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유니언 잭에 담긴 이야기 - 영국 국기 속 십자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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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02회 작성일 16-02-0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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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언 잭 안의 십자가는 몇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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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왕국(United Kingdom), 정식 명칭은 ‘대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를 포함하고 있다.


영국을 이야기하고자 하면 항상 고민에 빠진다. 왜냐하면 ‘영국(英國)’은 ‘England’를 한자로 음차한 ‘英吉利’에서 비롯된 말이기 때문이다. 즉, 영국이라는 말은 잉글랜드만을 말할 뿐, 이 단어가 그 외의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를 포함하는 말은 아닌 것이다.

사실 영국의 본래 이름을 대자면 ‘대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thern Ireland)’이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기나긴 정식 명칭 대신 우리에게 친숙한 영국을 사용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로 분리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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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국기, 유니언 잭. 왕국을 형성하는 잉글랜드의 성 조지 십자가, 스코틀랜드의 성 안드레아 십자가,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 십자가를 조합하여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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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1세 통치기인 1606년 처음 만들어진 유니언 잭에는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붉은색 ‘X’자형 십자가가 없었다.



오늘의 주제는 영국의 국기, ‘유니언 잭(Union Jack)1)’이다. 유니언 잭은 1603년, 상속에 의해 잉글랜드 땅을 물려받으면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통합 통치자가 된 제임스 1세(James Ⅰ, 1566~1625)로부터 유래되었다. 이때의 ‘대브리튼 왕국’(Great Britain)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유니언 플래그(Union Flag)’, 즉 유니언 잭인 것이다. 물론 이때는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붉은색 'X'가 없는 형태였다. 이후 1801년, 법적으로 대브리튼과 북아일랜드가 정식으로 합병되면서 지금의 ‘유니언 잭’이 탄생했다.

왜 ‘잭(Jack)’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사실 뱃머리에 국적을 구분하기 위해 다는 선수기를 영어로 ‘잭’이라 부르기 때문에, 섬나라로서 선박 및 항해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영국의 상황에서 깃발을 ‘잭’이라고 부르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본래 수병이나 뱃사람을 칭하는 말 또한 ‘잭’ 이다. 게다가 ‘잭’은 ‘제임스’를 친근하게 부르는 애칭기도 하다. 이는 아마도 이 국기를 처음 만들어 사용하게 된 제임스 1세와도 관련이 있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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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구성하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합쳐져 만들어진 게 유니언 잭이라는 사실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는 왜 십자가를 상징으로 삼은 것일까? 그리고 그 유래는 무엇일까?



잉글랜드를 상징하는 성 조지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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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바탕에 빨간 십자가의 잉글랜드 국기(왼쪽)과 그루지야 국기(오른쪽). 모두 성 조지의 십자가를 가지고 만들었다.


하얀 바탕에 빨간 십자가, 즉 잉글랜드를 상징하는 십자가는 바로 성 조지(St. George, 275?~303)의 십자가다. 잉글랜드는 오랫동안 성 조지를 수호성인으로 삼아왔는데, 사실 성 조지를 수호성인으로 섬긴 곳은 잉글랜드만이 아니었다. 그루지야, 모스크바, 밀라노 역시 성 조지를 자신들의 수호성인으로 삼았다. 밀라노의 경우 밀라노의 축구팀인 AC 밀란의 엠블럼에서도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성 조지가 실존 인물인지도 의문스러운 초기 기독교의 순교자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성 조지에 대한 일화를 살펴보면, 마치 한 편의 무협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옛날에 리비아 근처의 작은 왕국에 흉포한 용이 나타나서 매일 여자들을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했다. 용을 두려워한 국왕은 매일 젊은 여자들을 제물로 바쳤고, 이윽고 왕국의 공주가 제물로 바쳐질 순서가 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듣고 바람과 같이 등장한 백마 탄 왕자가 바로 조지였다. 그는 용맹하게 용의 굴로 쳐들어가 긴 창으로 용을 제압하고 공주를 구출했다. 흥미롭게도 조지는 용을 바로 죽이지 않고, 공주의 허리띠로 용을 묶어 왕국으로 데려왔다. (혹시 용이 아니라 도마뱀이었을까?)

공주와 용을 데리고 왕국에 온 조지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용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음을 설파하며, 왕국의 모든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요구했다. 당연히 영웅 조지의 요구는 쉽게 받아들여졌고, 선교의 사명을 다한 조지는 그제야 칼로 용을 베어버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후 조지는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재위: 284~305)의 박해로 순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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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시의 깃발. 용을 공격하는 것으로 보아 이 기사가 성 조지임을 알 수 있다.





