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 - 짐짓 불쌍함을 가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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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21회 작성일 16-02-0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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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사람을 웃기는 것을 속칭 몸개그라고 한다. 초창기 코미디는 대부분 몸개그였다. 하지만 요즘은 몸보다는 말로 웃기는 것이 대세이다. 그러다보니 어쩌다 몸으로 웃기는 고전적인(?) 코미디를 보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컬러 시대에 추억의 흑백영화를 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스티브 벤델락 감독의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가 바로 그런 영화이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푸치니의 [잔니 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소니뮤직




영국 런던에 살고 있는 미스터 빈은 교회의 행운권 추첨에서 프랑스 칸느 여행권에 당첨되는 행운을 얻는다. 프랑스 남부의 휴양지 칸느. 그는 칸느의 초록빛 바다를 머리 속에 그리며 꿈 같은 여행길에 오른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도 졸지에 비범한 사건으로 바꾸어버리는 미스터 빈의 천부적인 재능으로 즐거워야 할 여행길은 고난의 행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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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빈이 우연히 휴가를 떠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가족코미디,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 <제공: 네이버 영화> 영화 정보 보러가기


런던에서 도버 해협을 건너는 유로 스타를 타고 파리로 갈 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고행은 그가 파리의 북역에서 칸느행 기차가 떠나는 리옹역으로 가는 택시를 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택시가 리옹역과는 정반대 방향인 라데팡스에다 그를 내려준 것이다. 프랑스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빈은 광장 앞에 붙어 있는 지도를 보고 리옹역이 있는 위치를 확인한 후 나침판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직선으로 걸어간다. 이렇게 나침판을 보고 직진하는 동안 벤치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차들이 오가는 거리를 가로 질러 걷기도 한다. 이렇게 단순무식한 방법으로 직진을 거듭한 그는 마침내 리옹역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다.

역에는 칸느행 기차가 서 있다. 이제 기차를 타기만 하면 칸느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기차에 타기 전 자판기에서 샌드위치를 사려고 투입구에 지폐를 넣다가 그만 넥타이까지 딸려 들어가 곤욕을 치른다. 이 일로 그는 칸느행 기차를 놓친다. 그리고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레스토랑에 들어간다. 프랑스 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그는 웨이터가 메뉴를 추천하자 그냥 ‘네"라고 대답한다. 웨이터가 가져온 것은 살아서 움직이는 생굴과 이상하게 생긴 새우. 생전 처음 보는 음식에 당황한 그는 빨리 먹으라는 웨이터의 독려에 생굴을 먹는 척 하면서 그것을 옆자리에 앉은 여자의 핸드백에 쏟아 넣는다. 잠시 후 여자가 비명을 지르고, 미스터 빈은 그 소리를 뒤로 하고 서둘러 레스토랑을 빠져 나온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칸느행 열차에 탈 시간. 미스터 빈은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침 기차에 올라타려는 한 남자에게 비디오 촬영을 부탁한다. 비디오 촬영을 하는 동안 기차가 떠날 시간이 된다. 빈은 기차에 타지만 그에게 비디오를 찍어준 남자는 기차를 타지 못한다. 그는 다체프스키라는 러시아 영화감독으로 칸느 영화제에 초청을 받고 아들 스테판과 함께 칸느로 가는 중이었다. 스테판은 이미 기차에 타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두 사람은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었다. 이에 미안함을 느낀 미스터 빈은 스테판과 그의 아버지가 서로 연락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하지만 일이 꼬이면서 오히려 유괴범으로 몰린다.

그 후 미스터 빈 역시 기차가 정지한 사이 밖으로 나왔다가 기차를 놓치는 사고를 당한다. 짐가방은 기차와 함께 가버리고 그는 수중에 일전 한 푼 없는 빈털터리가 된다. 그러자 궁여지책으로 시장에서 즉석 연기를 펼쳐 사람들에게 돈을 받는다. 그 돈으로 먹을 것을 잔뜩 사들고 스테판과 함께 버스를 타는데, 입에 물고 있는 승차권이 바람에 날려 날아가 버린다. 이때부터 미스터 빈의 추격전이 시작된다. 마침 버스 옆으로 닭들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닭의 다리에 승차권이 달라 붙어버린다. 그가 닭을 쫓아가자 놀란 닭이 더욱 빠른 속도로 도망을 간다. 그 닭이 곧 우리에 갇히고, 닭우리는 트럭에 실린다. 미스터 빈은 다른 사람의 자전거를 뺏어 타고 트럭을 쫓는다. 하지만 나중에 자전거가 망가지고, 트럭을 놓친다.

