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게르만의 국민음식, 사워크라우트 - 괴혈병을 정복한 독일 식탁의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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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17회 작성일 16-02-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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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길레이(James Gillray), <사워크라우트를 먹는 독일인들(Germans eating sauerkraut)>
1803년,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 소장.

이 그림은 영국 미술사에서 대표적인 정치풍자화가로 꼽히는 제임스 길레이(1756∼1815)가 독일인을 풍자한 캐리커쳐다. 이 풍자화는 사워크라우트가 18세기에 이미 독일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거의 모든 국가와 민족에게는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국민음식이 있다. 예를 들어 스시(寿司)는 일본을, 스파게티는 이탈리아를, 굴라쉬는 헝가리를, 카레요리는 인도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은 단연 김치일 것이다. 독일에는 조리 방법과 문화적 의미 등 모든 측면에서 한국의 김치에 해당하는 음식이 있다. 사워크라우트(Sauerkraut)가 그것이다. 독일에서 사워크라우트는 한국인의 식생활과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김치에 필적하는, 게르만족의 국민음식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워크라우트는 독일인만 즐겨 먹는 게르만족 고유의 음식이 아니다. 사실 사워크라우트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북부, 네덜란드, 폴란드, 헝가리,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발트해 연안의 국가들, 러시아 등 북유럽 전역에서 오래전부터 향유되어왔으며, 나라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이 음식은 원래 게르만 민족에게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몽골인들에 의해 유럽에 전해진 중국의 김치 솬차이(酸菜)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사워크라우트는 어떻게 하여 게르만족의 국민음식이 된 것일까? 지금부터 그 역사를 살펴보자.



독일의 김치, 사워크라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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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워크라우트는 독일인들이 육류요리, 생선요리, 감자요리 등 주식에 항상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출처: Patrick-Emil Zörner at de.wikipedia.org>





병에 든 사워크라우트. 맛과 보관방법 등 모든 면에서 사워크라우트는 한국의 김치에 비견되는 음식이다. <출처: Gandydancer at en.wikipedia.org>




사워크라우트는 ‘신맛 나는 채소’를 뜻한다. 다른 말로는 사워콜(Sauerkohl)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신맛 나는 배추’를 의미한다.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 유산균에 서서히 발효되게 함으로써 오래 저장하여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음식의 요체다.

사워크라우트는 많은 점에서 한국의 김치에 비견된다. 독일 위키피디아의 사워크라우트 항목을 찾아보면 유사한 음식목록의 가장 상단에서 “한국의 김치(Koreanisches Kimchi)”를 발견하게 된다. 육류와 채소가 어우러진 식단은 맛과 영양 두 측면에서 가장 이상적이고 일반적인 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의 경우 삼겹살과 김치의 조합이 서민들이 즐기는 가장 대표적인 식단이라면, 독일에서는 소시지와 사워크라우트의 조합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김치가 우리 식단의 필수적 동반자이듯이 사워크라우트는 독일인들이 육류요리, 생선요리, 감자요리 등 주식에 항상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우리가 김치를 장독에 보관하듯이(아파트 생활이 보편화된 도시에서는 김치냉장고가 장독을 대신하고 있지만), 독일 가정에서도 사워크라우트를 큰 단지에 담아 보관하는 것도 유사한 점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상점에서 병에 든 사워크라우트를 사먹는다.

김치와 사워크라우트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한국인은 김장김치를 통배추 그대로 절여 보관하는 데 반해, 사워크라우트는 양배추를 채 썰어서 절인 후 보관하고, 김치에 고춧가루와 마늘이 양념재료로 들어가는 것과 달리, 사워크라우트에는 사과와 서양 향료가 첨가된다는 정도다. 맛과 냄새도 김치와 유사하여 독일에서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들에게 사워크라우트는 김치 대용품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사워크라우트에 고춧가루와 돼지고기를 넣어 끓이면 김치찌개와 매우 유사한 맛이 나는데, 이 조리법은 선배 유학생들이 신참 유학생들에게 전해주는 중요한 비법에 속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김치와 사워크라우트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이들이 각각 두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음식이라는 것이다. 많은 독일인들은 사워크라우트가 게르만족 고유의 전통음식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특히 내가 유학하였던 바이에른 주 사람들 대부분은 사워크라우트가 바이에른에서 유래하여 독일과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고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동양에서 건너간 사워크라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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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워크라우트가 담긴 유리병. 17세기에 배추는 독일의 대표적 농작물 중 하나가 되었고, 사워크라우트는 독일 식단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출처: (cc) Bdubay at de.wikipedia.org>


역사가들에 따르면 배추를 소금에 절여 오랜 기간 두고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이미 선사시대부터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기록상으로는 그리스 로마 시대에 이미 양배추와 무를 소금에 절여 오래 보관해두고 먹었다는 것이 당대의 문헌을 통해 확인된다. 중국에서도 만리장성 축조에 동원된 백성들에게 쌀과 신 배추가 배급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것이 중국인들이 오늘날에도 담가 먹는 솬차이의 역사적 원형일 것이다. 배추에는 무기질과 비타민 등 인체에 필요한 요소들이 많이 들어 있고, 특히 인체 건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비타민C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배추를 소금에 절여 장기간 저장하여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채소와 과일이 부족한 동절기에도 배추에 함유된 비타민C를 우리 몸에 공급함으로써 인류의 건강에 커다란 공헌을 해왔던 것이다.

