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창난젓깍두기의 떼루아 - 시인 백석이 발견한 맛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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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46회 작성일 16-02-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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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와인의 명성을 높인 ‘떼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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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맛을 결정짓는 기후, 토양, 재배자의 정성과 기술 등 복잡한 요소들을 통틀어 떼루아(terroir)라고 한다. 19세기 이후 떼루아는 와인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출처: Gettyimages>


프랑스에서 와인의 맛을 평가할 때 쓰는 용어 중에 ‘떼루아(terroir)’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번역하기가 까다롭다. 사전에서는 ‘산지 특유의 맛’ 정도로 옮기고 있지만 충분한 설명이라고 보기 어렵다. 떼루아는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다양한 요소를 통틀어 일컫는 개념이다. 기후(온도, 습도, 강우량, 일조량, 일조시간), 토양(포도밭의 경사도, 지형, 흙의 성분과 물리적ㆍ화학적 성격), 재배자의 정성과 양조 기술 등 와인맛과 관련된 모든 요소가 떼루아에 포함된다. 그 모든 요소가 마치 DNA의 이중나선처럼 꼬여서 이루어진 것이 떼루아라는 개념이다.

떼루아라는 개념이 정립된 것은 19세기다. 1855년 파리에서 열린 와인 박람회에서 보르도 와인이 산지에 따라 와인의 등급을 매기기 시작하면서, 19세기 후반에는 재배 지역이 와인의 질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20세기 초부터는 와인과 치즈 생산업자뿐만 아니라 저널리스트, 요리책 작가, 요리사 등 음식의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들도 생산지와 맛을 관련시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떼루아는 와인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료의 질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후 떼루아는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 원산지 명칭의 통제) 제도의 구축으로 이어져 지역 농업을 보호하고 프랑스 와인의 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맛은 장소에 따라 다르다




떼루아라는 개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맛이 특정한 장소와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 즉 맛에는 ‘장소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근대 과학에서는 맛을 혀의 미뢰에 있는 미세포의 작용으로 환원시키기 때문에 단맛, 신맛, 쓴맛, 짠맛의 네 가지 맛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맛에 대한 경험은 육체적인 경험에 한정되지 않는다. 맛보는 것도 혀이고 맛에 대해 말하는 것도 혀이며, 맛은 결국 언어를 통해 표현된다. 그리고 맛에 대한 말에는 항상 그 맛의 기원에 대한 말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어디에서 난 것이고, 누구에 의해 재배되거나 요리된 것인지, 또는 그것을 어디에서 먹는지가 맛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맛을 결정하는 요소는 그 외에도 더 많지만, ‘장소의 맛’이 존재하며 맛을 통해 어떤 장소를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떼루아라는 개념이 함축하고 있듯이 맛은 자연적인 동시에 문화적이다. 또 맛은 육체적인 동시에 정신적이며, 주관적인 동시에 객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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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는 현재 300여 종이 넘는 치즈가 존재하며 지역별로 다양한 종류의 치즈를 생산하고 있다. 장소성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공산품과 달리, 음식은 지역 특유의 자연적ㆍ문화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떼루아의 ‘장소성’은 음식을 다른 상품들과 구별짓는 요소가 된다. <출처: Gettyimages>


떼루아에서 알 수 있는 맛의 두 번째 속성은 맛이 개인이나 집단의 정체성과 관련된다는 사실이다. 떼루아는 어떤 사람의 뿌리, 즉 어떤 장소와 결부된 개인의 역사와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떼루아는 경험을 기억해내고 추억을 떠올리는 등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할 때 요긴하게 이용된다. 또한 그것은 독특한 지역성을 부각시킴으로써 개인을 넘어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도 기여한다. 요컨대 프랑스인들에게 음식을 먹는 순간은 지역에 얽힌 기억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고향이나 고국을 떠나 있는 사람들이 과거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을 다시 맛보려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맛은 부지불식간에 과거의 경험을 온전한 상태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개인이나 집단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로 작용한다.

떼루아에서 알 수 있는 맛의 세 번째 속성은 장소의 맛으로 인해 음식이 다른 상품과 구별된다는 사실이다. 요즘에는 원산지 표기제가 비교적 충실하게 시행되고 있어서 모든 상품에 장소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원산지 표기가 되어 있다고 해서 모두 생산지 특유의 색채가 묻어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대구나 중국에서 생산된 전자제품에서 대구나 중국의 장소성을 느끼기는 어렵다. 장소성이 크게 의미가 없는 상품이 공산품이라면, 음식은 지역 특유의 자연과 문화가 담겨 있는 특산품이다. 제아무리 사소한 물건이라도 특산품은 교환가치 이상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특별히 자국의 지역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백석 시에 나타난 이상한 떼루아




떼루아에는 프랑스 특유의 음식관이 반영되어 있지만, 장소의 맛이라는 개념이 프랑스에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맛과 장소의 관계는 매우 보편적인 것이므로 시공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장소의 맛에 대한 사유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문대작(屠門大嚼)]이라는 글을 통해 전국 각지의 독특한 음식을 소개한 허균 이래 장소의 맛에 대해 가장 깊은 사유를 보여준 이는 근대의 시인 백석(白石,1912~1996)이다. 그가 1937년에 발표한 작품 중에 <북관(北關)>이라는 시가 있다.