그 후 그는 시골길을 걷다가 길가에 세워둔 수레 밑에서 잠이 든다. 그런 다음 깨어보니 눈 앞에 아름다운 프로방스의 전원마을이 펼쳐진다. 미스터 빈은 황홀한 표정으로 평화로운 프로방스의 일상을 바라본다. 그런데 갑자기 마을로 탱크가 들어오고 이어서 총을 든 군인들이 들어온다. 놀란 미스터 빈은 군인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나가는데, 이때 어디선가 “컷‘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스터 빈이 갑자기 뛰어드는 바람에 촬영을 망친 영화감독은 그를 촬영현장에서 내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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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빈은 한소년과 여배우를 만나 친구가 되어 칸느로 향한다. <제공: 네이버 영화>


쫓겨난 미스터 빈은 다시 도로 위를 걷는다. 그러다가 한 아름다운 여자가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게 된다. 운전자는 사빈이라는 배우인데, 촬영 현장에서 보았던 바로 그 배우이다. 그녀도 그와 같이 칸느로 가는 중이다. 그 후 그는 휴게소에서 버스에서 헤어졌던 스테판을 다시 만난다. 이렇게 해서 미스터 빈과 스테판, 사빈 세 사람은 여행의 동반자가 된다.

칸느에 도착한 세 사람은 칸느 영화제의 공식 행사장을 찾는다. 초청장이 없는 미스터 빈과 스테판은 몰래 극장으로 들어간다. 그때 상영 중인 영화는 미스터 빈을 촬영장에서 쫓아냈던 바로 그 감독이 만든 영화이다.

예술적 감각이 전혀 없는 그는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영화를 만들었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영 신통치 않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영사실로 들어간 미스터 빈이 영화를 중간에 끊고, 자기가 캠코더로 촬영한 영상을 내보낸다. 내막을 모르는 관객들은 이 비디오가 감독이 만든 작품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영화와 비디오의 결합을 시도한 감독의 신선한 도전정신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미스터 빈 덕분에 졸지에 작가주의 감독의 반열에 오른 감독은 경비에게 쫓기다 엉겁결에 무대 위로 올라간 미스터 빈을 뜨겁게 포옹한다. 바로 이 자리에서 스테판은 아버지를 만난다. 영화는 칸느의 해변에서 등장인물들이 모두 나와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는 이른바 몸개그의 전형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주인공이 프랑스 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설정으로 몸개그를 선택이 아닌 필연으로 만들어 버렸다. 배우의 몸개그가 빛을 발하는 장면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압권은 역시 무일푼이 된 미스터 빈이 시장에서 음악에 맞추어 하는 연기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는 여러 곡이 나오는데, 그 중 클래식은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과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 중에 나오는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이다. 미스터 빈이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에 맞추어 연기를 할 때는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어지는 다른 음악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가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에 맞추어 스테판을 안고 처절하게 연기하는 모습에는 모두가 감동하고 박수갈채를 보낸다.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가 나오는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는 희극이다. 작품의 배경은 1299년, 피렌체. 이 지역의 부호 부오조의 집에 친척들이 모여 있다. 부오조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그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모인 것이다. 친척들은 하나 같이 “불쌍한 부오조”라고 슬퍼하지만 사실 이것은 거짓 슬픔이다. 그들의 머리 속은 부오조가 남길 막대한 유산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부오조가 전 재산을 수도원에 기증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데,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부오조가 숨을 거두고 친척들은 서로 유언장을 찾으려고 난리법석을 떤다.

그러다가 치타의 조카 리누치오가 금고 안에서 유언장을 찾아낸다. 유언장에는 그들의 우려대로 모든 재산을 수도원에 기증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친척들이 유언장을 읽고 실망하고 있는 동안 리누치오는 이 문제를 잔니 스키키와 상의하자고 하고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온다.

그런데 리누치오와 잔니 스키키의 딸 라우레타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리누치오는 유산을 상속받으면 라우레타와 결혼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불투명해진 상태다. 어려서부터 리누치오를 키운 치타는 잔니 스키키에게 지참금 없이는 결혼시킬 수 없다고 말하고, 이런 치타의 말에 기분이 나빠진 잔니 스키키는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라우레타가 매달리며 리누치오와 결혼시켜달라고 애원하자 딸의 결혼을 위해 유산을 나누는 일에 개입하게 된다.

