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히스테리의 역사 1 - 히스테리, 자궁이 돌아다니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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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13회 작성일 16-02-0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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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 자궁에서 유래된 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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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는 여성 환자. 19세기 후반 무렵 촬영된 것이다. 고대나 중세까지만 해도 이런 증상은 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자궁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당신의 몸 어딘가는 무려 3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왜곡되어 왔다. 멀쩡하게 신체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그 부분은 마치 정상을 벗어난 암세포 같은 돌연변이로 규정되었고, 몸 여기저기를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기이한 동물이라고 선고받았다.

머리가 아프든지, 숨이 막히든지, 혹은 전혀 다른 증세를 보일 때에도, 의사는 그 이유가 문제의 그 기관이 돌아다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증상이 어떻든 원인이 같으므로 병명도 같을 수밖에 없고, 이 병을 근본적으로 고치기 위해서는 결혼이나 임신이 최고라고 권유받았다. 유명한 의사와 학자들이 이렇게 진단했기 때문에 당신은 당연히 그런 줄 알았을 것이다.

이것은 거짓말이나 상상이 아니다. 500년만 일찍 태어났다면 이 글을 읽는 사람의 절반 정도는 아마 이런 상황을 현실로 맞았을 테니까.

앞으로 살펴볼 고대 및 중세의 의사, 학자, 성직자들의 무지막지한 선고와 황당한 치료법-당시에는 물론 합리적으로 여겨졌지만-을 받고 있는 사람이 당신이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대체 이토록 오랜 기간 동안 몸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고 여겨진 이 기관은 무엇이며, 이로 인해 생겨난 그 병명은 무엇일까?

그 답은 바로 자궁과 히스테리다. 오늘날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갈등으로 인해 생겨나는 신경증의 일종으로 풀이되는 히스테리(Hysteria)는 고대 그리스어 ‘자궁(Hystera)’에서 유래된 단어로, 자궁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고대 이집트 시대인 기원전 1900년부터 심지어 17세기까지도 여성 환자들이 보였던 질식, 생리통, 발작, 감각/신경마비 등의 증세1)는 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자궁 때문이라고 여겨졌고,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히스테리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지금도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말을 쓰지만, 고대 이집트 시대의 의사들도 ‘히스테리는 결혼하지 못한 여성들에게서 빈번하다’고 썼다.

히스테리를 언급한 기록들에는 월경중지, 월경불순, 냉대하증 등 생식기와 관련된 것부터 열, 소화불량, 두통, 마비, 발작 등을 비롯해 수많은 감정적 혼란과 행동이상 등이 증후 및 증세로 적혀 있다. 이렇게 다양한 증후 때문에 히스테리는 “카멜레온 같은 병”이라고 불렸다. 의학사가 일자 비스(Ilza Veith)는 이에 대해 히스테리라는 병명이 생겨난 후, 설명하기 어려운 여성의 모든 증세가 히스테리라는 이름으로 진단되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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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중세까지, 자궁과 히스테리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논의들을 살펴보려 한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히스테리에 관한 기록을 남긴 사람들이 대부분 지식인의 범주에 속하는 의사, 과학자, 성직자들이었고 남성이었다는 점이다.2)

글에는 기록하는 사람의 시각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살펴볼 기록들에는 이 이상한 자궁 때문에 여성의 몸이 ‘비정상’이며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고 생각했던 남성 지식인들의 시선이 담겨 있다.

물론 중세까지만 살펴보더라도 활동했던 의료인들은 남성이 전부가 아니었다. 자코바 펠리시에나 투르툴라(이 여성의 존재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여자 산파 등이 의료 활동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히스테리에 관한 언급이나 설명, 자신의 생각 등을 기록으로 남긴 사람들은 전적으로 남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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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시대의 히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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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카훈 파피루스. 자궁이동과 히스테리에 관련한 기록을 담고 있는 가장 오래된 문서로 알려져 있다.


자궁이동과 히스테리를 다룬 가장 오래된 문서는 기원전 1900년경에 작성된 [카훈 파피루스(Kahun papyrus)3)]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떨어지는 자궁, 생리통, 돌아다니는 자궁” 등의 항목이 있는데, 자궁의 이동이 여성에게 다양한 증세를 일으킨다고 쓰여 있다.

“스스로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자궁은 간에 가서 부딪치고, 위장을 때리고, 췌장을 짓눌러서 통증을 유발하고, 폐를 압박해서 호흡곤란을 가져온다.”

