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한니발 원정 (2) - 한니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땅을 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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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69회 작성일 16-02-0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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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의 이동 루트.





‘한니발 원정’ 개요


· 장정의 주인공들 : 한니발과 그를 따르는 카르타고인 및 에스파냐, 누미디아, 골 등의 용병들

· 장정 시기 : BC 218~BC 203

· 장정 경로 : 에스파냐-프랑스 남부-이탈리아-카르타고

· 장정 거리 : 약 4천Km

· 관련 링크 : 지식백과 결과보기




한니발, 게으르게 출정하다?



사군툼은 로마의 원군이 오지 않는 상태로 분전하다가 8개월 만에 함락되었고, 이때 한니발은 허벅지에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런데 곧바로 행동에 들어갈 줄 알았던 그는 ‘바르카스(번개)’라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굼뜬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원전 218년 초에 전쟁 결정을 들었으면서 석 달이 지난 뒤에야 사군툼에서 출발해 에브로 강을 넘었고, 그 뒤에도 또 석 달 이상을 지체하다가 218년 9월에야 본격적으로 출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그는 가데스의 멜카르트 신전을 방문해 어린 시절의 맹세를 되풀이하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무찌르라”는 바알 신의 신탁을 꿈속에서 받았다고도 하고, 사군툼을 약탈해서 얻은 재화를 용병대에게 나누고 일부는 카르타고 본국으로 보내 전쟁에 대비하도록 하였으며, 에스파냐 본거지를 위해 동생인 하스두르발에게 4만의 병력을 주어 지키도록 하고, 아내 이밀케와 갓 태어난 아들을 카르타고 본국으로 피신시키는 등의 조치들을 두루 취했다. 그리고 마침내 약 6만의 병력(보병대 5만, 기병대 1만)으로 피레네 산맥을 넘어 남프랑스로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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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카푸아에서 발견된 한니발의 흉상. 하지만 후대에 상상에 근거해 만들어진 것이며 그의 실제 모습은 아무도 모른다.



한니발의 군대는 카르타고인, 에스파냐인, 골 족 등이 섞여 있는 ‘다국적군’이었으며, 여기에는 당대 최강의 위력을 자랑하는 누미디아(Numidia: 알제리 북부에 해당하는 북아프리카의 고대 지명) 기병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37마리의 코끼리도 있었다. 한니발은 이 코끼리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써서, 역사가 중에는 “그는 병사보다 코끼리에 더 연연했다”고 조롱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코끼리는 고대의 탱크라고 하지만, 기계가 아닌 살아 있는 동물이므로 훈련된 코끼리라도 전장에서 멋대로 움직이는 일이 많았고, 도리어 아군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로마군의 경우 이전의 전쟁에서 코끼리를 많이 겪어 보았기 때문에 그 거대한 몸집이 주는 위압 효과도 적었다. 카르타고의 전투 코끼리는 아시아 코끼리와는 달리 등에 일종의 포탑을 올려놓고 그곳에서 화살이나 투창을 발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전투력은 더더욱 신통치 않았다. 그의 가장 빛나는 승리가 될 칸나에 전투에서는 한 마리의 코끼리도 등장하지 않은 반면, 가장 뼈아픈 패배인 자마 전투에서는 아군 코끼리들의 난동이 패배의 원인을 상당수 제공했다. 그래도 한니발은 코끼리를 어떻게든 전쟁터로 끌고가기 위해 많은 노력과 희생을 감수했다.

그 까닭은, 아마도 골 족을 겨냥한 전시 효과가 크게 계산되었을 것이다. 한니발은 남프랑스에서 알프스 일대에 걸친 골 족의 협력을 절실하게 필요로 했다. 수적으로 압도적인 데다(또 다른 로마 역사가, 폴리비우스는 당시 로마가 동원할 수 있던 병력을 77만이라고 기록했다. 그것은 다소 과장이더라도, 최소 십만 대의 병력이 동원 가능했음은 확실하다) 전투력도 강한 로마군을 상대로, 게다가 적지에서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최근까지 로마와 싸웠던 골 족을 같은 편으로 만들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다(거꾸로 그들이 로마 편에 붙어 한니발의 뒤통수를 치거나, 에스파냐를 공격한다면 그야말로 최악일 것이었다). 그런데 로마군이야 코끼리를 많이 봤지만 골 족으로서는 거의 처음 보는 이 동물에게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으며, 그런 동물들을 이끄는 한니발에 대한 외경심을 품고 그 군세를 실제 이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니발이 피레네 산맥을 넘기 전뿐 아니라 넘은 후에도 한동안 “미적거린” 까닭도 같은 선에서 설명이 된다. 당시 그는 한때 하루 평균 4킬로(40킬로가 아니다)라는, 행군이라기보다 유람 수준의 속도로 움직였다. 그 까닭을 두고 [한니발 왕조]를 쓴 덱스터 호요스는 “로마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고 읽었다. 당시 로마가 두 집정관이 이끄는 군대를 모두 에스파냐 쪽으로 보내느냐, 둘로 나누어 한쪽은 에스파냐로, 다른 한 쪽은 카르타고로 보내느냐를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전자라면 중간에 가로막아 전멸시킨다. 후자라면 에스파냐 방면의 적을 우회하여 곧바로 이탈리아로 쳐들어간다. 어느 쪽이든 로마는 일시적인 병력 공백 상태를 겪게 되어, 무릎을 꿇게 되리라!