明太 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뷔벼 익힌 것을

이 투박한 北關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 속에

나는 가느슥히 女眞의 살내음새를 맡는다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 속에선

까마득히 新羅 백성의 鄕愁도 맛본다
- <북관(北關)> 전문

이 작품에서 백석이 이야기하고 있는 음식은 ‘창난젓깍두기’인 듯하다. 창난젓깍두기는 지금도 강원도 지방에서 담가먹는 김치의 일종으로 원래는 함경도 지역의 음식이라고 한다. 이 작품의 제목인 ‘북관’은 함경도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백석은 북관 특유의 음식인 창난젓깍두기에서 “여진의 살내음새”를 맡고 “신라 백성의 향수”를 맛본다. 그는 창난젓깍두기의 떼루아로 북관이나 함경도 대신에 신라와 여진을 지목하고 있는 셈이다. 참으로 독특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그는 왜 그랬던 것일까?



밥은 집이다




<북관>에서 보다시피 백석 시에 등장하는 음식은 어떤 장소와 관련된다. 음식에 관한 그의 이야기는 어떤 장소에 관한 이야기이고, 어떤 장소의 맛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이 음식과 장소에 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와 지렁이>라는 작품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내 지렁이는

커서 구렁이가 되었습니다

천 년 동안만 밤마다 흙에 물을 주면 그 흙이 지렁이가 되었습니다

장마 지면 비와 같이 하늘에서 나려왔습니다.

뒤에 붕어와 농다리의 미끼가 되었습니다

내 이과책에서는 암컷과 수컷이 있어서 새끼를 낳었습니다

지렁이의 눈이 보고 싶습니다

지렁이의 밥과 집이 부럽습니다
- <나와 지렝이> 전문

이 작품은 마치 백석 자신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컴컴한 땅속에서 살아가는 지렁이에게는 시각과 청각이 필요치 않다. 지렁이의 감각기관은 입과 피부뿐이다. 그래서 지렁이는 맛이나 냄새에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맛과 냄새에 민감한 지렁이의 모습은 미각에 유별난 집착을 보였던 백석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마치 미각만이 존재하는 지렁이처럼 과거와 현재, 인간과 세계를 미각을 중심으로 인식했다.

이 작품에서 지렁이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흙’이다. 세계의 수많은 신화에서 신이 흙을 빚어 인간을 창조했다고 말한 것처럼, 백석은 그의 지렁이 역시 흙으로 창조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백석의 지렁이에게 흙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흙은 지렁이의 ‘밥’인 동시에 ‘집’이다. 흙은 지렁이에게 어떤 맛을 내는 음식일 뿐만 아니라 생명을 영위하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흙에 대한 백석의 사유는 떼루아를 떠올리게 한다. 떼루아가 맛과 장소가 결합된 개념인 것처럼 백석은 지렁이와 흙의 관계를 통해 밥과 집이라는 개념을 통합시킨다. 밥에는 집이라는 장소의 맛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밥으로 대표되는 음식에 대한 추구는 곧 집이 상징하는 장소에 대한 집착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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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10월 27일자 [동아일보] 기사. 창난젓과 멸치젓을 두고 ‘오늘의 가장 진보된 과학적 합리적 영양식물이라고 할 수 있는 훌륭한 식물(食物)’이라고 하였다. 백석이 장소의 맛을 통해 자신과 집단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시기, 일반 대중의 인식은 음식의 영양적 가치를 발견하는 데만 집중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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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9월 6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와인 광고. 떼루아보다는 건강에 좋다는 관점에서 와인을 광고하고 있다.


백석이 다양한 ‘장소의 맛’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장소의 맛이 정체성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백석은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장소들에서 자신과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정체성을 발견했다. 세속과 절연한 채 고고한 정신을 지켜가는 인물, 명절을 맞아 다시 하나가 된 즐거움을 누리는 가정, 고담하고 소박한 풍속을 이어가는 마을, 넉넉하지 않은 생활 속에서도 삶의 온기를 잃지 않는 고장, 그 모든 것이 백석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소중한 장소들이었다.

