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실학적 관심, 실용생활적인 전통식물분류법 - 과실과 나실, 과채류와 나채류의 생태자연학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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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63회 작성일 16-02-0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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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의 호흡, 전통식물분류법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 자연에 자라는 풀과 나무 중에서 인간사회에 가까이 다가와 서식하는 초목들이 있다. 이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기꺼이 불러주는 이유는 그 초목들이 인간의 생명 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긴 역사를 지나는 사이에 어느 덧 의미있는 풀과 나무에는 각자의 이름을 부여받아 인간사회와 더욱 밀접한 거리에서 함께 살아간다. 그래서 의미있는 것에는 다 이름이 있고, 이름이 붙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에 여기서는 근대생물학이 도입되기 이전 우리 역사자료에 전승되었던 전통식물의 분류법은 어떻게 되었고 명칭법은 어떠한지를 엿보고자 한다. 이 연구는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융합연구를 필요로 하는 분야여서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조선은 문헌의 나라여서, 당시에 저작된 많은 문헌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갈 수가 있다. 실학적 지향성은 사소한 듯하나 일상주변을 깊이 고찰하여 일상의 유용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을 이른다. 흔히 논해지는 실학적 사변은 관념학의 영역이라 할 것이며, 자연물의 구별과 체계 수립에 경주하는 노력이야말로 실학적 관심의 근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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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자연과의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며 전통식물에 대한 실학적 연구를 해왔다. <연합뉴스 제공>



전통식물 관련 자료는 당시 문물전장제도에 관한 지식 전반을 백과전서식으로 집성한 류서류(類書類) 문헌을 비롯하여, 농사 위주의 농서류(農書類) 문헌, 가정생활의 경영을 위한 산림서류(山林書類) 문헌, 약용식물의 약능에 초점을 둔 본초류(本草類) 문헌들에 대폭 개진되어 있고, 문인들의 수많은 문집류와 음식조리를 다룬 한글음식서류에도 식물에 관한 지식과 일단면들이 수록되어 있다.

고려 이전의 연구는 차치하더라도 조선시대 문헌들로부터 전통식물의 연구를 축적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전통식물이 한의학의 본초서에 크게 수록되어 있긴 하지만 이를 약용학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과 식물분류학 관점으로 분석하는 것에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근대식물분류학 시대로 오면 더욱 심각해진다.

아래는 범위를 좁혀 조선시대 고문헌들에 고심되었던 전통식물의 분류체계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 내용은 실학적 관심으로 접근된 생태자연학의 보고서라 할 수 있으며, 과수원과 텃밭에서 자라는 초목 열매를 원형의 과실(과수열매)과 타원형 나실(채소열매)로 구별하고, 곡식 다음으로 중요한 식재료인 채소와 과수를 과채류 혹은 나채류로 분류하려던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조선시대 『향약집성방』과 『동의보감』의 본초 식물분류법 비교



전통시대 식물의 이야기는 향약서 문헌으로부터 시작한다. 조선 초 세종대왕훈민정음만 창제한 것이 아니라 우리말 식물명 정리에도 관심을 기울여 13년간의 준비 끝에 세종 15년 방대한 『향약집성방』(85권 30책, 1433)을 편찬케 하였고, 그 중 마지막 부분에 「향약본초」(권76-85)를 수록하여 당시 식물지식의 집대성을 도모하였다. 이보다 2년 앞서 우리 산하에 자라는 토산 약용식물의 분포실태를 조사하여 비록 짧은 분량이지만 『향약채취월령』(1권 1책, 1431)을 편찬토록 하였고, 여기에 155종의 향약이 향명 143종과 한자명 134종이 대응 수록되었다. 이 때 향약(鄕藥)은 우리나라 자연환경에서 생식하는 토산물로서의 약초를 지칭하는 말이며, 향명(鄕名)은 우리말 이름을 뜻한다. 향명과 같은 말로 속명(俗名), 토명(土名) 등이 있다. 그리고 본초라는 말은 약재가 식물이 아닌 광물과 동물까지 포괄하고 있지만 약용식물을 근간으로 삼아 제약하는 까닭에 풀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뜻의 본초(本草)로써 대표하여 총괄한 이름이다.

