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송 오브 노르웨이 - 북구의 대자연을 그린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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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27회 작성일 16-02-0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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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집에 친구들을 데려왔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소파에 길게 눕거나 기대앉아 빔 프로젝터를 틀어놓고 노트북으로 다운로드한 영화를 보았다. 세상 참 좋아졌다. 집에서도 원하는 영화를 큰 화면으로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의 청소년기가 떠올랐다. 영화관에 가는 것이 지금처럼 일상화되지 않았던 시절, 게다가 우리는 좋은 영화를 고를만한 안목도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시절에 상영한 영화 중에서 소위 명화로 꼽히는 것은 제법 보았던 것 같다. 문화적으로 모든 것이 척박한 시절에 우리가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단체 관람 덕분이었다. 중간고사나 학기말 고사가 끝나면 학교에서 저렴한 가격에 영화를 볼 수 있는 단체 관람을 주선해 주었다.

[닥터 지바고] [천일의 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올리버 트위스트] [로미오와 줄리엣] [사운드 오브 뮤직] [젊은이의 양지] [에덴의 동쪽] [초원의 빛]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영화들을 보았다. 당시 별다른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살던 우리들에게 단체 관람은 메마른 땅에 단비와 같은 축복이었다. 아직도 그때의 감동이 생생하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 수많은 영화를 보면서 촉촉해진 내 감성은 지금도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그리그 -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 1악장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소니뮤직




[송 오브 노르웨이]도 그런 영화 중 하나였다. 이 영화는 노르웨이 출신의 작곡가 에두아르드 그리그의 일생을 그린 뮤지컬 영화이다. 뮤지컬이니 음악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음악보다 내게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화면을 압도할 듯 펼쳐지는 노르웨이의 대자연이었다.

투명하고 싸늘한 공기,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침엽수, 계곡 사이로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폭포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피오르.

노르웨이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서반부 반도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동쪽으로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연방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그 외의 지역은 바렌츠해, 노르웨이해, 북해, 스카게라크 해협으로 둘러싸여 있다. 노르웨이 중부의 북쪽은 북극권에 드는데, 북극권은 여름에는 백야라고 해서 한밤중에도 대낮같이 밝은 반면, 겨울에는 낮에도 해를 볼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된다. 우리처럼 낮과 밤을 매일 정기적으로 맞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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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노르웨이의 대자연의 모습을 마음껏 보여주며 시작된다. <출처: topic/corbis>


산지에는 침엽수림에 둘러싸인 빙하호가 많고, 서해안은 드나듦이 심한 피오르로 되어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송네 피오르는 그 길이가 무려 160km나 되며, 이것을 둘러싸고 있는 'U'자 형태의 아름다운 계곡은 빙하시대의 순수한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노르웨이를 직접 가보지 않고는 이 나라의 대자연이 어느 정도의 위용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이 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그리그의 음악을 통해서.

영화는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1악장을 배경으로 노르웨이의 풍광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노르웨이의 자연을 마음껏 보여준 다음, 그리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워낙 옛날에 만들어진 영화라서 그런지 스토리 자체는 다소 진부하고 상투적이다. 가난한 예술가와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귀족 출신 여성. 두 사람의 사랑과 집안의 반대. 사랑을 위한 양보와 희생. 또 다른 사람과의 만남. 두 여인 간의 갈등. 약간의 오해와 화해. 그리고 해피엔딩. 대충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가난한 집안 출신인 그리그는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음악계의 편견으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스웨덴 귀족 출신 여성 테레사를 만난다. 테레사는 그리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물심양면으로 그를 돕는다. 그러는 동안 어느덧 그리그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그리그와 가깝게 지내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딸에게 제안을 한다. 그리그의 연주회 비용을 지원해 주는 대신 자기가 추천하는 핸슨 대위와의 결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그의 장래를 생각한 테레사는 이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리그의 곁을 떠난다.

그 후 그리그는 테레사의 도움으로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연주회를 연다. 하지만 생각만큼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한다. 하지만 좋은 일도 생긴다. 바로 여기서 그리그 음악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리카도 노드랙을 만나기 때문이다. 노드랙은 노르웨이 국가의 작곡가로 그리그에게 노르웨이 민족 정서의 중요성을 깨우쳐준 사람이다.