그런 분석도 그럴듯하지만, 역시 골 족과의 관계 때문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로마나 카르타고처럼 단일 정치체가 아니었던 골 족은 여러 부족들과 일일이 협상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며, 그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도 고려해서 신중한 행보를 택해야 했다. 게다가 빠른 행군을 하려면 휴대 식량을 적게 가져가야 하고, 그러면 약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랬다가는 골 족을 적으로 돌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




론 강 도하 작전



기원전 218년 가을, 한니발은 원정 이후 처음으로 중대한 문제에 부딪쳤다. 바로 남프랑스를 관통하는 론 강이었다. 피레네 산맥은 비교적 수월하게 넘었으나(그래도 일부 산악 주민들의 습격 등으로 피해를 보았으며, 에스파냐와의 통로를 확보해두기 위해 상당수의 병력을 남겨둬야 했다), 너비가 넓게는 약 1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강을, 무엇보다도 코끼리들을 데리고 건너는 일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게다가 그들에게 적대적이라고 알려진 볼카에 족이 강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정보까지 더해졌다.

그러나 지체할 수도 없었다. 집정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Publius Cornelius Scipio, BC ? ~ BC 211)가 이끄는 로마군(다른 집정관,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가 이끄는 군대는 시칠리아로 갔다)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만약 강을 건너는 중에 공격을 받는다면, 한니발의 야망은 이탈리아에 발을 디뎌보지도 못한 채 스러질 판이었다.

한니발은 강을 따라 하루를 꼬박 걸어, 비교적 너비가 좁은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강을 건너기로 했다. 보병은 목제(木製) 방패를 강에 띄우고 그 위에 엎드려 손으로 물살을 헤치며 건넜고, 기병은 근처에서 쓸어온 나룻배와 새로 만든 뗏목을 이용해 건널 수 있었다. 문제는 코끼리였다. 물을 무서워하는 이 짐승을 위해 나무로 다리를 만들어보려 했지만, 큰 강을 가로지를 만한 다리를 만들기에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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뗏목에 코끼리를 태우고 론 강을 건너는 한니발 군의 상상도. 그러나 카르타고의 전투 코끼리는 그림과 달리 등 위에 포탑을 설치하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아시아 코끼리와 달리 전투력이 신통치 않았다.



이참에 급보가 들어왔다. 로마군이 이제 그야말로 지척까지 왔다는 것이었다. 한니발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코끼리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도하를 포기하고 다른 도하 지점을 찾아 떠날 것인가? 그는 결국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만들다 만 다리의 옆에 목책을 높이 세우고, 남은 목재로 큰 뗏목(길이 60미터, 너비 15미터)을 만들도록 했다. 다리를 건너가는 동안 코끼리가 강물을 보지 못하게 해서 두려움을 없애고, 다리에 덧댄 뗏목에 올라서면 천천히 출발시켜서 강 저편으로 코끼리를 옮기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게 한 것이다. 한니발은 또 암컷 코끼리들을 먼저 보내라고 했다. 코끼리도 수컷은 유달리 야단스러웠던 모양인데, 그래도 암컷의 뒤꽁무니를 따라 불만과 공포를 억누르고 뗏목에 올라타리라고 본 것이다. 수컷이란 그런 존재니까.

이런 조치로 상당수의 코끼리가 론 강을 건널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몇 마리는 뗏목 위에서 놀라 요동쳤으며, 끝내 타고 있던 병사들과 함께 물속으로 빠졌다. 한니발의 병사들은 살려달라는 동료들의 비명과 코끼리의 귀를 찢는 울음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떨구며 도하 임무를 완수했다.