『향약본초』(1433)에 수록된 식물은 초부, 목부, 과부, 미곡부, 채부의 5부 분류법으로 편장하였다. 「초부」에는 국화, 인삼, 천문동 등 170종을 수록하였고, 「목부」는 소나무, 회화나무, 산초나무, 수양버들, 이스라지(郁李), 떡갈나무 등 55종을, 「과부」는 연밥, 귤, 대추, 밤, 포도, 복분자 등 27종을, 「미곡부」는 호마(검은참깨), 대두(콩), 소두(팥) 등 24종을, 「채부」는 아욱(동규), 동와(동과), 들깨(임자), 일일화(황촉규화) 등 39종을 수록하여 총 315종에 이른다.
초목류를 앞세우고 다음에 과실류와 미곡류를 이었고, 마지막으로 채소류를 등재한 것이다.

채소 이름 중에 흥미로운 점은 제(薺)의 향명으로 '냉이' 외에 사투리로만 여기던 '나생이'를 나란히 제시하였고, 현재 부추로 불리는 구(韭)는 당시 향명으로 ‘솔, 정구지, 염지’라 하였고, 반면에 해(薤)는 향명으로 ‘부추, 염교’라 하였다. 즉, 현재 구(韭)는 부추, 해(薤)는 염교로 구분하지만, 세종조 당시에는 구(韭)가 정구지 또는 솔이고, 해(薤)가 부추로 불렸던 것이다. 또 (瓜)가 오이가 아니라 참외를 지칭하는 용법이 보이는데, 과체(瓜蔕)의 향명으로 ‘참외꼭지(眞瓜蔕)’라 한 점이 그렇다. 오이의 당시 향명은 ‘외, 물외’였고 한자어는 호과(胡瓜)이며, 첨과(甛瓜)의 향명이 ‘참외’라 하였다.

조선 중기 허준(1546-1615)의 『동의보감』(1610)은 세종조의 『향약집성방』 분류 체제를 계승하되 더욱 많은 종수를 수록한 것인데, 그 본초편이 「탕액편(湯液篇)」이란 편명으로 수록되어 있어 본초류란 탕액을 짓기 위한 재료임을 강조하였다. 『동의보감』에 수록된 본초이므로 이 부분을 『동의본초』라 부르고자 한다. 그 분류방식은 『향약본초』와 동일한 5부 분류법이되, 순서가 바뀌어 곡부, 과부, 채부, 초부, 목부의 순서로 등재되었다. 「곡부」를 앞세운 이유로 “천지간에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오직 곡식일 뿐이다.”라고 강조하였다. 수록한 식물 종수는 곡부 25종, 과부 42종, 채부 78종, 초부 212종, 목부 102종으로 도합 459종에 이르며, 『향약본초』보다 대폭 증대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중 채소류 중심으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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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명의 허준의 ‘동의보감’(국보 제319호)



수량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명칩법과 분류법에서 차이나는 점도 적지 않다. 구(韭)와 해(薤)에 대해 각기 ‘부채[ㅊ+ㆍ+ㅣ]’와 ‘염교’로 불러 현재 명칭법이 『동의보감』 단계에서 재정리된 것을 보여준다. 「과부」에 있던 토란(芋子), 올매(烏芋)가 『동의본초』에는 「채부」로 옮겨져 이들을 과실류가 아닌 채소류로 재분류하고 있다.

『향약본초』에는 아직 수박(西瓜)이 등록되지 않았고, 더덕, 참외, 생강 등이 「채부」가 아닌 「초부」로 등재되었고, 토란(芋)이 박과류가 아닌 과실류로 분류되었으며, 연과 가시연 등도 과실류로 포괄하였다. 들깨(荏子)가 곡류가 아닌 「과부(果部)」로 수록되었고, 마늘이 호(葫)로, ‘달래이’가 산(蒜)으로 표기되고 있다.

