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나넬 모차르트 - 시대의 그늘과 강요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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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97회 작성일 16-02-0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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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결혼 전에 사회활동을 하던 여성들도 일단 결혼을 하게 되면 일을 그만 두고 가정으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당시 결혼을 앞둔 여자들은 방긋이 웃으며 “이제는 여자의 길을 가야겠지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 ‘여자의 길’에 대해 회의를 품지 않았다. 여자라면 당연히 가야 하는 길로 여겼고, 그 길에 들지 못하는 것을 수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때로는 ‘여자의 길’이 한 여성의 꿈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모차르트의 누나 나넬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나넬은 뛰어난 건반악기 주자이자 성악가, 작곡가로 동생에 뒤지지 않는 음악적 재능을 지닌 재원이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을 허용하지 않는 당대의 관습 때문에 결국 평범한 여자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르네 페레 감독의 [나넬 모차르트]는 이런 나넬의 삶을 그린 영화다. 영화는 신동으로 칭송받던 남동생 곁에서 그 자신의 음악적 열정을 불태웠던 나넬의 꿈과 도전, 그리고 좌절을 보여준다. 프랑스 영화답게 감성적인 음악과 영상, 대사로 한껏 멋을 부렸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의외로 아주 간단하다. 나넬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억압을 받았다는 것이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알레그리(Allegri) – 미제레레 메이(Miserere mei)음악 재생




1분 감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영화에 픽션과 논픽션이 마구 섞여 있어 둘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넬이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다. 다음의 기록들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가벼우면서도 심각한 분위기가 나도록 대가들의 어려운 협주곡을 연주하는 11살짜리 여자아이를 상상해 보십시오. 이 아이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분명합니다!
-1763년 5월 인텔리겐체텔 지


사랑하는 누나! 누나가 그렇게 작곡을 잘하는지 몰랐어. 그 곡은 정말 아름다워. 계속 작곡을 해 봐
-1770년 7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영화는 유럽 순회 연주 여행 중인 모차르트 가족이 마차를 타고 가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모차르트 남매는 놀라운 실력으로 가는 곳마다 주목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레오폴드는 나넬이 전문적인 음악가가 되는 것은 반대한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그녀에게 여자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안된다고 야단을 치고, 작곡법에 대한 강의도 동생에게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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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누나, 나넬의 삶을 다룬 영화 [나넬 모차르트]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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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 바퀴가 고장 나 더 이상 여행을 계속할 수 없게 된 모차르트 가족은 인근의 카르멜파 수도원에 며칠 동안 머물게 된다. 바로 이 수도원에서 나넬은 프랑스 왕 루이 15세의 딸 루이즈 공주를 만난다. 수도원에는 루이즈를 포함해 세 명의 공주가 살고 있는데, 왕보다 권력이 막강한 추기경이 베르사유 궁전에 2명 이상의 공주가 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머지 공주들이 이곳으로 보내진 것이다. 루이즈는 나넬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며칠 후 파리로 떠나는 그녀에게 베르사유에 가면 전해 달라며 대음악가의 아들 위그 르투르너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를 준다. 파리에 도착한 나넬은 베르사유 궁으로 들어가 왕세자를 만난다. 아내를 잃고 슬픔에 잠겨 있던 왕세자는 나넬의 노래와 연주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그녀에게 작곡을 해보라고 권한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나넬은 곡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급기야 독립을 선언한다. 연주 여행을 떠나는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와 파리에 살면서 음악을 가르치고 작곡을 하는 음악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왕세자는 가끔 그녀에게 작곡을 의뢰하고, 그녀는 자신이 작곡한 곡을 왕세자 앞에서 연주한다. 왕세자와 만나는 동안 나넬은 어느덧 그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존재한다. 게다가 왕세자는 변덕스럽기까지 하다.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왕세자 앞에 불려간 어느 날 나넬은 깨닫는다. 자기가 음악가가 아닌 여자로 취급되고 있다는 것을. 그의 후원을 받기 위해선 그의 성적 노리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결국 나넬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동안 작곡한 음악의 악보를 모두 불태우고, 이제부터 평범한 여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에필로그에서 나넬이 32살의 나이로 전처소생의 아이가 다섯이나 딸린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했으며, 78세를 일기로 빈곤과 고독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준다.