알프스를 넘어라!



겨우겨우 강을 건넌 한니발 군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볼카에 족과의 일전을 대비했지만, 의외로 그들은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고생 끝의 다행을 각자의 신들에게 감사하며, 한니발 군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스키피오의 로마군이 도착한 것은 사흘 뒤였다. 그는 간발의 차이로 한니발을 놓쳤음을 알고는 병력을 둘로 나누어 자신은 뒤를 돌아 한니발을 쫓고, 나머지는 에스파냐를 공략하도록 했다.

한편 한니발 군은 한 달 가량의 행군을 계속, 마침내 알프스의 눈 덮인 봉우리들이 내다보이는 곳까지 이르렀다. 막상 알프스를 눈앞에 보자 동요하는 병사들이 적지 않았는데, 한니발은 그들에게 이렇게 연설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미 놀라운 일을 해냈다. 피레네를 넘고, 론 강을 건너지 않았는가? 저 알프스가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넘나들고 있다. 일찍이 로마인의 조상들은 아이를 업고, 양과 염소를 끌고, 저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갔다. 우리 용사들이 똑같은 일을 해내지 못할 까닭이 무엇인가?”

사실 그랬다. 알프스를 넘는 일 자체가 누구도 꿈꿀 수 없을 만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대규모의 군대가”, “코끼리와 말, 소 등을 이끌고”, “빠른 속도로”, “한겨울에” 넘지 않을 경우의 이야기였다. 때는 이미 11월, 아직 산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도 서리가 내리고 눈발이 날리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뒤에서는 스키피오가 맹렬히 쫓아오고 있었고, 앞에서는 알프스 고산 부족들과의 협력의 약속을 제대로 받지 못한 형편에서, 전력이라기보다 애물단지에 가까웠던 아프리카 코끼리들을 끌고 밀며 눈과 얼음으로 덮인 가파른 능선을 오르내려야 했다! 그것도 최대한 빠르게! 살을 에는 칼바람과 앞이 안 보이는 눈보라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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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의 산봉우리들 사이로 빙하가 흐르는 모습. 한니발이 정확히 어떤 루트로 이 산맥을 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출처: (cc) Robiand at en.wikipedia.org>



그들이 택한 경로가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는 아직도 역사학계의 논쟁거리로 남아 있지만(어떤 학자는 부대가 둘로 나뉘어 넘었으리라고 추정한다), 아무튼 그들은 알프스에 발을 디디고 처음 9일 동안은 계속 올라가기만 했다. 거의 첫날부터 산악 부족의 공격이 쏟아졌고, 간신히 한 줄로 서서 건너갈 수 있는 협로에서 습격을 받다 보니 패닉에 빠져 서로 먼저 가려고 밀다가 낭떠러지로 말과 사람이 함께 우르르 떨어져내리는 참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니발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으며, “멈추지 말고, 서두르지도 말고, 계속 전진하라!”고 소리쳤다. 허둥지둥하다보면 정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말을 달려 산악 부족의 진지 한가운데로 뛰어들었고, 그들을 내쫓아버림으로써 동요하던 군심을 단숨에 잠재웠다.

한니발은 계속해서 측근 병사들과 함께 산악 부족 마을을 공격, 병사들을 먹일 식량을 빼앗아 돌아왔다. 원정 초기에 그가 취했던, 전투보다는 외교에, 과감함보다는 신중함에 치중하던 자세는 새로운 환경에는 적합하지 않았기에 단숨에 벗어던지고, 용맹무쌍한 지도자의 모습을 과시했던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가장 단련된 병사들과 함께 대열의 후위를 맡아 산을 올랐다. 그곳이 가장 위험한 위치였던 것이다.