카훈 파피루스의 연대를 둘러싸고는 이견이 있는데, 학자에 따라서는 기원전 2100년에서 기원전 1900년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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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대체 자궁은 무엇이 불만이라 욕망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인다고 여겨진 걸까? 당대 의사들은 “자궁이 성교나 임신으로 만족되지 않으면 다른 것을 찾아 골반강의 깊숙한 자리를 이탈한다”고 생각했다.

즉, 충족되지 못한 자궁은 조직변화가 일어나 말라버리고 무게가 줄면서 습기를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이렇게 자궁이 떠돌아다니다 몸 안 여기저기에 부딪히면 질식, 마비 등 히스테리의 증세로 알려진 증상들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예민한 자궁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불만 가득한 자궁”을 달래거나 혼내는 방법이 추천되었다. 파피루스에는 향, 허브, 맥주, 염소 젖, 올리브 기름, 고약한 물질 등을 아래에 바르거나 태워서 훈증소독 하기를 권장한다고 적혀 있다.

자궁이 머리 쪽으로 올라갔다는 진단이 내려지면, 고약한 냄새가 나는 물질을 태워 코로 냄새를 맡게 함으로써 자궁이 견디지 못하고 아래로 내려가도록 했고, 동시에 환자의 자궁이 골반강 내에 무사히 들어오도록 여성 환자의 가랑이 사이에 향을 피워 유인했다.

물론 자궁이 채워지지 않아 불만족스러워 하고 있으니 “남성적 요소만이 이런 자궁의 치료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의학 문서들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히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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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티마이오스]의 라틴어 번역본. 플라톤 역시 오랫동안 방치된 자궁이 각종 질환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하였다.


성적으로 충족되지 못한 자궁과 그로 인한 증상의 관련성은 “그대로 그리스인들에게 전해졌고” 자궁에 관한 병으로 인식되던 이 증상은 드디어 ‘히스테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플라톤, 히포크라테스, 갈레노스 등 고대 그리스 로마의 쟁쟁한 철학자와 의사들도 히스테리에 관해 골몰했다.

그런데 이들이 쌓은 명망에 비해, 히스테리에 관해 내놓은 원인과 치료법은 고대 이집트식 사고에서 그다지 진일보하지 못한 것이었다. [카훈 파피루스]로부터 무려 1500년이 지났어도 의사들은 여전히 자궁을 달래고 원위치로 되돌리느라 분주했기 때문이다.

훈증요법 및 결혼, 재혼, 임신 등이 최고의 치료법으로 권장되었고, 히스테리의 모든 증상들은 여전히 성적으로 불만족한 노처녀와 과부들에게 나타난다고 간주되었다. 플라톤이 남긴 다음의 기록은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에 등장하는 설명과의 관련성을 잘 보여준다.

여자들의 아기집 혹은 자궁이라고 하는 것은 아이를 만들려는 욕망을 가진 생명체와 같다……. 자궁은 아이를 생산하고 싶어하는 짐승이다. 사춘기 이후 너무 오랫동안 자궁을 방치해 놓으면 몹시 괴로워하며 몸 속을 돌아다니다가 호흡을 막아 극심한 고통을 가져오고, 그 밖에도 온갖 종류의 질환을 일으킨다.

- 플라톤, [티마이오스] 중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뭔가 다른 의견을 내놓았을까? 그는 다만 플라톤과 달리 나이 많은 여성들에게서 히스테리가 빈번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물론 자궁이 방랑한다는 생각을 거부한 의사들도 있었다. 갈레노스는 그나마 다른 의사들에 비해 해부학에 조예가 깊었던 덕분인지, 히스테리의 원인이 정상적으로 분출되지 못한 월경혈이나 정액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설명을 따르자면 이렇다.

성적 금욕이나 정기적인 성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제때 분출되지 못한 월경혈은 몸 속에서 부패하면서 신체를 냉각시키고 심지어는 히스테리성 발작을 유발하는 신경자극을 야기한다.

하지만 그 역시도 히스테리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성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근본적인 치료책으로 결혼과 임신을 꼽았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모든 의사나 학자들이 자궁의 이동을 인정하진 않았지만, 이들이 전개했던 대부분의 담론은 자궁이동설과 같은 상상적 논의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자궁이 이동했던 협착이 되었던 어쨌던, 그들이 히스테리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았던 것은 자궁과 관련된 성적인 요소였다. 그리고 상상으로 가득한 이 설명들은 명확하고 자명하며 논리적인 것으로 당대 사회에 받아들여졌다.