『동의본초』에는 흔히 동일한 배추명으로 알려져 있는 배채(菘菜)와 머휘(白菜)가 별개 품목으로 증보되었고, 시금치(菠14547436756798.png), 부루(萵苣), 근대(莙薘), 죽순(竹笋), 두릅(木頭菜), 달랑괴(野蒜) 등도 추가되었고, 미나리류인 사근(渣芹), 고사리류인 회초미(蕨菜薇), 국화과인 물쑥(蔞蒿), 콩과류인 거여목(苜蓿), 꿀풀과인 정가(荊芥) 등도 증보되었다. 지금은 상추라 부르는 와거(萵苣)를 ‘부루’라 부른 점도 인상적이다.

또한 박과류인 수박(西瓜), 월과(越瓜), 수세외(絲瓜), 단박(甛瓠)의 4종과 구근류인 생강(生薑), 더덕(沙蔘), 도랏(桔梗) 등이 추가된 점이 주목된다. 아직 호박(南瓜)은 등록되지 않았다. 분류 관점이 달라 『향약본초』가 수록하지 않았던 버섯류인 목이(木耳), 상이(桑耳), 괴이(槐耳), 표고(蘑菰), 석이(石耳), 송이(松耳), 균자(菌子)의 7종 및 해조류인 머육(海菜), 말(海藻), 다시마(海帶), 곤포(昆布), 김(甘苔), 청각채(鹿角菜)의 6종을 『동의본초』은 「채부」로 수록하였다. 이에 채물(菜物)의 범주가 과물(瓜物)에서 버섯, 해조류까지 넓게 지칭되는 기초를 제시하게 되었다.

이처럼 170년을 사이에 둔 조선 전기의 『향약본초』와 조선 중기의 『동의본초』 사이에 이미 채소, 과실을 비롯한 식물 전반에 대한 분류와 명칭법에 변화가 생겼음을 보여준다.




조선후기 농서와 산림서에 보이는 식물의 분류와 명칭법 면모



토마토가 채소인가 과일인가 하는 문제는 지금도 혼동되기 마련이며, 호박이나 외가 채소류인가 아니면 과류(瓜類)로 불러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생각보다 어려운 지점이 있다. 조선시대 식물서들 역시 이런 문제를 고심하여 제각기 다른 분류 방식을 수록하여 왔다. 이 문제를 농서와 산림서 문헌을 통해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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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 박세당(朴世堂.1629~1703) 초상화



양란 후 실학적 관심의 발로로 주목되는 박세당(1629-1703)의 농서 『색경』(1676)은 『동의보감』에서 66년 지난 시기의 산물을 수록하고 있다. 그 <서문>에서 “이 책에는 구곡(九穀)과 백과(百果)를 갖추었고, 과표(瓜14547436770108.png), 소채(蔬菜), 마시(麻枲) 따위와 재목(材木), 화약(花藥)의 식물을 흥업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에 따라 상권에서는 농사의 주된 대상을 “제곡(諸穀)과 제과채(諸瓜菜) 및 제과(諸果), 제수(諸樹), 제화약(諸花藥)”의 다섯 종류로 분류하여 각기의 농사법을 수록하였다.

주목되는 점은 채소류 식물을 『향약본초』와 『동의본초』처럼 「채부(菜部)」로 분류명을 삼지 않고 <과채류(瓜菜類)>로 달리 내세웠다는 점이다. 그 구성에서 오이, 수박, 동아, 박 등의 과류를 먼저 수록하였고, 파 부추 상추 등 채류를 뒤로 배열하였다는 점에서 과류(瓜類)와 채류(菜類)를 구분한 관점이 보인다. 또 버섯과 들깨, 잇꽃 등을 포함하고 있어, 채류를 넓게 분류하고 있다. 『색경』에 병기된 한글 명칭을 보면 상추를 여전히 ‘부루(萵苣)’로 불렀으며, 동아라 일컫는 동과(冬瓜)는 ‘동화’, 순무로 칭하는 만청(蔓菁)은 ‘쉰무우’라 부르고 있다.

