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조선에 들어온 서양 근대지식 - 중국을 통해 서양을 알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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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25회 작성일 16-02-0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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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란 무엇일까? 학자들이 말하는 어려운 근대보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쉬운 근대로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찾는다면 아마도 과거와 달라진 새로운 세상 정도가 아닐까? 『시사총보(時事叢報)』 1899년 1월 26일자 논설은 이렇게 말했다. 철도, 기선, 전선 등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따라 세계 만국이 정교와 법령을 혁신적으로 개량하고 기계와 물화를 신속하게 제작하여 만국이 하나로 통하는 변화된 세상이 왔다. 당시 한국인이 체감한 근대는 이런 세상이었을 것이다.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산업혁명을 거친 서양의 문물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문물의 도입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지식의 확충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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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집옥재이다. 고종은 이곳에 한문으로 번역된 서양의 자연과학, 사회과학 분야 도서를 수집하였다.






전자기학과 화학의 지식, 『전학도설』과 『화학감원』



예를 들어 1879년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이 백열등을 발명한 후 8년이 지난 1887년 조선 경복궁에 처음 전깃불이 들어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1882년 조선 정부가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뒤 근대 문물을 수용하기 위해 에디슨 전등회사와 교섭한 결과, 동양에 에디슨 제품을 판촉하기 위한 일류 시설을 설치한다는 에디슨 전등회사의 이해타산에 따라, 경복궁 안 고종이 거처하는 건청궁(乾淸宮)과 고종이 집무를 보던 집옥재(集玉齋) 일대의 밤하늘이 밝아진 것이다. 금년 경복궁 유적 발굴 조사 결과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소가 설치된 지점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1887년 그 해에 중국에서 활동하던 영국인 부란아(傅蘭雅, John Fryer)가 전자기학의 입문서인 『전학도설(電學圖說)』을 한문으로 번역했고, 그것이 조선에 들어와 조선 사회의 전기 기술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전학도설』은 전기의 발생 원리와 전기의 발전 방식, 그리고 전기를 이용한 통신 방법 등을 다루고 있는데, 조선은 1887년 국내 전신 구간 중에 남로전선(南路電線)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면서 전신 기술자 양성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조선의 전기 문명 도입의 역사에서 늘 경복궁의 전등을 중시해 왔지만 사실은 『전학도설』의 전기 지식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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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도설』의 삽화이다. 이 책은 영국인 선교사 존 프라이어가 번역한 전자기학의 입문서이다.



『전학도설』의 번역자 부란아는 중국에서 수많은 서양 과학책을 한문으로 번역해 중국의 과학 계몽에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본래 영국에서 가난한 시골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기독교를 선교하러 중국에 왔다. 중국은 1860년 영불연합군에 의한 북경 함락의 충격을 딛고 양무운동을 개시, 서양 선교사를 고용해 서양서의 번역과 출판에 힘을 쏟았다. 1862년 중국 최초의 외국어학교로 시작한 북경 경사동문관, 그리고 1865년 중국의 무기공장으로 시작한 상해 강남제조총국에서 별도로 부설한 번역관이 서양서 번역의 메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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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선교사 존 프라이어의 모습이다. 존 프라이어의 영국 공장 취재기 『역람기략』에 들어있다.



중국에 도착한 부란아는 이 시류를 잘 타서 1863년 경사동문관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1868년부터는 강남제조총국 번역관에서 일하면서 서양 과학책을 한문으로 번역했다. 1880년 현재 강남제조총국 번역관의 서양서 번역의 현황은 부란아가 편찬한 『역서사략(譯書事畧)』에 잘 정리되어 있다.

부란아가 번역한 서양 과학책은 조선 정부의 지대한 관심을 받아 속속 조선에 유입되었다. 강남제조총국 번역관의 번역 성과를 보여주는 『역서사략』은 물론 『역서사략』에서 소개된 서양 과학책 번역서의 대다수가 조선에 수집되었다. 이 가운데 화학 개론서라 이를만한 『화학감원(化學鑑原)』(1872년)의 경우 화학의 일반적인 원리의 설명에서 시작해서 일반화학과 분석화학의 내용까지 포괄하고 있으며, 화학 원소를 도표로 친절하게 정리하였다.