중세, 악마의 저주에 의한 히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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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마녀사냥. 마녀가 재앙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던 중세 사람들에게 히스테리 환자의 증세는 악령의 저주를 받은 것, 혹은 악마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되었다. 결국 중세의 히스테리는 종교재판에서 다루는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중세에 이르면, 다른 관점에서 히스테리를 설명하는 논의가 나타난다. 우선 중세에는 기독교가 보편가치로 자리잡으면서 의학 또한 신학의 영역에 포섭되었다. 그러나 세속 의사들은 여전히 한편으로 고대의 자궁이동설과 전통적 치료법들을 옹호하면서 성적 금욕의 위험을 걱정했다.

훈증요법과 아로마 치료법 외에도, 가슴 위로 자궁이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환자의 흉부 아래에 붕대를 칭칭 감는다거나 자궁을 원위치로 유인하기 위해 환자의 입에 강한 향이 나는 포도주를 쏟아 넣는 등의 치료가 행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신학자들을 위시로, 히스테리 증후들이 어둠의 세계에 거주하고 있는 악한 힘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런 논의는 ‘마녀가 주변에 재앙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던 중세인들의 생각과도 관련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단과 악의 흔적을 찾고자 혈안이 되어있던 마녀사냥의 시대, “히스테리 환자는 이런 분위기에 꼭 맞는” 대상이었다. 히스테리 환자가 보이는 정신착란, 갑작스럽고 일시적인 발작, “실명, 마비 등의 증세는 저주를 받은 것으로 여겨졌”고, 악마나 그들이 행하는 마법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되었다.

뿐만 아니라 “히스테리 환자들이 악마와 난교 파티를 일삼는다”거나 환자(마녀)의 음탕함과 성적 방종함에 대한 소문들은 끝도 없이 퍼져갔다. 결국 히스테리는 종교재판에서 다루어야 하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히스테리 환자가 ‘마녀’가 아닌, ‘환자’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을 넘어서였다.


히스테리, 남성 기록자들이 여성을 바라보던 시각



히스테리는 이렇게 무려 3000년이 넘도록 욕구불만으로 인해 떠돌아다니는 여성의 자궁 때문이라고 설명되거나, 마녀임을 나타내는 표식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히스테리에 관해 주장하거나 기록한 사람들은 히포크라테스나 갈레노스처럼 상당수가 학식 높은 의사거나 학자였고, 명망 있는 신학자나 성직자였다.

물론 앞서 살펴본 히스테리에 관한 논의들을 지금의 잣대로 비이성적이라거나 비합리적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는 없다. 4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지금의 과학과 의학으로 어찌 재단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이 황당하고 우습기까지 한 논의들을 무심코 웃으며 흘려넘길 수도 없다. 왜냐하면 히스테리의 역사에서 여성의 육체를 비정상적이고 열등한 것으로 규정했던 남성기록자들의 시선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히스테리가 자궁이동으로 설명될 때, 자궁이 이동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여성의 성적 욕구불만. 바로 이것이 자궁을 언짢게 만드는 이유였다. 히스테리가 마녀와 관련된 병으로 설명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히스테리 환자는 악마와 몸을 섞고 마을의 남자들을 유혹해 악마에게 바친다고 묘사되었다.

그리고 마녀들에게는 “육욕적”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성욕에 목말라 있는 이상한 몸. 이것이 오랫동안 히스테리에 관한 기록을 남긴 남성 의사들과 성직자들이 여성 환자, 더 나아가 여성 전체를 바라보던 시각이었다.4)

히스테리는 본래 주로 의학계 내에서 연구되어 왔으나, 섹슈얼리티 및 젠더와 오랫동안 관련을 맺어왔기 때문에 1975년 이후에는 여성사와 여성학에서도 활발히 연구되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루지는 못했지만 히스테리 담론은 계급, 인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복합적 특성 때문에 히스테리 연구는 상당히 학제적이며, 정신분석에서부터 문학사 및 텍스트 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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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불완전한 동물



남성 의사들은 궁금했을 것이다. 생리통, 발작, 마비 등 그들이 경험할 수 없기에 설명할 수 없었던 여성의 이 이상한 증상들은 무엇이며 그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그 시대 그들의 기준에서 가장 합당한 설명은, 여성의 몸에 있는 남성과 다른 기관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궁이 무언가가 부족해 남성의 성기가 되지 못하고 “그렇게 되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또한 내부가 비어있기 때문에 불완전하고 채워지길 바란다고 믿었고, 자궁이 채워지는 방법은 ‘임신’이라고 생각했다.

