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디자이어 포 러브 - 피아노의 시인, 사랑을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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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34회 작성일 16-02-0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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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 폴란드의 바르샤바.

한밤중에 집에서 자고 있던 쇼팽은 폴란드 총독 콘스탄틴 대공의 호출을 받는다. 대공이 쇼팽을 찾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쇼팽의 아버지는 대공의 광기가 또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을 직감한다.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의 속국이었으며, 콘스탄틴 대공은 폴란드를 다스리는 총독이었다. 대공의 명령을 어기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잘 알고 있는 쇼팽의 아버지는 가기 싫다는 쇼팽을 억지로 떠밀어 궁전으로 보낸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쇼팽 - [빗방울 전주곡]음악 재생
2쇼팽 - [첼로 소나타] 중 제 3악장 라르고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소니뮤직




쇼팽이 궁전에 도착하자 방 안에서 거칠게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광기에 휩싸인 대공이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피아노 건반을 마구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대공은 쇼팽이 어린 시절부터 그를 보아왔다. 쇼팽의 천재성을 알아본 그는 틈날 때마다 그를 불러 피아노를 치게 했다. 이 날도 콘스탄틴은 쇼팽을 불러 그가 자신을 위해 작곡한 행진곡을 치도록 한다. 그런데 그 태도가 너무나 거칠고 무례하다. 쇼팽은 그 광기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무렵 폴란드에서는 러시아의 통치에 반대하는 저항운동이 여기저기 일어나고 있었다. 반란은 주로 젊은이들이 주도했다. 쇼팽의 친구 중에도 이런 청년들이 있었으며, 열혈 청년 쇼팽 역시 이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쇼팽의 아버지는 아들의 젊은 혈기가 걱정이 되었다. 아들이 반란에 가담해 자기 신세를 망치기 전에 격렬한 저항의 현장으로부터 아들을 떼어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아들을 오스트리아의 빈을 거쳐 프랑스 파리로 보내기로 한다. 쇼팽은 아버지에게 떠밀리다시피 폴란드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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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로맨틱한 사랑을 그린 영화 [디자이어 포 러브] <제공: 네이버 영화> 영화 정보 보러가기


다음 장면은 1831년 프랑스 파리. 쇼팽이 밝은 표정으로 파리 시내를 거닐고 있다. 이 장면에 흘러나오는 음악은 피아노 협주곡 1번의 1악장. 쇼팽이 폴란드를 떠나던 해인 1830년에 작곡한 곡이다. 피아노 협주곡의 아름다운 선율처럼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미래에 대한 쇼팽의 예감은 희망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출판업자에게 악보 출판을 거절당한 후,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절망하고 있는 동안, 아주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다. 파리에 콜레라가 돌아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거리 곳곳에서 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운반하는 수레가 보이고, 쇼팽은 절망과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이 광경을 바라본다. 그런데 바로 이 때 남장을 하고 담배를 피우며 비극의 현장을 씩씩하게 누비고 있는 어떤 여자의 모습이 쇼팽의 눈에 들어온다. 바로 조르주 상드이다.

조르주 상드는 프랑스 낭만주의 소설가이다. 파리에서 태어나 4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16세 때 지방 귀족인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지만, 1831년 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와 파리로 이주했다. 그 후 그녀는 친구의 권유로 [앵디아나]라는 신문소설을 통해 작가로 데뷔했으며, 약 40년간 문필 생활을 하며 모두 70편의 소설과 24편의 희곡, 그리고 4만 통에 달하는 편지를 남겼다.

하지만 오늘날 그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그녀가 이룬 문학적 성과가 아니라 당대의 내로라하는 시인, 음악가, 예술가, 사상가들과의 연애 사건 때문이다. 특히 위대한 작곡가 쇼팽과의 연애 사건으로 그녀의 이름은 지금도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조르주 상드는 남장을 하고 담배를 피우며 연하의 꽃미남(그녀는 금발 미남을 좋아했다고 한다)을 애인으로 거느린 중성적인 이미지의 여성이었다. 남자 이름인 ‘조르주’를 필명으로 쓴 것만 보아도 그녀가 어떤 성격의 여자인지 짐작할 수 있다. 화가 들라크루아, 작곡가 리스트와 친분이 있었으며, 남편과 헤어진 후 연하의 남자인 시인 뮈세와 만나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쇼팽은 시체들이 즐비한 거리에서 우연히 조르주 상드와 마주친다. 두 사람이 마주친 장소는 결코 로맨틱한 곳이라고 할 수 없지만, 첼로 소나타의 느린 악장을 배경으로 슬로 모션으로 처리한 화면은 매우 로맨틱하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가 앞으로 연인 관계로 발전할 것임을 암시한다.

