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중국의 백과사전, 유서(類書) - 세계를 분류하다, 삼라만상을 그리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39회 작성일 16-02-06 16:33

본문















14547440258629.png





보르헤스가 읽은 허구의 중국 백과사전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남긴 단편 가운데,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El idioma analitico de John Wilkins)』라는 짧은 글이 있다. 영국의 자연철학자이자 왕립협회(Royal Society)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존 윌킨스(1614-72) 주교가 고안한 보편언어(universal language)를 설명하는 글이다. 이 속에서 보르헤스는, 존 윌킨스가 우주를 40개의 범주로 파악하여 보편언어에 담으려 한 시도가 얼마나 작위적인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은혜로운 지식의 하늘창고(Emporio celestial de conocimientos benevolos)』라는 중국의 백과사전도 이와 비슷하게 세계를 작위적으로 범주화한 바 있다고 적는다.





14547440272080





윌킨스의 초상 <출처: Wikimedia Commons>





(존 윌킨스의 작업은) 프란츠 쿤(Frans Kuhn) 박사가 『은혜로운 지식의 하늘창고』라는 이름의 중국 백과사전에 대해 지적한 문제점들을 상기시킨다. 이 고서는 동물이 a) 황제에 속하는 것, b) 향기가 있는 것, c) 훈련된 것, d) 돼지, e) 인어, f) 터무니없는 것, g) 방목견(犬), h) 이 분류에 포함되는 것, i) 마친 사람처럼 날뛰는 것, j) 헤아릴 수 없는 것, k) 낙타털의 섬세하디 섬세한 화필로 그려진 것, l) 기타, m) 장식 항아리를 금방 깬 것, n) 멀리서는 파리처럼 보이는 것들로 나뉜다고 적고 있다.
『또 다른 심문(Otras inquisiciones)』 수록, 김춘진 옮김

미셸 푸코가 『말과 사물』과 『헤테로토피아』에서 언급하면서 더욱 유명해진 이 대목에 등장하는 『은혜로운 지식의 하늘창고』는, 보르헤스가 늘 그렇듯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책이다. 중국이라면 이런 얼토당토않은 책이 있을 수도 있다는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진지하게 화내는 독자가 나타나는 것 역시 보르헤스의 계산에 들어있지 않았을까 싶다.




중국판 백과사전, 유서(類書)



보르헤스가 중국 백과사전이라고 한 것은, 아마도 유서(類書)라는 장르의 문헌을 가리켰을 터이다. 유서란 지식을 유형별로 분류해서 수록하는 방식의 책을 가리킨다. 이번 전시에는 『설부(說郛)』, 『설부속(說郛續)』, 『당송총서(唐宋叢書)』, 『연감유함(淵鑑類函)』, 『경제유편(經濟類編)』, 『옥해(玉海)』 등, 한반도 사람들이 중국에서 수입해서 이용한 유서가 다수 출품되어 있다. 11세기에 처음으로 중국에서 등장한 유서는 흔히 유럽에서 발생한 백과사전에 비유되고는 한다. 18세기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백과전서 혹은 과학, 예술, 기술에 관한 체계적인 사전(Encyclopédie, ou dictionnaire raisonné des sciences, des arts et des métiers)』에서 비롯된 백과사전, 그리고 중국의 유서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만들어졌지만, 세계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망라하고자 하는 욕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14547440288635





『설부』의 앞표지. 푸른 비단으로 되어 있다



물론(!), 전통적인 유서의 분류는 보르헤스가 소개하는 것과는 달리 체계적이다. 아래에서 살펴볼 17세기 초의 유서 『삼재도회(三才圖會)』의 예를 들면, 하늘・땅・인간 즉 우주 삼라만상을 모두 담겠다는 야심찬 계획에서 천문, 지리, 인물, 시령(時令 : 달력, 날씨 등), 궁실(宮室), 기용(器用 : 농업용 기계, 그릇, 도량형, 무기 등 온갖 도구), 신체, 의복, 인사(人事 : 서예, 그림, 바둑, 장기 등 인간의 온갖 행위), 의제(儀制 : 형벌, 제사 등), 진보(珍寶), 문사(文史 : 팔괘, 시경 등), 조수(鳥獸), 초목(草木)의 14개 대항목을 설정하고, 그 아래에 다시 수 백 개의 소주제로 각종 항목과 그에 해당하는 삽화를 실었다.




