상은 미술 작품에 자주 등장하게 된다.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를 말할 때면 우리는 한석봉의 어머니를 떠올리거나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고사를 생각한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때로는 엄격하기도 하지만 자애롭고 따뜻하며 넉넉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사랑, 평화, 구원을 상징하는 어머니상은 동서고금을 통해 문학의 영원한 소재이며 변치 않는 창작의 원천이기도 하다.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태학사와 손을 잡고<한국학, 그림을 그리다>를 연재한다. 그림에 숨은 비밀과 사연을 프리즘으로 삼아 한국학의 출렁이는 바다로 여행을 떠나려는 것이다. 문학, 미술, 음악, 철학, 역사, 문화가 망라되는 항해에 깊고 진한 교감이 깃든 풍성한 바다가 펼쳐지길 해신(海神)에게 기도한다. 연재는 매주 1회 돛을 달고 항구를 떠난다.   14547418558348.jpg  http://www.thaehaksa.com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도서 출간
네이버캐스트에 연재되었던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시리즈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우리 시대 인문학자 32인이 옛 그림을 호명해 되살려낸 한국학 읽기의 색다른 즐거움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정우봉 |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선시대 산문과 미학사가 주된 관심 분야이다. 최근에는 조선시대 일기와 일기문학에 나타난 개인의 일상에 대해 공부하고 있으며, 아울러 조선시대 여행문학과 여행문화에 대한 연구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아침은 언제 오는가] 등의 저역서를 출간했으며, 〈조선시대 국문일기문학의 시간의식과 회상의 문제〉, 〈조선후기 유기(遊記)의 글쓰기 및 향유방식의 변화〉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발행201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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