십자군의 기사들. 십자군에 참여한 기사들을 그린 당시의 그림을 보면, 많은 기사들이 성 조지의 십자가를 갑옷과 방패에 새긴 것을 볼 수 있다.




성 조지의 일화를 살펴볼 때 특이한 점은 첫째, 유럽이 아니라 중동 지역인 리비아가 등장한다는 것과 둘째, 용을 죽이지 않고 굳이 왕국에 데려와서 주민들이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볼 때, 성 조지의 일화는 무슬림과의 종교 갈등이 심화되었던 중세 십자군 시기의 기사들의 이야기가 수많은 이들의 각색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십자군 원정 당시 각국의 기사들은 십자가 문양을 갑옷과 방패에 새기고 무슬림과의 전투를 벌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했는데, 이때 십자군을 보호하고 무슬림들을 물리칠 힘을 준다고 여겨진 상징도 바로 성 조지의 십자가였다.

또한 용이라는 존재는 이방의 세계에 사는 이질적 생명체로서, 유럽 외부의 존재인 무슬림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즉, 이 전설은 결국 기독교의 힘이 이슬람교를 물리칠 것이라는 믿음을 전설로 형상화시킨 것일 게다. 바로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성 조지는 성인으로 추대되어 오랫동안 중세 여러 나라와 왕가의 수호성인으로 자리잡았고, 잉글랜드의 왕실도 그중 하나였던 것이다.



스코틀랜드,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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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국기. 푸른 바탕에 ‘X’자 형의 흰 십자가를 상징으로 삼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푸른 바탕에 ‘X’자 형의 흰 십자가를 상징으로 삼고 있다. 이 십자가는 성 안드레아(St. Andrew)의 십자가라고 하는데,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안드레아는 우리에게 특히 베드로의 동생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우리가 현재 읽을 수 있는 성경에는 예수의 사후 안드레아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안드레아는 예수의 사후 유럽 전역을 다니며, 스승이 남긴 선교의 사명을 위해 온 힘을 다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안드레아 역시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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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El Greco), <성 안드레아와 프란체스코(St. Andrew and St. Francis of Assisi)>
1604년경, 캔버스에 유채, 113 x 167 cm, 프라도 미술관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마치 베드로가 자신은 감히 예수처럼 똑바로 십자가 처형을 받을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거꾸로 매달아줄 것을 부탁했던 것처럼, 안드레아는 자신을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매달아주기를 부탁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의 요청대로 그렇게 순교했다.

'X'라는 것은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단어(Χριστός , 크리스토스)의 첫 글자였기 때문에 안드레아가 그렇게 요구했다고 하는데, 사실 베드로의 요청만큼 개연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것은 후세에 그의 순교를 돋보이게 만들고자 했던 이들이 각색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이후 중세 유럽의 성화가들은 안드레아를 그릴 때, 그를 'X'자 형태의 십자가에서 처형된 형태로 기억하며 형상화했다. 그런데 왜 굳이 이 안드레아의 십자가가 스코틀랜드의 상징이 된 것일까?

이 맥락에서 또 하나의 전설이 등장한다. 브리튼 섬의 원주민 격이었던 스코트족의 위대한 왕 앵거스 2세(Óengus II, 재위: 820~834 추정)는 832년, 대륙에서 이주해 온 앵글족과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수적 열세에 몰려 고전하던 앵거스는 안드레아의 이름으로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를 올리며, 만약 전쟁에서 이기게 되면 안드레아를 평생 수호신으로 섬기겠다고 다짐했다.

다음날 전투가 벌어졌을 때 앵거스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이 안드레아의 상징인 ‘X’자 모양으로 변했던 것이다! 용기백배한 앵거스와 스코트족은 앵글족을 크게 물리치고 평화를 가져오게 되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이지만, 스코틀랜드는 아마도 스코틀랜드인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오래전 기원을 끌어와야만 했던 것이 아닐까?



북아일랜드와 성 패트릭, 그리고 세 잎의 토끼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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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잎 클로버를 들고 있는 아일랜드의 수호성인 성 패트릭. <출처: (cc) Andreas F. Borchert at en.wikipedia.org>





성 패트릭 기사단 훈장. 아래 펜던트에 보이는 붉은 십자가와 토끼풀이 아일랜드를 상징하고 있다.