산악 부족들은 숨을 죽이고 있다가 카르타고 군이 봉우리를 대략 올라갔다 싶으면 일제히 뛰어나와 대열의 마지막을 집중 공격해오곤 했다. 한 번은 그런 공격을 막던 한니발의 부대가 본대와 떨어져서 고립된 적도 있었다. 그들은 불도 식량도 없이 하룻밤을 알프스의 산기슭에서 지새웠고, 다음 날 가까스로 본대에 합류해보니 이미 상당수의 병사들이 대열을 이탈하거나 산악 부족에게 살해, 또는 물자를 약탈당한 뒤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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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를 넘는 한니발 군을 그린 상상도. 위험의 순간마다 한니발은 용맹한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과시하며 병사들을 이끌었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 전진했다. 사실 살기 위해서는 전진이 가장 나은 방법이었다. 9일이 지나고 나자 길은 대체로 내리막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길은 이전의 길은 비교도 안 될 만큼 위험했다. 오래 전에 내린 눈이 딱딱하게 굳어진 위로 새로 내린 눈이 살짝 덮인 부분, 그곳을 디디면 사정없이 미끄러졌다. 병사들은 우당탕 하고 미끄러지는 소리와 돌 구르는 소리, 그리고 사람이나 말의 구슬픈 비명 소리를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끊임없이 들어야 했다. 도와줄 수도 없었다. 다음 걸음이 자신의 죽음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잔혹한 눈은 내리고 또 내렸다. 코끼리들은 공포와 추위로 몸이 오그라붙은 듯했고, 여러 병사들이 사방에서 붙잡고 조심조심, 거의 들고 나르듯이 몰고가야 했다. 그렇게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산악 부족들이 굴려내리는 바위들이 뒤에서 덮쳐왔다.

차라리 전쟁터에서 쓰러지는 편이 나을 것을, 지칠 대로 지친 병사들이 이렇게 생각하며, 저마다의 고향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후미에 있던 한니발이 앞으로 달려나왔다. 그리고 손을 뻗어 능선의 저 멀리를 가리켰다. “봐라! 포 강이 흐른다! 저기가 이탈리아다! 마침내 우리는 로마를 발밑에 두고 있다!” 다 죽게 생긴 마당에 이탈리아는 무슨 얼어죽을, 이 말이 병사들의 목구멍까지 올라오던 찰나 그는 나무를 베고, 바위를 조각내 던져서 죽죽 미끄러지는 능선에 발 디딜 곳을 만들라고 했다. 리비우스는 한니발이 큰 바위를 불에 달군 다음, 병사들의 보급품인 산도가 높은 포도주를 그 위에 쏟아부어 쪼개지게 했다고 한다(사실 포도주가 얼마나 시고 얼마나 많았는지 모르지만, 바위를 쪼갤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고, 주로 열의 힘으로 쪼개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생명수와 같은 포도주를 아낌없이 써서 한 줄기 생존의 길을 연다는, 실로 숭고한 체험으로써 병사들의 영혼을 흔들었으리라). 그 바위 조각들과 나뭇가지의 잡동사니를 켜켜이 쌓고 다짐으로써 가파른 설원에 대충 길이 생겼고, 그 길로 코끼리들도 내려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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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에 위치한 마터호른. 최근 한니발 군이 이 봉우리 옆을 지나갔을지 모른다는 근거가 발굴되었다. <출처: (cc) Sunna at en.wikipedia.org>





알프스를 넘는 동안 한니발 군의 희생은 엄청났다. 출발할 때의 병력은 6만이었으나 알프스를 내려왔을 때의 병력은 2만 6천에 불과했다.




그러나 역시 희생은 컸다. 한니발 군이 알프스를 내려왔을 때 병력은 당초의 6만에서 2만 6천(보병 2만, 기병 6천)으로 줄어 있었다. 물론 알프스에 닿기 전에 이미 상당수가 이탈하거나 사망했지만(에스파냐의 어느 부족은 피레네를 넘을 때까지 군단의 최종 목표를 몰랐다가, 알프스를 넘는다는 말을 듣자마자 보따리를 싸버렸다), 알프스에서의 병력 손실은 아마 한니발조차도 예상하지 못했을 수준이었다. 그토록 고생하며 끌고온 코끼리들도 결국 단 한 마리만이 이탈리아 땅을 밟았다. 강에 빠지거나 벼랑에 떨어진 수도 많았겠지만, 극심한 스트레스와 굶주림(코끼리의 엄청난 식사량을 생각할 때, 알프스 산꼭대기에서 제대로 배를 채웠을 리 만무하기에)으로 숨져간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사람과 동물의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15일 동안의 알프스 횡단, 어쨌든 그 고난은 이제 끝났다.

기원전 218년 12월, 마침내 로마는 건국 이래 최대의 공포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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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진 | 서울교육대학교 교수/역사저술가
글쓴이 함규진은 여러 방면의 지적 흐름에 관심이 많다. 정치학을 전공하여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 주로 역사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썼고, 인물이나 사상에 대한 번역서도 많이 냈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보수와 진보 등 서로 대립되는 듯한 입장 사이에 길을 내고 함께 살아갈 집을 짓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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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4.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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