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타인의 취향 - 취향에도 등급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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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07회 작성일 16-02-0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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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 배우자나 집을 고르는 중요한 문제에서부터 옷이나 커피, 점심 메뉴를 고르는 가벼운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삶의 매 순간마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선택하면서 살아간다. 이때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선택하도록 하는 무의식의 기재가 바로 취향이다. 한 사람의 취향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지 명확하게 밝혀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선천적인 것일 수도 있고, 교육이나 환경에 의한 후천적인 것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취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취향에도 수준이 있을까? 무엇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기호의 문제에 등급을 매길 수 있을까?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것과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는 것, 빨간색을 좋아하는 것과 초록색을 좋아하는 것 사이에 우열이 있을 수 있을까? 이렇게 물으면 누구나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기호의 문제를 넘어 문화와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취향은 한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총체적 방식으로서의 문화, 예술 작품을 판단하고 향유하는 능력과 감수성, 안목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바로 이 시점부터 취향은 ‘고급’과 ‘저급’으로 나뉜다.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고상한 생활양식, 예술을 즐기는 감수성과 훌륭한 예술을 알아보는 안목 즉, 고급 취향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돈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흔히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을 ‘벼락부자’라고 하는데, 이 말속에는 돈으로도 메꾸어지지 않는 이들의 문화적 빈곤, 저급 취향에 대한 경멸이 숨어 있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베르디 - [리골레토] 중 [그리운 이름이여 Caro nome]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소니뮤직




과거 유럽에서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번 부르주아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집에 값비싼 그림을 사들이는 일이었다고 한다. 귀족 흉내를 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다방면에 걸쳐 높은 교양을 쌓아온 귀족들에 비해 부르주아들은 예술 작품을 보는 훈련이 안 되어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지만 위아래가 어딘지 몰라 그림을 거꾸로 걸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전해질 정도다. 이들이 자신들의 재산에 어울리는 고급 취향을 갖기까지 몇 세대가 걸렸다. 그 전까지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소위 고급 취향으로부터 소외된 ‘문화적 소수자’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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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에도 등급이 있을까? 문화적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사랑을 풀어가는 영화 [타인의 취향] <제공: 네이버 영화>영화 정보 보러가기


과거에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문화 향유의 기회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해진 요즘에도 이런 문화적 소수자가 존재한다. [타인의 취향]의 주인공 카스텔라도 이런 사람 중 하나이다. 기업체의 사장인 그는 문화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생전 연극을 본 적도 없고, 소설을 읽은 적도 없으며, 그림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다. 그의 아내 안젤리크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이다. 남편과는 달리 자기는 매우 고급스러운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그녀는 자기 취향에 따라 집을 온통 핑크빛과 꽃무늬로 꾸며 놓는다.

어느 날 카스텔라는 아내와 함께 자기 조카가 단역으로 출연하는 연극을 보러 간다. 연극이 좋아서 간 것은 아니라 조카가 출연한다고 하니까 인사치레로 마지못해 억지로 간 것이다. 이날 무대에 오른 작품은 라신의 유명한 비극 [베레니스]. 로마 장군 티튀스와 베레니스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베레니스는 티튀스와 사랑하는 사이지만,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서 황제로 임명되어 다른 여인을 황후로 맞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티튀스와 가슴 아픈 이별을 해야 하는 베레니스는 절절하게 외친다.

“영원히 안녕.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가? 행복한 결혼은 바라지도 않아요. 당신을 볼 수만 있다면. 같은 공기를 마실 수만 있다면.”

그런데 바로 이 연극이 카스텔라의 마음을 움직인다. 티튀스와 베레니스가 이별하는 장면을 보면서 카스텔라는 눈물을 흘린다. 생전 연극이라고는 본 적이 없는 그가 여주인공의 절절한 연기와 극중 인물의 애절한 사랑에 그만 속수무책으로 빠져든 것이다. 깊은 감동을 받은 카스텔라는 그 후 다시 한번 같은 연극을 보러 공연장을 찾는다.