음악가의 삶을 다루었고, 중요한 장면마다 음악이 나오지만 이 영화는 엄밀한 의미에서 음악영화가 아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한 채 조용히 무대에서 사라진 한 여성의 삶을 그린 페미니즘 영화다. 감독은 이런 의도를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나넬과 신분은 다르지만 역시 여자라는 이유로 수도원에 갇혀 살다가 나중에 수녀가 된 공주 루이즈를 등장시킨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수녀가 된 루이즈는 나넬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은 우리를 여자로 만들었죠. 우리가 남자였다면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당신은 동생 모차르트처럼, 나는 나의 오빠처럼, 당신은 음악을 지배하고, 나는 세상을 다스리겠지요. 아버지를 따라가요. 그게 주님을 따르는 거니까. 희생을 통해 나처럼 행복해져 봐요.

루이즈는 자신의 선택으로 수녀가 된 것처럼 말하지만 과연 그럴까. 강요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은 저항보다 가혹하다. 루이즈와 나넬은 격렬하게 저항하는 쪽보다 그것을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믿는 쪽을 택했다. 아직 인간 사이의 평등마저 실현되지 못한 프랑스 혁명 이전의 18세기, 여성이 성차별에 맞서 싸우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나넬은 19세기에 살았던 멘델스존의 누나 파니와 대조를 이룬다. 남동생 못지않게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던 파니는 아버지와 동생의 반대를 무릅쓰고 악보 출판을 감행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악보 출판은 가정주부의 여기였을 뿐, 그녀는 남동생과 같은 작곡가로 인정받지 못한다. 18세기의 한계가 있듯이 19세기의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나넬 모차르트]는 당대의 여성에게 부과된 억압된 순종의 장면들을 조용히 보여준다. 격렬한 저항이 없기 때문일까. 지루하고 밋밋하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직전, 쓰러져가는 왕조의 단말마적 퇴폐미를 보여주는 호화로운 베르사유 궁과, 옛 악기들을 동원해 녹음한 사운드 트랙의 신선하고 발랄한 음향이 이런 지루함을 상쇄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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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넬의 작품은 전해지지 않지만,영화에서는모차르트의 음악과는 다른, 나넬만의 음악을창조해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모차르트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는 모차르트 음악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바이올린 소나타만 잠깐 나올 뿐이다. 모차르트가 아닌 나넬이 주인공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 나넬의 작품은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 따라서 제작진들은 영화를 위해 나넬이 작곡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음악을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나넬의 음악, 모차르트가 그토록 격찬해 마지않던 수준 높은 음악, 그러면서도 모차르트의 음악과는 다른 색채를 지닌 음악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음악은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 교수 이자 피아니스트인 마리 잔느 세레로가 담당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음악을 오로지 상상해 의존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어려운 일이다. 이런 작업에는 그 시대에 대한 철저한 고증은 물론이고, 그것을 뛰어넘는 상상력과 창조력이 필요하다. 샤운드 트랙의 녹음에는 모차르트 시대의 옛 악기들이 동원되었으며, 오케스트라나 협주곡의 악기 편성도 모차르트 시대의 관현악법에 따랐다. 연주 인원을 그 시대의 관행에 따라 축소했다. 이렇게 해서 고전 시대 오케스트라의 음색과 유사한 음향이 만들어졌는데, 효과는 의외로 신선했다. 현대적인 악기, 증폭된 음량의 오케스트라에서는 맛볼 수 없는 순수하고 고전적인 음향이 듣는 이에게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시대의 한계라는 주제는 답답했지만, 음악은 오히려 이 시대의 한계를 고수함으로써 신선해졌다.