이를테면 산소의 경우 Oxygen(서양 이름), O(서양 부호), 8(분제), 養氣(중국 이름)라는 정보가, 수소의 경우 Hydrogen(서양 이름), H(서양 부호), 1(분제), 輕氣(중국 이름)라는 정보가 수록되었다. 당시 화학은 군사력의 강약과 직결되는 화약 제조를 위해 필수적인 학문이었고 그 밖에 전신 기술, 농업 기술, 의학 기술과 관련된 기초 분야였기 때문에 『화학감원』의 수요가 작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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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감원』의 본문과 도표이다. 이 책은 영국인 선교사 존 프라이어가 번역한 화학 개론서이다.






석탄 채굴과 철강 제조의 지식, 『개매요법』과 『역람기략』



부란아는 전자기학이나 화학 같은 과학 분야의 책뿐만 아니라 석탄 채굴이나 철강 제조 같은 기술 분야의 책도 집필하였다. 그는 영국인 스미스가 지은 『Coal and Coal Mining(석탄과 석탄 채굴)』을 1871년 『개매요법(開煤要法)』으로 번역했는데, 이 책의 내용은 석탄의 형성 과정과 석탄이 매장된 지질층의 특징, 그리고 서양의 석탄 채굴 방식을 포괄한다. 당시 광산 개발은 국가의 재원을 확충하는 매력적인 방안으로 검토되었으며, 조선 정부 역시 개화정책 추진 과정에서 광산 개발에 관심을 갖고 1883년 광무국을 설치하였다. 한 해 전 조선 관료 김창희(金昌熙)는 조선의 개혁방안을 논한 「육팔보(六八補)」에서 조선의 부강정책의 일환으로 광산 개발을 검토했다. 그의 관점은 사회 불안 요인을 가중시키는 금광 개발보다는 탄광이나 철광 개발이 현실적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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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매요법』의 본문과 삽화이다. 이 책은 영국인 선교사 존 프라이어가 번역한 석탄 및 석탄 채굴에 관한 책이다.



부란아는 석탄 채굴과 더불어 철강 제조에 관한 서양 지식도 중국에 소개하고자 하였다. 1873년 그는 산업혁명의 본고장이자 자신의 모국인 영국에 건너가 약 한 달 간 철강 공장을 중심으로 런던 근방의 다양한 산업 현장을 취재하였다. 부란아가 취재한 내용은 강남제조총국에서 발행하는 『격치휘편(格致彙編)』에 연재되었고, 이 연재물은 1881년 『역람기략(歷覽記畧)』이라는 이름의 단행본으로도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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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람기략』의 삽화이다. 이 책은 영국인 선교사 존 프라이어의 영국 공장 취재기이다. 그림은 영국의 제철 공장에서 선철을 만드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조선 정부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 『역람기략』이 조선에 수집된 것은 물론 조선 최초의 근대 신문이라할 『한성순보(漢城旬報)』에도 ‘역람영국철창기략(歷覽英國鐵廠記畧)’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다.

중국의 양무운동에서 상해 강남제조총국이 차지하는 비중, 상해 강남제조총국에서 부란아가 차지하는 비중을 본다면, 조선 정부가 부란아의 일련의 서양 과학기술 번역책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부란아의 영국 공장 탐방기를 『한성순보』에 연재하여 전국적으로 이를 알린 것은 근대 문명의 물질적 기초로서 19세기 영국에서 만들어내는 철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상 부란아가 전하는 화학, 전자기학, 석탄 채굴, 철강 제조에 관한 지식은 모두 한문으로 쓰였다. 부란아가 한문으로 번역한 낯선 과학기술 책을 독파했을 중국과 조선 독자들의 한문 실력은 지금 생각해도 경탄스럽다.




영국 케임브리지 경제학 지식, 『부국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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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경제학자 헨리 포셋 부부의 모습이다. 1872년 브라운의 그림으로 영국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서양의 과학기술 지식과 더불어 서양의 사회과학 지식도 중국을 거쳐 조선에 들어왔다. 이를테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법사덕(法思德, Henry Fawcett)이 지은 경제학 교재 『Manual of Political Economy(정치경제학 지침)』이 『만국공법(萬國公法)』의 번역자로 유명한 서양 선교사 정위량(丁韙良, William A. P. Martin)의 의뢰로 경사동문관 부교습 왕봉조(王鳳藻)에 의해 1882년 『부국책(富國策)』으로 번역된 것은 서양 근대 경제학이 중국에 소개된 최초의 일이었다.