잔니 스키키는 부오조가 죽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니 자기가 부오조로 위장을 해서 새 유언장을 작성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친척들은 자기가 받고 싶은 유산이 어떤 것인지를 말한다. 잔니 스키키는 그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기로 약속한다. 그러면서 만약 속임수를 썼다는 것을 들키는 날에는 모두 오른손을 잘린 후 추방당하게 된다고 겁을 준다.

부오조로 위장한 잔니 스키키는 공증인 앞에서 유산 분배에 대한 유언을 한다. 그런데 친척들에게는 아주 기본적인 재산만 물려주고 나머지는 모두 잔니 스키키에게 준다고 유언한다. 이 말을 듣고 친척들이 모두 격분하지만 그럴 때마다 잔니 스키키는 오른손이 잘리고 추방당할 가능성에 대해 암시한다. 친척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나중에 공증인이 나가자 친척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게 덤벼든다. 하지만 잔니 스키키는 이 집의 주인은 이제 자기라고 하면서 친척들을 쫓아낸다. 그리고 관객들을 향해 부오조의 재산이 더 좋은 목적으로 쓰일 것이라는 것과, 청중들이 딸의 행복을 위해 죄를 지은 자신에게 무죄 판결을 내릴 것으로 믿는다고 말한다.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제목만 보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담은 노래처럼 보인다. 제목뿐만 아니라 멜로디도 그렇다. 그 서정적인 멜로디를 듣고 있으면 아버지를 존경과 사랑이 담뿍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딸의 모습이 연상된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이런 상상과는 거리가 멀다. 리누치오와 사랑에 빠진 라우레타가 아버지에게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면서 이 노래를 부르는데, 그 내용이 거의 협박 수준이다. 그녀는 만약 자기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강물에 몸을 던지겠다며 아버지를 위협한다. 그리고는 “저는 죽고 싶어요.”라는 말로 다시 한 번 아버지의 놀란 가슴에 쐐기를 박는다.

자기 말에 안절부절 못하는 아버지를 보고 라우레타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오! 신이여. 저는 죽고 싶어요”라고 노래할 때는 은근슬쩍 그것을 즐기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마지막에 애원조로 “아빠, 불쌍히 여겨 주세요(Babbo, pieta, pieta)”라고 노래하지만 사실 베키오 다리에 가서 아르노 강에 몸을 던지겠다는 말을 했을 때부터 이미 결론은 난 것이나 다름없다. 딸이 죽겠다는데 허락 안 할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아버지의 맹목적인 사랑을 담보로 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

노래의 마지막에 나오는 단어 “pieta"는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이 단어가 나올 때는 대개 심각한 상황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베르디의 [리골렛토]에서 리골렛토가 자기 딸을 납치한 대신들에게 딸을 돌려달라고 애원할 때 ”pieta, pieta"라고 노래한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처절한 절규가 그렇게 통렬할 수가 없다.

하지만 [오! 사랑하는 아버지]에서의 ‘pieta'는 다분히 응석이 섞여 있는 애원이다. 죽겠다는 협박으로 이미 충격에 빠진 아버지에게 살짝 간청의 형식을 갖추기 위한 장치라고나 할까. 단어에 실린 멜로디는 정말로 간절하지만, 오히려 그 간절함에서 과장연기의 의도가 엿보인다.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미스터 빈은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과 같이 경쾌한 음악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으려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정심에 호소하기로 한다.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틀어놓고 짐짓 슬픔을 가장한 몸개그를 하는 것이다. 죽은 듯 축 늘어진 스테판을 양팔에 안은 모습이 영락없이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를 형상화한 피에타상 같다. 불쌍한 아버지와 그보다 더 불쌍한 아들. 음악은 절절하게 흐르고, 아버지와 아들은 온갖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들이 불쌍히 여김을 받기에 충분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 마지막에 누워있던 스테판이 고개를 들려 하자 미스터 빈이 구두발로 지긋이 스테판의 머리를 누른다. 죽음으로 종결되는 구걸연기를 완벽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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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틀어놓고 짐짓 슬픔을 가장한 몸개그를 하는 미스터 빈 <제공: 네이버 영화>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짐짓 불쌍함을 가장한 노래이다. 멜로디는 더 없이 간절하고 서정적이지만, 그 내용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계산적이다. 이런 정서와 내용의 충돌이 웃음을 자아낸다. 영화에서 사람들이 미스터 빈에게 돈을 준 것은 그가 정말로 불쌍해서가 아니다. ‘pieta'라는 엄숙하고 간절한 탄원을 몸개그의 재료로 삼았다는 역발상의 아이디어에서 신선함을 느꼈던 것이다. 정서와 내용은 그 충돌이 크면 클수록 더 큰 웃음을 유발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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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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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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