갈레노스가 “여자의 생식기는 남자의 것보다 불완전하므로 남자가 여자보다 완전한 존재”라고 했던 점이나, 자궁을 태아 시절 열이 부족해 밖으로 돌출되지 못한 “뒤집힌 음낭”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런 지점을 잘 보여준다.

심지어 해부학에 혁명적인 발전을 가져온 르네상스 시대의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조차도 자궁에 관해서는 갈레노스의 의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궁을 둘러싼 이러한 관점 외에도, 중세에는 여성의 육체에 대한 기독교의 왜곡된 시각까지 덧붙여졌다.5) 마녀사냥의 중심에 있었던 책, [마녀망치(Malleus Maleficarum)](1494)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무엇보다도 여성은 우정의 적이며, 피할 수 없는 형벌이며, 필요악으로…… 여성의 눈물은 기만이거나 덫”이고, 여성이 이렇게까지 악한 이유는 “남성과 반대 방향으로 굽어진 갈비뼈” 때문이라고.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여성은 불완전한 동물이고 항상 기만적이며…… 이런 이유로 남자보다 훨씬 육욕적”이라고 말이다.

역사가 설혜심은 마녀사냥을 다루는 학계의 논점을 정리하면서 중세 마녀사냥 시기에 나타난 여성혐오 사상을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 바 있다. “1. 이브의 자손으로서 선천적으로 지니는 원죄, 2. 이성의 결여에서 비롯하는 감각적, 쾌락주의적 특성, 3. 생리, 출산 등과 관련된 경외심, 4. 남성의 성적인 열등감”이 그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설혜심의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 – 마녀사냥에서 트위터까지] (길, 2011)의 제4장, “마녀사냥을 보는 다양한 시선”을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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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남성 히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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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저명한 신경병리학자 장 마르탱 샤르코 박사가 파리 살페트리에르 병원에서 히스테리 여성 환자를 주제로 수업하고 있다. 샤르코는 히스테리가 정신적 증후를 동반하는 신경계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최면요법을 통한 정밀 연구를 시행하였다.


인간, 그리고 이성 중심의 사고를 특징으로 하는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마녀나 마법 등 초자연적 관점의 히스테리 논의들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또한 해부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자궁이동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로 자리잡았다. 이와 함께 17세기부터 히스테리의 원인으로 지목된 곳은 머리(뇌), 신경, 마음(정신)으로 변화해 갔다.

그리고 현재 히스테리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감각, 운동장애 및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정신장애의 일종”, 혹은 “분리성 장애”로 정의되어 이 설명만으로는 여성편향적인 특성을 유추하기 힘들다.

6) 하지만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말이 함의하고 있는 것처럼, 많은 경우 히스테리는 아직도 여성에게 ‘국한된’ 것으로 쓰이고 있다.

히스테리는 그 원인이 자궁에서, 머리(뇌)와 신경체계로, 그리고 마음(정신)으로 변화해갔지만 결국 1952년 정확한 발병소인이 규명될 수 없다고 판정되어 [질병 표준 용어집(Standard Nomenclature of Disease)]에서 삭제되면서 질병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현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히스테리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감각 및 운동장애,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정신장애의 일종”으로, [정신질환 진단 매뉴얼(Mental Disorders Diagnostic manual)]에는 “분리성 장애”로 정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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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히스테리의 근원지가 자궁과 이별하고 머리, 신경체계 등 성적인 요소와 관련 없는 곳들로 변화해 가면서 이론적으로 ‘남성 히스테리’의 가능성이 열렸다.7) 이와 동시에 남성 히스테리 환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히스테리를 체계화했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1895년, 남성 히스테리에 관한 논문으로 비엔나 의학계에 데뷔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던 히스테리와 자궁의 밀접한 연관성 때문에 남성 히스테리 환자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잊혀져 왔다. 다음 글에서는 이 잊혀졌던 남성 히스테리에 관해 살펴볼 예정이다.

