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엑스칼리버 - 영웅의 위용을 담은 장대한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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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91회 작성일 16-02-0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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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지금보다 1500년 정도 젊었던 6세기경, 유럽은 절대적 암영과 절대적 침묵에 침잠해 있었다. 이것을 이른바 암흑시대라고 한다. 그 암흑의 시대에 역사의 무대에 홀연히 등장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아더왕이다. 그는 영국이 게르만 민족의 침입을 받았던 6세기경에 켈트의 여러 민족을 이끌고 게르만을 격파해 켈트의 영국 지배권을 지킨 인물이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중 [지그프리트의 장송곡] / Arturo Toscanini / 1952년 녹음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소니뮤직




이런 아더의 활약상은 수세기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면서 어느덧 전설이 되었다. 현실의 영웅이 전설 속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마법의 칼이 필요한 법이다. 아더에게는 ‘엑스칼리버’가 있었다. 바위에 굳게 박혀 아무도 빼지 못하던 엑스칼리버. 그 칼을 젊은 아더가 뽑으면서 영웅의 전설은 시작되었다. 존 부어맨의 [엑스칼리버]는 아더의 전설을 담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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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왕과 전설의 칼 엑스칼리버 <제공: 네이버 영화> 영화 정보 보러가기









중세 암흑시대, 나라는 분열되고 왕은 없었다.

혼돈의 시대에 한 전설이 있었으니

마법사 멀린, 왕의 출현,

그리고 전능의 칼 엑스칼리버.

위대한 영웅 이야기는 이런 서막과 함께 시작한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등장한 아더왕. 그는 암흑의 시대를 비추는 한 줄기 찬란한 빛이었다. 영화의 서막에서 마법의 칼에 반사되는 찬란한 태양빛처럼 눈부시게 반짝이는 금빛 광채의 음악이 흐른다.화려한 영웅의 등장과 그 숭고한 몰락을 예고하는 이 웅장한 음악은 바그너의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 제4부 [신들의 황혼]에 나오는 [지그프리트의 장송곡]이다.

처음에 ‘중세 암흑시대’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된 음악은 아더의 아버지인 울터왕이 마법사 멀린에게 마법의 칼을 요구하고, 호수 속에서 엑스칼리버를 든 요정의 손이 나와 칼을 건네주는 장면까지 계속 이어진다. 도입부의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과 북소리를 연상시키는 금관악기의 위용이 가히 엑스칼리버의 위대함을 대변하기에 손색이 없다.

울터는 백작의 아내인 이그레인에게 반해 마법의 힘을 빌어 백작으로 변신한 후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다. 그 후 이그레인에게서 아들 아더를 얻지만, 마법사 멀린은 아더를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아들을 되찾기 위해 멀린을 뒤쫓아가던 울터는 숲 속에 매복한 기사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데, 그때 가지고 있던 마법의 칼 엑스칼리버를 바위에 꽂는다.

그로부터 18년 후, 양아버지 밑에서 자라던 아더는 어느 날 검투사 경기를 보러 가다가 우연히 바위에 꽂혀 있는 엑스칼리버를 뽑는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그동안 아무도 뽑지 못한 칼을 아더가 뽑았다고 하면서 그를 왕으로 추대한다. 왕이 된 아더는 어느날 적군의 무장 랜슬롯과 일대일 결투에서 패하게 되자 비겁하게 엑스칼리버의 힘으로 랜슬롯을 이긴다. 이때 엑스칼리버가 부러지면서 아더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엑스칼리버를 호수에 던져버린다. 그러자 물 속에서 다시 엑스칼리버가 올라온다. 아더는 그것을 받아들고 자기 칼에 다친 랜슬롯을 부하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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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졌던 칼은 호수의 요정에 의해 복원된다. <제공: 네이버 영화>





엑스칼리버를 바위에서 뽑아내는 아더왕 <제공: 네이버 영화>




이후 아더는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나라의 황금시대를 열어간다. 하지만 아내인 기네비어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남편의 부하인 랜슬롯을 사랑하는 기네비어는 랜슬롯과 함께 숲으로 들어가 불륜행각을 벌인다. 사라진 기네비어를 찾아 헤매다 두 사람이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한 아더는 분노에 치를 떨며 갖고 있던 칼을 바위 속에 꽂고 가버린다. 잠에서 깬 두 사람은 칼을 보고 아더왕이 자기들을 보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잠적한다.

그 때 이그레인의 딸 모가나가 아더왕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모가나는 마법을 써서 기네비어로 변신한 후 아더왕과 잠자리를 한다. 그 결과 그 사이에 불륜의 씨앗 모드레드가 태어난다. 이 일로 아더왕은 신의 저주를 받고, 그가 다스리는 나라는 기근에 시달리게 된다. 아더왕은 죽어가는 대지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성배 뿐이라고 하면서 원탁의 기사들에게 성배를 구해오라고 한다. 기사들은 성배를 찾아 원정을 떠나지만 그 과정에서 모두 죽고, 오직 퍼시빌만이 살아남아 성배를 구해온다. 성배를 마신 아더왕은 다시 기사들을 규합해 모드레드의 군대를 파멸시키기 위한 전쟁에 나선다.

