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바그다드 카페 - 사막의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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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00회 작성일 16-02-0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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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가족들과 미국 서부를 여행한 적이 있다. 자동차를 타고 솔트레이크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몇 시간을 달렸다. 가는 동안 눈앞에 삭막한 사막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직선으로 쭉 뻗은 도로를 달리는 동안 창밖의 풍경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말할 수 없이 지루했다. 허름해도 좋으니 잠깐 동안이라도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그곳, ‘바그다드 카페’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J.S. 바흐 [평균률 클라비어 곡집] 제 1권 1번 [전주곡(Prelude)]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소니뮤직




미국 라스베이거스 부근의 모하비 사막 66번 도로변. 여기에 이름도 생경한 바그다드 카페가 있다. 이 카페에는 여주인 브렌다와 그녀의 남편과 아들 살라모, 딸 필리스 그리고 살라모의 아들인 손자가 살고 있다. 카페에는 그밖에 군식구도 있다. 카페 일을 돌보고 있는 인디언 청년 카후엔가와 모텔을 근거지로 매춘을 하고 있는 데비 그리고 할리우드 출신의 삼류 화가 콕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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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조합되어 ‘부조화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영화 [바그다드 카페] <제공: 네이버 영화>영화 정보 보러가기


카페 여주인 브렌다는 생활력이 아주 강한 억척스러운 여자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카페 일에 통 관심이 없고, 브렌다는 이런 남편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카페 일에 관심 없기는 그녀의 아들 살라모도 마찬가지다. 살라모의 최대 관심사는 피아노. 그는 한창 어른의 손길이 필요한 자기 아기는 팽개쳐 둔 채 하루 종일 피아노 연습에만 열중한다. 한편 사춘기 딸 필리스는 항상 밖으로 나돌며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린다. 이런 가족들과 함께 사는 브렌다의 삶은 짜증으로 얼룩져 있다.

어느 날, 이 카페에 뚱뚱한 여자가 찾아온다. 그녀는 야스민이라는 이름의 독일인 관광객인데, 여행 도중 남편과 부부 싸움을 하고 홧김에 차에서 내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딱히 갈 곳이 없는 야스민은 카페에 딸린 모텔방에서 당분간 묵기로 한다. 하지만 브렌다는 처음부터 야스민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러다가 자기가 외출한 사이 야스민이 카페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자기 책상을 정리해 놓은 것을 보고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다며 불같이 화를 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야스민은 브렌다를 비롯한 카페 식구들과 친해진다. 그중에서 야스민의 출현을 가장 반기는 사람은 살라모이다. 상당한 피아노 실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야스민이 오기 전까지 그의 피아노 연주는 카페에서 찬밥 신세였다. 아무도 그의 음악을 알아주지 않았다. 브렌다는 아들이 피아노를 칠 때마다 조용히 하라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야스민이 들어와 조용히 눈을 감고 그의 연주를 경청하는 것이 아닌가. 살라모는 그 모습을 보고 감동한다. 그리고 “이 집에 내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은 야스민 밖에 없어.”라고 기뻐한다.

한편 화가 콕스는 그녀가 눈감고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한다. 그는 야스민에게 그녀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고 하고, 그날부터 야스민은 콕스의 모델이 된다. 콕스는 그녀의 그림을 여러 장 그리는데, 재미있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노출의 수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거운 정장에 모자까지 쓰고 포즈를 취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옷을 벗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전라(全裸)의 모습으로 포즈를 취한다. 이것은 야스민과 콕스 사이에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 두 사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콕스가 완성한 그림을 보니 어떤 화가가 생각난다. ‘뚱보 그림’으로 유명한 콜롬비아의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이다. 보테로의 그림처럼 콕스의 그림 속 야스민의 모습이 갓 구운 식빵처럼 활기차고 탱탱하게 그려져 있다. 감독이 보테로의 그림을 염두에 두고 이 장면을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콕스가 그린 야스민의 그림이 보테로의 그림과 닮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모텔에 머무는 동안 야스민은 심심풀이로 마술을 공부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인 후 카페 손님들에게 마술 솜씨를 선보이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어느덧 운전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카페를 찾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게 된다. 야스민의 출현으로 바그다드 카페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되었다. 흥겨운 음악과 재미있는 마술, 환한 웃음과 격의 없는 대화가 오가는 곳, 오랜 여행에 지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 된 것이다. 손님들 앞에서 야스민은 마술을 하고, 브렌다는 노래를 부르고, 살라모는 피아노 반주를 하고, 콕스는 조명을 책임진다. 모두들 자기 역할을 하면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곧 문제가 생긴다. 경찰이 와서 야스민이 체류 기한이 지났는데 여전히 미국에 있으면서 노동 허가증도 없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불법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결국 야스민은 바그다드 카페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야스민이 떠난 후,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다. 손님으로 붐비던 카페는 파리를 날리고, 브렌다는 혹시 그녀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루하루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야스민이 돌아온다. 야스민이 돌아온 후, 바그다드 카페는 활기를 되찾는다. 삶의 기쁨을 다시 찾은 브렌다는 떠났던 남편이 돌아오자 그를 환한 웃음으로 맞는다.