그림으로 그려지는 삼라만상



11세기 송나라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유서는, 명나라 때에 이르면 수많은 삽화를 덧붙여져 독자가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비단 『삼재도회』(1607년)와 같은 유서 뿐 아니라, 명나라 때에는 『기효신서(紀效新書)』(1560년)나 『무비지(武備志)』(1621년)와 같은 병학(兵學) 서적, 『본초강목(本草綱目)』(1596년)과 같은 약학서(藥學書), 『천공개물(天工開物)』(1637년경)과 같은 산업 기술 서적 등도 정교한 삽화를 많이 실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14547440301921





『삼재도회』에 수록된 천문도



이들 명나라의 도해(圖解) 서적은 중국의 독자들에게 환영받았을 뿐 아니라 조선과 일본에도 전해져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조선에서는 『삼재도회』 등을 이용하면서 조선의 지식을 아울러 담은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이 1614년에 편찬된다. 『삼재도회』가 출판된지 7년만의 일이다. 천문, 시령, 재이(災異), 지리, 제국(諸國), 군도(君道), 병정(兵政), 관직, 유도(儒道), 경서(經書), 문자, 문장(文章), 인물, 성행(性行), 신형(身形), 언어, 인사, 잡사(雜事), 기예(技藝), 외통(外通), 궁실, 복용(服用), 식물(食物), 훼목(卉木), 금충(禽蟲)의 25개 대항목 아래 3,435항목을 수록했다. 이처럼 이수광이 스타트를 끊은 조선 백과사전의 전통은 이익의 『성호사설』(1740년경 성립) 및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19세기 전기)로 이어지는 한편, 중국책과 같이 삽화를 넣어 독자의 이해를 도운 이시필의 『소문사설(謏聞事說)』(1740년경 성립)도 나타났다.





14547440316703





『지봉유설』 중 유럽에 대한 설명



또한, 일본에서는 『삼재도회』 및 『본초강목』 등을 이용하면서 마찬가지로 일본의 지식을 많이 담은 데라시마 료안(寺島良安)의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가 1715년에 출판된다. 100여개의 대항목을 설정하여 105권 81책으로 간행된 방대한 서적이다. 이보다 앞서 마쓰시타 겐린(松下見林)은 중국과 한국의 책에 보이는 일본 관련 기록을 유서 편찬 방식으로 정리한 『이칭일본전』을 1688년에 출판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조선의 유서 가운데 드물게 삽화를 많이 넣은 『소문사설』을 편찬한 이시필은 조선 국왕 숙종의 어의(御醫)였고, 일본의 도해 백과사전을 편찬한 데라시마 료안 역시 의사였다는 사실이다. 치료 대상이 되는 인간의 신체와 치료를 위한 약물을 실제로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 하는 의사의 직업적 특성이, 세상 만물을 글로만 설명하지 않고 그림까지 넣어서 독자에게 이해시키고자 하는 도해 백과사전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던 듯 싶다. 그렇기에, 『화한삼재도회』와 『소문사설』에서는 약재가 되는 풀과 나무에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상세한 삽화를 붙여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발 시각(視覺) 혁명, 조선에 상륙하다



이처럼 명나라와 조선, 일본에서는 17-19세기에 대량의 유서가 편찬되었다. 특히 명나라와 일본의 도해 유서는 이 세상의 삼라만상을 눈으로 보여주는 시각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 두 나라의 도해 유서를 본 조선 후기의 지식인들은 그 압도적인 정보량과 시각적 자극에 충격을 받았음이 성균관대 안대회 교수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보고되어 있다. 그 가운데 특기할만한 것은, 조선 사람들이 문화 후진국으로 여겨 얕보던 일본에서 제작된 『화한삼재도회』가 조선에 흘러들어와 지적 충격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국왕 정조 치세에 활동한 이가환, 이덕무, 황윤석, 유득공, 박제가, 한치윤, 이옥 등이 『화한삼재도회』를 읽었음이 알려져 있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화한삼재도회』의 100여개 대항목 가운데에서도 특히 동물과 식물 부분이었던 듯 하다. 『삼재도회』와 『화한삼재도회』를 비교할 때 가장 차이가 두드러지는 부분은 조개나 거미와 같이 얼핏 하찮아 보이는 생물이다. 『삼재도회』가 이들 생물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반해, 전통적으로 이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온 일본에서 만들어진 『화한삼재도회』에서는 조개, 거미, 벌, 나비, 애벌레 등을 상세하게 분류해서 설명하고 각각 삽화를 붙였다.