오늘날 독일인들의 식탁에 오르는 사워크라우트는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전해진 것이 아니라, 13세기 칭기즈 칸과 그 후예들에 의해 유럽에 전해진 중국의 솬차이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지구력이 강한 말을 무기로 삼아 동아시아에서 동유럽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이 기마민족은 안장주머니에 그들의 전통음식인 육포와 중국을 정복하고서 받아들인 절인 배추를 식량으로 가지고 다니며 전투를 벌였는데, 이것이 유럽에 전해졌다는 것이다. 솬차이는 ‘신맛 나는 채소’를 뜻하므로 사워크라우트와 의미상으로도 정확히 일치한다.

이후 식량으로서 배추가 지니는 가치가 알려지면서 14세기에는 독일에서 배추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근대 초에 접어들면서 배추농사는 독일 땅에 서서히 확산되었다. 그러다가 30년 전쟁(1618∼1648)으로 독일 경제가 황폐화되면서 배추는 값싸면서도 쉽게 배불릴 수 있는 서민 식단의 가장 중요한 재료가 된다. 이렇게 하여 17세기 이후 독일에서 사워크라우트는 모든 서민 가정에서 담가 먹는 대표적 음식이 되었으며, 특히 우리의 김장처럼 동절기에 대비해 반드시 마련해야 하는 음식이 되었다. 항로에 오르는 독일 선원들도 이 고향 음식을 배에 싣고 다니며 즐겨 먹었는데, 그 덕분에 사워크라우트는 18세기 대항해시대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의 주인공 역할을 맡으며 세계사 무대에 등장한다.



괴혈병의 정복자




대항해시대는 서양을 근대 이후 세계사의 주역으로 도약케 했지만, 그 시대의 첨병 역할을 한 선원들에게 항해란 극한의 고통과 위험을 의미했다. 이들은 극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된 노역을 하며 폭풍우, 해적, 질병 등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이 무서운 적들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귀향의 기쁨을 누리는 선원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단적인 예로서 사상 최초로 세계일주 항해에 성공한 마젤란의 선단은 다섯 척의 함대에 270명의 선원을 이끌고 출항했지만, 귀향한 것은 고작 한 척의 배와 15명의 선원뿐이었다. 당시 선원들에게 폭풍우와 해적보다도 더 무서운 적은 질병, 특히 괴혈병이었다. 장거리 항해에 나선 선원들 중 절반에서 4분의 3에 이르는 선원들이 괴혈병으로 죽어갔으니, 이 병은 폭풍우와 해적과 다른 질병 모두를 합한 것보다 더 무서운 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18세기까지 지속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1740년 조지 앤슨(George Anson, 1697~1762) 제독은 1955명의 선원을 이끌고 4년에 걸친 원정을 떠났는데 그 중 997명이 괴혈병으로 사망했다. 전투로 사망한 선원은 네 명에 불과했다.

괴혈병에 걸리면 잇몸에서 피가 나는 초기 증세를 시작으로, 온몸에 반점이 나타나고 사지가 점차로 마비되는 증상을 보인다. 이어서 이가 빠지고 피하출혈, 혈변, 염증과 더불어 몸 전체가 부패해 악취를 풍기다가 결국 갈증 속에서 극심한 고열과 경련을 일으키며 죽게 된다. 출항 후 6주 정도가 지나면 대부분의 선원들은 여지없이 이 무서운 병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로 당시 사람들은 이 병의 원인이 바다에 있다고 믿었다. 육지에 있는 생명 요소가 바다에는 없기 때문이라거나, 바다의 습기가 이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식이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정확하게 밝혀진 괴혈병의 원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이는 바로 비타민C 섭취가 부족할 때 생기는 병인 것이다. 비타민C는 우리 신체의 결합조직을 구성하는 콜라겐의 합성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데, 이것이 결핍되면 위에서 서술한 증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괴혈병의 치료법도 매우 간단해서, 비타민C가 풍부한 오렌지나 레몬 같은 과일류나 배추 같은 채소류를 섭취하면 증상은 금방 사라진다. 대항해시대의 가장 무서운 적 괴혈병의 원인은 과일과 야채가 빠져있던 당시 선원들의 식단에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신선한 야채나 과일이 괴혈병 치료에 특별한 효능이 있다는 사실은 대항해시대 초기부터 경험적으로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야채나 과일을 신선하게 장기간 보존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당시 상황에서 오랜 항해 중에 괴혈병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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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홀랜드(Nathaniel Dance-Holland), <제임스 쿡 선장의 초상화(Portrait of James Cook)>
1775년, 영국 국립해양박물관(National Maritime Museum, Greenwitch, United Kingdom) 소장.