법사덕은 청년기에 총기 사고로 두 눈이 실명된 역경을 겪었지만 이를 이겨내고 경제학 연구를 계속하여 아담 스미스에서 시작해 J. S. 밀에 이르는 영국 고전경제학의 흐름을 이어받은 경제학자였다. 그가 지은 『Manual of Political Economy』는 J. S. 밀의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정치경제학 원리)』의 체제를 따른 것이었다. 그는 J. S. 밀을 대단히 존경했고, 1873년 헐버트 스펜서, 프레데릭 해리슨 등과 더불어 밀의 생애와 작품을 조명한 『John Stuart Mill; His Life and Works(존 스튜어트 밀 : 그의 생애와 작품)』를 편집하였다. 『Manual of Political Economy』는 1863년 초판이 나온 후 1907년까지 8개의 판본이 나왔고 일세에 풍미하며 독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본래 경사동문관에서 학생들의 영어 교육을 위해 사용된 외국어 교재였는데, 이 책의 경제학 지식을 활용해 중국의 부원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겠다는 취지로 급기야 『부국책』으로 번역된 것이다. 『부국책』의 영향으로 중국에서는 『부국수지(富國須知)』(1892년), 『부민책(富民策)』(1911년) 등이 잇달아 간행되었으며, 조선의 경우 『부국책』이 집옥재 도서로 유입되었음은 물론 유길준(兪吉濬)이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집필하면서 직접적으로 『부국책』을 활용한 사실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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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책』의 속지와 본문이다. 이 책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헨리 포셋 교수의 경제학 교재 『Manual of Political Economy』를 중국 경사동문관 부교습 왕봉조가 번역한 것이다.






대중 잡지로 만나는 세계 지식, 『만국공보』



서양의 자연과학 지식, 사회과학 지식, 그리고 세계 곳곳의 역사, 지리, 시사 지식의 대중적인 확산에 크게 기여한 것은 상대적으로 전문적인 단행본 도서보다는 대중 매체였다. 이 점에서 중국 상해의 선교사단체 광학회(廣學會, 초명은 동문서회(同文書會))에서 1889년부터 1907년까지 발행한 월간지 『만국공보(萬國公報)』는 주목되는 문헌이다. 이에 앞서 서양 선교사 임락지(林樂知, Young Allen)가 1868년부터 1883년까지 발행한 주간지 『만국공보』가 있었는데, 양자를 구별하여 후자를 원간 『만국공보』, 전자를 복간 『만국공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복간 『만국공보』는 주필 임락지를 위시하여 『태서신사남요(泰西新史攬要)』로 유명한 이제마태(李提摩太, Timothy Richard), 『자서조동(自西徂東)』으로 유명한 화지안(花之安, Ernst Faber) 등 중국에서 활동한 쟁쟁한 서양 선교사가 다수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이 잡지는 기독교 지식에 한정하지 않고 서양 근대 지식 일반과 세계 각국의 시사를 소개했으며, 세계 각지의 화교사회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 널리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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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선교사단체 광학회에서 발간한 월간지 『만국공보』의 한문 표제와 영문 표제이다. 그림은 1898년 4월호이다.





『만국공보』 주필 Y. J. 알렌의 모습이다. 『만국공보』 1903년 10월호에 실렸다.




『만국공보』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기사들이 있었다. 1904년 2월호 「에디슨과 스펜서(愛迭生與斯賓塞)」는 미국 발명가 에디슨과 영국 철학자 스펜서를 소개하는 글이다. 에디슨이 50세 현재까지 33년간 400종을 발명했는데, 에디슨의 성공이 타고난 능력과 적극적인 투자 덕분이라고 비평했다. 스펜서가 『사회행복론(社會幸福論, Social Statics)』을 포함하여 많은 책을 지었고, 영국 언론에 과학·정치·교육에 관한 많은 논설을 기고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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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발명가 에디슨의 모습(우)과 영국 철학자 스펜서의 모습(좌)이다. 『만국공보』 1904년 2월호 기사 「에디슨과 스펜서」의 삽화이다.