노드랙과 그리그는 조국 노르웨이를 목숨처럼 사랑했다. 자기 조국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그를 비롯한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조국은 아주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노르웨이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리그가 살아있을 때에도 노르웨이는 스웨덴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런 데다가 음악은 서유럽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음악 하면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음악만 생각했다. 노르웨이는 그런 의미에서 음악의 변방국가였다. 하지만 노드랙은 이런 서유럽 중심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리그에게 노르웨이 사람만이 만들고 느낄 수 있는 노르웨이 음악을 만들 것을 권유했는데, 영화에서는 이런 조언을 노래로 처리했다.

노드랙이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1악장의 선율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데, 그 내용은 그야말로 ‘노르웨이 찬가’, 보다 자세하게 말하면 ‘노르웨이 자연 찬가’이다.

소리 없는 눈(雪)을 노래하고
겨울 바다를 노래하고
언덕을 덮고 있는 나무를 노래하라
서리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루어진
이 숲을 노래하라.
겨울은 마법사의 손
투명의 얼음성(城)과 이끼가 산을 뒤덮고
눈처럼 흰 금수강산
금방 잠드는 거인 같다.
갑자기 남쪽으로 기운
태양을 노래하라.
봄이 되면 땅에 다시 물이 흐르고
대지는 녹색으로 덮인다.
언덕은 해묵은 땅껍질을 벗고
새들도 다시 지저귄다.
미나리 아재비도 즐거이 춤추고
붓꽃의 물결이 그 위를 뒤덮고
산꼭대기엔 아직도 흰 눈이 쌓였네.
시냇물을 노래하라.
눈 덮인 산 꼭대기
노르웨이를 노래하라.
양들을 껑충 뛰고
숲 속에서 산들바람 불어오고
수천 개의 물줄기가 폭포 따라 쏟아진다.
여름의 붉은빛
가을이면 어두워지네.
오! 시인이여!
소리 높여 노래 부르라!
빙하, 피오르 해안
그리고 웅장한 하늘을!
우리가 잘 아는 세계를 세상에 알려라.
차가운 북구의 땅에
즐거움과 신비가 있다는 것을
그것이 바로 진정한 노르웨이의 노래
누구의 노래가 우리 가슴을 밝혀주겠는가
바로 너와 나의 조국을

노드랙을 만나면서 그리그의 음악적 지향점이 분명해진다. 진정한 노르웨이의 정신을 구현하는 작곡가로 거듭난 것이다.

한편 이 무렵 그리그는 사촌이자 소프라노 가수인 니나 하그로프를 만난다. 노드랙과 그리그, 니나의 우정을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어느덧 니나와 그리그는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중간에 니나 어머니의 반대가 있었지만 두 사람은 그런 장애를 극복하고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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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노르웨이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작곡가 그리그와 그의 아내 니나 <출처: topic/corbis>


하지만 결혼 이후에도 경제적인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 약속했던 지휘자 자리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자 그리그는 피아노 레슨을 하며 생계를 꾸려간다. 하지만 재능 없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에 대해 괴로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테레사가 우연히 신문에서 그리그가 낸 피아노 레슨 광고를 보게 된다. 테레사는 재능 있는 작곡가가 고작 피아노 레슨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리그와 헤어진 사이, 테레사의 신상에 변화가 있었다. 그리그와의 만남을 반대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갖게 되었으며, 헨슨 대위와 파혼하고 이제 혼자가 된 것이다. 테레사는 자기가 받은 유산으로 그리그의 연주회를 후원하겠다고 나선다.

남편의 돈 많은 옛 여자 친구의 출현에 니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남편의 출세를 위해 자신이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리그의 곁을 떠난다. 이 일로 그리그와 니나의 관계가 잠시 소원해진다. 하지만 헤피엔딩의 영화가 대개 그렇듯이 나중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그리그와 니나가 행복하게 다시 만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렇게 줄거리는 평범하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다른 데에 있다. 바로 화면 가득 펼쳐지는 노르웨이의 풍광과 배경으로 깔리는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이다. 이 곡에는 북구의 대자연이 들어있다.

