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위대한 독재자 - 배우, 독재자를 풍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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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15회 작성일 16-02-0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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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 중이던 토매니아 제국의 유태인 이발사 찰리는 전투 중에 부상당한 슐츠라는 이름의 장교를 도와 비행기를 타고 탈출한다. 그런데 도중에 비행기가 추락하고, 이 충격으로 찰리는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그가 과거의 기억을 잊고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토매니아 제국은 쌍십자당을 이끄는 힌켈이라는 독재자가 다스리는 강력한 독재국가가 된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브람스, [헝가리 무곡] 5번음악 재생
2바그너, [로엔그린] 1막 전주곡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소니뮤직




힌켈은 아리아인의 혈통적 우월성을 주장하며, 자신들보다 열등한 민족인 유태인을 탄압한다. 이런 와중에 찰리는 병원을 탈출한다. 기억상실증에 걸려 그동안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는 그는 유태인 거주 지역에 있던 자신의 이발소로 돌아온다. 그는 이발소 창문에 유태인이라는 글씨를 쓰던 군인에게 대들어 길거리에서 교수형을 당할 뻔 하지만, 마침 그곳을 지나던 슐츠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 후 찰리는 같은 슐츠와 대화를 나누다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예전처럼 이발소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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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유대인 탄압이라는 역사적 비극에 대한 찰리 채플린의 풍자 영화 [위대한 독재자] <제공: 네이버 영화> 영화 정보 보러가기


한편 독재자 힌켈은 세계 정복을 꿈꾸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스테를리히라는 나라를 침략해야 하는데, 전쟁에 드는 막대한 군자금이 발목을 잡는다. 군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힌켈은 재무장관 가비치의 조언으로 유대인 은행가 엡스타인에게 돈을 빌리기로 한다. 그리고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돈을 빌리기 전까지만 유태인에 대한 탄압을 한시적으로 중단한다. 그리하여 토매니아 제국의 유태인 마을에 평화가 찾아오고, 유태인들은 예전처럼 평화로운 생활을 하게 된 것에 행복해한다. 찰리는 마을에 사는 태인 처녀 한나와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된다.

한편 엡스타인에게 돈을 빌리려던 힌켈은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엡스타인이 자기 동족을 탄압하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 줄 수 없다고 거절했기 때문이다. 협상이 결렬되자 힌켈은 또다시 유태인에 대한 탄압을 재개한다. 슐츠는 힌켈에게 유대인 탄압 정책이 잘못된 것이라고 항의하다 그의 눈 밖에 나서 도망자 신세가 되고, 찰리와 한나 역시 힌켈의 군대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러다가 찰리와 슐츠는 결국 붙잡혀서 수용소로 보내지게 된다. 유태인 탄압 정책에 고통받던 한나의 가족들은 평화로운 나라인 오스테를리히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독재자 힌켈은 오스테를리히 공격을 준비하던 중 이웃 나라 박테리아의 군대가 오스테를리히 국경에 집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힌켈은 박테리아의 독재자인 나폴리니를 초청해 서로 오스테를리히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협상을 맺는다. 하지만 힌켈의 속셈은 다른 데에 있었다. 서로 침공하지 않겠다고 협상을 해 나폴리니를 안심시켜 놓은 다음, 자기가 오스테를리히를 참략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 군대를 오스테를리히의 국경에 배치시켜 놓고, 자기는 편안한 복장으로 사냥을 떠난 척한다.