오랫동안 독립된 섬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왔던 아일랜드는 현재 영국에 포함된 북아일랜드(북부 6개 주)를 제외한 나머지 아일랜드(26개 주)만이 독립된 공화국이다. 일찍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식민 정책이 이루어졌던 북아일랜드에 관련한 역사, 그리고 북아일랜드를 둘러싼 아일랜드와 잉글랜드의 최근까지의, 혹은 지금도 끝나지 않은 분쟁도 꼭 다뤄보고 싶은 주제이지만 나중을 기약하기로 하자.

아무튼 북아일랜드는 ‘유니언 잭’에서 붉은색 ‘X’자형 십자가로 가세했다. 이 십자가는 또 한 명의 성인인 성 파트리치오(St. Patrick, 387?~493?), 영어로 성 패트릭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으로, 초록색의 세 잎 토끼풀이라는 상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네 잎도 아니고 세 잎 토끼풀이 상징인 까닭은 패트릭이 아일랜드 주교로 오면서, 켈트 다신교를 믿었던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삼위일체설을 설명하기 위해 토끼풀을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성 패트릭의 날 (St. Patrick's Day)’이라는 아일랜드 전통 축제 때는 사람들이 온통 토끼풀색을 상징하는 초록색 옷을 입거나 리본을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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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동안 아일랜드를 통치했던 킬데어 백작 가문의 문장에는 붉은색 ‘X’자형 십자가가 있다.





아일랜드인들이 주축이 되었던 이베르니아 연대의 깃발. 깃발의 붉은 ‘X’자형 십자가가 버건디 십자가다.




그래서 사실 아일랜드가 왜 ‘붉은’ X자형 십자가를 깃발의 상징으로 삼았는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의 십자가와 같은 전설을 찾을 수는 없지만, 연구자들은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첫 번째는 오랫동안 사실상 아일랜드의 통치자와 다름없었던 킬데어 백작 가문(Earls of Kildare)의 문장이 바로 붉은 ‘X’자형 십자가라는 것이다. 오랜 기간 이어진 이 가문의 통치로 인해 킬데어 백작의 문장이 아일랜드의 상징으로 연결되었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아일랜드는 근대 초기 가톨릭의 맹주였던 스페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잉글랜드의 침략에 저항했는데, 이때 스페인이 제국의 깃발로 삼았던 상징 중의 하나가 ‘버건디(Burgundy, 부르고뉴) 십자가’, 즉 하얀색 바탕에 붉은 ‘X’자형 십자가였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18세기 초반 스페인 군대에 아일랜드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이베르니아 연대(Regiment of Hibernia)’라는 병력이 있었는데, 이들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 버건디 십자가를 사용한 깃발을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붉은색의 ‘X’자형 십자가가 왜 굳이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이었던 성 패트릭과 결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결여하고 있다. 다만, 성 패트릭 기사단과 그 기사단의 일원에게 주어지는 훈장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상징으로서 토끼풀과 붉은 십자가를 함께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 최초 연관성을 유추해볼 수 있을 따름이다.



웨일스는 왜 빠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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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의 국기. 웨일스는 13세기부터 잉글랜드에 병합된 상태였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쯤에서 한 가지를 알아챘을 것이다. 잉글랜드의 서부에 위치한 웨일스는 왜 언급되지 않느냐는 사실이다. 왜 웨일스의 상징은 ‘유니언 잭’에 형상화되지 않았을까? 유니언 잭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영국이 ‘하나의 영국’이 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을 때 만들어졌다. 즉 스코틀랜드도, 아일랜드도, 모두 유니언 잭의 이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물론 그 시도가 지금 시점에서 성공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웨일스는 이미 13세기라는 이른 시기에 잉글랜드에 의해 병합된 상태였다. 스튜어트 왕조 이전 시기인 튜더 왕조 때부터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이미 잉글랜드의 일부로서 자리 잡았던 것이다.2)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웨일스 공(Prince of Wales)이다. 14세기부터 웨일스 공은 잉글랜드와 브리튼, 현재는 연합왕국의 왕위 계승권을 가진 왕세자가 임명되는 것이 관례였다.3) 현재는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맏아들인 찰스가 웨일스 공이다.