그중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이 하프시코드 소리였다. 하프시코드는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건반악기였다. 하지만 그 표현력의 한계 때문에 고전 시대에 들어와 새로 발명된 피아노에게 건반악기의 대표 주자라는 영광된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프시코드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니다. 모차르트가 어린 시절, 여전히 이 악기가 연주되었고, 모차르트 역시 이 악기를 위한 곡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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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음악은 시대의 한계를 고수함으로써 오히려 신선해졌다. <출처: 네이버 영화>



그동안 바로크 시대 작곡가를 다룬 영화에서 하프시코드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이 영화에서만큼 그 소리가 아름답고 신선하고 발랄하게 들린 적이 없었다. 바로크 시대의 하프시코드는 수학적이고 객관적인 음악을 연주헸다. 그래서 안 그래도 냉정하고 딱딱한 음색이 더 딱딱하게 들렸다. 하지만 하프시코드로 모차르트 음악, 더 나아가 (비록 상상이지만) 나넬의 음악을 연주하니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소리에 생기가 돈다. 하프시코드는 음을 이어서 연주하는 레가토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악기인데, 모차르트와 나넬은 이 ‘논 레가토(non legato)’의 결점을 악보의 음들이 모두 튀어나와 건반 위를 뛰어다니는 듯 명징한 울림으로 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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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넬이 모차르트가 단 한번 듣고 악보로 옮겼다는 [미제레레 메이]의 독창부분을 부르는 장면은 짧지만 인상적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에는 또 하나 중요한 음악이 나온다. 나넬이 왕세자를 처음 만났을 때 부른 알레그리의 [미제레레 메이 Miserere mei]이다. [미제레레 메이]는 17세기 초 이탈리아 교황청 음악가로 활동했던 그레고리오 알레그리(1582-1652)의 작품이다. 로마 교황청의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해마다 성주간 동안 불려졌다. 무반주로 부르는 5성부 아카펠라 합창곡으로 다윗의 참회시인 시편 51편에 곡을 붙였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밧세바의 아내를 범한 후, 자기를 찾아온 선지자 나단에게 자신의 죄를 간절하게 참회하며 지은 시이다. 전통적으로 고난주간 수요일에 낭송되거나 노래로 불려졌다. ‘테네브레’라는 이름의 이 예배 의식에서는 촛불을 하나씩 꺼 나가다가 마지막 촛불이 꺼지면 교황과 추기경이 무릎을 꿇는다. 이때 어둠 속에서 교황청 성가대가 높은 하늘에서 울리는 천사의 노래처럼 높은 음으로 장식을 넣은 [미제레레 메이]를 부르는데, 그 신비로운 합창 소리에 모든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합창) 주여. 당신의 자비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레고리오 성가)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를 씻어주소서.
(독창 그룹) 저의 죄로부터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으로부터 저를 깨끗이 하소서.


이런 가사로 노래하는데, 중간에 소프라노 독창자가 혼자서 높은 음을 길게 뽑는 부분이 있다. 영화에서 나넬이 부른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어둠 속에 울려퍼지는 맑고 청아한 소프라노 소리. 하늘 높이 떠있는 별과 같이 아름답고 환상적인 대목이다.

그런데 이 신비로움을 독점하고 싶었는지 교황은 [미제레레 메이]의 악보를 시스티나 예배당 밖으로 반출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래서 한동안 [미제레레 메이]는 로마 교황청에서만 들을 수 있는 곡이 되었다. 누구든지 이 곡을 듣고 싶은 사람은 일부러 로마의 바티칸까지 찾아와야 했는데, 그중에는 독일의 문호 괴테도 있었다고 한다.

악보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듣고 기억에만 의존해 악보를 재현하려는 시도를 했다. 나넬의 동생 모차르트도 열 네 살 때 아버지와 함께 연주 여행 차 로마에 들렀다가 이 노래를 들었다. 모차르트는 딱 두 번 이 노래를 들은 후 그것을 그대로 악보에 옮겨 자신이 천재 임을 다시 한 번 과시했다.

영화에서 왕세자는 나넬에게 묻는다. 이 노래를 “크리스탈처럼 깨끗하고 맑게, 영혼의 고요함을 담아” 부를 수 있냐고. 그 말에 나넬은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로 [미제레레 메이]를 부른다. 왕세자의 말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크리스탈처럼 맑고 고요하다. 마지막에 높은 C 음을 아주 길게 뽑는데,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치 영혼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음악 그 자체의 고유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이 부각된 짧지만 인상적인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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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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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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