이미지 목록




14547440328017





14547440340179





14547440350709





14547440362650















『화한삼재도회』의 각종 삽화




그래서 규장각 검서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이덕무는, 원중거의 아들이자 자신의 누이동생과 결혼한 원유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본초강목』이나 『군방보(群芳譜)』와 같은 중국의 본초학 서적과 더불어 『화한삼재도회』를 들고 조선의 시골 농부에게 물어가며 『도경(圖經)』 즉 도해 백과사전을 만들고 싶다고 적는다. 그리고 뒤이어 “세상 선비들이 나의 말을 들으면 웃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기에, 이러한 일은 그대와 나만이 함께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탄한다. 조선에도 『소문사설』과 같은 도해 서적이 있기는 했지만, 이는 의관(醫官)이라는 높지 않은 지위의 사람이 집필한 것이고, 『소문사설』의 삽화를 명나라와 일본의 문헌에 비교하면 그 수준을 높이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 밖의 조선 유서에서는 삽화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조선의 지식인들이 삼라만상을 담은 책을 편찬하면서 삽화를 배제하는 현상은,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편찬한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도 확인된다. 정약전은 천주교도라는 죄명으로 흑산도에 유배가 있는 사이에,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물고기에 대해 한 편의 책을 엮으려 했다. 각종 물고기에 대한 설명과 삽화가 상세히 실려 있는 명나라와 일본의 도해 유서가 정약전에게 영감을 주었을 터이다. 그래서 애초에는 자신이 구상하던 책에 물고기의 그림을 실으려 한 정약전의 구상에 대해, 동생 정약용은 강진에서 흑산도로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내 반대한다.



책을 저술하는 일은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되니 반드시 십분 유의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해족도설(海族圖說)』은 무척 기이한 책으로 이 또한 하찮게 여길 일이 아닙니다. 삽화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글로 쓰는 것이 그림을 그려 색칠하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여유당전집』 권20

‘물고기에 대한 책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만 삽화는 넣지 않는 것이 좋겠다’. 정약용이 왜 물고기 그림을 싣는데 반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고상한 지식인이 만드는 책에는 삽화를 실으면 안된다는 심리적 저항감이 작용했을 터이다. 이리하여, 조선에서 도해 물고기 사전이 탄생할 수 있는 기회가 무산되었음은 아쉬운 일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조선 지식인이 경험한 외국발 시각 혁명의 실체를 접하고, 그들이 이 새로운 지적 자극으로부터 무엇을 얻고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권한다.



<전시회 정보>








14547440368895

김시덕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1975년 서울 출생. 고려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국문학연구자료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현재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이다. 조선.명.일본 간 국제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16-20세기 동부 유라시아 지역의 전쟁사를 연구하고 있다. 고문헌을 비롯한 다양한 자료에 근거해서 전쟁이 초래한 이 지역의 변화를 추적해왔다. 한국에서 출판된 주요 저서로는 "그들이 본 임진왜란" "그림이 된 임진왜란" "교감 해설 징비록 - 한국의 고전에서 동아시아의 고전으로"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등이 있다. 일본에서 출판된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 - 한반도.유구열도.에조치"는 2016년 초에 한국어로 번역 출판될 예정이다.

인물정보 더보기


출처
규장각, 세계의 지식을 품다
세계는 바깥에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이 안에도 있다. 세계는 눈에 보이는 현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과거에도 있었다. 규장각 특별전 <규장각, 세계의 지식을 품다>는 우리 안에 있는 오래 전의 세계에 관한 전시이다. 규장각이 전통 문화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세계 지식의 집성지라는 관점에서 규장각에 소장된 중국본 도서에 집중했다. 전통 유학과 근대 과학, 지리서와 백과사전, 수학과 역법, 문학과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규장각 특별전을 통해 그간 잊혀져 있었던 ‘우리 안의 세계’를 다시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발행2015.11.0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