이렇게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쇼팽과 상드는 나중에 리스트의 집에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다. 당시 리스트는 당대 최고의 기교파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는 파리 사람들에게 실망한 나머지 프랑스를 떠나 미국으로 가려는 쇼팽을 파리에 주저 앉힌다. 그리고 파리 사교계에 쇼팽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데에 힘을 쏟는다. 영화에서는 리스트가 파리 사교계 모임에서 쇼팽의 [연습곡 12번 ‘혁명’]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혁명]은 여성 취향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쇼팽의 작품 중에서 남성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는 몇 안 되는 곡 중 하나이다. 리스트의 손가락이 건반을 질주하며 격렬한 울림을 토해내는 동안, 폴란드에 있는 쇼팽의 집에서 분노한 콘스탄틴 대공이 보낸 군인들이 무지막지하게 쇼팽의 피아노를 부수는 장면이 교차된다.

상드는 병약한 쇼팽의 모습에서 모성애를 느낀다. 그래서 먼저 그에게 손을 내민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져 결국 연인이 된다. 쇼팽보다 나이가 많은 상드는 에너지가 넘치는 여성이다. 전 남편과 싸워 아이들의 양육권을 쟁취하고, 끊임없이 글쓰기에 몰두하고, 억척스럽게 집안일을 처리하고, 정원까지 직접 가꾸면서 병약한 쇼팽을 돌보는 등 일인다역을 억척스럽게 소화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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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셰퍼, [프레데릭 쇼팽], 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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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과의 로맨스로 유명한 소설가 조르주 상드 <출처: topic/corbis>


영화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아주 로맨틱하게 그려진다. 그 로맨틱한 사랑을, 로맨틱한 쇼팽의 피아노 선율로 로맨틱하게 장식한다. 쇼팽은 수많은 악기 중에서 오로지 피아노라는 악기에만 집중한 작곡가이다. 200여 곡에 이르는 작품의 대부분이 피아노곡이다. 음악사를 통틀어 쇼팽처럼 피아노라는 한 가지 악기에 집중한 작곡가도 없을 것이다. 그는 피아노라는 악기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피아노 본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개척한 작곡가이다.

그는 낭만적인 밤의 서정을 부드럽게 노래한 [야상곡(녹턴)], 테크닉을 익히기 위한 연습곡이지만 단순한 연습곡을 뛰어넘는 예술성을 보여주는 [에튀드(연습곡)], 작곡가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악장을 자유롭고 화려하게 펼친 [즉흥곡], 사교계 살롱 춤곡을 화려한 테크닉으로 변모시킨 [왈츠], 서사시의 영웅적인 에너지를 강렬한 터치로 그린 [발라드], 음악적 유머를 발랄하게 풀어놓은 [스케르초], 폴란드 민족 춤곡을 예술 음악의 경지로 끌어올린 [폴로네즈]와 [마주르카] 등을 통해 피아노 음악의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했다.

이 영화의 음악은 쇼팽의 음악 중에서 특히 서정성이 뛰어난 [야상곡]과 [왈츠] [즉흥곡]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중에서도 주제곡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왈츠] 19번 A단조이다. 파리 사교계 모임에 참석한 쇼팽은 상드를 위해 이 곡을 연주한다. 이른바 사랑의 테마라고 할 수 있는데, 멜로디가 정말 아름답고 로맨틱한 곡이다. 이 곡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쇼팽의 음악은 피아노가 부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 가장 로맨틱한 사랑의 시, 가장 화려한 사랑의 찬가, 가장 절절한 사랑의 열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쇼팽을 왜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쇼팽이 결핵에 걸리자 상드와 쇼팽은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으로 요양을 떠난다. 하지만 날씨가 너무 나빠 쇼팽의 건강이 호전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된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쇼팽과 상드의 아들 모리스가 사사건건 부딪치기 시작한다. 모리스는 엄마와 쇼팽 사이를 질투해 늘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고, 쇼팽은 이런 모리스를 예의가 없다고 비난한다. 상드는 아이들과 쇼팽 사이에서 곤란한 처지에 놓이고, 이 때문에 쇼팽과 말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이들이 섬에서 지내는 동안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다. 지붕에서 빗물이 새 집안 곳곳으로 떨어진다. 항의하는 상드에게 집 주인은 마요르카에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일은 일찍이 없었다고 투덜댄다. 결핵을 앓고 있는 쇼팽에게 비는 치명적이다. 하지만 예술가는 자기를 파괴시킬 수 있는 악조건 속에서도 영감을 얻는 법이다. 쇼팽은 비를 소재로 음악을 작곡한다. 바로 [빗방울 전주곡]이다.