마지막에 아더와 모드레드는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이 싸움에서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찔러 죽음에 이르게 된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아더는 퍼시빌에게 엑스칼리버를 바다에 던져 버리라고 유언한다. 영화의 첫 머리에 나왔던 [지그프리트의 장송곡]이 흐르는 가운데 퍼시빌이 바다로 간다. 퍼시빌이 엑스칼리버를 바다에 던지고, 그것을 받기 위해 물 속에서 요정의 손이 올라오는 순간 음악이 절정에 이른다. 그렇게 금관악기들의 찬란한 배웅을 받으며 엑스칼리버는 물 속으로 사라지고, 아더왕의 시체를 태운 배도 바다 저 멀리 사라진다. 영화는 [지그프리트의 장송곡]과 함께 긴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지그프리트의 장송곡]이 나오는 바그너의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는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다. 부와 권력의 상징인 라인의 황금을 갈망하던 신들은 그 황금으로 만든 반지에 내린 파멸과 저주 때문에 드디어 멸망할 운명에 처하고 만다. [라인의 황금]에서 세계의 창조를 보고, [발퀴레]에서 인간이 태어나 자라는 것을 실현시킨 신들은 [지그프리트]에서 그들이 바라던 영웅을 등장시켰다. 하지만 신들은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야망을 이루지 못하고 황금이 지닌 마력에 의해 끝내 몰락하고 만다. 음악극의 마지막 편인 [신들의 황혼]에서 주신의 직계인 베르증크 족의 영웅 지그프리트가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하겐의 창에 맞아 심한 상처를 입은 지그프리트는 조용히 눈을 뜨고 사랑하는 아내 브륀힐데에게 작별을 고한다. 군터는 지그프리트 옆에 무릎을 꿇고 신하들도 그를 따른다. 지그프리트는 두 명의 신하에게 몸을 맡긴 채 브륀힐데에게 작별을 고한 다음 숨을 거둔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영웅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운데 군터는 지그프리트의 시신을 성으로 옮기도록 한다. 바로 이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이 바로 [지그프리트의 장송곡]이다.

영화 [엑스칼리버]에서 [지그프리트의 장송곡]은 엑스칼리버의 출현과 퇴장을 알리는 동시에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곡이기도 하다. 비록 장송곡이라는 제목이 붙기는 했지만 이 곡은 단순히 죽음을 애도하는 곡은 아니다. 그 속에 강렬한 부활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엑스칼리버를 바다에 던지기를 주저하는 퍼시빌에게 아더왕은 “언젠가 새로운 왕이 나타나면 칼은 다시 떠오르겠지.”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영웅의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민족의 영웅은 엑스칼리버와 함께 끊임없이 부활하는 것이다. 요정의 손이 바다 속에서 올라오는 순간 바그너의 음악이 절정에 이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요정의 손에 들린 엑스칼리버가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신 광채를 내뿜듯이 바그너의 음악 역시 찬란한 빛을 발한다. 영웅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듯이.

영화 [엑스칼리버]에서 바그너의 음악극은 중요한 음향적 배경을 이룬다. 여기에는 [지그프리트의 장송곡] 외에 또 다른 바그너의 음악이 나온다. [파르지팔]의 [전주곡]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제1막 [전주곡]이다.이렇게 영화에서 바그너의 음악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그 음악이 발산하는 영웅적인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용적으로도 바그너의 음악극은 이 영화와 유사한 면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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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레이놀즈 감독의 [트리스탄&이졸데] 영화 장면 중
<제공: 네이버 영화> 영화 정보 보러가기



아더왕의 아내 기네비어와 랜슬롯의 관계만 해도 그렇다. 두 사람은 불륜의 관계인데, 이것이 바그너의 음악극에 나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을 연상시킨다. 아일랜드 공주 이졸데는 마르케왕과 결혼하기 위해 콘월성으로 가는 도중 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자신의 후송을 맡은 트리스탄과 사랑에 빠진다. 그 후 두 사람은 왕의 눈을 피해 사랑을 나누지만 어느날 밀회현장을 들키고, 이때 왕의 충신인 멜로트가 휘두른 칼에 트리스탄이 부상을 입는다. 부상당한 트리스탄은 카레올의 성으로 옮겨지고, 이졸데가 그를 만나러 오지만 부상이 심해 그녀 앞에서 숨을 거둔다. 이졸데가 절망하고 있을 때 마르케왕이 도착한다. 사랑의 묘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트리스탄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리고, 두 사람을 결혼시키기 위해서 온 것이다. 하지만 트리스탄은 이미 죽었고, 실성한 이졸데 역시 트리스탄 시신 위로 쓰러져 숨을 거둔다.