수박(西瓜)에 대해 『색경』은 『동의보감』과 마찬가지로 채소류로 분류하였고, 19세기 『임원경제지』의 「정조지」는 이전 문헌들과 다르게 과실류인 <과류(果類)>로 분류하였다. 또 참마(薯蕷)의 경우, 「정조지」는 <과류(果類)>에, 『색경』은 <화약류(花藥類)>에 수록하여 차이를 보인다.

조선 중기 가정생활백과전서 성격의 처음을 연 홍만선(1643-1715)의 『산림경제』(1718)는 『동의보감』보다 꼬박 100년 뒤, 『색경』보다는 42년 뒤의 편찬물이며, 18~19세기 각종 산림서류와 농서류, 조리서 등에 널리 인용된 책이어서 고찰의 가치가 높다. 한두 가지를 짚어보면, 참외(甛苽, 眞菰)와 오이(苽, 胡苽, 黃苽)를 둘다 ‘외’라 표기하였고, 『동의보감』과 마찬가지로 숭채(菘菜)인 ‘배채’와 백채(白菜)인 ‘머휘’를 구분하였다. 무엇보다 『산림경제』는 『동의보감』과 『색경』에 없던 후일 고추로 칭하는 남만초(南椒)를 처음 수록하였고, 별칭으로 왜초(倭椒)라 하였다. 또 앞서 수록되지 않았던 곰취의 곰달래(熊蔬)와 동취(冬蔬) 등이 새로 증보된 점도 주목된다.

이 『산림경제』를 그대로 전재하면서 더욱 증보한 유중림(1705-1771)의 『증보산림경제』(1766)는 그보다 50년 뒤에 나온 책인데, 여기에서 남과(南苽)가 새로 증보되었고, 와거(萵苣)의 향명이 『동의보감』 및 『산림경제』의 ‘부로’가 아닌 새로운 ‘생[ㅅ+ㆍ+ㅣ+ㅇ]채’로 처음 개칭되었다. 이 말이 후일 상추로 정착된다. 또 <산야채품(山野菜品)>을 따로 설정하여, 낭히(薺), 말낭이(馬薺), 비름(莧, 馬齒莧), 산갓(山芥), 고잣박기(苦菜), 숌지(小蒜), 달내[ㄴ+ㆍ+ㅣ](野蒜), 돌내[ㄴ+ㆍ+ㅣ]물(石菜), 싀화(苦苣) 등 야생 나물류를 별도의 분류로 수록한 점도 주목된다.

다시 한 세대를 지나 편찬된 서호수(1736-1799)의
해동농서』(1799)는 채소류를 <과류(瓜類)>와 <채류(菜類)> 및 <과류(果類)>로 분리하여 수록한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과류(瓜類)>에서 “외(黃瓜), 참외(甛瓜), 수박(西瓜), 동화(冬瓜), 호박(南瓜), 박(匏), 가지(茄)”의 7종을 수록하였는데, 이렇게 분명하게 박과류를 <과류(瓜類)>로 별도의 분류명으로 수록한 것은 『해동농서』가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해동농서』는 들깨(荏. 俗名水蘇麻. 又稱水荏)를 참깨(脂麻. 俗名眞荏)와 함께 <곡류(穀類)>로 배속함으로써, 『향약집성방』, 『동의보감』, 『색경』, 『산림경제』 이래 <채류>로 분류하던 인식을 크게 바꾸어 놓은 의의가 있다.