한편 그 사이 슐츠와 찰리는 장교복을 훔쳐 입고 수용소를 탈출한다. 두 사람을 잡기 위해 군인들이 이리저리 수색을 하던 중 찰리와 완전히 똑같이 생긴 힌켈을 발견한다. 군인들은 평상복을 입고 있는 힌켈을 찰리인 줄 알고 체포한다. 한편 힌켈과 똑같이 생긴 찰리는 장교 옷을 입고 있는 바람에 졸지에 힌켈로 오인되어 수많은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연설을 부탁받은 찰리는 잠시 당황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고 연설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힌켈이 전에 하던 것과는 완전 딴판이다. 증오와 반목 대신 평화와 화합을 외친다. 찰리의 연설은 라디오를 통해 세계 방방곡곡에 방송된다. 평화를 찾아 오스테를리히로 간 한나의 가족도 이 연설을 듣는다. 한나는 연설을 하는 사람이 찰리라는 것을 알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찰리 채플린이 감독, 제작, 각본, 주연을 맡은 영화 [위대한 독재자]는 예술가로서 채플린의 놀라운 창의성과 천재성을 보여주는 명작이다. 이 영화가 개봉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이 기간 동안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은 수 백만 명의 유태인과 집시들을 학살했다. [위대한 독재자]는 이 역사적 비극에 대한 패러디이다. 이 영화에서 힌켈은 히틀러를, 그가 다스리는 토매니아 제국은 독일을 가리킨다. 쌍십자당은 나치당이고, 두 개의 십자로 만들어진 쌍십자당의 상징은 나치당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처를 패러디한 것이다. 이웃 나라 박테리아 제국은 이탈리아이며, 이 나라의 지도자 나폴리니는 무솔리니를 의미한다. 한편 오스테를리히는 오스트리아를 의미하는 독일어 외스터라이히(Österreich)를 살짝 변형시켜 만든 것이다. 이렇게 채플린은 누가 보아도 분명하게 이 영화를 통해 히틀러와 나치 독일을 풍자하고자 했다.

[위대한 독재자]에서 채플린은 독재자 힌켈과 이발사 찰리 역을 동시에 연기한다. 힌켈과 찰리는 서로 상반된 캐릭터를 가진 인물인데, 채플린은 장면이 바뀔 때마다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그 인물로 변신한다. 둘 다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패러디의 묘미는 역시 찰리가 나오는 장면보다는 힌켈이 나오는 장면에서 더 통쾌하게 느낄 수 있다. 힌켈이 과장된 억양의 엉터리 독일어로 연설을 하다가 특유의 둔탁한 무성음을 연거푸 발음하며 기침을 하는 장면이라든가 바쁜 시간을 쪼개 불과 몇 초 동안 자기 초상화와 흉상을 제작하는 예술가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장면, 세계 지배를 꿈꾸며 지구의를 갖고 노는 장면 등이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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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힌켈이 세계 지배를 꿈꾸며 지구의를 갖고 노는 장면에서 울려퍼지는 바그너의 음악은 독일 정신에 대한 작곡가의 경외감을 보여준다. <제공: 네이버 영화>


이 중에서 특히 지구의를 갖고 노는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아닐까 싶다. 어느 누가 한 독재자의 허황된 꿈을 이토록 경건하게 풍자한 적이 있었던가. 힌켈은 세계 지도가 그려진 커다란 지구의를 가지고 놀면서 황홀경에 빠진다. 이때 음악이 흐른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의 1막 전주곡이다.

바그너는 중세의 기사 문학과 서사시, 독일 설화를 바탕으로 [로엔그린]을 만들었다. 브라반트의 영주가 죽은 후, 그의 딸 엘자는 남동생을 죽인 혐의로 텔라문트 백작에게 고소를 당한다. 이때 그녀를 구하기 위하여 성배(聖杯)의 기사 로엔그린이 나타나 텔라문트를 무찌른다. 결백한 몸이 된 엘자는 로엔그린과 결혼하게 되는데, 로엔그린은 그녀에게 자기 신원을 묻지 말 것을 조건으로 내세운다. 델라문트와 그의 아내는 기사의 이름과 신분을 알아내면 그의 신비한 능력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엘자를 꼬드겨 그것을 알아내도록 한다. 결혼식 날, 엘자는 로엔그린에게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묻고, 로엔그린은 자기가 성배의 수호신 파르지팔의 아들 로엔그린이라고 고백한 후 하늘나라로 돌아간다. 엘자는 절망 속에 죽음을 맞는다.