17세기 해부학의 발전으로 신경계가 확인된 후, 신경은 성적인 요소와 상관이 없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17세기 말부터 이 신경이 여성적으로 젠더화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로 인해 남성 히스테리와 함께 성별중립적으로 설명되었던 히스테리는, 약한 신경과 신경적 기질이 여성의 것으로 인식되면서 다시 여성의 병으로 규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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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Ilza Veith, [Hysteria: The History of a Disease],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5; Jennifer Radden ed., [The Nature of Melancholy : from Aristotle to Kristeva],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Mark S. Micale, [Approaching Hysteria],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5; WHO,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 WHO, 1977-78; 라나 톰슨 지음, 백영미 옮김, [자궁의 역사], 아침이슬, 2004;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 지음, 엄양선, 윤명숙 옮김, [히스테리], 여이연, 2003; 로이 포터 지음, 이충호 옮김, [의학콘서트], 예지, 2007; 설혜심,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 - 마녀사냥에서 트위터까지], 길, 2011.






김지혜
글쓴이 김지혜는 문화사 전반에 관심이 많다. 연세대 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면서 문화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석사논문으로 <19세기 후반 영국 정기간행물에 나타난 남성 히스테리>를 제출한 이후, 남성사 및 젠더사 등을 문화사적 관점으로 읽고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쉽고 대중적이며 재미있는 역사 쓰기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으며, 이런 관심사의 연장선상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도서 [르네상스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2010)를 썼다.


발행2013.05.16.



주석


1
히스테리를 언급한 기록들에는 월경중지, 월경불순, 냉대하증 등 생식기와 관련된 것부터 열, 소화불량, 두통, 마비, 발작 등을 비롯해 수많은 감정적 혼란과 행동이상 등이 증후 및 증세로 적혀 있다. 이렇게 다양한 증후 때문에 히스테리는 “카멜레온 같은 병”이라고 불렸다. 의학사가 일자 비스(Ilza Veith)는 이에 대해 히스테리라는 병명이 생겨난 후, 설명하기 어려운 여성의 모든 증세가 히스테리라는 이름으로 진단되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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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중세까지만 살펴보더라도 활동했던 의료인들은 남성이 전부가 아니었다. 자코바 펠리시에나 투르툴라(이 여성의 존재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여자 산파 등이 의료 활동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히스테리에 관한 언급이나 설명, 자신의 생각 등을 기록으로 남긴 사람들은 전적으로 남성들이었다.
3
카훈 파피루스의 연대를 둘러싸고는 이견이 있는데, 학자에 따라서는 기원전 2100년에서 기원전 1900년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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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는 본래 주로 의학계 내에서 연구되어 왔으나, 섹슈얼리티 및 젠더와 오랫동안 관련을 맺어왔기 때문에 1975년 이후에는 여성사와 여성학에서도 활발히 연구되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루지는 못했지만 히스테리 담론은 계급, 인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복합적 특성 때문에 히스테리 연구는 상당히 학제적이며, 정신분석에서부터 문학사 및 텍스트 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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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설혜심은 마녀사냥을 다루는 학계의 논점을 정리하면서 중세 마녀사냥 시기에 나타난 여성혐오 사상을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 바 있다. “1. 이브의 자손으로서 선천적으로 지니는 원죄, 2. 이성의 결여에서 비롯하는 감각적, 쾌락주의적 특성, 3. 생리, 출산 등과 관련된 경외심, 4. 남성의 성적인 열등감”이 그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설혜심의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 – 마녀사냥에서 트위터까지] (길, 2011)의 제4장, “마녀사냥을 보는 다양한 시선”을 참고할 수 있다.
6
히스테리는 그 원인이 자궁에서, 머리(뇌)와 신경체계로, 그리고 마음(정신)으로 변화해갔지만 결국 1952년 정확한 발병소인이 규명될 수 없다고 판정되어 [질병 표준 용어집(Standard Nomenclature of Disease)]에서 삭제되면서 질병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현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히스테리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감각 및 운동장애,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정신장애의 일종”으로, [정신질환 진단 매뉴얼(Mental Disorders Diagnostic manual)]에는 “분리성 장애”로 정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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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해부학의 발전으로 신경계가 확인된 후, 신경은 성적인 요소와 상관이 없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17세기 말부터 이 신경이 여성적으로 젠더화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로 인해 남성 히스테리와 함께 성별중립적으로 설명되었던 히스테리는, 약한 신경과 신경적 기질이 여성의 것으로 인식되면서 다시 여성의 병으로 규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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