풀열매 나실(蓏實)과 나채류(蓏菜類)의 전통식물분류학적 의의



한편 서호수의 부친이자 서유구의 조부가 되는 서명응(1716-1787)의 『농정본사』(1787)는 조선 후기 문헌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전통식물분류학 체계를 보인 작품이다. 이 책은 그의 문집인 『보만재총서』(23~34권)에 본사(本史)』란 이름으로 실린 것이며, 농정(農政)을 위한 역사서를 쓰겠다는 자서(自序)의 편찬 의도를 잘 드러내도록 필자가 농정이란 말을 추가한 『농정본사(農政本史)』로 개칭하여 내용이 쉽게 전달되도록 하였다.

서명응은 이 책을 통해 농정의 근본을 담은 역사서를 표방하였고, 그에 따라 매우 특이하게도 일반 역사서의 편제인 기전체(紀傳體) 방식을 선보였다. 그런데 내용이 당시 자연에서 관찰되는 식물 전체에 대한 분류체계를 조밀하게 담은 것이어서 매우 돋보이는 전통식물 역사서이자 전통식물분류서의 역할을 한다. 향명과 같은 의미의 속명(俗名)을 일일이 별도로 표기하여 우리말 식물명을 잘 담고 있기에 더욱 훌륭한 교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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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곡(八穀) 중 하나인 보리, 「본기(本紀)」는 도(稻)ㆍ서(黍)ㆍ직(稷)ㆍ량(粱)ㆍ맥(麥)ㆍ숙(菽)ㆍ두(豆)ㆍ마(麻)의 팔곡(八穀)을 가장 중요하게 다뤘다. <연합뉴스 제공>



제일 먼저 수록한 「본기(本紀)」는 인간의 주식으로서 농사에 가장 중요한 곡류를 다룬 곳이며, 내용은 도(稻)ㆍ서(黍)ㆍ직(稷)ㆍ량(粱)ㆍ맥(麥)ㆍ숙(菽)ㆍ두(豆)ㆍ마(麻)의 팔곡(八穀)에 대한 8본기 체제이다. 이 곡류들을 식물의 황제로 본 것이다. 그 다음 제후에 해당하는 식물로 채소류와 과실류 작물을 설정하였고, 이들을 10편의 「세가(世家)」 체제로 제시하였다. 각기 5편이어서, 채물(菜物)은 「오채세가(五菜世家)」, 과물(果物)은 「오과세가(五果世家)」가 된다. 마지막 인물들의 「열전(列傳)」은 나무와 풀로 구성하였으므로, 합칭(合稱)해서 「초목열전(草木列傳)」이라 부를 만하고, 분리하면 나무는 4편의 「사목열전(四木列傳)」, 풀은 12편의 「제초열전(諸草列傳)」으로 가름할 수 있다.

이중 「5채세가」의 분류를 살펴보면, 채물을 <훈채(葷菜)>와 <나채(蓏菜)> 및 <활채(滑菜)>, <수채(水菜)>, <지이(芝栭)>의 다섯 범주로 구분하였다. 「훈채세가」는 쓴 채소류 23종을 분류한 것이고, 「나채세가」는 보통 과채(瓜菜)라 일컫는 외나 박 등의 박과류와 채류 21종을 분류한 곳이다. 「활채세가」는 매끄러운 채류로 배추, 아욱, 고사리, 비름, 냉이 등 야생 나물 채소류 28종을 수록하고 있다. 「수채세가」는 물에서 자라는 채류 15종으로, 미나리, 물쑥, 올매 등의 담수 수채류와 미역, 다시마, 김, 말 등 해수 수채류를 망라하였다. 마지막 「지이세가」는 땅의 기운을 받은 채류란 뜻에서 각종 버섯류 15종을 수록한 곳이다.