그리그는 자연 속에 구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흔 두 살 되던 해에 그 구원을 찾아 베르겐 근교의 자연으로 들어갔다. 멀리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집을 짓고 그곳에서 창작의 불을 지폈는데, 그의 아내 니나는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서 있는 언덕을 트롤하우겐이라고 불렀다.

트롤하우겐의 집은 그리그에게 영감의 샘 같은 곳이었다.. 스칸디나비아 풍으로 꾸며진 거실의 넓은 창밖으로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자연이 풍경화처럼 펼쳐지곤 했다. 짙푸른 바다와 호수, 깎아지를 듯 험준한 산맥과 투명한 하늘, 눈 위에서 싸늘하게 반짝이는 햇빛…… 각기 다른 빛깔로 펼쳐지는 노르웨이의 풍경들이 이 집에서 고스란히 그의 오선지에 담겼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그리그는 집 아래 호숫가에 있는 작은 오두막으로 내려가 악상을 다듬곤 했다. 이 작고 소박한 오두막집에서 그리그는 비로소 편안한 기분이 되곤 했다.

“노르웨이를 생각하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 있는 이유다”

그리그는 평소에 이렇게 말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피아노 협주곡을 들어보면 이 나라의 웅장한 풍광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피아노의 서늘한 음색과 오케스트라의 투명한 울림이 눈 덮인 북구의 산천과 울창한 숲을 연상시킨다.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한 후, 그리그는 코펜하겐에서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리스트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그는 리스트에게 피아노 협주곡의 악보를 보여주었다. 리스트는 장대한 스케일과 뛰어난 색채감을 지닌 이 작품에 감탄하며 “이 곡이야말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혼이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1867년, 그리그는 아내와 딸을 코펜하겐에 있는 처갓집에 맡기고 자기는 소를로프에 있는 작은 여름 별장에 머물려 피아노 협주곡의 작곡에 열중했다. 바로 이 무렵 피아노의 오케스트라 파트의 골조가 만들어졌다. 이 시기는 그리그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서 이 곡에는 이런 순수하고 솔직한 정서가 흘러넘치고 있다.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1869년, 코펜하겐의 카지노 홀에서 초연되었다. 당시 피아노를 협연자였던 에드먼 네우페트는 그리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1악장 카덴차가 끝나자 성급하게도 박수가 폭풍우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세 사람의 시끄러운 비평가들도 특별석에서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의 초연이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편지이다.

젊은 그리그의 조국에 대한 열정과 사랑, 낭만이 깃들어 있는 곡, 장대한 산맥처럼 펼쳐지며 청신하고 서늘한 북구의 겨울을 느끼게 하는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아주 인상적인 도입부로 시작을 한다. 마치 “우르르 꽝”하고 천둥이 치는 것과 같다. 팀파니가 크레센도로 ‘드르르르르르’ 발구르는 소리를 내면 피아노가 높은 곳에서 “쾅”하고 폭발하듯 시작해 양손으로 옥타브를 치면서 격정적으로 하강한다. 그것이 시원하고 장쾌한 북구의 자연을 연상시키는데, 이 장대한 도입부는 대자연의 문을 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부터 장대한 대자연의 드라마가 펼쳐질 것이라고 예고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노르웨이의 거대한 침엽수림, 만년설 위에 ‘쨍’하고 반사되는 날카로운 햇빛, 계곡 사이에 드리워진 서늘한 그늘과 같은 곡이다. 이런 그리그의 자연 묘사는 느린 템포의 2악장에서도 계속된다. 여기서 피아노 선율은 마치 바위틈을 따라 흘러내리는 작은 물줄기 같다. 때로는 곡선을 그리기도 하면서 영롱하고 섬세하게 밑으로 떨어진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펼치는 대자연의 드라마는 격렬한 하강 선율로 끝을 맺는다. 그리그는 바로 이 피날레 부분에 도입부에서 사용했던 모티브를 다시 사용했다. 이 인상적인 도입부가 이 곡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것이다.

아직 노르웨이에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실제로 노르웨이 자연이 얼마나 웅장한지 잘 모른다.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며 청각적으로나마 그것을 상상할 뿐이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은 꼭 가보고 싶다.그리하여 어린 시절, 화면 가득 나를 압도했던 대자연의 감동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


관련링크: 통합검색 결과 보기14547454830777.jpg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음반 1454745483077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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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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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onymus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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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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