장소의 맛을 통해 자신과 집단의 정체성을 사유했던 백석과 달리, 이 시기 음식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은 철저하게 음식의 영양 가치를 따지는 근대적 관점에 치우쳐 있었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북관>이라는 시에서 백석이 창난젓깍두기를 통해 신라와 여진이라는 ‘장소의 맛’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조선일보]는 ‘영양적으로 만점인 창난젓―현대과학이 증명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똑같은 음식을 두고 조선일보가 ‘현대’라는 시간과 영양 성분을 발견하고 있었던 반면, 백석은 맛과 장소를 발견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었다.



맛으로 찾아낸 나라




그렇다면 백석이 맛을 통해 발견한 장소는 어디로까지 확장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나라’다. 백석 시에 나타나는 나라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근대국가’와는 다르다. 그에게 근대의 국적 같은 인위적 경계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의 ‘나라’는 민족, 국가, 세계와 다르면서도 그 모두를 아우르는 독특한 개념이다. 백석의 ‘나라’는 배타적인 인위적 경계 대신에 서로 넘나들 수 있는 자연적 경계로 이루어져 있다. 또 그 ‘나라’는 보편적 인류애보다 더 확장된 개념인 범생명주의를 통해 구성된다. 그는 <허준>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높은 산도 높은 꼭다기에 있는 듯한

아니면 깊은 물도 깊은 밑바닥에 있는 듯한 당신네 나라의

하늘은 얼마나 맑고 높을 것인가

바람은 얼마나 따사하고 향기로울 것인가

그리고 이 하늘 아래 바람결 속에 퍼진

그 풍속은 인정은 그리고 그 말은 얼마나 좋고 아름다울 것인가- <허준> 부분

현실의 세계는 싸움과 흥정, 가난과 탐욕으로 넘치지만, 그 나라는 맑고 높고 따스하고 향기롭다. 그러나 백석과 그의 친구는 그러한 나라에서 너무나 멀리 떠나와버렸다. 비루한 현실 속에서 그러한 나라는 바람결처럼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 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져버렸지만, 백석은 그 나라의 흔적들이 여전히 끈질기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백석은 여러 음식을 통해 그 나라를 채웠던 장소의 맛을 탐색한다.

이제 다시 앞에서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왜 백석은 <북관>이라는 시에서 창난젓깍두기의 떼루아로 함경도가 아닌 신라와 여진을 지목하고 있는가? 그 음식에서 그가 ‘나라의 맛’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단지 함경도라는 지역의 맛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수많은 ‘장소의 맛’을 탐색한 것은 결국 그가 최종적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나라의 맛’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함경도가 한때는 여진의 땅이었고, 또 한때는 신라의 땅이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가 찾아 헤맸던 ‘나라’의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신라와 여진이 다르지 않다. 신라와 여진은 모두 그 나라의 일부로서 존재했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백석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그 ‘나라’의 맛이란 어떤 것인가? 그는 여러 편의 시를 통해 ‘밝고, 거룩하고, 그윽하고, 깊고, 맑고, 무겁고, 높은’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그 나라를 가득 채웠던 ‘마음’이다. 백석 시는 그 마음들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 마음들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에 관해 이야기하려 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가 평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던 나라는 지도에서 지워졌지만, 그는 오랜 탐색 끝에 그러한 나라의 흔적이 마음을 통해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백석이 그 마음들을 가장 선명하게 감지해내는 것은 바로 음식을 통해서다. <탕약>이라는 시에서 백석은 이렇게 노래했다. “그리고 다 달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야 만년 녯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 손으로 고이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녯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어진다” 만년 옛적의 마음, 혹은 만년이 지나도록 여전한 옛적의 마음, 바로 그것이 백석이 찾고자 했던 ‘나라의 맛’이었다.

 

'18세기의 맛'은 한국18세기학회의 기획으로서, 문학동네와 함께 합니다. 1454742027347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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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섭 |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백석 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백석의 맛],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시는 노래처럼] 등의 책을 통해 한국 근대문학에 대한 문화론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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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8세기의 맛: 취향의 탄생과 혀끝의 인문학 2014.02.28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의 18세기를 다채롭고 참신한 시각으로 연구하는 한국18세기의 학회의 첫 프로젝트 결과물, <18세기의 맛>이 책으로 나왔다. 18세기의 '맛'을 중심으로 세계사의 흥미로운 단면을 맛깔나게 서술했다. 23명 인문학자의 시각으로 18세기의 동서양을 뒤흔든 맛과 그 맛에 얽힌 흥미로운 현상을 살펴보는 일에 동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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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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