세 차례에 걸친 남태평양 탐사를 통해 남극대륙, 호주대륙, 뉴질랜드를 발견한 제임스 쿡 선장은 그의 탐사선에 막대한 양의 사워크라우트를 싣게 하여 선원들의 식단에 정기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괴혈병 사상자를 내지 않고 항해를 마칠 수 있었다.


대항해시대 선원들의 숙적 괴혈병은 영국 해군 군의관 제임스 린드(James Lind, 1716∼1794)의 공로로 정복되었다. 1747년 그는 일종의 임상실험을 통해 오렌지와 레몬 등 감귤류 과일과 배추 등의 채소가 괴혈병치료에 ‘마술적인’ 효능을 보인다는 것을 입증했다. 또한 그는 독일 출신 선원들이 괴혈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그 이유가 이들이 즐겨먹는 사워크라우트 덕분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이러한 임상실험 결과를 그는 1754년 <괴혈병에 관한 논문(A Treatise on Scurvy)>을 통해 발표하고, 선원들에게 감귤류 주스와 사워크라우트를 제공할 것을 선장들에게 권했다.

이 논문에 최초로 주목한 선장은 저 유명한 제임스 쿡(James Cook, 1728∼1779)이었다. 그는 18세기 후반에(1768∼1771, 1772∼1775, 1776∼1779년) 세 차례에 걸쳐 남태평양을 탐험하여 남극대륙과 뉴질랜드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발견함으로써 영국의 식민지 정복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이 탐사 여행에서 그는 제임스 린드의 권고를 받아들여 항해를 떠날 때마다 3톤에 달하는 사워크라우트를 배에 싣게 하여 선원들의 식단에 올리게 하였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그는 장기간 지속된 항해에서 괴혈병 사망자를 내지 않고 고국으로 귀환했다. 이는 대항해시대의 역사에서 기적과도 같은 성과였다. 이 획기적인 업적으로 영국 선장 제임스 쿡과 독일 음식 사워크라우트는 18세기의 역사에 함께 이름을 남겼다.

이후 영국 해군에는 괴혈병 예방책으로 주로 레몬이 보급되었고, 독일 해군에는 사워크라우트가 식단에 제공되었다. 1차 세계대전 때 이것을 본 미군은 영국인을 라이미(Limey), 독일인을 크라우트(Kraut)라고 불렀는데, 오늘날 영어에서 독일인을 비하해 부르는 속어 크라우트는 여기에서 유래했다.



내 인사를 받으시라, 사워크라우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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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드(I. F. Rigaud), 제임스 쿡 선장의 제2차 남태평양 탐사에 참가했을 때의 포르스터 부자
1780년, 베를린 자유대학 식물원과 식물박물관(Botanischer Garten und Botanisches Museum Berlin-Dahlem, Freie Universität Berlin) 소장.

괴테, 훔볼트 등 당대 독일 지식인 독자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포르스터의 여행기는 최근 재발굴되어 언론과 학계는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여행기에서 포르스터는 쿡 선장이 탐사선에 실은 사워크라우트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18세기 이후 사워크라우트는 독일 문인들의 문학작품에서 조국의 맛과 냄새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찬사를 받으며 등장한다. 독일문학사에서 사워크라우트를 예찬한 최초의 중요한 사례는 게오르크 포르스터(Georg Forster, 1754∼1794)의 여행기 [세계일주 여행(Reise um die Welt)]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림에 재능이 있던 포르스터는 과학자였던 그의 아버지와 함께 제임스 쿡 선장의 제2차 남태평양 탐사대에 선발되어 항해에 참가했다. 게오르크 포르스터는 이 탐사 여행에서 보고 느끼고 기록한 것을 정리하여 자신이 직접 그린 수많은 그림들과 함께 1777년에는 영어로, 그리고 이듬해에는 독일어로 여행기를 펴냈다. 그는 이 여행기의 서문에서부터 사워크라우트를 거듭 예찬하고 있다. 이 여행기에서 포르스터는 60개의 거대한 통에 든 사워크라우트와 함께 탐사선에 올랐고, 이 음식 덕분에 쿡 선장의 탐사대는 저 무서운 괴혈병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포르스터 자신은 이 고국의 음식을 먹으며 향수를 달랬다고 보고하고 있다.