힌켈의 황홀한 꿈에 배경음악이 된 [로엔그린] 1막 전주곡은 8성부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파스텔 톤의 화음으로 시작한다. 이때 성배의 동기가 나오는데, 이것이 목관으로 이어진 다음 금관악기가 주도하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눈부시게 산화한다. 그 후 음악은 다시 초반의 천국처럼 아늑한 분위기로 돌아온다. 전체적으로 신비하면서도 경건한 느낌을 주는 음악이다.

힌켈이 지구의를 가지고 노는 행동은 보는 사람에게는 일종의 풍자지만 힌켈 자신에게는 황홀경 속에서 치르는 경건한 의식과 같은 것이다. 이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바그너의 음악은 신비롭고 경건하고 아름답게 ‘성배’로 상징되는 독일 정신에 대한 작곡가의 경외감을 보여준다. 힌켈이 지구의를 가지고 놀면서 게르만 민족의 세계 제패를 꿈꾸었던 것처럼 바그너 역시 [로엔그린]을 통해서 강력한 독일 민족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것이 상징하는 과도한 민족주의는 그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편하고 낯선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느껴진다.

영화의 관객은 국외자의 입장에서 힌켈의 지구의 놀이를 바라본다. 힌켈은 진지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는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바로 이런 시점의 차이가 풍자와 해학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그너의 [로엔그린]은 어떨까. 바그너는 중세의 기사도 문학과 독일 신화와 전설, 서사시 등을 적당하게 버무려서 이 오페라를 만들었다. 아마 어려서부터 독일 민담과 전설을 듣고 자란 독일 사람에게는 [로엔그린]에 나오는 성배의 기사 이야기가 매우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서적 배경이 없는 사람의 눈에는 그것이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 같아 보인다. 그렇게 바그너의 오페라는 게르만 범주 밖에 있는 사람들을 소외시킨다. 그 소외감은 영화에 나오는 1막 [전주곡]처럼 음악이 훌륭한 경우에 더욱 배가된다. 정서적으로 공감이 가지 않는 내용에 입혀진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음악. 이 부조화가 바로 바그너 오페라를 보면서 느끼는 소외감의 근원이다. 영화에서는 이 부조화를 풍자의 도구로 활용했다.

[위대한 독재자]에 나오는 또 하나의 명장면은 이발사 찰리가 손님에게 면도를 해 주는 장면이다.


“행복의 시간입니다. 당신의 일을 기쁨으로 만들어 보세요. 음악에 맞추어 움직여 보세요.”


라디오에서 이런 멘트와 함께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이 흘러나온다. 그러자 찰리가 음악에 맞추어 면도를 한다. 그런대 그 동작이 음악과 착착 들어맞는다. 첫 번째 소절에서는 면도용 거품을 만들고, 면도날을 간다. 그리고 두 번째 소절부터 박자에 맞추어 얼굴에 거품을 바르기 시작한다. 이어서 나오는 네 번의 크레센도. 능숙한 동작으로 음악에 맞추어 네 번 면도를 하고, 빠른 음형이 나올 때는 면도날을 수건으로 닦는다.

이 장면에 나오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집시 음악이다. 집시들은 유태인과 더불어 사회적으로 핍박받는 소외 계층이었다.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들이 유태인만이 아니다. 집시들도 많이 희생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집시에 대한 인식이 아주 안 좋았다. 난폭하고 불결하고 풍기문란하고 도둑질이나 일삼는 집단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다. 그래서 집시를 추방하거나 배척하는 나라들도 많았다. 독일에서는 집시를 발견하면 즉시 죽여도 좋다는 명령이 내려지기도 했으며, 프랑스에서도 집시들을 전멸시키려는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영국이나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집시에 대한 유화정책을 펴기도 했다. 가능하면 집시에게 직업을 갖도록 했으며, 이렇게 해서 직업을 가진 사람은 집시를 의미하는 ‘지고이네르’라는 이름 대신 신농민 혹은 신헝가리인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브람스가 자신이 작곡한 집시 스타일의 음악에 ‘헝가리’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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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은 영화를 통해 오랜 세월 동안 역사적 희생양이 되었던 집시와 유태인, 두 소외 계층을 대변한다. <제공: 네이버 영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소외된 자들의 음악이다. [위대한 독재자] 역시 소외된 자들의 영화이다. 집시와 유태인.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사회적 편견의 희생양이 되었던 사람들. 채플린은 유명한 이발소 장면에서 이 두 소외 계층의 영혼을 결합시켰다. 유난히 작은 키와 짧은 팔다리, 구부정한 어깨와 전체적으로 조화가 안 맞는 비례를 갖고 있는 채플린의 몸. 이렇게 불완전한 그의 몸은 그 자체가 집시와 유태인, 아니, 더 나아가 세상 모든 소외 계층을 대변하고 있다.

