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카네기 홀 - 영상으로 기록된 미국 음악의 역사적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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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21회 작성일 16-02-0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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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카네기 홀. 장르를 불문하고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꼭 서 보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가 아닐까 싶다. 길 가던 행인이 한 유명한 음악가에게 “죄송하지만 카네기 홀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더니 “연습, 또 연습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정말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누군가 꾸며낸 얘기인지 알 수 없지만, 카네기 홀 무대에 서려면 그만큼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 제2악장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소니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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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홀]은 1947년에 제작된 흑백영화로 당대 유명한 미국 클래식 음악가들이 캐스팅되었다. <제공: 네이버 영화> 영화 정보 보러가기



카네기 홀은 미국의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가 지휘자 월터 담로슈의 제안을 받아 지었다.1891년 5월 5일, 개막 연주회를 시작으로 닷새 동안 대대적인 페스티발이 열렸는데, 이 역사적인 연주회에서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가 자기 작품을 지휘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 [카네기 홀]의 주인공 노라는 차이콥스키가 카네기 홀 무대에서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지휘하는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보았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6살. 어머니의 사망 이후 자기의 보호자가 된 이모와 살기 위해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바로 그 다음 날이었다. 그때 담로슈는 노라에게 “나중에 커서 사람들에게 카네기 홀에서 차이콥스키가 지휘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얘기하렴”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18년 전이었다. 이제 24살이 된 그녀는 지금 카네기 홀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기억은 강렬한 법이다. 노라 역시 그랬다. 그녀는 6살 때 이모 손에 이끌려 처음 카네기 홀에 왔을 때를 잊지 못한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황홀했다. 중절모를 쓴 남자들과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 연주홀을 가득 메운 수많은 꽃들. 들을 것도 많고 볼 것도 많았다. 마치 천국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강렬한 기억은 바로 음악이었다. 조금은 어둡고,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던 차이콥스키의 음악. 그 감동이 그녀로 하여금 음악을 사랑하도록 만들었고, 비록 청소부로나마 카네기 홀에 머물도록 만들었다. 18년 동안 카네기 홀에서 일하며 세계 최고의 연주를 듣다보니 음악을 듣는 실력이 웬만한 비평가 뺨치는 정도가 되었다.

노라는 살레르노라는 피아니스트와 결혼하고, 얼마 후에 아들을 낳는다. 그런데 아들을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계단에서 떨어져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다. 하지만 노라는 절망하지 않고 아들 토니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키우기로 결심한다. 어느덧 능력을 인정받아 사무직으로 자리를 옮긴 노라는 자신의 직분을 아들의 음악교육에 십분 활용한다. 카네기 홀에서 세계적인 음악가의 연주회가 있을 때마다 아들을 데려와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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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카네기홀 전경 및 Isaac Stern Auditorium <제공: Wikipedia>





전설적인 음악가들의 연주 실황을 볼 수 있는 기록영화



그런데 여기서 노라와 토니가 보는 연주회는 실제 연주회이다. 영화를 위해서 일부러 찍은 것이 아니라 1940년대에 실제 카네기 홀에서 있었던 연주 실황을 영화의 일부로 활용한 것이다. 지휘자 담로슈, 로진스키, 브루노 발터, 프리츠 라이너, 스토코프스키를 비롯해 소프라노 릴리 폰스, 메조 소프라노 리제 스티븐스,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펫츠, 첼리스트 피아티고르스키, 피아니스트 루빈시타인, 테너 잔 피어스와 베이스 에치오 핀자 등 지금은 세상을 떠난 전설적인 음악가들의 연주실황이 고스란히 영화 속에 담겨 있다. 사실 이들의 연주를 담은 음반은 많이 있지만 연주모습을 볼 수 있는 영상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기록물로서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 전설적인 연주자들이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연기도 한다는 것이다. 담로슈가 어린 노라에게 차이콥스키의 연주를 듣게 해주고, 브루노 발터는 지휘를 끝낸 후 무대 뒤에 돌아와서 토니에게 싸인을 해 준다. 루빈시타인은 토니에게 바흐의 악보를 주며 “바흐, 바흐, 바흐”라고 바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하이펫츠는 노라에게 재능 있는 젊은 연주자를 도와주어 고맙다고 하면서 “당신이 바로 카네기홀입니다”라고 말한다. 잔 피어스는 토니의 애인 루스에게 성악 레슨을 해주고, 에치오 핀자는 돈 지오반니 의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같이 화를 내는 연기를 배우 뺨치게 잘한다. 이렇게 길이는 짧지만 전설적인 연주자들의 연기와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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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지휘자 브루노 발터, 피아니스트 루빈시타인,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펫츠, 테너 잔 피어스 <제공: Wikipedia>