이상의 채물 분류법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나채(蓏菜)>라 일컬은 분류명이다. 라(蓏)란 글자는 『주례(周禮)』에서 야생에서 자라는 채취 식물을 일컫는 말이었다가, 후한시대에서 다양한 개념 규정을 통해 나무 위에 열매를 맺는 식물은 과(果)가 되고, 풀로 자라서 땅위에 열매를 맺는 식물은 라(蓏)로 본다는 관점이 수립되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후한의 대학자 정현(鄭玄, 127-200)은 “과(果)는 복숭아와 오얏의 무리이고, 라(蓏)는 오이와 북치의 무리”(果, 桃李之屬; 蓏, 瓜瓞之屬.)라고 주석하였고, 후한대 허신(許愼, 58-147)의 『설문해자』는 “나무에 있는 것이 과(果)이고, 풀에 있는 것이 라(蓏)”(在木曰果, 在草曰蓏.)라 하였으며, 『풍속통의(風俗通義)』를 지은 후한대 응소(應劭, 153-196)는 “나무 열매는 과(果), 풀 열매는 라(蓏)라 한다”(木實曰果, 草實曰蓏.)고 주석하였다. 한위시기 학자 장안(張晏)은 “씨가 있는 것은 과(果)이고, 없는 것은 라(蓏)이다”(有核曰果, 無核曰蓏.)라고 풀이하였고, 당나라 경학가 안사고(顔師古, 581-645)는 “나무 위에 열매가 열리는 것이 과(果)이고, 땅위에 열리는 것이 라(蓏)”(木上曰果, 地上曰蓏也.)라고 해석하였다. 이렇게 해석이 분분한 것은 그만큼 분류법상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의미인데, 요약하면 초목의 열매류가 목실(木實)의 과(果)와 초실(草實)의 라(蓏)로 양분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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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응은 『농정본사』에서 과실(瓜實)과 나실(蓏實)의 분류 문제를 제시하면서 이를 전통식물분류법으로 풀이하였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서명응은 라(蓏)는 타원형의 열매를 맺고, 과(果)는 원형의 열매를 맺는다는 형태학적 차이를 말하여, 과실(瓜實)과 나실(蓏實)의 분류법 문제를 명쾌히 풀이하였다. 매우 흥미롭고 유용한 지점이라 주목된다.

그는 「나채세가」 서문에서, “무릇 채물에 열매가 있어 먹을 수 있는 것을 다 라(蓏)라고 하는데, 과(瓜)에서 나뉘기 때문에 이를 통해 과(瓜)ㆍ나(蓏)ㆍ과(果)는 한 종류지만 종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였고, 라(蓏) 글자에서 과(瓜)가 두 개 들어간 것은 그런 점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렇게 여기에는 전통식물분류법으로 볼 때 과실(果實)과 나실(蓏實)이 대비되고, 과채(瓜菜)와 나채(蓏菜)가 대비되는 문제가 있음을 인식한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과실이 원형인 것은 금기(金氣, 쇠 혹은 가을 기운)를 받아 타고 난 것이어서 그러한 것이며, 나실이 타원형인 것은 초(草)의 본성이 목(木)의 본성보다 조금 치우쳤기 때문이라 보았다. 이처럼 둥근 형태의 과실(果實)과 타원 형태의 나실(蓏實)은 목본식물의 열매류와 초본식물의 열매류를 일컫는 말이며, 또 과실(瓜實)이 주로 넝쿨식물로 지상에 열매를 맺는 박과류로 한정된다면 라(蓏)는 그 과류(瓜類)를 포함하여 초본식물 일반의 범주까지 망라하는 개념이라 범용성이 더 넓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과채류(瓜菜類)보다 넓은 범주의 “나채류(蓏菜類)” 관점을 서명응이 강조하여 제시한 것이라 하겠다. 우리말로 ‘과’라 하면 이것이 과(果)인지 과(瓜)인지 혼동하는 문제도 넘어설 수가 있어 더욱 요긴하다.