핍박받고 짓눌린 유태인의 몸이지만, 소외되고 고통받는 집시의 음악이지만, 이발소 장면에 나오는 채플린의 몸과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전혀 소외와 고통의 흔적을 보여주지 않는다. 브람스의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깔끔하고 적절하게 구사되는 채플린의 동작은 그 소외의 역사가 또 다른 창조의 에너지라는 것을, 몸과 음악을 통해 세상을 통렬하게 비웃어줄 수 있는 날카로운 풍자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힌켈로 오인되어 본의 아니게 대규모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하게 된 찰리. 하지만 이때부터 그는 이제까지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일삼던 얼간이 찰리가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바로 여기서부터는 영화 속 찰리가 아닌 현실의 찰리 채플린이 된다. 연설을 통해 채플린은 자기 입으로 이 영화를 통해 자기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사실 영화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주제를 드러내는 것처럼 맥 빠지는 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찰리 채플린의 연설을 그대로 옮겨본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70년 전에 찰리 채플린이 한 연설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미안합니다. 나는 황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다스리고도 싶지 않습니다.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유대인, 기독교인, 흑인, 백인, 그 모든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남의 불행보다 행복을 빌고 싶습니다. 우린 남을 미워하거나 경멸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 사람들에게 줄 양식과 대지를 주고 있습니다. 그 인생을 자유롭게 살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 방법을 잃고 말았습니다. 탐욕이 인간의 영혼을 중독시키고 세계를 증오의 장벽으로 가로막았는가 하면 불행과 죽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급속도로 산업 발전을 이루었으나 우린 자신에게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도운 기계는 우리에게 결핍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지식은 우리를 냉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생각은 많이 하면서도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기계보다는 인권이 중요하고 지식보다는 친절과 관용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더욱 불행해질 것입니다. 비행기와 라디오 방송은 우리를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발명은 전 지구인이 화해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내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 들리겠지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에게도요. 그분들에게 전합니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이 불행은 발전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벌인 것입니다. 이제 증오와 독재자는 사라지고, 그들이 빼앗은 것을 다시 되찾을 것입니다. 인간이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군인들이여, 그대를 경멸하고 깔보고 그대들의 모든 삶을 통제하고 짐승처럼 다루고 조련하여 전쟁에 쓰는 저 자들에게 부역하지 마십시오. 이런 자들 때문에 기계의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굴복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짐승도 아니고 기계도 아닌, 사람입니다. 저 자들만 증오합시다. 군인들이여 싸웁시다. 누가복음 17장에는 '주의 왕은 인간에게 있다'라고 써져있습니다. 저 극악무도한 자들의 세상이 아니라 여러분의 세상이란 말입니다. 여러분은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기계도 만들 수 있고 행복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힘으로 민주주의 아래 하나가 됩시다. 모두에게 일을 할 기회를, 젊은이들에게 새 미래를, 노인에게 복지 시설을 나눠줍시다. 물론 저 극악무도한 자들도 그런 것을 약속했지만 그들은 평생 지키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만 가능성을 줍니다. 이제 우린 그 공약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됩니다. 온 세계를 해방시키고 나라의 경계를 없애며 탐욕과 증오와 배척을 없애야 됩니다. 이성이 다스리는 나라, 기계를 통해 행복이 전해지는 나라를 만들어야 됩니다. 군인들이여,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 하나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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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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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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