연주실황을 담은 영화니 당연히 음악이 많이 나온다. 처음에 살레르노가 담로슈의 지휘로 연주하는 곡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다. 파티에서 살레르노의 친구들이 연주하는 곡은 슈만의 [피아노 5중주] 2악장이며, 성인이 된 토니가 노라와 연주회에 가기 직전에 치는 피아노 곡은 멘델스존의 [무언가] 중 [물레의 노래]이고, 연주회에서 브루노 발터가 지휘하는 곡은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전주곡]이다.

그런가 하면 귀에 익은 노래들도 나온다. 소프라노 릴리 폰스가 부르는 들리브의 [라크메] 중 [종의 노래], 메조 소프라노 리제 스티븐스가 부르는 [카르멘] 중 [세기디야], 테너 잔 피어스의 [오! 나의 태양], 에치오 핀자의 [돈 지오반니] 중 [샴페인의 노래]가 그것이다.

소련 공산정권이 들어선 후 서방세계로 망명한 두 명의 러시아 출신 그리고 한 명의 폴란드 출신 거장들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영화의 매력이다. 먼저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인 피아티고르스키가 하프 반주에 맞추어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를 연주하고, 피아노의 전설 알투르 루빈시타인은 쇼팽의 [영웅 폴로네에즈]와 파야의 [불의 춤]을 연주한다. 여기서 특히 루빈시타인의 연주모습이 인상적이다. 손을 굉장히 높이 치켜 올린 다음 마치 망치를 두드리듯이 건반을 내리친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런 연주가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 모습이 마치 동력을 달고 기계적으로 동작을 반복하는 자동인형 같다. 작은 체구의 루빈시타인이 그토록 크고 알찬 소리를 내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편 바이올린의 전설 하이펫츠는 프리츠 라이너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추어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루빈시타인과 하이펫츠, 피아티고르스키는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 각각의 분야에서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거장들이다. 세 사람 모두 러시아 출신이고, 똑같이 서방 세계로 망명했다. 한때 이들은 3중주단을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는데, 이것을 일명 백만불짜리 트리오라고 불렀다. 각 분야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연주자 셋이 모여 환상의 결합을 꿈꾸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못가서 해체되었다. 각자의 개성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확실히 실내악에서는 화려한 개인기보다 ‘화합’이 중요한 덕목인 것 같다.

로진스키가 지휘하는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장면도 인상적이다. 로진스키의 지휘 모습도 상당히 특이하다. 마치 교과서에 나오는 지휘법을 기계적으로 따라하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화려한 몸연기를 자랑하는 요즘 지휘자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로진스키 뿐만 아니라 담로슈, 발터, 라이너의 지휘 역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무언가 절제되고, 정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로진스키가 지휘하는 [운명]은 힘차면서도 담백하다.