영화는 콕스가 야스민에게 청혼을 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콕스를 청혼을 받고 야스민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브렌다하고 상의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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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야스민의 출현으로 바그다드 카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곳이 된다. <제공: 네이버 영화>


[바그다드 카페]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조합되어 ‘부조화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영화이다. ‘바그다드’와는 전혀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카페의 이름도 그렇고, 뚱뚱한 독일 여자가 뜬금없이 마술을 하는 것, 콕스가 그린 그림이 보테로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것, 그리고 매춘부가 읽는 책이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라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영화에서 가장 생경한 것은 바로 음악이다. 여기서 살라모가 연주하는 음악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이다. 모하비 사막 한 가운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허름한 카페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 쉽사리 줄긋기가 안 되는 조합이다. 살라모는 시도 때도 없이 피아노를 친다. 그렇게 바흐의 음악이 뜬금없이 카페의 지루한 일상으로 끼어든다.

야스민이 자기가 독일인이라고 말했을 때, 살라모는 그녀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요한 세비스찬 바흐도 독일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흐와 같은 나라 사람인 야스민이 자기 음악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날 그가 야스민을 감동시킨 곡은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 1번의 [전주곡]이다.

여기서 평균율이란 한 옥타브를 12개의 반음으로 쪼개놓은 것을 말하고, 클라비어는 건반악기를 말한다. 지금은 평균율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바흐가 살던 시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음악에서 동시에 연주하는 두 음이 듣기 좋은 소리를 낼 때 이것을 협화음이라고 하고, 그 반대일 경우 불협화음이라고 한다. 고대의 철학자이자 음향학자인 피타고라스는 현의 길이가 간단한 정수의 비로 표현될수록 어울리는 소리가 나고, 복잡할수록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피타고라스의 음정에서는 1도, 4도, 5도, 8도 음정만을 완전 어울림 음정이라고 한다. 이런 피타고라스의 음정 이론에 따라 음계를 정하는 방법을 순정률이라고 한다.

정수의 비로 간단하게 표시되는 순정률의 음정은 완벽한 화음을 보장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순정률에서는 음정 간의 진동수의 비율이 일정하지 않다. 똑같은 2도 음정이라도 진동수의 비가 각각 9 : 8, 10 : 9, 16 : 15로 다르다. 거의 비슷한 처음 두 가지를 각각 온음이라 하고, 훨씬 작은 마지막 경우를 반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순정율에서는 반음 두 개를 합친 것이 온음이 되지 않는다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물론 처음부터 정해진 음계로 연주할 경우에는 문제가 없다. 그럴 경우 깔끔한 정수의 비처럼 완벽한 화음이 만들어진다. 즉, C로 시작하는 음계는 듣기 좋은 C장조 화음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다른 조로 이동할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한다. 음계와 음정 사이의 거리가 약간씩 변화하기 때문이다. 순정률에서는 같은 음정이라도 그 간격이 어떤 조에서는 약간 넓고, 또 어떤 조에서는 약간 좁다. 따라서 음높이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무반주 합창(아 카펠라)이나 현악기 합주 등에서는 그 화성적 아름다움이 살아나지만, 음높이를 고정시킨 악기 말하자면 피아노나 관악기 같은 경우 온음의 폭이 고르지 않고 조바꿈이 곤란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렇게 순정률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아름답지만 자칫하면 깨지기 쉬운 유리 조각 같은 것이었다. 원래의 조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지만 일단 조를 바꾸면 그 조화가 깨지기 때문이다. 음악이 단순했을 때에는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음악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순정률은 점점 더 작곡가들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되어갔다.

오랫동안 이 문제로 골치를 썩던 음악가와 작곡가들은 17세기가 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작곡가들은 언제든지 조바꿈을 할 수 있는 자유를 간절하게 원했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평균율이다. 평균율은 한 옥타브를 12개의 반음으로 나눈 것으로 어느 조성에서도 모든 음이 동일한 음정을 갖는다. 따라서 조바꿈이 자유롭다.