이 연극에서 여주인공 베레니스 역을 맡은 배우는 평소 카스텔라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클라라이다. 연극을 보러 와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카스텔라는 공연이 끝난 후 무대 뒤로 클라라를 찾아간다. 그리고 연극이 아주 감동적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클라라는 이런 그를 매우 냉정하게 대한다. 그녀의 눈에는 그가 문화적 소양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무식쟁이로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처음 카스텔라를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은근히 그를 무시하고 있었다. 비록 무명 배우에 불과하고, 그래서 부업을 하지 않으면 집세조차 내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처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기가 카스텔라보다는 정신적으로 우월하다는 일종의 자부심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

그 후 카스텔라는 계속 클라라 주변을 맴돈다. 어느덧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는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예술계에 종사하는 클라라의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한다. 때로 술값과 밥값을 내주기도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시와 조롱뿐이다. 관객을 많이 모으려면 웃기는 연극을 해야 한다는 카스텔라의 말에 클라라의 친구들이 “입센의 [인형의 집]이 정말 웃기는 연극이야. 특히 로라가 집 나갈 때 얼마나 웃겨?”라고 말하며 폭소를 터트려도 그것이 자기를 놀리는 것인 줄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클라라의 친구가 그림 전시회를 연다. 전시된 그림은 어두운 색조의 추상화들이다. 이날도 어김없이 클라라가 있는 현장에 나타난 카스텔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찬찬히 그림들을 돌아본다. 그러다가 그중 하나를 구매한다. 그리고 집으로 가져와 온통 핑크빛과 꽃 그림 일색인 거실 벽에 건다. 그림이 마음에 든 카스텔라는 전시회를 연 화가에게 자기 회사 건물의 벽을 장식할 거대한 벽화를 부탁한다.

그 후 카스텔라는 클라라에게 영어 숙제로 써온 영시(英詩)를 빌어 자기 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카스텔라는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일로 카스텔라는 무척 낙심한다.

한편 클라라는 화가 친구가 카스텔라 회사의 대형 벽화를 맡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가 카스텔라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보는 안목이 없는 카스텔라가 자기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기 친구에게 벽화를 부탁했고, 친구는 이런 그의 마음을 이용해 큰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클라라가 그를 찾아가 이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고 하자 카스텔라가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에 대한 내 호의를 이용해요? 난 그림이 좋아서 샀는데 뭐가 문제지요? 내가 왜 그림을 샀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을 기쁘게 해주려고? 근사하게 보이려고? 아주 잠깐이라도 내가 그 그림이 좋아서 샀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요? 날 그런 사람으로 보나요? 난 그 그림들이 좋아요. 믿을지 모르겠지만 당신 때문에 산 게 아니에요. 날 좋아할 수 없다고 진작 말했잖아요.”

클라라가 보기 좋게 한 방 얻어맞았다. 카스텔라의 이 말은 스스로 고급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의 허위의식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것이다. 클라라는 예술을 보는 안목, 문화적 취향에 있어서만큼은 자기가 카스텔라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오만이자 편견이었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취향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이 본인도 모르게 잠재되어 있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갑자기 밖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 집에 내가 고른 물건 있어? 내가 좋아하는 거 하나쯤 놔두면 안 돼? 여기는 완전히 인형 가게 같아. 핑크색에 온통 새 그림, 꽃 그림. 더 이상은 못 참아.”

자기가 사 온 추상화를 아내가 치워버린 것을 알고 카스텔라는 이렇게 소리친다. 이제까지 아무런 의견이 없던 그가 드디어 자기 취향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원래부터 아내의 취향을 싫어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전까지 전혀 취향이 없다가 클라라를 만나고 연극과 그림을 보면서 잠자던 취향이 고개를 든 것일까. 여하튼 이렇게 말한 후 그는 아내의 취향으로부터 탈출한다. 짐을 싸들고 집을 나온 것이다.

한편 자기가 업신여겼던 카스텔라에게 보기 좋게 한방 먹은 클라라는 그때부터 그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그래서 자기가 출연하는 연극에 초대한다. 연기를 하면서도 눈으로 애타게 카스텔라를 찾던 클라라는 마지막 인사를 할 때,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를 치는 그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는다. 클라라와 카스텔라 모두에게 새로운 취향의 사랑이 이제 막 시작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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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등장 인물들은 예술적 취향의 차이를 느끼고 겪어가며 서로에 대한 관심을 키워간다. <제공: 네이버 영화>