노라의 아들 토니는 어려서부터 클래식의 홍수 속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때로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다. 피아노 연습을 하다가 갑자기 재즈로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클래식을 포기한다. 클래식보다 재즈에 훨씬 흥미를 느낀 그는 노라에게 미국 여러 지역을 순회연주하는 댄스 밴드를 따라 가겠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노라는 엄청나게 실망한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오로지 아들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제 아들이 자신의 소망과는 전혀 다른 ‘딴따라’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다. 노라가 간절하게 말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이제 성인이 된 토니는 지금까지 자기가 음악공부를 한 것은 노라의 집착 때문이지 자기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겠다며 집을 나가 버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노라가 카네기 홀에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의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를 듣는 장면이다. 처음에 혼이 느리고 애수에 찬 멜로디를 연주한다. 듣는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고 촉촉하게 적시는 아름다운 혼 소리. 이렇게 혼이 한바탕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고 지나가면 이번에는 오보가 등장해 특유의 밝고 여성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그 소리가 마치 위안을 주는 듯하다. 혼의 멜랑콜리로 다소 축축해졌던 가슴이 밝고 환한 오보 소리로 위로를 받는 것이다. 오보가 연주하는 이 선율은 곧 현악기로 이어지면서 특유의 서정성을 더해 간다.

그 후 곡은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이때 극적인 긴장감을 조성하며 상승하는 멜로디가 듣는 이에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렇게 점점 고조되는 멜로디가 드디어 정상에 오른 순간, 심벌즈가 찬란하게 정점을 찍는다. 듣는 사람 모두에게 장쾌한 해방감을 선사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에서는 1악장의 제1주제를 변형한 모티브가 악장 전체에 걸쳐 나타난다. 전체적인 곡에 통일성을 주기 위한 장치인데, 그 방식이 너무나 갑작스럽다.금관악기의 팡파르가 음악적으로 아무런 필연성도 없이,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이 갑자기 훼방꾼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차이콥스키 음악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살다보면 어느 순간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대중음악을 하겠다는 토니의 선언이 노라에게는 인생의 복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한치 앞을 예측할 수가 없다. 잘 흘러가는 것 같아서 방심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는 일이 다반사다. 노라는 쓸쓸한 표정으로 아름답지만 어딘지 애조를 띤 차이콥스키의 2악장을 듣고 있다.

드디어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의 연주가 끝났다. 그러자 방금 지휘를 끝낸 스토코프스키가 청중들에게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음악가를 소개하겠다고 한다. 그가 소개한 사람은 다름 아닌 토니. “젊은 미국 작곡가에게 이상을 심어주는 새로운 현대적인 랩소디를 소개합니다. 트럼펫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랩소디. 작곡과 지휘, 토니 살레르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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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거쉰, 1937년 <제공: Wikipedia>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등장한 토니는 자신이 직접 작곡한 재즈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을 지휘한다.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을 지휘하면서 토니는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그에게 새로운 장르, 살아있는 음악, 당대의 음악은 클래식이 아니라 재즈이다. 노라는 재즈를 ‘딴따라’라고 폄하했지만 사실 그녀가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미국의 것이 아니라 저 멀리 유럽에서 수입해 들어온 남의 나라 음악이다. 그 동안 토니는 그런 음악만 연주할 것을 강요당해 왔다. 하지만 이제 깨달은 것이다. 미국인에게는 미국인의 음악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에게 당대의 살아있는 음악은 클래식이 아니라 재즈라는 것을.

“나는 재즈가 미국의 민속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재즈는 다른 어느 음악보다 미국인의 피와 감정 속에 흐르고 있는 정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재즈가 영원한 가치를 지닌, 예술성 높은 오케스트라 음악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재즈를 클래식의 영역까지 올려놓은 미국 작곡가 거쉰의 말이다. 이 영화에서 토니는 거쉰으로 상징되는 미국음악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1910년대이니 아직 거쉰이 심포닉 재즈 [랩소디 인 블루]를 발표하기 전이다. 영화 [카네기 홀]은 토니라는 인물을 통해 거쉰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토니가 트럼펫 주자 해리 제임스과 함께 재즈풍의 랩소디를 연주하는 모습은 미국음악에 이른바 ‘딴따라’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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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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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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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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