잉글랜드 왕실의 관례 중 하나는 왕위 계승권을 가진 왕세자를 웨일스 공으로 임명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엘리자베스 2세의 맏아들인 찰스가 웨일스 공이다. 이러한 예는 그만큼 웨일스가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이미 잉글랜드에 복속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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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인 정치체로서의 웨일스 공이 아니라, 잉글랜드의 상속자가 갖는 권리로서 웨일스 공이 임명된 것은 1301년 에드워드 1세 때부터의 일이다. 이후 웨일스 공은 잉글랜드, 그리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의 왕위를 물려받는 왕세자가 공식적으로 취하는 권리 및 명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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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웨일스만의 민족주의적인 활동, 문화 등은 그 후로도 끊임없이 유지되고 지켜졌으며, 만들어지기도 했다.4) 그렇지만 유니언 잭이 만들어질 당시 잉글랜드에서는, 아니 최소한 왕실만큼은 웨일스를 당연히 잉글랜드의 일부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유니언 잭에는 웨일스의 상징이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영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는 흐름 속에서 웨일스, 스코틀랜드 등이 각기 스스로의 문화와 전통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함께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서는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을 일독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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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단순해 보이는 유니언 잭에는 영국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유니언 잭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의 각기 다름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욕망이 담긴 국기다. 한때는 아일랜드와 브리튼 섬뿐만 아니라 저 멀리 태평양과 오세아니아까지 유니언 잭을 펄럭이던 영국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축구나 럭비, 크리켓 국가대항전을 할 때에 각각 다른 국가로 참여하며 정체성을 구별하는 것도 영국의 또 다른 모습이다.

여왕의 요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잉글랜드 국가 대표팀에서 뛰기를 거부하고 웨일스 국가 대표만을 고집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축구 선수 라이언 긱스(Ryan Giggs). 그러나 그가 마음을 돌려 2012년도에 드디어 영국 통합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했던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국가를 부르는 것은 거부했던 일. 이러한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역사와 문화의 통합이라는 것은 국기를 하나로 그려낸다고 끝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의 몫이 될지도 모르는 북한과의 관계 정립이 걱정된다는 것. 이러한 걱정은 단지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참고문헌

http://www.royal.gov.uk; http://www.know-britain.com/general/union_jack.html; http://www.stgeorge.org.mt/page.asp?id=12; Fox-Davies, Arthur Charles, [The Art of Heraldry: An Encyclopaedia of Armory], Bloomsbury Books, 1986; Bartram, Graham, [British Flags & Emblems], Tuckwell, 2005; William Caxton, F.S. Ellis, ed., [The Golden Legend: or Lives of the Saints as Englished], 1900; 에릭홉스봄 외, 박지향, 장문석 역, [만들어진 전통], 휴머니스트, 2004; 찰스 틸리, 윤승준 역, [유럽 혁명 1492-1992, 지배와 정복의 역사], 새물결, 2000; 케네스 O. 모건 엮음, 영국사학회 역, [옥스퍼드 영국사], 한울,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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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석 | 역사 저술가
글쓴이 김유석은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힌 역사관을 바로 잡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쓰기로 표현하는 것이 목표이다.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1960년대 미국 서남부 치카노 운동의 성격: '친쿠바 혁명주의자'들의 영향을 중심으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빅이슈에 [국기로 보는 세계사]를 연재했으며, 주요 저서로는 [Q&A세계사: 이것만은 알고 죽자](공저, 2010)와 [생각의 탄생: 19세기 자본주의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발행2013.05.1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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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잭(Jack)’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사실 뱃머리에 국적을 구분하기 위해 다는 선수기를 영어로 ‘잭’이라 부르기 때문에, 섬나라로서 선박 및 항해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영국의 상황에서 깃발을 ‘잭’이라고 부르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본래 수병이나 뱃사람을 칭하는 말 또한 ‘잭’ 이다. 게다가 ‘잭’은 ‘제임스’를 친근하게 부르는 애칭기도 하다. 이는 아마도 이 국기를 처음 만들어 사용하게 된 제임스 1세와도 관련이 있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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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왕실의 관례 중 하나는 왕위 계승권을 가진 왕세자를 웨일스 공으로 임명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엘리자베스 2세의 맏아들인 찰스가 웨일스 공이다. 이러한 예는 그만큼 웨일스가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이미 잉글랜드에 복속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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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인 정치체로서의 웨일스 공이 아니라, 잉글랜드의 상속자가 갖는 권리로서 웨일스 공이 임명된 것은 1301년 에드워드 1세 때부터의 일이다. 이후 웨일스 공은 잉글랜드, 그리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의 왕위를 물려받는 왕세자가 공식적으로 취하는 권리 및 명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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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사실은 ‘영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는 흐름 속에서 웨일스, 스코틀랜드 등이 각기 스스로의 문화와 전통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함께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서는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을 일독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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