민중들의 삶에서 문학의 귀중한 소재를 발견한 낭만주의자들의 시에서 사워크라우트는 독일 식탁의 가장 중요한 음식으로 칭송과 찬양을 받게 된다. 울란트(Ludwig Uhland, 1787∼1862)의 다음 시는 그 대표적인 예다.


우리의 고귀한 사워크라우트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리.

독일인이 이것을 최초로 만들었으니,

이것은 분명 독일의 음식.

사워크라우트 속에 들어 있는 희고 연한 고기 한 점,

그야말로 그림이로구나.

장미 속에 들어 있는 비너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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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임(Moritz Daniel Oppenheim)이 그린 하인리히 하이네의 초상
1831년, 독일 함부르크 미술관( Hamburger Kunsthalle) 소장.

고국 독일에 대한 향수 그리고 당시 독일의 정치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뛰어난 필치로 그려낸 그의 여행시집 [독일 겨울동화]에서 하이네는 사워크라우트를 게르만족의 대표적 음식으로 노래하고 있다.


괴테와 더불어 독일 최고의 서정시인으로 꼽히는 하이네(Heinlich Heine, 1797∼1856)도 사워크라우트를 조국의 음식으로 찬양하였다. 하이네의 [독일 겨울동화(Deutschland Wintermärchen)]에 나오는 다음 구절은 독일문학사를 통틀어 사워크라우트를 노래한 가장 유명한 예로 남아 있다.


식탁이 차려졌다. 이 식탁에서 나는

온전한 옛 게르만식 음식을 본다.

내 인사를 받으시라, 나의 사워크라우트여,

그대의 냄새는 참으로 사랑스럽구나!

위의 시에서 “내 인사를 받으시라, 나의 사워크라우트여”라는 구절은 사워크라우트를 소개하는 글에 빠짐없이 인용되고 있으며, 독일 음식을 소개하는 책의 제목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독일 겨울동화]는 시로 쓴 여행기다. 하이네는 나폴레옹의 패전 후 메테르니히가 주도한 왕정복고시대의 억압적 체제를 비판하다가 검열 당국의 요시찰인물이 되어, 1831년 이후의 생애를 프랑스 파리에서 망명객으로 보내야 했다. 망명 후 12년이 지난 1843년에 그는 독일에 잠입하여 가을과 겨울에 걸쳐 고국을 여행하는데, 이때의 체험을 장편 시로 읊은 것이 [독일 겨울동화]다. 이 여행시의 제9장에서 그는 쾰른을 거쳐 하겐에 도착했을 때 그의 앞에 차려진 전형적인 독일식 식탁을 보며, 그리웠던 조국의 음식을 뛰어난 시어로 묘사하고 있다. 위의 시는 그중 첫 번째 음식으로 사워크라우트를 노래한 것이다.

그 외에도 독일문학사에서 사워크라우트를 예찬한 유명한 예로는 에두아르트 뫼리케의 시와 빌헬름 부쉬의 시가 있다. 앞에서 인용한 두 시에서 사워크라우트는 “독일인이 최초로 만든 독일의 음식”, “옛 게르만식 음식”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는 역사적으로 볼 때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그 기원과 상관없이, 이 시들은 사워크라우트가 독일인의 의식에 조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음을 증언해준다. 또한 이 시들은 사워크라우트를 게르만족의 대표적 음식으로 독일인의 의식에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18세기의 맛'은 한국18세기학회의 기획으로서, 문학동네와 함께 합니다. 1454742066850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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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찬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서강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에서 독문학ㆍ철학ㆍ예술사를 공부하고, ‘숭고’의 개념사에 대한 논문으로 서강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문학사회학을 비롯한 현대문학 이론에 흥미를 느껴 공부의 길로 들어섰다가, 한동안은 통일 이후 독일 사회상에 대해 연구하였으며, 최근에는 18세기 독일 문화에 관심을 쏟고 있다. 앞으로는 독일지성사와 매체이론 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다. [숭고의 미학], [이성과 감성의 평행선], [변화를 통한 접근] 등의 저서와 <전인교육으로서의 인문학: 독일 신인문주의의 ‘교양’(bildung)사상>, <헤르더의 중국과 크리스티안 볼프의 중국>, <아방가르드와 매체> 등의 논문은 이런 갈지자 학문적 행보에서 나온 소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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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8세기의 맛: 취향의 탄생과 혀끝의 인문학 2014.02.28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의 18세기를 다채롭고 참신한 시각으로 연구하는 한국18세기의 학회의 첫 프로젝트 결과물, <18세기의 맛>이 책으로 나왔다. 18세기의 '맛'을 중심으로 세계사의 흥미로운 단면을 맛깔나게 서술했다. 23명 인문학자의 시각으로 18세기의 동서양을 뒤흔든 맛과 그 맛에 얽힌 흥미로운 현상을 살펴보는 일에 동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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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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