[타인의 취향]은 참 독특한 영화다. 예술적 취향과 사랑이라는 어떻게 보면 조금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가벼운 터치로, 그러면서도 경박하지 않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박한 정서는 배경으로 쓰인 음악에도 드러난다. 영화의 초반부와 카스텔라가 동료들과 함께 걸어가는 클라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나오는 여성 이중창이 있다. 이 곡은 멘델스존의 [내 사랑을 한 마디 말에 실어]라는 노래인데, 구성과 멜로디가 단순한 아주 소박한 노래이다. 클라라에 대한 카스텔라의 순박한 사랑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본래 이 노래는 독일 시인 하이네의 [내 고통을 한 마디 말에 실어]라는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하이네의 원시는 ‘고통 Schmerz’이러고 되어 있지만, 멘델스존이 노래로 만들면서 이 단어를 ‘사랑 Liebe'이라고 바꾸었다고 한다. ‘고통’이 ‘사랑’으로 바뀌면서 정서가 달라졌다. 진지하고 가슴 아린 사랑이 소박하고 따스한 사랑으로 바뀐 것이다. 여기에 음을 붙인 멘델스존의 노래 역시 밝고 사랑스럽다. 배경 화음을 경쾌하게 짚어주는 피아노 위를 노래의 멜로디가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넘나든다. 카스텔라는 연인의 이별 앞에 눈물짓고,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시(詩)를 쓸 정도로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지만 기교를 부릴 줄은 모른다. 그가 클라라 앞에서 읊은 솔직하지만 어설픈 영시(英詩)는 그가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현란한 기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어설픔과 솔직함이 진실을 말해 줄 때도 있다. 꾸미지 않아서 좋은 것, 기교를 부리지 않아서 더욱 진솔하게 마음에 와 닿는 것. 그런 의미에서 멘델스존의 노래와 카스텔라의 마음은 서로 닮아있다.

카스텔라와 클라라가 카페에서 영어 공부를 할 때마다 나오는 음악도 멘델스존의 노래만큼이나 단순 소박하다. 이 곡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D.537의 2악장이다. 카스텔라가 클라라를 위해 쓴 어설픈 시를 읽을 때, 비가 오는 날 카페에서 클라라가 혼자 카스텔라를 기다릴 때, 그리고 그림 문제로 카스텔라를 찾아간 클라라가 그로부터 한 소리 듣고 돌아가는 장면에서 나온다.

이 곡은 피아노곡치고는 단순하다. 앞에 얘기한 멘델스존의 노래처럼 기교적으로 어렵지 않다. 듣고 있으면 피아노 독주곡이라기보다 가곡의 전주 같은 느낌이 든다.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이라고 불리는데, 이런 이름에 걸맞게 그는 자주 악기에게도 노래를 부르게 한다. 그럴 때면 과도한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멜로디를 노래처럼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게 작곡한다. 클라라가 오지 않는 카스텔라를 기다리는 동안 이 곡이 흐른다. 허공에서 빗방울이 피아노 선율처럼 경쾌하게 난무한다.

이 영화에서 카스텔라의 클라라에 대한 사랑과 잠재된 취향의 발견이라는 문제는 서로 묘하게 얽혀있다. 클라라에 대한 사랑이 곧 취향의 발견이며, 취향의 발견이 곧 클라라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이 신기하고 로맨틱한 ‘눈뜸’을 상징하는 음악으로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 나오는 질다의 아리아 [그리운 이름이여]가 나온다. 질다가 교회에서 만났던 가난한 고학생을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카페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 카스텔라는 반색을 하며 멜로디를 따라한다. 아는 노래라고 생각한 것이다. 클라라가 어떻게 이 노래를 아느냐고 놀라지만 곧 카스텔라가 첫 마디가 비슷한 다른 노래로 착각했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한다.

이렇게 처음에 [그리운 이름이여]는 카스텔라의 무식을 입증하는 자료로 쓰인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그 의미가 달라진다. 그림 전시회에 간 카스텔라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그림을 보는 장면(이때 그는 곁눈으로 살짝 클라라를 훔쳐본다), 회사 건물 밖에서 화가와 벽화에 관해 상의하는 장면, 거리에 붙어 있는 클라라의 연극 포스터를 보는 장면, 그리고 차안에서 클라라를 생각하는 장면에서 이 노래가 나온다. 사랑에의 눈뜸과 잠재된 취향의 발현이라는 두 가지 주제가 중첩되어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그리운 이름이여]는 클라라에 대한 카스텔라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자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카스텔라의 감수성이 이제 막 발현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에 나온 멘델스존이나 슈베르트 음악과는 달리 [그리운 이름이여]는 고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어려운 노래이다. 사랑이 예술적 취향과 만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클라라는 예술적 취향이 자기하고 맞는 사람만 사랑할 수 있는 여자다. 그 고급 취향에 도달한다는 것이 카스텔라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질다가 구사하는 아득한 고음만큼이나 멀고 어렵게 느껴졌을 것이다.

고급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카스텔라 같은 문화적 소수자를 비웃는다. 그러나 입센이 누군지 몰라도, 베르디가 누군지 몰라도,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난해한 추상화에 한순간 마음을 빼앗길 수 있는 것이다. 불협화음이 난무하는 현대음악에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감동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개인적 취향의 영역이니 앞으로는 부디 이런 ‘타인의 취향’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이 없기를.


관련링크: 통합검색 결과 보기14547454885281.jpg    베르디 리골레토 음반1454745488528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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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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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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