하지만 평균율에서는 완전 8도를 제외한 어떤 음정도 완전한 협화음이 되지 않기 때문에 순정률만큼 사람의 귀에 아름답게 들리지 않는다. 협화음과 불협화음이 건반 위에서는 동일한 음정으로 되는 모순도 있다. 그러나 평균율은 모든 장조와 단조로 연주가 가능한 실용적 음계이며, 자유로운 조바꿈과 조옮김은 물론 화음 진행을 원활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어 지금까지 서양음악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어느 조(調)로도 자유롭게 조옮김이 가능한 시스템의 개발은 곧 작곡가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이 편리한 시스템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건반악기 한 옥타브 안에 있는 12개의 반음을 으뜸음으로 하는 장조와 단조곡 24곡을 작곡했다. 각각의 곡은 [전주곡]과 [푸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이다.

[바그다드 카페]에서 야스민이 눈을 감고 듣던 곡은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의 1번 C장조의 [전주곡]이다. 전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 곡에는 멜로디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다. 그냥 8개 음으로 구성된 분산화음이 연속적으로 펼쳐질 뿐이다. 같은 패턴의 음형이 음높이와 화음을 달리하면서, 중간에 어떤 변형도 없이 고집스럽게 반복된다. 그 펼쳐지는 모양이 마치 물결 같다. 생성하는 듯하다 소멸하고, 소멸하는 듯하다 생성한다.

바흐의 음악을 들으며 늘 놀라는 것은 이렇게 반복적이고 단순한 구조에 어떻게 그토록 풍성한 음악적 가능성이 담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안에 무수한 멜로디, 무수한 리듬, 무수한 화음을 담을 수 있다. 프랑스 작곡가 구노는 이 곡에 [아베 마리아]라는 멜로디를 선사했다. [바그다드 카페]의 살라모는 자기 기분에 따라 이 곡을 다양하게 변주했다. 그는 주로 리듬과 템포의 변형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아주 빨리 쳤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보통 빠르기의 부드러운 레가토로 시작한다.카페 식구들의 행복이 절정에 달했을 때, 살라모의 바흐는 경쾌한 부점음표로 바뀐다. 그러다가 야스민이 떠났을 때, 살라모는 아주 느리고 비통하게 이 곡을 연주한다.

이렇게 바흐의 음악은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악보에 적힌 음들은 바흐가 제시한 최소한의 외형률일 뿐이다. 그다음은 연주하는 사람의 몫이다. 빠르게 칠 수도 있고, 느리게 칠 수도 있으며, 논 레가토로 칠 수도 있고, 레가토로 칠 수도 있다. 자의적으로 프레이즈를 만들어서 칠 수도 있고, 악보에 적혀 있는 대로만 칠 수도 있다. 셈여림을 다르게 해서 칠 수도 있고,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세기로 칠 수도 있다. 달콤하게 칠 수도 있고, 건조하게 칠 수도 있다.

바흐 음악은 심지어 자유분방한 재즈로 편곡되기도 한다. 무미건조한 해석에서부터 흐드러지는 재즈에 이르기까지 변화의 스펙트럼이 무한대로 넓은 것이 바로 바흐의 음악이다. 바흐는 오래전에 죽었지만 그의 음악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지금도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끊임없이 여러 가지 버전으로 태어나고 있다.

흙먼지를 내고 달리는 고물차, 미국의 사막에 버려진 독일여자. 칠이 벗겨진 허름한 카페, 고장 난 커피 기계, 삶에 지친 가난한 흑인 가족, 문신, 피아노,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초상화, 폐차에 사는 삼류 화가, 누드모델이 된 뚱보, 보테로 풍의 그림, 하늘을 가르는 부메랑,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읽는 매춘부, 술 그리고 바흐의 전주곡.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 모든 것들이 바그다드 카페에 있다. 그러나 어디에 던져 놓아도 자기 자신의 꽃을 피우는 바흐 음악의 생명력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가끔 브렌다의 핀잔으로 중단되기도 하지만, 바그다드 카페에 시도 때도 없이 울려퍼지는 바흐의 음악은 이 모든 부조화를 조화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구심점이 된다. 바흐의 음악 덕분에 야스민은 살라모의 영혼을 사로잡고, 콕스의 예술혼에 불을 지른다. 그렇게 사막의 오아시스 안에서 낯선 것들이 차차 익숙한 것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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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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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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