영화에서는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인 기네비어와 랜슬롯이 숲 속에서 알몸으로 서로 껴안고 잠들어 있는 장면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제1막 [전주곡]이 흐른다. 이 곡은 이른바 트리스탄 코드라고 불리는 신비한 화음으로 시작해 꿈 속을 헤매듯 몽환적으로 흘러간다. 그러다가 후반부에 격정적으로 클라이막스로 몰아가는데, 그 에너지가 너무 과도하다. 보통 사람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낭비적인 심적 고양을 요구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는 이 음악이 불륜의 사랑을 우주적인 사랑, 죽음을 초극하는 영원불멸의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다르다. 기네비어와 랜슬롯의 사랑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보다 아더왕의 분노와 저주를 폭발시키는 용도로 쓰이기 때문이다. 기네비어와 랜슬롯은 마지막 남은 쾌락의 한 방울까지 모두 소진시킨 후 육체의 노곤함을 이기지 못해 잠이 든다. 아더왕은 기네비어를 찾아 숲 속을 헤매다가 잠들어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그가 칼을 들고 두 사람을 찌르려고 하는 순간, 음악이 절정에 이른다. 사랑의 엑스타시가 아닌 분노의 폭발이다. 하지만 아더는 끝내 두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 대신 바위에 힘차게 칼을 꽂는데, 바로 그 순간 다른 곳에 있던 마법사 멀린의 몸에 칼이 박힌다. 그렇게 아더왕의 분노는 곧 저주가 되어 돌아온다.

아더왕 이야기에서 마법의 칼 엑스칼리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성배이다. 아더는 온 나라에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자 기사들을 시켜 성배를 찾아오도록 하는데, 바로 이 장면에서 성배 이야기를 다룬 바그너의 [파르지팔] 중 [전주곡]이 흐른다. 신성한 기사 티투렐은 천사에게서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 썼던 성배와 그의 옆구리를 찌른 창을 받는다. 그는 성배와 성창을 수호하기 위해 신전을 짓는다. 어느날 티투렐에게 클링조르라는 아라비아 사람이 찾아와 성배 수호 기사단에 들어오겠다고 하지만 그는 이것을 거절한다. 클링조르가 이교도일뿐만 아니라 그 마음이 사악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클링조르는 이에 앙심을 품고 사악한 마법을 배워 근처 황무지에 아름다운 화원을 세우고, 미녀들을 동원해 성배 수호 기사단에 소속된 기사들을 유혹해 타락시킨다.

그 후 티투렐은 나이가 들어 아들 암포르타스에게 성배왕의 자리를 물려준다. 암포르타스는 젊은 혈기에 클링조르를 일거에 멸망시킬 목적으로 클링조르성으로 쳐들어가지만 그의 계략에 빠져 미녀의 유혹에 걸려든다. 창을 빼앗기고, 그 창에 옆구리를 찔려 큰 상처를 입은 암포르타스는 성배 앞에서 기도를 드리며 신의 가호를 간절히 구하지만 상처는 낫지 않는다. 고통에 찬 그는 기사들에게 자기를 죽여달라고 호소하는데, 이때 파르지팔이 나서 성창을 그의 상처에 갖다 댄다. 그러자 그 순간 고통이 사라진다. 암포르타스는 기뻐하며 왕좌를 파르지팔에게 물려준다. 파르지팔이 성배를 꺼내 높이 쳐들고, 기사들이 성배가 가져다 준 구원의 기적을 노래하면서 막이 내린다.

성배 이야기는 [파르지팔]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바그너의 또 다른 음악극 [로엔그린] 역시 성배의 기사에 대한 이야기다. 아더왕의 전설에도 성배가 나오는데, 이것 말고도 유럽의 전설과 신화 중에 성배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다. 민족은 다르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는 태생적으로 비슷할 수 밖에 없다. 아더왕이 영국판 지그프리트라면, 지그프리트는 독일판 아더왕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웅, 신, 마법의 칼, 불륜의 사랑, 근친상간, 성배.

엑스칼리버에 얽힌 아더왕의 전설과 바그너의 음악극은 이와 같은 공통분모를 갖는다. 그렇게 영화는 음향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면에서도 바그너의 음악극과 닮아있다.

사실 아더와 같은 민족의 영웅과 엑스칼리버와 같은 마법의 칼이 등장하는 영화에 바그너의 음악만큼 어울리는 것도 없을 것이다. 바그너의 음악세계 자체가 온갖 비현실적인 공상과 신화, 전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바그너는 자신의 과대망상을 화려하고 장대한 음악을 통해 구현하려 했으며, [엑스칼리버]에 나오는 음악들은 그 허장성세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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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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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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