사실 스펜서는 벤저민 키드와 더불어 영국 사회진화론의 대표적인 이론가였는데, 1899년 4월호에는 키드가 1894년 출간한 Social Evolution(사회진화론)의 일부 내용이 「대동학 제삼장 상쟁상진지리(大同學 第三章 相爭相進之理)」로 번역되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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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사회이론가 벤저민 키드의 『Social Evolution』을 번역한 『대동학』의 제3장 부분이다. 『만국공보』 1899년 4월호에 실렸다.



키드와 스펜서는 개인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한 사회의 진보를 추구했지만, 국가의 방임을 주장하는 스펜서와 달리 키드는 국가의 간섭 하에 경쟁의 기회 균등을 주장하였다. 이 기사는 경쟁에는 공적인 경쟁도 있고 사적인 경쟁도 있지만 공사를 막론하고 역대의 진보는 경쟁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서술하였다.

키드의 사회진화론이 소개된 1899년 4월호에는 타이의 중흥에 관해 서술한 「섬라중흥기(暹羅中興記)」라는 기사도 실렸다. 이 기사는 타이가 미얀마의 영국 세력과 베트남의 프랑스 세력 사이에 끼여 위태로운 형세였는데, 국왕이 영국인을 등용해 내정을 개혁하여 중흥의 희망이 있다고 논하였고, 한국·일본·이집트·타이 4개국의 정치개혁을 비교한 Times의 기사를 첨부하여 타이가 오직 국왕 한 사람의 힘으로도 서양의 신법을 취했으니 중국이 속히 타이를 본받을 것을 충고하였다.

『만국공보』의 이 기사는 『독립신문』, 『제국신문』 등 동시기 한국 언론에 전재되어 많은 한국 지식인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인재(李寅宰)가 지은 「구경연의(九經衍義)」라는 글에는 한국이 타이를 본받아 자강을 이룩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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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의 중흥을 논한 기사이다. 『만국공보』 1899년 4월호에 실렸다.



 


19세기 후반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전해진 한역 서학서, 이른바 개화서적은 이 밖에도 무수히 많다. 당대의 조선 지식인들은 알고 있었겠지만 후대의 우리들은 거의 알지 못하고 있는 이 개화서적의 세계지식은 19세기 중국과 서양의 교류라는 역사적인 흐름에서 형성되었다. 그것은 중국 정부의 양무운동과 재중 서양선교사의 서학지식 보급운동을 배경으로 중국에서 생성되었으며, 개항 이후 조선 정부의 개화정책을 배경으로 조선에 도도히 흘러들어 왔다.

이 중국발 세계지식이 조선에서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근대 지식의 형성에 기여했는지, 그리고 조선 사회에서 중국발 세계지식과 일본발 세계지식이 어떻게 서로 경합해 나갔는지 우리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한문으로 번역된 지식과 서양어로 기록된 본래의 지식이 어떻게 서로 같고 다른지 우리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식민지 시기 일문 패러다임과 냉전 시기 영문 패러다임에 가려져 잊혀졌던 개항기 한문 패러다임의 근대 지식의 존재를 이제 비로소 자각했을 뿐이다. 이제 시작이다. 조선에 유입된 근대 한역 서학 문헌의 총체적인 조사와 연구는 개항기 근대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기억해내고 식민지 근대를 상대화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종이 설립한 집옥재는 당대 세계지식의 집성지의 하나로서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전시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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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관범 | 역사학자, 교수
한국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고전통변』, 『두 시점의 개념사』(공저), 『500년 공동체를 움직인 유교의 힘』(공저), 『19세기 인민의 탄생』(공저) 등이 있다.


출처
규장각, 세계의 지식을 품다
세계는 바깥에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이 안에도 있다. 세계는 눈에 보이는 현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과거에도 있었다. 규장각 특별전 <규장각, 세계의 지식을 품다>는 우리 안에 있는 오래 전의 세계에 관한 전시이다. 규장각이 전통 문화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세계 지식의 집성지라는 관점에서 규장각에 소장된 중국본 도서에 집중했다. 전통 유학과 근대 과학, 지리서와 백과사전, 수학과 역법, 문학과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규장각 특별전을 통해 그간 잊혀져 있었던 ‘우리 안의 세계’를 다시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발행201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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