[빗방울 전주곡]은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외출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상드를 기다리며 작곡했다고 한다. 여기서 쇼팽이 묘사한 빗방울 소리는 아름답고 경쾌하고 투명하다. 이 곡은 피아노 건반의 A플랫 음을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반복 연주하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똑똑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배경으로 빗소리처럼 상쾌한 기분이 묻어나는 멜로디가 펼쳐진다. 우아하고 세련된 멜로디다. 시시때때로 내리던 비가 결핵을 앓고 있던 쇼팽에게 치명적이었다고 하지만 쇼팽은 이런 악천후를 음악으로 순화시키는 마술과 같은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 순하게 시작했던 빗방울 소리가 뒤로 갈수록 점점 거칠어진다. 빗방울은 여전히 떨어지지만 소리가 크고 격렬하며, 그것을 배경으로 연주되는 멜로디 역시 어둡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었던 쇼팽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어쩌면 아직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는 상드에 대한 걱정을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쇼팽은 곧 평정을 되찾는다. 예의 그 피아노의 시인다운 서정성으로 돌아와서 고즈넉하게 곡을 끝낸다.

계속되는 악천후로 고생하던 쇼팽과 상드는 4개월 만에 마요르카를 떠난다. 애초에 건강의 회복과 자유로운 사랑을 위해 이곳을 찾았지만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서둘러 섬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후 영화는 훌쩍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그로부터 몇 년 후로 날아간다. 상드의 가족과 쇼팽은 노앙에 있는 상드의 영지에서 함께 살고 있다. 쇼팽과 상드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어린 아이였던 상드의 딸 솔란지는 어느덧 어엿한 숙녀가 되어 있다. 녀는 쇼팽을 이성으로 바라보고 그를 사랑하지만 쇼팽은 이런 솔란지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

노앙에서도 상드의 아들 모리스와 쇼팽의 갈등은 계속된다. 모리스는 화가로 성공하고 싶어 하지만, 그의 그림을 본 들라크루아는 그에게 소설가가 되는 것이 어떠냐고 말한다. 그림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말에 모리스는 크게 실망하고, 이로 인해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는 쇼팽에게 더욱 큰 질투심을 느낀다. 모리스와의 갈등이 심해지자 결국 쇼팽은 노앙에 있는 상드의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쇼팽이 상드의 집을 떠난 후, 솔란지는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조각가와 결혼하려고 한다. 상드는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는데, 이 과정에서 쇼팽과 솔란지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오해하게 된다. 쇼팽은 상드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고 절망한다.

당신의 행동에 놀랐어요. 제가 생각했던 최악의 경우군요. 당신의 건강이 회복되길 빕니다. 솔란지가 당신과 함께 있으니 곧 회복될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를. 나는 하나님께 8년에 걸친 우리의 우정을 감사하고, 그 우정이 끝난 걸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영원할 것 같던 두 사람의 사랑이 종지부를 찍는다. 그 후 쇼팽의 병세가 악화된다. 병석에 누운 쇼팽은 멀리 폴란드에서 자기를 찾아온 누이에게 자기가 죽으면 심장을 고향으로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 기록에 의하면 쇼팽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 상드를 그리워했지만 상드는 쇼팽과 헤어진 후 열세 살 연하의 조각가 망소와 다시 사랑을 불태웠다고 한다.

장면은 바뀌어 폴란드의 국경 검문소. 귀국길에 오른 쇼팽의 누이가 검문을 받고 있다. 그녀가 들고 있는 가방을 가리켜 경비가 안에 무엇이 들어있느냐고 하자 쇼팽의 누이는 “심장이요.”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쇼팽의 심장은 고향으로 돌아온다.

들판에 황혼이 깔리고, 멀리 어스름한 빛을 배경으로 나무들의 실루엣이 시적(詩的)으로 펼쳐진다. 이 장면을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2악장이다. 시처럼 아름다운 멜로디. 쇼팽은 이렇게 평생 동안 피아노로 시를 썼다. 그 누가 피아노라는 악기를 가지고 이토록 아름답고 영롱한 시를 쓸 수 있을 것인가. 고전주의 시대에도 피아노가 있었지만 피아노를 낭만주의 시대에 맞는 악기로 바꾸어놓은 사람은 다름 아닌 쇼팽이었다. 그는 피아노로 하여금 노래 부르게 했다. 눈물겹게 영롱하고 아름다운 노래, 가장 낭만적인 시대의 로망스를.


관련링크: 통합검색 결과 보기14547454481930.jpg    쇼팽 왈츠 19번 음반1454745448193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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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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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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