『농정본사』에 수록된 「나채세가」의 면목을 살펴보면, 첫째, 맨앞에 황과(외), 동과(동화), 사과(수사외), 월과, 남과, 고과, 감과(호박), 호로(조롱박)의 박과형 나실류를 나열하였고, 다음 둘째는 대무, 수무, 가지의 타원형 나실류를 나열하였고, 다음 셋째는 토련, 토란, 감저, 마, 죽순, 더덕, 돌아질, 계노지의 구근형 나실류를 나열하였다. 이상의 종류는 과류(瓜類)로 포괄하기 어렵고 나류(蓏類) 관점이여야 묶을 수 있으므로, 서명응이 <나채(蓏菜)>로 분류명을 삼은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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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농학에서의 과실과 열매채소를 아울러 '과일'로 부르고 있다.



현대어에서 푸성귀, 남새가 그렇듯 채소라 하면 흔히 밭에서 기르는 잎채소 위주로 분류,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데, 박과류나 구근류 등을 넓게 망라하는 측면에서 나채류란 말을 현대에 되살려 사용하는 문제도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생각한다. 특히 사과, 배, 밤 등의 과실(果實)에 대비되는 나실(蓏實)은 흔히 과일로 혼동하는 수박, 참외, 토마토 등을 분리하여 지칭하기에 적합한 용어이다. 이 둘을 합한다면 과나실이 될 것이다. 또 땅위에 열리는 호박, 가지, 박, 수세미 등이나 땅속에 열리는 무, 토란, 감자, 마, 더덕 등이 모두 주식으로 먹는 부위가 타원형을 띤다는 점에서 이들을 나실이라 칭하여 총괄한다면 일상생활의 음식분류법으로도 유용성이 클 것이다.

요컨대, 풀열매로서 나실 먹거리에는 토마토, 수박, 참외와 같은 과일형 나실이 있고, 호박, 가지와 같은 땅위 나실이 있고, 무, 감자, 토란과 같은 땅속 나실이 포괄된다. 이 전체를 채소류 관점으로 보더라도 ‘나채’로 통칭함으로써 과일가게와 다르고, 잎채소가게와 구별된다는 점을 분명히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과일가게, 나실가게, 나채가게 등이 파생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문제제기가 우리 사회와 학계에서 처음인지라 비록 아직 낯선 이야기이지만, 전통식물분류법 연구를 통해 우리의 실생활에 유용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근사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참고문헌


  • 김일권, 「조선시대 음식문(飮食門) 류서류와 음식생태학」(『김치와 김장문화의 인문학적 이해』, 세계김치연구소, 2013.12)
  • 김일권, 「나채류의 분류 문제와 김치류 음식의 발달」(『김치의 인문학적 이해』, 김치학총서 02, 세계김치연구소, 2014.12)
  • 김일권, 「전통시대 생물분류체계와 관련 문헌자료 고찰」(『정신문화연구』 제38권 제1호, 2015년 봄호)




김일권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인문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민속학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분야는 한국문화사ㆍ민속학, 종교ㆍ사상사, 고구려 고분벽화, 동아시아 천문사상사이며, 특히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융합한 역사천문학 분야를 개척하였다. 최근에는 전통시대 “하늘과 자연과 삶의 자연학 연구실”을 학문의 줄기로 삼아, 천문과 기상, 생태와 식물, 문화와 생활의 역사자료를 더듬는 중에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 역사에서 전개된 ‘자연학’(naturology)의 갈래와 면모를 생활문화사 관점에서 재구성하려는 목표로 매진 중이다. 학술논문 130여 편과 저서로는 『동양천문사상 하늘의 역사』(2007),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2008),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2009)』, 『고려사의 자연학과 오행지 역주(2012)』 등이 있다.


출처
실학,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다
실학은 18세기 한국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이지만, 여전히 실체와 환상이라는 상반된 시각 속에서 실학을 바라보고 있다. 실학은 실패한 개혁의 꿈인가? 아니면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고자 했던 학문이었던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 찾아 17명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개혁사상이자 문화사조로서 실학을 조명해 본다.


발행2015.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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